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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대왕이 피난길에 맛이 있었다고 극찬한 도루묵 |
대통령이던 왕이던 태어난 고향의 음식에 대한 향수는 항상 가슴 속에 어려있다. 또 타고난 혹은 습관화된 개인적인 식습성도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바닷가 출신인 김영삼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은 보다 더 해물을 즐겨 들었으며 시골 출신인 노태우 대통령은 <갱시기 혹은 갱식>라고 불리는 김치국밥을 선호하였다.
우리나라는 좁지만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린 음식이 있다. 그래서 남도의 <삭힌 홍어회>는 경상도에서는 처음 접해본 사람은 쉽게 적응을 못한다. 마찬가지로 경상도의 <과메기>는 서울 사람이나 처음 먹어보는 사람들은 부담감을 느낀다. 그만큼 음식은 상호배타적이며 습관화가 되어 있지 못할 경우에는 거부감을 느낀다.
왕도 대통령도 모두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시적에 어머니가 해준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즉 연어가 태어난 강에 다시 돌아오듯이 왕과 대통령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어렸을 때 입에 맞추어진 음식, 고향 음식, 그리고 배가 고플 때가 제일 맛있는 음식이 될 것이다.
○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 임금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임금이 드시는 밥상을 높인 말로 < 수랏상>이라 한다. 웃어른에게 올리는 밥은 높힘말로 <진지>라고 한다. 그래서 예절을 중요시했던 유교적 사회에서 어른께 인사를 할 때 우리는 <진지를 드셨습니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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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즐겨먹었다는 남도의 알싸한 홍어요리(무침) |
임금의 거주지는 당연히 지금의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이다. 수도인 서울에서는 임금에게 올릴 진상품의 목록을 만들어서 각 지역별로 수집을 했다. 그래서 우선은 팔도에서 나는 진귀한 재료들로 음식을 만들었으니 일단은 재료의 품질이 우수하다. 그런 다음에 특별히 뽑힌 상궁으로 하여금 지극정성으로 만들었으니 음식의 품질이 객관적으로 증명이 된다.
그것이 곧 수랏상으로, 일반사람의 식사보다 음식 가짓수나 상차림 규범만 다를 뿐 그리 유별난 것은 못되었다. 다만, 임금의 식사는 관련 관리들의 감독하에 만들어져 상에 올리게 되는데 옥체를 보살피는 식의를 두어,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약보다 낫다.>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식재료의 성질과 독의 여부 분별 등 의학지식을 통해 임금을 보필하였다.
임금의 식사에 관한 내용은 왕조실록에서 엿볼 수 있는데 그중 음식과 관련하여 나라가 전쟁 중이거나 가뭄 및 홍수 같은 천재지변, 국상 등에 임하게 되면, 왕 및 왕족들의 사치를 금하고 가무 및 고기음식을 피하고 음식가짓수도 줄이라는 하교가 내려진다.
<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제조, 식재료 및 이에 대한 준비와 관련된 관청>
관청명 |
주 요 업 무 |
내시부 |
대전(大殿)의 수라(임금의 식사)상을 감독하고 임금의 분부를 전달 |
사옹원 |
임금의 식사와 대궐안의 음식 제조 |
내섬시 |
각 전(殿)과 궁(宮)에 제공할 음식물과 제물 등을 맡아보고 2품 이상의 관원에게 음식을 제공 |
예빈시 |
나라의 손님을 접대하고 연회를 베풀며 종실 및 재상을 접대 |
내자시 |
궁내의 술, 간장, 기름, 채소 등의 물자를 공급하며 연회 등을 주관 |
빙 고 |
궁에서 쓰이는 얼음을 보관하는 창고를 관리 |
사도시 |
궁의 쌀, 곡식과 계자 등을 관리 |
사온서 |
궁에 술을 만들어 공급 |
사재감 |
궁의 생선, 고기, 소금, 땔감 등 물자에 관한 일을 관할 |
임금들의 식사는 횟수가 많은데 조선시대의 왕들은 하루 다섯 번의 수라상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식사에 해당하는 수라상은 아침 수라와 저녁 수라로 두 번이었다. 두 번의 식사는 최고의 음식으로 가득한 상이었지만, 일반인의 예상과는 달리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음식 위주였다.
아침 수라는 오전 10시에, 저녁 수라는 오후 5시경 이었다. 오전 10시는 체내의 양기가 가장 충만하게 펼쳐져 있는 시간이고, 오후 5시는 하루의 기가 갈무리되기 직전의 시간이다. 따라서 이때 음식물을 섭취하면 음식물의 분해는 물론, 흡수․저장까지 원활하게 된다. 늦은 저녁식사와 배부르게 먹는 것이 비만과 병의 원인이 되듯이 이 방식은 조선시대 때부터 적용되었다.
기본 두 끼의 수랏상 이외에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 점심의 낮것상, 밤의 야참이 있었는데 야참은 간단히 요기를 하는 정도였다. 초조반상은 주로 연한 미음이었는데, 그 이유는 새벽시간은 양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시점인데 이때 음식 때문에 기운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아침 수라 이후에 먹는 낮것상은 점심에 해당한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점심은 글자 그대로 유동식(미음이나 죽 등)이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야참도 면, 약식, 식혜 등으로 간소하다. 말이 다섯 번이지 아침과 저녁을 제외하면 간식이나 음료수정도로 해석하면 된다. 실질적으로 정사에 바쁘고 학문을 논하고 민정을 처리함에 있어서 다섯 번의 식사를 정식대로 한다면 국정이 원활하게 진행되겠는가?
한의학에서는 장수의 비결로 식무구포(食無求飽), 즉 <먹기에 배부름을 추구하지 말라.>의 양생법을 제시한다. 즉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배불리 먹는 것을 삼가라는 뜻이다. 임금의 수라상도 그와 맥락을 같이 한다.
임금의 식사는 숯불을 사용하며 흰밥과 팥물을 이용하여 짓는 쌀밥인 두 종류의 밥과, 탕, 조치, 찜, 전골, 김치, 장을 제외한 12가지 반찬은 김, 구이, 회, 장과, 생채, 숙채, 수란, 전유어, 젓갈, 자반, 조리개, 편육 등 12가지로 이렇게 해서 왕과 왕비의 식사를 <12첩 반상>이라 하고, 사개부나 양반들은 아무리 잘 살아도 9첩 반상이나 7첩 반상 등으로 식사를 하여야 했다.
상차림은 세 개인데, 왕 앞에 놓는 둥근상, 상궁이 음식을 점검하기 위한 작은 상, 각종 재료가 놓여진 작고 네모난 상들이 있다. 음식을 가지고 오면 우선 기미상궁이 독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검사를 하고 난후 이상이 없으면 임금이 식사를 권유했다. 그리고 생선 등은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뼈를 발라 주었으며 맨 마지막으로 숭늉으로 식사를 끝냈다.
▢ 한국의 대통령의 식사
경주지방에서는 해마다 <술과 떡잔치>가 열리는데 올해는 이색적인 코너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역대 대통령의 즐겨 드시는 음식, 약주 그리고 곁들이는 안주코너이었다. 일전에 <청와대 사람들은 무얼 먹을까?> 라는 제목으로 책을 낸 영양사가 있었고 전직 청와대 주방장을 역임한 분이 요리사 생활이후 <청와대 요리사>를 출간한 적도 있다.
해방이후 격동기를 거치고 한국동란 및 환란의 시기를 거친 파란만장한 시대에 지낸 우리나라의 최고 통치자들의 음식에 대하여 간단하게 알아보자. 언급되는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들은 이제 많은 분들이 불귀의 객이 되시어 존재하지 게시지 아니한다. 그래서 이유를 불문하고 이글이 행여 역대 대통영분들에게 회고차원에서 정리되었으며 행여나 누가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이승만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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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통령는 채소를 싫어하고 단백질과 지방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
윤대통령의 식습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다. |
이승만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대통령으로 영부인은 한국 사람이 아닌 파란 눈의 <프란체스카 여사>이셨다. 영부인의 영향인지, 오랜 외국생활의 탓인지는 몰라도 이대통령은 서양식을 선호하였으며 약주는 와인과 칵테일이 있고 이외에 안주거리로는 카나페가 있다. 식사류로서는 샌드위치, 햄버거, 카스테라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라나라 음식으로는 타락죽(우유죽)이 있다. 측근에 의하면 이대통령는 채소를 싫어하고 단백질과 지방을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 윤보선대통령
윤보선대통령에 대한 여러 자료나 내용은 거의 없다. 고향이 충남 아산이므로 충청도 음식에 대한 향수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할아버지로 부터 음주에 대한 훈계를 받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여행 중이나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 술은 입에도 대지를 않았다고 한다. 선호주로는 금산인삼주, 청주 등이 있으며 요리로는 더덕구이, 너비아니구이, 잣죽, 해물전골, 갈비찜, 건오절판, 송이산적 등을 즐겨 드셨다고 한다.
일본, 중국, 영국 등의 외국생활을 오래하였기 때문에 음식에 대하여 <포괄적, 국제적 미각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라고 유추를 해본다. 뉴스를 검색하니 자제분이 수제피자집을 운영한다고 나와 있다.
► 박정희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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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은 막걸리를 주변 지인에게 권하면서 손가락을 넣어서 휘저었고 김치도 손으로 잡숫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
최대통령은 영어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약주는 별로 즐기지를 않으셨다고 전해진다. |
박정희 대통령은 대단히 서민적인 모습의 식사관을 가진 것으로 이해다 된다. 또한 당시에는 경제적 사정이 너무 빈곤하였으므로 음식에 대한 절제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당시 조리실장이었던 <김진태님>의 자문에 의하면 경제가 어려운 관계로 반찬수를 한가지씩 줄이라고 하명하였는데 그래서 한 접시에 여러 찬을 모듬으로 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선호하는 약주로는 농주(막걸리), 동동주가 있으며 양주로는 시바스리갈이 유명하다. 반주에 따르는 찬으로는 따뜻한 두부, 빈대떡, 북어양념구이, 송이산적, 두부고기전골, 편육 등이 있다. 측근들의 중언에 의하면 박대통령이 태양인 체질이라서 주변에서 찬음식을 자주 권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막걸리에 맥주를 탄 <맥탁>과 막걸리에 사이다를 탄 <막사이>를 즐겨 드셨다.
► 최규하대통령
최규하대통령은 외교관출신으로 강원도가 고향이시다. 음식관에 대해서는 포괄적이라고 판단된다. 워낙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언급할 부분이 없다. 다만 골고루 드시는 편으로 약주는 별로 즐기지를 않으셨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과실주, 산나물, 안심구이, 생선구이, 각색전골, 갈비탕으로 상을 재현되었다.
► 전두환대통령
전두환대통령의 상차림은 <하원철 조리실장>의 증언에 의하여 재현되었다. 약주로는 동동주, 청주, 소주, 양주 등의 주종을 불문하고 쇠고기편육, 생선회, 갈비찜, 갈비구이, 불고기, 양짓머리구이가 재현되었다. 메뉴를 살펴 보건데 고기류가 주종으로 고기류가 중심메뉴로 보여진다. 전직 청와대 조리사출신의 증언에 따르면 전두환 대통령은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가장 몸이 건전한 상태로 보전되기 위해서는 가리는 음식이 없는 것이 제일 좋다. 우리나라는 사람들이 번데기를 먹는 반면에 동남아시아나 중국 사람들은 매미나 곤충의 애벌레 유충을 즐겨먹는다. 이런 차원에서 전두환대통령의 식습관은 매우 건강성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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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근에 따르면 전대통령은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고 한다. |
노대통령이 즐겨드셧던 <밥국>은 밥에 김치를 썰어 놓은 국밥이다 |
]► 노태우대통령
전직 조리실장인 <이우상님>의 자문으로 상차림이 재현되었으며 농주, 청주, 와인, 소주, 과일주에 반상에 생선완자탕, 갈비구이, 과메기쑥국, 돌나물, 머위나물, 두부지짐, 모듬생선회, 모듬생선튀김이 재현되었으며 해산물로 중심이 되어있어 보인다.
노태우 대통령은 멸칫국물에 김치를 썰어 넣고 떡이나 밥을 함께 끓인 ‘갱시기’를 좋아했다. 경상도 말로 갱시기는 <밥을 놓어서 꿇인 국>을 뜻한다. <밥국>은 밥에 김치를 썰어 놓고 콩나물이나 필요에 따라서 돼지고기를 썰어서 넣는 서민적인 음식중의 하나이다.
산골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갱시기와 함께 된장류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반면 영부인이었던 김옥숙여사는 양식을 곧잘 즐겼다고 한다.
► 김영삼대통령(14대)
당시 조리실장이신 <유한열님>의 자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반주상에는 와인, 우리밀칼국수, 전복죽, 생선회, 대구지리(전골), 양갈비구이, 설렁탕 랍스터샐러드가 재현되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해물을 즐겼는데 특히 생선 머리 부위를 좋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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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대통령은 <음식이 짜면 물을 넣고 싱거우면 소금을 더한다.> 음식철학을 소유자이다. |
김대중대통령은 고향이 신안과 목포이었으므로 남도음식의 백미인 홍탁삼합을 즐겨들었다. |
바닷가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해물 요리를 좋아했다고 한다. 미역국을 먹을 때도 쇠고기 대신 생선이나 해물을 넣은 미역국을 선호했다. 생선 중에서는 도미를 즐겼는데 머리 부분을 선호하여 우선적으로 그 부분을 먼저 드셨다고 한다.
► 김대중대통령
김대중대통령이 선호하셨던 술은 청주, 와인이었으며 안주류로는 남도에서 공수된 홍어삼합, 민어매운탕, 쇠고기버섯전골, 우거지갈비탕, 메로구이가 재현되었다. 아무래도 대통령의 고향이 우리나라 음식의 본거지인 남도지역이었으므로 지역음식에 대한 애착과 성향이 많았으리라고 추측된다. 또한 견과류를 좋아하셨다고 전해진다.
설렁탕과 김치찌개도 선호메뉴이었으며 또 김 전 대통령은 유난히 옥수수를 좋아해 1년 내내 냉동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쪄 먹기도 했다고 한다.
► 노무현대통령(16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청와대 관저 음식이 입에 잘 맞지 않을 땐 호텔에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한 적도 여러 번 있다고 하며 노대통령이 즐기는 음식은 삼계탕이었다. 그는 청와대 주변의 삼계탕 집에서 재계 총수들과 식사 회동을 하기도 했다.
술은 별로 즐기지를 않았다고 전해지며 봉하마을 사람들의 자문을 받아서 상차림이 재현되었는데 평소 드셨던 주전부리를 비롯하여 귀빈 만찬시의 건배주가 재현되었다. 찬으로는 모듬전, 잔칫국수, 강냉이튀김(박상), 생고구마가 재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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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시절에도 주변식당에서 삼계탕 배달을 시켜 먹었다고 전해진다. |
▢ <왕의 음식>을 마치면서
비록 신분이 왕이라 하더라도 호의호식을 자제했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조선의 통치기반은 유학으로, 유학에서 이르기를 <주군은 신하에게 항시 먼저 모범을 보여야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도 사람인지라 때에 따라서는 술과 고기가 더 필요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현대적 의미에서 대통령도 출출할 때나 비가 올 때는 향수어린 라면, 칼국수 혹은 부침개가 그리웠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조선의 왕의 경우, 평균 수명이 47세라고 나와 있는데 지금에 비하면 굉장한 단명하다. 그 이유인즉, 기름진 고기, 최소한의 운동량, 과도한 업무, 정권의 압박이나 정쟁에 의한 스트레스, 과도한 정력의 소모, 또는 이름 모를 괴질이나 질병 등에 의한 여러 요인으로 보여진다. 또한 생활습관으로 인하여 혈관, 심장 및 피부계통에 상당히 시달렸을 것이라고 사학자들은 추측을 하고 있다.
그래서 왕이 장수를 하기 위한 비결은 소식, 적절한 운동, 그리고 절제있는 생활 등이 반드시 필요했으며 실제로 왕은 수라상에 전국의 산해진미가 다 올라오고, 심지어 세수며 옷 갈아입는 것까지 하인이 다 해주었다고 하니 이는 결국 왕이 누리는 특권으로 인하여 단명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반면에 태조 이성계는 무사출신으로 젊은 시절 전투와 사냥으로 단련되어 78세까지 살았으며, 조선시대에 가장 장수한 왕은 영조대왕으로 절대 수라상에 반찬을 3가지 이상 올리지 못하게 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