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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새롭게 하여 저편으로 건너가자 막4:35-41
주신 말씀 막4:35-41을 중심으로 [삶을 새롭게 하여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제목으로 말씀이 선포될 때 큰 은혜의 시간되시기 원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평안 하셨는지요?
오늘은 민족의 대 명절인 추석입니다.
명절을 맞이해 반가운 친척친지들을 만나 정을 나누며 사랑을 더 돈독히 하셨는지요?
명절에 친척친지를 만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경배의 대상임을 담대히 증거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원합니다.
마가복음 4:35-5:43절까지 네게의 이적 기사를 통해 성도들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시련과 고난 중에서도 든든한 보장이 되시며 신뢰할 유일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로마시대 신앙의 핍박하에 놓여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며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단의 세력에 의해 조종을 받는 타락한 자연도 이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오시어 재창조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거하여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본문은 한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하는 과정을 통해 믿음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 많은 과정과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람과 파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본문을 구조분석해 보면 35-38절은 인생에 문제 즉 위기와 난관이 바람과 파도를 통해 찾아오는 것을 말하며 ,39절은 해결, 40절은 적용을 말합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 속한 피조물인 우리가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인생의 문제를 예수님과 함께 극복하고 저편으로 건너가자.
주님은 날이 저물 때 까지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침부터 저녘까지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때로는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목자 없는 양이 유리하듯 나라를 잃고 메시야가 나타나지 않아 방황하고 있었기에 주님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나아가 따뜻하게 맞아 주시고 소원을 가급적 들어 주셨습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님 앞으로 불신자를 인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소원을 가급적 들어 줄 수 있도록 따뜻하게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 졌을 때,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지금 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복음을 증거하신 후 새로운 지역으로 다시 이동합니다.
여기서 저편은 연속된 비유 설교를 하신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호수를 가로 질러 동남쪽에 위치한 거라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역으로 건너가려하는 것은 이방인 지역에서도 복음을 증거하고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언제 일어납니까?
삶을 새롭게 업그레이드 하려 할 때 바람과 파도가 밀려옵니다.
평안하고 안정적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사역에 도전하려고 무대(스테이지)를 바꿀 때 문제라는 바람과 파도가 밀려옵니다.
36절은 우리가 삶을 업그레이드 하고 무대를 바꾸려고 할 때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안전한 인생의 항해 비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위기가 오는 순서를 말하고 있는데 먼저 일어나며 다음은 부딪쳐 그리고 들어와 마지막으로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문제가 깊어지고 상처가 커가는 인생의 4단계 문제접근법입니다. 이런 인생의 문제는 가정, 직장, 교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납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인생에 있어 위기가 일어날 때 위기를 볼 수 있는분 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하여 위기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호수를 횡단해 가면서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문제가 일어나 부딪쳐 올 때 특히 지도자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문제의 본질을 바로 파악하여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인생의 특징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과 함께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인생에 예수님을 그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인생을 항해하면 안전을 주님이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크릭]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즉각 찾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예수님께 즉각 순종하고 굴복시켜야 합니다.
37절을 보면 제자들이 만난 위기의 실상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 파도가 배에 부딪치더니 물결이 배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광풍은 미친바람입니다.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바람입니다. 미쳐 날뛰는 돌풍은 풍속33m가 넘은 엄청난 바람을 말합니다. (시속75마일, 120km)
오죽하면 인생의 위기앞에서 산자보다 죽은 자가 복되다 하시고, 출생하지 아니한 것을 부러워하겠습니까?(전4:2-3)
인생의 죄로 인해 악한 것들에 세상에 유입되었기 때문이며, 사단이 인생들 위에 역사하여 시험하기 때문에 세상의 악한 영향력이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그럴 때 일수록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크릭하라.
물이 처음에는 발목 가슴 마침내 잠기게 되는 순서로 배에 가득하게 됩니다.
광풍으로 인해 위기를 만난 것처럼 주님을 모시고 사는 성도들도 혹독한 시련으로 인생의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어한 때 일수록 위기를 주님 안에서 주님을 크릭 함으로 위기를 초연하게 극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 갑자기 찾아오는 위기를 쉽게 내 힘으로 막을 수는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찾음으로 쉽게 극복할 수 있음을 믿으라 합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로 내적 평안을 유지하며 기도할 때 세계를 움직일 능력이 임합니다.
예수님께서 광풍이 불어 배가 침몰하려는 위기 속에서 배 뒤쪽에서 고물을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35절에서 [뱃머리에서 베게를 ]이란 말은 그 당시 배를 타게 되면 귀빈용 상석으로 배 뒤편에 작은 의자가 있어 앉거나 휴식할 때 등을 바치고 비스듬하게 누워 휴식을 취하던 곳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4단계 위기 풍낭이 일어날 때도 야 풍낭이일어나네 하면서도 주님을 기억하지 않고 부딪쳐 올 때도 파도가 배를 때릴때도 야 예사롭지 않은데 닻을 내려 하면서도 예수님께 오지 않고 물이 들어올 때도 야 어서 빨리 빨리 퍼내라하면서도 주님을 의지하지 않다가 4단계 물이 가득차 침몰위기에 봉착해서야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며 주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제자들은 천하태평하게 깊이 잠드신 예수님을 보고 대경실색한 거죠. 제자들은 불안해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위로부터 주시는 참평안은 누리고 계시기에 그 소란한 가운데 깊은 잠에 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상황이 열악하고 흔들릴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즉각 매일 매일 자신에게 이 평안을 주시기를 기도하며 문제를 주님께 아뢰기 위해 가급적 1단계 아니 빠른 단계에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랬다면 2단계 (부딪치고) 3단계(물이 들어오고)하는 고난을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단계 물이 가득하여 침몰 위기에 봉착해서야 주님을 깨우면서 도움을 청하는 제자들은 그 문제를 자기들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이 이 배에 타고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주님께 도움을 호소한 것이 다행입니다.
얍복강가에서 에서가 400명의 군대를 끌고 오는 정보를 알고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간절한 신앙의 고백과 간구입니다.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기도입니다.
기도란 우리가 안고 씨름하는 문제 속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하는 통로여서 어떤 문제들도 해결이 가능할 줄 믿습니다.
기도는 성도가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제자들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을 깨워 도움을 청하는 기도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50:1 5 “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신 것처럼, 성도는 모든 게 끝난 것처럼 보이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동서남북이 모두 막혀 있어도 하늘은 열려 있다는 것은 잊지 말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간이 저리게 기도하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은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마7:8 “구하는 이마다 얻게 된다”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합니다.
39절에서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시자 마다 그 즉시로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습니다.
언제 광풍이 미친 듯 몰아쳤다는 듯 말입니다.
밤새토록 천둥 번개치며 무서운 소리를 내던 태풍이 지나가면 파란 하늘 뒤에 살랑 살랑 움직이는 쓰러진 거목의 나뭇잎 흔들리는 모습을 본 듯이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반쯤 정신이 나가버렸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피조물인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돌아가는 곳에서 손을 들고 허리케인을 향하여‘조용하고 잠잠하라’하면 당장 사람들은 미친놈이라 할 것이며, 그 사람은 무너지는 건물더미와 함께 날아가고 말 것입니다.
[잠잠하고 고요하라!]고 명하신 것은 이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곧 성자이신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이 온 우주를 경영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기원가 경영 종결이 주님의 손안에 있다는 신적권위를 보여 주고 있는 예수 주권사상, 메시아 주권신앙인줄 믿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어(Σιώπα πεφίμωσα;시오파 페피모소:잠잠하고 고요하라)말하신 말씀을 예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생생히 기록함으로써 예수님 가까이 있었던 마가가 역동성 있게 파도를 잠재운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르짖음을 듣고 광풍을 잠잠케 할 수 있는 사역은 오직 여호와께서만 할 수 있다는 율법적 근거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자만의 유일한 권능인줄 믿습니다.
요1:3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합니다.
우주와 만물은 오직 그 누구의 명령도 따르지 않고 오직 자기들을 지으신 분의 명령에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음성을 듣는 모든 피조물 즉 파도나 바람이나 마귀까지도 절대자의 명령에 꼼짝 못하고 꼬리 내리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있어서 아무나 아무것도 거역하지 못합니다.(마28:18) 말씀이 능력이 됩니다.
성도가 세상에서 가난하고 약하고 천하고 무식한 부류에 속한다할지라도 ,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가 주가 되시기에 이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성도가 간절한 원함을 가지고 선포할 때 주님의 놀라운 능력, 페피모스!하며 선포하고 명령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아주 잔잔하여 진지라’명령하는 순간 끝이 났습니다. 상황끝, 종결입니다.
[피리어드] 이글거리던 금방이라도 배를 삼켜버릴듯 요동치던 파도가 툭 떠어지고 사라진 것입니다.
나는 무능하고 약하고 추한 자일지라도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인해 세계를 움직이고 새롭게 변화시킬 능력이 주어진 것입니다. ‘
다른 말로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는 성도라면 세상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켜야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줄 믿습니다.
세상의 윤리나 도덕으로 도저히 정의를 이룰 수 없습니다. 부정부패를 없앨 수 없습니다. 탐욕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성적유혹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여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성도는 담대함을 가지고 세상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바꾸도록 노력하는 성도여러분 되시길 원합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로 예수님을 알되 바로 정확하게 알라
40절에서 광풍을 명하여 잔잔케 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고 신적권위를 가지고 제자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자식이나 손자 손녀가 귀엽고 이쁘다고 잘못한 것도 잘했다 하고 위험한 길로 가도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마치 사선에 선 것처럼 두려워 떨며 불안해 한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실수라든지 허물에 대해서는 관대함을 보이시면서도 믿음이 행동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성도들도 주님에게 믿음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가차 없이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성도가 세상의 염려와 위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원인은 믿음의 부재에 있다고 책망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빌4:6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하신 것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준비하시고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7: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신 것에서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무속인들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ooo님께 비나이다 하듯 무속인도 천주교인도 불교인도 구하는 것은 다 합니다. 성도는 아버지께 아들이 필요한 것을 구하듯이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쉬운 일을 하라고 했는데도 믿음이 없어 구하지 못하고 염려의 노예가 되어 사탄의 놀이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소관 사항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나 약속을 믿고 구하면 주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염려합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염려 마음이천갈래 만갈래로 나뉘어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적인 상식으로 터무니없게 들렸을지라도 그 약속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이러한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복을 내려 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염려를 극복하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만들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줄 믿습니다.
41절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이적을 보고 ,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본질에 대해 논의합니다.
제자들은 이제껏 예수님이 특별한 분이시라는 것은 알았지만, 예수님을 창조주 메시야로 그리스도로는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들의 스승이신 예수님이 자연 만물까지 다스리시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심을 알지 못하다가 이 사건을 보고 유출병 걸린 여인과 문둥병자의 신앙고백을 보고 난 후 베드로는 마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자들이 다 같은 신앙고백을 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사건 후에도 빌립이 요14:8에서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할 때 주님께서 빌립에게 요 14:9에서 “ 빌립아 내가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을 바로 안다는 것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인간적으로 사랑을 교훈하신 세계 사대성인중의 한분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조금만 알고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잘아는 자입니다 . 예수님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예수님과 함께 험한 세상을 항해하며 예수님의 권위로 바람과 파도를향해 [잠잠하라 고요하라] 담대히 명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자임을 믿기 원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아는 것이 능력의 원천입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고 정확히 안다면 우리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나 우리를 시험하려고 찾아오는 불같은 시련들이 아무리 맹렬할지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모시고 성령으로 충만해서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능력을 가진 성도는 세상을 능히 이기고 승리하며 하나님의 귀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을 줄 믿습니다.
예수님이 지시하시는 저편으로 건너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인생의 문제를 예수님과 함께 극복하고 저편으로 건너가자.
둘째로 내적 평안을 유지하며 기도할 때 세계를 움직일 능력이 임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알되 바로 정확하게 알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장애물 앞에서 절망에 빠지곤 하지만 ,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낙담하여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쓸어진 벼를 다시 세우고 떨어진 낙과를 주워 담으려 다시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는 농부처럼 내가 있는 곳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을 바로 알고 기도하며 예수님의 말씀으로 명령할 때 세상을 이기는 능력자가 되실 줄 믿고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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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항상 귀한 말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샬롬!!
은혜의 설교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