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느 때 {차}라고 하며 어느 때 {다}라고 하는가의 구별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구분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도 그것에 대한 정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다만 예를 들어 설명을 하고 최소한의 답에 도전을 해 보기로 한다.
{차}와 {다}의 쓰임새
{茶}는 다른 글자와 어울려 있을 때, {차}로도 읽히고 {다}로도 읽혔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엽에는 {차}나 {다}로 쓰이는 경우가 구분되어, 독립어 {茶}는 {차}로 읽히고 쓰였으며, 불교용어나 궁중용어로는 {다}라고 읽혔던 것 같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직후에 나온 <월인석보(月印釋譜, 1458년)> 제10 에는 {那낭茶땅}, {伽茶伽茶 꺄쨔꺄쨔}라 하여 {따}(한자어 표기의 종성으로 받침 ㆁ은 발음되지 않음)와 {쨔} 즉, {다}와 {차}의 두 가지로 읽혔음을 알 수 있다. 가차(伽茶)라 함은 절차(寺刹茶)를 뜻한다. 12세기 즉, 고려 중엽에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이 고려에 사신으로 와서 당시의 언어를 한자로 기록한 <계림유사(鷄林類事)>에 아래와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茶曰茶, 茶匙曰茶戊} 여기서 네 개의 {茶}는 같은 음임에 틀림없다. 1527년 최세진이 편찬한 한자학습서인 <훈몽자회(訓蒙字會)>에 {茶 : 차 다},{茗 : 차 명}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차}는 대중적으로 쉽게 이해하는 뜻이고, {다} 혹은 {명}은 한자의 음을 말한다. 따라서 독립어 {茶}의 대중적인 말은 {차}였으므로 위의 글은 {차를 차라 한다}고 해석된다.
또 {茶戌}은 차숟가락의 우리말 표기로서 {차술}이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숙수를 '익은 물'{熟水日 泥根沒} 이라 했고 '익은 수'라 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밥술}을 {반술(飯一)}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15세기에 완성된 <두시언해(두보의 시를 당시의 한글로 번역한 책)>에도 아래와 같이 {차}라고 했음을 볼 수 있다. * 正히 링셔 차 링 니어 달히노라(端居茗續煎社 2:13). 조선 후기에는 대용차(代用茶)가 성해지면서 같은 글이 {차}로도 읽히고 {다}로도 읽혔으며 {차} 보다 {다}가 쓰인 경우가 많았다. {茶飯}이란 말은 차가 일상화되어 식후에는 항상 차를 마셨으므로 {밥}을 뜻하는 말로 조선 초에는 {차반}이라 했다. 1670년에 인쇄된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 우리말로 해석한 중국어 책)>에도 {차반도 빛브르다(茶飯也飽了)}고 하였고, 잘 차려놓은 밥상을 {대차반(臺茶飯)}이라 했다. 이것이 언제부터인지 {다반사(茶飯事)} 혹은 {항다반(恒茶飯)}이라고 쓰이게 되었다.
이와 같이 혼동하여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염집의 명절제사는 {차례(茶禮)} 혹은 {차사(茶祀)}라 전해져 왔고 차 끓이는 여성은 {칭모(혹은 차모, 茶母)}라고만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말기에도 {차약}, {칭관}이라 했다. 그러나 궁중용어로 숭늉을 {다}라고 했고, 부처님 올리는 찻그릇은 차기가 아니라 {다기}이며, {다게(茶偈)}, {다비(茶毘)}, {시다림(屍茶林)}, {다각(茶角)} 등 불교용어는 모두 {다}를 쓴 것을 보면, {다}는 궁중이나 사찰용어로서 존중의 뜻이 있고, {차}는 일상적인 여염집의 경우에 붙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말기에 {차}보다 {다}를 많이 쓴 것은 차가 일상에서 조금 멀어지고 특별한 경우에 쓰였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茶}의 격에 따라 발음을 달리한 것은 우리 민족뿐인 것 같다. 오늘날 아래와 같이 그 쓰임새를 구분할 수 있다.
1. {차}로 쓰이는 경우
ㄱ. 실제의 마른 차와 마시는 차를 가리킬 때 - 차, 작설차, 햇차, 선차(仙茶), 동차(東茶), 산차(山茶는 동백나무를 가리킴), 차원(茶園, 차나무밭), 차탕(茶湯), 차향(茶香), 박차(薄茶, 맛이 나쁜 차, 자기가 대접하는 차의 낮춤말) 등
ㄴ. 다른 독립어와 같이 만들어진 복합어일 때는 {차}이다. 특히 한자로 쓰지 않는 말과의 복합어는 예외없이 {차}이다. - 차그릇, 차도구, 찻독, 차떡, 찻방(차를 보관하는 방), 차벗, 차살림, 차세간, 차숟갈, 차솥, 차손님, 찻집, 찻잎, 찻자리 등
ㄷ. 차세간 낱낱에 쓰일 때(일반적으로 {다}로 쓰기도 한다) - 찻장(茶欌), 차탁(茶托), 차반(茶盤), 차완(茶椀), 차합(茶盒), 찻잔, 차상 등
ㄹ. 궁중이나 불가의 용어가 아닌 여염집의 일이나 일상적인 일 또는 사람과 관련되어 사용할 때 - 차례(茶禮, 사회적인 행사인 다례와 구분), 차사(茶祀), 차인(茶人), 차회(茶會) 등
2. {다}로 쓰이는 경우
한자와 어울린 말로서 복합명사가 아닌 때 {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격을 높이는 뜻이 있을 때 {다}를 쓴다.
ㄱ. 차를 다루는 행위 (verb+茶) - 팽다(烹茶), 행다(行茶), 헌다(獻茶), 진다(進茶), 끽다(喫茶), 음다(飮茶) 등
ㄴ. 궁중이나 불가의 용어이거나 국가적, 사회적 용어이거나 격을 높일 때 - 다방(茶房, 고려시대의 차 관청), 다시(茶時), 시다림(屍茶林,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 다도(茶道), 다담(茶談), 다신계(茶信契) 등
ㄷ. 차 이외의 다른 용도로도 쓰이거나 차를 직접 가리키지 않을 때, 옛글이어서 한문을 보기 전에는 그 뜻을 알기 어려울 때 - 다실(茶室), 다정(茶亭), 다천(茶泉), 다로(茶爐) 등 - 다려(茶侶, 차벗), 다갈색, 산다(山茶, 동백나무), 다식(茶食) 등
ㄹ. 지명(地名) - 다동(茶洞, 서울), 다공리(茶貢理, 경남 거제), 다로동(茶路洞, 경북 청도), 다소리(茶所理, 전남 화순), 다곡리(茶谷理, 전북 장수), 다운동(茶雲洞, 울산) 등
ㅁ. 관습에 의해 이미 굳어진 말 - 다과(茶菓), 다반사(茶飯事), 다기(茶器), 다구(茶具) 등
말이란 것은 항상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리고 그 말이란 것이 또 문화를 만들어 내기도 하다. 우리말을 사랑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언어를 사랑하고 올바르게 쓰는데 있는 것 같다.
- 참고 : [cha]와 [te(tay)]
동양의 음료인 차는 16세기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하는 해로(海路)가 개척된 이후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차가 유럽으로 처음 수입된 것은 1610년의 일로, 네덜란드에 의해서 였으며 영국도 처음에는 네덜란드를 통해 차를 수입했으나, 직접 광동(廣東)에서 차 무역을 시작하면서 영국이 차무역을 독점했다. 네덜란드는 거점인 바타비아(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옛이름)에서 그곳을 찾아오는 중국 상인으로부터 차를 사들이는 수동적인 형태로 운영했기 때문에 네덜란드가 운반한 차의 가격이 비싸 경쟁력이 약해졌다. 따라서 동서양의 차 무역을 영국이 장악하게 됐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홍차문화는 영국에서 꽃 피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영국인들은 처음에는 차를 어떻게 불렀을까. 영국인이 차를 '티(tea)'라고 부른 것은 1644년 이후의 일이다. 이 해에 영국 상인들이 복건(福建) 하문(厦門)에 자리를 잡으면서 복건어 [te(tay)]에서 'Tea'로 정착된 것이다. 하지만 1671년까지도 출판물에는 여전히 'Cha'로 표기되고 있었다. 이는 네덜란드, 영국 모두가 일본을 통해 차를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차를 의미하는 세계 각국의 단어는 중국 광동어(廣東語)인 [cha]와 복건어(福建語)인 [te(tay)]의 두 계보로 나뉜다. 영어 'Tea', 독어 'Tee', 에스페란토어 'Teo', 라틴어 'Thea'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현재 유럽의 경우 포르투칼어를 제외하면 대부분 복건어의 [te(tay)] 계보에 속한다. 포르투갈의 경우 광동성의 마카오를 통치하면서 차를 들여왔기 때문에 광동어 [cha]의 계보에 속하게 됐다. 광동어 [cha]의 계보에는 한국어과 일본어의 '차', 포르투갈어ㆍ힌두어ㆍ페르시아어의 'Cha', 아라비아어ㆍ러시아어의 'Chai', 터키어의 'Chay' 등이 있다.
차(茶, 다)에 관한 술어
ㄱ. 다반사(茶飯事=恒茶飯) : 밥을 먹듯, 예사로운 일이나 아주 쉬운 일을 뜻한다. 원래 '차반(茶飯)'이 언제부터인가 '다반(茶飯)'으로 읽히면서, 잘 차려놓은 밥상을 뜻하는 '대차반(臺茶飯)'을 '다반사(茶飯事)' 혹은 '항다반(恒茶飯)'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cf. 차반, 개차반 : 조선 초에 차가 일상화되면서 식후에는 항상 차를 마셨으므로 '차반(茶飯)'이 한편으론 밥을 뜻하는 말로 변질되면서 맛있게 잘 차린 음식이나 반찬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차반'이란 개가 먹는 음식, 즉 똥을 점잖게 비유한 말로 행세를 마구하는 사람이나 성격이 나쁜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ㄴ. 차례(茶禮) : 초하룻날과 보름날 또는 명절에 제단에 차를 가져다 올리는 예절, 낮에는 '차례'라고 하여 차를 올리며, 밤에는 술을 부어 '제사'라고 한다. 차례는 원래 '다례(茶禮)'라고 하여 문자 그대로 다(茶)를 행할 때의 모든 예의범절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지금은 다례라 하면 옛날 궁중의 다례나 불교의 다례 등을 뜻하는 말이고, 차례는 명절에 지내는 속절제(俗節祭)를 가리키는 것으로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정월 초하룻날과 추석에만 지내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ㄷ. 시다림(屍茶林=尸陀林) : 죽은 이를 위해 장례 전에 행하는 의식. 원래 인도의 '시타림(sita-vana, 寒林)'에서 연유한 말로 추운 숲, 시체를 버리는 곳이란 뜻이다. 인도 중부에 있는 왕사성 옆에 있던 곳으로 죽은 시신을 이 숲에 버리면 독수리 떼들이 날아와 먹어 치우는 조장(鳥葬)에서 유래한 말로 이의 뜻이 바뀌어 우리나라에서는 망자를 위하여 설법하는 것을 '시다림'이라고 하고 이를 시다림법문이라 한다. cf. 시달림 : 괴로움을 당하거나 누군가가 계속해서 성가시게 구는 것을 말하는데, 본디 이 말은 '시다림(屍茶林)'에서 나온 말로 시다림은 위 설명대로 일종의 공동묘지였는데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 시신을 내다 버렸고 그 때문에 이곳은 공포와 각종 질병이 창궐하는 지옥같은 장소가 되었는데, 도를 닦는 수행승들이 고행의 장소로 이곳을 즐겨 택하곤 했으며 수행자들은 이곳에서 시체가 썩는 악취와 각종 질병과 각종 날짐승들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므로 이 시다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곧 고행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여기에서 '시달림'이라는 말이 나왔다.
ㄹ. 다비(茶毘) :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 'jhpita'에서 유래된 말로서 불에 태운다는 뜻으로, 곧 시체를 화장(火葬)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장례법으로 불교가 성립되기 이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오던 장법이다. 이 법에 의해 석가모니도 그 유체를 화장하였는데, 그 이래 다비는 불교도(佛敎徒) 사이에 널리 행해졌으며, 불교가 중국을 거쳐 한국ㆍ일본 등으로 전래됨에 따라 이 장법도 한국ㆍ중국ㆍ일본 등에서 널리 행해지게 되었다. cf. 참고로 죽은 이를 위하여 왕생극락과 깨달음의 법을 일러주기 위하여 거행하는 불교의식으로 시다림, 영결식, 다비의식, 천도의식, 시식, 49재, 100일재, 소상재, 대상재, 공일천도재, 제사와 영반 등이 있다.
ㅁ. 명(茗) : 차(茶)의 옛말로 차나무의 싹이나 차나무 잎을 따서 이를 원료로 하여 음료를 만든 것.
ㅂ. 채다(採茶) : 찻잎을 채취하는 일.
ㅅ. 제다(製茶), 조다(造茶) : 차를 만드는 일.
ㅇ. 변다(辯茶) : 차의 품질을 식별하는 일.
ㅈ. 장다(藏茶) : 차를 보관하는 법.
ㅊ. 화후(火候) : 불을 가늠하는 일로서, 차를 달이는 요령에 있어 불 가늠을 잘하는 것을 첫째로 손꼽는다.
ㅋ. 투다(投茶) : 다기에 차를 넣는 법.
ㅌ. 음다(飮茶) : 차 마시는 법.
ㅍ. 품천(品泉) : 물의 등급. 차는 어떤 종류의 물을 가려 쓰느냐에 따라서 차의 사기(四奇 : 色, 香, 氣, 味)가 드러나기 때문에 물의 품등을 가려서 쓰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에 심지어 차맛의 절반은 물맛이라고도 한다.
ㅕ. 주두다각(酒頭茶脚) : 술은 술독의 위의 것이 좋고, 차는 주전자 밑에 있는 것이 진미라는 말.
ㅗ. 봉차(封茶) : 옛날 혼사가 성립되면, 차씨 한 봉지를 양가가 주고 받았는데 이를 '봉차'라 한다. 원래 차나무는 뿌리가 깊게(2-4m 가량) 내려가는 직근성(直根性)인데, 옮겨 심으면 살지 못한다 하여, 일부종사(一夫從事)를 빌며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이렇게 하였다. 지금은 봉차를 '봉채(封采, 혼인식을 하기 전에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채단과 예장을 보내는 일)' 또는 '봉치'라고 하여, 예단을 보내는 의미로 사용한다.
차 관련 어록(語錄)
ㄱ. 차란 무슨 차든 그 향기로 인해 마음이 흐뭇해진다. [박현서, <다화의 정서>]
ㄴ. 차맛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로 그 맛이 결정된다. [이어령, <차 한잔의 시상>]
ㄷ. 차의 성질 가운데는 우리들을 한정한 인생의 영상으로 인도하는 무엇이 있다. 차는 영원히 지성인들이 애호하는 음료가 될 것이다. [T. 드퀸시]
ㄹ. 차는 지상의 청순의 상징이다. 적다(摘茶), 제다(製茶) 및 그 보존, 최후에는 차를 달여 마시기에까지 청결이라는 것이 가장 까다롭게 요망되며, 기름기 있는 손이나 찻잔이 조금이라도 차 잎사귀에 닿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노고는 순식간에 모두 헛수고가 되고 만다. 따라서 차를 즐기는 데에는 모든 허식이나 사치스러운 유혹이 눈에서나 마음에서나 말끔히 사라져버린 분위기라야만 적당한 것이다. [육우, <다경>]
ㅁ. 차는 번민과 때를 제거해 준다. 그러므로 세상에 차는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소식, <다설>]
ㅂ. 차가 분량이 적은데 끓인 물을 많으면 운각(雲脚 : 차의 이칭)이 흩어지고 끓인 물은 적고 차가 많으면 유면(乳面 : 차의 이칭)이 모인다.[육우, <다경>]
ㅅ. 차취(茶趣)의 정수는 그 색채와 향기와 풍미를 상완하는 것으로, 그 조제의 원칙은 순정, 건조 및 청결에 있다. [채양, <다록>]
ㅇ. 최상의 차에 바랄 수 있는 향기는 '어린애의 살갗'에서 풍기는 것과 같은 델리킷한 향기다. [임어당(임어당의 사진은 차 Gallery 참조)]
ㅈ 차의 감상력은 냉철한 머리로 뜨겁게 안 세계를 능히 볼 수 있는 사람이 갖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ㅊ. 마음과 손이 다 한가할 때, 시를 읽고 피곤을 느꼈을 때, 생각이 어수선할 때,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노래가 끝났을 때, 휴일에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금(琴)을 뜯고 그림을 바라다 볼 때, 한밤중에 이야기를 나눌 때, 명창정궤(明窓淨軌)에 향할 때, 미모의 벗이나 날씬한 애첩이 곁에 있을 때, 벗들을 방문하고 집에 왔을 때, 하늘이 맑고 산들바람이 불 때, 가벼운 소나기가 내리는 날, 조그만 나무다리 아래 곱게 색칠한 배 안, 높다란 참대밭 속, 여름날 연꽃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누각 위, 조그만 서재에서 향을 피우면서, 연회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간 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사람사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한 절에서 명천기암(名泉奇巖)이 가까운 곳에서 차를 마실 일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ㅋ. 차는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사람과 비슷하고 술은 기사에 비할 수 있다. 술은 좋은 친구를 위하여 있고 차는 조용한 유덕자를 위하여 있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ㅌ. 혼자서 차를 마시면 이속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둘이서 마시면 한적이라고 일컬어지며, 세 명이나 네 명이 마시면 유쾌하다고 말해지고, 대여섯 명이 마시면 저속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곱 명이나 여덟 명이 어울려 마시면 경멸하는 뜻에서 박애라고 불리어지게 마련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ㅍ. 사람이 차를 마시는 것은 속계의 훤소(喧騷)를 잊게 위함이다. 차는 미의미식(美依美食)하는 사람을 위한 물건은 아닌 것이다. [임어당, <생활의 발견>]
ㅎ. 첫 번째 방향(芳香), 두 번째 감향(甘香), 세 번째 고향(苦香), 네 번째 담향(淡香), 다섯 번째 여향(餘香)이 있어야 차의 일품이라 한다. 그런 차를 심고 가꾸고 거두고 말리고 끓이는 데는 각각 남 모르는 고심과 비상한 정력이 필요하다. [윤오영, <엽차와 인생과 수필>]
ㄲ. 떫은 홍차에는 영국의 현실주의가, 엽차의 신비한 향미에는 오리엔트의 꿈이 서로 대조적인 맛을 풍기고 있다. [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차와 더불어 먹는 다식(茶食)
1. 다식의 개념
다식(茶食)은 볶은 곡식의 가루나 송화가루를 꿀로 반죽하여 뭉쳐서 다식판(茶食板)에 넣고 갖가지 문양이 나오게 박아 낸 유밀과이다. 옛 기록에 "송(宋)의 정공언, 채군모가 묘한 것을 생각해내어 떡차(餠茶)를 만들어서 조정에 바쳤는데, 이것이 풍속이 되었다" 고 한다. 복건성(福建省) 건주에서 나는 용단차(龍團茶)를 정채(丁蔡)라고 하기도 하는데 차로 만든 떡이라는 데서 다식(茶食)이라는 명칭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고, 찻가루에 물을 조금 부어서 뭉친 것이 다식의 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1763년 <성호사설>에 "다식은 송조(宋朝)의 대소용단(大小龍團)이 변한 것이며, 국가의 제천에 쓰였는데, 본래에는 제사에 점다(點茶)를 쓰던 것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라고 하였고, 1285년 <삼국유사>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찻잎가루로 다식을 만들어 제사상에 올린데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하였다. 1670년 <음식지미방>에서는 "밀가루를 볶아서 꿀, 기름, 청주에 반죽하고, 이것을 익힐 때 모래를 깐 기왓장에 담아 기왓장으로 뚜껑을 해서 익힌다" 하였다. 한편 <태상지>의 '조과식(造果式)'에는 전다식(煎茶食)이라 하여 "판에 박아낸 것을 기름에 지진다" 하였으며, 정약용이 지은 <아언각비>에서는 "다식을 세상에서는 인단(印團)이라고 하였는데, 밤, 참깨, 송화가루를 꿀과 반죽하여 다식판에 넣어 꽃잎, 물고기, 나비모양으로 박아낸 것이다" 고 하였다. 어떻든 다식은 단맛과 원재료의 고유한 맛이 잘 조화된 것이 특징이며 혼례상이나 회갑상, 제사상 등 의례상에는 반드시 등장하는 과자였다. 다식은 보통 음다(飮茶)시의 초탕과 재탕 사이에 먹으면 된다. 중국의 다식(다과)는 주로 땅콩, 해바라기씨, 호박씨, 수박씨 등이고, 일본은 과자류가 발달되어 그 종류가 삼백여 가지에 달한다고 하며, 우리 나라의 다식은 송화가루나 마른 밤가루, 깨, 녹말 등을 꿀이나 조청으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찍어내는 것이다. (사진은 Gallery 참조 - 중국의 다식 사진도 소개)
2. 다식의 종류
ㄱ. 쌀다식 쌀로 밥을 지어 말린 후 노릇하게 볶아 곱게 빻아서 체로 쳐서 여기에다 꿀과 소금을 넣고 잘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ㄴ. 밤다식 밤을 삶아 속껍질까지 벗긴 다음 곱게 찧어서 체로 치고 여기에 계피가루, 유자청, 꿀을 섞어 반죽을 하고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ㄷ. 흑임자다식 검은 깨를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빼고 살짝 볶아 기름이 나도록 오래 찧어서 꿀로 반죽을 한 다음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ㄹ. 녹말다식 짙은 색의 오미자 물을 준비하여 녹말가루에 오미자 물, 꿀을 섞고 잘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내면 예쁜 분홍 빛깔의 다식이 된다. ㅁ. 콩다식 콩다식은 푸른 콩가루나 노란 콩가루를 각각 꿀에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은 것으로, 1913년 <조선요리제법>에도 소개되어 있다. ㅂ. 승검초다식 승검초가루를 곱게 체에 쳐서 송화가루를 섞고 꿀을 넣어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ㅅ. 생강다식 생강가루를 체로 곱게 쳐서 녹말가루를 섞고 꿀로 반죽한 다음, 계피가루를 약간 치고 다시 잘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ㅇ. 용안육다식(龍眼肉茶食) 용안육을 곱게 찧어서 고운 체로 쳐서 꿀로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만든다. ㅈ. 송화다식 솔잎은 암을 막아주고 침침한 눈을 밝혀주며 대머리로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머리를 나게 한다 해서 신선 식품으로 유명하다. 솔꽃 또한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5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하는 솔꽃을 받아 꿀에 반죽해 다식판에 찍어 낸 송화다식은 궁중의 잔치상에는 필수 음식으로 올랐고 민가의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았다. 이 송화다식은 다식판을 특히 깨끗하게 하여 노란색이 곱게 되도록 해야 예쁜 색깔의 다식을 만들 수 있다. 차 마시기가 널리 보급된 지금 송화다식은 다식(茶食)의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 <본초강목>에는 "송화는 맛이 달고 온하며 독이 없다. 심장과 폐를 부드럽게 하고 기운을 늘려주며 풍을 제거하고 지혈을 시킨다" 고 적혀 있다. 또한 송화가루는 공기 주머니가 두개 있어 산소 공급 효과가 매우 커서 다쳐서 피가 나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송화가루를 바르면 지혈 효과가 있다. 그리고 종기가 곪아 고름이 생겼을 때 송화가루를 바르면 흉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또 송화는 방부성이 강해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이밖에도 밀가루를 누릇누릇 볶아서 만드는 진말다식, 보리다식 등이 있는데, 각각의 다식을 만들어 색을 맞추어 돌려내면 대단히 아름답다.
그리고 다식을 만들 때는 꿀은 흰색의 꿀(아카시아 꿀 등)을 넣어야 주재료 그대로의 맛과 향기를 살릴 수 있고, 색도 제색을 내므로 깨끗하다. 또한 꿀은 각각 그 재료에 따라 수분을 지닌 정도가 다르므로 가루에 조금씩 넣고, 어우러지는 정도를 보아가며 반죽한다.
3. 다식판(茶食板)
다식을 박아내는 틀을 말하는데, 길쭉하고 단단한 나무 조각의 위, 아래에 다식 모양을 파낸 것과 한 조각에 구멍을 파낸 것도 있으며, 각재에 원형, 화형, 물고기 등을 음각으로 파낸 하나의 판으로 된 것도 있다. 위, 아래 두 짝으로 된 것은 다식 모양을 돌출시킨 양각판과 투공시킨 판이 양 끝에 버팀대가 있다. 양각판의 돌출부에 수(壽), 복(福), 강(康), 녕(寧) 또는 완자무늬, 꽃무늬 등이 음각되어 있다. 다식을 박을 때에는 위판을 올려 괴고 구멍에 반죽을 넣어 눌러 찍으면 된다. 혼례, 회갑연, 제례 등에 반드시 쓰이는 조과품이었다. 대를 물리면서 사용하고, 필요시에는 주부가 새기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 참고 : 차의 종류에 따른 다과의 선택
다과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러 가지 곡식의 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지거나 튀기는 유밀과 가루재료를 반죽하여 다식판에 박아 낸 다식, 익힌 과일이나 뿌리 등의 재료를 조청이나 꿀에 조리는 정과, 과일을 삶아 걸러 굳힌 과편, 과일을 익혀서 다른 재료와 섞거나 조려서 만드는 숙실과, 그리고 견과류나 곡식을 중탕된 조청에 버무려 만든 엿강정 등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ㄱ. 녹차(綠茶) 녹차를 마실 때에는 송화다식, 흑임자다식, 콩다식 등이 잘 어울린다. ㄴ. 백차(白茶) 백차를 마실 때에는 맛이나 향이 강하지 않은 과일로 만든 푸딩 종류가 좋다. ㄷ. 오룡차(烏龍茶) 오룡차를 마실 때에는 콩다식과 양갱 등이 좋다. ㄹ. 홍차(紅茶) 홍차에는 달콤한 쿠키나 케익을 곁들이면 좋다. ㅁ. 황차(黃茶) 황차에 어울리는 다과로는 땅콩이나 호박씨, 깨로 만든 강정을 권할 만하다. ㅂ. 흑차(黑茶) 육포(肉脯)나 과일 등으로 만든 전과류나 떡, 과일의 씨앗 등을 곁들여 먹으면 흑차의 맛이 휠씬 더 향긋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