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관해 주장하는 여러 입장들 중 저는 순자의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순자는 본성을 생물학적 욕구로 보았으며, 이는 이익을 좋아하는 것, 질투하는 것, 미워하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저는 순자가 이러한 욕구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는 점, 그리고 이 욕구들을 그 자체 악으로 보지는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우선 순자가 말한 욕구들은 어린아이들만 보더라도 본능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만을 위해 행동합니다.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계속해서 떼를 쓰거나 울음을 멈추지 못합니다. 또한 형제자매에게 자신의 이익을 뺏기지 않으려는 것,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려 애쓰는 것, 서로를 질투하는 것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이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아이의 인성을 심각하게 염려하기 보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들로 이해합니다.
이러한 욕구들이 어린아이들에게 더 잘 나타나는 이유는 커가면서 이러한 욕구들이 사라지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과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방법, 약속을 지키는 방법 등의 ‘예’를 학습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기에도 이러한 욕구는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우리는 교육을 통해 예를 학습하였고 이를 실현하고자 노력하기에, 즉 순자가 말하는 화성기위를 통해 욕구를 그저 방치하지 않기에 잘 드러나지 않으며 악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순자의 입장이 청소년기에 이루어지는 인성교육에 효과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은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감정들과 자신의 욕구를 느끼며 혼란을 겪게 됩니다. 어린아이일 때는 이러한 본능을 그저 흘려보냈다면 청소년기에는 욕구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또래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친구를 미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누군가를 질투하는 감정을 느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 자신이 생각하는 ‘나’(도덕적이고 선한 사람이고 싶은 나)와 실제의 ‘나’의 간극에서 오는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순자의 성악설이 이러한 혼란을 겪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따뜻한 위로를 건네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순자의 이론에 따르면 나의 이익을 따르려는 것, 질투하는 것, 미워하는 것 이것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니며 나의 인성이 잘못되고 내가 악한 사람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구나 ‘예’의 교육을 통해, 인위적인 자신의 노력을 통해 이러한 욕구를 조절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감정의 조절과 통제가 어려운 청소년기에 겪는 혼돈들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어쩌면 나의 모난 부분들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그렇기에 도덕교육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성악설이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