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 목걸이의 추억
며칠 전 내린 비로 산야는 너무나 선명하게 깨끗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연한 초록색에서 진한 초록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산 중턱을 거닐다 보니 감나무가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전에 감 과수원을 한 듯 많은 감나무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수원을 하지 않은 듯 감나무가 전혀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 방치되어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비록 관리를 제대로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가지마다 감꽃이 맺혀 있었다. 머지않아 감꽃이 활짝 피고, 감꽃이 활짝 피면 꿀을 따기 위하여 벌떼들이 몰려오겠지.
감꽃을 보니 어릴 적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생각이 난다. 먹을 것이 귀했던 과거에는 군것질거리도 귀했던 시골 어린이들에게는 이 감꽃도 참 귀하고 소중하고 그리고 감사한 군것질거리였다. 감꽃이 떨어지면 동네 어린이들이 감나무 밑에 옹기 조기 모여 감꽃을 주워서 집에서 가지고 온 조그마한 소쿠리에 담거나 주위 풀밭에서 풀 줄기를 뽑아서 끼우기도 하는 등 부지런히 움직인다. 강아지풀 줄기는 감꽃을 주워서 끼우기는 안성맞춤이었다. 동네 어린이들이 모여 감꽃을 주우면 감나무 주인집 애들이 괜히 텃세를 부린다. 너무 많이 줍지 마라, 감꽃을 밟지 마라, 감나무 옆 밭에 들어 가지 마라 등 텃세를 부리곤 한다. 주인집 애들이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면 감꽃을 줍기 위해 온 이웃집 애들 중에서 약삭빠른 애는 얼른 강아지풀 줄기를 뽑아서 줄기 가득 감꽃을 끼워서 텃세 아닌 텃세를 부리는 감나무 주인집애에게 준다. 그러면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감꽃을 준 애에게 너는 더 주워 가라고 한다. 지금 그 시절 그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텃세 아닌 텃세와 아부 아닌 아부가 어우러진 천진난만의 왁자지껄함도 물건을 사러 온 사람도 팔려고 온 상인들도 떠난 시골의 5일장처럼 감꽃을 원하는 만큼 주운 애들이 떠난 감나무 밑은 조용하기만 하고 가끔 벌들의 윙윙거림과 툭툭 감꽃 떨어지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린다.
감꽃을 원할만큼 주워서 집으로 돌아온 애들은 실을 찾아 정성껏 주워온 감꽃을 실에 끼운다. 실을 길게 하여 감꽃을 끼운 것은 자연 쓰레 감꽃 목걸이가 되고 짧은 것은 감꽃 팔찌가 된다. 성질 급한 사내놈들은 조그만 소쿠리에 주워 담아온 감꽃을 한손 가득 움켜쥐고는 입에 털어 넣고 와삭와삭 씹는다. 그때 그 시절의 그 감꽃 맛은 지금의 그 어떤 군것질거리보다 달콤하고 맛이 있었다. 감꽃 목걸이와 팔찌를 목과 팔목에 걸고 다니면서 하나씩 빼먹곤 하였다.
곧 감꽃이 활짝 피면 어릴 때 먹었던 그 감꽃 맛을 회상하며 먹어도 보고 강아지풀 줄기에 끼워서 심심하면 하나씩 빼내어 먹어 봐야겠다.
2023년 5월 25일
김 상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