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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효도 3 誡命(계명), 자녀 양육 2계명(30P)
오직 聖靈(성령)으로 풀어 가는 신 구약 성경 通讀(통독) 강해
22.에베소서 6:1-3절, 부모 효도 3 誡命(계명)
엡6: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1.주 안에서,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믿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신앙 안에서의 효도한다.
부모님은 하나님과 같다.
신앙 원리로 효도하라.
신앙 밖에서 효도할 수는 없다.
신앙인은 신앙관, 인생관, 가치관, 대인관, 경제관이 분명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의 원리로 사는 것이다.
신자는 인생의 모든 삶이 오직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 안에서”란 크리스챤의 삶의 경계선이다.
1>.이 ‘선’ 을 이탈하여 넘어 가면,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이 무너진다. 주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주님의 부으시는 축복을 유지할 수 없다.
2>.성령을 떠나, 마귀와 벗하는 삶이 된다.
3>.恣行自持(자행자지) 하는 자기 중심주의의 삶이 된다.
2.順從(순종)함으로 효도한다.
하나님, 부모님, 목사님, 스승님은 오직 順從(순종)의 대상이다.
오늘날 放恣(방자)한 인간 들은 자기 하나님도, 부모님도, 목사님도, 스승님도 없다.
옛 인륜은 三從之道(삼종지도)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였었다. 이러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근본 인륜은 남녀 평등사회인 오늘날에 맞게 고쳐져야 할 것이나, 그 아름다운 근본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한다.
三從之道(삼종지도):
근대 이전 유교 문화권에서 통용되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명시한 도덕 규범을 가리키는 유교 용어. 삼종지덕.
삼종(三從)이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결혼해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예기(禮記)』 「교특생(郊特牲)」과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 등의 유교 경전에 나온다.
중국 전한(前漢) 시기에 완성된 이 예서(禮書) 들은 2천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 사람들의 행위를 지시해 왔다.
유교의 男尊女卑(남존여비) 사상에 따라, 여자의 평생을 가족인 남성에게 종속되도록 규정한 것은 여자에게는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할 능력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자가 태어 나면, 아버지의 소속인으로 합법화 되고, 결혼하면 남편의 소속인으로 합법화 되어, 자신의 ‘보호자’에게 일정한 의무와 정신적 성실성을 바쳐야 한다.
즉 아버지에 대해서는 효와 공경의 의무를, 남편에 대해서는 정절과 신의의 의무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남자는 여자를 끌어 주고, 여자는 남자를 따라 가는” 여필종부(女必從夫)가 남녀 또는 부부의 이상적인 모습이 된다.
예제(禮制)를 통해 ‘남을 따르는 자’의 역할이 부여된 여성은 이에 부합하는 본성과 도덕을 요구 받게 된다. 즉 여자는 순종의 본성을 가진 자로 자신을 고집하거나 주장하지 않으며, 그런 본성에 충실한 것을 미덕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주장과 고집이 강한 여자는 나라와 가문을 망치게 된다며, 각종 교훈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포하였다. 긴 역사를 통해 ‘종인자(從人者)’의 도리를 몸으로 익힌 여성들은 평소, 혹은 자기 결정을 요구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삼종지도’로서 자신을 설명하고 합리화 하였다.
『열녀전(列女傳)』의 「노지모사(魯之母師)」편에는 남편 없이 자식들과 사는 한 어머니를 소개하는데, 친정 나들이를 계획하면서 그 아들들에게 허락을 받고자 한다. 어머니의 논리는 바로 “여자에게는 삼종(三從)의 도가 있어, 무슨 일이든 독단으로 생각하여 처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삼강행실도』의 「열녀도(烈女圖)」에 소개된 대부분의 여성들과 조선왕조실록에 무수히 등장하는 죽은 남편을 따라 죽은 대부분의 열녀 들은 자신의 행위를 삼종지도(三從之道)로 합리화 하였다.
삼종지도로 표출된 여성의 존재 방식과 그 실천의 방법들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개발되었다.
예컨대 『경국대전』의 ‘개가녀 자손 금고법(改嫁女子孫禁錮法)’은 삼종지도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개가한 여자의 자손을 벼슬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곧 개가(改嫁)는 ‘따라야 할 남편’을 배신한 것으로 삼종의 규범을 어긴 것으로 해석된 것이다.
또 조선 후기 사회의 실상을 보여 주는 『심리록(審理錄)』에는 남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아내에게 삼종지도에 어긋난 행위라며 벌을 내린다.
즉 “삼종지도에 따라 남편에게 의탁해야 하는 도리가 있어 살아서는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에 묻히는 것이니, 부부된 의리가 소중하지 아니한가?” 라고 한다. 죄를 지은 남편 보다는 남편을 배신한 아내의 죄가 더 크다는 것이다.
남성 가족에 대해 여자의 절대적인 복종을 주장한 삼종지도는 가부장적인 전제 권력을 지지하는 질서 개념과 연동되어 있다. 즉 군주에 대한 신하의 절대 복종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복종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담보로 한다.
“아내에게 남편이란 그 은혜와 의리의 소중함이 자식에게 부모, 신하에게 군주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아내로서, 아들로서 평소에 길러진 복종의 태도는 군주의 신민(臣民) 지배를 수월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삼종지도는 여성을 가족 내 남성의 지배 하에 두지만, 그 효과는 가부장제적 질서 유지를 돕는 것으로 나타 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삼종지도(三從之道))]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
고전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가 하나 같다” 라는 뜻으로,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李珥) 선생께서 “군.사.부 일체이니, 성심을 다해 충성하고, 존경하고, 효도하여야 하느니, 짧은 생각으로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비난하거나 불경시 하는 막된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라고 기술한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져 온다.
옛날은 임금이 군주(君主)이고, 무조건 그 존엄(尊嚴)을 중시했지만, 지금은 통치자가 주인이 아니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 시대이다.
통치자가 하늘의 이치와 법을 따라 올바르게 통치할 때에, 국민은 당연히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회를 탄압하고, 예배를 금지 시키는 통치자를 순종할 수는 없는 법이다.
또한, 나를 지성인으로 가르쳐 주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배웠던 지식으로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면서, 은사 찾아 경배(敬拜)하는 이 과연 몇이나 되며, 학생이 교실에서 선생을 구타하는 이 기막힌 세태(世態)가 지금이라니...
아버지! 그들은 과연 자식에게 온전한 공경의 존재인가?
가장의 고달픔을 알고 효도함은 커녕, 정년 퇴직 하거든 퇴직금 적당히 남겨 두고 빨리 저승 길 가야 한다는 못된 자식들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서, 터져 나오는 장탄식을 어찌 하겠는가?
다만 현 시대의 중심이 통치자에서 국민으로, 가르치는 스승에서 배우는 제자에게로, 아버지 기성 세대에서 아들의 신세대로 옮겨졌다 할지언정... 통치자도 올바로 통치하고 국민도 올바로 나라를 충성해야 하며,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경은 아니라도 구타는 하지 말아야 하고, 부모에게 극진한 효도는 못할지라도 일찍 죽으란 소리는 않아야 할 것이다.
충성하고, 존경하며, 효도하라는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의 이 숭고한 사상이 이 나라 젊은이의 정신 속에 정착되어야만 후세에 희망이 있으리라.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3.공경함으로 효도한다.
최고의 정성과 존경심으로 공경하고 받든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축복이 있는, 분명한 保障(보장)이 있는, 하나님이 그 대가를 반드시 갚아 주실, 인간 윤리의 처음 계명이다. (1-4계명 - 하나님 윤리, 5-10계명 - 사람 윤리)
“십일조(말3:10-12절 – 물질 축복, 형통의 비결)” 와 “효도(엡6:3절-잘 됨, 땅에서 장수함)”는 그 대가가 약속된 분명한 하나님의 誡命(계명)이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엡6: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의 “효” 사상:
1>.부모 사랑 7가지:
내리 사랑,
먼저 사랑,
조건 없는 사랑,
한 몸 사랑,
아픔 사랑,
한 길 사랑,
끝까지 사랑
2>.효심:마음의 공경 정신
3>.효행 7가지:
자녀의 공경,
이해와 순종,
공손한 언행,
자녀의 성공적인 삶,
인격적인 예우와 일감 드리기,
물질의 효 6가지:
용돈 드림,
입을 즐겁게,
눈을 즐겁게,
귀를 즐겁게,
옷 해 드려라,
몸 위해 드려라.
정신의 효 4가지:
대답을 잘 하라,
말씀을 잘 들어라.
밝은 표정 지으라,
궁금증을 풀어 드려라.
효도의 축복 2가지:
(엡6: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1.잘 됨:
1>.영혼이 잘 됨-하나님 축복
2>.건강 형통
3>.물질 축복
4>.세상 지위, 명예, 인정... 획득
5>.범사가 잘 됨-척척 풀려 감(영이 잘 됨으로)
요삼2절-“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2.땅에서 장수:
1>.오래 삶(좋은 것들은 무엇이든 오래 가야, 좋다.)
2>.건강하게 삶(건강 없으면...)
3>.평안 가운데 삶(마음의 천국이 있어야...)
4>.기쁨 가운데 삶(喜樂희락이 있어야...)
5>.행복과 富貴榮華(부귀영화)를 누리며 삶
6>.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 가치에 삶...
주님의 일에 봉사> 충성> 헌신> 산순교> 순교의 삶을 살아 감.
오직 聖靈(성령)으로 풀어 가는 신 구약 성경 通讀(통독) 강해
23.에베소서 6:4절, 자녀 양육 2계명(55P)
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 하라.
자녀 양육에 대한 2가지 견해:
틀린 견해-“내가 낳았다, 내 품 안의 자식이다, 내 소유다, 내가 키운다, 내 마음대로 한다, 내가 진로를 결정한다...”
올바른 견해-“하나님이 선물로 주셨다, 양육 받을 동안만 내 품에 있다, 내 것이 아니다, 내가 키우지 않는다, 돌보고 양육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1.“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다” 라는 단어는 윗사람에게 사용하는 용어이다.
자녀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말며, 내적 상처를 주지 말며, 자녀를 아주 존중하며 키워야 할 것을 말씀한 의미이다.
자녀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지 말라. 감정의 상처를 주지 말라.
아아!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큰 죄인인가?
어린 아이 들을 虐待(학대)하여 죽인다. 굶긴다. 毆打(구타)한다. 폭력을 행한다. 정서적으로 억압한다.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1>.인격 모독하지 말고,
(욕설 엄금, 손으로 때림 엄금, 머리 때림 엄금,
손바닥이나 엉덩이를 초등학교 시절에 한해, 반드시 이유를 설명한 후, 매로 다스릴 것)
2>.마음의 상처 주지 말고,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영혼에 깊이 잠재 된다.
자녀의 영혼에 상처를 내지 말라.
내적 상처 없이 건강한 영육을 갖도록 키워야 한다.)
3>.폭력 행하지 말고,
(언어 폭력,
물질적 폭력-지나친 가난과 부,
정신적 폭력,
신체적 폭력,
영적 폭력-백목사 사모:“저는 우리 담임목사님 설교를 듣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목사의 문제 있는 설교나 온전치 못한 인격으로, 상처 받는 영혼들이 너무 많다.)
4>.의식주로 고통 주지 말고,
5>.남의 눈치 보며 살게 하지 말고,
(부모가 직접 키워야 한다.
조부모가 키우면 버릇이 없어지고, 아이가 약해진다.
또한 부모가 인내심을 배우지 못하고, 자녀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진정한 자녀 사랑을 실천하지 못함으로, 아이의 삶과 그 인격이 잘못될 확률이 높다.
가정은 자녀를 위한 환경적 기본 조건이 되어야 한다.)
6>.남 보다 더 잘 키우지 말고,
(물질 만능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과잉 보호, 과잉 투자, 과잉 교육 엄금-5가지 이상 과외로 아이를 혹사 시킴
유년부 1-2학년 아이들의 기차관이 오로지 돈, 좋은 집, 내 방, 좋은 차......
아이 때부터 물질 배금주의에 물들어 있다. 영국민의 85%는 행복지수는 돈에 달려 있다고 한다.
남 보다 더 잘 키우면, 남들 보다 더 못한 자식이 된다.
7>.책임적인 존재로 살도록,
8>.인내로,(부모는 자녀를 통해, 인생의 한 없는 忍耐(인내)를 배운다.)
9>.부당하게, 엄격하게, 편애하며, 가혹하게... 키워서는 아니된다.
10>.신중하고, 지혜롭게 키워야 한다.
11>.깊은 이해심으로, 잘못을 수정해 주어야 한다.
12>.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의무를 周知(주지) 시켜야 한다.
예배 제일의 삶,
말씀 준행의 삶,
기도의 삶,
성령 동행의 삶,
성수주일 준수의 삶,
헌금과 십일조 생활 준수의 삶,
교회 봉사> 충성> 헌신> 산순교> 순교, 전도인의 삶,
‘섬김과 나눔’ 의 삶,
사랑과 친교의 삶...
2020-2021년, 이 불의하고 못된 악한 문재인 정권의 한국교회를 향한 부당한 ‘코로나 방역 정책’ 은 성수주일과 교회의 기존 가치들의 根幹(근간)을 완전히 허물어 버렸다.
아예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
수 만명이 모이는 교회를 향하여, 전면 예배 금지, 20명 미만의 방송 요원만 예배하라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요구를 법이라고...
성수주일을 못하게 한다.
교회를 罵倒(매도)하며, 마녀 사냥한다.
교회를 전 국민들에게 가장 꺼려 하는 嫌惡(혐오)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회에 가면 무조건 코로나에 걸리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교회 내의 모든 회의나 소모임이나 구역예배 등을 근원적으로 다 폐쇄하고, 다 훼손해 버렸다.
전 국민들에게 교회를 誤導(오도)하게 하여, 전도의 문을 근원적으로 막아 버렸다.
악하다. 악하다.
문재인아! 악하다....
너희 패거리들아!
너희가 不當(부당)하도다...
하나님이 너희 놈들을 반드시 심판 하시리라.
문제는 이러한 반 하나님적이고 악한 부도덕한 정권을 향하여, 아직도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를 부르고 있는 목사 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이 어찌 한 正常的(정상적)인 목사로서 慨嘆(개탄)치 아니하리!
牧師(목사)들아! 부디 네가 먼저 정신을 차려라.
하나님이 진노하시리라.
背敎(배교)한 대형 교회들아!
사두개인들처럼, 부패하고 거짓되고 비겁한 敎團(교단)들아!
총회장들아!
노회장들아!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2.오직 주의 교훈(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그리스도의 지혜로 양육
교양:지식으로 가르침
인격을 훈련 시킴(행동 발달)-상벌로 삶의 훈련을 시키는 것
“저 사람은 참 교양이 있어!”-‘그 인격이 훈련 받았다’ 는 의미
훈계:가르침(언어와 생각 발달)-상벌이 아닌, 교훈을 주는 것
1>.말씀으로-하나님의 뜻에 맞는 자녀로 양육,
하나님을 위한 생애 살도록 양육,
신앙 교육을 확실히 시켜야 한다.
유태인 교육:아동기-쉐마(암송), 청소년기-적용, 장년기-지도력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군사, 종교...... 모든 영역의 탑 클라스 1%에는 유대인이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80% 이상이 유대인이다.
2>.기도로
3>.신앙 인격으로
4>.모범적 삶으로 교훈
3.자녀 양육 자료:
A>.자녀를 망치는 10가지 비결
1. 아이가 갖고자 하는 것을 무엇이든지 준다. - 아이는 세상의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오해하면서 자랄 것이다.
2. 아이가 나쁜 말을 쓰면 그냥 웃어 넘겨라. - 자기가 재치 있는 줄 알고, 더 나쁜 말을 할 것이다.
3. 어떠한 형태의 교훈적인 훈련과 교육도 시키지 말고,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4. 잘못된 품행은 책망하지 말아라. - 이 다음 사회로부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다.
5. 아이가 어질러 놓은 옷, 침대를 모두 정돈해 준다. - 자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6. 텔레비젼, 비디오를 마음대로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아이 마음이 쓰레기통이 될 것이다.
7. 아이들 앞에서 부부나 가족들의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이라. - 가정이 깨어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8. 용돈은 달라는 대로 주어라. - 일생 동안 돈을 관리하지 못하여, 가난하게 비참하게 살 것이다.
9. 먹고, 갖고 싶은 것은 다 해 준다. - 한번 거절 당하면, 쉽게 좌절할 것이다.
10. 아이가 이웃과 대립되는 자세나 마음을 가질 때, 언제나 아이 편이 된다. - 정의를 모르고, 건전한 사회가 그 아이의 적이 될 것이다.
B>.자녀를 위한 기도
D.맥아더
주여! 내게 이런 자녀를 주시옵소서
약할 때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워질 때 자신을 잃지 않는 대담성을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며
승리에 겸손하며 온유한 자녀를 주옵소서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깨닫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그를
쉬운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옵시고
고난과 역정에 대해
분투 항거할 줄 알도록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폭풍우 속에서도 용감히 싸울 줄 알고
패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하여 주소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가 고상하며
남을 정복하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기를 다스릴 줄 알고
미래에 도전하면서
과거를 잊지 않는 자녀를 저에게 주옵소서
그리고 나서
이에 대하여 바라옵건대
유머를 알게 하시고
항상 진지하되, 자기 자신을 너무 중히 여기지 말며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소서
또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하다는 것과
진실로 현명한 것은 솔직하다는 것
그리고 참된 힘은 온유함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여 주소서
그리하오면 아비된 저로서는
"내 인생을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노라."고
나직이 고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C>.유대인의 교육
유대인들의 육아법 가운데는 이런 것이 있다. 어린 자녀가 차츰 자아 의식을 형성해 가면, 아이들과 신나게 놀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아들을 홱 던져 버리고 냉정하게 돌아 선다.
꼬마는 평생 처음 당하는 엄청난 쇼크에서 쉽게 헤어 날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은 이런 경험을 통하여 인간에게는 까닭 없는 배신이 있다는 것과 인간은 이렇게 변화무쌍한 존재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어린 아들로서는 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이런 절망과 배신을 딛고 또 다시 아빠 품으로 돌아 오면,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믿음직스러운 존재였던 아빠가 다시한 번 호되게 밀쳐 내 버린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사랑의 대상이요, 다정한 친구요, 자신의 삶은 몽땅 송두리채 책임지고 있는 존재로서, 이 아이에게 만은 하나님을 방불한 실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까닭 없는 배신의 아픔은 어린이가 재대로 소화하기에 힘겨운 과제임이 분명하다. 이럴 때 아빠는 자기 아들에게, [아들아! 사람을 믿지 말아야 한다. 심지어 이 아빠까지도, 너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고 교훈한다.
그리고 인간이 영원히 믿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방백 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히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 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146:3-5)
한 눈에 매정해 보이는 유대인의 아비들은 이 진리를 아이들에게 바로 가르치기 위하여 애간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참고 견디며 이런 방법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 없이 온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돌아 다니면서도, 2천 수 백년 동안 자기들의 민족성을 굳게 지키고, 오늘의 세계를 이끌어 가는 힘을 키운 배경에는, 이와 같은 육아법에서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떠한가?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나만 굳게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해 놓았단다. 너는 아무 걱정 말고 편하게 살아라.] 라는 식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지 않는지...
자녀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는 것, 시집 가는 딸에게 엄청난 혼수를 장만해 주는 것 등이 바로 그 구체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뿐 만이겠는가?
엄마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까지 책임질 작정으로 맹렬한 치맛 바람을 날리고 다니지 않는가?
이런 식의 무책임한 육아법은 결국 자녀들로 하여금 남을 의지하는 졸장부로 만들고, 또 지극히 무기력한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하늘 같이 믿었던 인간으로부터 배신을 당하면, 그 엄청난 충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파탄의 인생을 살게 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오직 하나님 외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없음을 가르쳐야 한다.
D>.15분 주의 자녀 교육
요즈음 아이들 노는 데 있어서나 공부하는 데 있어 지속성이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야구공 들고 놀러 나갔던 놈이 30분도 못 되어 돌아 온다.
플라스틱 모델을 만지작 거리다가 15분도 못 되어 텔레비전 앞에 턱을 괴고 엎어진다.
아무리 흥미 있는 놀이 일지라도 15분 이상 넘기면 권태를 느끼는 것이 요즈음 아이들의 생리라고 이론화 돼 있기까지 하다.
그래서 유원지의 회전목마나 각종 타는 놀이의 소요 시간을 5분 이상 넘기지 않는 것이 상식이 돼 있다 한다. 요즈음 어른들도 옛날 어른과는 달리 지긋한 맛이 없고, 단속(斷續)이 빨라졌다.
마작(麻雀) 놀이는 한 판에 몇 시간씩 걸리는 지속성 유희인데, 요즈음에는 15분 내외로 끝나는 단판 마작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화투놀이도 옛날에는 '육백'이라 하여 꽤 길었는데, 요즈음에는 '뻥'이라 하여 15분 안에 끝내 버린다.
볼링도 게임당 15분이라고 들었다. 매스터즈 보고에 의하면, 현대인의 성(性) 행위 지속 시간도 15분이 상식화 돼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같이 15분 간격으로 흥미나 주의력이 변하는 현대인의 체내 시계(體內時計)적인 생리(生理)를 쿼터리즘, 곧 '15분 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지속성을 단속성으로 전환시킨 이유로서, 텔레비전의 생활화를 든다. 대체로 동서양 할 것 없이 텔레비전 프로는 15분, 4 배수인 1시간으로 돼 있다. 영화가 사양 산업이 되고 있는 이유로서 텔레비전의 보급을 들고 있으나, 이것은 근인(近因)이요, 원인(遠因)은 15분 주의 때문에 현대인이 두 시간 남짓한 길이의 영화를 봐 낼 지속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상영 시간을 단축, 2편 내지 3편의 동시 상영이 유행하는 이유도 이 15분 주의에 영합한 자연 추세랄 수 있다.
독서 주간을 맞아 한국 출판 판매 주식회사가 고객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4명 중 한 사람 꼴로 텔레비전 시청 때문에 독서를 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것도 근인이요, 원인으로는 15분이 지나면 권태로와지는 체내 시계 때문에 <전쟁과 평화>나 <상록수> 같은 대하 소설을 읽어 낼 지속력이 결여 됐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짤막한 에세이 류가 많이 읽힌다는 것도 15분 내에 읽어 낼 수 있기 때문이요, 잡지에서 15분 내에 읽어 낼 수 있는 짤막한 글이 늘고 있음도 결코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촌단(寸斷)된 시간을 각박하게, 또 정신 없이 산다는 것은 인생을 잘게 썰어 소비해 버리는 것이요, 결코 축적은 아니다. 옛 공장(工匠)들은 불상 하나 만드는데 10년 공들이고 10년 조각을 했다지 않던가?
텔레비전 시대의 15분 주의를 전제하는 길은 오로지 활자 시대의 독서 밖에 없다는 맥루한의 실험적 보고가 새삼스럽기만 하다.
E>.아버지와 아들 - 아브라함과 이삭
창22: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삭, 그는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이요, 그를 통하여 한없는 축복을 내려 주마고 하나님이 친히 약속하신 독자다. 실로 아브라함에겐 자기의 전부 보다 더 귀하고 중한 존재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 아들 이삭을 하나님은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번제가 어떤 제사인가?
대상물을 완전히 불 태워 바치는 특수한 제사가 아닌가?
이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것이요, 천륜을 어기는 것임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주신 약속을 스스로 파기하시는 것으로서, 심각한 하나님의 오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경은 어떠한 경우를 막론하고 사람을 제사의 대상으로 지명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사람의 생명을 신의 제물로 요구하는 이방 종교를 언제나 맹렬히 공박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성경의 하나님이 지금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아브라함은 두 말 없이 순종한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고 절대적인 신이라는 것을 믿었고, 아울러 그 하나님의 생각은 자기의 지각을 까마득히 뛰어 넘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아브라함과 동질의 신앙을 지니고 있던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번제의 대상으로 지목 받은 이삭이다. 이들은 자기들이 지닌 절대적인 신앙으로 서로 동심 협력하여 하나님이 요구하는 번제를 바쳤고, 그 결과 부자는 다 같이 큰 복을 확정 받았던 것이다.
F>.인간성 발전소
2차 대전 후 패전(敗戰) 이탈리아 시칠리 섬에서 있었던 일이다. 산을 하나 두고 두 고아원이 이웃하고 있었는데, 하나는 연합군과 결연이 되어 시설도 좋고 영양도 담뿍 취할 수 있었지만, 다른 고아원은 풍우(風雨)도 제대로 가리지 못할 뿐 아니라 분유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왜냐면 시설과 영양이 좋은 쪽의 어린이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60%나 높았기 때문이다.
상식에 위배된 이 결과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연구 결과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전쟁 중에 세 아이를 잃고 실성한 40대의 어머니가 어느 날 시설이 나쁜 쪽의 고아원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이 어머니가 그곳에 수용된 고아들을 모두 자기 자식으로 착각하고 번갈아 안아 주고 얼러 주길 수년 간 계속하고 있는 사실에서, 이 의문이 풀렸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아이들은 환경이나 영양 이외에 어머니의 품에서 배어 나오는 훈김, 곧 인간성이 아이들 성장이나 건강이나 생명의 불가결의 요인이라는 학설이 체계화 되고, 지금도 구미(歐美)의 고아원에는 훈김을 급여하는 대모(代母)가 필수 불가결의 조건이 돼 있다.
작가 스타인백의 단편소설 가운데 한 가난한 어머니가 헤어진 양말을 깁고 있는데, 그 어머니 등에 등을 맞댄 아들 놈이 주워 온 쇠붙이를 늘어 놓고 놀고 있는 그런 정경을 묘사한 대목이 있었다. 물론 아무런 대화도 없고 숨만 색색 쉬고 있지만 그 등을 통해 오가는 훈김, 곧 인간성은 이 세상 어떤 권력이나 금력이나 명예로도 살 수 없는 고귀한 것이라 했다.
그것은 비단 모자(母子) 사이에만 발전(發電)되는 훈김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발전되는 훈김인 것이다. 그것만 있으면 세상이 가시 방석처럼 각박해도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없으면 아무리 비단 방석이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70세 된 한 거지 노인이 밥을 빌어다가, 밥도 빌지 못하는 불우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 것이 시초가 되어, 버림 받고 불우한 사람끼리 상부상조하며 사는 충청도 음성(陰城)의 ‘꽃동네’야말로 우리 한국에서 가장 큰 인간성 발전소가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사는 어느 한 사람도 20세기 최대 인간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콜롬비아에 한 조각 정을 나누려 하지 않고 있는데, 이 꽃동네에서 맨 먼저 의연금이 나왔다는 것은 포도처럼 말라 비틀어진 현대인의 심장을 예리하게 지탄하는 것이 된다.
이 꽃동네에서 낸 돈은 돈이 아니라 그것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이리떼가 되는 그런 훈김이다. 꽃동네는 그 훈김의 발전소다.
G>.신앙교육
떫은 감을 어린 아이가 두 개 가지고 있다.
아이가 먹으려 하는데, 그것을 먹으면 큰일 난다고 소리를 치면서 버리라고 하고, 바나나를 보여 주었다. 그 아이는 바나나를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떫은 감도 역시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아이는 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자 엄마는 억지로 그 감을 빼앗아 버리고, 바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바나나를 던져 버리고, 엄마가 빼앗은 두개의 감에 대한 향수 때문에 계속 울어 댔다. 그리고 엄마를 증오하고 미워하게 된다.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이나 율법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자녀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증오와 환멸을 느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H>.자녀 교육
일본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남에게 폐 끼치지 말아라] 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람들은 공중도덕 지키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미국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고 사는 얘기가 있다. [남에게 나누어 주라] 는 말이라고 한다.
확실히 미국 사람은 어디 고아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당장 입양하고, 남에게 나눠 주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남에게 기 죽지 말아라]
바로 이 말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은 자란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승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덤벼 들고, 부모에게 덤벼 들고, 사장 앞에서도 큰 소리를 친다.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면 나와서 불문곡직하고 고함부터 지른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논리다.
어디에서든 기 죽지 않을려고 해외에 나가면 상점에 진열되어 있는 것들 싹쓸이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리고 기가 살았다고 좋아한다,
기가 죽어도 안되겠지만, 남을 사랑하는 법을, 인간답게 살아 가는 법을 가르치고, 키워야 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한 마디 충고가 겁이 난다. 기 죽지 않고 커 왔기 때문에, 당장 눈을 부라리고 덤벼 들 것이기 때문이다.
[기 죽지 말고 살아라] 하는 말은 우리의 자녀 들을 정말 죽이는 말이다.
I>.자녀 교육의 원칙
자녀를 키우는 데는 두 가지 간단한 원칙이 있다.
우선 사랑을 굉장히 많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따른 규칙에 대해서는 엄격해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병행돼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형제들 간에도 우애가 있고. 부모를 잘 모시며.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엄격함만 있으면. 아이들이 기가 죽어 버린다.
사랑만 있으면 아이들이 방종하기 쉽다.
사랑과 말씀 안에서의 엄격함은 항상 공존해야 한다.
J>.대발이 집-지은이 집
임강(臨江)에 사는 어느 한 형제가 사냥을 갔다가 각기 한 마리 씩의 사슴 새끼를 잡아 왔다. 이를 안고 문안에 드니, 집에서 기른 개들이 달려 들어 못 살게 구는 것이었다. 이에 형은 개들을 나무라고 쫓고 하며, 곁에 두고 애지중지 길렀으며, 음식도 따로 주고, 등걸이도 해 입히는 등 하였기로 개들이 잔뜩 시기를 하고 있었다.
한데 아우는 개들의 해침을 받지 않고 어울려 살게 하려면 개에게 따르게도 하고, 개도 돌봐 주게끔 해야 겠다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물리거나 다치지 않을 정도로 개에 시달림을 받게 적응 시켜 길렀다.
이 형제가 머나 먼 과거 길을 다녀 왔더니, 형의 사슴 새끼는 개에 물려 죽어 있었고, 아우의 사슴 새끼는 개 떼에 섞여 반갑게 마중 나왔던 것이다.
이것은 당(唐)나라 학자 유종원(柳宗元)의 <삼계(三戒)>라는 글로서, 자녀를 놓아 기르느냐 닦달하여 기르느냐의 가르침을 빗댄 우화(寓話)인 것이다.
가정에 있어서 자녀를 둔 부모의 태도는 부성 원리와 모성 원리로 대별해 볼 수 있다. 부성 원리란 자녀들의 행동을 규제하여 끊고 맺으며 잘잘못을 따지고 법도의 틀에 구속시키는 원리요, 모성 원리란 잘 하고 못하고를 초월하여 자녀 위주로 포용함으로써, 법도의 틀 밖에 해방시키는 원리다.
유종원의 '임강 사슴 이야기'에서 형님은 사슴 새끼를 모성 원리로 길렀고, 아우는 부성 원리로 길렀다는 것이 된다.
물론 이 두 원리가 극단으로 작용함으로써 장단점이 생겨 나고, 시대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어떤 원리가 가치를 더 발휘하고 덜하고 하였다.
三綱五倫(삼강오륜)이 지배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부성 원리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해 왔으나, 2차 대전 후 서양 문물의 영향으로 모성 원리가 우위를 차지, 가정에서 아버지는 누렇게 바랜 사진 속의 정물(靜物)로만 남아 있을 뿐 퇴색하고 증발해 버렸다.
부성 원리를 행사하면 시대에 뒤진 인간으로 손가락질 당하거나 웃음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텔레비젼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시청률을 올리고 있음은 이 부성 원리가 지배하는 '대발이 집'과 모성 원리가 지배하는 '지은이 집'을 둔 현대의 가치관의 갈등 때문일 것이다.
연령층이 높을수록, 그리고 남성일수록 권위주의적이며 가부장적인 '대발이 집'을 선호하고 연령층이 낮은 여성일수록 민주적이고 자상한 '지은이 집'을 선호할 것이다.
만 20 세 이상 성인 남녀의 갤럽 조사에 보면, 지은이 집 48 퍼센트 대 대발이 집 35 퍼센트 선호율이었다. 물론 대발이 어머니 보다 지은이 어머니가 보다 행복하다고들 여기고... 어느 집에 살겠느냐 하면 지은이 집을 선택하겠지만, 어느 만큼 대발이 집처럼 꾸려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정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았다 한다.
문제는 양자택일의 극단적 선택이 아니라, 두 원리의 슬기로운 조화에 있다고 본다. 자유와 규제는 반드시 상반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강의 사슴 이야기에서 아우 집 사슴이 형집 사슴 보다 덜 행복하거나 덜 자유로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K>.모성애와 자녀 교육
미국에서 '가장 바쁜 1백 명' 중에 도로시 리가 끼인다. 그는 왕성하게 현장 학술 답사를 하는 여류 문화 인류학자요 세 자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도로시 리는 어느 날 밤에 있었던 신변의 일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 와 먹은 둥 마는 둥 저녁 밥을 지어 먹고 설겆이를 끝낸다. 내일 있을 강의 준비, 논문 자료 정리, 학술답사 여행 준비, 아이들 등교 채비 등을 해 놓고 보니 열두 시가 넘었다. 지칠 대로 지쳐 팥죽처럼 퍼진 몸을 끌고 아이들 방을 들른다. 잘 자나 보기 위해서였다. 다섯 살 난 앤의 방에 들어 가 인형을 끼고 곤히 잠들어 있는 딸을 보자 깜박 잊었던 일이 되살아 났다. 오늘 밤까지 인형의 이불을 만들어 주기로 앤과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인형의 이불을 만들어 나가면서, 마치 진통제라도 먹은 듯이 그 무겁던 피로가 구름처럼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거의 만들었을 때 여태까지 못 느꼈던 어머니로서의 황홀감이 얼굴에 가벼운 경련을 동반하면서 나를 엄습해 왔다. 나는 그 바쁜 외부생활 때문에 이 내면의 심오한 희열을 못 느끼고 살았던 것을 그 후부터 줄곧 후회하고 있다."
도로시는 그 희열의 시간을 단절시키고 싶지 않아, 앤 곁의 인형에게 그 이불을 덮어 주고 앤의 얼굴을 너무나 오랫 동안 들여다 보고 있었다 했다.
악처(惡妻)를 두어 유명한 톨스토이는 자기 딸 타치야나에게 부친 편지 가운데서 "너는 모녀간에만 소리 낼 수 있는 아름다운 `G선상의 아리아'를 못 듣고 자란 가엾은 여인"이라고 했다. 즉 그 희열의 모성을 `G선상의 아리아'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이 같은 `G선상의 아리아'는 동서고금에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다만 어머니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의 변동이나 또 사회적 의식의 변동이 아름다운 `G선상의 아리아'를 둔탁하게 하거나 파열음이 나게 했을 따름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여인'이라는 영국의 대처 수상이 이사 간 딸네 집에 가 의자를 밟고 올라 서서 페인트칠 하는 보도사진을 보자, 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G선상의 아리아'가 잔잔하게 들려 오는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그 어떤 부귀영화 보다 그러해야 행복한 것임을 뉘우치게 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L>.어머니의 가슴
고대 라틴말로 ‘유방(乳房)’은 ‘맘마(mamma)’였다. 이 ‘맘마’는 ‘어머니’란 뜻도 되고 또 그곳에서 나는 젖에서 연유하여 ‘식사(食事)’란 뜻도 된다. 우리 나라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한데 ‘맘마’란 말이 사어(死語)가 돼 버렸다. 영어에 ‘유방’이란 말이 따로 없고 ‘가슴(breast)’이란 말로 대용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젖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슴이 말랐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유방’을 ‘섹스’의 일환으로 보았기에 ‘섹스’에 준엄했던 기독교 윤리에 저촉되어 이름마저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을 포함한 동양에 있어선 ‘유방’을 모성(母性)의 일환으로 보았기에 유방의 성적 자극가(性的刺戟價)가 거의 없었다. 옛 어머니들이 사람들 앞에서 젖통 드러 내 놓는 걸 예사로 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모성의 원천으로서의 ‘유방’은 클수록 좋았다. 겨우 두 손아귀에 들어 갈 만한 크기의 젖통인지라 단지 만 하다 하여 유호(乳壺)라 해도 됨직한데 오죽하면 항아리 보다, 뒤주보다 더 큰 방(房) 만 하다 하여 ‘유방’이라 했을까.
어머니의 조건으로 ‘유방’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법이 없다는 표현이랄 것이다. 순조 때 실학문헌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젖을 일찍 끊은 아이는 연모(戀母)의 정이 생기지 않을 뿐 더러 지능이나 정서에 결함이 생긴다는 체험적 지혜를 적고 있다. ‘유방’을 통한 엄마와 아기의 피부 접촉이 하루 4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으면 정서와 지능에 결함이 생긴다는 과학적 사실을 우리 선조들은 이미 체험적으로 터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생아는 자궁의 양수(羊水) 속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맥박소리와 어머니 특유의 체취를 기억하고 태어 난다. 산모의 맥박소리를 녹음해서 들려 준 신생아와 들려 주지 않은 신생아의 체중증가를 비교한 실험이 있는데 현저한 발육 차이를 발견하고 있다.
또 갓 태어난 아기 머리 맡에 엄마의 브래지어를 놓아 두면 그 유방 냄새를 기억, 반드시 놓아 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는 실험도 있다. 어머니의 맥박 소리나 유방 냄새를 기억하고 태어 나며, 그 기억을 유지 시켜 주어야 심신이 안정되고 정상적인 발육을 한다.
0-2세 사이에 대뇌의 모든 세포배선(細胞配線)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때 자녀들 대학입시 점수에 따른 고심(苦心)을 이 신생아 1-2년 동안의 유방을 통한 피부 접촉으로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뜻있는 분들이 엄마 사원의 모유 접촉을 위해 직장에다 엄마 젖 먹이는 방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그 첫 '모유방(母乳房)'이 국제아동기금(UNICEF) 한국 사무소에 첫 부설됐다 한다. 엄마 사원을 거느린 사장님들 유의해 주어야겠다.
M>.오성과 교육
13세기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프레데릭 2 세는 사람이란 뱃속에서부터 자신의 말을 갖고 태어 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히브리 말일 것이라고도 믿고 있었다. 이 자신의 생각을 입증하고자 30 명의 갓난 아기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해 무언(無言)으로 기르게 했다.
무언으로 기르면 본래 익혀 갖고 태어 난 히브리 말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아이들 모두가 시들 시들 메말라 끝내는 죽어 버렸던 것이다. 아기들은 어머니와의 간단 없는 피부 접촉, 대화 없이는 정상적으로 자라지도 못하고 또 병에 대한 면역성도 결핍되어 사망률도 높아진다는 사례로서 곧잘 인용되는 사실(史實)이다.
태어 나서 두 살 까지의 뇌의 발달량은 두 살에서 스무 살까지의 뇌의 발달량과 맞먹으므로 두 살 때까지는 하루에 최소 4 시간 이상의 살붙이-곧 촉각을 비롯, 감각 접촉을 하지 않으면 뇌의 정상적 발달을 기할 수 없다는 것이 대뇌 생리학자들의 정설이 되고 있다.
암의 발생도 이 어린 시절의 피부 접촉 결핍과 분명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그래서 구미에서는 종전처럼 아기 들을 모체로부터 격리해 기르질 않고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을 꾸준히 자극하는 새로운 육아법이 보편화 되고 있다 한다. 모자 접촉이 없으면 왜 허약해지는가는 모르고 있던 차에, 마이애미 대학 연구팀이 그 원인을 가려 내어 미국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모자 접촉에서 격리하면 30 분 이내에 ODC라는 단백질 합성 효소의 활성이 급작스레 저하된다는 사실을 알아 낸 것이다. 바꿔 말하면 모자 접촉에서 생화학적 반응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분자 레벨에서 확인한 것이 된다. 그 밖에 모자 접촉을 하면 지능이나 정서발달에 영향을 끼치는 베타 엔돌핀이라는 뇌물질이 분비된다는 사실도 발견해내고 있다. 아기는 열심히 안고 키워야 한다는 과학적 입증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옛 어머니들의 슬기가 새삼스러워진다.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젖을 물리고 다른 한 손으로 아이 하나 손을 잡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걷는 풍경쯤 낯설지 않았다. 이 광경을 보고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느만큼은 곡예사라고 선교사 게일은 적어 놓고 있다.
그렇게 하루종일 어머니의 등이나 젖가슴, 손아귀의 체온 속에서 등온(等溫)을 유지하다가 잠잘 때도 어머니 팔베개를 베고 잠들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격리시켜 기르는 아기구덕이 없는 나라는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 나라 밖에 없다. 그만큼 모자의 피부 접촉이 이 세상에서 가장 왕성한 우리 나라였던 것이다.
우리 옛 어머니들이 얼마나 초현대적인 신여성이었던가 새삼스러워진다.
N>.반(反) 스포크 육아론
18세기 프랑스에서 갓난 아기를 얼만큼 잔인하게 길렀는지, 루소의 `에밀'에 실감 나게 적혀 있다. 태어 나자 마자 수족(手足)을 반듯하게 뻗게 하고, 머리를 고정 시켜 베나부랑이로 칭칭 감아 마치 미이라처럼 해 놓고 기른다.
묘목에 받침대를 대어 칭칭 묶어 곧게 자라게 하듯이, 아기들도 수족이나 등이 굽지 못하게끔 칭칭 묶어 기른다. 그렇게 묶어 기름으로써 심신(心身)의 굶주림과 고통과 노여움을 유발해 공격적인 사람으로 기르기 위함이라고도 했다.
농부(農婦)들은 이렇게 칭칭 감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일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도 했다. 유럽에 있어 이 잔인한 모체(母體) 격리의 양육 전통은 지금도 예외가 아니다.
공원에 산책 나온 어머니는 리제르라는 끈으로 아기의 앞가슴을 매서 개 끌고 다니듯이 끌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리제르를 조작, 나뭇가지에 아기를 걸어 놓고서 조잘 대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결박(結縛) 육아 풍습은 결박도가 심하고 덜하고의 차이가 있을 뿐 세계 공통적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가운데 성질이 사납고 공격적인 호피족(族) - 수우족(族) - 푸에브로 인디언들은 `크레이들'이라는 침판(寢板)에 칭칭 묶어 놓고 기른다. 러시아나 동구권 민족들에게도 `수워들링'이라는 결박 육아 풍습이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히말라야 산중에 사는 고산족(高山族)들도 일하러 나갈 때에는 마치 처마 밑에 닭 둥지 매어 달아 놓듯이 아기를 짚둥지 속에 묶어 달고 양 젖을 담은 가죽 병을 입에 물려 놓는다. 볏 짚이나 나무 판으로 만든 아기 바구니 속에 인신을 구속해 기르는 풍습도 보편적이다. 다만 결박하거나 바구니에 담아 기르는 모자 격리(隔離) 육아 문화가 없는 유일한 지역이 이 세상에서 제주도를 빼놓은 한반도 뿐임은 문화 인류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바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모자의 피부 접촉 시간이 가장 긴 육아 문화를 누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 전통 사회에서 아기들은 하루 종일 등에 업히거나 젖가슴에 안겨서 동 체온을 유지하고도 못다 하여 밤에는 팔베개 베고 젖가슴에 볼을 묻고 잠들곤 했던 것이다. 물론 이같은 모자 접촉 문화가 아이들의 응석만 키우고 의존적 성격을 키운다는 결함도 지적돼 오긴 했다.
하지만 지금 2차 대전 후 전 세계를 지배해 온 모자 격리주의의 대부(代父) 스포크 박사의 육아법에 대한 반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만 두살 때 까지 형성되는 뇌 세포 수는 같으며, 이 두살 때 까지 하루에 최저 4시간 이상 피부 접촉이 없으면 지능과 정서에 결함이 생긴다고도 한다. 그렇고 보면 접촉주의를 누려 온 우리 나라는 육아 문화에 있어서도 선진국이었다는 것이 된다.
O>.자녀 중심
우리 나라에는 아기에게만 쓰는 아기 말이 따로 있다. 어머니를 `엄마'라 하고, 아버지를 `아빠'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아기 말을 베이비 토크(baby talk)라 하는데, 미국을 비롯 유럽에는 아기 말이 거의 없다 해도 대과가 없다. 있다면, 어머니를 `마미' 아버지를 `대디'라 하는 것이 고작이다. 갓 태어 나서 부터 어른들이 쓰는 말을 그대로 가르치고 또 쓰게 한다. 이에 비해 우리 나라는 베이비 토크 왕국(王國)이다.
아기와의 대화는 온통 엄마를 비롯, 어른들이 만들어 낸 베이비 토크로 시종한다. 먹지 못할 것을 입에 대면 `찌찌'라 하고, 잘못을 저지르면 때리는 시늉과 함께 `때때' 한다. 먹을 것을 주면서 `맘마', `까까'하고, 배설을 재촉할 때 `쉬이', `응아'라고 한다. 울음을 그치라고 할 때 `뚝' 하고, 잠자라고 할 때 `코오-' 한다. 위험한 것을 두고 `에비'라 하고 키스를 `뽀뽀', 손뼉을 `짝자꿍', 걸음을 `걸음마'라 한다.
이 같은 아기 말은 아기 적에만 써야 하는 것이다. 한데 10년에 걸친 한국 어린이의 성장 과정의 모든 것을 종적(縱的)으로 연구하고 있는 한국 행동과학 연구소의 중간 발표에 의하면 유아기 때 쓰는 아기 말이 소년기까지 연장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소년기, 청년기 뿐만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아빠, 엄마 같은 베이비 토크를 자연스레 쓰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기 말을 쓴다는 것은 아기 심성을 어른이 되어서까지 유지하고 싶은 어리광과 응석이 우리 나라 사람에게 별 나게 강하다는 것이 된다.
왜 그럴까. 에드워드 타일러의 `원시 문화(元始 文化)'에 보면 소수의 남방 종족(南方 種族)에게 아기가 태어 나면 모든 호칭을 아기 본위로 부르는 테크노니미(아기 본위 호칭법(本位呼稱法)가 있다 했다. 남편을 아빠로, 아내를 엄마로, 남편의 형제를 삼촌으로, 엄마의 자매를 이모라고 부르고, 남들도 아기를 본위로 하여 철이 아빠, 순이 할머니하고 부른다. 우리 한국은 이 테크노니미가 살아 있는 이 세상에서 굴지(屈指)의 나라인 것이다. 테크노니미가 없는 서양에서는 아기를 빨리 독립시켜 어른 사회로 끌어 올리려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아기 사회에 어른이 끼여 들어 가 융화하려는 테크노니미 때문에 베이비 토크가 발달할 수 밖에 없다.
너무 오래 자기 중심적인 응석받이 속에 뼈가 굵은 `어른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아빠의 슬하를 떠나 응석을 받아 주지 않는 사회에 내던져지면 원망스럽고 매정해 보이며, 항상 피해 의식 속에서 반항과 자포 자기로 지내게 된다.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대인 공포증(對人 恐怖症)과 피해 망상증(被害 妄想症) 환자가 별나게 많은 이유도 심정적으로는 아기인데 현실은 어른이어야 하는 갈등에서 빚어진 것일 게다.
그래서 베이비 토크는 쓰지 않을수록 좋고, 쓰더라도 일찍 끝내 버려야 하는 액물인 것이다.
P>.부모
부모가 아이들 대하는 태도는 대충 다음 세 가지 유형(類型)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승자형(勝者型), 패자형(敗者型), 동요형(動搖型)이 그것이다.
승자형의 부모는 아이들에게 권위를 갖고 군림, 명령을 내리고 순종을 요구함으로써 부모가 이기고 아이들이 지는 형태로 문제를 해결한다.
패자형은 아이들에게 대폭적으로 자유를 허용, 방임하는 부모이다.
이상의 승부형(勝負型)과 패자형 모두가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우리 한국 부모들에게 가장 많은 것이 동요형의 부모로 승자, 패자 어느 한 편에 일관되지 못하고, 엄격과 관용, 제한과 자유, 승자와 패자 사이를 오 가며 동요한다.
이 동요형 부모의 슬하에서 자란 아이들이 승부형보다 혹심하게 피해를 입는다고 한다. 그럼 이 세 가지 유형 이외에 어떤 유형이 바람직한 것일까?
일전 레이건 대통령이 자녀에 대한 관여를 호소한 교육 백서 발표 이래 돋보이기 시작한다는 PET 운동이 그 해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PET란 Parent Effectiveness Training의 약자로, 부모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부모업' 수업(修業)을 뜻하는 자녀 교육의 새 바람이다.
PET가 가르치는 제 4의 유형이란 무승부형(無勝負型)이다. 이를테면 지미가 지칠 대로 지쳐 직장에서 돌아 온 아버지에게 달라 붙어 같이 놀자고 졸라 댔다고 하자. 아버지는 신문도 읽고 또 뭣인가 마시고 싶었다. 지미는 아버지 무릎에 앉아 신문을 구기고 아양을 떨며 방해를 한다. 승자형으로 대하면 아이에게 불만과 좌절을, 패자형으로 대하면 안하무인과 오만을 길러 준다. 이런 경우 무승부형으로 대한다는 것은, 놀아 준다고 약속을 하되 다만 아버지가 신문을 읽고 마실 것을 마신 다음까지 기다리라 하고, 그 약속대로 지켜 준다. 그 후부터 지미는 어머니나 저의 친구가 휴식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거나 접근하면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뒤에서 잡아 끌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결정에 아이를 참여시키면, 저의 의사가 인정되었다는 점에서 부모가 아이를 신뢰한 것이 되고, 또 제가 신뢰 받았다고 느끼면, 그 신뢰에 부응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어린이 날, 백화점이나 데려 가고 놀이터에 데려 가 신주 모시듯이 받들지만 말고, 어린이 대하는 유형의 확고한 선택으로 이 날의 뜻을 기리길 권하고 싶다.
Q>.자녀 교육
마치 개를 끌고 다니듯 아기의 젖가슴을 X자로 엮은 끈을 끌고 산책하는 어머니를 미국 공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아기를 X자로 엮은 채 마치 짐바리 걸어놓듯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한가하게 잡담하고 있는 어머니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어머니로부터 아이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급적 격리, 독립 시켜 마치 짐승 순화(馴化)하듯 엄하게 버릇을 들인다. 우리 한국의 어머니처럼 머리에 물동이 이고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젖을 물리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걸어 가는 그런 곡예에 가까운 모자밀착(母子密着)의 의존적 육아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10여 년 전 영국 북부 요크셔의 한 회계사의 집에 초대되어 저녁 밥을 대접 받은 일이 있다. 댓 살쯤 먹어 보이는 그 집 사내놈이 식탁 맞바로 턱을 괴고 앉아서 나에게 물었다.
왜 얼굴이 희지도 않고 검지도 않느냐, 당신의 아버지는 껌둥이고 어머니는 흰둥이냐는 등 멀쩡한 사람 트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아무리 나이 어린 아이기로서니 속을 칵 뒤집어 놓은 질문이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어머니가 그 아이의 멱살을 낚아 채더니 개 끌듯 끌고 가 제 방 앞에 세워 놓고 마치 법정에서처럼 엄숙하게 손을 들게 한 다음, "너와 나의 약조에 의해 다섯 시간 감금이다. 그 동안 밀크와 쿠키를 한 번만 공급한다."고 선고하고, 방에 밀어 넣은 다음 밖에서 자물쇠를 잠가 버리는 것이었다.
모든 가정에는 아이들이 잘 하고 못하고 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포용(包容), 의존시키는 모성 원리(母性原理)와 잘 하고 못하고를 가려 단절, 독립시키는 부성 원리가 더불어 작용하고 있다.
영국의 가정에서는 이렇게 어머니 마저도 부성 원리로서 군림하는데, 우리 한국 가정에서는 아버지 마저도 모성 원리로 작용하고 있으니, 이렇게 응석받이 만으로 자란 아이들이 가정 밖으로 나갔을 때 일어나는 부작용이 한국에 있어서의 청소년 문제의 원인(遠因)이요, 진원(震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제 그제 발표된 정부의 청소년 종합 대책의 주요 골자는 이 청소년의 비행을 가정과 연대(連帶)시킴으로써 가정에 있어서 부성 원리의 회복을 촉구하는 데 두고 있다.
예로부터 집안에는 무서운 사람 한 사람을 일부러라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남보다 돈을 못 벌어 오고 남보다 지위가 하찮은 아버지일지라도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 줌으로써 희미해진 아버지상(像)의 음화(陰畵)를 양화(陽畵)로 부각 시켜 주는 기회 부여가 되었으면 한다.
R>.분유와 모유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 나자 마자 아기는 목 놓아 운다.
왜 우는 걸까?
세익스피어는 리어 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설명하게 하고 있다. 바보들 만이 사는 커다란 무대에 타의에 의해 밀려 나오게 된 것이 억울해서 울어 댄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가 없지 않지만 실은 탯줄로 연결되어 전도됐던 어머니의 맥박 소리가 단절됨으로써 엄습하는 인생 최초의 불안 때문에 운다고 한다. 태아는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동맥을 통해 양수(羊水)에 전달되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자라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갓난아기를 안정 시키려면 자궁 속에서 들었던 맥박 소리를 어떤 방식으로든지 들려주어야만 한다. 어머니들이 젖을 먹일 때는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젓을 먹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원숭이 젖 먹이는 것을 관찰한 코넬 대학의 소크 박사는 42 케이스 가운데 40 케이스가 외로 안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심장이 왼쪽 젖가슴에 위치하기에 고동 소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들려 주기 위한 무의식적 동작인 것이다.
왼쪽 젖이 크고 오른쪽 젖이 작은 짝젖이어야 아기가 병 없이 잘 자란다는 속전이 있는데, 이 역시 좌포수유 (左抱授乳)의 과학적 이치를 우리 선조들이 터득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곧 모유를 먹이는 것은 모자의 맥박 연결에 의한 정신적 안정, 그리고 건전한 뇌세포 형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문헌 '임원경제십육지'에 보면 젖이 나고 안 나고, 적게 나고 과하게 나며, 또 묽고 진하고 하는 것은 반드시 어머니의 희비애노(喜悲哀怒), 애증원투(怨妬)같은 감정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러했기로 옛날 유모를 고를 때 그 유모의 성깔이나 사람됨을 까다롭게 살폈던 이유가 젖 속에 심지(心志)가 들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류 정신의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낳아서 백일 동안 모유를 먹이고 기른 아이와 먹이지 않고 기른 아이의 성장 후 정서와 지능을 대비시키고 있다. 전자의 경우 사랑, 신뢰, 감사 등 선량치가 높고, 후자의 경우 탐욕, 질투, 편벽등 불량치가 높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유럽의 으뜸 가는 명가(名家) 합스부르크가는 대대로 심신이 건전하고 미모로 소문나 있는데, 아기는 반드시 모유로 기르게끔 성문화된 합스부르크 가법(家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합스부르크 대공비(大公妃)도 여섯 명의 자녀를 모두 모유로 길러 내고 있는 것이다. 곧 모유는 개인의 인간적 우수성을 위해서 뿐 아니라 민족의 우생학적 우수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장려 돼야 할 육아법인 것이다.
어머니 젖으로부터 아기를 이간시킨 분유, 그 분유업자들이 모유 운동에 호응, 분유 광고를 내지 않기로 한 것은 뒤늦은 대로 제 길 찾아든 것이 된다.
S>.불량아 부모 처벌법
비행(非行)을 저지른 자식에게 부모가 종아리를 쳐 응징하고 교육하는 관습은 동서고금이 다를 것이 없다. 한데, 그와는 정반대로 비행을 저지른 자식으로 하여금 아버지-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게 하여 자식을 교육하는 관습은 이 세상에서 우리 나라 말고는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비행을 저지른 자식을 도장 속에 가두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밤이 깊어지면 아버지는 이 아이를 앞세워 강 건너 산 속에 있는 조상의 무덤까지 끌고 간다. 무덤에 이른 아버지는 굵직한 회초리를 서 너개 꺾어다 무덤 앞에 놓고 큰 절을 하며 돌아 가신 조상에게 다음과 같이 고한다.
`본관(本貫) OO의 O씨(氏) 몇 대 손 아무개 엎드려 고하나이다. 소자 불초하여 자식 하나 못 거두고 못 가르쳐 이런 저런 못된 짓을 저질러 조상에게 누를 끼쳤사오니 그 죄의 대가로 저의 종아리를 피가 튀도록 쳐 주시옵소서.'
그러하고는 종아리를 걷고 상돌에 올라 선 채 비행을 저지른 자식 놈으로 하여금 꺾어 온 회초리를 들려 사정 없이 치도록 호령을 한다. 조상 앞에서 자식이 지은 죄를 아버지가 벌받는 이 응징 방법을 `조상(祖上) 매'라고 한다.
나이 어린 자식은 자신의 자칫한 잘못이 이렇게 조상에게까지 소급되는 연대 죄악이라는 것을 통감하게 될 것이요. 아버지-할아버지의 종아리를 치지 않을 수 없음으로써 얻어지는 교육 효과 또한 막중했음 직하다.
부자(父子) 결속이 유별나게 강했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는 아녀자가 저지른 과실을 아버지가 대신 벌 받는 것은 상식이 돼 있었다.
옛 마을의 자치 규약인 향약(鄕約)에 보면 미성년자가 부녀자를 희롱하거나 서로 싸워 상처를 내거나 주정을 하거나 노름을 하거나 하는 등의 비행을 저지르면, 그의 아버지를 만좌면책(滿坐面責)이라 하여, 동네 마당에 세워 두고 창피를 주었다.
부자 간의 도덕적 유대나 모자 간의 정서적 유대가 우리 나라 만큼은 억세지 못한 서양 사회에서는 바랄 수 없는 전통이다.
한데 근간 미국에서는 마약-폭력-총기-성범죄 등의 청소년 비행이나 범죄는 부모들이 벌금을 물고, 구금을 당하는 연좌 법률을 제정하는 주(州)가 늘고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밤 11시 후에 외출하거나 결석을 하는 아이의 부모에게도 응분의 제재를 가하는 주(州)까지 생겨 나고 있다 한다.
자녀를 둔 부모의 위상(位相)에 작은 혁명이 진행되고 있음이요, 그 우리 전통적 위상(位相)이 각광을 받는 작은 혁명이다.
T>.비교 탁아 문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 보면, 18세기 파리의 상류 사회 사람들은 아기를 낳으면 자신이 기르지 않고 파리 교외의 가까운 농가에 값싼 삯을 주고 맡겨 버린다. 이렇게 유료 탁아(有料 託兒)를 하고서 그 아기에게 방해 받지 않고서 스스로의 문화 생활을 즐긴다. 문제는 농가에 맡겨진 아이들의 수난(受難)에 있다. 농부는 일하러 나가야 하기에, 그 아이에 묶여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두어 놓고 나가거나 묶어 놓고 나가지만, 그것이 잘못 열리거나 또 풀리거나 하여 뜨거운 물 솥에 얼굴을 처박거나 높은 데서 떨어지거나 하기 일쑤다. 같은 무렵 모차르트의 아버지의 편지 속에서도 파리에는 손이 없다든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든가 큰 화상을 입은 아이들이 왜 그다지 많은지 놀랐다 하고, 그 원인으로 `에밀'과 같은 탁아 풍속을 들고 있다.
그리하여 아기들을 마치 미이라처럼 붕대로 꽁꽁 묶어서 꼼짝 못 하게 해 놓고 벽이나 기둥의 큰 못이나 마당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나가는 습관이 생겨 났다 하였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의 공원을 거닐다 보면 미이라처럼 묶지는 않지만, 나뭇가지에 배낭 걸어 놓 듯 아이를 걸어 놓고, 유유자적 즐기고 있는 부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히말라야의 고산족(高山族)들도 일하러 나갈 때는 아기에게 젖줄을 물려 닭장 매달듯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러시아 등 슬라브 민족들도 아이들을 부대로 결박해 기르는데 이들 국민성과 이 결박 양육 습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요람(搖籃)도 아기 기르는 노동에서 일손을 해방시키기 위한 구속 기구(拘束 器具)로 전 세계에 널리 분포돼 있다.
우리 나라에는 `아기 구덕'이라 하여 제주도에만 이 요람이 있을 뿐, 이 세상에서 요람이 없는 아주 희귀한 육아 문화를 지닌 나라로 학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모자 이탈(母子 離脫) 기구가 없었다는 것은 어머니와 아기의 피부 접촉 시간이나 접촉 공간이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큰 여건 속에 한국인은 자라고 있는 것이 되며, 이것이 한국인의 의식 구조나 민족성 형성에 주요 인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사주팔자(四柱八字)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남의 집에 맡겨 기른 탁아 민속은 있었지만, 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를 테면 연산군(燕山君)도 사주팔자 때문에 남대문 성 밖의 강정승 집에서 양육되었다.
요즈음 부인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전통적으로 탁아 문화(託兒 文化)가 없었던 우리 나라인지라 많은 고충과 문제가 야기되고 있는 것 같다.
여성 단체에서 일손이 남는 이웃에 맡기는 인가 탁아(隣家 託兒)를 계몽하기로 했다던데 이것도 그런 고충 끝의 소산이랄 것이다.
U>.아기 보는 로봇
히말라야 고산족(高山族)의 어머니들은 밭에 일하러 나갈 때 젖아기를 칭칭 묶어 닭의 둥지처럼 처마 밑에 걸어 놓고 나간다.
배가 고파 고개를 돌리면 양젖을 담은 가죽 주머니가 입에 물리게끔 장치돼 있을 뿐이다.
중세 유럽에서 아이를 낳으면 일정 기간 동안 농촌에 위탁 시켜 기르는 관습이 있었다. 어머니의 과보호가 정신 형성에 끼치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서다. 농촌에 맡겨지는 아기는 거칠게 양육 되게 마련이다.
농부(農婦)는 띠로 사지와 육신을 칭칭 감아 기둥 못에 걸어 놓고 나가거나, 밭에 데리고 나가서도 나뭇가지에 물건처럼 걸어 놓고 일을 한다.
지금도 미국의 공원에 나가 보면 산책 나온 어머니들이 마치 개 끌듯 X자로 묶은 가슴에 끈을 연결, 아기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이따금 나뭇가지에 아기를 걸어 놓고 잡담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기들은 모체로부터 이탈 시켜 양육시키는 것이 상식이다. 이 세상의 모든 지역에서 아기들은 아기 구덕 속에 담아 기른다. 구덕이란 나뭇나 짚으로 엮은 바구니로, 그 속에 담아 운신을 속박하는 양육기구다. 이 아기 구덕이 없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제주도를 제외한 우리 나라 뿐이다.
18세기의 실학자 이규경(李硅景)은 중국에 '두자(兜子)'라는 아기 구덕을 변증하면서 우리나라에 이를 도입하여 어머니들의 일손을 덜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적고 있다.
이 세상의 양육 문화는 이처럼 모체로부터 격리 시켜 기르는 모체 이탈 양육이 상식인데, 유독 우리 나라 만이 철저하고 완벽한 모체 밀착 양육을 해 왔다. 집안에서 일할 때는 젖이 물린 채 안겨 있고, 집 밖에서 일할 때는 등에 업혀 나가며, 잠잘 때는 팔 베개 베고 재운다.
모체와 이간시키는 중간 물질은 일절 배제하고, 살 붙임으로 하루 종일 등온(等溫)을 유지하면서 양육된다. 이미 고려시대에 우리나라에 왔던 송(宋)나라 사신 서긍(徐兢)은 한 아이는 등에 업고, 한 아이는 앞으로 안고, 한 아이는 손 잡고 물동이 이고 가는 부인을 보고 감탄하고 있다.
그런 우리나라에서 아기를 돌보는 가정용 로봇이 개발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착된 각종 감지 장치(感知 裝置)가 있어 장애물이나 계단 같은 위험물을 미리 감지하여 안전하게 돌보고, 또 뜨겁거나 춥거나 하는 온도도 감지하고 울음 소리도 무선으로 알려 주는 등 사람 몫을 단단히 한다는 것이다.
닭 둥지처럼 매어 기르고 기둥에 걸어 기르는 모체 격리형 문화에서는 십상의 발명이 아닐 수 없고, 아기 보는 베이비 시터를 대신하기에 시장도 광범하다. 하지만 모체 밀착형 문화의 우라나라에서는 기계가 아기를 보는 세상이란 실감도 나지 않고 무상감 만이 더 할 따름이다.
V>.아버지의 권위
짐승의 아버지 가운데 가장 형편 없는 것이 사자의 아버지다. 용맹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발이 둔족(鈍足)이라, 사냥에 서툴다. 아프리카 야생 공원에서 발이 빠른 사슴 떼가 사자 둘레에 풀을 뜯고 있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사슴 같은 나약한 짐승까지도 사자 아버지를 깔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배가 고프면 사자 애비가 새끼 있는 곳으로 다가 가 같이 어울린다. 어머니 사자가 먹이를 잡아 오면 새끼들을 먹이고 난 찌꺼기라도 얻어 먹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나이로비 야생 공원의 감독관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악어에게 상처를 입은 어머니 사자와 그 새끼들을 다른 어머니 사자들이 반년 가까이나 양육한 것을 목격한 일은 있으나, 어머니 사자가 아버지 사자를 배려한 사례는 전혀 본 일이 없다 했다.
먹이를 못 잡아 주기에 권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자. 한데 먹이를 열심히 벌어다가 먹여 주는 인간의 아버지에게도 권위가 증발하고 없으니 사자 아버지 보다 더 처참하지 않은가?
이제 정액의 공급자라는 가치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아버지' (마르쿠제)... 그 부친 부재 현상을 피부에 느끼게 하는 `아버지 학교(學校)'가 작금 서울에 개설됐다 한다. 주부 대학, 어머니 교실, 신부 학교... 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아버지의 권위나 역할을 되찾게 한다는 아버지 학교 소식을 듣고 보니, 그것이 요구될 만큼 아버지가 형편 없어졌나 새삼스러워진다.
예부터 자녀를 올바로 길러 내기 위해서는 집안에 무서운 사람 하나를 일부러라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 하여, 아버지의 권위를 부양시키는 법도가 다양했다. 이를테면 양식을 나를 때 식구 먹을 것은 종이 져다 나를지라도 아버지 진지를 지을 쌀 만은 따로 자식이 들고 운반하게 한 것은 공자(孔子) 이래 권위 부양의 비결이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아비 없이 큰 딸에게 장가 들이지 않는다' 했고, <예기(禮記)>에 `과부 아들과는 사귀지 말라' 했음은 바로 아버지의 권위가 결여된 집안의 인간 형성에 하자를 인정한 때문이다.
언젠가 어느 여성 잡지(女性 雜誌)에서 한 목수 아내의 수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밤마다 술주정이 심한 애 아버지가 `당신이 미련하니까, 아이들도 한결 같이 공부를 못하지' 하고 삿대질을 했다. 이에 아이들을 보고 `너희들이 공부를 잘못한 것은 모두 엄마 탓이다. 하지만 훌륭한 기술 만은 익힐 수 있으니 노력해야 한다. 아버지 처럼 말이다' 했다.
속에서 화가 들끓겠지만, 자녀를 위해서 이렇게 권위를 세워 주어야 그 가정이 화목하고, 아이들이 비행(非行)에 흐르지 않게 되더라는 그 수기는 감명적이었다. 아버지의 자각과 아버지를 보는 어머니, 자녀의 인식이 달라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W>.어린이 방 무용론
어릴 적에 곧잘 놀았던 씨름에 참 씨름과 개 씨름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땅에다 동그라미를 그려 씨름 판을 정해 놓고 하는 씨름을 참 씨름, 씨름 판을 그려 놓지 않고 하는 씨름을 개 씨름이라 했다. 판이 없으면 재미도 없고 또 씨름이 늘지 않는다 하여 개 씨름이라 불렀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것도 밀고 밀리는 한계가 있고, 어느 한계에서 참고 버리며 어느 한계에서 늦추고 힘을 부리는 그런 참 씨름에서 세상 사는 슬기고 생기고 또 세상도 재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한데 요즈음 아이들은 천성대로 길러야 한다는 이상한 유아론(有兒論)이 지배하고 있어, 판도 그리지 않는 개 씨름을, 개 씨름도 종의 아들이 상전의 아들에게 져 주는 그런 개 씨름을 시키고 있다.
아이들은 도덕을 가르는 아버지와 심정을 가르는 어머니, 이해를 가르는 형제자매라는 규제와 억제 요소의 판 속에서 참 씨름을 해 가며 자라야 하는 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으로부터 도피해 있을 수 있는 어린이 방을 없애야 한다는 무용론(無用論)이 구미(歐美)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근간에 조사된 바로 국민학교 고학년의 어린이로서 자기 방을 갖고 있는 비율이 영국 54%, 미국 56%로 감소 추세이며, 일본 만이 76%로 증가 추세에 있다 한다. 일본이 고율(高率)인 이유 가운데는 전쟁 세대들이 그토록 선망했던 자기 방 갖기를 자녀들에게 보상하려는 비원(悲願)도 작용하고 있다 한다. 조사된 것은 없지만 우리 나라도 어린이 방에 대해서는 일본(日本)의 추세인 것 만은 두 말 할 나위가 없겠다.
입시(入試)나 입사(入社) 시험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상사에게서 꾸지람을 듣거나 동료로부터 소외 당하는 것으로 절망, 인생을 좌절 시키거나 자살을 기도하거나, 노이로제에 걸린 사람의 대부분이 유아(唯我) 독존을 보장 해 준 개실(個室)이 있는 집에서 자란 아이라는 통계 보고가 있다. 반대로 세상 일이 제멋대로 안 되면 자신에게 원인을 돌려 반성하기 보다 모두 세상이 나쁘기 때문이라 하여 제멋대로 안 되게 하는 권위의 대상- 곧 부모(父母)나 선생이나 상사에게 곧잘 폭력을 휘두르는 친근(親近) 상대의 폭력 행위자도 개실이 유죄(有罪)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한 일본의 학자는 대학생들이 데모를 할 때, 소중히 해야 할 책걸상을 꺼내 던지고 태우고 짓부수는 행위도 이 개실에 갇혀 지긋 지긋하게 강요된 공부에 대한 잠재 의식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개실을 주면 개성(個性)이 자란다는 것은 환상이며, 빨리 개실(個室)을 줄수록 무기력이 커지고, 사람과 사람과의 매듭에서 보다 빨리 소외 시키는 것이 되며, 반사회(反社會)적인 미완성품(未完成品)을 보다 앞당겨 만드는 것이 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개실 대신 모자(母子)-부자 공용(父子 共用)이나 가족 공용의 책을 읽는 방으로 개조하고 있다 하니, 눈 여겨 둘 만한 일이라고 본다.
X>.오향(五香) 육아 철학
중국에서 아기가 태어 나면 어머니의 젖을 물리기 전에 오향을 차례로 맛보게 한다. 오향은 다섯 가지 향기 나는 달콤한 먹이가 아니다.
맨 먼저 초 몇 방울 입 안에 떨어 뜨려 핥게 한다. 갓난 아이는 눈과 입술을 움츠리며 온 몸을 수축시킬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소금을 약간 핥게 한다. 세번째는 황련(黃蓮)이라는 쓰디쓴 한약을 핥게 한다. 짜증스런 표정을 지을 것은 뻔한 일이다. 그리고 구등(鉤藤)이라 하여 등나무 가시로 혀끝을 따끔하게 찌른다. 움찔하며 울어 댈 것이 뻔하다. 그러고 나서야 다섯번째에 달디 단 설탕을 핥게 한다.
이렇게 해서 오향인 것이다. 갓 난 철부지에게 별난 짓도 다한다 할지 모르지만, 상징적 의미가 큰 것이다. 신맛, 짠맛, 쓴맛, 아픈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나, 이 같은 싫은 일들을 참고 견딘 후에야 만이 인생의 단맛을 맛볼 수 있음을, 기를 어머니와 길러지는 아이에게 동시에 터득시키는 교육적 의식이랄 수가 있다. 그래선지 전통 사회에 있어 중국의 어린이들은 한국의 어린이들 보다 정신적으로 단련 받으며 양육된다.
중국은 물이 나쁘기에 음료수 뿐 아니라 생활 용수를 뜨겁게 데워 쓴다. 각 가정에서 충당하기에는 수요가 많기에, 뜨거운 물만 끓여 파는 열탕집이 성업이게 마련이요, 대여섯 살만 되면 주전자를 들고 이 더운 물 사러 가는 것으로 중국 어린이는 가사 참여를 시작한다. 자칫하면 몸을 데이는 조심스런 일부터 시킴으로써, 조심성을 기른다. 그리하여 예닐곱 살만 되면 아버지 점포에 나가 가게를 봄으로써, 가사 참여에서 가업 참여로 비약한다.
그래서 중국 아이들은 전통적으로 경제적 두뇌가 발달하여 제 옷 한벌 만드는 데 몇 자 몇 마, 솜이 몇 근, 바느질 품값이 얼마 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나날이 변하는 미국 달러, 영국 파운드의 환율이 얼마라는 것도 줄줄이 외우고 있게 마련이다.
중국에는 전통적으로 어린이들 노리개를 상품화 해서 팔고 사는 전통이 없다 한다. 놀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명나라, 청나라 때 우리 나라에 사신길 왔던 중국 사람들의 기록 가운데 공통으로 적혀 있는 인상(印象)의 하나가 한국 어린이들의 울음 소리였다. 중국 같으면 가업에 종사할 예닐곱 살 먹은 것들이 마냥 울어 대는 것을 보았을 때 느낌이 어떠했을까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데, 그 중국에서 어린이 과보호를 두고 '미래 중국을 궤멸 시키는 가장 가공할 제일 공적(公敵)'으로 규탄하는 여론이 거세어지고 있다는 근간의 보도가 있었다. 한 집에 한 아이 밖에 낳지 못하게 되면서 애지중지 과보호가 체질화 되고 오향의 전통 육아와는 전혀 다른 육아 문화가 형성된 데 대한 의구심이랄 것이다. 가정의 달에 심각하게 음미해 볼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Z>.모유
동물원의 원숭이가 갓 낳은 새끼를 안을 때 반드시 왼쪽 가슴에 머리가 닿도록 안는다 한다. 뉴욕 센트럴 파크의 동물원에서 이것을 관찰한 코넬 대학의 소크 박사는 42회의 관찰 케이스 가운데서 40번이나 왼쪽으로 안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산부인과 병원의 분만실에서 산모 몰래 관찰한 결과는 83퍼센트가 갓난아이를 왼쪽으로 안고 있었다 한다. 소크 박사는 또 미술관에 전시된 모자(母子)를 테마로 한 역대 회화나 조각 4백 66점을 조사하고는 3백 73점 - 80퍼센트가 왼쪽으로 안고 있음을 알아 냈다.
'운낭자상(雲娘子像)'을 비롯한 우리 나라 모자상들도 대체로 왼쪽으로 아이를 안고 있다. 우리 옛 어머니들 왼쪽 젓을 오른쪽 젖보다 대체로 커져 있어 짝젖이 상식이 돼 있었던 것도 아기를 왼쪽으로 안고 왼쪽 젖을 주로 먹였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왼쪽으로 아기를 안는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 만은 아닌 것이다.
태아(胎兒)는 자궁 속에서 어머니의 대동맥을 타고 양수(羊水)에 전도되는 심장의 맥박 소리를 듣고 자란다. 그래서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 이외의 것은 불협화음으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본능적으로 왼쪽 가슴에 유아(乳兒)을 안고 또 본능적으로 왼쪽 젖을 먹이게 되는 것은 바로 왼쪽 가슴에 심장이 자리잡고 있어 태반 속에서 듣던 리듬을 지속시켜 줌으로써 양수시대의 고향에 돌아간 듯한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모체에서 격리, 이 리듬의 연속을 단절시켜 기르면 자주 울거나 잠을 못 이루거나 하는 것으로 그치질 않고 자율신경 발달에 결정적인 결함을 준다고 한다. 자율신경이란 자신의 의사에 의해 조절되는 신경이 아니라 심장이나 위장, 혈관, 근육 등에 널리 분포돼 있는 신경계로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생체 유지를 위해 자율적으로 활동해 주는 신경계다.
이것이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약체 체질이 되고 말을 더디 익히며, 특히 운동 신경이 크게 둔화된다고 한다. 엄마의 왼쪽 젖을 먹고 자라지 않으면 올림픽 금메달 선수는 될 수 없다는 것이 된다. 13세기에 남 유럽을 지배했던 프레드릭 2세는 자기 혈손들을 기를 때 젖을 먹이지도, 또 만지지도 못하게 격리시켜 기르게 했다. 혈통 따라 흘러 내려 온 '신성(神聖)'이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렇게 기른 아이는 모조리 죽고 있다. 모자(母子) 간의 피부 접촉이 있고 없고는 자율 신경 둔화 뿐 아니라, 심하면 생존 문제에 까지 직결되고 있다.
여자의 유방은 그렇게 값진 것인데, 현대의 어머니들은 모유(母乳)를 기피, 모자 간의 피부 접촉을 단절시키고 있다.
서울에 모유를 보관했다가 신생아에게 먹이는 모유은행(母乳銀行)이 생겼다는데, 피부 접촉에 굶주려 약체화 하는 그 많은 아이들을 위해 유방 은행 같은 것도 생겼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