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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120억 달러짜리 필기구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시 119:160)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돌았다. 나사에서 우주 비행사들을 위해 무중력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필기도구를 개발했고 여기에 10년 동안 120억 달러를 투자했는데 러시아연방우주국은 자국 우주인에게 연필을 지급해 이 문제를 간단히 해결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정부 기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120억 달러짜리 우주 필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 있는 사람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거의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경에 관련해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아무런 증거 없이 퍼지곤 한다. 그 결과 수많은 교파가 존재하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예언을 들먹이든, 아무리 진심으로 그 말을 믿든 그 사람이 예측하는 날에 예수님은 오시지 않을 것이다. 재림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마 24:36). 하나님의 율법은 폐지되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이 이 점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죄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그렇게 주장해도 성경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믿음이 올바른지를 확인해야 한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소개된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
우리의 믿음이 성경적인지 확인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오류인데도 권위 있는 사람이 지지했다고 해서 또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라고 계속 우겨 대서 인정받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영적 오류를 피할 수 있도록 말씀이라는 보호 장치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오류가 유익할 일은 결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옳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종교 박해를 받는 기독교인 3억 6천만 명을 위해
4월 2일
정죄함이 없나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 8:31)
영적 복을 얻고 싶은 사람은 로마서 8장을 읽으라. 이 놀라운 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라는 단언으로 글을 시작한다.
죄와 정죄는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이나 자신 또 하나님을 마음 아프게 하면 자연스레 후회의 감정이 뒤따른다. 죄책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영적으로 큰 타격을 입는다.
사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3:23; 6:23).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고(사 59:2) 인류는 정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한다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로마서 8장 1절은 선언한다.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실수를 용서하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살인을 저지른 모세를 용서하셨다.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내쫓으셨다. 우물가의 여인은 죄를 용서받았을 뿐 아니라 온 동네에 예수를 통한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느부갓네살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수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아담과 하와는 세상에 죄를 들여놓아 예수의 희생을 초래했지만 용서받았다.
미가 7장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노하지 않으시며 자비를 베풀기를 좋아”하신다고 말한다(쉬운). 시편 136편에는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내용이 스물여섯 번이나 등장한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롬 5:20).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과거에 어떤 일을 벌였든, 혹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든 하나님은 은혜로운 분이시다. 자기 삶을 예수께 바치고 성령의 이끄심에 굴복하는 사람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훈, 조혜정 선교사 부부(네팔)
80여 직업 훈련생들이 훈련을 잘 마치도록 능력 주시기를
4월 3일
대신 죽으셨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7~8)
1943년 2월, 미군 수송선이 그린란드로 향하는 해군 함대와 순항 중이었다. 미 함정 도체스터호에는 군 병력과 승무원, 민간인 등 900명이 승선해 있었다. 2차 대전이 한창인 시기에 병력 수송은 위험천만한 일이었고 배는 뉴펀들랜드의 해안을 벗어난 뒤 독일 잠수함의 어뢰에 맞아 침몰하고 말았다.
어뢰 폭발로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부상자도 속출했다. 생존자 중 다수가 구명조끼를 가지고 있었지만 모든 사람이 입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때 신부 한 명과 목사 두 명, 랍비 한 명이 다른 이들의 탈출을 돕고 나서 군인들에게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내주었다. 그러고는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며 배와 함께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결국 그들은 친구나 신자들뿐 아니라 배에 있던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주었던 것이다. 용감하고 헌신적인 네 사람이 남기고 간 최후의 희생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을 창조하신 분(요 1:3)께서는 몰락한 이 세상을 그토록 사랑하시어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다. 이것은 사소한 일이 아니다. 죄에 빠진 인간을 위해 하나님이, 상한 자를 위해 온전하신 분이, 악한 자를 위해 순결하신 분이 죽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희생하면서 편애하거나 구별 짓지 않으셨다. 오늘도 그분은 자기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요 3:16). 주께서 남을 위해서만 죽으신 게 아니다. 바로 그대 자신을 위해서 죽으셨다.
성직자들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받았던 네 사람은 자기들 대신 죽음을 맞이한 네 성직자 덕분에 자신들이 살아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께서도 그대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그 사실은 오늘 그대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석희, 전은경 선교사 부부(몽골)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4월 4일
철거 대상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어느 날 황무지 같은 동네를 걸으며 ‘철거 대상(Condemned)’이라고 쓰인 가옥 몇 채를 지나게 되었다. ‘철거’라는 표현이 좀 세기는 하지만 그 집들이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했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 그 건물들의 모습이 어땠을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신축 주택 단지는 으레 희망이 넘치는 곳이다. 가족이 모여 살도록 설계된 곳,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새 집이란 사람들이 미래를 그리고 다가올 일을 계획하는 약속의 장소다.
그러나 이제 그 집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었다. 일꾼들이 새 자재를 이용해 자부심을 갖고 지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내버려지고 지금은 쓰러져 가고 있었다. 심하게 부서져 남은 길은 철거뿐이었다. 희망이 없었다. 그 건물들을 내버려 두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가능성과 희망의 집약체이다. 그들은 자라서 마틴 루서 킹 목사, 퀴리 부인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아이는 세상을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하나님을 배우고 그분의 품성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영적으로 고갈되어 끝내 영적 황무지가 되어 버린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자신을 위한 하늘의 계획과 점점 멀어져 영생을 놓치고 만다. 철거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이 있다. 로마서 8장 1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condemnation)이”, 즉 ‘철거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 사람이 누구든, 얼마나 망가졌든 예수님만 붙든다면 멸실될 일이 없다. 하나님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버려질지 모를 인간들을 새롭게 하는 사업을 지금 진행하고 계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강병주, 김윤숙 선교사 부부(대만)
신주금성 교회의 온라인 사역
4월 5일
실패가 아니라 승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4)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능력을 보장받는다. 그런데도 패배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많다. 해묵은 죄를 짓고 또 짓고 넘어져 틀을 깨지 못하는 삶이 절대로 바로잡히지 않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가면 옛 자아에게 지배당할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따라 사는”(롬 8:4, 새번역)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겠다고 약속하셨다.
어린 시절 길을 걸을 때 우리는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었고 부모님은 우리가 올바르게 설 수 있도록 붙잡아 주셨다. 여러분이 하늘 아버지께 손을 내밀면 그분도 똑같이 해 주실 것이다. 성질이 괴팍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신경 거슬리는 일이 그에게 생겼다. 그는 육신에 사로잡혀 육신의 충동에 따라 행동한다. 결국 죄를 짓게 되고 그는 절망감에 빠져 자신은 결코 바로잡을 수 없으며 시험이 닥칠 때마다 계속 넘어질 것이라고 체념한다.
그러나 시험이 닥칠 때 그는 자아의 충동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 자기를 이끌어 달라고, 성령의 능력으로 지켜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은 영적 패배를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에게는 ‘심호흡 한 번 하고 그 상황을 피하여라. 맘에 담아 두지 말고.’ ‘그냥 웃어 넘겨라.’와 같은 성령의 음성이 들린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이끄심에 자신을 맡기면 하나님께서는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가져다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로 그대 안에 율법의 의가 실현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그대가 그 의를 경험하길 바라신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동혁, 김아림 선교사 부부(캄보디아)
지역 사회 선교를 위한 카페 및 테마 공원 조성
4월 6일
배웠다는 사람들이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딤전 6:20)
수백 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는 방법은 인쇄된 활자를 읽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로 카세트, 음반, CD로 성경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디지털화하여 휴대폰, 태블릿, PC에서 인터넷 등으로 성경을 접할 수 있는 길이 무수히 많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일반인들이 쉽게 성경을 접할 수 있었다. 예리한 질문을 던졌던 남자에게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라고 물으시면서 그를 성경으로 이끄셨다. 그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고 질문의 답을 찾으리라 믿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성경을 접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특히 그랬다. 믿기지 않겠지만 성경을 일부분만 갖고 있어도 크게 처벌받는 시대도 있었는데 그 처벌은 다름 아닌 교회에서 시행했다.
지금은 어디서나 성경을 접할 수 있다. 성경은 변함없는 베스트셀러이다. 그런데 이제 믿음의 원수는 무지가 아니라 지식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딤전 6:20)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신앙을 좀먹는 교육이 있다. 성경의 근본적인 가르침들이 ‘배웠다는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창조 이야기는 무시당하기 일쑤이다. 동정녀 마리아의 출산을 비롯한 성경의 이적을 부정하는 신학자도 수두룩하다. 교회는 무식하고 잘 속는 인간들이나 다니는 곳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좀처럼 줄지 않는다.
배움의 기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다. 교회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 중에는 학식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경험에 결코 믿음이 빠져서는 안 된다. 요한복음 17장 17절에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말씀이 곧 진리”(공동)라고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곧 진리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 선교
북한의 2,500만 영혼을 위해
4월 7일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찾듯이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2013년에 한국 정부는 청라 시티타워 건축을 승인했다. 청라 시티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열 손가락 안에 들 뿐 아니라 ‘사라지는 타워’로도 유명하다. 타워 표면에 설치한 대형 LED 스크린에다가 건물 반대편에서 찍은 배경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투사해 마치 450m짜리 건물을 통과하여 배경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지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많은 무신론자가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있다. 성경의 몇 구절은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베드로도 바울의 글에는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했다(벧후 3:16). 마음이 닫혀 있으면 하나님의 가장 명백한 진리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 말씀의 아름다움과 깊이가 보인다.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찾는 이들은 땅을 엄청나게 많이 파야 하지만 그 밑에 값진 광물이 있기에 그 험난한 채굴 과정을 의미 있는 작업으로 여긴다.
흔치 않지만 지표면 근처에서 보석이 발견될 때도 간혹 있다. 2019년에 취미로 금속을 탐지하던 사람이 호주 서부 캘굴리 지역에서 1.4kg짜리 금덩이를 발견했다. 아칸소주에는 자신이 찾아낸 다이아몬드를 가져갈 수 있는 ‘크리에이터 오브 다이아몬드’ 주립 공원이 있는데 1975년에 한 방문객이 16캐럿이 넘는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와 같은 구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마 22:39)는 말씀은 연구하지 않아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기도할 때 여러분의 눈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라. 말씀 깊숙한 곳에 놓인 것들을 찾기로 마음먹고 말씀을 파라. 더 깊이 파고들라. 그러면 성경에서 수많은 값진 보화를 발견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해성, 백관희 선교사 부부(네팔)
선교사로서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4월 8일
질문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
해리 밀러는 1879년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북서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그는 외과 의사이자 의료 책임자가 되었다. 밀러는 재림교회의 선교사로 중국에서 여러 해를 보냈고 병원 약 20곳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밀러 박사는 두유를 처음 개발한 사람으로 더 유명하다.
밀러 박사는 의대 재학 시절에 경험했던 일화를 들려주곤 했다. 한 학생이 질문을 받고서 대답하지 못하자 강사는 추가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튿날 강사가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러나 학생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셋째 날 강사는 다시 같은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학생이 답을 알고 있었다. 머지않아 의사가 될 밀러는 거기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질문을 받기 전에 답변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하루는 한 남성이 예수님에게 질문을 던졌고 예수님은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 10:26)라고 되물으셨다. 예수님은 그 남자가 직접 성경을 읽고 답을 찾기를 바라셨던 것이다. 그 바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겪는 문제의 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늘 찾을 수 있다.
만약 그 남성이 “율법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했다면 어땠을까? 베드로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벧전 3:1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숙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힘이 있다. 시험에 넘어지는 이유는 성경을 읽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성경을 읽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이 마음에 떠오를 수도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친 시간이 가장 값지게 사용된 시간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수, 이주연 선교사 부부(대만)
싸루국제 교회의 봉사 활동을 통한 선교 영역 확장
4월 9일
영인가 육인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 8:5)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우리가 주를 바라봄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고후 3:18).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 대상처럼 변한다. 쳐다보고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 그렇게 바뀌어 간다. 무엇에 몰두하느냐로 자신의 됨됨이가 형성된다.
세상 것과 정욕으로 마음을 채운 이들을 로마서 8장 5절에서는 “육신을 따르는 자”라고 말한다. 극장에 가는 것과 TV 시청을 비판하던 고리타분한 설교자들은 유익한 지적을 한 것이다. 영생의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우리와 진주 문 사이를 가로막는 것들이 우리 마음속으로 들어오곤 한다.
그와 반대로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성경을 읽으면 점점 더 읽게 된다. 꾸준히 예배드리며 살면 하나님과 가까워진다. 기도하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연결된다. 남을 위해 봉사하면 이기심을 물리칠 수 있다.
외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다고 영적으로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룩한 삶을 살고 싶다면 하늘에 애정이 생기도록 도와주는 습관들이 따라야 한다. 우리 마음은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흡수한다. 영양실조가 몸과 마음을 축내고 병을 유발하듯 영적인 영양실조도 우리를 하늘에 적합하지 않게 한다. 영적 영양실조가 정말 위험한 이유가 있다. 신체적인 건강 문제가 수년에 걸쳐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듯 영적 부주의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그 증상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영적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라. “영을 따르는” 삶을 살면 이 땅의 삶과 새로운 세상의 삶에 기쁨이 스며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갑숙 선교사(말라위)
직업 훈련원 건축을 위해
4월 10일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북아일랜드 퍼매너주에 있는 벨쿠에서 G8 정상회의를 위한 준비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주민들은 시큰둥했다. 당시 심각한 경기 침체로 벨쿠와 여러 다른 지역은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국은 외빈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게 앞을 큰 스티커와 포스터로 도배했다. 텅 빈 가게 하나는 북적이는 사무 용품점으로 꾸몄고 정육점이었던 점포는 가판대에 고기가 가득하고 장사가 잘되는 것처럼 꾸몄다. 그러나 실상 마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아 보였던 북아일랜드의 모습은 겉치레에 불과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신다. 현실이 늘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은 매력적인 거짓말 대신 험난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죄인은 자연히 천박하고 악한 것에 끌린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 부정한 육신의 것을 좇는 마음은 사망으로 향한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신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지만 잃은 양과 별 차이가 없는 사람이 많다. 영생은 “영의 생각”을 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바울은 생명과 평화를 주시는 성령께 우리의 마음을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세속적인 것에 중심을 두고 살면 영적인 미래는 어둡다. 저열하고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쏟으면 하늘에서 멀어지고 구원에 적합한 자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겉모습만 그럴듯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로 가득한 사람,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사람은 영의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긴다면 하나님은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주신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맘에 드는 생각, 우리를 하늘 가족으로 만들어 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진성, 김종숙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현지 교인들을 위한 제자 훈련 프로그램
4월 11일
열정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아 1:15~16)
아가는 솔로몬과 그 아내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사랑하고, 할인 판매를 사랑하고, 아이스크림을 사랑하고, 어머니를 사랑한다. 저마다 종류가 다른 사랑이다. 그러나 자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강렬하고 열정적인 사랑이다.
아가에 나타난 사랑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두 주인공은 사랑에 흠뻑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신다. 생생하고 강렬하게 하나님을 사랑할 특권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다. 요한계시록 2장 4절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실망감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첫사랑이란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랑이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랑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사랑이기도 하다. 서글프게도 그러한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진다.
첫사랑이 식어서 껍데기만 남은 그리스도인처럼 살 수도 있다는 점이 인간의 비극이다. 그렇다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렘과 두근거림이 전부라는 말은 아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원칙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 매일의 삶을 맡긴다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더욱 자라나고 깊어질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소망에 녹아들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 운동)
해외 캠퍼스 선교 운동에 더 많은 대학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4월 12일
돌이키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애 3:40)
광고에 등장한 모델의 화려한 이미지가 ‘현실’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완벽한 모습을 만들려고 포토샵은 물론이고 수많은 기법이 사용된다. 이제는 사진 속의 인물을 디지털 방식으로 보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피사체를 완전히 재창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치아를 미백하거나 고르게 다듬고 피부를 말끔하게 만들고 목 길이도 늘리며 몸매를 다듬는다. 잡지에 실린 사진은 대체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영적인 삶에서 사실 대신 거짓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성경에서는 자신의 삶을 돋보이게 보정하거나 그리스도인 경험을 덧칠하지 말라고 말한다. 꾸준히 도덕적인 모습을 점검하고 영적 거울을 통해 하나님의 뜻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그렇게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맘에 들지 않는 구석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하고 영적으로 미숙한 모습이 보일지라도 낙담해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예레미야의 조언은 우리에게 균형 잡힌 희망을 전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세심하게 살핀 다음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한다(애 3:40). 사탄이 가장 잘 써먹는 도구가 바로 낙담이다. 사탄은 우리가 단점을 발견하고 하나님에게 등 돌리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약점을 발견하는 그때가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있는 그대로 내 모습 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 모습을 본 다음에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지 말고 하나님께로 향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 김미현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4월 말에 개최하는 장막회 및 전도회를 위해
4월 13일
그분의 것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16:8)
유타주의 한 남성이 얼마 전 구매한 집의 다락방에서 4만 5,000달러를 발견했다. 돈은 수많은 작은 금속 상자 속에 봉인되어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숨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돈을 가져야 할지 전 주인에게 돌려줘야 할지 고민이 됐다. 마음속에 ‘이 돈을 정당하게 소유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한 뒤에는 확신을 갖고 아무런 미련 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인류가 누구에게 속하였는지를 하나님은 성경에서 분명히 밝히신다. 에스겔 16장에서 하나님은 완고한 자들에게 불만을 표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수많은 것을 베푸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등 돌리고 자기 길을 고집해 결국 파멸에 이르는 모습을 지켜보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죄악과 고집에도 하나님께서는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8절)
‘너를 내게 속하게 했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것이라 말씀하신다. 모든 약함과 실패와 부족함에도 우리는 그분의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들 곁에 서 계신다.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리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 삶을 그분께 내어 드린다면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것이다. 믿음으로 하늘을 붙잡는 하나님의 자녀는 매일 영원한 주의 나라를 향해 자라난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세심하게 ‘너는 내 것이 되었다.’라고 일깨우신다. 우리는 그분의 소유이며 그분께 소중한 존재다.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희망 속에서 기다릴 수 있다. 그분은 자기 소유를 찾으러 곧 오신다. 우리는 영원히 그분의 소유가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면주, 김영문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파키스탄 1000명 선교사 및 기도원 건축
4월 14일
내가 그를 타일러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호 2:14)
구원의 계획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은 정말 어떤 분일까? 인정 많고 사랑을 베푸는 분일까? 아니면 근엄하고 엄격한 분일까? 어쩌면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친절하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엄격한 분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의 명확한 해답을 듣는다면 일생일대의 두려움과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보통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지는 않고 비극을 일으키시냐고 따져 묻는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허락하셨다는 점 때문에 하나님을 매정하고 무자비한 분으로 묘사하는 사람이 많다. 컴퓨터 업계의 거장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어릴 때부터 이 문제로 고민했다. 그는 열세 살이 되었을 때 자신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에게 아프리카인들이 굶주리도록 내버려 두는 하나님과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에게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가혹한 존재였다.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렇게 끔찍한 고통은 막아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호세아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부족한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신다. 그분의 말을 안 듣기로 소문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를 타이르겠다고 말씀하셨다(호 2:14). ‘그를 어르고 구슬리고, 그의 애정을 얻어 내리라. 그를 쫓아가 구애하고 사랑을 속삭이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죄가 우주에서 진행되는 동안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 내 자신의 큰 사랑으로 이끌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다. 이 세상에 죄가 존재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성품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죄는 오히려 영적 원수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죄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려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 데니 홍 선교사 부부(케냐)
케냐의 켄두 병원이 선교 센터로 거듭날 수 있도록
4월 15일
심판의 골짜기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욜 3:14)
이 세상의 80억 인구 각자에게는 영원한 운명이 있다. 지상의 모든 사람에게는 영원한 미래가 펼쳐져 있다. 매일의 결정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요엘은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다고 선언하면서 하나님의 선물도 중요하지만 선택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타인의 선택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자라고 경험을 쌓으면서 스스로 선택하기 시작한다. 대학 진학, 진로, 배우자 등 일생일대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중요한 결정들은 세심한 생각과 성실한 기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결정만큼 중요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영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특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 여호수아를 통해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수 24:15)라고 말씀하셨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작정입니까? 만일 야훼가 하나님이라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나님이라면 그를 따르시오”(왕상 18:21, 공동)라고 말했다. 예수께서는 군중이 자기를 떠나간 뒤에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라고 물으셨다. 예수님과 함께할지 등을 돌릴지는 자신들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지는 삶의 기준, 교육의 기회, 특권 또는 재능이 동등하지는 않지만 모든 사람은 선택의 권리와 영원한 자기 결정권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께 속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분이 심판의 골짜기에 섰다면 하늘의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하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크고 작은 결정들이 모여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다. 오늘 우리의 결정이 예수님을 향하도록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운성, 조선희 선교사 부부(대만)
도움 받는 교회에서 도움 주는 교회로 변화하도록
4월 16일
죄는 그대로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 위에 손을 펴서 남아 있는 바알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란 이름과 및 그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습 1:4)
세월이 흘러도 죄는 그대로인 경우가 너무도 많다. 스바냐서에서 하나님은 성경에 자주 반복된 경고를 유다에 전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신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해와 달과 그 밖에 수많은 우상을 숭배했다.
하나님이 그토록 은혜를 베푸셨는데도 우상을 숭배하다니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다. 그들의 선조들은 눈앞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일주일에 여섯 번씩 아침마다 내리던 기적과도 같은 만나를 먹었다. 반석에서 솟아난 물도 마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분명하게 체험하고도 우상 숭배에 빠질 수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붕에 올라가 해와 달을 찬양하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우상이 만연한다. 사람들은 자기 소유물을 우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열심히 돈을 모아 영원한 가치와는 전혀 무관한 것에 낭비해 버린다. 집과 토지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스포츠 팀이나 운동선수는 이미 많은 사람의 우상이다. 종교적인 신념까지도 우상이 될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과 정반대인 오류에 집착하는 경우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는 다른 잡신들만 뜻하신 게 아니다. 무엇이든 신이 될 수 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고민해 봐야 한다. 하나님은 우상과 다른 신들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으셨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손쉽게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을 망가뜨리고 믿음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다는 우상을 떨쳐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예수의 재림을 고대하는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기독교 박해국 1위인 아프가니스탄에 복음의 문이 열리도록
4월 17일
하나님이 왜 그러셨을까?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삼상 15:3)
성경에서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 사람들이나 성읍을 멸하기도 하셨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힘없는 어린이나 노인을 멸하라고 하실 수 있는가? 사실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극악무도한 백성을 다룰 때는 그렇게 하셨다.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사람들이 자신의 은혜를 거부하고 전적으로 사탄의 편에 섰음을 아셨다. 그들은 결코 돌이키지 않을 것이며 죄악과 반항만 꾀할 것임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아말렉인들이 없어지면 더 좋은 세상이 될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나님은 사랑”(요일 4:8)이시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밝힌다. 악하고 반역적인 이들을 멸하시는 것도 사랑의 표시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아시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신다. 아말렉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 이상으로 악한 인물들이 될 것임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다.
하나님의 방식이 가혹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죄악이야말로 가혹한 것이다. 타락한 삶이야말로 혹독한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면 스스로를 영원한 죽음으로 이끌 뿐 아니라 죄악의 바이러스를 주위에 퍼뜨린다. 아말렉인들은 완전히 타락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의 생존을 위협해 메시아의 탄생까지도 위험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자기 자녀와 세상에 대한 악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그들을 멸하셨다.
하나님은 부당한 존재가 아니다. 세상에 비극과 죽음이 퍼지는 것은 사탄 때문이다. 사탄의 가장 큰 거짓말은 죄로 인한 문제가 하나님 탓이라는 것이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워도 하나님의 냉정한 결정은 언제나 옳은 결정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하지홍, 황고은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 목적으로 운영하는 카페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위해
4월 18일
불행이 다행이 될 때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배 속에 있으니라”(욘 1:17)
유럽에서 군 복무 중이던 한 청년에게 미국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하달됐다. 그는 몇 가지 소지품을 챙기고 출국 신고를 했는데 명단에 그의 이름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말도 안 돼요.” 그가 애원했다. “분명 제 이름이 불리는 걸 들었단 말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설명했지만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그는 다음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집에 갈 수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에 가는 걸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며 그는 망연자실했다.
침울한 마음으로 그는 침상에 누웠다. 가족을 보려면 더 기다려야 한다니 억울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원래 그가 타려던 비행기가 미국에 도착하지 못하고 대서양에서 추락했다는 것이다. 탑승객은 전원 사망했다.
사람들은 흔히 실망스러운 일이 닥치면 억울해한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나쁘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귀국 비행기에 타지 못한 것은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비극을 피한 것은 좋은 일이다. 청년은 처음에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지만 그 비행기를 탔다면 나중의 행운도 없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었다. 요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자기를 집어삼켰을 때 그는 ‘이건 정말 최악이야.’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물고기를 준비하신 이유가 있었다. 요나가 재난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위대한 여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는 물고기의 배 속에서 폭풍을 피했고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그 땅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의 설교로 도시 전체가 구원받았다. 요나는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경이로운 복이었다.
일이 잘 안 풀린다고 하나님 탓부터 하지 말자. 나쁜 일이 행운을 위한 발판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 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차오양 대학 선교를 통한 대만의 청년 선교를 위해서
4월 19일
성실한 목자?
“내 백성은 잃어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렘 50:6)
리더십에 관한 수많은 책이 있다. 그러나 성경처럼 중요한 사례를 많이 연구하여 다룬 책은 드물다. 모세는 40년간 광야에서 약속의 땅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란, 반역, 불평을 다뤄야만 했다. 여호수아는 다른 나라와 싸워 지기도 하고 승리를 거두기도 하면서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몇 가지 결점이 있었지만 다윗도 하나님 백성의 훌륭한 지도자였다. 또 솔로몬의 리더십으로 예루살렘에 거대한 성전이 건축되었다. 한편 역대하 21장 11절에서는 유다 왕 여호람이 “예루살렘 주민으로 음행하게 하고 또 유다를 미혹하게” 했다고 말한다. 여호람은 나라 전체를 죄악으로 이끌었다.
지도자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바람직한 그리스도인 지도자의 핵심 요소는 하나님께 얼마나 성실하냐이다. 예레미야 50장에서 하나님은 백성의 불성실을 지적하셨다. 이어서 리더십에 관해 정신이 번쩍 드는 말을 하셨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6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방황했다고 인정하시면서도 그들의 충실하지 못한 모습이 영적 지도자들 탓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양 떼를 이끄는 목자들은 자신이 담당한 이들의 영적 건강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 그들은 성실하게 권면하고 격려하고 인도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교회의 지도자는 현명한 매니저나 영리한 설계자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지도자로 부름 받은 이들은 영적이고 하나님께 헌신적이어야 하며 교회의 메시지와 사명에 전념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같아야 하고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께 굴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초기 교회에서는 집사들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다(행 6:3).
하나님께서 택하신 지도자들은 원수에게 가차 없는 공격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 또한 자신의 리더십이 그리스도를 드러내도록,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전재송, 장혜순 선교사 부부(필리핀)
세계 곳곳에서 섬기는 1000명 선교사들을 위해
4월 20일
진정한 영웅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있는 상처는 어찌 됨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슥 13:6)
죄로 얼룩진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스가랴 13장 6절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곳도 없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겪은 죽음과 관련하여 예수님은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언급하신다.
흔히 전투 중에 남을 구하려다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병사는 포상과 인정을 받고 영웅으로 간주된다. 전투 중에는 심각하게 부상당하는 일이 많다. 그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자원했을 뿐 아니라 그 결정으로 적잖은 대가를 지불했다.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각 시대에 걸쳐 벌어지는 맹렬한 전투의 한가운데서 이 땅에 오셨고 원수들에게 고문과 죽임을 당하셨다. 친구와 원수 모두에게 살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다.
그분은 죽을 필요가 없었다. 마태복음 26장 53절에서 그분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그분은 죽음을 선택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지구가 죄의 대가를 치르도록 내버려 두고 하늘에 남으실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셨더라도 아무도 뭐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니라 남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영웅이다. 또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죄를 해결하고자 기꺼이 목숨을 내주셨고 자신의 십자가 희생으로 사람들이 하늘에 거하게 될 것도 아셨다. 그분은 상이군인 훈장이나 명예 훈장 하나 받지 못하셨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분께 마음을 드림으로 그분의 영웅적인 행동에 찬사를 보낼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선아, 김현규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복음 서적으로 구도자들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4월 21일
커다란 보상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소서. 그리고 여러분은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삼 일 밤낮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와 나의 여종들도 마찬가지로 금식하리이다”(에 4:16, 한글킹제임스)
삼촌의 설득으로 에스더가 동족을 변호하기로 결심하는 모습은 성경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왕궁의 고위 관료였던 하만의 사악한 계략으로 유대인 모두 몰살당하게 되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생기지 않는 한 하만의 계획은 그대로 실행될 게 뻔했다. 유대 민족을 위해 누군가 나서지 않는다면 민족 전체가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상해 보이겠지만 그 당시 법으로는 왕비라고 해도 먼저 부름을 받지 않고서는 왕 앞에 설 수 없었다. 에스더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자기 백성이 전부 죽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든지 아니면 죽음을 감수하고 왕의 법을 어겨야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주의 깊은 왕비 에스더는 일생일대의 순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최대한 사람을 모아 자기를 위해 금식해 달라고 부탁했고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다(에 4:16). 임무가 막중했던 만큼 에스더는 영적으로도 준비가 필요했다. 이 교훈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되새겨야 한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상당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탄과 맞서 싸우려면 하늘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는 분이시다. 에스더는 자신의 임무를 위해 하나님의 복을 구하기로 했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위해 공들여 준비한다. 육상 선수는 마라톤을 위해 혹독하게 훈련한다.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이들도 금식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면서 영원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받는다.
에스더와 그의 동족은 분명한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다. 구원은 말을 탄 기사나 들이닥치는 군대처럼 이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기도에 응답해 움직이셨다. 기도하고 금식하는 시간은 영원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조성규, 최지혜 선교사 부부(대만)
교회가 자립 건물을 가질 수 있도록
4월 22일
용기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
페르시아와 메디아의 유대인 왕비이자 아하수에로왕의 아내인 에스더가 동족을 변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것은 그야말로 극적인 이야기이다. 왕의 사악한 신하는 유대인을 멸하기로 마음먹었고 왕의 아내였던 에스더만이 그들을 구할 수 있었다. 왕의 초청 없이는 아무도 왕 앞에 설 수 없었지만 에스더는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가끔은 결과를 묻지 않고 옳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가 옳은 일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며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쟁투, 460). 역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굳게 선 이들이 차고 넘친다. 니콜라스 리들리와 토머스 크랜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국 옥스퍼드에서 화형당했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은 기존 교회의 가르침 대신 성경을 따랐다는 이유로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십자가를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한 그들의 용기는 기독교에 힘과 자극이 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감동받아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았다.
만약 믿음의 영웅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담대하게 응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의 모본이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할지를 알 수 없었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용기와 충성을 되돌아보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 충성하도록 이끄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순교를 요구하시지는 않더라도 그분을 위해 살도록 요청하신다. 예수의 증인으로 산다면 수천 년 전 에스더와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구원받고 영원한 나라에 사는 이들 중에서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이 했던 말이나 자신이 보인 태도나 모본에 대해 후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송을섭, 이옥진 선교사 부부(일본)
침체된 일본 교회의 부흥과 교회 성장을 위해
4월 23일
멈추면 넘어진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아기는 걷는 법을 서서히 배운다. 망아지와 기린은 태어난 지 30분 이내로, 얼룩말은 20분 이내로 걷는 법을 터득하고 모두 1시간 이내로 뛰어다니지만 인간 아기는 조금 다르다. 태어나서 곧바로 움직이지 못하고 구르기, 그다음에는 기어 다니기를 익힌 뒤 가구 등을 붙잡으면서 걸음마를 배운다. 대부분 9~15개월이 지나야 겨우 불안하게 첫걸음을 뗀다. 걸음마를 뗀 뒤에도 곧장 달리지 못하고 깡충거리지도 못한다. 이 과정 역시 자라가며 차근차근 익힌다.
예수님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죄인이 믿음으로 자기에게 나오는 기적을 예수님은 새로운 탄생이라고 표현하셨다. 용서받은 죄인은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긴다. 예수님은 그에게 구주로 인정받으며 그의 삶은 예수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간다.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면 성장이 따라야만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받아 주시며 우리는 버림받지 않고 구원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바라시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 우리가 모든 능력을 온전히 갖추고 태어나지 않았듯 예수께 나오는 이들도 자라 가야 한다. 그러면 예수께서 주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한다. 영적 성장은 지속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 멈춤이란 없다. 그런데 더 높은 믿음의 경지로 향하지 않고 주저앉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따른 사람에게도 영적인 성장은 계속 필요하다. 더 배워야 하고 더 이겨 내야 하고 나쁜 습관들을 극복해야 한다. 하나님과 더 활기차게 동행해야 한다. 믿음에는 제자리걸음이 없다. 하나님의 제자들에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배우고 예수를 닮아 갈 특권이 주어졌다. 오늘 여러분도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B.M.W.(세계자전거지원선교회)
B.M.W.가 아프리카 선교 비전을 잘 감당하도록
4월 24일
관점에 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계 6:17)
관점의 차이는 흥미롭다. 가족 한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을 당시에는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최고의 경험이었다고 어느 부부가 말해 준 적이 있다. 이민을 가려던 한 여성이 영국 사우샘프턴의 선착장에 급하게 도착했지만 결국 타이타닉호의 처녀항해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타이타닉호가 대서양에서 가라앉았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 실망감이 가라앉았다. 몇 주 뒤 그 여성은 안전하게 미국에 도착해 가정을 꾸렸다. 한 남성은 예수를 영접하고 직장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 기회를 잡게 되었고 그의 아이들은 그리스도인 학교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당장은 나쁘게만 보이던 일도 축복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축복처럼 보이던 것이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6장은 예수님의 재림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정말 기쁜 소식이 아닌가! 그러나 모두가 예수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6)면서 산과 바위에게 자기 위로 떨어져 달라고 울부짖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들에게 재림은 매우 나쁜 소식이 될 수 있다. 마태복음 24장 40~41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누군가는 구원받지만 누군가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예수께 굴복하지 않았다는 간단한 이유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그들에게 최고의 소식보다는 재앙에 가깝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여러분에게는 기쁜 소식이 되기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 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선교사들의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4월 25일
유익한 시간 활용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2)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방문하셨을 때 두 자매 간에 갈등이 생겼다. 마르다는 음식 준비로 바빴다. 오늘날도 음식 준비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요즘처럼 일거리를 덜어 주는 기구가 없던 그 당시에는 훨씬 더 복잡한 일이었을 것이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마르다는 동생에게 점점 짜증이 났다. 마리아는 언니를 돕는 대신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 마르다는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예수님이 영향력을 발휘해 이 상황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랐다.
예수님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는 흥미로운 대답을 남기셨다. 이 말씀은 게으르거나 딴전 부리는 행동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좋은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의 발아래 앉아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임을 이야기하신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 수도 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는 ‘나쁜 일’로만 가로막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정작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영적으로 비틀거리는 그리스도인이 수두룩하다. 목회자나 장로가 ‘좋은 일’에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바람에 ‘가장 좋은 일’을 하지 못하면 가족이 고통받는다. 다른 ‘좋은 일들’을 너무나 많이 하다가 개인 묵상 시간을 빼앗길 수도 있다.
이러한 함정에 빠지지 말자. 예수님은 바쁠수록 하늘 아버지와 시간을 많이 보내셨고 제자들에게도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하셨다(막 6:31). 우리가 해야 할 좋은 일이 많지만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값진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윤성결, 황혜원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선교사의 원활한 비자 취득을 위해
4월 26일
어린이의 희망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사 54:13)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는 아이들이 큰 고통을 겪는 것이다. 낙태라는 끔찍한 비극 때문에 태어나지조차 못하는 아이도 많지만 상상하기 힘들 만큼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도 허다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사는 아이가 너무나 많다. 굶주리고 무시받고 인신매매로 고통받으며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학대를 받는 아이도 많다. 하나님께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젊고 어린 사람들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9장 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제자들은 굳이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9장 14절에서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고 이사야 54장 13절에서 하나님은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아이들을 가엾게 여기신다. 악독한 사탄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어린이들을 공격하여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상이 점점 악에 물들어 갈수록 우리는 아이들이 굶주리지도 착취당하지도 버림받지도 않는 더 나은 세상과 때를 고대한다. 어리고 힘없는 사람의 삶은 특히 고달플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아이들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것이다.
죄악의 영향력은 끔찍하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자에게 희망의 시간을 주려고 기다리신다. 머지않아 무자비한 고통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모든 사람은 확신 있게 그날을 기다려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동현 선교사(대만)
3월 말부터 시작된 문화 카페(감화력센터)
4월 27일
심각한 시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욜 2:12~13)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했을 때 미국인들은 생활이 달라지고 상황이 어려워지겠다 싶었다. 그러나 전쟁의 화염이 맹렬히 불타오르는 현장에 살고 있던 아시아인과 유럽인들은 앞으로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 생길 것을 알았고 최대한 대비했다. 불길한 일이 코앞에 닥쳤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세상에 힘든 일이 닥친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라고 성경은 밝힌다. 다니엘 역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믿음이 큰 시험을 당할 것만은 틀림없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서는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제외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고 말한다. 지구에 사는 사람은 모두 엄청난 충격을 겪을 것이다.
세상에서 압도적인 다수가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을 할 때 하나님을 드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엘 2장 12절의 말씀을 떠올려 보라.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미래에 대해 두려워 떨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세상에 살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헌신해야 한다고 그분은 말씀하신다. 더 이상 믿음을 가볍게 여길 때가 아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삼는 사람만이 험난한 시험을 통과하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미래를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기다리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 정해옥 선교사 부부(인도)
인도 1000명 선교사 운동의 모든 선교 사역을 위해서
4월 28일
성경은 고급 수학이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요 7:17)
나는 고급 수학이 쉽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떤 이들의 엄청난 수학적 지식에 감탄하고 수학자들의 존경스런 능력 덕분에 이룩한 사회 발전에는 감사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선 수학은 내게 외국어처럼 느껴진다. 내 친구 중에도 수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수학을 아름다운 과학이라며 시적으로 읊조리곤 한다. 그러나 나는 결코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학교에 다닐 때 나는 기초 수학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수학은 더 어려운 학문이 되었고 내 능력을 벗어났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에게는 성경이 그렇게 느껴진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와 같은 표현은 알아듣기도 이해하기도 쉬우며 중요하고 좋은 말이다. 그러나 더 많은 통찰력이 필요한 신학적 개념을 파고들면 성경 연구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예수님은 간단하고 기본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핵심들을 소개하면서 성경을 생생하게 소개하셨고 학생들에게 중요한 지식의 창고를 열어 주셨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의 뜻을 알고 싶어 하는 사이라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요 7:17).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 여부는 말씀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내려놓고 순종하는 자세로 성경을 연구한다면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만큼이나 우리의 성경 지식도 자라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시편 119편 105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등불과 빛이라고 했다. 어두운 곳을 다닐 때는 빛이 있어야만 길을 찾아갈 수 있다. 빛을 따르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하나님을 거절하면 성경도 이해하기 어렵고 하나님 말씀에서 통찰력도 얻기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연다면 그분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살아 숨 쉴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병웅, 이정민 선교사 부부(미얀마)
미얀마의 쿠데타가 속히 끝나고 정치적·사회적 안정이 오도록
4월 29일
완벽한 이해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천국과 관련된 흔한 질문들이 있다. ‘애완동물도 하늘에 갈 수 있을까?’ ‘내 배우자와 나는 하늘에서도 부부 사이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그곳에 없다면 영원한 시간을 어떻게 버텨 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질문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들은 물론 그와 비슷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분명히 답해 주신다. 또 우리는 하늘에 가서도 그분에게 답변을 들을 것이다.
이러한 질문으로 인한 고민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요약해 놓았다. 우리는 하나님처럼 볼 수 없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우리의 수많은 의문이 해소될 것이다. 우리는 애완동물, 배우자, 자녀들,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고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과 영원에 관련된 심오한 문제들을 인간의 한정된 시야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우리는 가족 구성원, 애완동물과 끈끈한 애정을 형성한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애완동물과 사별할 때 겪는 아픔을 능히 해결해 주시고도 남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완벽하게 합리적인 추론이 아니겠는가?
영원한 삶에서 가장 좋은 점은 구원받은 이들을 위한 저택이나 금으로 포장된 도로, 생명나무의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들이 그분과 영원히 함께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영원히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신다. 영원한 삶이라는 경이로움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천국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욱 좋은 곳이라고 분명히 확신할 수 있다. 거기서는 그 상실감이나 불만족도 느낄 일이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민섭, 김순임 선교사 부부(대만)
신띠엔 교회의 발 마사지를 통한 지역 사회 봉사
4월 30일
타인 속에 계신 예수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예수께서 만약 여러분의 집에 들르신다면 여러분은 분명 반갑게 그분을 맞이할 것이다. 그분께서 만약 옆 마을까지 차를 태워 달라고 하시거나 한 끼 식사 혹은 따뜻한 겉옷을 부탁하신다면 여러분은 그분을 편안하게 해 드리고 그분을 위해 최선껏 준비할 것이다. 그렇다면 마태복음 25장 40절을 보라.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예수님이 남긴 말씀은 살짝 불편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받는 질문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타인 속에 계신 예수님을 내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현실적인 측면을 언급하셨다. 그분께서는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라고 하셨다(마 25:35~36).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단순히 교회에 다니거나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방식으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그분과 연결된 결과로 자신의 삶에 흘러 들어와 넘쳐 나는 사랑이다.
야고보도 비슷한 개념을 이야기했다. 진실한 믿음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말했다(약 2:15~16).
이 말씀을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가슴에 새긴다면 교회에 어떤 일이 생길까?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과 동정을 나타낸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남을 복되게 함으로 예수님을 섬기게 되는 기회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 기회를 붙잡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 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해외에서 자녀가 영육 간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