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암 안정복은 같은 마을에 살던 조씨 부인의 ‘열녀정문(烈女呈文)’를 썼다. 그것은 국가 공인의 열녀‘증’을 따내기 위한 것인데, 기획은 그 집안사람들이 하고 문장으로 이름난 순암이 붓을 잡았다. 『순암집』에 실려 있는 이 글에 유독 “남을 대신하여 지은 것임[代人作]”이라는 부제가 있어, 붓을 잡게 된 사정을 짐작할 수가 있다. 같은 마을에 산다지만 남의 집 부인의 일을 직접 볼 수는 없는 일, 그녀의 열행(烈行)을 불러주는 대로 작성한 것이다. 그 일부를 보자. 광주부 경안면에 살던 고 장령 정광운은 병자년 섣달 7일에 죽었는데, 그의 아내 배천 조씨가 초상 중에 자결하려 했으나 옆 사람이 여러 번 구출해서 살아났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죽지 못했지만 3년 상중(喪中)에 어찌 죽지 못하겠는가’ 했습니다. 그리고 3년 내내 죽으로 연명하며 빗질은커녕 세수도 않고, 옷에는 이가 득실거려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남편의 초상 때에 시체를 덮었던 이불과 시체 밑에 깔았던 자리를 항상 덮고 깔면서 말하기를, ‘죽거든 반드시 이것으로 나를 염(斂)하라’ 했습니다. 뭇 자제들이 울면서 평상대로 돌아오기를 권했으나 끝내 듣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공인된 열녀, 그 남편은 어떤 사람? 경안 마을의 기획으로 이루어진 조씨의 열행은 “지금처럼 쇠미한 세상에서 보기 드문 행실”이자 “그 열렬한 기상과 꿋꿋한 성품은 아무나 좇을 바가 아니”었다. 조씨를 기록한 문서는 광주부에 제출되었고, 왕에게 진달되어 정려의 특전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조씨의 열행은 왕에게 올라가지도 못하고 관부(官府)에서 잘려버렸다. 대작을 맡았던 안정복은 “사론(士論)이 떼 지어 일어나 관부에 알렸으나, 관부에 덕을 아는 사람이 없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순암은 세도(世道)가 땅에 떨어지고 윤리가 무너진 세상을 탄식하였다.
몇 번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제출한 끝에 조씨 부인은 결국 국가가 공인하는 열녀가 되었다. 그런데 8명의 자녀에 손자까지 둔 54세의 조씨 부인이 이 괴기스러운 죽음을 선택한 것은 왜일까. 이런 죽음을 찬양하는 메카니즘에 메스를 대야겠지만 무엇보다 그 남편 정광운은 어떤 인물인가 하는 것이다. 한목숨 기꺼이 바쳐 남편에 대한 신의와 정절을 다한 부인 조씨, 그녀의 남편이라면 특별한 뭔가가 있을 법하다. 신의와 정절의 진정성이란 상호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열녀의 남편 정광운은 1730년(영조 6)에 정시(庭試)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류(士類)의 촉망을 받으며 관직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사론(士論)은 좋지가 않았다. 실록에 의하면, 지평의 벼슬에 있던 정광운은 노는 것이 음란하여 마을의 여자 중에 자색이 있으면 돈으로 탈취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세상이 다 그를 비루하게 여기고 동료 벼슬아치들은 그를 수치스럽게 여겨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꺼려했다. 조선시대 남성들에게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던 성(性)이지만 수준 없이 ‘노는 남자’를 가려내는 시스템이 있었던 듯하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는, 절제되고 고결한 군자야말로 선비의 이상적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풍류가 지저분한’ 조씨의 남편 정공(鄭公)은 결국 양녀(良女)를 겁탈한 죄로 파직되었다. 그는 장원 급제를 하고도 동료들에게 수치감을 주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그 아내의 열행을 보는 세상의 눈은 어땠을까. 순암은 조씨의 열녀 신청이 기각된 것을 도덕을 모르는 자들이 심사를 맡았기 때문이라 하지만, 광주부의 관리들에게도 눈과 귀가 있을 터, ‘음란 남편’에 ‘정절 부인’은 저자거리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음란 남편’에 ‘정절 부인’이라니 같은 마을의 20년 지기 안정복은 정공(鄭公)의 행장에서 “너무 똑똑하다보니 시론(時論)의 시기를 받아 출세 길이 순조롭지 못했다”고 하였고, “걸핏하면 남의 모함을 받았지만 그 때마다 다시 일어났다”고 썼다. 순암의 말처럼, 정공이 관직에 있을 때 남의 모함을 받았을 수는 있다. 같은 재료를 갖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이해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 여성을 성폭행한 죄로 관직을 삭탈 당했다는 사실이다.
2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사회도 남성들의 성윤리가 도마 위에 오르곤 한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유력인사들의 ‘추태’가 만천하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정계나 재계의 ‘어른’ 자리에 있으면서 청년 노동자를 성적으로 희롱한 것도 모자라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통에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더 높이고 있다. 법적 조치는 차치하고라도,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소셜네트워크를 타고 가족까지도 조롱당하는 것을 보며 그 어떤 출세보다 성윤리 의식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해 하는지 몰랐다’거나‘손녀 같아 격려하느라’는 식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늘 그래왔는데 재수가 없어 들킨 것일 테니까. ‘성갑질’ 논란의 중심에 선 소위 지도층 인사들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은 무엇으로 갚을래나.
우리 사회는 조씨 부인과 같은 열녀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