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성적보다 호기심·열정 키워야
보행 돕는 '옷처럼 입는' 로봇 연구
‘철완(鐵腕) 아톰’에 빠진 소년이 있었다. ‘밀림의 왕자 레오’, ‘베르사유의 장미’, ‘사파이어 왕자’ 같은 만화는 안중에도 없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가르는 구닥다리 마법사가 아니라 단숨에 우주로 날아가 미지를 개척하는 ‘원자(原子)’ 로봇에 소년은 한껏 매료됐다.
ETRI 융합기술연구위원인 로봇과학자 조영조(47) 박사는 아톰에 빠져 허우적대는 소년시절을 보냈다. “눈을 떠라! 아톰!”하며 코주부 유식한 박사가 아톰을 깨우는 첫 장면은 오래도록 잊을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아톰의 상상력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어느덧 로봇과학자가 돼 있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열정’입니다. 열정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크건 작건 자신의 목표를 분명하게 가질 때 생겨나는 것이죠. 따라서 꿈이 있고 없고 가 공부에 가장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로봇 연구의 잠재력은 무궁무진
조영조 박사는 1997년 동료들과 함께 국내 최초 인간형 로봇 ‘센토’를 만든 뒤 유비쿼터스 로봇의 전형이라 불리는 ‘웨버’ 로봇 시리즈를 만들기 시작했다. 웨버는 시각과 음성에 의한 인식, 음성대화, 실내 자율주행이 기능한 로봇이다.
현재 그는 지체 장애인의 보행을 보조해주는, ‘옷처럼 입는’ 로봇을 연구 중이다. 만약 ‘입는’ 로봇이 현실화되면 평생 앉아서 지내던 장애인들이 두 발로 벌떡 서서 걷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주 흥미로운 연구입니다. 사람의 보행의지를 부착형 생체전극과 힘측정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추출, 로봇골격에 전달하는 기술이 필요한 분야에요. 장애인들이 옷을 입듯 간단하게 로봇을 입고 걸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지금까지 많은 로봇을 만들었다. 오피스 도우미 로봇인 ‘로미’, 감성인식 표현이 가능한 코알라 모양의 ‘코비’, 다양한 얼굴 표정이 가능한 ‘포미’ 등을 ETRI 연구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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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조 박사(가운데)가 로봇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로봇공학은 기계공학, 전산학,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에다 뇌의학, 심리학 같은 인지과학까지 다양한 분야가 접목돼 있다. 조 박사는 “서로 다른 과학분야가 접목돼 로봇이 만들어지는 만큼 수학과 과학이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수학과 과학 성적이 낮다고 꿈마저 접을 필요는 없다. 그는 “호기심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고 했다.
로봇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행성을 두 조각 낼 만큼의 힘을 가진 ‘로봇태권V’가 탄생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발바닥에 핵융합 에너지를 단 추진체로 단숨에 달을 건너는 로봇은 여전히 현재 가능태다.
조 박사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공상과학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했다. “아시모프가 쓴 ‘아이 로봇’이나 로봇 지능분야의 거두인 MIT 로드니브룩스 교수가 쓴 ‘로봇만들기’ 같은 책은 미래의 로봇과학자들에게 훌륭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참고서 대신 원리에 대한 공부
조 박사는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옛날 서울대 문리대 자리인 동숭동이 고향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조용조와 동숭동이 앞뒤로 읽어서 똑같은 글자여서, 시작과 끝이 한결같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고 귀띔했다. 4살 때 성북동으로 이사해 13살까지 살았다.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둘기’에서 보듯 당시 성북동은 서울이란 거대 문명과 조금은 동떨어진 곳이었다.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산기슭 냇가에 나가 주먹만한 민물가재를 잡았어요. 병풍처럼 둘러친 숲과 큰 산이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지요. 또 제가 태어난 곳이 ‘서울대 문리대’라는 잠재의식이 공부에 대한 내적 동기를 만들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아버지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셔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초등시절에는 신문을 돌렸고 중학교에 다닐 때는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마음 속으론 하늘을 나는 아톰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던 셈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면 가난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참고서 한 권 사볼 형편이 못됐다. 한번은 누나가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성문종합영어를 샀는데 ‘신기하게’ 생각한 나머지 다른 수업시간에 펼쳐 보다가 들켜 빼앗겼다. 그 뒤 참고서를 산 일이 없다. 학교수업을 통해 배운 원리를 중심으로 예습, 복습한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학창시절 반에서는 5등 안에 들었지만 1등을 한 기억은 없어요. 친구들처럼 학원에 다니거나 문제집을 여러 권 사볼 여유도 없었지요. 교과서를 토대로 원리를 꼼꼼히 익혀 적용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수학이나 과학·물리 과목의 경우 친구들은 약간만 문제를 변형·응용해도 어려워했지만 저는 원리를 중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해 자신이 있었어요.”
1979년 서울대에 입학한 조 박사는 2학년 때 ‘제어계측공학과’로 전공을 택해 어린 시절, 아톰을 동경하던 꿈을 현실화시켰다. 이후 그는 카이스트로 진학, 전기·전자공학과 석사와 박사를 받았고 KIST 지능제어연구센터 선임연구원, ETRI 지능형로봇연구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가 신성장동력 지능형로봇산업 기획위원에서 지능로봇표준포럼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꿈을 믿으세요
조 박사는 공부를 “끊임없는 자기혁신의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은 누구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쌓게 마련이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도전하는 일을 기피하고 두려워한다면, 학창시절 공부하는 일을 포기한다면 성장이 정체될 수밖에 없어요.”
그저 단단한 고철 덩어리가 저벅저벅 걸어 다니는 로봇으로 변화하기까지 그 역시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조 박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말한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면 하늘이 반드시 성취시켜 준다는 믿음”이 그를 로봇과학자로 만들었다.
“꿈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 꿈을 믿고 노력하면 누구나 이룰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