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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무
김아름
밖으로 나섰을 때 제일 먼저 내 코를 자극한 것은 역시 가로수 밑의 쓰레기봉투들이었다. 그 중 몇 개가 터져 콩나물이나 라면 면발 따위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플라타너스가 매일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자란다는 것을 동정할 새도 없이 가구점 모퉁이를 돌았다. 가구점 앞에는 짬뽕과 탕수육 그릇이 주인을 기다리며 처량하게 놓여있었다. 쓰레기가 되어버린 음식 냄새가 속을 확 뒤집어놓았다. 밤의 거리는 악취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속에서 나를 구원할 것은 오로지 만두에 대한 집념뿐이었다. 후줄근하게 목이 늘어난 맨투맨 티를 꿰입고 맨발을 스니커즈에 몰아넣은 채 현관을 나섰을 때부터 나는 설레기 시작했다. 만두가게가 보이자 청량한 밤공기가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만두가게에는 벌써 옛날 일이 되어버린 쓰레기만두파동을 규탄하는 항의문이 큼직하게 붙어있었다. 그 자부심만큼이나 맛도 썩 훌륭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바로 앞집에 반값의 만두가게가 생기면서 타격을 입은 모양이었다. 자장면과 짬뽕, 무엇을 선택하든 일말의 가벼운 후회가 생기기 마련인 그 고민은 만두가게에서도 늘 따라붙었다. 그러나 중국집과 달리 만두가게에서는 늘 “김치 반, 고기 반으로 섞어주세요”라는 말로 마무리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그 적당한 우유부단함을 나는 항상 고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반씩 주문해두고 그 사이 계절별미인 빨간 어묵을 두 개 쯤 집어먹었다. 매운 고춧가루냄새와 폭삭 익은 대게의 냄새가 쫀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빨간 어묵은 나의 식욕을 더욱 부풀렸다. 뜨거운 김이 폴락거리는 만두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그렇듯이 약간 들떠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넣어놓은 빨래의 피죤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쟁반을 준비하려는데 편지봉투 하나가 내 발에 채였다. 휴면예금지급통지서였다.
- 귀하께서 맡기신 아래 예금이 10년 이상 거래가 없는 관계로 아래의 지급기한까지 찾아가지 않으실 경우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 제 24조 규정에 의거, 예금지급청구권이 소멸되어 국고에 귀속됨을 알려드리오니 기한 전에 수령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0년 이상 돌보지 않았다는 예금은 놀랍게도 209만 7214원이나 되었다. 10년 전의 통장이니 아마도 중학교 때 의무적으로 수요일마다 저축해야 했던 통장일 터였다. 올해 말까지 찾아가라는 안내장은 그다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순간 나의 기쁨은 오로지 만두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가볍게 용기를 결박하고 있는 고무줄을 풀면 저절로 튀어 오르는 일회용 도시락 뚜껑에 간장을 따랐다. 그리고 만두가 터질세라 조심스럽게, 그러나 성급하게 김치만두 하나를 집어먹었다. 얄팍한 만두피를 깨물 때마다 형체도 없이 스러져 내리는 만두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야식 중 하나였다. 야채와 고기 혹은 김치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그 오묘한 냄새,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파의 향긋한 냄새가 미각을 돋우는 것은 내가 만두를 사랑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밤이 되면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떤 날은 혼자 먹기엔 벅찬 족발을 시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잔뜩 튀김옷이 입혀진 치킨을 배달시키기도 했다. 족발이나 치킨이 물리는 날에는 간혹 피자를 먹기도 했다. 이곳은 대학가였으므로 온 거리는 밤마다 불을 켜고 야식을 팔았다. 처음에는 생리기간이어서 식욕이 왕성해졌으려니 싶었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마치 그만큼씩은 먹어왔다는 듯이 식탐은 늘어갔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도 절제 없이 먹어치운 야식은 고스란히 내 몸에 축적되어 살이 되었고, 몸무게는 어느덧 80kg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특히 가슴엔 미련해보일 정도로 살이 올랐고, 브라의 컵 사이로 살들이 반항하듯 튀어나왔으므로 별 수 없이 사이즈를 두 치수 늘릴 수밖에 없었다.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에 신경이 곤두서있는 동안 뱃살이 방치되었다는 걸 깨달은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특이한 점은 살이 찌면서 발가락이 길어진다는 점이었다. 몸이 물에 불은 오뎅처럼 변해갔지만 나는 워낙 내 몸에 무신경했으므로 발가락 따위야 어떠랴 싶었다.
만두를 다 먹고 입가에 번진 기름기를 미처 닦아내지도 못했을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들리지도 않을 숨소리를 낮췄다. 생각해보나마나 K일 것이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K는 집 모퉁이를 돌아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만두봉지의 흔적을 없애고 공기 중에 페브리즈를 몇 번 뿌렸다. 만두냄새의 입자와 섞인 향은 오히려 역한 기운으로 피어올랐다. 그때 내 핸드폰이 드르륵 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을 쥐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온 우주가 고요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시간이 흐르자, 나는 오히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이불을 박차고 나가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싶었다. 하지만 제멋대로 헝클어진 퍼머 머리와 집안의 만두냄새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핸드폰을 확인했다. “밖으로 좀 나와, 호프집 앞에 차 세워뒀어.” 문자메시지만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봐 걱정해야 될 만큼 K는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였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이 없었고 K는 더욱 망설여졌다. 늦겨울의 청량한 공기 사이로 빼꼼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은, 왜 하필 K였을까.
*
반지하방 창문에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간신히 눈을 떴다. 요즘엔 11시가 넘으면 잠깐씩 햇볕이 머무르다 떠났지만, 이곳은 보통 때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의 방이었다. 음지의 방에선 늘 음울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음울한 냄새를 가리기 위한 방향제를 나는 열 가지쯤 갖춰두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상체를 일으키지도 않고 그대로 누워 눈만 깜박거렸다. 한풀 꺾인 햇볕은 아직도 창문에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모로 눕자 어제 밤에 던져뒀던 휴면예금통지서가 눈에 들어왔다. 휴면예금이라…. 그래, 어쩌면 이건 어떤 계시인지도 몰라. 나는 결단력 있는 유형의 인간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민첩하게 윗몸을 일으키고 욕실로 달려들었다. 세면대 옆으로 진열되어 있는 여러 가지 향의 바디클렌저 사이에서 잠시 망설였지만 로즈마리향 바디클렌저를 선택해 샤워퍼프에 잔뜩 짜냈다. 보글보글 일어나는 거품의 냄새에 황홀한 듯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려 씻고 나자, 그럭저럭 정오가 되었다.
나는 앉은뱅이 화장대 앞에 앉아 로즈마리향 바디크림을 온 몸에 발랐다. 속옷을 챙겨 입고 머리에 상큼한 플로라 향이 나는 에센스를 발랐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향수냄새가 난다는 파우더로 얼굴을 두드리고, 은근한 나무향이 나는 염주를 팔에 끼었다. 피죤 냄새가 잔뜩 베인 옷들을 꺼내 입고 그린티 향수를 뿌렸다. 양치질만으로는 부족하여 구강청정제로 입을 헹궈내는 것은 내 외출 준비의 마지막 절차였다. 아차차, 잊었다는 듯 다시 들어와 운동화에 페브리즈를 뿌리는 것 역시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이었다.
밖으로 나서자 어젯밤에 본 플라타너스가 사뭇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아빠는 너무 큰 슬픔과 사연을 간직한 사람은 나무가 된다고 굳게 믿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일까. 플라타너스는 마치 형벌을 받고 있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비둘기들에게 밑둥을 쪼이고 있었다. 비둘기들은 결코 찬란하게 빛나는 새순을 탐내지 않았으므로, 한번도 날아오르는 법이 없었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아 날개가 마치 퇴화라도 된 듯 해보였다. 이제 여기 성북동의 주민들은 고요히 날아오르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보다, 오글오글 몰려 기어 다니는 비둘기를 먼저 떠올리리라. 낯익은 비둘기들에게선 비릿한 깃털의 냄새가 밀려왔다. 이 비둘기들은 누군가의 구토물을 또 밤새 쪼아 먹었겠지. 갑자기 구토가 밀려오는 듯 했다.
우체국에서 돈을 찾고 서울역으로 들어서자 이번에는 노숙자들의 노린내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들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지난할까.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만한 괴로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읍으로 가는 기차표를 한 장 끊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맥도날드에 들어섰다. 튀긴 감자 냄새에 아랑곳 앉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햄버거를 씹고 콜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불고기버거 세트를 주문했다. 앉아있는 동안 몇 명의 노숙자들이 점포 밖 창가에서 안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중 한명과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코를 박고 불고기버거를 먹었다. 콜라까지 마시고 감자튀김을 손에 쥔 채 맥도날드를 나섰다.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누군가가 나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뒤돌아보니 아까 눈이 마주친 노숙자였다.
“감자튀김 좀…….”
줄곧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소름 돋았지만 감자튀김 냄새가 몸에 베는 게 신경 쓰였으므로, 얼른 감자튀김을 건네주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KTX에서는 새 열차의 냄새가 심하게 났다. 특히 의자의 천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석유냄새와 비슷해서 속이 미식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가방에서 페브리즈를 꺼내 누가 볼세라 내 좌석과 옆 좌석에 쫙쫙 뿌렸다. 사실 친구들은 나를 ‘페브리즈 증후군’이라고 불렀다. 냄새에 대한 집착이 가히 광적이어서 늘 향수와 페브리즈, 구강청정제, 치약과 칫솔, 껌 따위를 가방에 잔뜩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생리주기라도 되면 상태는 그것보다 더 심각해져 나는 아예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냄새를 없애준다는 생리대며 생리소취제 따위를 써봤지만 내 몸에서 나는 냄새를 참을 수 없었다. 공강 시간마다 구내 헬스클럽에 가 샤워를 하는 것도 성에 안 차 언제부턴가는 생리기간이 되면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웃어넘기는 정도였지만, 내가 액취증 제거수술까지 감행하자 조금 아연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의사도 수술 할 필요가 없다고 충고했다. 액취증이란 것이 겨드랑이의 땀샘에 분포된 아포크린선 때문에 생긴 것인데, 나의 경우 겨드랑이에 털이 적고 땀샘도 상대적으로 적어 수술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나는 타인이 눈살을 찌푸릴 때마다 내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인 것 같은 착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어깨를 움츠려가며 털을 뽑고, 파우더를 바르고, 소독제까지 써도 못미더워 마침내 수술을 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 뒤로 내 몸의 냄새에 대한 불안감은 한층 줄어든 셈이었으니, 경제적으로 그렇게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니었다.
KTX열차가 출발했다. 안내방송에서 정읍에 도착하는 시간이 3시 7분이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드르륵, 문자메시지가 왔다. 역시 K였다. “어디야?” 나는 머뭇거리다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K에게선 어딘지 모를 그의 모습이 묻어나왔다. 그는 내가 15살 때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나의 외삼촌이었던 그는 자동차정비공이었으므로 늘 기름 냄새 따위를 몸에 달고 다녔다.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 날은 그가 술을 마신 날이었다. 그가 술 냄새와 고기 냄새, 마늘 냄새 이런 것들이 한데 섞인 단내를 몰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나는 늘 긴장해야했다. 엄마는 밤늦게까지 동대문의 쇼핑몰에서 옷을 팔았으므로 밤이면 그와 단둘이 집에 있어야 했는데, 그는 몰래몰래 나를 훔쳐보곤 했던 것이다. 내가 일을 당한 것은 그가 우리 집에 온 지 세 달만의 일이었다. 팔이 부러질 듯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너한테선 묘한 냄새가 나. 참을 수 없을 만큼. 내 생살을 찢고 들어온 그는 내 살 냄새가 좋다며 내 배에 코를 박았다. 나는 살비듬이 우수수 떨어질 만큼 부르르 떨었다. 그가 술기운에 나가떨어지고서야 나는 집을 뛰쳐나와 경찰서로 향했다. 샤워를 하면 안 돼, 샤워를 하면 안 돼, 되뇌며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다. 그가 수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며칠 동안 엄마는 내게 꼭 한마디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독한 년.” 그 뒤로 나는 냄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정말 독한 년이 되었다.
상념에 잠긴 사이 열차는 어느덧 정읍역에 도착했다. 고창까지 가는 버스는 40분이나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정읍은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가을엔 내장산으로 가는 단풍객들 때문에 역사가 꽉 차는 곳, 한약방에서 탕이라도 고아내면 온 시내가 한약냄새로 물드는 곳, 버스를 도로 한 가운데 턱 하니 세우고 건너편 버스기사에게 농을 던지는 늙은 버스기사가 있는 곳, 천원만 더 깎아달라는 말을 되려 퉁명스럽게 던지는 아줌마가 있는 곳, 농약상품명 따위가 새겨진 모자를 얻어 쓰고 함박웃음 짓는 할아버지가 있는 곳. 적당한 소란스러움과 적당한 나른함이 딱 알맞은 비율로 섞여있는 곳이 바로 내가 기억하는 정읍이었다. 나는 십 여 년 만에 정읍에 왔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 처음 온 셈이었다.
여전히 터미널엔 화장실의 지린내가 가득했다. 화장실이 실내에 있는데다 통풍이 잘 되지 않는 구조여서 그 냄새가 더욱 심한 듯 했다. 불현듯 구토가 밀려왔지만 끝내 화장실에 들어갈 수 없었다. 터미널 뒤편으로 돌아 나가 오래 참았다는 듯 속엣것을 게워냈다. 불고기버거가 고스란히 넘쳐 올라왔다. 그렇게 비위가 약해서 어디따 쓸랑가 몰라. 엄마의 목소리는 내가 구역질을 할 때마다 자동 재생되었다. 가글을 하고 고창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서야 그 냄새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고속버스의 메스꺼운 냄새는 페브리즈로 쉽게 해결했다. 고창터미널에 내려서는 바로 택시를 탔다.
“여그가 선운사 입구요. 아직 동백도 안 폈을 판인디…….”
택시기사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선운사 입구에 부려놓고 사라져갔다. 선운사 입구는 한산했다. 휴게소에 들러 컵라면을 사고 포장을 뜯어 뜨거운 물을 부었다. 부드럽게 퍼지는 라면의 냄새가 식욕을 잔뜩 부풀렸다. 컵라면을 조심스레 움켜지고 언저리의 벤치에 앉았다. 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를 적은 시비가 눈인사를 건넸다.
“그쪽 지역에 문인이 많잖아. 아빠랑 선운사 가본 적 있다고 했지? 나중에 꼭 같이 가자.”
정읍에 내려온 순간부터, 아니 서울역에서 표를 사면서부터, 혹은 어젯밤, K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던 그 순간부터 K의 목소리는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정읍으로, 아니 고창으로 행방을 정하면서부터 K의 목소리는 더욱 생생한 육성이 되어 귓가에 머물렀다.
“너에게선 특별한 체취가 나는 것 같아.”
K가 나와 첫 관계를 가진 후 했던 그 한마디는 내게 애써 잊고 있었던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로 나는 K를 순수한 K로만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자꾸 K를 그와 동일시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소름 돋을 정도의 잔인한 기억이 자꾸만 냉철한 이성을 마비시켰다. 지난 십년간 부단히 내 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지만, K의 한마디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냄새에 대한 집착이 K와의 사랑보다 더 긴요한 문제였다는 것은 부끄러웠지만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몇 명의 사람들에게서 그때의 사건을 떠올리곤 했다. 지하철에 앉은 취객 앞에 섰다가 그가 내 배에 머리를 쿵 하고 박는 바람에 갑자기 그때 일이 떠올라 그의 따귀를 때린 적도 있고, 대학 신입생 때는 선배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는 걸 한사코 거절했다가 이상한 애로 낙인찍힌 적도 있었다. 선배에게서 나는 희미한 자전거 체인냄새가 그를 연상시켰던 것이다. 심지어는 그날 그가 입었던 옷과 유사한 잔체크무늬 셔츠만 봐도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길을 걷다가도 남자들이 뒤따라 걷는 것을 견디지 못해 했으며, 만원버스나 지하철은 타지도 않았다. 몸이 밀착되는 느낌이 너무도 불쾌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삼촌”이란 단어를 발음하기만 해도 몸이 먼저 알아채고 벌벌 떨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K는 잔체크무늬 셔츠를 즐겨 입었으며, 나와 잘 때는 내 냄새를 맡으려 킁킁대기 일쑤였다. 냄새는 내 몸에 찍힌 주홍글씨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엉키는 사이, 컵라면은 자꾸 나를 보며 열심히 눈짓했다. 다 익었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벤치에 앉아 홀로 컵라면을 먹었다. 먹고 나면 늘 포만감이 밀려왔지만, 그 포만감 뒤엔 반드시 생의 욕지기 같은 것도 묻어나왔다.
“너 그런 식으로 먹다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지도 몰라. 영원히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아야 될지도 모른다고. 그 뉴스 못 봤어? 미국에선가, 오백키로가 넘는 남자가 혼자 죽어서 발견됐다잖아. 그것도 자기 집 거실에서 혼자서. 집을 부수고 시체를 꺼냈다는데…….”
몇몇 친구들은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았지만 나는 내 식탐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몸이 점점 가뿐해진다고 생각했다. 컵라면 용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칫솔과 치약을 꺼내 양치질을 했다. 찬물이어서인지, 며칠 전 스케일링을 해서인지 이가 너무도 시렸다. 가글을 하고 페브리즈를 꺼내 옷에 골고루 뿌렸다. 향수를 뿌리는 코스까지 거치고 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늦겨울의 선운사 대웅전은 점점 더 깊어지려는 듯 무척 고요했다. 물론 그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몇 년 전 봄의 풍경을 기억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앙상한 뼈 위에 알록달록 품이 큰 등산복을 차려입은 등산객들이 약수를 마시고,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예의 그 파릇한 생기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물론 동백꽃은 피지 않았다. 너무 일러 피지 않았다는 서정주 시의 탄식이 꼭 들어맞은 셈이었다. 나는 등산객들 틈에 섞여 물을 마시면서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 혹시, 동백꽃은 언제쯤 필까요?”
“아, 글쎄 아직 안 폈지 뭐예요? 이제 겨울도 끝났으니깐 일이주일이면 필 것 같긴 한데, 워낙 불규칙적으로 피고 지니 원.”
길어야 보름. 기다려볼만한 시간이었다. 대웅전을 돌아 뒤편으로 가니, 여전히 동백 숲은 촘촘하게 펼쳐져 있었다. 짙푸른 동백꽃의 심연을 완벽하게 느낄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그 마음 전해질까, 동백 숲을 한없이 올려다봤다. 내 마음에도 이런 짙푸른 멍이 들었을까. 아니, 어쩌면 무엇인가를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마음속에 켜켜이 저런 푸른 멍들을 쌓아왔는지도 몰라. 그래, 그저 그렇게 순간에 벗어나기 위해서. 하지만 짙푸른 아픔으로 피워낸 붉은 꽃들은 그 푸른 멍을 치유해줄 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저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반짝이는 푸른 잎으로 감추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아픔을 붉은 꽃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일까. 결국은 눈물처럼 뚝뚝 떨어질 거면서. 가녀린 바람에도, 옅은 빗줄기에도 결국 목이 부러지고 말거면서…….
내 삶은 어디서부터 멍들기 시작했고, 어디서 더욱 짙은 피멍이 생겼나. 15살의 내가 작은 골방에서 완강히 몸을 웅크리고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 스쳐갔다. 나는 아마 내 몸의 해방을 위해 더욱 열심히 먹었을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단순한 행위였다. 불투명한 미래보다도 그날의 야식 메뉴가 고민된다는 것은 남들 보기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그 순간 내 자신에게는 가장 긴요한 일이었다. 음식의 냄새와 씹히는 미감에 열중하고 있다 보면 머릿속에서 그의 생각은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밀려난 만큼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게 생이라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입이 미어지도록 야식을 밀어 넣지 않았으리라. 동백나무는 푸른 멍보다 더 큰 아픔을 이기고 붉은 꽃을 피운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나는 지칠 줄 모르는 나의 식탐에 일말의 고마움을 표하지 않았으리라.
아빠는 선운사 동백꽃을 보여주겠노라며 엄마와 나를 이끌고 이곳에 왔었다. 3월 중순이었는데도 군데군데에 잔설이 남아있었다. 동백꽃은 겨울 꽃에 가깝다는 말도, 그런데 선운사에 있는 동백꽃은 춘백이라는 말도, 다 지기도 전에 통째로 눈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것이 동백꽃이라는 말도, 전부 아빠에게 처음 들었다. 굵고 큰 나무에서 핀 동백꽃이 가장 고혹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들어왔던 차라 아빠의 동백꽃 예찬론은 새롭지도 않았다.
“당신, 이런 숲 본 적 없지?”
“없죠. 근데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오래된 나무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그런 견고한 슬픔 같은 것들.”
“매일 나무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이런 기분 느끼는 건 오랜만이야. 동백꽃의 향기는 세상에서 제일 아찔한 거 같다니까? 동백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두 번은 봐야하지. 막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 그리고 막 떨어져 붉은 융단처럼 땅에 깔릴 무렵. 비 오고 나면 한번 더 올까?”
수령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꽃이 더 붉고 매혹적이라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사실 나는 그때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엄마가 아빠의 옆에 서서 오래도록 동백나무를 바라보았던 것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로 우리가 동백나무숲을 다시 찾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해의 동백꽃은 유난히 붉었다.
*
선운사 앞에 숙소를 정하고 일주일 쯤 묵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 민박집 아줌마는 이내 푸짐한 웃음을 터뜨렸다.
“동백꽃 보고 가시려나 봐요?”
“네, 그러려고요. 근데 그 사이 꽃이 필까 몰라요.”
“꽃망울이 올라오고 있으니 곧 피겠죠. 실은 4월이 절정이긴 한데, 조금 일찍 오셨네요?”
주인아줌마가 500ml들이 생수와 함께 찐 고구마를 내왔다. 고구마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내 얼굴을 간질거렸다. 늘 그렇듯, 밤의 열기가 솟을 때쯤 되니 미친 듯이 식욕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제일 커 보이는 고구마 하나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민박집 아줌마가 잊었다는 듯이 방문을 두드리더니 동치미를 한 사발 내주었다. 사각거리는 얼음이 동동 떠있는 동치미 국물은 역시 고구마와 잘 어울렸다. 동치미 국물을 그릇 째 들고 마시자, 얼음이 살을 에는 듯 명치가 아렸다. 결국은 아줌마가 준 고구마를 전부 먹어치우고 허겁지겁 생수를 마셨다.
방에 웅크리자 따뜻한 온기가 온 몸에 퍼졌다. 몸을 잔뜩 구부렸다. 군데군데 보일러선이 지나간 자리마다 오목하게 패이거나 솟아 울퉁불퉁했지만 방은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이불도 덮지 않았다. 무릎과 무릎을 모으고, 깍지 낀 두 손으로 무릎을 잡았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아린 슬픔이, 더 이상 내 몸에 스며들지 못하게, 공벌레처럼 몸을 말았다. 불빛에 드러난 발가락은 이제 손가락만큼이나 길어져 있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방 안의 군불냄새가 적당히 내 코를 자극했고, 한껏 나른해졌다. 아직 입을 앙 다물고 있는 선운사 동백나무숲에도, 그리고 굳게 닫힌 내 몸에도, 침묵은 조용히 스며들어 나는 이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아줌마가 날라다주는 청국장찌개며 고등어조림, 무말랭이 따위를 넙죽 받아먹어 가면서, 오로지 시간을 죽였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싶었다. 그것만이 동백나무의 고통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낮이면 누워서 눈을 뜨고 뒹굴 거렸고, 밤이면 눈을 감고 잠을 잤다. 바닥에선 늘 뜨끈뜨끈한 열기가 솟아올랐고, 방 안은 온통 내가 가져간 방향제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뒹굴다 자다, 하면서도 나는 때가 되면 일어나 밥을 먹고 몸을 정갈히 씻었다. 그리고는 진득하게 동백나무를 생각했다. 갑자기 동백나무에 관한 집착이 왜 생겨났나 싶다가도 왠지 예감 좋은 집착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며칠 뒤, 비로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발가락은 그새 더 자란 듯 신고 간 운동화가 들어가지 않아 대충 구겨 신어야 했다. 며칠 새 상당한 양의 물을 마셨는데도 메마른 고목처럼 입가가 푸석했다. 물을 들이붓고, 햇살을 마주하니 제법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민박집 아줌마는 반가운 표정으로 밥을 권했다. 아줌마의 웃음소리가 찰랑거리며 물 잔에 내려앉았다. 아줌마가 끓였다는 동태찌개는 황홀할 정도로 맛이 좋았다. 얼큰한 고춧가루 냄새가 식욕을 더욱 부추겼고, 덕분에 나는 흑미가 섞인 밥을 두 그릇이나 먹어치웠다. 며칠 사이에 제법 날씨가 풀린 듯 했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여전히 한겨울이지만, 볕이 좋아서인지 주인여자는 밖에 빨래를 널어놓았다. 어쩌면 저빨래들은 방심하고 널려 있다가 꽃샘추위를 맞아 꽁꽁 얼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린 시절, 그런 빨래를 본 적이 있다. 내다 넌 채로 꽁꽁 얼어버린 빨래들. 내 머리도 지금 어디쯤엔가 고스란히 펴 말려 이 혼란에 괘념치 않게 꽁꽁 얼었으면…….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나 살랑거리며, 누군가가 고스란히 걷어서, 날 개키고 정리해주었으면……. 오랜만에 받은 햇볕에 이내 몸이 근질거렸다.
아직도 동백꽃은 피지 않았다. 나무들 사이로 분주히 시선을 옮긴 끝에 겨우 세 그루의 동백나무를 찾아내었다. 그들의 푸른 잎 끝자락엔 겨우 새끼손톱만한 꽃망울들이 솟아 올라있었다. 이제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검붉었던 꽃망울이 점차 밝은 기운을 받아가는 듯 한결 붉어졌다. 가야할 때를 알고 가는 이보다 더 황홀한 건 역시 만개할 내일을 품은 이들이다. 나는 가야할 때일까, 내일을 기다리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을 가늠하는 것은 내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동백나무숲을 등지고 대웅전을 돌아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그만 시선을 멈추었다. 돌계단 옆으로 난 약수터에서 물을 받아 마시는 스님의 모습이 너무도 눈부셨기 때문이다. 선운사에 온 지는 수일이 지났지만 스님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더구나 여승은 난생 처음 본 것이었다. 처음엔 스님의 반짝이는 머리에 시선이 머물렀지만, 이윽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늦겨울 고즈넉한 햇살을 받아 일렁거리는 스님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이었다. 나는 어떤 환각처럼 그 스님의 손목에 난 길고 짙은 상흔을 보았다. 낭창낭창한 나뭇가지의 흔들림에 맞춰 스님의 마른 얼굴에 웃음이 스쳐갔다. 아주 약한 바람에도 퐁퐁거리며 터져버리는 비눗방울 같은 웃음이었다. 나는 마치 그 자리에 틀어박힌 한 그루 동백나무처럼, 500년이나 그 자리에서 슬픔을 키우고 있다는 동백나무들처럼, 그렇게 얼어붙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의심할 것도 없이, 마른 웃음을 짓고 있는 그 여승은 분명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망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그녀의 발걸음을 지켜보았다. 여승은 동백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모습에 쏟아지는 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여승은 햇볕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나는 습관처럼 내 손의 상흔을 어루만져 보았다. 꿈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선운사에 오면서부터 아찔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아빠와, 그리고 엄마와 함께 왔던 곳이기 때문일까? 사방에서 풍기는 향냄새가 몽롱해서일까? 아니면 목탁소리가 나른해서?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반짝이며 손 흔드는 풍경(風磬)도 나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고, 승방 댓돌 위에 놓인 스님들의 고무신도, 세워 놓은 고무신에 고인 물도, 그 물이 촐랑거리며 담고 있는 하늘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느티나무, 편백, 단풍나무, 왕버들, 팽나무, 전나무, 진달래, 앵두나무……. 이들이 일궈내는 한 폭의 풍경도 제법 잘 배치된 풍경화처럼 고요했다.
절에 잔뜩 뿌려진 나무 냄새를 맡으며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천년을 쉬지 않고 걸어온 사람처럼 몸이 노곤했다. 방 안까지 나무 냄새가 따라온 것 같았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무냄새를 맡으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었다. 아빠는 작은 나무농장을 운영했다. 그래서 늘 아빠에게선 희미한 나무 냄새가 났다. 가지치기를 하거나 꽃꽃이를 할 때면 짙푸른 나뭇잎들의 냄새가 아빠를 에워싸곤 했으며, 산에 올랐다 오는 날이면 희미한 낙엽냄새와 송진 냄새가 한꺼번에 날 때도 있었다. 아빠의 나무 냄새는 오래 두고 사랑할 유일한 냄새였고, 내가 냄새에 민감해진 이후로는 늘 그리운 냄새가 되었다. 내게도 그리운 냄새가 있다는 것이 생을 버텨내는 데 가장 큰 버팀목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얼마나 잤을까. 어렴풋이 잠에서 깨면서부터 어떤 예감에 휩싸였다. 오래도록 기다리던 동백꽃이 피었을 것이라는 예감, 그것보다 조금 더 강렬하고 힘센 운명의 느낌 같은 것들. 정해진 수순처럼 욕실로 들어가 물의 온도를 조절하고 뜨거운 물을 몸에 부었다. 이상하게 가슴과 뱃살의 출렁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뿌옇게 김이 서린 욕실의 거울을 닦고 몸을 들여다보았다. 아아, 눈을 믿을 수 없어진 나는 아예 물을 거울에 뿌리며 몸을 살펴보았다. 없었다. 거대하게 부풀어있던 가슴도, 늘어질 대로 늘어진 뱃살도, 더 이상 없었다. 아예 평평한 하나의 몸통만이 거울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통이 밤사이 더욱 두꺼워진 것 같았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맞지 않는 옷을 꿰입고 다시 선운사로 갈 채비를 마쳤다. 운동화를 신으려는데, 발이 채 들어가지 않았다. 발가락은 밤새 더 길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젠 손가락의 두 배 쯤 되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내 머릿속엔 동백나무숲 뿐이었으므로 나는 벗은 발로 선운사로 향했다. 주인아줌마는 딱하다는 듯이 나를 지켜보며 옷을 단단히 여미라고 얘기해주었다. 곧 꽃샘추위가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선운사에는 한껏 마른 햇빛들이 들어서 있었고, 한가한 바람들이 머물러있었다. 여전히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은 약수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어김없이 대웅전 뒤편 동백나무숲으로 향했다. 아, 꽃망울이 제법 커진 동백나무들이 보였다. 나는 그쪽으로 손을 뻗었다. 뭉툭한 동백 잎의 처연한 슬픔이 뚝뚝 묻어져 나왔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조그맣게 되뇌며 나는 아예 동백나무 숲으로 기어 올라갔다. 온 몸에 흙냄새가 진동했다. 몽롱하고 아득한 기운에 휩싸여 동백나무 숲에 오르니, 간신히 붙잡고 있던 나의 의식이 살랑살랑 풀어헤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동백꽃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발을 뗐지만 발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황급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발가락이 점점 길어져 땅 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앗, 당황하는 사이 차차 나무의 껍질로 온몸이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견고한 껍질들이 두꺼비 피부처럼 내 몸을 감싸고 들었다. 어엇, 소리를 지를 새도 없었다. 어느새 그 나무껍질은 배까지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는 거기서 몸이 두 갈래로 쫘악 갈라졌다. 쩍 벌어진 몸들 사이에선 수많은 나뭇가지들이 재빠르게 갈라져나갔다. 발가락은 뿌리가 되어 땅 속 깊이까지 튼튼하게 파고들었고, 손가락은 무수히 갈라져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머리는 하늘을 향해 폴락거렸고, 어느새 몸통에서 골이 파이고 옹이가 생겨났다. 경이로움에 젖은 나는 짧은 탄성 끝에 온 몸을 낭창낭창 흔들어댔다. 아아아.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머리에 나뭇가지를 이고 나무를 받들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듯 완고해보였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음식을 먹어대던 게 동백나무의 퉁퉁한 밑둥을 갖추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고, 발가락이 길어졌던 게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받은 상처가 더 깊은 옹이와 골을 만들어냈음을 알아챈 순간, 나는 비로소 붉은 꽃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처럼 붉고 눈물처럼 슬픈 꽃을. 그때 이웃의 나무들이 하나둘 꽃망울을 퐁퐁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웃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이슬로 망울졌다. 나도 온 몸에 힘을 주었다. 감추었던 내 슬픔아, 이젠 터져라, 진심으로 바라건대, 제발 피어라, 노래하듯 온 몸을 흔들어댔다. 깊숙이 감춰두었던 옹이로부터 생살을 찢는 듯한 아픔이 전해져왔다. 이윽고 붉은 꽃망울이 피처럼 맺혔다. 당신이 만진 내 몸뚱이, 이젠 없어요, 안녕, 안녕, 꽃망울이 흔들렸다. 아빠, 아빠,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꽃망울이 벌어졌다. K, 미안해, 하지만 날 보러 오지 않을래? 꽃망울이 화알짝 열렸다. 아아아, 나는 경이로움에 다시 한번 탄성을 내질렀다. 온 몸이 환희에 떨려왔다. 수술의 노오란 꽃밥이 점차 피어나더니 쏟아질 듯 풍성해졌다. 바람이 자꾸 내 볼을 간지럽혔다. 꽃밥이 조금씩 꽃잎에 떨어졌다. 멀리서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몰려왔고, 한차례 바람이 지나갔다. 그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내 앞에 섰다. 나는 그만 부끄러워 한껏 붉어진 볼만 만지작거렸다. 작은 동박새 한 마리가 내 품에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