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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
윤삼현
“물에 잠겼던 적벽이 가뭄으로 무릎 아래까지 모습을 드러낸 적벽, 그 귀한 장면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서면사무소 앞에서 적벽투어 버스가 막 출발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나이가 들어보이는 관광해설사 아줌마가 마이크를 들고 해설을 시작했다. 차에 탄 오십 여명의 관광객들이 일제히 해설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옆에 타신 할아버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창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귀는 마이크 소리 쪽에 내주고 눈은 한창 팝콘처럼 터진 벚꽃 행렬을 따라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파릇파릇 봄빛이 물들어 한껏 맑고 푸르렀다. 게다가 오늘은 하늘까지 구름 한 점 없는 투명한 하늘이 끝없이 열려 있었다. 네모난 화면으로 하늘의 푸른 강물이 자욱히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할아버지의 눈과 내 눈이 잠깐 마주쳤다. 우리는 동시에 빙그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할아버지의 짙고 그윽한 표정은 모처럼 할아버지와 떠나는 버스투어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위 아래로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리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만족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화답이었다.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과 비슷하다니…조조의 백만 대군과 맞딱뜨린 제갈량이 동남풍의 힘을 빌어 조조군을 대패시킨 적벽대전을 도착하면 상상할 수 있겠어.’
적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원지 보호 출입통제소를 지나 버스는 굽이굽이 산언덕을 돌아가고 있었다.
“호남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화순 적벽이 나타나고 있지요. 가뭄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수면 속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는데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가뭄이 올 봄에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자칫 제한 급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지역 식수원인 동복호 사정이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 이참에 숨겨놓은 적벽의 비밀을 바닥까지 시원히 풀어놓으려 맘 먹고 있는 것 같아요.”
해설사 아줌마는 아름다운 적벽을 설명할랴, 긴 가뭄의 안타까움을 설명할랴, 표정을 바꾸며 속사포처럼 해설을 쏟아내고 있었다. 버스는 마지막 커브를 돌아 내리막길로 천천히 접어들고 있었다.
사실 할아버지가 주말을 기해 적벽버스투어를 가자고 제안하였을 때 난 선뜻 응하지 않았다. 이유는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자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과의 이런 일은 자주 기회가 찾아오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와 이런 낯선 경험도 흔히 찾아오는 일은 아니었다. 또 제안하시는 할아버지의 눈빛이 워낙 간절함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친구들에게 불참을 통보했다. 그리고 할아버지와의 적벽투어를 선택한 것이다. 선택한 이상 기쁜 마음으로 할아버지와 완벽히 호흡을 맞추어 버스투어에 동행하고 싶었다. 고희를 넘기신 할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에 대한 손자로서의 일종의 보답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글쎄 이런 판단을 하게 되다니…철부지가 부쩍 큰 것 같아서 스스로 대견했다. 사실 그동안 자꾸 몸 여기저기가 편찮으신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산책도 매일 나가시는 할아버지가 작년부터 예전같아 보이지 않으셨다. 무릎이 고장나면서부터다. 지난 겨울방학 때 할아버지는 무릎 수술을 받으셨다. 마냥 어린 냥만 부릴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께 잘해드려야지 하는 마음, 솔직한 심정이었다.
“전라남도 기념물이자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돼 있는 화순 적벽. 깎아내린 듯 웅장한 퇴적층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걸 보세요. 켜켜이 쌓인 세월의 풍경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버스에서 일행이 내리자 빨간 빵모자를 살짝 눌러 쓴 해설사 아줌마가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이리로 모여주세요.”
해설사 아줌마가 망향정 앞 잔디밭 언덕을 가리켰다. 망향정에서 바라본 적벽은 놀라웠다. 말발굽처럼 구부러진 모양의 호수가 적벽 아래 구비치는데, 정면에 옹성산 아홉 개 봉우리가 우뚝 솟아있어 마치 병풍 위에 또 하나의 병풍을 둘러친 느낌이었다. 낮아진 수면위로 아홉 개 봉우리가 그림처럼 잔잔히 잠겨있었다. 가뭄이 들기 전 수면이 닿았던 위치에 파릇파릇 나무들이 물이 올라 잎을 달고 있었고, 수면 아래 감추었던 적벽 바위 아랫부분은 맨살로 잠겨있던 차가운 물속을 벗어나 봄햇살을 받으며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벌써 햇수로 2년 째 가뭄이었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동복호의 물이 빠지면서 꽁꽁 숨어 있던 적벽의 태고의 신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내 손목을 끌었다. 망향정에서 앞으로 걸어 나아가 호수 경계면 가까이 멈춰 섰다.
“물이 많이 줄어들었구나. 적벽을 품고 있는 동복호의 저수율이 역대 최하점대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구나. 이대로라면 올 유월 중순쯤 물이 고갈 된다니 불안하구나. 지역민들이 제한급수 상황을 피하기 힘들 수도 있고 말이다.”
“앞으로도 비가 오지 않는대요?”
“올 봄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적을 것이라고 예보되었지. 저길 보렴. 이쪽 보산적벽에서 저 앞에 노루목 적벽 쪽으로 물이 빠지면서 모래톱이 드러나 있지? 저기 왼편 창랑천 쪽으로는 하얀 백사장이 마치 운동장처럼 펼쳐져 있잖니? 가뭄 전에는 다 물이 차올라 호수였던 곳이란다.”
가뭄을 겪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실감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비가 오지 않는다면 심각한 불편을 겪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마를 깨웠다.
“여러분 다시 모여보세요. 저 앞에 노루목 적벽을 보니 웅장하지요? 수평으로 발달된 층리 보이죠? 조화롭게 바위를 덮고 있는 바위옷, 이끼 등 식물군들로 인해 그 모양이 삼국지에 등장하는 중국 양자강 적벽과 닮았다 해서 적벽이라 이름 붙였다 합니다. 그럼 여기저기 구경하시면서 자유롭게 20분 정도 자유시간 가지세요.”
할아버지의 손은 따뜻했다. 봄이 와서일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천천히 노루목 적벽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곳까지 걷는 동안 난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상상하고 있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적벽에서 숫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조조의 백만 대군과 싸운다, 조조군의 함선이 줄로 묶여 있다는 걸 알고 배에 불을 지른다, 동남풍이 불어닥친다, 11월의 거센 바람에 조조군의 함선이 걷잡을 수 없이 불에 탄다…
“무슨 생각 하고 있냐?”
할아버지 목소리에 생각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다.
“삼국지 적벽대전요. 조조의 함선이 동남풍에 배들이 불타고 대패하는…”
“허허허, 근사한 상상에 빠져있었는데 할아버지가 방해를 했구나. 실은 할아버지도 불놀이를 상상하고 있었지.”
할아버지는 차분한 눈짓으로 노루목 적벽 꼭대기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실은 여기 이서면 일대가 할아버지 어렸을 때 고향이란다. 80년대 중반 여기에 동복댐이 들어서자 마을이 호수에 잠기게 되어 광주로 떠나 살게 되었어. 네 아빠도 너도 광주에서 낳았고 쭈욱 광주에서만 살았기에 광주가 고향이 되었지. 너한테 처음 말하지만 할아버지는 여기 호수가 고향이란다.”
“할아버지가 가끔 화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세상에 여기 적벽 호수가 고향이시라고요? 물에 잠긴 고향, 어쩐지 슬퍼요.”
“그래 할아버지는 늘 고향생각이 날 때면 남몰래 안타깝고 슬프고 그랬지.”
“참, 아까 불놀이를 상상하셨다 했죠? 무슨 뜻이에요?”
할아버지는 게슴츠레 눈을 뜨신 채 과거의 시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시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저기 노루목 적벽 위에서 낙화놀이가 열렸단다. 4월 초파일, 장정들이 적벽 위에 올라가 짚덩이에 불을 붙이고는 절벽 아래로 뚝 떨어뜨렸어. 활활 타는 불꽃덩이가 물에 출렁출렁 어리는데, 아주 보기드문 장관이었지.”
웬지 불꽃덩이는 섬뜩한 맛이 있으면서도 강렬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그 기억의 공간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으신 모양이었다.
“그 뿐이 아냐. 마을 어른들은 적벽 아래 십리 뱃길을 삿대를 저어 뱃놀이를 즐겼단다. 우리 같은 아이들도 한 번씩 얻어타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 허허허.”
나는 할아버지의 기억을 더 끌어낼 요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특별히 생각나는 친구 있으세요?”
“으흠, 물론 있지. 젤 그리운 친구가 하나 있는데…여자 아이야.”
“예? 여자 아이를 좋아하셨다고요? 할아버지 어려서부터 여자를 밝히셨구나. 히히~”
할아버지 귀밑이 금세 발갛게 달아올랐다.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녀석아, 그게 아니고, 말을 들어 봐.”
나는 그 여자 아이와 할아버지 사이에 어떤 이야깃거리가 숨어있을까 무척 흥분되고 궁금해졌다. 빨리 말씀을 꺼내라는 신호로 눈짓을 연방 보냈다. 뜸을 좀 들인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냈다.
“한약방 딸 옥분이랑 나는 같은 반이었지. 그런데 옥분이 아버지랑 아버지는 등을 돌리고 사셨어. 이웃해 살면서도. 왜 그랬냐면 선거 때문이었어. 군 교육위원 선거에 나란히 출마하였고 서로 승리를 장담하며 억척으로 선거운동을 펼쳤어. 이 할아버지가 2학년 때였어. 너로서는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다.”
“그래서 선거 결과가 어땠는데요?”
“녀석 성질도 급하긴. 옥분이 아버지 한약방께서 너의 증조할아버지를 만나 양보하라고 부추겼지. 선거에 떨어져 살림 망가졌다고 원망하지 말라면서. 한약방이 농사도 많이 짓고 해서 부자였으니 그런 태도로 나올 만 했지만, 너무 한 거지.”
“그 다음은요.”
이야기에 빠진 나는 말문을 재촉했다. 할아버지는 옛 생각에 잠긴 듯 말을 멈추었다. 적벽 위 봄하늘로 두 눈이 가 머물러 있었다. 다시 내게로 눈을 멈추시며 천천히 말을 이으셨다.
“오기로 증조할아버지는 더 억척을 부려 선거운동을 하셨어. 선거날 오후 늦으막에 면사무소에서 개표를 하였는데 보기좋게 승리하신 거지. 2학년이던 내가 학교공부 마치고 면사무소로 달려가보니 면의원들 앞에서 할아버지가 만세를 부르고 계시더구나.”
그 날부터 한약방 댁과 증조할아버지는 옆집에 살면서도 서먹서먹하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약방 딸 옥분이란 분이 왜 할아버지 기억에 남는지 사뭇 더 궁금해졌다.
“선거가 봄에 있었는데, 그 해 여름 비가 많이 내렸어. 여기 적벽 하천이 물이 불었단다. 마침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삼십대 젊으실 때여서 들에 일 하러 가셨고, 할아버지는 창랑천으로 친구 몇과 멱 감으러 갔었어. 모험심이 있어서였는지 얕은 데서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갔어. 그러다 소용돌이 물을 만난 거야. 자맥질을 해대다 정신을 잃었어. 그 뒤로 기억이 없어.”
“어떻게 살아나셨어요?”
나는 잔뜩 긴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친구들이 사람 살려달라 외쳐대자 마침 이웃마을 왕진을 다녀오시던 한약방께서 달려와 나를 건져내셨다는구나. 인공호흡도 시키시고. 그래서 살아난 거지.”
그런 일이 있고부터 한약방 댁과 증조할아버지는 다시없는 좋은 이웃이 되었다고 했다.
“옥분이란 친구는요?”
“응, 옥분이와는 같은 반이고, 또 이웃이니 잘 지낼 수 밖에 없잖겠냐? 더구나 옥분이 아버지 한약방께서 나를 구해주셨으니 말이다.”
“할아버지 구해주신 그 댁 딸이기 때문에 늘 기억이 난단 말씀이네요?”
“그, 그래. 또 다른 기억이 있긴 한데, 너 한테…”
“뭘 숨기려고 그러세요. 까짓거 다 공개하란 말예요.”
“그래 까짓거, 말 하마.”
할아버지로부터 마을 여자 친구 옥분이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괜한 걸 얘기했나 싶은 표정이었다. 다소 어색한 낯빛으로 빤히 쳐다보셨다. 나는 빙그시 웃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옥분 여학생을 마음에 담고 기억하고 있는 까닭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비밀로 하려다가 짤막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비록 지금 고희를 넘기셨지만 어린 날 가슴에 담았던 적벽의 여학생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권리는 충분히 인정 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3학년이 된 어린 소년은 적벽을 타고 흐르는 창랑천을 참 좋아했다. 기회만 되면 적벽을 적시며 흐르는 하천으로 나가 놀았다. 천성은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그 때 3학년 소년은 부끄럼을 잘 타 여학생을 만나면 얼굴이 사과인 양 빨개졌다고 한다. 반장을 지냈지만 여학생 앞에 나서기를 그렇게도 꺼려했다는 소년이었다. 2학년 때 적벽 아래 하천에서 고비를 넘긴 뒤로는 깊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얕은 물에서 멱을 감거나 모래톱에서 모래성이나 두꺼비집을 쌓으며 놀곤 했다.
여름방학을 하루 앞둔 날 학교를 마친 소년 일행 몇은 매미소리를 들으며 창랑천으로 나갔다. 몇은 수영을 하고 몇은 모래톱에서 두꺼비집을 짓고 있었다. 그 때 저만큼 소년의 눈에 여학생 몇몇이 들어왔다. 남학생을 발견한 그들은 산길로 접어들어 창랑천 상류쪽으로 걸어갔다. 그 중에 옥분이도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자주색 저고리는 옥분이가 분명했다. 소년은 목을 빼어 어디만큼 여학생들이 자리를 잡는지 살폈다. 여학생들은 장어가 잡히는 장어목에 멈추었다. 둘레를 휘휘 확인하고는 풀섶에 옷을 벗기 시작했다. 소년은 두근거림으로 요강바위 뒤쪽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바위에 가려있는 소년을 저쪽에서 보기란 힘들었다. 요강바위는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앞쪽이 바늘구멍사진기처럼 들여다보였다. 소년이 좋아한 옥분이가 미끄러지듯 물속으로 들어갔다. 옥분이는 갓 피어난 복사꽃처럼 화사하고 고왔다. 첨벙거리는 물속의 옥분이는 인어처럼 깜찍하고 반짝였다. 소년은 꼼짝않고 바위 뒤에 서 있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옥분이도 지금 바위 뒤에 숨어있는 자기를 보았을 거라고. 다만 모른 체 하고 있을 뿐이라고.
갑자기 친구들이 찾느라 소리쳤다. 그 때서야 소년은 혼비백산 모래톱으로 걸음을 옮겼다.
소년도 옥분도 어느덧 이십대 후반 성인이 되었다. 우연인지 둘다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설이 종종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렸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그 무렵 고향 마을은 지역 식수원인 동복댐 공사로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수몰된 마을을 뒤로 소년의 가족은 광주로, 옥분이네 한약방 댁은 경기도 수원으로 떠났다. 처음 한동안 종종 인편으로 서로 소식을 접하였지만 그 후 아예 소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은 흐르는 강물이란다. 추억도 그리움도, 한 때 품었던 좋아하는 감정도, 그리고 슬픔이나 아픔도, 그 모든 경험들도 물결치며 떠오르며 갈앉기를 거듭하며 주어진 시간만큼 흘러가는 거지. 크게 보면 멈춤이 없는 시간의 등을 타고 끝없이 모두가 흐르고 있는 강물인 셈이지. 할머니가 되어 있을 옥분이도 흐르고, 이 할아버지도 흐르고…그리고 적벽의 호수가 말라가고 있지만 비는 반드시 오고 말거란다. 흐르는 삶의 강물이 그칠 일은 없단다.”
할아버지 귀밑 머리가 봄바람에 살풋 나부꼈다. 노루목 태고적 적벽위를 비껴 흰구름 두어 장이 느릿느릿 흐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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