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사(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6-1932)[3권 합본 1938]
브레이어(Emile Bréhier, 1876—1952)
제7권, 1850년후 19세기, 20세기,788-1021
제9장 생명과 행동의 철학들: 실용주의 Les philosophies de la vie et de l'action: Le pragmatisme 899
제1절 레온 올레-라프륀과 모리스 블롱델 Léon Ollé-Laprune et Maurice Blondel 899
[박사학위 논문인] 도덕적 확신(Certitude morale(1880, 재판 1898)에서, 파리고등사범학교 교수인 올레-라프륀(Léon Ollé-Laprune, 1839-1898)은 뉴먼(Francis William Newman 1805-1897: 순수 유신론자)과 르누비에(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의 영향으로, 확신은 의지의 참여없이 순수 지적인 길을 통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생각을 종교 생활에 응용하면서, 만일 의지가 은총에 의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면, 타락한 인간이 초자연적 삶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은 올레-라프륀의 제자였다. 그는 이런 사상들 속에서 사색과 행동의 연관을 새로운 해결의 출발점을 보았다. 크리스트교 철학 연보(Annales de Philosophie Chrétienne)(1906, p.337)에 실은 한 논문에서, 그는 철학이 미래의 불가사의들을 향해 기울어진 영혼들[걸승들]의 불안에서부터, 의심할 바 없이 항상, 영양을 공급받는다고 썼다. 다른 한편, 본능적으로 반성적인 철학은 항상 원인들과 조건들로 향해 있다. 그리고 이 철학은 모호한 인상을 남긴다. 철학은 약간은 과학이고 약간은 삶(vie 생활)이라고 할지라도, 과학도 삶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색과 실천의 연관은 게다가 잘못 정의되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행동을 행동의 관념과 동일시하고, 실천적 인식을 인식하는 의식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행동: 생명과 실천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론(L'Action, essai d'une critique de la vie et d'une science de la pratique, 1893)[박사학위논문]에서 모리스 브롱델이 제시했던 목표는 분명하게 지적되었다.
그의 연구의 목적은 행동이며, 행동의 효과적 실재성 안에서 다룬다. 행동은 능력(le pouvoir)과 의지 사이의 불균형으로부터 생겨난다. 왜냐하면 우리의 능력이 우리 의지에 하등이기 때문이다. [실행능력은 의지를 따르지 못한다.] 행동은 균형을 맞추려 펼친다. 그 행동은 만일 목표가 도달했다면 그만 둘 것이다. 거기에 행동에 내재하는 일종의 변증법의 원리가 있다. 이 행동은 그 행동 자체로 목적을 제시하고, 또 불충분을 체험함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우리에게 제공된 구체적 활동 영역에서 결코 성공하지 못할 지라도, 보다 더 만족스런 목적을 추구한다. 여기에서 만족하지 못한 의지에 의해 추동되는 끊임없는 인간적 불안이 나온다. 개인적 행동, 사회적 행동, 도덕적 행동 등과 같은 과학[인문 사회 도덕 과학] 모두들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또 완수되지 못했던 숙명에 직면하여 우리를 내버려둔다. [인간과학이 인간의 행동을 해결해 준 적은 없다. 단지 들뢰즈 말대로 문제거리를 풀어가는 중에 있다.] [이런 지식 풍토에서], 이런 회의적 취미(dilettantisme sceptique), 미학, 비도덕주의(l'immoralisme) 등에서는, 블롱델이 그 문제를 헤쳐나가기 위한 헛된 시도들을 보았다. 이 공허하게 벌어진 간극이 우리가 의지하는 것과 우리가 능력 있다는 것 사이에서 여전히 남아있다.
따라서 의지는 이때 어떤 대안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로 경험의 자료 속에 남아있는 것, 또 무능으로 남아 있는 것이거나,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대상들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 이런 의미에서 의지 자체를 거부하는 것, “어떤 방식으로든 관념들, 감정들, 도덕 규칙들 등의 큰 경향(큰 흐름)에 눈을 감고 [의지 자체를 실어] 자신을 내 맡기는 것인데, 이런 여러 경향들이란 전통과 경험들의 축적의 힘으로 조금 조금씩 인간적 행동들로[지위를 차지하는 경향으로] 구별되었다.” 다시 말하면 카톨릭주의의 권위에 [의지를] 내맡겼다. 이 권위가 초자연적 삶이고, 이 삶에서 신은 초월적이고 동시에 내재적으로 나타난다. 이 초자연적 삶은 [내재적이란 의미에서] 우리 의지 속에 무한정(d'indéfini)한 어떤 것이 있다는 깊이(le fond)이며 또한 [초월적이라는 의미에서] 의지를 만족하는데 알맞은 이상(l'ideal)이다.
이 행동의 철학을 실용주의와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전반적으로 부정확한 것일 것이다. 이 철학에서 행동은 진리에 접근하는 수단으로 중요하지만, 실용주의에서처럼 진리와 실천적 태도를 동일시하는 문제는 없다. 띠렐(George Tyrrell 1861-1909)는 크리스트교 철학 연보(Annales de Philosophie Chrétienne)(1905, p.223)에 쓴 「실용주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Notre attitude en face du Pragmatisme)」에서 이런 차이를 잘 느끼도록 썼다. 실용주주의로부터 띠렐은 다음의 사실을 수용한다: 절대자(l'Absolu)란 정신이 [미래에] 복사해야(copier, 닮아야)할 외적인 어떤 것도 아니고, 우리 경험과 어떤 연관을 갖지 못한 외적인 어떤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정은 절대자를 가지고 상대적인 개념항을 만들지 못한다. “용어들과 개념들의 형이상학이라기보다 생명과 행동의 형이상학을 연역한다는 것, 그것은 그[생명, 행동] 형이상학을 처음으로 안정된 토대 위에 놓는 것이다.” (참조: 교차로에 있는 크리스트교 (Christianity at the Cross-Roads, 1909))
쉬드(Alphonse Chide, 1868-1952)의 현대 유동론(流動論, Le mobilisme moderne, 1908)란 저술은 이 내재성의 철학에 대한 일종의 역사이다. 이 철학의 주요 계기들은 신학과 철학의 진화를 통하여 표시되어 있다.
신부 라베르톤니에르(Le père Lucien Laberthonnière 1860-1932)는 전문지 크리스트교 철학 연보(Annales de Philosophie Chrétienne)(1905)의 창간자이며, 특히 신앙의 본성에 대해 명상했다. 신앙은, 강압에 의해 작동하는 또는 지적 이유들에 의해 정당화하는, 외적 권위에 종속하는가? 오히려 선함의 표출, 즉 은총의 넘침 등과 같은 “삶의 경험”이 아닌가? 이런 은총을 통해서 신은 인간에게 내밀한 삶에 참여하게 하도록 하려고 스스로를 털어놓으며 자신의 비밀을 전한다. 이것은 외인론(外因論, extrinsécisme)과 내인론(內因論 intrinsécisme)이며, 여기에서 양자택일은 그리스 철학의 추상적 관념론과 크리스트교 실재론 사이에 깊은 대립으로 귀착한다. 전자는 고정되고 불변하는 본질들에서 실재성을 본다. 인간의 생성[창조와 발명]은 이 본질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 후자는 신 안에서 자연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또 자비와 사랑에 의해 다른 인격들과 관계를 맺게 할 수 있는 한 인격(une personne)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불가지론과 주지주의는 둘 다 똑같이 내인론(l'intrinsécisme)을 혐오한다. 전자는 데카르트가 참여했던 길이다. 데카르트는 신에서 극복할 수 없는 극한(une limite)을, 즉 사유와 행동의 장애물을 보고서 신을 인식할 수 없은 것에다가 처박아 두었다. 후자는 자연과 초자연 사이의 이원성을 인정하면서, 지성을 자연 안에 가두고, 독단(dogme 교리)은 알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고지된다고 결론짓는다.
이리하여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는 곧 밝혀질 새로운 경향들의 범위(portée)를 알렸다. “만일 옛 학설들이 외적 존재의 불가능한 우월성(un impossible primat) 위에 토대를 마련했다면, [또] 만일 19세기의 보편적 비판주의가 사유를 위한 사유의 고독한 제단(le culte solitaire)에 논리적으로 이르게 된다면, 내가 생각하는 의미로서는, 관념을 실재에 그리고 실재를 행동에 종속시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그것이 새로운 철학의 권위 있는 독창성과 견고한 진리이다.” [이 새로운 철학의 독창성과 진리란 것] 이런 것은 이 행동에 의해 “정신의 삶만큼이나 신체의 삶을, 그리고 도덕적 삶과 종교적 삶에 매달려 있고 종속되어 있는 실천적 행동의 일체를” 이해한다는 조건에서 그러하다. 르화의 이론은 우리가 조금 전에 제시했던 주제들에서 나타났던 이중 대립과 동일하다. 즉, 베르그송에서 지성과 직관, 모리스 불롱델에서 사색과 행동이 그것이다. 따라서 행동은 체험된[살아온] 사유와 동일한 것이다. 그가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5-1308)와 파스칼(Pascal, 1623-1662) 양자에게 결부시킨 반주지주의에서그는 감정의 철학도 의지의 철학도 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행동의 철학을 보고자 했다. 왜냐하면 행동은 감정과 의지 이외에도 이성(la raison, 이법)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여러 과학들 속에서도 이성을 보았다. 왜냐하면 과학적 발명은 행동이기 때문이며, 전제군주적인 지성의 습관을 내쫓아내고 모순조차도 받아들인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분계산의 발명에서 찾을 수 있다.)
관념론의 요청과 진화의 사실(L'Exigence idéaliste et le fait de l'évolution, 1927)과 이어서 나온 인간적 기원들과 지성의 진화(Les Origines humaines et l'évolution de l'intelligence, 1928) 작품들에서, 그[르화]는 고생물학과 인류학에 의해 당시 알려진 사실들을 고려하였고, 이 사실들을 근거로, 그는 살아있는 존재들과 인류의 진화를 설명하는 생명도약을 재발견하고자 시도했다. 이 설명의 시도는 진화라는 단어에다가 스펜서보다는 앞선 의미를, 그리고 베르그송에서 받아들인 의미를, 다시 말하면 창조적 생성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둘째 저술(p. 267)에서 결론짓기를, “생명의 역사는 우리에게 사유 집중의 역사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사유의 집중은, 신체를 갖추고서 정확하게 되려고 애쓰면서 ... 흩어지는 경향의 상태에 앞서서 있었다. ... 모든 것은 생명으로부터이지, 생명이 물질로부터 넘쳐 나온 것은 결코 아니다”3).
이제 까지 막 지적되었던 철학적 경향들 일체는, 교황 비오 10세(Pie X, en it. Pio X, 1835-1914; 재위 1903-1914)의 회칙 “파스켄디”(l'encyclique "Pascendi")[정식명칭 "Pascendi Dominici Gregis": 부제로는 “모더니즘 오류에 관한 교황 성비오 10세의 회칙서한”]에 의해, 1907년 단죄했던 “근대주의 철학”이라고 규정되었다. 회칙에 따르면, 근대 철학이란 그 뿌리로서 불가지론과 내재주의를 갖는다. 불가지론은 인간 지성으로 신에까지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고, 내재주의란 종교적 사실을 생명적 필요에 결부시키고, 나아가 교리(un dogme)의 진리를, 교리가 표현하는 신적 실재성이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교리가 종교적 감정을 생산하는 것으로 여기는 생명적 효과라는 점에서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떤 종교적 학설과 친족성을 갖는 모든 것으로부터 행동철학의 본질적 특징들을 구별해 낸다. 만일 행동이 [진화의] 적응 즉 실재적인 것에 적응하는 경향으로 간주되었다면, 사람들은 행동이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것을 뤼센(Théodore Ruyssen, 1868-1967)은 판단의 심리학적 진화(L'évolution psychologique du jugement, 1904)에서 주장했다. 이 판단은 신앙을 동반하며, 여전히 자연적 사회적 공간에서 적응된 작용의 준비이다. 또한 인식과 행동의 연관이 은 실용주의의 본질을 만들 것이다. (44PMG)
제2절 실용주의 Le pragmatisme 903
실용주의란 단어는 1898년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학설은 이미 퍼어스(Charles Sanders Peirce, 1839-1914)의 유명한 논문 「우리의 생각들을 어떻게 분명하게 하는가(How to make our ideas clear, 1878」(같은 해 Revue philosophique에 번역되었다)에 나와 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생각들의 의미화(significations, 기호화)를 고려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규칙을 부여했다. “우리가 개념작업의 대상이 가질 수 있는 실천적 범위를 갖는 효과(결과)들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라. 우리가 효과로 갖는 개념작업은 우리가 대상에 대해 갖는 개념작업 전체이다.” 여기서 실천적 범위란, 다시 말하면, 실험적 조절의 가능성이다.
의미화의 이론으로부터, 하버드 대학 교수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는 진리의 정의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명제의 진리와 작업들 일체를 구별한다. 명제진리는 주장하는 명제를 주장된 사물에 적합(adéquation)한 지에 의해 정의된다[명제와 사물의 대응]. 이에 비해 이 진리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작업일체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작업과정의 이해와 숙련으로 사물의 생산결과 성공까지를 합하여 일체]. 실용주의는 이러한 구별을 만드는 것을 거부한다. 실용주의에 있어서 진리는 일련의 작업들(les opérations)에 있다. 그러면 진실한 이론(la théorie vraie)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인도하는 이론, 즉 효과적인 생산을 확인하게 하는 귀결들에 도달하기를 인도하는 이론이다. 보다 더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가 대상을 진실로 안다고 하는 경우에, 내가 연속적인 변전과정을 따르면서 현실적 경험에서 다른 경험으로, 즉 내가 대상 앞에 놓여있는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어갈 일련의 작업들을 할 수 있을 때이다. 진실한 관념은 대상을 베끼는(la copie) 것이 아니다. 그 관념이 대상의 지각에로 이끄는 것이다.
다른 한편 제임스는 아주 다른 진리의 정의를 제시한다. 명제가 진리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명제에 부여하는 지지(adhésion, 집착)가 만족할 만한 귀결들을 생산하는 것이고, 게다가 인간 개인에게 단순하거나 복잡하거나 간에 모든 필요한 것들에 대해 만족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첫째 정의는, 마치 진리라 불리는 작업의 마지막 국면으로서, 대상의 직접적 지각에 관련 있다. 둘째 정의는 원칙적으로 지각과 모든 연관에서 독립적이고, 이 정의는 시험의 관념에, 즉 성공하는 행동계획에 관련 있다. 그러면 잘못이란, 좌초(l'échec, 실패)이다. 이 둘째 측면에서 “진리”란 생명적 신념(la croyance vitale 믿음)에 훨씬 더 가깝다. 이러한 것은 뉴먼(Newman 1805-1897)이 이해한 대로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11-1882)는 에머슨(Emerson, 1803-1882) 계보의 신학자인데, 제임스는, 진리란 선(善)에 쓰임이 있는 한 진리이라는 것을, 그리고 “생명적 신념은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순수하고 단순하게 이전될 수 없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생명만은 진리의 값어치로 판단되기 때문이라”1)는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원주1): )
진리에 대한 두 용어(notions)가 바로 “실용적”으로 쓰인다. 이 두 용어는 한 진리와 다른 진리를 행동의 과정으로서[이어지는 과정으로서] 정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하나는 진리에 객관적 가치를 부여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향하는 무매개적 지각은 모든 과정의 최종심급으로서 판단되기 때문이다[우리는 현상학의 지향적 대상이 들뢰즈의 실재화에 닮았다는 것을 말하자]. 다른 하나는 진리에게 생명적 신념을 부여하는데, 이것은 마치 행동의 선구적 신념(une croyance inspiratrice)에 생명적 신념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이 두 용어는 서로 환원될 수 없다. 게다가 전자는 제임스의 의도와 전혀 일치하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전자는 적어도 행동의 전과정과는 독립적인 진리를 가정하기 때문이다. 이 독립적인 진리란 무매개적 지각의 진리이다.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이른바 깊이 있는 실용주의자의 것인가? 어느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제임스 안에는 두 사람이 들어있다. 한편 하버드 대학의 동물학과 교수였던 아가씨즈(Jean Louis Rodolphe Agassiz, 1807-1873)의 제자였다. 그는 그에게 배웠다. “당신들은 자연에게 말을 걸어보세요. 당신들의 손으로 사실들을 잡아서, 당신들 자신 스스로 바라보고 관찰하세요”라고 가르쳤다. 제임스로서는 [이런 영향으로] 개념들이 구체적 사실로서 번역되지 않는다면, 개념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그는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11-1882)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스웨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1772)를 영향을 입은 신비주의자이며, 초절주의자들의 환경에서 자랐다 [에머슨(Emerson, 1803-1882) 휘트먼(Whitman, 1819-1892) 등이다] 초절주의자들은 진리를 이론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물들을 활성화시키는 신적인 생명에 참여에서 보았다. 아가씨즈의 제자로서 제임스는 아버지 제임스 속에 있는 신학자가 탐구하려는 우주의 수수께끼들을, 즉 우주에 대한 불가사의하고도 깊은 수수께끼들을 탐문하려 애쓰지 않았다. 밀(Mill, 1773-1836)처럼 경험주의자로서 제임스는 헤겔주의자처럼 거대한 전체를 탐구하고자 했다. 그런데 영국 경험주의의 메마름은 제임스의 깊이 있는 종교적 본성을 배척하였다. 그러나, 온전체(le Tout) 속에 개인들을 흡수하는 헤겔의 절대주의는 경험에 대한 그[제임스]의 경건함에 어긋난다. 말하자면 그의 경험에 대한 경건함이란 어떤 과학자의 경건함, 더군다나 개인, 구체적인 것, 환원할 수 없는 것 등을 매우 좋아하는 어떤 예술가의 경건함만큼 일 수 있고 또 그 이상일 수 있기다.
한편으로 세부사항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경험적 검증체계가 있고, 이는 외적 행동을 인도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감동적이고 생명적 신념이 있고, 이는 행동의 내적 근원이다. 이것들은 제임스의 실용주의의 두 축이다. 그의 철학은 에머슨(Emerson, 1803-1882)의 설교, 칼라일(Carlyle, 1795-1881)과 시인 휘트먼(Whitman, 1819-1892)의 예견(les visions, 통찰)에 닮은 점이 있다. 그의 유일한 잘못은 아마도 스스로 하나의 철학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진리에 대한 둘째 실용적 기준을 적용할 경우에, 그의 철학은 하나의 [그 자신에 고유한, 새로운] 철학이 될 수 있다. 진실한 우주란 무엇인가? 그 우주는 우리의 경향들에 응답하는 우주이다. 그 우주 속에서 우리는 행동할 수 있고, 우리의 기질(tempérament, 체질)을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보탤 것이 있다. 이 우주가 만일 변모할 수 있는 우주인 것, 즉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 것[즉 자기 변화 할 수 있는 것], 라틴어로 네 바리에투르(ne varietur 다른 것으로부터 변화를 겪지 않는)인 것이라면, 그리고 우리의 능동적 신념이 변화할 수 있게 하는 힘인 것과 같다면, 그 귀결로 우리의 신념은 우주를 변형시키기에 이를 것이고, 그것이 증가했던 대로 정확히 그것을 실현하기에 이른다. 실재성(une réalité)이라는 것은 우리의 행동에 의해 변형된다. 바로 그 실재성 속에서 우리는 살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속에서 역학[기계역학]을 보는 과학적 결정론을 부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역학 속에서 우리는 톱니일 뿐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시간과 변화까지도 부인하는 관념론적 절대주의도 부정해야 한다. 시간은 진지한 행동의 조건이다. 발트 위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 말하기를, “나는 절대적으로 시간을 받아들인다. 시간만이 균열이 없다. 시간만이 전체를 완성하고 채운다”고 한다. 우주가 우리의 태도에 의해 변모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것은 우주가 우리의 행동과 무관하지 않는 힘들과 창도력(des initiatives)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힘들이 우리에게 적대적인가 또는 우호적인가? 여기에서 우주에 대한 통찰(la vision)이 둘로, 즉 “딱딱한 영혼”의 통찰과 “부드러운 영혼”의 통찰로 나눠진다.
위트먼이 “딱딱한 영혼”이란 적들이고 투쟁 기회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오! 해롭고 위험한 영혼(quelque chose)! 오! 한가하고 독실하게 사는 것과 무척 거리가 먼 영혼! 오! 거대한 장애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고, 굴하지 않는 적들과 만나는 것이다.”2) (아마도, 이쯤에는 사람들이 주목했던 대로, 캘빈주의의 염세주의도 있다. 이런 주의자는 우주[이 세상] 속에서 단지 염세주의에 감염된 잘못(악惡 le mal)만을 인식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신의 자의적 의지만을 인식한다. 그러나 이 염세주의란 또한 강건한 의지와 아무것도 무너뜨릴 수 없는 의지에 의해 파악된 것이다. 아마도 적대적인 것 이상으로 “사물들이 낯설고... 우주가 야생적(sauvage)이고, 사냥감은 맹금류 날개의 냄새를 갖는다. 동일한 것은 차이를 초래하기 위해서 되돌아온다.”라고 제임스에게 많은 영향을 준 블랏(Benjamin Paul Blood, 1832-1919)이 그렇게 말했다.
반대로 “부드러운 영혼”에서는 그 힘들이 투쟁 속에서도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우리에게 우호적이다. 이 영혼은 유유상종들끼리 동지로서만 지탱된다고 느껴질 뿐만 아니라, 섭리적 신에 의해서도 또는 다신론에서처럼 다수의 보조적인 신성들에 의해서도 지지받고 있다고 느껴진다. 제임스의 인격적 통찰(la vision)은 딱딱한 영혼의 통찰과 부드러운 영혼의 통찰사이에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왔다 갔다 한다. 어떤 신이 있다고, 그렇다. 그러나 그 신은, 신이 우리를 돕는 것만큼이나 그 신의 작업 안에서 아마도 우리도 그를 돕는 그런 유한한 신이다. 무엇보다도 들이닥칠 위험이 있고, 매우 실재적인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의 결말을 누구도 예견할 수 없을 것이다. 우주의 역사는 미리 만들어진 계획에 의해 실현되지 않는다. 역사는 우연들(hasards)로, 회오리들로, 순환들로, 회귀들로 가득 찼다. 제임스는 퍼스의 표현법에 따라서 우연주의(tychisme: 퍼스 철학에서 우연이 우주에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 tychism), 즉 운수주의(fortuitisme)를 믿었다. 말하자면 그만큼이나 기회(la chance)를, 즉 우주의 마지막 숙명(destinée)에 기여할 수 있는 의지적 선택의 가능성을 믿었다. 성공은 희망일 뿐이고, 제임스가 말하는 “개선주의”(le méliorisme)란 우주의 자발적 경향성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이다. 세계의 안녕은 미리 정해진 항들이 아니라 각자가 현존하기를 원했던 그 무엇이다.
그러면, 그가 보기에, 세계의 비전[통찰]은 실천적 기준들의 둘째 기준의 결과이다. 그리고 그 비전은 진리를 판단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진리를 생성(engendrer)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이미 만들어진 개념의 화폐주조[동일 복사] 속에 있는 첫째 기준은 오히려 통제하는 숙명을 띤 것으로 나타난다. 즉 사람들은 그 기준을 적용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제임스의 급진적 경험론을, 그의 다원론을, 그의 종교적인 경험을 지닌다. 그의 이론들과 경험[들]이란 그가 살았던 세계의 이미지에 대해 사실들에 의해 그만큼이나 많은 시험들(des épreuves)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급진적” 경험론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영국 경험론의 100년 보다 더 오랜 전통에 따르면, 경험이란 얼개(le tissu. 직물)는 일종의 먼지들을 가지고 의식의 상태들로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의식의 상태들이란 [영어로] 느낌(feeling)이다. 이 의식상태들 사이에는 어떤 관계들도 [미리] 주어져 있지 않다. [흄 이래로 인과관계는 없다.] 이 관계들(인과성, 실체 등)은 관념연합들의 놀이에 의해 정신 속에서 조금 조금씩 구축되었다. 그런데 제임스는 관념연합론에 반대한다. 심리학자로서 그는 관념연합론을 의식 흐름의 통일성과 연속성에 대립시킨다. 관계들은, 경험론자들과 선험론자들이 동시에 그렇게 받아들여진 것처럼, 무매개적 경험보다 월등히 우월한 현존이 전혀 아니다. 동시성, 유사, 활동성, 이 모든 것은 경험이며, 경험과 같은 자격이다. 예들 들어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1766-1824)은 잘 못 생각하여, 노력이 근육 수축의 귀속하는(afférente, 구심적) 감각일 뿐임에도, 그 노력이란 특별하고 환원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감동(l'émotion) 안에서 공통의 경험만을, 즉 유기체의 상태에서 변화의 경험만을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관계들은 세계를 통일하기 위하여 높은 곳에서[상층에서] 오는 원리들처럼 있는 것이 아니다. [칸트의 인식 구성을 비판한 것이다] 게다가 관계들은, 브래들리(Bradley, 1846-1924)가 믿었던 대로, 자신들이 통합[결합]하는 항들 속에 자신들의 기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경험은 관계들을 항들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관계 항들은 때로는 결합되어 있고 때로는 자신들 자체로 감화되지(affecté 공명되지)않기 때문에 분해되어 있다. 급진적 경험론은 관계들 속에서 경험의 사실들을 다른 사실들과 똑 같은 자격으로 본다. 따라서 이 경험주의는 다원주의(pluralisme)에 이른다. 다원주의는 우주(l'univers) 속에서 분리된 블록들(blocs)의 형태로 된 혼돈을 본다. 분리된 블록들은 형성되고 해체되며, 마치 원자들과 분자들처럼, 항상 다른 조합[방식]들 속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경험의 다원주의적 세계가, 즉 “다원우주”(le multivers)가 행동의 요구에, 변화의 가능성에, 위험들로 가득 찬 초보적 자유에, 응답하는 지를 본다. 사람들은 위험으로 가득 찬 그 초보적 자유로부터 시간의 실재성이 주어진 것을 확신하게 된다.
급진적 경험주의1)는 종교적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 종교적 경험은 유물론적 해석에 의해서도 신학과 제도들에 의해서도 감화를 입지 않는다(touchée). 유물론적 해석은 종교적 경험을 가지고 심리 병리적 상태를 만들고, 신학과 제도들은 이 종교적 경험 위에 세워져 있다. 종교적 경험은 구체적인 잡다한 것들 속에서, [다시 말하면] 성자들, 신비가들, 금욕주의자들에게서도 취해진 것이다. 이 종교적 경험은 환희와 안전을 가져다 주며, 모든 도덕적 창도자들(les initiatives, 전수자들)을 만들며, 인간을 일종의 정령주의(animisme)에 의해 탈인격화하려는 것에 균형을 맞춘다. 여기서 정령주의란 [범신론 또는 만물정령주의처럼] 도처에서 자아들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제임스는 “조잡하다”(grossier) 할지라도 초자연주의에 동의자이며, 영성주의(spiritisme)의 창설자이다. 이 영성주의는 보이지 않는 정령들(spirits)의 의식과 우리들을 소통하게 하는 것이며, 그리고 우리들의 도움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 신비주의에서 오는 것이다. 신비주의는 습관적으로 의식들을 분리하는 경계(한계)들을 제거하면서, 우리들의 유한한 의식을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전체 속에 함몰시키는 것이다. 제임스의 심리학에서 너울들(les franges)들이란 모호한 영역(zone obscure)을 지칭하는 것인데, 이 영역은 의식 속에 아주 충만된 분명한 현상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 너울들은 의식들 사이의 가능한 연속성 보장한다. 여기서 아직은 사실들(이미 만들어진 것들)은 우리들의 요구(la demande)에 응답한다.
제임스의 진리에 대한 정의(la définition)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 그의 우주 통찰로부터 분리해서는, 우주가 그를 이끌고 또 진리가 우주를 이끈다는 의미를 거의 갖지 못할 터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의 진리가 정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고 비인격적 진리에 적용될 수 있을 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과학적 비인격적 진리가 정열적으로 모든 정념들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은 어떤 상태로 회귀, 즉 신중하게 원했던 회귀이다. 그 상태 속에서는 자연 자체가 우리의 모든 정서들로 인해 부풀려져 우리에게 나타난다. 그의 철학은 하나의 예언이다. 이 예언은 실재성의 본성에 지지 받은 것으로 주장되지만, 사실상으로 우주로부터 그것의 필요들(les besoins)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얻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인 쉴러(Ferdinand Canning Scott Schiller 1864-1937)가 인문주의라 불렀던 제임스의 학설과 비슷한 학설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타나는데, 사람들이 관념론적 절대주의[헤겔의 관념론]를 실천 속으로 옮기려 원하고자 할 때부터, 그 절대주의의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행동의, 변화의, 진화의 착각적(illusoire) 특성을 믿는다는 것이 [사람들을] 정적주의(le quiétisme)로 인도한다. 절대주의는 오류에, 소위 말하는 실재성을 전체의 부분으로서만 생각한다는 필연성에, 근거한다. 이런 근거는 모든 진리가 자체적으로 정합적이고 또 다른 진리들과도 정합적이라는 구실에 따른 것이다. 실용주의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문자그대로 지칭하는 것이며, 반대로 실용주의 그 자체 속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물을 보게된다. 그런데 정합적이라는 것은 일반성들이고, 사람들은 경험과 접촉으로 더욱 세부적으로 정확히 함에 따라가 보면 정합성을 잃게 된다. 게다가 우리들의 경험 속에는, 서로서로 정합적이지 않은 여러 세계들이 있다. 무매개적[무의식적,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은 [습관적 경험을 하는 일상인은] 과학자가 자기에게 제시한 세계에서 자기세상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런데, 물리학자는 생물학자의 세계 개념을 모른다. 이 모든 세계들 중에, 생물학자의 세계는, 마치 플라톤의 이상세계처럼, 그것들 중의 하나의 진실한 세계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여기서 실용주의는 관념론으로 경사 되어 있다.) 그 세계들의 각각은 우리들 인간적 관심에 상대적인 구축이다. [이렇게 보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기원전 485-411)가 플라톤(Platon,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기원전 427-347)보다 훨씬 더 진실하게 말했다. 즉 인식은 어떤 이원론도 가정하지 않고, 규정된 실재성에 어떤 지침(référence)도 관계시키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 쉴러는 가끔 독아론(solipsisme)에 매우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학설은 오히려 일종의 진화의 형이상학이며, 이것은 스펜서와는 매우 다른 의미에서 진행과정으로서 간주된다. 이 진행과정은 끊임없이 불충분한 세계의 과정이며 실재적이고 환원할 수 없는 과정이며, 개별적이고 예견불가능한 창발력들(des initiatives)에 의해 채워질 수 있다. 이 진화론은 (그리고 이것은 가끔 독아론의 경향을 설명하는 것인데) 단자론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롭게 활동하는 정령들의 상호작용에 호소한다. 그러나 연속성 없는 단자론이다. 새로운 상호작용들은 미지의 세계들과 더불어 생산된다. 게다가 쉴러는 일종의 최종 구원(le salut final)을, 전체적 조화를, 인격적이고 유일한 신을 인정한다.
쉴러 교수와 동시대에 옥스퍼드 대학의 다른 7명의 교수는 1902년 논집 Personal Idealism 만들어 냈다. 이 논집에는 공동프로그램이 들어있는데, 그 중에는 두 개의 주요 논문도 들어 있다. [그 내용으로 하나는] 모든 관념은 실재적인 것과 접촉에서 시험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모든 행동은 한 인격의 행동이다.
실용주의는 겉으로 보기에는 절대주의에 대립된다. 왜냐하면 불연속성을 실재의 표시로서, 부정합성을 자유와 개별성의 조건으로서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마도 다른 통일성이 있다. 즉 그 통일성은 절대의 총체성과는 아주 다르고, 실용주의가 그 통일성을 탐구하기를 맡는다. 이러한 것이 컬럼비아 대학 교수 인 듀이(John Dewey, 1859-1952)의 사상의 의미일 것 같다. 듀이에 따르면, 철학은 자신이 조각조각으로 짤라놓은 우주를 단편들 사이에서 하나의 통일성을 재발견하려고 헛되이 소진했다. 전적으로 기계장치이자 도덕성이 박탈된 물리학의 우주 또는 공통지각의 질적인 우주가 있다는 하고, 사람들은 그 동일성을 재발견하고자 애쓴다. 그런데 관념론은 물리학 속에서 정신적 구축물을 보고서, 정신적인 것 속에 물질적인 것을 해소하려 한다(résorber 다시 흡수한다). 그러나 “이 정신적인 것 안에는” 감성적인 것과 이성적인 것의 이원성이, 유한한 의식과 총체적 의식의 이원성이 남아있다. [관념론의 경우에] 사람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절대적 정신(la Pensée absolue)이 [이원성으로] 분열되는지를 알게 할 수 없다. 반대로 유물론은 자연 속에 의식을 흡수(absorber)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 이상한 부대현상과 더불어 왜 현존의 세계와 구별된 가치의 세계가 나타나는 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듀이에 따르면, 이 두 거짓 문제들은 사람들이 인식 속에 하나는 관조(contemplation, 신과 합일)을 본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것에 대해, 듀이는 자신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e) 즉 “기능주의”(fonctionalisme)을 대립시킨다. 도구주의는 인식의 가장 통속적인 개념작용에서 온 것이다. 인식은 통제된(dirigée 운영된) 활동성이다. 인식은 경험적 기능의 한 부분이다. 그런데 사유[생각]는 그 자체로 자기 목적을 갖지 않는다. 그 사유는 삶(la vie)의 한 국면이며, 한정된 몇 조건들 속에서 살아있는 존재에서 생겨나는 사건(un événement)이다. 스펜서(Spencer, 1820-1903)가 이미 주목했듯이, 그 사유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충력들 사이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에 생겨난다. 그리고 사유란 새로운 상황에 활동을 적응시키면서, 우리 활동을 중단 없이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있다. 따라서 관념은 행동의 가설이다. 관념이란 미래에 관련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를 진실로 인도하는 것이 진리이다.”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자연의 합리성이란 이론적 가설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을 변화시키고자할 합리적 개입의 가능성을 지성의 활동성에게 여지를 남겨주는 신념이다. 자연의 합리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지성적 활동이 밖으로부터 자신에게 도입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건들을 보다 풍부하고 충만하게 생산한다는 관점에서,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잠재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연이다.” 똑 같은 방식에서 보아, 우리 도덕적 활동성은 도덕적 선이라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또는 앞서있는 관념에 의해 통제되는[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도덕활동은 적어도 판명한 세 가지 원리들이 있다. 즉 목적으로서 간주된 선, 의무의 규칙, 타인의 평가이다. 여기서부터, 즉 이 세 가지 원리들을 조절할 필연성으로부터 [여러]도덕적 문제들이 나온다.
이런 사상에서 사람들은 듀이가 처음에 가졌던 작으나마 헤겔주의의 입장을 쉽게 인정한다. 듀이는 정신적 통일성을 실현할 것이라 주장하면서 헤겔보다 더 완전한 방식으로 실현할 것이라 한다. 헤겔이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그가 보기에 현대 사유의 병폐는 이상과 실재의 대립, 정신과 자연의 대립에서 오는 것이다. 이 대립은 예를 들어 역사가와 수학자 사이, 도덕론자와 기술자 사이의 환원할 수 없는 권한들(les compétences) 때문에 표현된 것이다. 일상적 교육학은 이런 대립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한편으로 도덕가에서는] 사유를 희생되면서 행동하는 인간들을 양성하며, 또는 [다른 한편으로 수학자들에서는] 추상적 사유를 배양한다. 듀이는 사유를 행동으로 귀착시키는 것도 결코 아니고, 심지어 사유를 행동에 종속시키지도 않았다. 반대로, 그가 제시하는 바는, 사유가 행동과 필수불가분 한 국면이 있다는 것이고, 또 그 사유는 복잡하고 진보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그의 실용주의는 사유를 희생하기보다는 사유를 회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형성한 사유의 개념작업은 사유를 지성성[순수 추상 사유]의 정도[단계]들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는 것이다. [듀이에 따르면]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수학과 물리학의 대상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과 인간과학의 대상들이라는 것이다. 이 후자들을 전자들 보다 더 잘 지성적으로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간단히 말하면 정신이며, 즉 자연과 사회 안에서 작업 중인 정신이기 때문이다. (44QLF)
제3절 죠르쥬 소렐 Georges Sorel 911
베르그송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죠르쥬 소렐(Georges Sorel 1847-1922)은 슬기인(homo sapiens)을 도구인(homo faber)과 동일시했다. 가설을 구축하는 과학자는 이상적으로 메카니즘(un mécanisme [기계작동장치])을 제작한다. 이 이상적 메카니즘은 실재적 기계작동들(les mécanismes)처럼 작동해야 한다. 과학은, 문학가들이 그렇게 바란 대로, 사변적 인식을 향하여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엄격하게 작동하는 기계작동장치들에 힘입은 이상적 공작소를 창조하는 데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따라서 가설은, 사물을 향하는 행동의 수단으로써, 자신의 모든 가치를 갖는다. 즉 가설로부터 실재적인 것의 효과적인 표상의 가치를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가설로부터 실재대상과 대응하는 표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만한 것에 대한 가치가 있고(칸트), 그 외에는(부정되는 것에는) 적용이 되지 않아서 버릴 수밖에 없다. 버린 것이 너무나 많아서 문제가 된다. (44RKH)] 실증주의는 물리학에서 가설들을 배제했고, 동시에 실증주의는 역사 속에서 연속적 사건들을 규정하는 필연적 법칙을 인정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소렐은 가설들을 가설들의 권리상으로 재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사회 미래의 결정 속에서는 [아직도] 모호함에게, 무의식에게, 예견불가능에게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학에서] 가설들이 우리의 행동을 자연으로 향하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역사와 사회에서] 신념들(des croyances)이 우리의 행동을 사회의 모호한 미래를 향해 결정해야만 한다. 마치 물리학자가 자기 가설을 이용하듯이 사회주의적 선동가들은 총파업을 이용한다. 마치 미래의 물리학자가 그의 [옛]가설들을 케케묵은 것으로 생각하듯이, 선동가는 [시간이 지나 미래에서 보면] 이 파업이 신화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신화는 행동에 의해 창조된 신화이다. 소렐은 사회적 혁명과 반주지주의의 철학 사이에 밀접한 연관을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적 혁명은 노동조합의 조직들에 의해 국가를 대체하기 위하여 국가를 파괴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그에게서 그 철학은 노동자의 철학이라 보았고, 또한 지성은 욕구들에게 가면을 씌우게 하는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18세기 말에 진보라는 부르주아 철학처럼), 오히려 자연을 향한 행동의 계획(programme)속에 있다. (참조: 폭력에 관한 반성들(Reflexions sur la violence, 1900)) (44RKH)
.
# Bibliogrphie 912
I. (제1절 레온 올레-라프륀과 모리스 블롱델)
E. Boutroux(1845-1921, Notice sur la vie et les oeuvres de M. L. Ollé-Laprune, Acad. des sciences morales et politiques, 1905; Nouvelles études d'histoire de la philosophie, 1927.
M. Blondel(1861-1949), Léon Ollé-Laprune, 1923; L'action, 1893 (rééditée en fac-similé, 1950) [fac-similé 팩시밀리로 전송된....]
A. Hayen(1906–1988), Bibliographie blondélienne, 1953 [Hayen, fr,Wiki x.]
R. Crippa(1916-1983), Rassegna do bibliografia blondeliana, Turin, 1952.
M. Blondel(1861-1949) et A. Valensin(1879-1953, Correspondance, 2 vol., 1957.
M. Blondel(1861-1949), Dialogue ave les philosophes, 1966; Carnets intimes, 2 vol., 1961-1966.
H. Duméry(1920-2012), La philosophie de l'action, 1948; Blondel et la religion, 1954; Raison et religion dans la philosophie de l'action, 1954.
J. Ecole(1920–2015), La métaphysique de l'être dans la philosophie de Maurice Blondel, 1959.
H. Bouillard(1908-1981, L'invention de Maurice Blondel et la théologie, Recherches de science religieuse, 1949; Blondel et le christienisme, 1961.
J. Lacroix(1900-1986),, Maurice Blondel, 1963.
Les études philosophiques, numéro spécial, 1950.
Pour un cinquantenaire: Hommage à Maurice Blondel, 1945.
Hommage à Maurice Blondel, 1962.
Le centenaire de Maurice Blondel, Aix, 1963.
L. Laberthonnière(1860-1932), Oeuvres, éd. L. Canet, 1938... ; M. Blondel et L. Laberthonnière, Correspondance, éd. Cl. Tresmontant, 1961.
M.-M. d'Hendecourt(s.d.), Essai sur la philosophie du P. Laberthonnière, 1947.
E. Le Roy(1870-1954), La pensée intuitive, 2 vol., 1929-1930; Essai d'une philosophie première, 2 vol., 1956-1958; Introduction à l'étude du problème de Dieu, 1929.
H. Bergson(1859-1941), Oeuvres, éd., A. Robinet et H. Gouhier, voir Index, s. v. Le Roy.
L. Lavelle(1883-1951), Leçon inaugurale faite au Collège de France, 1942.
G. Bachelard(1884-1962), Notice sur la vie et les travaux d'Edouard Le Roy, 1960.
II (제2절 실용주의)
W. James(1842-1910), The Will to believe, 1919; L'expérience religieuse, trad. F. Abauzit, 3e éd., 1931; Précis de psycologie, trad. Baudin, 1921.
H. Bergson(1859-1941), Sur le pragmatisme de William James, Vérité et réalité, in Oeuvres, éd. citée, p. 1440-1450; voir aussi l'index, s. v. W. James.
G. Riconda(1931-생존), La folosofia di William James, Turin, 1962.
H. Schmidt(1928-?), Der Begriff der Erfahrungskontinuität bei William James und sein Bedeutung für den amerikanischen Pragmatismus, Heidelberg, 1959.
III (제3절 죠르쥬 소렐)
G. Sorel(1847-1922), Introduction à l'économie moderne, 2e éd., 1922; P. Delasalle, Bibliographie sorélienne, 1939.
J. Rossignol(s.d.), Pour connaître la pensée de Georges Sorel, 1948. [Fernand Rossignol]
G. Goriely(1921-1998), Le pluralisme dramatique de Georges Sorel, 1962.
H. Barth(1904-1965), Masse und Mythos, 1959.
C. Mongardini(1938-2021), Considerazioni sull' interesse sociologico dell' opera di Sorel, 1964.
*
18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이다. 그는 의사로 시작하여 생리학 심리학으로 경도되었으며, 의지에 내재하는 인간 본연의 의식은 사유를 실용과 분리시키지 않으며, 구체적 진리는 이 실용의 성공과 유용성(공리성)에 있다고 보았다.
1845 부트루(Emile Boutroux, 1845-1921) 프랑스 철학자, 자연법칙의 우연성에 대하여(Contingence des lois de la nature 1874) 과학과 종교(Science et religion)
1847 소렐(Georges Sorel, 1847-1922) R2 1689. 프랑스 공법학자(publiciste), 그는 에꼴폴리테크닉 학교를 졸업한 후 1892년(45살)까지 다리와 도로 회사의 기사로 지냈다. 그리고 그는 사회주의 잡지 여러 곳에 참여했다.
1859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유태인 출신의 프랑스 본성내재주의 철학자.
1860 라베르톤니에르(Le père Lucien Laberthonnière 1860-1932) 프랑스 신학자, 철학자, 철학사가. 1886년(26살) 서품을 받았다. 모리스 블롱델과 내밀한 친구이다. 잡지 Annales de philosophie chrétienne (de 1905 à 1913)의 편집장을 지냈다.
1861 블롱델(Maurice Blondel, 1861-1949), Didier Julia, Dictionnaire de la pilosophie, Larousse, 1988(1984) 프랑스 철학자이다.
1870 르화(Edouard Le Roy, 1870-1954), 프랑스 철학자, 수학자이다. 르화는 1870년 파리에서 태어나, 1954년(84살)에 파리에서 죽었다. 그는 베르그송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입었다. [그는 베르그송 철학을 옹호한 첫 번째 작품을 낸 사람으로 유명하다]
1879 발랑생(Auguste Valensin, 1879-1953),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철학자, 수필가. 작가.
1883 라벨(Louis Lavelle, 1883-1951) 프랑스 철학자. 형이상학자.
1884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 1884-1962)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시인
1900 라크르와(Jean Lacroix, 1900-1986), 프랑스 철학자.
1904 바르트(Hans Barth, 1904-1965), 스위스 철학자. Masse und Mythos, 1959.
1906 헤이앙(André Hayen, 1906–1988)벨기에 카톨릭 제수이트 신부, 철학자.
1908 부이야르(Henri Bouillard, 1908-1981),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신학자.
1916 크리빠(Romeo Crippa, 1916-1983), Rassegna di bibliografia blondeliana, Turin, 1952. (III 912) - 이탈리아 철학자? 블롱델 연구가?
1920 뒤메리(Henry Duméry, 1920-2012) 프랑스 철학자. 종교철학과 현상학, 블롱델의 친구(나이 차이가 많은데) 블롱델 주석가.
1920 에꼴(Jean École, 1920–2015) 프랑스 철학자.
1921 고릴리(Georges Goriely, 1921-1998), 벨기에 사회학자, 정치학자. 유대인 옹호위원회 위원,
1928 슈미트(Hermann Schmidt, 1928-?) H. Der Begriff der Erfahrungskontinuität bei William James und sein
1931 리꼰다(Giuseppe Riconda, 1931-생존), 이탈리아 철학자. 토리노 과학아카데미 회원.
1838 몬가르디니(Carlo Mongardini, 1938-2021), 이탈리아 사회학자, 작가.
?-? 앙드꾸르(Marie-Madeleine D'hendecourt, s.d.), Essai sur la philosophie du P. Laberthonnière, 1947.
?-? 호시뇰(Fernand Rossignol, s.d.), Pour connaître la pensée de Georges Sorel, 1948.
(44RKH) (57WKB)
책브레이2409철7권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