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걸은 지령'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물을 많이 배출하는 고장에는 뭔가 모를 땅기운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통영과 전북 고창이다. 경남 통영은 유치환 김춘수 박경리 윤이상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으로 유명한데 통영이 그림같이 아름다운 바다를 품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전봉준 김성수 서정주 신재효를 배출한 전북 고창도 인물이 많기로 유명한 땅이다. 이는 고인돌시대 때부터 명당 터를 잡은 자생풍수입지 지역이기 때문이란다. 양학선이 체조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비닐하우스에서 살아 고창의 땅 기운을 바로 받았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러나 통영과 고창에 못지않게 많은 인물을 배출한 곳이 부산 동구 지역이다. 임진왜란 최초로 순절한 정발 장군을 비롯해 독도 지킴이 안용복 나훈아 박재혁 허정 박재동 이윤택, 그리고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인수위원회 위원으로 선정돼 화제가 된 박칼린 등 부지기수다.
동구에 인물이 많은 것은 도대체 어떤 땅기운을 받았기 때문일까? 먼저 예로부터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베트남 인도 아랍으로 연결된 부산포의 국제성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주와 시베리아 철도와 연결하는 부산역과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 등 오대양을 잇는 제3부두의 개항이 부산 동구에 근대성을 부여했다. 이처럼 국제적이고 근대적인 동구의 땅이 많은 인걸을 배출한 것이다.
■정발 안용복 박재혁
한반도에서 해양세력 일본과 가장 먼저 맞부딪치는 곳인 동구는 일본과 관련한 역사적 인물들이 많다. 먼저 한일관계 속에서 등장한 동구의 인물들을 살펴보자.
정발은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장수이다. 장수로서 싸우다 죽은 게 당연하지 그게 무슨 대단한 업적인가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진왜란 초기에 경상도관찰사, 경상좌수사, 남해현령 등 장수들이 도망가기에 바빴다는 사실을 알면 생각이 달라진다. 정발의 막료 이정헌과 노비 용월이 전사하였으며, 첩 애향까지 자결하였으니 그의 우국정신이 남달랐음을 그의 주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임란 공신으로 정공단에 배향되어 있다. 도시철도 초량역 앞에 우뚝 서 있는 정발 장군 동상은 지금도 항일의 늠름한 기상을 풍기고 있다.
독도 지킴이 안용복을 보면 안토니오 코레아란 인물에 대한 어떤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동구 출신 안용복은 수영의 노 젓는 군인 출신의 어부였다. 군인 출신의 안용복은 초량왜관에 자주 출입하여 일본 말을 잘 하였다. 그는 울릉도에서 불법 고기잡이를 하는 일본 어민을 징치하다가 일본으로 잡혀갔으나 오히려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왔다. 이후 안용복은 독자적으로 울릉도와 우산도 양도감세관이라고 자칭하고, 울릉도와 독도를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나포하거나, 일본 시마네현 번주를 찾아가 범경(犯境)의 사실을 항의했다. 우리는 안용복이라는 한 개인이 어떻게 조선과 일본을 수없이 오가며 그렇게 맹활약할 수 있는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아라비아까지 이어진 장거리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한 안토니오 코레아와 달리 안용복은 부산, 울릉도, 독도, 쓰시마, 일본을 잇는 짧은 로컬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했던 것뿐이다. 수없이 한일 뱃길을 이용한 안용복의 행적은 아시아 해상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무역상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국제화된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경찰서장 하시모토에게 폭탄을 투척한 박재혁 의사도 단순한 독립군이기 이전에 국제성을 띤 동구의 인물이었다. 그는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나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경북 왜관에서 무역상으로 일하다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 귀국한 뒤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향해 폭탄을 던져 살해했다. 박 의사는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일본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고 단식하다 옥사했다. 박 의사의 애국 행적은 오랫동안 잊혀 있었는데 올해 광복절을 맞이해 생가가 있는 범일동 거리를 박재혁 거리로 조성하게 된 것은 뒤늦게나마 다행한 일이다.
■유치환 이중섭 문선명
생명파 시인 유치환은 통영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시세계는 동구 초량에 와서 더욱 깊고 넓어졌다. 그의 대표작 '생명의 서'에서는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나는 가자'라는 이국적인 시구가 나온다. 해상네트워크로 아랍과 이어지는 부산 초량의 국제성과 연관 짓지 않으면 이 시구의 탄생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 또 유치환은 부산역에서 철의 실크로드를 타고 만주로 올라가 하얼빈, 노아령, 흥안령을 다니며 그의 시세계를 확장했는데 그러한 대륙 정서는 그의 시 '수(首)'와 '광야에 와서'에 잘 드러나고 있다.
이중섭 화가는 북으로 올라간 유치환과 반대로 함경도에서 서울을 거쳐 남으로 내려왔다. 그는 전란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희망을 접지 않고 담배 은박지 등에 그림을 그렸고, 광복동 '루네쌍스' 다방에서 박고석, 손응성, 이봉상, 한묵 등과 동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황소'도 이 다방에서 전시되어 당시 쌀 한 가마에 팔렸으나 지금은 무려 40억 원을 호가하고 있다. 그의 황소는 시골에서 흔히 보는 황소가 아니라 전란 중에 탄생한 그로테스크한 황소이다. 잔뜩 성이나 뒷다리를 구르며 흙을 걷어차는 황소 그림은 좌절 속에서도 다시 한 번 일어서려는 이중섭 내면의 자아상(自我像)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작고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도 이중섭처럼 북한에서 피란 내려와 동구에 자리 잡은 케이스다. 범내골 안창마을로 당시 피란민들이 몰려와 각종 사이비 종교가 창궐하던 곳이었다. 문선명은 그곳에서 2평짜리 토담집을 짓고 교리서인 원리원본을 집필하며 통일교를 만들었다. 현재 이곳은 통일교 성지가 되어 전 세계의 통일교 신자들의 필수 순례 코스가 되어 있다. 문선명이 일찍이 세계성에 눈을 떠 미국과 일본으로 진출해 통일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만들게 된 것도 부산 동구의 국제성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초량초등 동문 나훈아 박칼린 이윤택
나훈아
1937년에 개교한 초량초등학교는 나훈아 이경규 박칼린 이윤택 박재동 등을 배출한 명문학교이다.
뒤로는 부산의 상징인 증산(甑山)을 업고 있고, 앞으로는 그림 같은 북항 바다와 영도섬, 신선대를 안고 있는 초량초등학교의 자리는 배산임수의 명당임에 틀림없다. 눈맛이 시원한 이런 곳에서 6년간이나 뛰놀며 자라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나훈아는 1960·70년대 남진과 쌍벽을 이루며 한국의 가요계를 평정한 가수이다. 애틋한 목소리와 감칠맛 나는 창법으로 대중을 매혹시킨 나훈아는 '고향역' '청춘을 돌려다오' '무시로'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놓으며 트로트의 황제로 우뚝 섰다. 최근까지도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래 '홍시'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다가 그를 둘러싼 해괴한 루머와 세 번째 이혼 등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인도와 티베트로 구도여행을 떠났다는 소문이다. 그의 자유분방한 삶과 머나먼 곳으로의 순례여행은 동구 토박이로 자란 그에게 그리 낯선 정서는 아니다.
같은 초량초등 동문이면서 이번 대선에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 사람으로 박칼린과 이윤택이 있다. 박칼린 뮤지컬감독은 2010년 KBS 예능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 지휘를 맡으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당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로 각계각층 사람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끌어내 '신뢰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이윤택은 한국 연극계의 대부인 오태석과 쌍두마차를 이루는 연극연출가이다. '천체수업' '도깨비불' 등을 '현대시'에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출발했으나 이후 연출가가 되었다. 그가 연출한 '시민K'는 군사정권 시절을 비판해 화제가 된 작품이고, '오구'는 40만 관객이 선택한 최고의 흥행 작품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칼린은 박근혜의 호남지역 유세를 도운 반면, 이윤택은 문재인 후보의 찬조연설을 했다. 대선 이후 명암이 갈라져 박칼린은 박근혜에 의해 인수위 청년특위에 임명되었지만 이윤택은 제2의 고향인 밀양 연극촌으로 내려갔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이 만나는 관문인 부산 동구는 지정학적으로 국제적인 인물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땅이다. 허정(정치가) 김말봉(작가) 금수현(작곡가) 박재동 (만화가) 장기려 매혜란(일신기독병원 설립자) 강석진(동명목재 설립자)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이곳 동구 출신이거나 동구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구가 배출한 인물을 추적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제성과 근대성이 교차하는 땅 부산 동구에서는 이름 모를 무수한 인재들이 배출되었고, 지금도 위대한 인물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많은 보석들(인물들)을 어떻게 꿰느냐가 동구의 숙제일 것 같다.
# '베니스의 개성상인' 안토니오는 초량 출신 가능성
- 오세영 소설에 대한 이색 추론
좀 다른 이야기지만 베스트셀러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주인공 안토니오 코레아도 부산 초량의 위대한 인물이다. 작가 오세영은 두 가지 역사적 팩트를 발굴해서 팩션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탄생시켰다. 첫째는 이탈리아의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Francesco Carletti)가 쓴 '나의 세계 일주기'에 나오는 내용으로, 카를레티가 임진왜란 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 온 안토니오 코레아(Antonio Corea)라는 조선인을 데리고 일본에서 로마까지 갔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네덜란드의 화가 루벤스가 1606~1608년 사이에 이탈리아에 머물 때 그린 인물화(사진)인데, 철릭을 입고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쓴 조선인 그림이다. 작가는 이 그림의 주인공이 바로 일본에서 로마로 간 안토니오 코레아이며, 소설 '베니스의 개성상인'의 주인공 유승업이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실제인물인 안토니오 코레아는 개성상인이 아니라 부산상인, 초량상인이어야 실제 상황과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개성상인은 국내에서만 세력이 있었지 국제무대에 진출하지는 않았다. 국제무대에 왕성하게 진출한 사람은 부산상인, 초량상인이었다. 조선시대 중엽 부산포와 초량은 일본의 나가사키 항과 연결되어 대만 필리핀 마카오 인도 아랍 동아프리카와 활발히 교역하던 해상네트워크의 허브(HUB)였고, 부산포 초량사람들은 이 항로를 수시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안토니오 코레아는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의 단순한 노예가 아니다. 약삭빠른 이탈리아 상인이 수많은 조선인 포로 중에서 왜 안토니오 코레아를 선택했겠는가. 나가사키에서 이탈리아까지 이어진 해상네트워크를 잘 알고 있는 노련한 선원이자 국제적 감각이 있는 부산의 무역상을 길잡이로 택한 것이다. 그리고 무관복인 철릭을 두른 모습을 볼 때 그는 수영(水營)의 군인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인 안토니오 코레아는 결코 개성상인이 될 수 없고 부산 수영 출신의 초량상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안토니오라는 이름에서 안씨 성을 가진 초량 출신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 부산 동구의 풍수
- 등 뒤로 가마솥 짊어진 형상
- 인심 좋고 개방적 인물 태어나
- 드난살이에도 사람 홀대 없어
- 6·25 전쟁 속 피란민 끌어안아
풍수로 말한다면 부산 동구는 가마솥의 본고장이다. 동구의 뒷산 증산(甑山)에서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가마솥은 마을 공동체를 다 먹여 살린다. 텍사스촌, 제3부두, 부산역 등 국제적이고 근대적 시설은 외화를 벌어들여 동구를 넉넉히 먹여 살렸다. 그래서 동구의 가마솥 밥을 먹고 자란 동구 토박이들은 어딜 가든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았다.
등 뒤에 떡시루와 가마솥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은 마을 인심이 푸짐하다는 것이다. 가마솥은 찾아오는 사람을 홀대하는 법이 없다. 그래서 6·25 때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란민들을 부산의 가마솥으로 다 먹여 살렸다. 타지 사람들 중 동구의 가마솥 밥을 먹고 위업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 이승만 대통령도 동구에 사는 초량교회 장로인 양성봉 씨 댁에서 숙식을 하면서 벼랑 끝에 몰린 대한민국을 살려내었다. 이중섭, 유치환, 문선명 등이 동구의 가마솥 밥을 먹으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일구었다.
지금도 부산은 따뜻하고 물산이 풍부하며 드난살이 하는 사람에게 인심이 좋아 살기 좋은 도시라고 소문이 나있다. 그래서 마음이 따뜻하고 인심 넉넉한 개방적인 인물들이 태어나는 것이다. 부산의 상징이자 동구의 상징인 가마솥을 동구 뒷산에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 김하기 작가 약력
김하기 소설가
부산대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부산대 대학원에서 '황석영과 이문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부산대 부경대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창작과 비평에 '살아있는 무덤'으로 등단해 '완전한 만남' '천년의 빛' '식민지 소년' 등 16권의 책을 썼다. 소설가, 작가, 칼럼니스트로 한국인의 창의성에 관심을 가지고 전 방위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김하기 소설가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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