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부로산)-350.3m
◈날짜 : 2024년 7월 8일 ◈날씨 : 흐림
◈들머리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읍 교동리 작천정정류장
◈산행시간 : 4시간18분(10:26-14:44)
◈찾아간 길 : 팔용중-115번(8:12-30)-창원터미널-택시((8:30-47)-남산정류장-시외버스(8:50-9:58)-언양터미널:정류장-327번(10:19-25)-작천정정류장
◈산행구간 : 작천정정류장→대머리바위→갈림길→봉화산→돌탑→경동교→화장산→굴암사→언양성당정류장
◈산행메모 : 국제신문에서 안내한 영남알프스둘레길 제2코스를 따라가는 산행이다. 327번 버스로 작천정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진행방향으로 산행 시작.
작천정삼거리서
오른쪽 작천정으로 향한다.
오른쪽으로 안테나가 보이는봉우리가 나중에 만날 봉화산이다.
등억알프스로를 따라간다.
작천정입구 정류장도 만난다. 주차장 왼쪽에 화장실도 보인다. 위로 보이는 저게 대머리바위?
화장실을 들렀다 나오면
작천정벚꽃길.
오른쪽으로 열리는 산길입구에 인내천바위 안내판.
산길은 나중으로 미루고 도로따라 직진한다. 도로 왼쪽 아래로 작괘천. 계곡암반에 둥근 바위도 보인다.
작천정문화공간도 조성했다.
왼쪽 돌계단으로 내려간다.
작괘천에 내려서니 작천정의 하일라이트. 작괘천에 이런 그림도 있었구나. 상주 도장산 아래 쌍용계곡에 자리한 회란석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누각 작천정이다.
바위에 음각된 글자도 보인다.
발길을 돌려 인내천 바위 입구 이정표를 다시 만난다.
돌아본 산길 입구.
올라가서 만난 인내천바위.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혁명의 사상을 표현한 인내천(人乃天) 글씨가 새겨진 이 바위는 1915년 상북면 출신 김영걸 씨가 쓰고, 삼남면 출신 함석헌 씨가 음각했다고 한다. 30m 인근의 3·1운동사적비와 함께 암울했던 시대 희망을 갈구했던 언양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바위다.>
암반사면으로 치솟는 길에 발걸음이 무겁다.
막아선 바위는 왼쪽으로 우회한다.
봉에 올라서니 소나무 아래로 커다란 암반. 대머리바위로 보이는데 안내판은 없다.
내려가니 앙증스런 돌탑도 만난다.
봉화산 1.5km 이정표를 지나니 대밭도 통과한다.
봉화산 1.3km 이정표서 8분 후 만난 이정표.
여기부턴 숨차게 올라간다.
봉화산 쉼터에 올라선다.
멀리 문수산과 남암산이다.
이정표를 지나면 봉수대 돌담과 안내판.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는 '부로산(夫老山)'으로 표기돼 있는 산으로 울산시기념물 제16호인 부로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왜적 침입 등 국가적 위기 때 부산 천마산과 금정산 계명봉, 원적산(현 천성산) 봉수대를 거친 봉화를 받아 경주 소산 봉수대로 이어주던 이 봉수대는 울산의 내륙 봉수대로는 유일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안내판과 터만 남아 있다.>
나무에 걸린 정상 표지.
정상 목표지는 김문암님 작품이다.
여기서 점심밥상을 차린다.
도로서도 보였던 tv중계 안테나를 왼쪽 뒤로 보낸다.
돌아본 봉수대.
이런 돌탑도 만난다.
갈림길에 내려서면 여기도 돌탑.
돌탑봉에 올라선다.
나무에 걸린 표지도 보인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간다.
오른쪽 계곡에 샘터가 보여 내려간다.
물맛을 보니 생각보다 시원하다. 야산에서도 심심산골의 물을 만날 수 있구나!
샘터를 뒤로 보내니 서어나무도 만난다. 인근 주민들이 신성시한다는 나무다.
부서진 이정표를 지나니
산길을 벗어난다.
정면에 모습을 드러낸 화장산.
다가서는 무지개 목교.
무지개다리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한다. 왼쪽으로 경동청구@. 오른쪽은 태화강이다.
뒤로 지나온 봉화산을 돌아본다.
경동교 따라 오른쪽으로 태화강을 건넌다.
울주군청년회의소 앞을 지난다.
건널목 뒤 왼쪽 오영수문학관으로 올라간다.
오영수문학관을 만난다. 여기서 화장산 등산로는 왼쪽이다. 왔던 길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산길을 만난다.
표지를 만나 그런지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바위를 만난다.
건너에 지나온 봉화산이다. tv중계 안테나도 보인다.
청구@ 앞으로 경동교와 태화강도 보인다.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쌀바위 상운산 문복산과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에 이르는 영남알프스 동부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했는데 구름이 얹혀 머리속으로만 그려본다.
삼각점을 만난다.
언양시가지 위에서 하늘 금을 그리는 문수산, 남암산.
쉼터를 만나는데 해먹도 보인다. 3명이 즐기고 있다.
정상은 공동묘지.
여기는 화장산. 언양 사람들은 해발 271m에 불과한 화장산(花藏山)을 주산으로 삼고 있단다.
<도대체 화장산은 어떤 산일까. 우선 전설부터 한 번 보자. 때는 신라시대 어느 엄동설한. 산 밑에 사냥꾼 부부가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 위 바위굴에 살던 곰이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 부부는 곰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곰에게 역습을 당해 죽고 말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부모를 찾으러 나섰던 남매도 산을 헤매다 기진맥진해 눈 속에서 얼어 죽었다. 가엾게 죽은 오빠의 혼은 대(竹)가 되고 여동생의 정령은 소나무(松)가 됐다. 산의 동쪽 마을 이름이 송대리가 된 유래다. 그래서 지금 산 위와 아래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다.>
돌아본 정상석.
도화정을 만난다.
영남알프스둘레길 이정표.
화장산굴암사에 내려선다.
저 바위 아래 굴은 널찍한 법당이다.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에 걸려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남방에 도화(桃花)가 있으니 그 꽃을 3일간 달여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왕은 엄동설한에 어떻게 도화를 구할지 걱정하면서도 신하들을 풀어 꽃을 찾게 했다. 한 신하가 헌양성(언양성의 옛 이름)에 이르러 가까운 산의 남쪽 바위에서 서기가 어리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니 꽃은 없고 도화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바위굴에서 수도중이었다. 서라벌로 간 도화 스님앞에서 소지왕은 3일간 기도했고 병은 보란듯이 나았다.
크게 기뻐한 소지왕은 직접 언양에 가서 도화 스님이 머물던 산의 이름을 '꽃을 감춘 산'이라는 뜻으로 '화장산'이라 하고 석굴 속 샘물을 염천이라 불렀다. 또 화장암(굴암사의 전신)이란 절을 지어 매년 8월16일을 관례일로 삼았다. 이후 언양의 관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제례를 올렸다. 화장산은 언양의 주산이 됐다.
또 화장산 정상 기슭에는 천지(天池) 또는 세이지(洗耳池)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는 언양 사람들이 '더럽고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물에서 귀를 씻는다'는 의미로 명명된 이름이다. 올곧은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언양 사람들이 중국 요나라 때 인물인 소부와 허유의 고사를 따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굴암사에서 바라본 봉화산.
내려가니 여기는 화장사. 대웅전도 보인다.
언양양조장을 왼쪽 뒤로 보낸다.
언양성당이 보인다.
구교동2길을 지나고 있다.
물어물어 언양지석묘를 만난다.
<울산시기념물 제2호인 언양지석묘. 언양읍 서부리에 위치한 이 고인돌은 길이 8.5m 너비 5.3m로 영남지역 최대 규모의 지석묘다. 언양이 선사시대부터 번성했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서부리 주민들은 '용바우'로 부르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돌아보니 지나온 오영수문학관 입구가 여기서도 보인다.
지석묘를 오른쪽 뒤로 보내고 시내버스가 지나는 도로를 건너니 언양성당이 여기서도 보인다.
언양성당정류장을 만나며 산행을 마친다.
#언양성당건너정류장-357번(15:00-28)-언양터미널-시외버스(15:45-17:00)-창원종합터미널-108번(17:09-22)-극동@정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