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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5 16:55 스탈린 치하 「수백만명 대숙청」 비밀경찰 4만명 명단 공개돼 잊혀졌던 대숙청 아픈 역사 러시아인들에게 상기 옛 KGB 광장에서 대숙청 희생자 추모 러시아 주민들이 지난 10월 29일 옛 KGB 본부가 위치한 모스크바 루비얀카 광장에서 소련 시대 정치적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군림하던 1930년대 소련은 〈대숙청〉의 시대였다. 〈대공포〉의 시기였다. 30여 년간의 스탈린 통치기간 수백만명이 투옥, 처형됐으나 러시아 현대사에서 스탈린 암흑시대의 역사는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었다. 대숙청의 역사적 사실은 교과서에서 사라졌고, 공개적으로 거론도 거의 되지 않았다. 현 러시아 지도부도 역사적 비극이 영구히 은폐되길 희망해왔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한 인권단체가 추적 끝에 스탈린 대숙청을 실제 집행한 비밀경찰 4만명의 신상을 공개하고 나섰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1월 24일 전했다. 이들은 〈대숙청〉이 절정에 달한 1935~39년 공산당 고위 간부와 일반 주민 등 약 70만명을 처형한 당시 비밀경찰(NKVD) 요원들이다. 인권단체 〈메모리알〉은 NKVD 문서보관소에서 자료를 찾아 당시 NKVD 요원들의 신상을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소련은 1953년 스탈린 사망후에도 대숙청 사실을 비밀에 부쳐왔으나, 소련 붕괴후 희생자 유족들이 친척들의 행방에 관심을 가지면서 〈메모리알〉을 비롯한 많은 인권단체가 희생자 규명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NKVD와 그 후신인 KGB 관련문서들이 전면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었다. 〈대학살〉에 대한 역사적 참회 과정도 없었다. KGB 출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통치하에서 오히려 스탈린은 「재평가」를 거쳐 「위대한 지도자」로 복권됐고, 〈메모리알〉 등 인권단체는 「외국 첩자」로 지목됐다. 국제적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러시아 프로그램 책임자 타냐 록시나는 『러시아에서 지금까지 제대로된 스탈린 청산작업이 이뤄진 적이 없으며, 따라서 현대 러시아 사회에서 대숙청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리알〉이 엄청나게 중요한 작업을 해왔으며, 이제 수천명의 희생자(犧牲者)를 밝혀내 추모하고 아울러 도살자(屠殺者)들을 가려냈다』고 지적했다. 〈메모리알〉이 비밀경찰 문서를 공개하기 수일 전 시베리아 톰스크의 한 주민은 「지난 1938년 일본첩자로 몰려 처형당한 자신의 증조부를 살해한 조력자들을 밝혀냈다」고 공표했다. 데니스 카라고딘이라는 이 주민은 「당시 자신의 증조부를 처형한 일원의 증손녀가 자신에게 사과의 편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카라고딘은 5년간의 노력 끝에 비밀경찰 문서담당자들을 설득해 관련문서를 입수했다면서, 「이 문서가 1930년대 NKVD 요원들의 감춰진 비밀을 규명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메모리알〉 측은 공개된 문서들이 사람들이 친척들의 행방을 파악하는데 도움주는 한편, 러시아 지도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메모리알〉의 라친스키는 『우리 정부는 소련이 범죄국가였음을 인정하길 꺼리고 있다. 이제 범죄자들의 이름과 이들의 명령을 집행한 자들의 이름 역시 알려질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러시아 대통령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인테르팍스 통신에 『미묘한 사안인 만큼 논평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yj3789@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161125116800009?input=1179m ● Joseph Stalin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3s0731b ● NKVD (Narodnyi Komissariat Vnutrennikh Del) (=People's Commissariat for Internal Affairs) 내무인민위원회. 비밀경찰(1934~43), 국가경찰(1943~46), MVD의 구칭 https://ko.wikipedia.org/wiki/%EB%82%B4%EB%AC%B4%EC%9D%B8%EB%AF%BC%EC%9C%84%EC%9B%90%ED%9A%8C ● NKVD https://namu.wiki/w/NKVD ● KGB (Committee for State Security 국가보안위원회)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1k2529a ● 소련/러시아 정보기관 편집자주 「사실 앞에 겸손한 정통 민영 뉴스통신」 뉴스1이 뉴욕타임스(NYT)와 함께 펴내는 〈뉴욕타임스 터닝포인트 2019〉가 발간됐다. 〈터닝포인트〉는 전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별 「전환점」을 짚어 독자 스스로 미래를 판단하고 대비할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지침서다. 올해 주제는 〈화합의 시대로 가는 항해: 가치와 질서의 재편성〉이다. 격변하고 있는 전세계 질서 속에서 어떤 가치가 중심이 될 것인지를 가늠하고 준비하는데 〈터닝 포인트〉가 도움이 될것으로 기대한다.
뉴스1 2019/01/02 12:00 러시아의 수정주의 역사 © 뉴욕타임스 © 뉴욕타임스 알리사 가니예바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수필가다. 《산과 벽》(The Mountain and the Wall), 《신랑 신부》(Bride and Groom)의 저자다 [NYT 터닝포인트] 2018년 2월 폴란드 정부가 나치의 전쟁범죄에 자국이 관여했다고 비난하면 징역형을 가할 수 있는 법을 제정했다가 국제적인 항의를 받은 후 처벌규정을 완화하다. 나의 동포들은 종종 「러시아가 예측 불가능한 과거를 지닌 국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는 종종 권력을 잡고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의제(어젠다)와 무심한 변덕에 부합하고자 다시 기록되고 있다. 그같은 사고방식은 광적인 히스테리가 국가를 장악했던 1945년 나치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리를 기념하는 연례행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거리에서는 군대의 행진이 펼쳐지고, 기념식이 진행되고, 콘서트가 열린다. 유치원생들은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관리들은 추모의 상징인 성(聖)조지의 검은색과 주황색의 줄무늬 리본을 달아맨다. 러시아인들은 이 모든것을 「勝利의 광란(狂瀾)」이라고 부른다. 소련의 업적은 맨앞 한가운데에 내세워진다. 전쟁 초기 이오시프 스탈린과 아돌프 히틀러 사이의 군사협력이나 일본에 대한 미국의 승리 등과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전쟁기록들은 삭제된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의 年代記조차도 수정의 대상이다. 나머지 세계에서는 전쟁 발발시기가 1939.9.1일이지만, 러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의미하는 소위 〈대조국 전쟁〉(Great Patriotic War)이 히틀러의 소련에 대한 공격개시와 함께 시작된다. 또한 종전 시기는 일본의 공식 항복보다 먼저 있었던 나치 독일의 항복일 1945.5.9.일이다. 전쟁중 소련 업적을 강조하는 것은 냉전시대의 패배라는 고통스러운 굴욕을 겪은 후 정부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그들이 가장 열망하는것을 줄수있는 방법이다. 즉, 국가에 대한 자부심인 것이다. 여론조사는 많은 러시아인들에게 역사가 자부심의 주요 원천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소련의 戰勝에 대한 초점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2013년 親유럽 성향의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일으킨 시위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계는 유럽연합(EU) 친화적 세력으로 재편됐다. 그이후 러시아 선전기구는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변화를 서방이 주도한 「新나치 쿠데타」라는 특징으로 규정하는 작업에 열중해 왔다. 국영TV를 통해 뉴스를 시청하는 러시아인들은 슬라브인 이웃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파시스트 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살고있는 수천명의 러시아인들을 구하러 반드시 가야만 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조상들에 대한 칭찬은 옛소련 체제를 부분적으로 회생시켰다. 무장한 스탈린 초상화가 군대행진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때로는 거리의 명칭에 그의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수정주의가 단지 사회적 경향인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법이기도 하다. 나치 독일 범죄와 소련 범죄를 비교하는것은 금지돼 있다. 가령 2014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명한 나치즘 부활금지법은 「고의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의 활동에 대해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행위」와 「러시아의 군사적 상징을 폄훼하는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한다. 심지어 전쟁 중 나치와 소련이 어쨌든 협력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도 벌금을 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법은 2018년 2월 안드레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서명한 〈기억법〉(memory law) 개정안을 연상시킨다(이 법은 이후 대중적 반발이 일어난후 수정됐다). 개정안은 제3제국(나치정권)이 폴란드 영토에 저지른 범죄에 폴란드가 공모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두다 정권이 이 법의 모호성을 악용해 정적을 처벌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국내외의 압력으로 인해 폴란드 국회의원들은 이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러시아에서의 전망은 더 안좋다. 푸틴 대통령의 반反나치법이 이미 반정부 운동가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러시아 야당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얼굴을 녹색 살균소독액 염료로 가격한 후, 그의 지지자들중 1명은 녹색 페인트로 뒤덮인 볼고그라드의 제2차 세계대전 기념물에 대한 포토샵 이미지를 소셜미디어(SNS)에 공유했다. 이는 러시아 군대의 武功에 대한 상징물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를 가택연금에 처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러시아의 수정주의 실험에서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부분을 그늘로 밀어넣는다는 점이다. 북부 러시아 숲속에 있는 우울한 곳인 산다르모크가 특히 그러한 사례다. 1937년 스탈린 숙청으로 인해 수백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망했다. 1990년대에 그 매장지가 발견된 이후, 사람들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그곳에 모였다. 2018년 여름에는 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곳에는 무대도 없었고, 단지 임시 연단과 확성기만 있었다. 현지 공무원은 단 1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비극의 현장」을 발견한 역사학자 유리 드미트리예프는 자신이 입양한 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수감됐다. 드미트리예프 지지자들은 이 사건이 소련의 범죄를 조명한 작품 때문에 그를 처벌하기 위한 조작극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연설을 듣고있을때 근처에 있던 전통의상 정복을 입은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기념행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헛소리야? 이런 파시즘은 집어치워!』라고 말이다. 그런 다음 그들은 행진을 했다. 몇주후 〈러시아 군대 역사협회〉는 그곳에서 발굴을 시작했다. 2012년 정부가 설립한 이 단체는 그곳에 묻힌 시신들 중 최소한 일부가 겨울전쟁(Winter War) 당시 핀란드군에 의해 사살된 붉은군대 소속 병사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직됐다. 러시아는 아직 역사의 어두운 면을 인정할 준비가 돼있지 않은듯하다. 과거를 책임지기보다는 단지 과거를 계속해서 상기시킬 뿐이다. 이 때문에 미래로 탈출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다. /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acenes@news1.kr https://www.news1.kr/articles/?3513605
2020/07/23 06:01 「스탈린 폭정 고발」 러시아 역사학자, 양녀 성추행 죄로 중형 『어린 딸이 야뇨증 앓아 속옷 확인』 피고인 주장 수용안돼 유명 역사가로 스탈린 폭정 폭로해와 … 『인권운동 탄압』 비판도 법정 나서는 러시아 역사학자 유리 드미트리예프가 7월 22일(현지시간) 선고 공판 뒤 경찰에 이끌려 법정을 나서고 있다 (Reuter) 유리 드미트리예프 러시아에서 스탈린 시절 폭정을 폭로하는 인권운동가로 활동해온 역사학자가 입양한 미성년(未成年) 양녀(養女)를 성추행한 혐의로 3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일각에선 사법 당국의 조치를 해당 역사학자의 인권 운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북서부 카렐리야 공화국(Rep. of Karelia) 수도 페트로자봇스크(Petrozavodsk) 市법원은 7월 22일(현지시간) 역사학자 유리 드미트리예프(64)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그에게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옛소련 시절 정치적 탄압을 연구하는 유명 인권운동단체 〈메모리알〉(기억) 카렐리야 지부장으로 활동해왔다. 법원은 미성년 양녀를 성추행한 혐의에 대해 그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드미트리예프는 입양한 양녀가 8세가 됐을 당시 딸의 속옷에 여러 차례 손을 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당시 양녀가 야뇨증(夜尿症)을 앓고있어 속옷이 젖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다만 검찰이 함께 제기했던 양녀를 이용한 포르노물 제작과 무기 불법보관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변호인은 중형 선고에도 불구하고 드미트리예프가 그동안 구치소에서 보낸 기간 등을 고려할때 오는 11월에는 출소할수 있을것으로 예상했다. 드미트리예프는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폭정(暴政)을 고발하는 연구자로 유명하다. 1930~40년대 정치범 희생자들에 대한 책을 펴냈고, 지난 1997년에는 스탈린 대숙청기에 9,000여 명이 총살(銃殺)돼 묻힌 집단매장지를 카렐리야 공화국에서 발견해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드미트리예프는 입양한 어린 딸의 나체 사진을 찍어 아동 포르노물을 제작하려 한 혐의로 지난 2016년 12월 처음 구속됐다. 검찰은 드미트리예프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가 집에 총기 부품을 불법으로 보관해온 혐의도 추가해 구속연장을 신청하는 등 기소에 열을 냈다. 드미트리예프는 수사과정에서 저체중증을 앓는 딸의 성장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정기적으로 사진을 찍었다고 해명했다. 또 딸이 11살이 된 이후에는 촬영하지 않았고, 찍은 사진은 자기 컴퓨터에만 보관해 유포한 적도 없다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페트로자봇스크 市법원은 2018년 4월 드미트리예프의 아동 포르노물 제작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고, 무기 불법보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해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고, 카렐리야 공화국 대법원은 2018년 6월 상고심 공판에서 재심을 명령하면서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이후 수사당국은 드미트리예프를 미성년 양녀 성추행 혐의로 다시 체포해 구속 수사를 진행해 왔다. 일각에선 사법당국이 정치범 희생자들에 대한 드미트리예프 연구를 방해하기 위해 근거없는 성추행 혐의를 씌워 그를 탄압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 https://www.yna.co.kr/view/AKR20200723000600080?section=international/all&site=hot_news_view ● 카렐리아 공화국(Rep. of Karelia) 국기(國旗)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1k0600a ● 페트로자봇스크(Petrozavodsk)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23p237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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