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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좌담
2012년 동화, 그 너비와 깊이
참석 : 권혁준. 김지은. 선안나
김지은 2012년 아동 문학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판타지의 양적 질적 성장이 있었고, 단편 동화집들이 두드러진 한 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작가 층이 두터워진 한 해였는데요, 이를 비롯해 논의할 만한 얘기 있으면 말씀해 주시지요.
권혁준 중요하게 드러난 특징이 무엇인지 명확히 따지기는 어려운데 일단 단편 동화 중에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이 많이 발표되어서 아동 문학의 문학적 수준이 업그레이드된 느낌이었습니다. 성인 문학에서 볼 수 있는 표현 기법, 묘사력, 등장인물의 성격 묘사 같은 것이 어린이 소설에서도 아주 많이 보였어요. 주인공이 어린이고 배경이 교실일 뿐이지, 이것을 성인 소설이라고 해도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를 주제화하고 플롯을 정교화 했다는 점에서 단편들의 약진이 두드러졌습니다.
판타지 동화도 늘어났는데요. 판타지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결핍된 걸 채워서 현실로 돌아온다든지 하는 공식이 있었는데, 그 관습이 많이 깨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작가 층이 상당히 두터워졌지요. 전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가들이 좋은 작품들을 썼는데 올해는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들이 훌륭한 동화들을 많이 써서 굉장히 놀랐어요. 우아, 이런 작가가 숨어 있었구나. 다른 데서 수련하다가 온 게 아닐까 싶더군요.
또 하나는 신인들이 대단히 무거운 주제를 전면화하고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비인간적인 교육 현장, 물신화된 현대인, 부모의 이혼 등 무거운 주제들이 있었는데요. 물론 신인다운 패기가 느껴졌지만 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 좀 부족했다고 할까요. 중견 작가들은 오히려 이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서 어린이들의 삶에 밀착된 작은 주제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건져 내는 그런 경향을 많이 봤습니다.
선안나 저도 대체로 동의해요. 소재주의를 많이 극복하고 질을 획득한 한 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인들이 새로우면서도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아서 읽으면서 즐거웠고, 전체적으로 작품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주제와 의미가 중요했는데, 이제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아진 현상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수한 단편이 많았고, 판타지도 공식에서 벗어나 작가 자신이 즐기며 쓴 작품이 많이 보였습니다. 반면 역사나 사회의식을 다룬 작품이 많이 줄었는데, 그게 꼭 좋은 건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아이를 가장한 게 아니라 자기의 빛깔로 묘사한, 조금씩 다르면서도 건강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제는 질적으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동화들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들 이렇게 잘 써요? (웃음)
어쨌든 단편에서 볼 수 있는 자기만의 색채, 아이를 가장한 게 아니라 자기의 빛깔로 묘사한, 조금씩 다르면서도 건강한 것들을 볼 수 있어서 이제는 질적으로,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들 잘 써요? (웃음)
김지은 저도 동의하고요. 동화에서 인물이 표현하는 서정성이 진해졌어요. 지난해에도 인물의 심리에 주목하면서 쓰려는 작가들이 좀 있었는데, 그런 시도가 새롭다고 얘기되면서도 ‘감정의 편린들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걸맞나?’ 하는 질문을 남겼다면 이번에는 성숙한 문학적 시도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탁월한 상징들을 사용하는 단편들이라든가, 이야기 안에서 내적 긴장이 충분히 형상화된 작품들이 많았고요. 희로애락을 다 가진 아이들을 작위적이지 않게 그린 작품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어린이들이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늘어난 것 같아요. 어른들도 생활이 팍팍해지고 아이들도 그 영향을 받아서 활기 있게 지내기 힘든, 전체적으로 우울한 시대인데요. 활기와 생기를 전해 주는 작품들이 저학년에서 늘었다는 게 다행인 것 같고요.
그리고 무거운 주제들에 대한 도전이 한 시대를 접고 있구나 싶었어요. 물질문명에 대한 통찰을 보여 준다든가 교육 제도의 모순을 돌파한다든가 하는 것의 한계를 이미 작가들을 느끼고 빠져나오는 것 같고요. 한동안 휩쓸었던 경향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선안나 자연히 세대교체가 되는 게,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스마트폰 등을 날 때부터 사용해 왔잖아요. 자연스럽게 터치를 인식하고. 이제 이런 기계들도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려서 물질문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아요.
권혁준 세대교체, 문을 닫고 있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런 조류가 있다고 느꼈고, 특히 중견 작가의 작품에서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작품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리얼리즘적인 문제 제기, 역사 등을 다루는 작품도 있었는데요. 『연이동 원령전』, 『까레이스키』도 그렇고 『요괴소년』도 좀 그런 편이지요. 올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동화 없는 동화책』 같은 작품들도 있고요. 하긴 그런 현실 문제가 우리 작품 속에서 사라져야 할 것도 아니고, 작품 속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 건 따로 계속 존재하고 한동안 그것만이 주류를 이루던 환경에서는 많이 벗어난 듯한 게, 말씀하신 세대교체의 조짐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싸이나 대장금이라든지, 케이 팝도 그렇고 전자 제품도 세계를 휩쓸고 있는데 유독 한국 문학은 약하고, 아동 문학은 더 약하지 않나 싶거든요. 그런데 올해 작품을 본 결과 세계 문학을 주도할 만한 아동 문학이 곧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지은 그럼 이제 이 새로운 경향을 보여 준 구체적인 작품들을 이야기해 볼까요.
김지은 몇 년간 신인 작가가 장편에 도전할 때 무거운 사회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작가들이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린 거고요. 저도 『연이동 원령전』 같은 작품은 직접적인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까레이스키』의 경우, 우리 동화에서 스탈린 치하 고려인 얘기는 처음 나온 것 같아요. 꼼꼼히 취재해서 나온 작품이 있다는 건 소득인 것 같습니다.
선안나 두 작품 다 자료를 이야기에 충분히 녹이지 못한 것 같아서 문학적 성취로는 아쉬움이 있고요. 그 대신 ‘문학이 주는 게 뭘까?’라는 질문을 다시 해 보게 됩니다. 『카레이스키』는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데 작가가 굉장히 애를 쓰고 어떤 역할을 했어요. 이런 책들은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의미를 주는 책인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솔직히 『연이동 원령전』은 잘 읽히지 않았어요. 아동 문학으로 충분히 육화되지 않고 어른의 의식이 작용한 글로 느껴졌고, 책 표지에 지나친 상찬으로 광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작가의 『동화 없는 동화책』은 작가의 고집을 긍정하는 편입니다. 한쪽에 유토피아가 있고 반대쪽에 디스토피아가 있는데,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 꺼리는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을 작가가 세게 밀고 나갔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내용을 어떤 아이들에게 어떻게 줘야 할까 고민되지만요.
『요괴 소년』도 글은 잘 썼지만, 기존 문학에서 하위 문학으로 여기던 괴기 소재를 동화 문학으로 고양시키는 데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밖에 청소년 판타지 분야로 가야 할 소설들이 어린이 문학의 이름을 입고 아동 문학 시장으로 들어오는 흐름이 있는데,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권혁준 김남중 씨가 옛날에 『기찻길 옆동네』를 썼을 때 5·18을 다뤘죠. 처음에는 주인공인 소년의 눈으로 보다가, 뒤로 가면 대학생의 관점이 되면서 대학생과 목사의 논쟁 같은 게 되어 버려서 이게 바람직한 아동 문학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동화 없는 동화책』도 너무 잔혹한 현실을 어린이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연이동 원령전』은 그에 비하면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가공해서 다뤄 나가는 면에서는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하고. 이분은 작가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들끓는 것 같아요. 사실은 저도 연희동에 사는 그 양반이 당당한 얼굴로 부하들 호위를 받으면서 국가 세금으로 호위를 받고 이런 걸 보면 세상에 정의가 있나 하는 울분이 느껴졌는데, 아마 작가도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응징하는 게 좋을까 생각하다가 원령들을 등장시켜서 응징하는 내용을 만들었겠지요. 결론은 그게 참된 복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대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복수라는 주제를 표현하고 있지요.
이걸 어린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좀 궁금해요. 그리고 주제에 대해서는 다 공감하는 바이고, 이걸 문학적으로 형성하는 데에서 일종의 판타지를 사용하는데. 김진경의 『고양이 학교』가 나올 때 한국적 판타지에 대해 많이 논쟁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연이동 원령전』이야말로 한국적 판타지 아닌가. 우리 전통 귀신 얘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와서 선녀, 저승사자, 원령 등을 이야기 속에 등장시키고,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에 맞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부분은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인물 설정을 목사의 손자와 무당 할머니같이 전통적인 우리나라의 커다란 종교들이 연합해서 원령들과 싸움하게 한다든지, 이 시대의 현실적 사건을 우리나라의 종교들 맥락으로 풀어내는 게 능숙했습니다.
김지은 남성적 서사와 여성적 서사 이야기를 하는데, 김남중 선생님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남성적 서사라고 생각하거든요. 특정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을 배치해 놓고, 마치 체스처럼 횡적으로 움직이는. 이야기를 정의하는 게 정의론적이냐 관계적이냐 할 때 어려운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선안나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를테면 남성적 서사 책들이 다 읽히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이 작품 날것의 의식을 아동 문학으로 충분히 낮게 녹여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김지은 『동화 없는 동화책』이 문학적으로 훨씬 형식화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연이동 원령전』은 너무 구조화되고, 선언적이었고요.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들이 읽었을 때 더 좋은 작품이 『연이동 원령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지은 옛이야기 전통이 현대화된 작품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떤 작품들이 그랬고 그 이전 작품들과 무슨 차이를 느꼈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안나 『뻥이요 뻥』하고 『도깨비 잡는 학교』즐겁게 읽었어요. 『뻥이요 뻥』같은 경우는 옛이야기 모티프를 다양하게 가지고 와서 현대의 민담처럼 풀어서 유쾌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 때 다 읽었던 이야기들이잖아요. 이게 하나로 엮어지면서, 자기가 아는 것들이 새롭게 변용되어 등장하니까 즐겁게 읽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도깨비 잡는 학교』는 아이들의 그 자유로운 본질들을 묶어놓는 게 뭔지 바라보게 하더라고요.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도 재미와 입담이 남달랐어요. 지금까지 전통 소재나 도깨비 이야기는 비슷한 패턴으로 진부했는데, 오늘날의 시공간으로 이야기가 흥미롭게 잘 녹아 있었어요.
『미로의 미로 찾기』는 서양 판타지 느낌을 주면서도 우리 신화의 요소들, 상징들이 적절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아쉬움은 있는데, 옛이야기의 기능 가운데 하나가 삶의 지혜를 주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동화의 본질을 보여 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였어요.
권혁준 저도 『뻥이요 뻥』재밌게 읽은 작품이고, 이 책에서는 현대로 온 도깨비였지요. 『도깨비 잡는 학교』는 문장도 간결하고, 도깨비 이야기가 옛날에 보여 줬던 그런 것들을 잘 녹여서 이 시대의 어린이들이랑 비슷한 점을 잘 살려 썼고.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결핍된 것들도 도깨비 깜부기를 통해서 잘 드러냈는데요.
저는 사실 이 작품보다 『뻥이요 뻥』이 재미있었는데, 작가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순덕이라는 아이가 동물들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전할 때는 아무도 안 믿어 주다가, ‘옛날에’라는 표제어를 앞에 붙이니까 뻥쟁이에서 이야기꾼으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지요. 이 이야기꾼의 운명, 중계해 주는 역할이 작가의 운명 아닌가 하는 점이 재미있었고요. 그런데 상상력이 좀 갇혀 있는 것 아닌가. 더 과감한 뻥,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뜻밖에 옛이야기가 아니라, 김성진의『엄마 사용법』에서 이 과감한 상상력이 정말로 극대화되지 않았나 했습니다.
이 『뻥이요 뻥』과 비슷한 것이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가 있죠. <해와나무>. 이 출판사 좋은 책 많아요. (좌중 동의) 2012년에 건진 아주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두꺼비의 이야기는, 이야기가 생성, 전파, 변이되는 과정을 보여 주기도 하고, 또 이야기가 인간의 삶에서 어떤 효용을 지니는지도 생각하게 하지요. 또 문장이 아주 유려해서 예를 들면 “선산 너머 살핏재 지나 건짓내 헤엄치고…….” 같은 부분은 2음보 율격을 읽는 듯한 운율이 느껴졌고, 잊혀 가는 우리말을 적재적소에 아름답게 살려 쓴 점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똥비녀』, 『무덤이 들썩들썩』, 『도깨비와 범벅 장수』,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같은 작품에도 옛이야기가 잘 변용되어 녹여내어 비슷한 방식의 이전 동화들보다 상당히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김지은 옛이야기의 연장선에서 오늘의 아이들도 그걸 읽은 뒤 다시 구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한 작품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뻥이요 뻥』은 우리가 궁금한 모든 것은 누군가의 숨겨진 사연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 숨겨진 이야기를 계속 찾아 나가는 게 구전의 과정이잖아요.
독일 현대 동화 중에 늑대랑 마녀들이 모여서 자기들이 나왔던 동화들을 다 갖고 와서 억울한 걸 지우고 개작하는 경연을 한다는 내용의 작품이 있어요. 독일 교과서에도 나온 작품인데, 그 작품은 우리는 읽는 자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뻥이요 뻥』에서 순덕이가 하는 일이야말로, 숨겨진 이야기를 스스로 찾아서 들어야 하는 능동적 독자의 역할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꼬리 달린 두꺼비, 껌벅이』도 비슷한 기능을 합니다.
입담이 작품에 들어갔다는 점에서는 『우리 동네 전설은』이 성취한 바가 있습니다. 큰아이 중간큰아이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 한 따옴표가 몇 페이지를 차지하거든요. 보통 작품을 구성할 때 장면 변환을 계속해 줘야 하고, 말보다 행동으로 사건을 끌어 나가야 하고 뭐 그런 통념이 있는데, 그걸 깨면서 하굣길에 철퍼덕 앉아서 듣기 좋은, 마치 판소리처럼 얘기를 풀어놓지요. 『우리 동네 전설은』에서 길을 굉장히 중요한 공간으로 사용하잖아요. 우리 옛이야기를 보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부터 길 위에서 누구를 만나고, 사건이 일어나는 서사가 많은데,『우리 동네 전설은』이 모험의 공간으로 길을 찾아낸 것도 옛이야기의 전통을 끌어온 것 같았어요.
선안나 일단 옛이야기 장르에 대해 얘기 중이었는데, 어떤 문학적 관습의 전유 같은 게 있다는 얘기지요.
김지은 네, 그다음에 『느티 서울 입성기』의 경우에, 저는 귀신 이야기를 쓰는 게 지금 시대에 가능한가 고민했어요. 미디어가 발전해 현실 공포가 이야기의 공포와 재미보다 압도적인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예를 들면 예전에는 화장실에 가면 빨간 손이 나온다는 상징적 공포를 느끼고 살았다면 이제는 텔레비전에 범죄자의 얼굴이 나오고, 같은 동네에 있는 성범죄자가 누구인지 통지문이 오는 시대에 살잖아요. 과연 이런 아이들을 만족시킬 만한 귀신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는 이런 염려를 없애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두려움이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진짜 무서워해야 할 것과 무서워하면서도 용기 있게 맞서야 할 것, 두려움을 가지고 그 존재에 대해서 숙고해 보고, 겁내지 말고 도전해야 할 것들을 알려 준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잘 읽히면서도 선명한 지혜를 담고 있는 도깨비 이야기가 어린이들 곁에 많이 생긴다는 건 좋은 현상 같고요.
선안나 옛날에도 아이들은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귀신 이야기책 좋아했잖아요. 어린이들이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는 심리가 시대를 불문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전통 문학에서 수렴하지 않았어요. 그 소재를 품위 있게 가져오기가 어렵고, 영혼에도 어떤 격이 있는데, 삿된 이야기로 그치면 안 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거든요. 귀신이란 소재를 건강하게 살리기 어려운데, 유쾌하게 잘 소화한 것도 하나의 소득으로 보입니다.
김지은 책 안의 공포는 현실보다 훨씬 안전하고 어린이들이 이런 건강한 공포를 견뎌 내는 것이, 자기 안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때도 효용이 있을 것 같아요. 의미 있는 서사로 얘기되었기 때문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선안나 권혁준 선생님, 아까 『배꽃 마을의 비밀』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이 책은 어떻게 보세요?
권혁준 그건 귀신 얘기는 아니고 역사 동화라고 할 수 있겠죠. 역사 동화지만 『까레이스키』처럼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아니지요. 정약용이 젊은 시절, 사또로 부임했을 때 어떻게 살인 사건을 지혜롭게 해결했는가를 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썼는데, 제가 좋게 본 이유는 사건 자체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이것을 작가가 능숙한 솜씨로 재미있게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지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사또지만 소년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 도움을 주면서 살인 사건의 진범이 잡히고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는 과정은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게 합니다. 아버지를 위한 소년의 뜨거운 정과 두려움을 마다하지 않는 용기 같은 것은 요즘의 어린이들에게는 매우 부족한 정서일 텐데, 그래서 이런 작품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선안나 옛이야기를 신화, 전설, 민담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책은 전설을 다루었다고 봤어요. 실제 인물 정약용이 등장한다는 이유만으로 역사 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 없고, 그 사람의 설화를 이야기로 풀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사 박문수 설화들처럼, 전설과 민담을 섞어 놓은 듯한. 역사 속 인물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 소비하는 방식이 거의 옛날이야기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재미있게 읽어도 좋지만, 현대의 아동 문학으로 굳이 권장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권혁준 사실 이 이야기가 현대로 오면 사실 동화로도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살인 사건을 저지른 부자가 자기의 힘으로 살인 사건을 덮었는데 수사관이 와서 그걸 밝혀내는 이야기지요. 배경을 현대로 가져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역사 동화를 ‘역사적 사실에 허구적 상상력을 부여한 아동 서사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이런 작품을 옛날이야기로 보기는 좀 어렵지요.
선안나 삼국 시대 이전부터의 오래된 설화를 현대화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줄곧 있었는데, 조선 시대의 역사적 모티프들을 가져와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에 새로움이 있습니다.
김지은 저는 역사라는 게 다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50년 전, 500년 전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오늘날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았다는 공감부터 해야 차이를 생각하게 되지요. 역사에 대한 무거운 접근이 갖는 문제가 뭐냐면, 그 시대에는 지금과는 굉장히 다른 무거운 문제가 있었을 것 같고 영웅이 있었을 것 같고, 전개 과정이 너무 진지하고, 그래서 이런 부분이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부담을 준다는 거죠. 이『배꽃 마을의 비밀』은 말씀하신 대로 잘 읽히면서, 앞에 말한 현대와의 유사성을 보여 준다는 장점이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선안나 역사 소설의 개념을 무조건 광의적으로 잡으면 안 되고, 대문자 역사와 소문자 역사를 구분해서 분류해 나가야 할 거라고 봅니다.
김지은 문학성이 뛰어난 단편 동화집이 특히 올해 후반부터 많이 나온 것 같고요. 보통 한 권에 한 일곱 편 들어 있는데 수준도 고르고 그 안에 수작들도 있는 단편 동화집을 많이 수확한 한 해였는데요. 인상 깊은 작품들부터 얘기해 주시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권혁준 저는 최나미의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가 아주 훌륭했고, 이금이의 『사료를 드립니다』도 감동적이고 아름다웠습니다. 『발차기만 백만 번』, 『나의 사촌 세라』도 아주 좋았죠. 우선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는데. 이 작가는 『엄마의 마흔 번째 생일』로 독자들에게 사회 문제, 현실 문제를 판단할 때 어떤 하나의 판단 기준이 작동하기는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했지요. 말하자면 논술 문제같이 토론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을 썼는데, 이걸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특히 「양팔 저울」같은 작품에서 ‘진정한 평등이란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학급의 급훈이 ‘평등한 교실에서 행복을 꿈꾸자’입니다. 배경이 아파트촌하고 주택가가 겹친 동네인데 선생님이 가난한 주택가 아이들을 배려하면서 평등한 교실을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결국 성취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함을 보여 주지요. 그래서 캐치프레이즈가 모순이고, 위선적임이 드러나고. 주택가의 아이 중 소원이라는 아이가 거짓 평등, 임시 행복을 꿰뚫어보는 아이로 설정되었지요. 그래서 진정한 행복과 평등이 무엇인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어린이들부터 어른의 사회에까지 던지는, 상당히 인생론적인 깊이가 있는 작품으로 어른들,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선안나 『발차기만 백만 번』의 작가가 남자분인가요? 작품 속 주인공이 처한 생활환경이 어떻든 간에, 주체가 아주 건강하고 힘이 있어서 좋았어요. 『나의 사촌 세라』, 『복수의 여신』, 『발차기만 백만 번』이 참신했어요. 특히 복수의 여신 가운데, 「일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인가요, 그 작품을 올해의 단편으로 손꼽고 싶어요.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빠는 아픈 집에서 벌어지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 가슴 아픈 블랙 코미디처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권혁준 비슷한 이야기인데, 결핍된 당사자를 후경화하고 주변 인물의 말과 행동으로 사건을 구체화해 나갑니다. 「나의 사촌 세라」가 그런 작품인데, 우리가 잘 아는 리얼리즘 작품의 계보들을 쭉 보면 가난하고 결핍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서 살아가는 그 삶을 집요하게 썼는데, 「나의 사촌 세라」를 보면 세라는 등장하지 않아요. 세라의 큰아빠 큰엄마 사촌 애들이 세라를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부부 싸움이 벌어지고 결국은 세라가 외삼촌네로 가기로 했다는 데에서 파티가 벌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세라는 어떤 마음일까 독자가 짐작하게 함으로써 훨씬 더 마음 아프게 합니다.
그다음에 「착한 애들이 사는 마을」에서도 영덕이라는 아이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참 즐겁게 놀죠. 그 애에 대해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영덕이는 미끄럼틀에서 자고 먹고 하다가 그냥 사라지는 이야기이죠. 그 애의 사연, 가족 관계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조금씩 실상이 드러나면서, 독자들이 그 아이의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그런 기법이 기존의 리얼리즘 동화와는 다르면서도 오히려 훨씬 마음 아프게 합니다.
김지은 스텐실이라고 하죠, 물감을 뿌리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진짜 주인공이 되는 아이는 등장하지 않는. 저도 말씀하신 책들 다 좋게 읽었고요. 특히「발차기만 백만 번」의 경우, 우리 동화에 소년들의 우정 이야기가 없는 편인데, 소년이 갖는 감정의 깊이랄까. 원래 남자아이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전하는 방식을 알고 있잖아요. 제가 감명 깊었던 장면은 윤제하고 신혁이가 둘이 같이 뜨끈뜨끈한 밥을 빈집에서 나누어 퍼먹는 장면이었어요. 단편이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이렇게 보여 줄 수도 있구나, 놀랐고요. 『복수의 여신』에서 표제작보다는 선안나 선생님 말씀하셨던「일분에 한 번씩 엄마를 기다린다」. 이 작품은 놀라운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아빠의 해고와 엄마의 가출이라는 두 가지 사건이 있고 그 사건 사이에 물난리가 한 번, 불난리가 한 번 일어나죠. 하나는 잠기고 하나는 치솟아 오르고 두 재난이 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데. 둘 다 아이 삶의 터전을 파괴한다는 점에서는 같지요.
초반부에 주인공의 심리 상태는 정말 물 같은 상태인 거예요. 다 포기하고 젖어 있고 가라앉아 있다가, 엄마가 사라졌는데도 무기력한 아빠 때문에 점차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가스 사고로 불이 나지요. ‘화가 난다’, ‘아빠 밉다’ 이런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와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해 냈다는 게 놀랍고 결말로 갈수록 불안의 강도가 높아지는데, 엄마가 보내는 택배 상자를 정기적으로 열어 볼 때만큼은 가족이라고 느끼잖아요. 여기서 아이들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지는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우연 수업」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동화가 이런 식으로 아이들의 소소한 상상에 귀를 기울여 준 적이 있었나. 단순히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사연과도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동안 우리나라 리얼리즘 아동 문학이 너무 주인공만 다뤄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주인공의 주위를 맴돌면서 자신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고민했을 많은 아이의 이야기는 별로 다룬 적이 없는데, 『나의 사촌 세라』에는 정말 간절한 아이들이 나오죠. 「단아가 울어 버린 까닭」에서는 우정의 주변부를 서성이면서 베프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나타나고. 「나의 사촌 세라」의 세연이는 이 도시의 어느 가정에나 있을 법한 지독하게 외로운 아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아이가 한 침대에서 절반만 자는 연습을 하잖아요. 아이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모를 텐데 이 모습을 작가가 봐준 접근의 각도가 좋았습니다.
선안나 오래전 창작된 『소공녀』 세라가 상상과 이상, 어쩌면 공상을 보여 주었다면, 오늘날의 방식으로 다시 쓰인 소공녀 이야기「나의 사촌 세라」는 현실을 말하지요.『소공녀』세라는 무의식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할까, 옛이야기의 세계관에 가깝다면,「나의 사촌 세라」는 소설 정신을 담은 작품이에요. 문학적 기능이 좀 달라요.
김지은 어떤 일이든지 혼자 하기는 참 힘들잖아요. 형식으로 보면 「우연 수업」이나, 「착한 아이들이 사는 마을」같은 게 집단 주인공의 형식이거든요. 「착한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한 아이를 함께 돌보는 외로운 아이들이 나오는데요, 혼자 해결하는 아이들로 보이지 않고 작가가 어떤 공동체적인 부분을 그려 내려 했다는 건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권혁준 이금희의 『사료를 드립니다』가 이야기될 만한 작품인데, 제가 아까 아동 문학이 성인 문학에 비견될 정도의 문학성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게 이런 작품들 덕분이겠습니다. 원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는 인간관계의 모습들이 단순화되었다고 할까요. 쉽게 파악될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는데, 예를 들면 「몰래카메라」 같은 작품에서 어떤 할머니의 짐을 들어주면서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다고 상상하고, 요술 주머니의 효력이 사라지고, 또 그 요술 주머니를 누군가에게 주면서, 그 사람한테 너무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심리라든지 복잡한 인간관계의 심리들이 잘 드러나 있어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심리, 인생살이의 어떤 단면 같은, 복잡한 문제들이 잘 포착된 것 같고 표제작인 「사료를 드립니다」가 가장 감동적이었지요. 시베리안 허스키를 두고 간 소년이 그 개를 찾으러 왔더니 자기보다 불쌍한 남매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서 그냥 포기하고 돌아오는 내용인데요. 주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추론해서 알아낼 수 있도록 몇 개의 사건만 던져 놓으면서 한편 간결한 표현으로 인물의 심리를 적확하게 표현하는 솜씨가 훌륭했습니다. 단편 소설의 본질이 단일한 사건, 단일한 주제, 단일한 구성이라는 말을 하죠. 사건의 단면으로 인간관계의 복잡한 심리를 드러내려고 애를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아동 소설에서 쉽게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많이 보여 줬습니다.
김지은 신인들의 단편 동화가 전반적으로 놀라움을 줬다면, 『사료를 드립니다』는 단편 동화가 어떤 식으로 문학적으로 안정되어 가는지에 대한 중간 표지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무엇을 숨기고 드러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고요. 또 아이들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애완동물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 관계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깊이라든지. 이런 점에서 저도 훌륭한 단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지은 판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저희가 뽑았던 스무 권 목록 중에서 일단 보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선안나 일단 저학년에서 좋은 게 꽤 있었어요. 『엄마 사용법』, 『여우가 될래요』, 『한입 꿀떡 요술떡』등. 고학년에서는 『지도에 없는 마을』, 『황금 깃털』, 『미루미루수리수리 미루의 미루 찾기』가 떠오르네요. 『엄마 사용법』은 저학년부터 읽는 책인데, 어른이 읽어도 여러 의미를 다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엄마란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만난 보호자이자, 아이들에게는 신처럼 큰 존재잖아요. 그런데 엄마를 주문하고, 새롭게 조립해서 엄마의 역할을 하나하나 가르치죠. 엄마라는 존재와 아이의 관계를 낯설고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점에서, 아이들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싶어요.『지도에 없는 마을』은 기존 판타지와 다른 독특함이 있어요. 서사보다는 예술성이 작품을 주도하는 느낌이랄까요, 스토리나 의미가 아니라 물무늬 같은 어떤 이미지들을 내적으로 접촉하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김지은 『맨홀 장군 한새』가 1, 2권으로 된 작품인데요. 열두 살 한새라는 여자애가 맨홀에 빠지면서 지하에서 여러 동물을 만나고 인간 대표로 동물을 만나는 이야기죠. 유작으로 쓰시고 돌아가셨는데, 오랫동안 묵혀 있던 작품이 출간된 거예요. 선생님이 후반부에 집중하지 못하셨기 때문에 결말로 가면 긴장감이 떨어지긴 하지만,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우리가 판타지를 쓸 때 공간 배치에 신경 쓰긴 하지만, 인물이 지나가는 공간의 묵직함이라든가 그 공간 전체를 압도하는 힘을 가진 작품이 많지는 않다는 거죠. 어딜 가더라도 놀이동산에 들어가는 판타지가 많지, 어둠과 경계를 뛰어넘어서 들어가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데. 맨홀 작품 한새는 빛을 하나도 못 보는데, 여기 보면 한새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초등학생이 담배 피우는 직접적인 장면이 나오는 작품을 읽고 있으면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었구나, 라고 가슴 아프지만 다독여 주게 돼요. 이미 이 세상도 맨홀보다 어둡기 때문에 맨홀 안에서 빛을 발견하는 거지요. 뒤로 가면 우화적인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작품의 무드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보게 하는 묵직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해요.
권혁준 제가 본 중에 주목할 만한 것은 『연두와 푸른 결계』. 김종렬 씨는 성인 소설로 등단한 분이라서, 사건을 서사로 진행해가는 기법이 탁월한 사람인 것 같아요. 연두라는 여주인공이 종묘로 들어가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등장하는 동물들은 백호, 주작, 현무 등과 십이지신입니다. 그런 동물들, 수호신들을 등장시켜 가지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판타지의 모습을 많이 보이는 것 같고. 전체적으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이야기하면, 지금 말했던 전통적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현대인에게 결핍된 심성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서울의 역사적 공간들이 등장하는데, 종묘가 빌딩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십자각은 차도들 사이에 외딴섬처럼 있어요. 마치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왜소해지고 녹아 없어질 듯한 위기를 맞은 역사와 문화를 어린아이들에게 소개합니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런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면서 나쁜 악령과 싸움하는 장면이라든지, 스케일이 큰 장면들이 힘차게 구성되어 있어서 재미를 준다는 것이고, 쓰러져 가는 문화에 대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작품이었고요.
『요괴소년』, 『지도에 없는 마을』, 이런 작품들도 다 괜찮으면서 나름대로 문제점이 보이더라고요. 『황금 깃털』도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그 주인공을 잘 설정했지요. 그런데 결말을 너무 서둘러서 마무리했다고 해야 하나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해야 하나. 이 작품의 결론은 ‘내가 주체적이고 용기 있는 선택을 했더니 나는 행복해지더라.’ 하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에서는 본인이 바뀌더라도 자신을 둘러싼 외부적인 환경이 너무나 폭압적이라면, 본인의 의지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거든요.
김지은 『지도에 없는 마을』 같은 경우에는 『황금 깃털』이랑 비슷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초기에 구축했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탄탄한 구조라든가,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갖게 했던 것에 비해서 후반의 마무리가 너무 익숙한…… 책임지지 않는. 마지막 휴양지라는 책이 이미지의 연결로 끝까지 가져가잖아요. 그 작품은 그림책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지만, 서사의 구성으로서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림으로써 덕 본 작품. 서사물에서 그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서사에 몰입할 수 있게 말이지요.
선안나 『맨홀 장군 한새』를 2권밖에 못 봤는데, 우화의 느낌이 먼저 들었어요. 금수회의록 같은. 문학하는 사람들끼리는 의미 있는 문학적 실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어린이 독자에게 과연 읽힐까 싶었어요. 『연두와 푸른 결계』도 스토리가 흡인력이 약하고, 문화 정보가 서사를 압도해요. 우리의 전통 가치들이니까 우리는 자꾸 의미를 부여하지만, 번역할 경우 외국인도 읽어 낼 수 있는 문학적 보편성이 먼저여야 하거든요. 시와 다르게.
김지은 『맨홀 장군 한새』는 일반적으로 판타지를 양의 세계로만 구성하려는 데 비해서 음의 세계를 구성했고, 작가가 여기서 거친 반말을 쓰거든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여자 어린이가 헤쳐 나가는 방식으로 이를 이용하는 게 있고, 동물과 인간이 서로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걸 만들기 위해서 반말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권혁준 아까 『지도에 없는 마을』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려다가 말았는데, 이것도 상당히 새롭게 보이는 작품인데. 서사 진행에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두 주인공이 모두 여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36페이지의 삽화를 보고서야 한 아이가 남자인 줄 알았어요. 해모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남자다운 성격인데 알고 보니, 여자면서 할머니고. 그런데 이런 점을 인물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묘사해 줘야 하지 않나 싶은데. 전체적으로 자기가 주무르려고 하는 서사가 빈구석이, 군데군데 눈에 띄어서 몰입을 방해했습니다.
김지은 정리해 보자면, 최근 주목받았던 판타지 작품들 경우는 처음의 발상, 배경 설정, 문제 제기에서 신선함이나 상상력을 보였지만 이런 상상력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는 것에 비해서 결말을 해결하는 게 미진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이제 사실적인 접근을 시도했던 작품들을 보고 추리물과 유머라는 주제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김지은 『우리 동네 전설은』은 제가 한참 할 말이 많았었는데요. (웃음) 우리가 현대 사회를 생각하면 음모가 숨어 있을 것 같고, 발을 들이면 늪에 빠질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근데 한윤섭 씨는 사실 그 안을 보면 가족이 있고, 또 네 생각만큼 세상이 어둡고 복잡하지 않다는 거꾸로의 통찰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오직 이야기의 힘만으로 다다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까 제가 길을 복원했다고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길을 잃었어요. 하교하면 다들 학원 버스 타고 뿔뿔이 흩어지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어른도 무엇도 잠식할 수 없는 하굣길을 다시 해방구로 제시함으로써 아이들끼리 타자를 의식하고 자유롭게 연대하도록 해 줍니다. 또 한윤섭 씨의 다른 작품들처럼 여기서도 인물들이 과잉이 없어요. 아이들이 주체적인 대신에 어른들이 선선한 편이에요. 자리 깔아 주는 정도의 관심만 보이지요. 사실 아이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이 정도였다면 살 만할 것이라는 감상을 말하기도 해요. 어른과 아이의 거리를 유지해 준다는 점에서 서사가 민주적이에요. 또 공포 요소들을 이야기 안에 갖고 있는데 들여다보면 그것도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그러니까 관계에 대한 탐색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도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의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권혁준 저는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요즘 아이들에게 들려주겠다는 의도로 읽었거든요. 그런데 작가에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에게도 같은 효과를 줄 수 있을지. 이에 대해서는 전에도 논쟁이 많이 있었지요. 오영수의『요람기』도 교과서에 있는데, 나 같은 어른에게는 아련한 향수나 추억이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이야기라는 비판도 있지요. 요즘 어린이들도 아버지 시대의 추억을 간접 체험으로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데 저는 이 작품에서 조금 아쉽다고 할까요.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그런 추억을 회고적인 관점에서 굉장히 아름답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텐데 문장은 그렇게 아름답지 못했어요. 예를 들어 새벽에 밤 밭에 가서 앉아 있는 장면은 공들여서 쓸 수 있었어요. 새벽에 안개가 끼어 있고 어둠이 가시지 않은 채 고요한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상에 대해 좀 더 시적인 풍부한 묘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아쉽게 간단히 지나가 버리고 말더라고. 또 전설이라는 것도 그래요. 이제 애들이 무시무시한 얘기를 해 주지요. 나중에 알고 보면 별거 아닌 얘기로. 평범한 할아버지, 인정 많은 할머니로. 글쎄? 이게 추리 소설도 아니고. 여기서 의미 있게 읽은 것은 방앗간 집 할머니가 죽고 나서 방앗간 집 할아버지와 돼지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장면인데요. 인생의 쓸쓸함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어른들의 정서가 아이들이 공감하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어린이들도 문학을 통해 인생을 간접 체험으로 알아 간다는 점에서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
선안나 같은 작품을 서로 다르게 읽는 게 재미있죠. (웃음) 그동안 농촌 소재 동화가 대체로 회고적이거나 비슷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우리 동네 전설은』은 농촌 동화 범주에서 새로움을 구축한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많은 장점이 있지만, 어린이에 대한 어떤 과잉된 태도가 없는 글쓰기가 참 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속 어른들의 모습도 기존 인물의 성격에서 나아간 점이 있고요.『사춘기 가족』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도 서로 연대하고 동지인 관계를 보여 준다는 면에서 새로움이 있었고요. 그런 면에서 『뿔뿔 도깨비 뿔』도 같은 범주로 말할 수 있겠네요. 거기 나오는 삼촌이 계속 아이들을 놀리며 같이 어울려주는 어른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 주거든요. 시골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우스갯소리 잘하고 짓궂기도 했던 삼촌들. 현재 잃어버렸을지라도 관계의 어떤 본질들, 고유의 정서나 모습들을 보여 주는 게 정서적인 전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지은 저는 요즘에 사라진 어른들의 모습 중 하나가 그 삼촌들 같아요. 아이들의 삶에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하는 어른이 능숙하고 잘 속이는 사람이거든요. 골탕 먹이고 실없는 농담 하면서 아이들을 굉장히 호방해지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주변에 서성이는 어른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놀이의 공간, 안전장치 역할 같은 것이 왜 없어졌을까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지금 2030이 처한 상황이랑 상관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랑 느긋하게 손발 맞춰 줄 사람들은 다 공부하거나 알바 하느라 숨어 버린 거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여유 있는 존재들이 아이 곁에서 다 사라지고, 아이들을 닦달하며 공부시키는 부모만 남고. 아 삼촌이나 고모들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선안나 공간적으로도 우리가 중심만 조명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뿔뿔 도깨비 뿔』이나 『우리 동네 전설은』같은 작품은 소외된 공간을 조명함으로써 사라진 것들을 불러왔어요. 그런 점에서『할아버지의 방』도, 늙고 무력하기만 한 할아버지와 아이의 사소하고 희미하기만 한 일상들을 세세하게 그려 보임으로써, 삶의 한 정경을 오롯이 조명하는 미덕이 있어요. 학교라는 공식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비공식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달려라 펫』과 『수민이의 왕따 탈출기』도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달려라 펫』은 누군가의 무엇으로 존재하던 아이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가는 과정 전체를 무난히 그려냈고,『수민이의 왕따 탈출기』는 어린이의 잔혹한 측면을 정말 리얼하게 보여 주더군요. 작가가 공들여 취재했고 힘들게 썼구나 싶은데, 결말이 여전히 선생님의 역할로 해결되는 것이 아쉽고 같이 고민이 되더군요.
김지은 주인공이 할머니, 할아버지일 때 그들의 말이 하소연이나 넋두리처럼 들리면 어린이들이 읽는 재미가 떨어져요. 그래서 어린이가 어떻게든 그걸 읽어 내야 하는데, 저희가 느끼는 서정성에 비해 아이들에게는 너무 약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어쨌든 어린이가 자기 방식으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는데요.
『달려라 펫』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순환적이에요.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펫이라는 통찰을 줘요. 요즘 아이들은 단 한순간도 주체성을 찾을 수 없는 총체적인 감시 속에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런 구조적인 통찰을 주는 것이 중요해요. 구조가 있는 이야기를 쓴다는 힘든 시도라고 생각하지만, 『달려라 펫』은 내부에 채워진 이야기와 아이들의 사실성이 잘 조율된 이야기고, 지금 고학년들이 가장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선안나 『우리 동네 전설』과『할아버지의 방』은 장편과 단편이고, 서로 말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좀 힘들 것 같아요. 건강한 노인이 주체가 된 이야기라면 단연『우주 호텔』이겠죠.
권혁준 『달려라 펫』에 대해 좋은 얘기들 많이 하셨는데요. 저도 동의하고 이 시대 아이들의 문제를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으며 의미 있고 리얼리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불만스러운 지점은 이 책에 3분의 2 지점까지 현준이가 놀림을 받는 장면, 놀림에서 벗어나려다가 더 큰 고난에 처하는 장면인데, 너무 오래 나오는 것 같아요.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과 자기를 동일시하면서 읽다 보면 왜 이 아이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할까 싶습니다. 현실의 문제를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일까. 충분히 이 주인공 아이가 엄마나 선생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아이인데요. 사건 자체는 상당히 작위적입니다. 이런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소소한 사건들이 몰입을 방해한다고 할까 흥미를 끌기에 좀 문제점이 있지 않았나 했습니다.
『사춘기 가족』을 읽으면서는 눈물도 좀 흘리고 그랬어요. 문장이 아름다운 수필 같고, 곳곳에 의미심장함이 숨어 있어요. 등장인물들도 참 매력적이죠. 사진가인 아빠와 작가인 엄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잘한 갈등과 화해, 미움과 용서 같은 것들이 펼쳐지고 그런 과정에 깊고 무게 있는 주제가 들어 있어요. 예를 들어 다문화 아이의 상처라든가. 캄보디아 엄마를 둔 나리라는 아이가 왜 승부에 집착했는지 나중에 밝혀지는데, 우리 사회가 다문화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위선이 보이면서, 상당히 작은 울림인데도 독자에게는 크게 와 닿았고, 아버지가 자연만 찍다가 할아버지의 치매 사건 이후로 인간을 찍기 시작하는데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느끼게 합니다. 또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에서는 여자의 삶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지요. 이처럼 거대한 사회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고, 작은 일로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펼쳐지면서도 우리 사회의 문제, 어른의 문제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아주 좋게 읽었습니다.
김지은 『후박나무 우리 집』이라고 고부간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 있었어요.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했는데 『사춘기 가족』은 20년이 지나면서 변화된 엄마와 며느리의 모습, 여성들의 삶이 얼마나 다른 삶의 방식과 탈출구를 모색하려고 하는지 보여 주는 여성주의적으로 볼 만한 작품 같아요.
선안나 『사춘기 가족』아름답고 재밌고 웃음도 있고…… 여러 가지 장점이 있는데도, 저는 상당 부분 낭만적인 윤색이 있다고 느꼈어요. 낡고 고단하고 지친 정서도 삶을 이루는 진실이거든요. 아동 문학의 본질 가운데 ‘이상성’이 있긴 하지요. 『거꾸로 쌤』 같은 작품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겠네요. 이상성이 너무 지나쳐서도 안 되겠지만, 사람의 아름다운 자질을 간접 체험하는 것이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죠. 그런데 『거꾸로 쌤』은 낭만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낮은 연령층을 위한 책이기에 이상성이 장점일 수 있지만,『사춘기 가족』은 현실에 대한 균형 감각과 비판력이 발달하는 시기의 고학년 이상 독자가 대상인 만큼, 리얼리즘 기법을 택했으면 소설 정신이 더 살았을 싶습니다.
김지은 사람들마다 온도가 다르고 상대적이잖아요. 온도가 낮은 사람도 있고 높은 사람도 있는데. 우리 동화는 일정한 균형점의 삶을 추구해 왔어요. 이 정도의 긍정성을 가지면 이 정도의 고민을 동반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좀 들떠 있는 느낌의 작품이 있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선안나 가능이야…… 하지요. (좌중 웃음)
김지은 그러니까, 이걸 약점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건데요.
선안나 저는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저마다의 개성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큰 조화도 있지만, 한 사물이 이를 수 있는 순도 역시 있거든요. 문학도 장르와 기법 안에서 최선과 정수가 있죠.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죠.
권혁준 근데 어둡고 위선적인 현실을 까발림으로써 새로운 현실을 지향하는 문학도 있고, 지금은 없는 현실이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 이상적 현실을 보여 주면서 현실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문학도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교대에 있잖아요. 초등학교의 컨설팅을 맡았는데 해결 과제가 ‘저경력 교사의 인성 및 생활 지도 방안’이에요. 5년 미만 교사들이 아주 유식하고 수업은 잘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고 애들의 기본 생활 습관 지도가 안 되는 거예요. 교사가 스스로 청소하고 그런 습관이 안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애들에게 인성 지도를 못 하는 거예요. “협동하고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 “이기적으로 지내면 불행해진다.” 이런 얘기를 할 줄 몰라요. (한숨) 교대 학생들이 임용고사를 봐야 하니까 시험공부만 해요.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인데. 이『거꾸로 쌤』에 나오는 사람은 완전히 거꾸로죠. 학업 성적 같은 것만 추구하는 젊은 학부모들과 비교할 때 굉장히 거꾸로인데. 리얼리즘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교사가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이런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현실을 반성하게 하는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사춘기 가족』도 이런 시어머니 어디 있겠느냐고 할 수는 있겠지요. 저는 여자의 인생에 대해서 첫 소절을 며느리가 전화에서 불러 주니까 시어머니가 여성의 삶에 대해 공감하며 뒷소절을 불러 주는 장면이 감동적이었어요. 리얼리즘 입장에선 불만스럽기도 하겠지만, 약간 낭만적인 이런 작품들도 필요하지 않나.
같은 관점에서 『하이퐁 세탁소』도 하고 싶은데요. 베트남 엄마를 둔 웅이라는 5학년 남자아이의 이야기지요. 원유순 선생님이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등 다문화 얘기 많이 썼죠. 이 작품은 다문화 동화의 어떤 바람직한 지향점들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생각되는데요. 보통 다문화가 발전하는 단계를 학자들이 여러 단계로 분류했는데, 처음에는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단계이고, 다음에는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을 자기 집단한테 동화시키려고 하고. 가장 발전된 상태가 소수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어울려 사는 사회라고 해요.
이 이야기에서는 원래 산청세탁소였던 곳이 우여곡절 끝에 하이퐁 세탁소로 바뀌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엄마의 고향이 하이퐁이에요. 이를 간판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음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웅이가, 베트남 아이니까 전학을 와서 애들한테 놀림과 따돌림을 당하지요. 이런 과정에서 담임이 이 아이를 힘센 애하고 짝을 만들어 줘요. 이 아이는 모범 어린이 상을 받으려고 웅이를 돌봐 주는 건데, 나중에 그걸 들켜요. 그래서 주인공은 엄청난 좌절을 겪고 스스로 용기와 지혜 어떤 다른 판단력을 통해서 이를 극복해 나갑니다.
결말 부분에서 웅이가 교감 선생님 책상에 있는 다문화 아이들 사진을 치워 달라고 얘기하죠. 선생님은 관심과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를 유표화하는 행위니까 없애 달라는 거지요.
바람직한 다문화 사회는 소수 집단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면서 어울려 사는 것인데, 이 작품에서 바로 그런 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다문화 동화라고 생각합니다.
선안나 요즘은 시골 초등학교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어떤 반은 반 이상이래요. 이미 다수자가 되어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전반적으로 동화 속 의식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하이퐁 세탁소』는 우선 문학으로서 빈곤한 느낌이에요. 작가의 기획과 구성만 있고 독자 몫의 체험이나 여백이 없다고 할까.
김지은 제가 도서관에서 다문화 가정과 함께 책을 읽는 프로젝트를 하는데, 이렇게 다문화로 대상화된 이야기를 읽히는 것보다는 우리 동화를 계속 읽혀 주는 게 실제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저는 다문화 가정의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면, 누군가가 다른 국적을 가졌더라도 똑같은 비중으로 나와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꾸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대상화하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이 다문화 엄마들이 이태준 선생의『엄마 마중』을 좋아해요. 본인들도 다 엄마랑 떨어져 있으니까요. 또 필리핀 엄마는 홍콩에 아이 키우러 가고 홍콩의 아이 엄마들은 미국에 가고 이런 것을 초국적 육아라고 하는데요. 아이들은 다 각자의 엄마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칙은 타자화, 대상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같아요.
권혁준 다문화 아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언어도 서툴고, 그 둘레의 어른들이 한국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역시 소수자고 차별받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학적 형상화로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아직도 다문화 동화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런 다문화 동화는 소수 집단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우리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다수 집단의 어린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지요.
김지은 마지막으로 저희가 못 한 게 추리 기법 다룬 작품들 포함해서 각자 얘기하고 싶은 작품들을 이야기해 보지요.
권혁준 『우주 호텔』,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는데. 말하자면 리얼리즘과 판타지가 결합된 의미심장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늘 허리를 구부리고 하늘을 보지 않고 사는 할머니가 어린이가 그린 상상화를 보면서 허리를 펴고 우주를 보면서 살아가는 이야기이지요. 작품의 결말 부분에 가면, 독자는, 할머니가 살고 있는 인생이 우주여행이고, 살고 있는 집이 우주 호텔이고 거기서 같이 차를 마시는 할머니는 외계인이라는 암시를 받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굉장히 리얼해요. 폐지를 수집하는 장면, 폐지를 안 빼앗기려고 타인을 밀치는 장면 등이 작위적이지 않고 리얼합니다. 표지와 삽화도 아름답습니다. 처음 부분에는 지저분하고 삭막한 대낮 산동네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뒷부분에 가면 산동네의 밤을 보여 줍니다. 깜깜한 밤중에 노랗게 반짝이는 불빛을 보면 산동네가 우주 같고 작게 보이는 할머니가 외계인을 만나서 차를 마시는 듯해서. 할머니의 인생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김지은 저는 『우주 호텔』이야말로 저희가 번역했을 때 가장 보편성을 얻을 작품이 아닌가 해요.
선안나 작가의 말도 좋아요.
김지은 이제 추리물 이야기를 하자면요, 저는 『명탐견 오드리』라는 작품과 『멍청한 두덕 씨와 왕도둑』시리즈를 다 흥미롭게 봤는데요. 그 우리 동화에 추리 기법의 작품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논리가 부당한 경우는 어른도 어린이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이들도 논리를 갖춰서 얘기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어요. 어린이 장르물이랄까 추리물이 이런 부분들을 충족시키는 것 같고요.
저학년 추리물을 쓰면 너무 허술한 난이도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오드리라는 개가 고서화를 훔친 과정. 오드리가 물어오는 단서가 적절한 수준이에요. 작가가 난이도를 잘 알고 배치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개라는 특성을 이용해서 오드리가 늘 후각을 통해서 뭘 발견하는데, 후각이라는 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감각이잖아요.. 이 작품이나 두덕 씨나 아이들에게 추리의 즐거움을 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했습니다.
권혁준 저도 상식적인 정도. 두덕 씨만 언급하자면, 원래 이분이 이야기를 다루는 솜씨가 능수능란해요.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의인화한 탐정 이야기인데, 탐정 이야기의 공식을 잘 사용하고 멍청한 탐정이 기발한 방법으로 도둑을 잡았을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여기에 능청스러운 화자를 등장시켜서 이런 것들이 즐거움을 주는데 성공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도 아이들에게 필요하지 않나.
김지은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
권혁준 옛이야기를 변용하거나, 옛이야기를 다루는 게 세련되어 가는 것 같아요. 옛이야기는 동화의 뿌리가 되니까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야 하겠지요. 그에 비해서 판타지 쪽은 어떤 기법이라든지, 이런 게 좀 더 세련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아동 문학의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있는데요. 우리 대학 다닐 때는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 같은 시가 우리 가슴을 뜨겁게 했는데,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달성된 오늘날의 대학생들에게는 그리 큰 울림을 주지 못합니다. 문학이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녀야겠지요. ‘오늘 여기’의 문제 못지않게 문학이 오랜 생명력을 가지려면 인간의 본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린이의 삶을 다루는 아동 문학도 어린이의 내면과 욕망을 더 심층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작품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어린이의 심리라든가 욕망이라든지 이런 것이 대한, 인문학에 대한 공부 깊이 해야 할 것 같고요.
김지은 저는 좋은 말씀 잘 들었고요. 아이들의 경험 세계가 좁아지고 있다는 걸 잘 느낀 게 오늘 만난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똑같은 사람만 기록한다는 거예요. 사람을 만나기 힘든 삶이라는 건 현대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건데. 그걸 극복해 주는 매체가 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을 만나 봤어야 연대를 고민하든 공간을 고민하든 할 텐데, 책이 더욱 다양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 줬으면 합니다. 여태까지 좋은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면, 주변인들은 다 전형적이라는 점이 아쉬웠는데, 올해는 그걸 극복하는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유은실 씨 신작 중에「도를 좋아하는 아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왕따를 당해도 저마다 사정이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세상에는 다 다른 아이들이 있는 거죠. 경험이 많은 작가가 이렇게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내고 구체적인 것에 도전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풍성한 이야기 나눠주신 두 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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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준
아동문학 평론가. 공주교대 국어교육과 교수. 저서로는『아동문학의 이해』, 『문학이론과 시교육』,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등이 있다.
김지은
동화와 동화에 관한 글을 쓰며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하고 있다. 한신대, 서울예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선안나
동화작가. 평론가. 성신여대 겸임교수. 『떡갈나무 목욕탕』, 『내 얼룩무늬 못 봤니』,『잠들지 못하는 뼈』등의 동화책과, 『네가 세상에 처음 왔을 때』, 『너 나 우리』, 『온양이』등의 그림책을 펴냈다. 평론집 『천의 얼굴을 가진 아동문학』이 있고, 세종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열린아동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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