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1945년 12월 소련 수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영국·소련 3국의 외상회의(外相會議)로, 한국 문제를 비롯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여러 지역의 문제점에 대하여 협의하였다.
포츠담회담(1945. 7)에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제반 문제 처리를 위해 설립하기로 결정되었다. 한국에서는 ‘모스크바 3상회의'(모스크바 3국 외무장관회의)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고, 한국을 신탁통치(信託統治)한다고 전해져 반탁과 찬탁운동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한국 신탁통치를 결정한 것이 아니었고, 다만 이에 대하여 다음에 협의한다고 협정문 1항에서 언급하였다.
3국(미국, 영국, 소련)의 외상이사회는 1945년 12월 16일에서 25일까지 모스크바에서 회의를 열고, 27일 회의결과를 발표하였다. 이를 ‘모스크바협정’(Moskva Agreement)이라고 하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한국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기간의 신탁통치에 관하여 협의한다.
② 대일정책(對日政策)의 최고결의기관으로 11개국으로 된 극동위원회를 설치한다.
③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아니하고 통일을 촉진한다.
④ 헝가리 ·이탈리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구추축국(舊樞軸國)과의 강화조약을 준비한다.
⑤루마니아 정부에 자유주의적 정당의 대표를 참가시키고, 조속히 자유선거를 실시한다.
⑥ 불가리아 정부에 민주적 인사를 참가시킨다.
⑦ 원자력의 국제관리를 위한 원자력관리위원회를 국제연합 안에 설치한다.
한국에 관하여 협의한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을 완전한 독립국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둘째, 한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미국과 소련의 양군사령부 대표로서 미-소공동위원회를 2주일 이내에 구성한다. 셋째, 한국의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미국, 소련, 영국, 중국 4개국에 의한 최고 5년간의 신탁통치안을 협의한다.

삼상회의에서 미국과 소련간의 한국신탁통치에 대한 의견의 차이가 있었고, 결국 5년간으로 조정되었다. 국내의 언론에서 삼상회의 결과에 대한 소식이 보도되었고, 이는 결국 이념 계열에 따라 반탁운동과 찬탁운동이 동시에 전개되어 내부 혼란을 야기시키는 하나의 역사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