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7권
5.4. 유식과 분별
[유식이라는 이름]
[문] 이미 다른 대상이 있는데, 어째서 유식이라고 이름하는가?279)
[답] 기이하도다. 굳게 집착해서 닿는 곳마다 의심을 내는구나.
어째서 유식의 가르침이 다만 나 한 사람의 식만을 말하는 것인가?
[문]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인가?
[답] 그대는 마땅히 진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만약 오직 한 사람의 식뿐이라면 어떻게 시방에 범부와 성인, 존귀함과 비천함, 원인과 결과 등의 차이가 있겠는가?
누가 누구를 위해서 법을 설하며, 무슨 법을 어떻게 구하겠는가?
따라서 유식이라는 말에는 심오한 의미[意趣]가 있다.
식(識)이라는 말은 전체적으로 모든 유정에 각기 8식, 6위의 심소, 전변된 상분ㆍ견분 분위의 차별 및 그것의 공한 이치에서 드러나는 진여가 있음을 나타낸다.
식의 자상이기 때문이고, 식과 상응하기 때문이며, 두 가지280)가 전변된 것이기 때문이고, 세 가지281)의 분위이기 때문이며, 네 가지282)의 참다운 성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일체법은 모두 식에서 떠나지 않으며, 총체적으로 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오직[唯]’이라는 말은, 다만 어리석은 범부가 집착하듯이 반드시 모든 식에서 떠나서 참으로 색법 등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을 부정한다.
만약 이와 같이 유식의 가르침의 취지를 아는 사람은, 문득 능히 전도됨이 없이 자량(資糧)283)을 잘 비축하여 속히 법공의 이치에 들어가서 최상의 깨달음을 증득하고, 유정이 생사에 윤회하는 것을 구해준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악취공자는 성스러운 가르침과 바른 논리에 위배되므로 능히 이러한 일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일체가 오직 식뿐이라고 믿어야 한다.284)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 것]
[문] 만약 오직 식뿐이고 전혀 외부대상이 없다고 말하면, 무엇에 의거해서 갖가지 분별을 일으키는가?285)
게송(『삼십송』의 제1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종자식이
이렇게 저렇게 전변함에 의거해서
전전하는 세력 때문에
이러저러한 분별286)이 생겨난다네.287)
논하여 말한다.
‘일체종자식’이란 근본식 중에서 능히 자기 결과를 일으키는 특수한 정신적인 힘[功能差別]을 말한다.
이것이 등류과288)ㆍ이숙과289)ㆍ사용과(士用果)290)ㆍ증상과291)를 일으키기 때문에 일체종자라고 이름한다. 계박을 떠난 증과를 제외하는 것292)은 종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증득할 수 있지만 종자의 결과는 아니다. 반드시 일어나서 도(道)293)로써 번뇌[結]를 단멸하여 증득하기 때문이다.
전전하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294) 여기서는 능히 분별을 일으키는 종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종자)은 식으로써 자체로 삼기 때문에 식이라는 명칭을 건립한다. 종자는 근본식에서 떠나서 별도의 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종자식이라는 두 단어로 된 용어는 종자식이 아닌 것을 가려낸다. 식으로서 종자가 아닌 것295)과 종자로서 식이 아닌 것296)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자식이라는 말은 근본식 중의 종자를 나타내고, 종자를 지니는 식(제8식)은 아니다. 나중에 마땅히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식 중의 종자가 나머지 다른 연(緣)297)에 도움받기 때문에 문득 “이렇게 저렇게 전변한다.”
생겨나는 지위로부터 전전하여 성숙한 때에 이르기까지298) 전변하는 종자가 많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거듭해서 ‘이렇게[如是]’라고 말한다.
일체 종자에 세 가지 훈습, 299) 공상과 불공상(不共相) 등의 식의 종자를 모두 포함하기 때문이다.
‘전전하는 세력’이란 여덟 가지 현행식과 그것의 상응법(심소) 및 상분과 견분 등을 말한다.
그것이 모두 서로 돕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식 등을 총체적으로 ‘분별’이라고 이름한다. 허망분별로써 자성으로 삼기 때문이다.
분별의 종류300)가 많기 때문에 ‘이러저러한[彼彼]’이라고 말한다.
이 게송의 뜻은 다음과 같다.301)
외부대상은 실재하지 않지만, 근본식 중에서 모든 일체 종자가 전변하는 차별에 의거한다.
그리고 여덟 가지 현행식 등이 전전하는 세력으로써, 그들 분별이 역시 생겨날 수 있다.
어째서 외부대상을 의지해서 비로소 분별을 일으킨다고 말하는가?
모든 청정법이 일어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고 알아야 한다.302)
청정한 종자와 현행을 연(緣)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279)
타인의 마음 등 다른 대상이 있으므로 유식(唯識)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第九異境非唯難]. 즉 친소연연(親所緣緣:상분)은 아니지만 자기 마음 밖에 타인의 마음이라는 다른 대상[異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유식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280)
심왕과 심소를 가리킨다.
281)
심왕과 심소 및 색법을 말한다.
282)
심왕ㆍ심소ㆍ색법ㆍ불상응행법이다.
283)
복덕과 지혜를 말한다.
284)
총체적으로 결론 맺으면서 믿을 것을 권한다.
285)
이하 식이 전변된 것[識所變]에 의거해서 가아가법(假我假法)을 건립하는 두 가지 큰 분단[大段] 중에서 두 번째이다. 여러 외인들의 비판을 해석하여, 『삼십송』 제1게송의 “자아와 법을 가설함으로 인하여 (자아ㆍ법의) 갖가지 모습들이 생겨난다[由假說我法 有種種相轉]”는 문구를 자세하게 해설한다. 먼저 심법(心法)이 일어나는 연유를 밝힌다.
286)
8식의 심왕과 그것에 상응하는 심소를 가리킨다. 허망분별로써 자성을 삼는 유루법(有漏法)이다.
287)
심법(心法)이 생기하는 연유를 밝힌다. 심왕ㆍ심소는 반드시 그 소연(所緣)에 의탁해서 생기한다. 그런데 과연 내심(內心)만 있고 외경(外境)이 없다면 심왕ㆍ심소는 무엇을 말미암아서 생기할 수 있는가라는 힐난(詰難)에 대해서 심법이 생기하는 연유를 설명한다. 허망분별의 생기에는 내심의 종자ㆍ현행을 인(因)으로 삼고 연(緣)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심외(心外)에 실경(實境)이 없을지라도 그 생기(生起)에는 지장이 없다.
288)
등류과(等流果)는 첫째,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 즉 종자가 전후 찰나에 자류상생(自類相生)하는 것이다. 둘째,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을 말한다. 그 현행은 종자의 동류(同類)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종자가 동류인(同類因)이 되어 종자와 현행의 등류과(等流果)를 일으킨다.
289)
선ㆍ악의 업종자가 무기(無記)의 현행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290)
작의(作意) 종자가 이른바 종자경각(種子警覺)으로서 현행법을 일으키는 경우 사용과(士用果)를 얻는다. 사용은 사부(士夫)의 작용이라는 뜻으로서, 사람의 노력에 의해 어떤 사업을 성공하는 것처럼, 상응인(相應因)ㆍ구유인(俱有因)의 작용에 의해 얻은 결과를 사용과라고 한다.
291)
어떤 유위법이 생겨날 때에, 자기 이외의 법이 직접적으로 힘을 주거나 또는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도와주는 관계로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곧 다른 것이 능작인(能作因)이 되어 그 증상력(增上力)에 의해 생긴 결과이다. 예를 들면, 제7식의 종자를 구유의(俱有依)로 하여 제8식의 현행을 생겨나게 할 때, 곧 증상과를 얻는 것이다.
292)
계박을 떠난 증과[離繼果]란, 무루성도(無漏聖道)의 지혜의 힘으로써 번뇌의 계박을 떠나고 끊은[離繼] 데서 나타나는 열반의 진리를 가리켜서 말하기 때문에 종자생(種子生)이 아니므로 제외한다.
293)
무루의 뛰어난 도[無漏勝道]이다.
294)
종자로부터 지혜가 생겨나게 하고, 지혜가 미혹을 끊어 열반[離繼果]을 증득한다. 이와 같이 종자로부터 직접 열반을 얻는 것이 아니고, 중간에 지혜를 격(隔)하여 전전하여 생겨나게 하므로, 게송에서의 일체종자식에 의거한다는 말에는 상관이 없음을 밝힌다.
295)
현행식(現行識)을 말한다. 이것은 내부의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296)
외부의 곡식[外種] 등을 가리킨다. 이것은 식의 자체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297)
네 가지 연[四緣] 중에서 인연(因緣)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가지 연(緣)을 말한다. 다만 심법을 일으키는 것은 세 가지 연이고, 색법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오직 증상연(增上緣)뿐이다.
298)
미숙(未熟)의 견인인(牽引因)의 지위로부터 이숙(已熟)의 생기인(生起因)의 지위에 이른다.
299)
명언훈습(名言熏習)ㆍ아집훈습(我執熏習)ㆍ유지훈습(有支熏習)을 말한다. 명언훈습은 언어를 사용한 개념적인 사고(思考)에 의해 이식되는 것이다. 아집훈습은 자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我見]에 의해 훈습되는 것이다. 유지훈습은 3유(有:三界)에서 생사윤회하게 만드는 훈습을 말한다.
300)
자체분ㆍ견분ㆍ상분 등을 말한다.
301)
총체적으로 게송의 의미를 결론 맺는다.
302)
다음에 예(例)하여 청정법을 일으키는 것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