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황학루登黃鶴樓
최호崔顥
上四句는 敍樓名之由요 下四句는 寓感慨之情이라 〇 按黃鶴樓는 在鄂州子城西北隅黃鶴山上이라 方輿勝覽에 此樓因山得名이라하니 蓋自南朝已著矣라 南齊志에 仙人子安이 乘黃鶴過此라하니라
위의 네 句는 黃鶴樓라는 이름의 유래를 서술한 것이요, 아래 네 句는 감개하는 情을 붙인 것이다. 〇 살펴보건대 황학루는 鄂州(악주)의 子城 서북쪽 모퉁이인 황학산 위에 있다. 《方輿勝覽》에 “이 누대는 산으로 인하여 황학루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였으니, 南朝時代부터 이미 이름이 알려졌다.《南齊志》에 “仙人 子安이 황학을 타고 이곳을 지나갔다.” 하였다.
옛사람 이미 黃鶴 타고 떠났으니 昔人已乘黃鶴去하니
이곳에는 부질없이 黃鶴樓만 남아 있네. 此地空餘黃鶴樓라
黃鶴이 한 번 떠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黃鶴一去不復返하니
흰구름만 천년 동안 부질없이 흘러가네. 白雲千載空悠悠라
맑은 냇물은 漢陽의 나무들 역력하고 晴川歷歷漢陽樹요
꽃다운 풀은 鸚鵡洲에 무성하게 자라누나. 芳草萋萋鸚鵡洲라
해 저무는데 고향은 어느 곳인가. 日暮鄕關何處是오
煙波의 강 위는 사람 시름겹게 하네. 煙波江上使人愁라
최호崔顥(704년 추정 ~ 754년) : 당나라 변주汴州 사람. 현종玄宗 개원開元 때 진사가 되었다. 천보天寶 때 태복시승太僕寺丞과 사훈원외랑司勛員外郞을 지냈다. 일찍이 각지를 떠돌아 넓은 지역에 자취를 남겼다. 시를 잘 지었다. 특히 악부시를 잘 지었고, 민간의 가사를 즐겨 채용했다. 초기에는 부염浮艶한 시풍을 보였다가 나중에 변새邊塞를 다니면서 시풍도 웅혼雄渾하게 바뀌었다. 황학루黃鶴樓는 당나라 7언율시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밖에 장간행長干行과 증왕위고贈王尉古, 증양주장도독贈梁州張都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