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불원 관람을 마치고 탕강자 온천으로 간다. 온천욕을 하고 저녁을 먹으면, 숙소에 11시 30분경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가이드 말에 대부분 온천은 포기하고 그냥 가자는 분위기다. 원래 4명이 온천을 하기로 했는데, 우리 가족만 온천을 하기로 하고 나머지는 그냥 가잔다. 실제로 오늘 예정에 없던 <동묘향산> 식당으로 가지 않고, 진행했다면 옥불원, 탕강자 온천을 다 하고 충분히 영구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일정이 늦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가자고 하는 것이다.
현재 시간은 저녁 8시. 우리가 온천에 들어갈 동안 나머지는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탕강자는 황제들의 온천이다. 지금은 요양원이 모여 있다. 기본 입장료가 40원으로 수영장도 각종 안마와 여러 가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로 하루 종일 있어도 좋을 법하다. 안내원을 따라 들어가는데, 잠시 해프닝이 생겼다. 나와 찬이는 남탕으로, 세오녀는 여탕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안내원이 자꾸 찬이 손을 끌어 세오녀 쪽으로 보낸다. 머리가 길고 예쁘장하게 생겨 찬이를 여자로 오인한 모양이다.
우리 식구들은 한국에서도 목욕탕이나 온천에 거의 가지 않는다. 단체로 어쩔 수 없이 부곡하와이나, 부산 허심청, 울진 백암온천, 유성온천, 전주 죽림온천 등을 가본 적은 있다. 일본을 대여섯 차례 갔어도 한 번도 온천에는 가보지 않았고, 베트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래 정해진 패키지 일정에 충실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하고 온천에 들어갔다. 욕탕은 흥해프라자 온천과 비슷한 정도로 그다지 특별한 건 없다. 다만, 덩치 큰 서양 남자가 사우나를 들락거리며, 탕 안에 설치된 음악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는 게 이곳이 외국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40여분 만에 간단하게 샤워하고 탕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들어갈 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입구에 청 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 관련 사진이 붙어있다. 신해혁명으로 황제의 직위를 빼앗긴 후, 일본의 꼭두각시로 만주국 황제로 보낼 때 아마 즐겨 찾았던 것 같다. 영화 <마지막황제>는 1989년 1월 아주 추운 날, 우리가 신혼여행으로 마산에 들렀을 때 본 영화 중 하나다. 군사 정권하에서 그런 영화도 사실 무척 불온한 축에 속했다. 영화에서 <문화혁명>을 다루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이드에게 들은 얘기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작품의 이 영화에 대응하여 중국에서도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중국이 볼 때 그 영화가 마음에 무척 들지 않았으리라. 물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이 영화는 수입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판 마지막황제가 그린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부의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기로 하고 9시에 함께 버스를 타고 최종 목적지인 영구로 출발하였다.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ㅅ 에 휘둘리는 가이드에게 한 소리 하였다. 분위기는 냉랭하였다. 먹을 것만 밝히는 일행과 어차피 서먹해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반드시 매끼를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호텔에 도착하여 가이드는 약속과 다르게 트윈룸을 배정한다. 원래 트리플 룸을 주기로 해놓고 말이다. 조용하게 세오녀가 이의를 제기하니 방을 하나 더 준다. 덕분에 찬이는 멋진 방을 독방으로 사용한다.
산책에 나섰다. 12시가 다된 시간이다. 밤 늦도록 영업중인 안마소 앞에서 할머니에게 자두를 산다. 좀더 가다가 야외파라솔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여 그곳으로 간다.
꼬지를 파는 가게 테이블에 앉아서 꼬지를 시켜서 맥주와 마시다. 대설 맥주인데 맛은 괜찮은 편이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