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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미소 이심전심 정법안장 염화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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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相民 윤봉택 2023. 10. 26. 08:34
[일러두기]
원문에서 예시된 것들은 생략한 곳이 있으며, 불경의 한문 번역은 제거하였다.
또 인용과 관련된 부분은 문장의 형식을 조금 바꾸어 실은 곳도 있다.
석가세존의 정법正法
염화미소·염화시중·정법안장, 이심전심
우리의 큰 스승이신 석가세존께서는 정법正法을,
중국 선종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마하가섭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호명보살로 사바세계로 나려오시어 중생들과 같은 환경 오탁악세에서
사성제 12인연 8정도 수행 과정을 통해
보살도(菩薩道) 가운데 정진과 선정바라밀을 거쳐
마침내는 지혜바라밀을 성취하여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지
중국 선종에서 개발한 수행법인 화두(話頭)를 가지고 수행하신게 아니다.
모든 불자가 하루에 한번 이상 염송하는 <반야바라밀다심경>을 보라.
보살이 수행하실 때에는
반야(지혜)바라밀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고,
그 반야에 의하여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들은 수행함에 있어,
육바라밀 가운데, 반야바라밀다에 의지 하기에,
언제나 마음에는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모든 두려움 까지도 없기 때문에,
잘못된 생각에서 영원히 벗어나,
마침내는, 위 없는 열반에 들어가게 되나니라,
그러므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께서도,
성불하실 때 까지, 보살로서 수행하실 때에는,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여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게 되나니라.”
이와 같이 화두는,
중국 수행자들이 도교와 융해된 수행 방법일 뿐
부처님의 수행 방법은 아니었음이 극명하지 않은가.
부처님의 정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제자라면
출가 재가의 구분 없이 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아래의 경전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대반열반경에서 세존께서는 정법正法을
마하가섭과 보살· 국왕·대신·재상·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 등 사부대중에게 부촉하였는데,
이는 부처님의 정법을 오래도록 잘 전하여 중생을 교화하라는 의미였습니다.
대반열반경 40권본 중 제2권에서
제자들이 부처님의 열반 후의 일을 걱정하자,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런 말을 하지 마라. 내가 가진 위없는 바른 법(정법)을 이제 모두 마하가섭에게 부촉(付囑)하였으니, 가섭은 너희들의 큰 의지가 될 것이다.
마치 여래가 모든 중생이 의지할 데가 되듯이, 마하가섭도 너희들의 의지할 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대반열반경 제3권에서 [말씀히셨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을 찬탄하셨다. 좋구나, 좋구나. 너희들은 샘이 없는[無漏] 마음과 아라한의 마음을 잘 얻었다.
나도 역시 이 두 가지 인연을 생각하였으니, 마땅히 대승법을 보살들에게 부촉하여 미묘한 법이 오래오래 세상에 머물게 해야겠다.
또한
여래가 지금 위없는 바른 법을 왕과 대신과 재상과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에게 부촉하였으니, 왕이나 사부대중들이 마땅히 모든 학인들을 권면하여 계율과 선정과 지혜로 하여금 점점 나아가게 할 것인데,
만일 이 세 가지 법을 배우지 아니하면서 게으르고 계행을 범하고 바른 법을 파괴하는 이가 있으면, 임금과 대신과 사부대중들이 마땅히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니라.”
다시 대반열반경 제4권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여, 나도 그와 같아서 열반에 들 때에 여래의 비밀하고 위없는 법장은 성문 제자들에게는 주지 않으니, 네가 보배 광을 나쁜 아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요컨대 여러 보살에게 부촉할 것이니,”
또 다시 대반열반경 제10권에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문수사리야, 너희들은 사부대중을 위하여, 대승법을 널리 말하라. 이제 이 법으로 그대들에게 부촉하는 것이며, 가섭과 아난이 오더라도 다시 이런 정법을 부촉할 것이다.”
그러면
선가 禪家에서 전하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어디에 있는가.
선가에서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 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자리에 앉으신 채로 연꽃을 (대범천왕으로부터) 받으시고는 아무 말씀을 하시지 않고 다만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는데, 모인 대중이 8만 4천이 되었으나,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장로 마하가섭이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 보이시는 것을 보고 바로 크게 미소(拈花微笑)를 짓자,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정법안장 열반묘심과, 실상무상 미묘법문과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제일의제가 있으니, 지금 마하가섭에게 이것을 부촉한다.’”
그동안 禪家에서는 1188년 이후,
이 내용을 가감 없이 지금까지 그대로 인용하여 오고 있다.
앞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정법은 마하가섭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다.
같은 경인 대반열반경에서는 보살을 비롯한 사부대중 모두에게 정법을 부촉한다고 하셨다.
출가하는 순간 출가자는 아사리(스승)의 지도를 받으면서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인 정법에 의지하여 수행하게 되는데,
이 순간부터는 출가자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정법에 귀의하여 수행하는
부처님의 제자는 누구나 정법을 부촉 받은 전법 제자이다.
소위 법을 전한다고 하면서, 발우와 가사를 따로 전하는 것은, 중국문화일 뿐이다.
그러면 <대범천왕문불결의경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은 어떤 경인가.
팔만대장경을 비롯하여 기존 대장경에는 수록되지 않은 경전으로써,
대부분 불교학자는
1188년 송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경전, 즉 위경僞經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대한 이견이 없다.
《염화미소拈花微笑의 허실》
우리의 큰 스승이신 석가세존께서는 늘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실 때는
광명을 놓아 시방 세계를 비추셨고, 자비로운 미소로 중생의 고뇌를 열어 주셨다.
중국불교 선가禪家에서는 간화선에 있어서
拈花微笑를 최상의 콘텐츠로 삼아
이것이 세존의 진정한 가르침인양 지금까지 알려져왔다.
고사에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게 있다. 뭐든지 자기의 것인양 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이다.
부처님 말씀에는 거짓이 없다 즉 위경僞經이 없다.
어떤이는 위경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고 까지 한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하 생략)
석가세존님의 입멸 기준 500년이 정법시대였다. 이후 1000년이 상법시대였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불임열반기법주경』에서 입멸 후 100년 단위로 1000년 동안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하여 놓으셨으니,
(원문에 제시된 불임열반기법주경의 구체적인 내용에 관한 것은 생략한다.)
이후 운강석굴이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486년에는 보리달마가 중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세존께서 예언하신바로 본다면,
어찌보면 위경이 나온것도 열반 후 열 번째 백년에 해당하는 모든 징조가 일시에 다 나타난 것이라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위경을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 하는 것은 세존의 말씀 그대로 희론戱論이 나니고 무엇인가.
세존의 말씀에 뭐가 부족하여, 소위 부처님 제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희론에 戱論을 더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에 먹 칠을 하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부처님의 45년 말씀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희론으로 만들어진 위경을 정당화할 것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처님 가르침이 중국 국경을 넘으면서 부터 중국 수행자들의 부처님 가르침을 노자나 공자의 사상적 개념을 혼용하면서 격의불교格義佛敎가 도래하였고, 이로 인하여 수많은 위경이 중국 수행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서역의 역경승 불도징(233-348)의 제자였던 동진 도안(312-385)은 당시 이러한 한역의 오류를 수정하고, 격의불교 폐단을 극복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374년 법사가 지은 『綜理衆經目錄』에 위경 목록을 수록한 것으로 보아, 구마라즙(344-413) 번역 이전부터 이미 위경이 성행하였다.
그러면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언제부터 중국불교 선가禪家의 콘텐츠가 되었을까.
이미 알려진바와 같이 1188년 중국 북송시대 회암지소晦巖智昭가 지은 『인천안목人天眼目』에 그 내용이 전한다.
인천안목 권5 종문잡록 염화.
“왕형공(王荊公; 王安石 1021~1086)이 불혜천선사(佛慧泉禪師)에게 질문하였다.
‘선가(禪宗)에서 말하는 세존염화는 도대체 어떤 경전에 나와 있는지요?’
선사가 대답하되,
‘장경에도 수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왕형공이 선사에게 말씀드렸다.
‘저가 최근에 잠깐 한원翰苑에 있을 때, 우연히 전3권으로 되어 있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을 보았는데, 거기에 보니, 世尊拈花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범왕이 영산에 이르러 금색바라화(金色波羅花)라는 꽃을 부처님께 바치고, 변신(捨身)하여 법상(床座)을 만들어 세존께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여 주시길 청하였다.
세존께서 법좌에 오르시고 나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시자, 하늘과 인간세계의 백만 대중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여 갈팡질팡하였지만, 오직 금색으로 빛나는 두타제일 가섭존자만 크게 웃었다.
이에 세존께서는
‘나의 정법안장인 열반묘심과 실상무상을 마하대가섭에게 분부하노라’라고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은 다분히 범천(帝王)이 세존을 모시고 청하여 문의한 것인 까닭에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어 세상에 들은자가 없습니다.”
※ 佛慧泉禪師는 북송시대 선승이다. 법명 法泉 또는 蔣山法泉, 아호는 泉萬卷이다.
후베이성(湖北省) 쑤이저우시(隨州) 출신으로 성은 時씨이며, 어려서 龍居山 智门寺 信玘禅師 문하로 출가. 소동파(1037~1101)와 교류하였다.
만년에는 大相國智海禪寺에 주석하다가 입적하였으며, 시호 佛慧이다.
제자로는 雲居曉舜과 재가제자 清献公趙居士가 있다.
재가제자 清献公 趙抃(1008-1084)은 북송시대의 명재상이었으며 청백리이다.
그러면
『대범천왕문불결의경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은 어떤 경전이고 어디에 수록되어 있는가.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역대 개간된 각종 대장경에는 수록되지 않은 위경이다.
다만 일본에서 현대식 활자판으로 인쇄된 대정신수대장경(1924~34)과 만신찬속장경(1902~1095)에만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 가운데 염화시중拈花示衆의 근거가 되는, 북송시대 지어진 『人天眼目』은 중국 임제종 양기파 대혜선사大慧禪師의 4세인 회암지소晦巖智昭이 1188년에 찬술한 저서로써, 선가 수행자들의 필독서였으며, 우리나라에도 널리 보급된 지침서 중 하나이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 할 수 있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은 바로 이 『인천안복人天眼目』에서 비롯되었다.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다.
부처님 제자는 부처님 가르침에 의해서만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큰 스승이신 석가세존께서는 정법正法을, 중국 선종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마하가섭에게만 전한 것이 아니다.
(원문에서 제시된 전법을 설법한 불경 인용에 대한 부분은 생략한다.)
중국불교 선종에서 주장하는 정법안장.....
염화미소는 허상의 민낯이 아닌가.
이를 근거하고 있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불교학자라면 누구나 인증하는, 북송 시대에 만들어진 위경이다.
불교는 유교와 도교를 함께 아우르는 가르침이 아니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절대 다르다.
불교는 인연, 인과, 윤회요 法界이다.
마음의 세계는 법계法界요
의식意識의 세계는 삼계三界이다.
삼계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중국 조사의 법이 아니라,
오로지 부처님의 정법에만 의지하여야만 한다.
생각하여 보자
석가세존님께서 열반하신 후
지금까지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으신 수행자가 있었나.
그 분들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은
사성제나 12인연의 연기법을 깨달아,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과위, 또는 벽지불의 과위를 증득한 것일 뿐,
10지의 보살의 길로는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했다.
세존께서 45년 말씀하셨어도
제자 중 미륵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아라한과위 이상을 증득하지 못하였다.
더욱이
중국불교에서 화두를 가지고
지금까지 성불하신 이가 한분이라도 있었나.
지금까지도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 그렇게 미련한가.
미륵보살이 성불하기 이전에는
그 누구도 ......
수행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석가세존의 가르침 즉 정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정법은
대반열반경에서 처럼,
부처님의 제자라면 누구나 전법傳法 제자가 되는 것이지
별도의 전법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도교와 상생(?)하면서
격의불교格義佛敎의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전법이 무슨 족보처럼 변질 되어 버렸다
이것이야말로 한국불교의 事大가 아닌가
이제부터라도 그 허와 실을 구분하여야한다.
부처님의 정법에 의지하여
오로지 부처님 법대로만 수행하여야 한다.
이것만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