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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라 (신명기 32장 1 ~ 14절) 중국의 양나라에 장승요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충성스럽게 일한 관료입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전설적인 화가로 더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남경 근처의 안락사라는 절에서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 절의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검은 먹구름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두 마리의 용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던지 정말 용이 살아있는 것 같은 생명력이 넘쳤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용의 눈동자를 그려 달라고 졸랐습니다. 결국 장승요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용의 눈을 그려 넣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레(雨雷)소리와 함께 용이 벽을 박차고 뛰쳐나와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설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벽에 그린용이 하늘로 올라갈 수는 있겠습니까? 미완성의 그림을 완성시켰을 때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해서‘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습니다. 화룡점정의 문자적 의미는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어떤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 혹은 ‘모든 것의 마지막 마무리’를 의미합니다. 용의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는 마무리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을 잘 정리하는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2008년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올 한 해 동안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올 한 해 얼마 남지 이 시점에서 마지막 한 점을 잘 그려 넣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 해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화룡점정의 예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명기 32장은 모세의 노래인데, 특별히 모세가 임종을 앞두고 부른 노래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유언 노래라고 합니다. 노래도 어느 시절에 부르냐에 따라 그 의미와 무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릴 때 부르는 노래와 젊었을 때에 부르는 노래와 임종을 앞에 둔 노래는 무게가 다릅니다. 죽음을 앞둔 노래는 어느 시절의 노래보다 인생의 무게가 훨씬 더 무거운 노래일 것입니다. 인생에게 더 깊은 교훈이 되는 노래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노래를 이렇게 시작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찌어다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 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이 노래야말로 인생의 단비와 같은 노래라는 말입니다. 오늘 특별히 이 모세의 유언 노래처럼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무엇보다도 그동안 온갖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의 어 리석음을 지적합니다. 5-6절입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우매 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 으시고 세우셨도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갖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우매무지한 백성들아! 어리석은 백성들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 사악한 자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옛날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얼마 남지 않는 한 해를 어떻게 해야 잘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요? 지난날에, 특별히 지난 한 해 동안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모세는 어떤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까? 특별한 사랑을 받은 백성임을 기억하라. 특별한 사랑을 받은 백성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8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의 택하신 기업이로다.” ‘분정’이라는 말은 ‘나누어 정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세계 열방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을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많은 민족 가운데 특별히 택하신 민족이요, 특별히 사랑받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세계사를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로 이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저도 종종 지난 일들을 뒤돌아보면, 아! 하나님이 저를 특별히 사랑하는 구나! 아!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특별히 사랑하는 구나!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가슴 속 깊이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특별한 사랑이 저 뿐이겠습니까? 여러분 모두를 우리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모세는 광야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10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황무지에서 광야에서 만나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간 다닌 광야의 황무지는 사람이 살거나 지나기도 아주 힘든 곳이었습니다. 낮에는 일사병으로 쓰러질 만큼 폭염이 계속되다가 밤이 되면 추위가 몰아닥칩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고, 독사와 맹수들이 들끓기 때문에 언제 생명이 위태로울지 모릅니다. 본문은 그곳을 “황무지,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인생의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주십니다. 인생의 황무지!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황무지와 같은 현실 때문에, 너무나 고달픈 현실 때문에, 누구하나 의지할 데 없는 외롭고 쓸쓸한 광야의 현실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만나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날들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언제 찾아오셨는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낮에 찾아오셨습니까? 아니면 인생의 밤에 찾아오셨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인생의 밤에, 인생의 황무지에 있을 때에,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 있을 때에 찾아오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인생의 황무지와 인생의 광야에 있을 때 찾아오시고 만 나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황무지를 만났습니까?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를 만나셨습니까? 자신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절망하는 분이 계십니까?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시 구원과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보호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모세는 광야에서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10절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되 자기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지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30만 개의 회로가 있고 1억 만개의 신경세포가 있어서 거리, 광도, 색상을 자동으 로 조절 한다고 합니다. 사람의 눈의 기능은 전 자동 시스템으로 구성이 되었다고 합니다. 눈꺼풀만 해도 완전 자동 개폐식이어서 유사시에는 즉흥적으로 눈꺼풀이 덮입니다. 그리고 눈물샘을 만들어 언제나 안구 운동에 지장이 없도록 촉촉하게 습도를 조절해 줍니다. 사람의 지체 가운데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신경조직, 두뇌 판단, 눈 동작이라고 합니다. 눈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눈을 두는 자리를 특별히 마련하셨습니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잘 부서지지 않는 두개골에 큰 굴을 두 개 파서 그 속에다 안전하게 간직해 두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눈물단지로 늘 소독하여 깨끗하고 윤기 나는 눈동자를 유지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곳에다 하수도를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또 피곤할 때에 눈에 눈곱이 끼는 것도 우리 눈 안에 불순물을 밤새 씻어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체는 얼마나 기가 막힌 지 모릅니다. 우리들이 얼굴 쪽으로 공격을 받으면 눈을 제일 먼저 손으로 눈을 가립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눈을 오묘하게 만드셨고 소중히 다루시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눈동자처럼 너무 소중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지켜 보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 년 동안 눈동자처럼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일 년을 지내오면서 자동차 사고, 질병 등 위험한 순간들이 참 많았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지켜주셨고 보호해 주셨기에 여기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를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훈련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를 날마다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시는 것만으로 다 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게 어리석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를 그렇게 보호만 해주신다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주 유약하고 나약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1절, 12절을 보십시오. 어떤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다루듯이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다루시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신다면 은혜를 받아도 우리를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훈련하듯이 기르신 다면 별로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훈련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훈련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때론 엄하게 훈련시키시는 분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실감 있게 이야기하기 위하여 모세는 하나님을 독수리에다 비유합니다. 독수리가 그 새끼를 어떻게 훈련시킵니까?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보금자리를 어지럽힙니다. 깃털과 같은 것으로 푹신하게 만든 보금자리를 다 걷어냅니다. 그러면 가시 같은 것만 남아서 새끼들을 찌릅니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보금자리 밖으로 나옵니다. 독수리 새끼들이 둥지에서 기어 나오면 긴 날개 위에다가 새끼를 얹어 높은 곳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어미가 새끼를 사정없이 떨어뜨려 버립니다. 새끼가 바닥에 부딪칠 것 같습니다. 그때 독수리 어미는 쏜살같이 내려가서 안전하게 받아 다시금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이런 일을 새끼가 제 힘으로 스스로 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독수리가 그 새끼를 부딪치게 하여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아니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망하도록 방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죽었구나! 하는 순간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려운 고난을 통해서 계속 연단시키지만 절대로 망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큰 어려움 속에서, 가장 큰 시련 속에서, 가장 심한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둘째로, 독수리 새끼가 여러 번 떨어지는 훈련을 통해서 결국은 스스로 날 수 있게 되듯이 우리 역시 어려운 고통과 역경을 수없이 거치는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날 수 있는 믿음의 날개가 생긴 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해 무척이나 힘들었습니까? 고달팠습니까? 경제적 한파로 인해서 절망하며 살아오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훈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믿음의 두 날개로 마음껏 자유자재로 날도록 훈련시키는 한 해였습니다. 훈련을 다 끝난 독수리 새끼는 이제 마음껏 창공을 납니다. 하늘의 군주가 되어서 납니다. 훈련을 과정을 다 마친 여러분에게 이런 새로운 날이 주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무엇보다 지난 일 년 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사랑을 받은 백성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광야에서 만나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눈동자 같이 보호하시고 지키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훈련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들을 기억하심으로 한 해 동안 비록 황무지와 광야의 삶이 있었다 할지 라도 dl것들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고백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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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나님의 당신의 子女들에 대한 保護와 鍊鍛의 두 原理를 믿습니다. 더 重要한 것은, 鍊鍛의 原因이 나의 罪 때문이라는 것도 깊이 깨닫게 한 말씀이었습니다. 알고 지은 罪, 모르고 지은 罪가 얼마나 많을까? 더욱 믿음으로 精進할 수 있도록 다짐해 봅니다.
일년 52주의 마지막 주일설교에 이르기까지 설교 한편 한편마다 심혈을 기울여 하늘 생명수로 공급하여 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신명기 32편에 나타난 모세의 유언 고별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백성된 우리를 얼마나 자상하게 보호하시며 다루시는지 새롭게 깨닫습니다. 특별히 전달되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찾아오시고 만나주시고 새롭게 하시는 역사가 2009년에도 계속 이어지는 축복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