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년차 현역 개그맨 전유성 선생님이 오랜만에 낸 신간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의 책을 펼치면 저자가 통상 사인해 주는 첫 페이지에 전선생님의 필체로 ‘심심 하십니까?’ 하는 글이 씌어져 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나는 어떠한지? 책을 받아들고 ‘심심하다’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의 사는 모양은 저마다 다르다. 년 말에 누군가는 심심할 겨를 없이 송년회다, 신년회 준비다, 해서 바쁠 테고 누군가는 아무도 만나는 이 없이 방에서 TV만 종일 보고 지내기도 할 것이다. 어찌하든 사람들은 무언가를 한다.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탄 적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승강장을 보니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서 있는데 한결같이 휴대폰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아이도 어른도 할 것 없이 단 한사람 빠지지 않고 고개를 15도쯤 꺾고 휴대폰만을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은 사이보그들이 사는 세상 같았다. 사람들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은 바빴다.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의 에필로그에 이런 글이 있다. 일찍이 청도를 거쳐 지금 남원 인월면으로 이사 온 전선생에게 사람들은 “심심하지 않아요?” 묻는단다. 대답 대신 다시 되물으면 자기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들 하는데 ‘바쁜 것이 꼭 좋은 것일까? 심심하니까 주위도 돌아보고 하늘도 쳐다보고 공상하고 구라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선생은 심심했던 시간들을 보낸 기록으로 잡담 같은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내가 15년째 교무처장을 하고 있는 지리산문화예술학교에도 3년 전 입학원서를 내고 들어오셨다. 책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제목은 <산야초반 자기소개>이다. - 지리산문화예술학교 ‘산야초’반에 입학금을 납부하고 입학식 기다렸다. 지리산은 사발팔방 온 동네가 풀인데 이름이라도 알아야 풀한데 인사를 하든 말든 할텐데! “나 전유성이요. 댁은 누구슈?” “나 당귀요. 옆에 있는 저 놈은 더덕이요.” - 이런 식의 글이 122편 수록된 책은 웃기기도 하고 그립게 하기도 하고 머릿속을 툭 쳐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글이 내게 많은 생각을 주었지만 그 중에 <전유성의 사진 실패전>을 거듭 읽었다. - 그때 내 나이 오십이었다. 오십 살쯤 먹었으면 한번쯤은 실패한 건 실패했다고 실토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반백 년 살면서 정직하게 한 번쯤은 실패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이 나라가 좀 더 좋은 나라가 되리라 믿는다. - 는 글이다. 이 칼럼을 쓰는 사이 배우 이선균이 자신의 차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속보를 본다. 최근 마약 관련한 일로 수사를 받은 그는 자신과 관련한 뉴스 기사만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사랑으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사람들의 비난이 가장 두려웠겠지, 하지만 조금 더 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들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 지구에 처음 오지 않았는가! 인생에서 중년을 넘겨가고 있는 선생도 박자 못 맞추면 박치, 음정 못 맞추면 음치, 길눈 어두운 사람은 길치, 자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그냥 막살아온 것 같다며 ‘삶치’라고 하는데 이제 반백 살 즈음에서 무슨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삶은 솔직히 아무 결론 없는 과정일 뿐이지 않는가! 우리는 대부분 심심한 걸 못 견디지만 더 많이 심심해져야 한다. 그래야 글이나 영상에 길들여진 눈을 쉬게 하고 계산에 익숙한 머릿속을 맑게 할 수 있다. 오는 새해 1월13일(토) 오후3시에 그리하여 전유성 선생을 모시고 작은 북콘서트(미니사인회)를 해보려 한다. 나의 공간 ‘예술곳간몽유’에서 우리 ‘삶치’ 전선생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날, 선생은 담담하게 말하고 우리는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보는 건 어떨까? 정말 좋은 세상을 원한다면 세상 보고 좋아지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그리고 재밌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