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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작물 재배 중에서 제일 쉬운 작물이 고구마라고 한다. 흔히 ‘도시에서 이것저것 할 것 없으면 구멍가게를 하면 되고, 시골에서는 이런 일 저런 일도 하지 못하면 고구마나 먹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있고 보면 고구마 재배는 막장인생이거나 천덕꾸러기도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알고 두 번에 걸쳐 고구마를 경작했다. 첫 번째는 십여 년 전으로 부모님이 모두 타계하시어 고향을 자주 다니던 시절이다. 오십 여 평 되는 텃밭을 일구어 밭갈이를 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을 잡아 비료를 듬뿍 뿌린 다음 이랑을 만들어 고구마 순을 촘촘히 심었다. 토질이 습한데다 비까지 내려서 고구마 순이 꼽아 놓은 대로 모두 살았다. 뿌리를 내린 고구마 줄기는 기세가 등등해서 잡초가 끼어들 틈새도 없이 온 밭을 뒤 덮었다. 드디어 가을 서리가 내린 무렵에 자루 몇 개를 담은상자를 싣고 수확에 나섰다. 고구마 줄기를 모두 걷어 낸 다음 이랑을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두렁을 모두 파 헤쳤지만 고구마는 한 개도 없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한다면 나를 허풍쟁이로 여길 것이 뻔하다. 지나가는 어른한테 복합 비료를 듬뿍 뿌린 것부터 그 동안 들인 노력을 푸념하듯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농부 어른이 허, 허, 하고 웃는다. “고구마는 비료를 쓰면 않되지...” 농작물에는 비료를 듬뿍 줘야 되는 줄 알았지 비료를 주면 아니 되는 작물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그 후 누군가 고구마를 심는다고 하면 그 때의 경험을 내세우며 은근히 충고를 늘어놓는다. 이번에는 벼르고 고구마 재배를 시도했다. 심심산골에 있는 아내의 고향에 있는 넓은 텃밭이다. 이른 봄 햇살이 따스해지면서부터 상추 등 채소를 시작으로 고추와 가지, 토마토, 참외와 수박 모종 등 10 여 포기 씩 심기 시작했다. 채소는 전형적인 주말농장으로 소꿉놀이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고구마만큼은 우리 가족들 자급자족할 계획까지 했다. 지난해 처가 형제들이 심어 놓은 고구마를 거두는 체험을 했던 터여서 올해는 아예 내가 주관해서 경작을 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첫 번 째 경험을 바탕삼아 밭 중에서 제일 건조하고 토박한 부분을 골라 두둑을 높게 만들어 검정 비닐을 씌웠다. 봄 가뭄이 이어져서 비가 오기만 기다리다가 구름이 잔뜩 낀 날을 잡아 일 백여 포기를 심었다. 사막의 모래밭처럼 푸석거렸지만 포기마다 물을 흥건하게 부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대부분 살아서 뿌리를 내렸다. 시들해진 싹은 수시로 목을 축여 준 것은 물론이다. 그 싹에서 부드러운 새 순이 나오고 줄기가 뻗더니 연녹색에 자줏빛 잎사귀가 하나 둘 씩 내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줄기에서 갓 나온 어린 잎사귀가 참수를 당하고 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애벌레나 곤충의 먹이로 삼은 것이 아니고 짐승 짓이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고라니가 먹이로 삼은 것이다. 고구마 줄기가 뻗어 가야할 자리에 잡초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고라니 먹이를 면한 줄기가 엉성하게 뻗기는 했다. 고라니에게 양보를 한 것일까. 두려워했던 멧돼지 습격은 면했다. 드디어 수확의 계절, 자루와 쇠스랑을 갖고 밭으로 갔다. 고랑을 빈틈없이 채운 잡풀과 비닐을 걷어낸 다음 고구마 줄기를 따라 흙을 팠다. 손가락 굵기의 가느다란 고구마가 드물게 밖혀 있다. 고구마가 아니고 뿌리이다. 어쩌다 굵은 뿌리는 쇠스랑에 여지없이 찍힌다. 성한 고구마는 고작 몇 알이다. 무지와 무능한 결과이다. 고구마 한 개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고구마를 먹으면서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면 구멍가게를 하거나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천덕꾸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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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쎄요. 고구마농사는 감이나 대추만큼잘하지못했네요.
금년은 경험으로, 내년에는 잘하시겠지요.
그래도 수고는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쉽게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게 되더군요.
농사도 그렇고 세상 모든 일들도 마찬가지로 여겨집니다.
늘 관심을 갖여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올려요^^
올해 실패한 고구마농사가 노하우로 쌓여서 내년엔 대풍작의 고구마농사를 지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실패한 회장님의 고구마 농사 이야기를 읽는데 저는 왜 실실 웃게 되는지요? 참으로 죄송하게도.... 진솔하게 들려주시는 이야기에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