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참 독특한 인물이 원소입니다.
연의에서 명문 원가의 일원이라는 포지셔닝을 받고 그에 따라 꼰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실제 원가의 몰빵을 받은 인물은 원소가 아니라 원술이었죠. 겉보기에는, 그리고 결과적으로 하북 4주를 점거하고 강대한 영역을 구축하여 압도적인 위세를 자랑하며 조조의 앞을 막아서는 최종보스 위치에 서있으나 얼자라는 출신 한계 때문에 그 시작은 맨주먹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6년상을 치르는 등 뼈를 깎는 무리수를 둘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원씨 본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뼈를 깎아가며 종자돈으로 '명성'을 만드는데 성공했고, 정계에서 명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던 당대의 상황에서 이는 상당히 탁월한 한 수였습니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명성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상황이라.. 바둑으로 치면 포석은 제법 잘 깔아놨는데 지은 집은 하나도 없는 격이었죠.
그런데 이 명성을 세력으로 전환하는데 성공하여-사실 말이 좋아서 정치력이지 협잡이나 다름없는 짓을 반복하여-한복을 잡아 군벌로서 기반을 갖추고, 이미 압도적인 위력을 자랑하고 있던 공손찬을 실력으로 격파하여 하북을 통일하는데 이르게 됩니다. 정치력으로 한 주를 석권한 인물은 유표도 있으나 유표에게는 전투력이 없었던데다, 종친이었던 유표에 비하면 원소는 그야말로 완벽한 상위호환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원소 빠돌이들이 말하는 당세인걸 원소님 하앍하앍이 옳아보이지만, 원소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참 많습니다.
일단 자신을 옹위하는 핵심적인 친위세력이 없다는게 원소의 행보를 옭아매는 알파이자 오메가였으니. 친위세력이 없으니 전적으로 자신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정치가 강제되었고, 휘하의 호족세력이 파벌화(기주파벌vs영천파벌)되어 대립하자 그 조절에 상당부분의 역량을 빼앗깁니다.
게다가 친위세력이 없으면 한 번 무너졌을때 권토중래가 어려워진다는 문제도 있죠. 조조나 유비는 초반에 여러번 말아먹고도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원소는 한 번이라도 무너지면 재기가 불확실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원소 빠돌이들이 '결단력이 훌륭하신 원소님'이라고 빨아대는 것과 달리, 정작 중요할때 우유부단해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입니다. 동탁의 낙양 입성 당시 동탁을 지금 쳐야한다는 휘하의 주장을 물리친 것부터 시작해서 협천자 당시(물론 이건 원소가 그때까지 벌였던 프로파간다상 참작의 여지가 있습니다만)도 그렇고, 조조가 서주로 유비를 정벌하러 간 상황에서 구경만 한다거나.. 나관중이 괜히 우유부단하다는 이미지를 씌워준게 아니라는 거죠. 평소에는 칼같은 결단력을 보이는 인간-공손찬이랑 싸우다 장연 뒷치기에 본거지 업이 따였을때가 대표적입니다. 휘하 참모진이 죄다 멘붕하고 있는데 혼자 수습해내죠-이 정작 중요할때만 되면 뭉기적거리니..
두번째 문제가 너무 냉혹하다는것. 십상시 제거를 위해서 관군을 흑산적으로 위장하여 맹진을 불태우자고 주장했던게 대표적인데, 정적 잡자고 자국민을 학살하라니 정치적인 노림수로는 상당히 효과적일지 몰라도 사실 제정신으로 제시할만한 정책이 아니죠. 이 인간은 그냥 또라이에 미친놈입니다-_-
사실 이건 조조도 어느 정도는 마찬가지로 걸리는 문제인데(친구라서 그런가--;), 서주를 불태우고 공융 최염 양수 순욱 같은 명사들 목을 날려대서 어그로를 있는대로 끌어놨죠. 백성들 입장에서는 학살자요, 식자 입장에서도 폭군입니다. 공자의 후손인 공융, 원가에 필적하는 홍농 양씨의 일족인 양수 같은 명사들 목을 날려댔으니, 차라리 고대나 우길 죽인 손책은 양반으로 보일 판이죠.. 오죽했으면 연극에서 조조역을 했던 배우가 맞아죽는 사태가 있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조조가 이딴 뻘짓만 안 했어도 본인대에 통일이 가능했을거라 봅니다. 그래도 조조는 학살/숙청 상대가 '적 치하의 주민'이나 '불온분자'기라도 했고, 단지 냉혹하기만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전위나 관우 등에 관한 미담(...전위는 좀 자폭성이긴 하지만--;)부터 시작해서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이상으로 매력이 넘치는 얼굴을 가진게 조조입니다. 그런데 원소는? 뭔가 발굴해서 재평가할만한 미담이 있던가요..?
기본적으로 냉혹한 인간이 친위세력 부재로 자신의 카리스마에만 의존하는 정치 상황을 강제받게 되니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기울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고, 사실 이 시점에서 파멸은 정해진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냉혹하더라도 조조처럼 친위세력이 존재했다거나, 유비처럼 성격이 좀 유하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원소의 근본적인 문제는 성격 탓에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일부러 난세의 조장을 의도했는지 모르겠으나, 하는 일마다 혼란이 확대되는 행동들을 반복합니다. 동탁이 아직 미지수일때 살려놓고, 제후군을 선동하고, 유우를 추대하고, 협천자를 거부하고..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꼬인거라면 무능한거고, 일부러 부추긴거면 천하의 역적이죠. 그리고 암만 봐도 원소는 후자입니다. 전자의 대표적인 예가 '도련님' 원술이고.. 조조도 전통적으로 참 욕을 많이 먹은 악역이었습니다만 어쨌든 조조는 일관적으로 혼란상의 수습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원소는 질적으로 달라요. 재평가해봐야 나오는건 피도 눈물도 없는 대악인입니다--; 저보고 삼국시대 군벌 중에 상사를 고르라면 차라리 실제로 학살을 저지른 조조 밑에 들어가서 일했음 일했지 원소 밑에는 못 들어갈거에요.
첫댓글 얼자라도 사대삼공 뼉따구가 있는데 그정도로 지지기반이 없었........군?
동탁이 원씨 일족을 몰살하면서 본가의 세가 확 기울어버린게 컸죠. 그 전에는 집안 어른들이 원소의 편의를 이것저것 봐주긴 했는데, 동탁의 학살 후로 집안에서 제일 큰 어른이 된게 원술-_-이었다는게..;
친위세력이야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죠. 조조는 환관 자식이었고(....) 유비는 지입으로 중산정왕 후손이라고 말하는 수준의 듣보잡 돋자리 장수였고.. 유비가 한왕실 후손이란게 동력으로 작동한 것은 그가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구요..
누가봐도 포용력이 심각하게 부족했던 원소는 한고조처럼 팍팍 베푸는 성격도 아니었죠. ㅋ 대체로 통수쳐서 제거하는게 그의 일상적인 방식이었고..
흑산적 위장설은 지가 욕먹을일이 없다는 냉정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겠죠..ㅋ 욕먹어야 하진이 먹지 원소 본인이 먹겠습니까...
개인적으로는 원소 노선상 만들기 쉽지 않았을거라 봅니다.
기본적으로 원소의 정치는 명분입니다. 원소가 자신의 정치 기반을 명성쌓기로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주목할만한데, 청류의 지지를 끌어모아 만들어놓은 명성과 명분이 원소 정치력의 뿌리입니다. 천하에 떨치는 명성을 기반으로 누구나 공감할만한 명분을 만들어 상대를 옭아매어 조여들어가는거죠. 판짜는 능력을 보면 원소는 삼국지 탑입니다. 이점에 있어서는 만렙이라고 봐도 좋은데..
@Draka 원소의 행보가 자신의 명분과 부합하지 않는다는게 딜레마입니다. 말로는 천하의 가장 의로운 인간이 자신인데, 하는 짓은 동탁이나 매한가지니--; 때문에 선전전으로 모은 지지세력을 자신의 직할 세력으로 만드는게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천하의 선비가 지지한 것은 원소가 내세운 기치이지 원소 자신이 아니거든요. 정반대 케이스가 유비라 보는데, 유비는 명분과 일치하는 행보를 이어갔기에 지지세력의 결집에 성공했습니다. 그 천하의 조조조차 순욱이 이탈했는데 유비 진영에서는 이런 사례가 없죠.
명분 없이도 원소 자신을 지지할 유일한 세력이 혈족인데, 그 혈족의 기반은 원술이 다 먹어버린데다가, 원술과는 원수가 되어버렸..
@Draka 친족이 떨어져 나간건 동탁한테 개기고 동탁이 그래도 사세삼공 일족이라고 발해태수로 보내줬는데 전국구 어그로 끌어서 낙양 공격해서가 아닐까요..-_-;; 그 때 원씨일족 100여명이 처형당했다던데.... 원술에게 붙은 일족들은 원술이 굳이 적장자라서가 아니라 원술이 동탁한테 어그로 끌려서 남양으로 튈 때 그냥 원술이랑 함께한 일족내 인원들이 아닌가 싶고..
사실 난세라서 명분 없어도 원소를 지지해줄 사람은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기주 접수 이후 가담했던 저수, 전풍, 장합 등이 있겠죠. 그 이전에 한복 밑에 있다가 그와 반목하고 가담한 국의라던가..
근데 죄 않좋게 끝났잖아요? 호족과 원소간의 알력으로 포장하는데
@Draka 애초에 전근대 정치체제에서 이런 세력과 인물들을 포섭해야 하는 건 원소급 인사들에게는 기본 중에 기본이죠. 그런데 원소는 자기 발밑의 기주의 인사들조차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있었단 이야기죠.ㅋ 이런 유형은 굉장히 흔한데 90% 자기의 권리를 내놓지않고 틀어쥐기만 하는 리더들에게서 발생하죠.
사실 조조도 명분으로만 따지면 공격당할 거리들 많았고(너 새퀴가 동탁과 다른게 뭐냐.. 복황후 죽인거 보면 뭐...-_-;;;;) 유비도 같은 혈족 유장이 도움 요청했더니 암바 걸어서 낼름 파촉을 집어 삼켰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자기 사람들을 끌어 모았죠. 유비도 가진게 없을 때나 나누지 않은 거지 일단 정착을 하자
@Draka 팍팍 뿌리긴 했었죠.(조운이 태클 걸기야 했습니다만.. 있는 걸 뺏어 주지 않았단 거지 유장이 쥐고 있던걸 안주진 않았던 거죠..) 그리고 구 파촉내부의 인사들에게도 팍팍 뿌렸구요.. 관직이나 명예직을 제수한다는게 고대에는 다 그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근데 원소는 이게 없어요.ㅋ 최근 연구 소개한 글 보니까 원소는 알려진 거와 달리 관도 대전 직전까지도 내부 호족 반란에 시달렸던 모양인데 그 분들이 포장해 주는 정치력이란게 님이 말씀하신대로 모략과 정략으로 남 통수치는 거지 하나의 집단으로 구성하는 그런 종류의 정치력은 아니라고 보이네요
@델카이저 그냥 적장자에 종손이라 원가를 장악한겁니다. 적장자라는건 일족의 지지를 받는 당연한 근거가 됩니다. 당장 저부터가 종손이라 잘 알고 있어요--; 또한 원술이 거점으로 삼은 남양-구강 일대는 원가의 본관이자 본거지인 여남과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일단 고대 종법에 적자를 두고 서자도 아닌 얼자를 옹립하는 사례가 없죠.. 게다가 당대의 원술은 명분으로도 실적으로도 가문의 몰빵을 받기에 딱히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원소는 원가의 얼자였기 때문에 그나마 사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거지, 서자만 됐어도 6년상이라는 고행을 할 필요가 없었을겁니다.
@델카이저 원소는 안한게 아니라 못한거에 가깝다고 봅니다. 가진건 명성과 명분 뿐이고 토호를 압도하는 실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의 권력을 나눠줬다간 유표처럼 바지사장 꼴나기 딱 좋죠. 당장 원소가 여포를 내친 이유부터가 자신의 권위를 공격받았기 때문입니다. 조조도 일족을 비롯한 측근들에게만 권력을 나눴지 외부인사에게 뭔가를 뿌린 사례가 없습니다(주자사 정도는 임명했는데, 그래도 해당 지역의 군권을 쥔 방면군 사령관은 전부 조씨 일족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장료 장합 서황 우금 악진 같은 명장들도 죽을 때까지 조인 조홍 하후연 밑에서 굴렀을까요. 나중에는 외척들이 이반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국구가 되는게 조조입니다.
@델카이저 유비가 원소의 반례이긴 한데, 유비는 워낙 유니크해서 일반적인 반례로 삼기가 어렵죠. 확실한 명분을 두고 크게 벗어나지 않아 결속력이 높았던데다가, 패전으로 전국을 떠돌게 되면서 휘하에 가담한 인물들 또한 자신의 근간을 잃어 원소나 유표처럼 명분뿐인 낙하산vs지역을 실제 지배하는 토호의 구도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아예 안 나타났던건 아닌데, 서주시절 단양병의 반란으로 여포에게 서주를 실함한 일이 있긴 했죠). 그런데 원소나 유표는 자신의 직할세력이 토호의 현지 장악력을 압도하기 힘들었으니 권리를 내놓는건 자폭 단추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Draka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것을 극복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원소가 그분들이 이야기 하는 절대 영웅이 되겠지요..ㅋ 하기사 그런게 가능한 사람들은 죄다 새왕조의 주창자급들이군요..(유방이라던지,.. 유수라던지.. 주원장이라던지.. 징기스칸이라던지...) 원소가 유표처럼 군대 지휘관으로서 젬병도 아니고 조조도 본격적으로 조인/조홍/하후연 등에게 위임을 시작하는게 화북 다 먹고 나서라고 보이구요..
제가 지적하는 건 그들과의 긴장관계를 하다못해 조조처럼 포용하는게 아니라(사례를 들면 여남의 이통처럼..) 끝까지 가장 중요한 순간까지 보여준 극도의 긴장관계를 까는 겁니다. 로마 애들도 당장 한니발이 처들어 올 때는 동맹시들에게
@Draka 공정하고 조약을 지키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들었습니다.(물론 한니발 죽고나서 후안무치하게 조약이고 뭐고 안면몰수하고 동맹시들에게조차 갑질을 시작했지만..)
무엇보다 자기 힘을 보고 밑에 들어온 호족들, 또는 그 지역 출신 식자층과 무력집단이 과연 포용이 불가능한 존재들이냐는 겁니다. 적어도 조조는 중요한 전역에서 이런 집단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거든요. 여포야 워낙 악명높은 막장이니 그렇다 치지만, 다른 이들처럼죽인다는 극단적 방식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건 문제가 있는 거죠. 불가피하게 그렇게 밖에 못했단 이야기는 그분들의 이야기처럼 원소의 하북4주 장악은 공고하지 못했단 소리밖에는 안됩니다
@Draka 뭐.. 거의 다 동의하긴 합니다만, 원소가 거기서 머물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느냐..는 점에서는 의견이 갈리는 거 같습니다.
유비의 상황은 원소보다 더한 막장이었고..(얼자라고 해도 발해태수까지 먹을 정도로 뒤 봐줄 어르신들이나 있지..-_-;; 그냥 이쪽은;;;) 징기스칸은 아예 몰락해서 살해 위협 받으며 쫓겨다니던 사람이기도 했죠.. 그래도 모두 강력하고 충성스런 자기 집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충성을 다하던 사람들은 심지어 적대 세력에 있다가 몸담은 사람들조차 있구요..(유명한 제배가 항복한 장군이죠..)
말씀대로 성격적으로 원소한테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딱 하북 4주에서 멈춘거구요..
근데 파벌 문제는 조조도 겪지 않았나요? 조조 패업 초기의 인재들인 순욱, 정욱, 곽가 등이 전부 다 연주 지역을 근거로 하는 파벌이었다고 하던가...; 그래도 조조는 후반까지도 잘 관리 하다가 나중에 위왕+구석 특전 받는 것을 계기로 순욱과 벌어져서 사실상 순욱이 숙청당함으로서 그 쪽 파벌과 끝이 좋지 않게 났다는 얘기 들은 듯...;
오죽하면 다단계라는 우스개도 있겠습니까.. ㅋ
조조는 원소와 달리 조등으로부터 이어지는 자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죠. 당장 조인, 조홍, 조순, 하후돈, 하후연 등 혈족이라는 친위세력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세력내 최대 파벌이었으며, 조조의 행보가 원소와 달리 자신의 명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파벌을 명분으로나 실력으로나 찍어누르는게 가능했습니다.
@Draka 사실 조조도 협천자 후에 헌제의 친위세력이 되려하는 파벌의 공격을 숱하게 겪었는데, 동승, 복완, 경기 등이 연달아 반란을 일으켰고, 순욱, 공융 등과 불화가 있었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협천자후의 조조는 일종의 막부정치라 봐도 될 겁니다. 일단 군권을 쥐고 있는 것부터가.. 때문에 죽을때까지 굵직한 전투는 친정을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자신이 친정하지 않더라도 항상 총사령관은 조씨 일족에서 선발해서 군권을 유지했습니다. 유일한 예외가 합비 정도? 이에 반해 원소는 아들+사위 말고는 믿을 인간이 없었죠.
순욱이 숙청당하긴 했지만 사실 조조치고는 굉장히 온건하게 처리한 겁니다. 그냥 좌천으로 끝낸 거니까요..(공융같은 유가내 대명사, 거기에 공자의 자손도 가차없이 목잘라 버리는 사람인데;;;) 과장되었지만 순욱이 자살한 건 확실한 팩트고 조조가 자살을 강요했다는 기록이나 정황도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상황은 대체로 개인간 갈등이지 파벌 문제는 아니죠. 순유는 계속 고위직에 있다가 병사했고, 여전히 순씨는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었구요.. 정마 파벌 문제였다면 당장 순욱의 아들들이 여전히 고위직에 머물 수가 없습니다. 서진 건국 이후에도 순욱의 손자 중 하나는 사마소의 여동생과 결혼해서 작위를 받았죠..
문제의 구석인데.....
그냥 조조나 순욱이나 과거 한(韓)의 체제가 끝났다는 것을 느낀게 아닌가 싶네요. 조조야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라(ㅋㅋㅋㅋㅋㅋ) 자기 죽은 뒤에 어떻게 되던말던 신경 쓸일이 아니니 말년에 상국 소하의 영광받겠다는 거였는데..(사실 받고 싶었으면 진즉 받을 수 있었죠..) 순욱은 고매한 사람이라서 이걸 수용하기 어려웠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결국 알수 없겠으나 조조가 진짜 한을 멸망시키고 새왕조를 열 생각었느냐가 관건인데..(충분히 의심받은 상황이긴 했죠. 사실 막을 방법도 없고.. 전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 전 조조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델카이저 그럴수도 있지만 귀찮기만 하고 별 의미는 없지.....정도가 조조의 생각이 아닐까 함메.
생각해보면 휘하 파벌의 충성경쟁을 유도하면서 위태로운 조정자로서 1인자를 유지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핵심 친위 세력을 만드는게 이상적이죠. 원소가 아무리 성격이 또라이라지만 저 이점을 몰라서 안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선점한 명분이 세를 불리기에는 유리했으나(그 명분으로 중앙 정부의 권위를 박살내고 제후군을 만들었으며 기주를 취했죠), 그 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는 오히려 불리했다는점. 말로는 천하의 안녕을 외치면서 끊임없이 천하의 혼란을 초래하는 행보를 반복한 것은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