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를 찾아 떠나는 가을 여행 후기
- 한국제지 온산공장 견학과 직지사 · 불국사 나들이 후기
출제모로부터 한국제지 온산공장 견학을 알리는 메일을 받았다.
망설이던 끝에 참가신청을 하였고,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참가를 하였다.
망설였던 것은 이래서이다.
나이 들어 글을 쓴답시고 우물우물 하다가 이왕이면 함께하는 문우들의 글이라도 잡지로 내자는 생각으로 [문학의 뜰]이라는 1인 출판사를 차리게 되었다. 글이 종이에 인쇄되어 책으로 나오자면 출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출제모에 가입하게 되었고 겨우 눈요기를 하고 있는 처지에 참가한다는 것이 언감생심 같아서였다.
반면에 설렘이 있었던 것은 한국 대표적 제지회사인 <한국제지>의 온산공장을 견학하고 종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는 것과 일정상에 직지사와 불국사를 들러보는 시간이 잡혀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다 금상첨화인 것은 1박 2일 일정에 세면도구나 챙겨 오면 된다는 것이어서 ‘이 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으랴!’ 라는 공짜심리가 작용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설렘 속에 이른 아침 6시 5분경에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에서 2호선으로 갈아 탄 후 출발지인 잠실나루역에 도착하니 버스 출발 예정 시간이 40여분 남았다. 김밥 집을 찾아 간단히 아침요기를 한 후 한국제지 직원의 안내에 따라 지정된 1호차 버스에 올라보니 좌석이 넓고 안락한 우등고속버스와 같았다. 이번 견학에 100 명이 넘는 회원들이 6 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출발하였는데 아침부터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는 까닭으로 기분도 좋았지만 대접을 제대로 할 줄 아는 한국제지에 호감이 가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차가 출발을 하면서 동승한 한국제지 직원님의 안내인사와 이어서 한국제지 김광권 부사장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솔직한 말로 여기에도 감동이 있었다. 공장 견학 겸 관광을 하는 일정에 부사장님이 직접 동행을 하시고 회사 안내와 더불어 가는 길에 들르게 되는 직지사와 불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하는 모습을 대하니 아무리 기업 홍보차원의 행사라 하여도 그 정성과 배려가 한 눈에 돋보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누구나, 어느 기업이나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차창 밖으로 짙어가는 가을 풍경을 내다보면서 가노라니 어느덧 직지사에 도착하였다. 입구에 있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풍성한 음식도 보기에 좋았지만 맛도 좋아 밥도 반 공기나 더 먹었다. 막걸리를 곁들여 마신 분들은 막걸리 맛 또한 일품이었다고 한다.
▶ 직지사에서
직지사 일주문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경내로 향하였다.
아! 얼마나 오랜만에 들러 보는 직지사인가?
그동안 여러 차례 다녀가긴 하였는데, 매번 올적 마다 입구의 분위가가 너무 달라져 있다. 마을에서 일주문 까지 올라가는 길가에는 김천시에서 조성한 공원이 인상적이었으나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아쉬웠다.
60년대 말, 처음 직지사에 들렀을 때는 일주문에 이르는 길도, 일주문에서 경내로 들어가는 길도 협착했을 뿐만 아니라 돌멩이들이 깔려 발을 딛기도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돌 틈바구니에 불거져 나온 나무 뿌리들을 밟으며 한참을 올라갔었는데, 이제는 경내까지 포장이 다 된 하이웨이로 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처럼 변해도 많이 변하여 고찰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경내 또한 중창을 많이 하여 아담하던 절이 상당히 크고 넓어졌다. 그 가운데 대웅전이 그나마 <동국제일가람>임을 말 해준다.
직지사 일주문 앞에서
직지사가 고찰임을 알게 하는 일이 또 있다.
일주문과 천왕문에 들어서면서부터 부사장님의 절에 대한 역사와 십우도, 사천상 등에 대한 재미 있는 설명은 주지승이나 역사 해설가 이상으로 듣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하게 만들었다.
김광권 부사장님께서 설명하시는 장면
제 사진이 신통치가 않아서 춘명- 김경도님의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죄송!!)
그래서 감히 생각하건데, 부사장님은 회사에서 퇴직을 하시더라도 문화 해설가로 활동하신다면 대성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특히 회사에서는 고문으로 위촉을 하거나 촉탁?(결례인 줄 알지만)으로 위촉을 하여 향후 견학하는 분들에게 일깨움을 주는 일도 문화사업의 일환임을 고려한다면 이것 또한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 이건 그냥 여행길에 웃어보자는 뜻에서 곁들인 말임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일엽낙혜 지천하추(一葉落兮 地天下秋)’
- 오동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 천하에 가을이 깊었음을 안다. 라는 시구처럼 직지사도 어느덧 가을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가을이, 절간의 기와지붕에도, 스님들의 발자국이 어려 있는 요사채 마당에도, 그리고 절 마당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어린 화가들의 붓끝에도 가을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직지사 경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학생들 (김천미술협회 사생대회)
▶ 한국제지 온산공장 견학
직지사 관광을 마친 후 한국제지 온산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에 도착하니 임직원들이 현관에 직접 나와 따뜻하게 환영며강당으로 안내를 해 주신다.
강당에서 회사와 제품 생산 공정과 생산제품 등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에 제 3공장을 견학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종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이렇다. - 나무에서 펄프를 만들고 펄프를 원료로 종이를 만든다. – 아주 간단명료한 정답이다. 이런 정답을 가지고 공장에 들어갔는데 공장의 규모도 규모려니와 종이가 만들어 지는 과정 하나하나가 얼마나 정밀하게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간단명료한 정답 속에는 밀크라는 브랜드로 생산된 A4 용지가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지듯이 이들의 기술과 땀과 정성도 함께 담겨지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제 3공장의 종이 생산 설비
한국제지 온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종이 두루마리
제가 찍은 사진이 안 나와서 정택교 님의 후기에서 빌려온 사진임(죄송!!)
내가 어려서 접했던 종이의 질은 형편이 없었다. 공책도 그렇고, 교과서도 그렇고, 도화지도 변변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제지에서 살결 보다 고운 우윳빛 밀크지와 아르떼와 같은 고품질의 종이가 생산된다니 종이의 역사도 많이 발전하였다.
종이의 역사는 인류문명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이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에 이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전파 매체가 문명(문화)의 주도권을 가진 듯 위세를 떨치고 있어서, 종이 없는 시대가 온다고 예측하는 미래학자들도 있다. 현실적으로 종이의 감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서류결재 대신 전자결재를 하고, 종이책이나 종이신문보다도 전자책이나 신문을, 편지대신 e-mail로, 사랑고백도 편지보다는 카톡으로,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통해 쓰고 읽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종이 나름대로 발전해 갈 것이란 것이 부사장님의 논지였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종이 없는 문화(문명)는 천박해 질 것이다.
가끔 트럭에 실려 가는 철강코일들을 보았는데, 이곳 제지공장에도 거의 같은 크기와 모양의 종이코일(두루마리)들이 재단라인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생각 난 것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명제였다. 펜도 강철로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서 뜻하는 펜이란 강철로 만든 펜촉 보다는 ‘글’ 자체를 의미한다. 글이 어디에 쓰이는가? 종이에 쓴 것이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펜으로 쓰여 진 글과 종이는 한 통속이요, 한 힘이요, 한 권력이다. 강철로 만든 칼은 호소하지 못하지만 펜과 종이는 호소한다. 감정을, 사상을, 진리를, 뜻을, 역사를 기술하고 호소할 수 있는 것이 펜과 종이다. 이런 문화가 없어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천박해 질 것인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공장견학이 끝난 후 바닷가의 회집으로 이동하여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하였다. 한마디로 맛있게 잘 먹었다.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우리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니 맛이 있었지만, 더욱 맛을 감칠 나게 한 것은 모든 일정에 따라 정성을 다해 안내하고 배려하는 회사 임직원들의 친절이 가미되었기 때문이리라.
저녁 식사 후에 경주로 이동하여 사조 콘도에서 숙박을 하였다. 몇 년 전에 경주에 출장을 왔다가 커다란 고분 바로 옆의 모텔에서 일박을 할 때에, 베개를 베고 누우니 왕인지, 공주인지 모르지만 고분 속의 망자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자는듯하여 묘한 기분에 젖었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 숙박은 사조 콘도이니 참치나 다랑어 회 맛을 음미하며 잘 수 있다는 것도 특별한 추억으로 남지 않겠는가?
▶ 불국사를 찾아서
이튿날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 6시에 토함산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구름으로 볼 수가 없었다. 마음에 드리운 구름이 더 짙었는지도 모른다. 할 수없이 석굴암을 들러 본 후 불국사 입구로 내려와서 아침식사를 하였다.
직지사와 마찬가지로 불국사 역시 많이 변한 모습이었다. 개축과 중창으로 경내가 예전 같지가 않았고, 더구나 석가탑(무영탑)은 해체하여 복원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다보탑만 올려다보았다.
불국사에서
불국사 감나무
직지사에서나 불국사에서나 불심이 깊은 부사장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생각해 본 것이 있다. 한국제지공장이 왜 하필 온산에 있는가이다. 김천과 경주의 중간쯤인 온산에 한국제지가 있는 까닭을 비로소 각(覺)게 된 것은 석굴암에 모신 부처님을 보면서 염화시중의 깨달음이었다.
중간쯤에 있어야 직지사도 보고 불국사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귀경하는 길에 김천 직지사 입구 마을에 다시 들러 내려오던 날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서 여전히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전날 못 보았던 직지문화공원을 둘러 볼 수 있었던 것 또한 종이를 찾아 떠났던 여행의 한 점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직지문화공원에서
감사의 인사말과 제안
이번 한국제지 공장 견학을 위해 수고하신 출제모 운영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별히 초청해 주시고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환영과 대접을 해 주신 한국제지 임직원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회사의 무궁한 발전과 직원 여러분의 평강을 기원드립니다.
끝으로 외람되지만 한국제지 제품 홍보와 판매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을 드려봅니다.(물론 회사차원에서 모두 하고 계실지 모르니, 극히 저의 단견이라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런 제안이 타당성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1.회사 수첩이나 달력, 또는 생산 되는 종이 샘플북 외에 고려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판촉이나 선물용으로 소형 메모
지 제작(메모지 한권에 종이 종류대로 몇 장 씩 붙여 제작)
2. 대리점(영업점)이 소재한 지역은 그 지역의 관공서나 학교, 교회, 등 복사지를 많이 사용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방문하
거나 홍보물을 보내는 방법(요즘은 복사지의 종류도 많고, 인터넷으로 싸게 주문하는 경우<물론 제품에 따라 다름>도
있기에 이를 참조하여야 할 것임.
3.출판사가 한국제지의 종이를 일정량 이상 소비해 줄 경우 그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
4.출판사가 출판물에 한국제지의 어떤 종류의 종이를 사용했는지 명기 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량 이상 출판했을 때에 그
에 따른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교과서, 참고서, 아동용 도서, 일반도서, 잡지 등) ※ 종이는 인쇄소에서도 선택하지만
주로 출판사가 의뢰인(작가 또는 저자)과 출판 계약을 할 때, 종이의 선택사항을 협의하기 때문에 대부분 출판사에서
결정이 남.
5. 우표지도 좋지만 수요가 다량이며 꾸준한 주민등록 등초본지 용도의 제지를 개발하고 정부에 납품하는 방법
6. 한국제지 제품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 아동들, 초등학생 때부터 장래의 고정 수요 자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공장견학 행사나 이벤트 마련하는 방법.
7. 현재 한국제지에서 직접 노트생산을 하지 않고 있다면, 한국제지를 명기한 각종의 노트를 직접 생산하여 판매하는
방법(선물로 받은 스프링 노트에는 <한국제지>라고 되어 있다.)
2013년 10월 26일
문학의 뜰 대표 정혁(좋은날)
* 한국제지 자유게시판에도 올렸으나 용량초과인지 사진은 올려지지 않습니다.
첫댓글 직지사 일주문에서 사진을 찍어 드리고 인사드린 종이이야기입니다.직지사에서 후미에 계시면서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으셨는데, 다 이유가 있었군요.
점심시간에 쫒기면서도 함께 나눈 달콤한 옛 얘기는 스승님 같았습니다.
서네번 방문 하셨는데, 10여년전 대비 많이 변했다는 격세지감을 말씀하시고 직지사도 많은 건물들이 증축되었다는 후문입니다.
이렇듯 출제모는 만나시는분마다 스승이고 멘토였습니다.
점심자리를 함께하지 못해서 죄송하였습니다.
전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빈자리에서 앉았으며, 그후 마주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좋은날 대표님 간겅하옵기를 기원합니다.
종이이야기님 안녕하십니까? 즐건 일정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진도 찍어 주시고 말씀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헛나이만 먹어 헛소리만 하고 다니는 사람에게 덕담을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무림의 고수께서 한국제지까지 설렵하시니 종이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여 지리라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늘 평안하시고 좋은 일들로 가득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