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비
박강남
한국문인협회 회원,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한글문학회 이사, 농민문학 운영이사, 국제계관시인연합한국본부회원, 글핀샘문학 회장(역임)
시집: 《바람 없이도 흩날리는 꽃잎》(2020,시문학사) 외 4권,
수상: 영랑문학상본상(2013), 농민문학작가상(2021) 외
mobile: 010-7266-8285 e-mail: pkn1213@hanmail.net
㉾12056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곡리 해밀예당 1로 51, 자연앤어울림@1308-1203.
큰애가 다섯 살 무렵이었다.
층층시야 어른들 밑에서 시집살이를 할 때여서 한옥이라 춥기도 했지만 도시에서 살던 나는 불편한 것도 많았다. 그렇지만 시어른들의 사랑이 불편한 많은 것을 상쇄했다. 또한 한옥에서 사는 동안 보고 겪는 좋은 점도 많았다.
삼월 삼짇날 제비가 돌아와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았으니 5월 그믐이나 6월 초순 무렵이었을 게다.
남편은 출근하고 시할아버지 할머니 시부모님은 들에 가셨다.
내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안마당에서 새들의 왁자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찌나 시끄러웠던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부엌문을 열고 나오자 아들 녀석과 옆집 아이 여섯 살짜리 성일이가 화들짝 놀라며 장대를 내동댕이치고 높은 대문턱을 훌쩍 넘어 달아
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마당을 둘러보니 한 무리 제비들이 마당 안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동그라진 장대 옆에 새끼제비 한마리가 떨어져 있었고 쪽마루 위에도 한마리가 있었는데, 어미로 뵈는 제비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한옥 마루와 안방 중간쯤의 처마 밑에 제비집이 조금 부서져 있었고 그 아래 나무판자로 된 제비들 배설물받이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개구쟁이 두 녀석이 노란 입을 벌리고 먹이 달라고 짹짹거리는 새끼를 보고 싶어 호기심에 벌인 일인 듯, 나는 한 눈에 모든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제일 먼저 새끼들의 상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여서 얼른 다가가 제비들을 살폈더니 장대 옆의 새끼제비는 이미 이승을 떠났고 쪽마루 위에 앉은 새끼는 상처 하나 없이 맑고 까만 눈으로 자신의 위급을 호소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작스런 사태에 나는 절절매며 이 조그맣고 연약한 생명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다 우선 네모난 소파의자 두개를 끌어와 포개서 올려놓은 다음, 마음을 가다듬어 심호흡을 몇 번 한 후 힘겹고 조심스럽게 올라가 제비 집에 남아있는 세 마리 새끼들 사이로 조심스레 넣어주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어미제비는 내가 눈물겹게 올라가 넣어준 새끼를 입에 물어 밖으로 떨어트리려 하지 않는가? 순간 나는 두 손을 활짝 열어 떨어지는 새끼를 안전하게 받아 제비집에 있는 새끼들 사이에 살그머니 넣어 주었다. 그러나 어미는 계속 떨어트려 기다렸다 받아서 도로 넣어주고, 기다렸다 받아서 도로 넣어주기를 수차례. 인내심이 고갈된 나는 너무 긴장한 탓에 힘이 빠지고 어지러웠다. 땀이 나고 후들거려서 더 이상 의자 위에 서 있을 수가 없어 조심조심 간신히 마당으로 내려왔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무렵 나는 둘째 아이를 가져 6개월이 된 때라 의자 두 개를 포개놓고 높은 처마 밑 제비집 아래서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았고 이는 내게도 생명을 건 위험한 도박이었다.
또한 새끼 제비를 넣어주면 어미가 자꾸 바깥으로 떨어트리는 바람에 담요와 옷가지 수건 방석 등을 꺼내와 안전하게 바닥에 깔아놓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부엌문을 열고 처음 안마당으로 나왔을 때는 불과 열대여섯 마리 정도 제비들이 무리지어 마당 안을 타원형으로 빙빙 돌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어디에서 그 많은 제비가 날아왔는지 새까맣게 모여 더욱 왁자하게 소리 지르며 빙글빙글 빠르게 돌고 있어 마치 나에게 항의하듯 시위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며 이 일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어미제비에게 나의 미안한 마음을 더하지도 말고 솔직하게 전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무릎을 꿇어야 하나.
“어미제비야 내 아들과 이웃집 아이가 너의 귀한 새끼에게 해를 끼쳐서 정말 미안하구나. 나도 아이를 키워봐서 지금 너의 마음이 얼마나 슬플지는 누구보다 잘 알아. 이게 다 아이와 집안을 잘 살피지 못한 내 잘못이야. 정말 미안해. 너에게 용서를 빌게. 아이가 돌아오면 제 잘못을 알려주고 혼을 내줄 거야”
“너에게 염치없지만 미안한 마음으로 제안하는 건데, 여기 건강하게 살아있는 새끼제비는 아무 잘못이 없잖아. 그러니 밀어내지 말고 잘 키워줬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미 천사가 된 한 마리는 햇볕 따뜻한 쪽 땅에 정성껏 묻어 줄게. 그러니 살아있는 새끼는 제발 밀어내지마. 어미제비야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응? 또한 이후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것도 약속할게”
나는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마음을 다해 용서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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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네가 보다시피 나도 아이를 가진 상태잖아! 의자 놓고 올라가기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어서 후들후들 떨려. 그러니 이번에 올려주면 밀어내지 말고 잘 받아주면 정말 고맙겠어. 꼭 들어 줄 거지? 지금 올라갈게”
나는 제비에게 잘못을 비는 내내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
말을 마친 후 차분하게 제비집 아래 바닥엔 키와 소쿠리 몇 개에 푹신하게 담요와 큰 옷가지, 방석과 수건을 덮어씌운 후 큰 보자기에 새끼를 넣어 내 목에 둘렀다. 그런 다음 의자를 붙잡고 힘겹게 올라가 새끼를 조심스럽게 꺼내 제비집 새끼들 사이에 넌지시 넣어주고 혹시 몰라 두 손을 펴고 잠시 기다렸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어미제비가 이번엔 새끼를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무 감격하여 눈물범벅을 하며 “어미제비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를 연신 되뇌며 아주 천천히 내려왔다.
기적은 그뿐이 아니었다. 안마당을 까맣게 덮고 소리 지르며 시위하던 제비 떼가 잠시 전보다 조금 높이 떠 빙글빙글 완만히 돌다가 한 마리 한 마리 차례로 대문 밖으로 훨훨 날아가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사람과 동물사이에도 진심을 다해 말을 하면 마음이 통한다는 것을 …
제비 떼가 모두 떠나가고 제비부부만 남았을 때, 내가 처마 밑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 돌아오셨다.
조금 전에 일어났던 제비들 사건을 소상히 말씀드렸더니 할아버지도 적잖이 놀라시며 “의자에 올라간 일은 매우 위험할 수 있었다며 놀라지 않았느냐”고 걱정을 하셨다
“그런데요 할아버지! 제가 어미제비에게 약속을 했는데요. 새끼를 어디에 묻어주면 좋을까요?” 여쭈었더니, 할아버지는 온종일 햇볕 드는 따뜻한 곳을 골라주시며 제비를 묻어주셨다.
나는 〈새끼제비가 잠든 곳〉 이라는 표식을 만들어 세웠다.
그 날 이후 제비부부는 정성을 다해 먹이를 물어다 키워 성체가 되어 구월에 떠났다.
또 시간이 흘러 맵고 짜고 시고 떫은 12년 한옥에서의 시집살이를 마치고 나도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큰애가 마흔세 살이니 구름층 같은 세월이 흘렀지만 때때로 그 옛날 제비들이 떠오른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면 더러 경이로운 일과 맞닥뜨린다. 지금은 지구나 기후환경이 너무 변해서 제비 떼를 보기도 어렵지만 그날 그 많은 제비가 어디서 어떻게 모여들었을까? 어미제비는 어떤 심정으로 그 많은 제비를 불러 모았을까.
까맣게 빙빙 돌던 제비 떼가 어미제비에게 호응해주다 일이 잘 해결되자 한 마리 한 마리 순차적으로 대문을 지나 푸른 하늘로 힘차게 날아가던 그 풍경이 지금 생각해도 그저 놀라운 일이었다.
일이 잘 해결된 것은 어찌 알았으며 나와 어미제비의 말을 그들도 귀를 쫑긋이 듣고 있었단 말인가? 신비한 일이었다.
그 후로도 제비는 봄이면 어머니 댁 한옥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워 이소를 했다가 가을이면 남쪽 나라로 돌아갔다.
제비는 신령스럽다던가?
그들은 집안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지 오래 전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던 해는 물론 재작년(2023. 11.) 어머니가 가셨을 때와 숙부, 숙모가 가신 해에도 집안에 들지 않았다.
한 해를 온전히 비운 후 다음 해 봄에 돌아오는 제비를 어떻다 표현할까.
어머니 댁 한옥엔 지금도 제비집이 열 서너 채가 있다.
나는 그곳에서 봄 여름 가을까지 제비를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삐오롱 짹 삐오롱 삐오롱 째그잭 짹짹 ᡞ ⁓?”
알 수 없고 떠들썩한 그들 언어 끝머리가 높은 음音 임을 들으며 때로 그들만의 언어체계가 꽤 구체적 일거라고 유추해본다.
그래서 오래전 그 다급한 일을 빠르게 전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자연환경이 온전치 못해 새집 지을 건축 자재가 마땅치 않은지 몇 해 전부터 새집을 짓지 않고 전에 살던 집을 재사용하고 있다. 제비들 재치가 넘친다기보다 진흙이며 볏단, 그밖에도 내가 알 수 없는 재료 구하기가 어려워 그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미안하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답답하다.
그래도 해마다 돌아와 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반갑고 큰 위로가 된다.
40여년 제비와의 인연이 참 고맙고 신기할 뿐이다.
이제 설이 겨우 지났건만 마음은 어느새 삼월 삼짇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