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yZDI4OdOs?si=E0mgboJQF-eIRpep
59. 대각회 법주 광덕큰스님
금하 광덕스님은 재단법인 대각회 이사장이자 불광법회 법주로서 불광잡지를 발행하여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선지식이다.
1927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17세부터 6년 사이 아버지 어머니 사랑하던 누이까지 잃고 인생무상을 절감하고, 1950년 부산 범어사 동산스님께 귀의하였다.
53년 신소천스님의 <깨달음 운동>에 동참하고, <금강경독송구국원력대>에도 동참하여 전국을 순회하였다. 54년 금정사에서 한 소식을 얻고, 부산 범일동에서 최초의 법등가족법회를 주일마다 열다가 56년 백용성스님의 정신을 계승하게 되었다.
58년 조계종 중앙감찰위원이 되고, 62년 총무국장이 되어서는 종헌 종법 불교재산관리볍 등을 성안하고, 63년에는 대학생불교연합회를 만들었다.
65년 봉은사 주지로 취임하면서 대학생법회에 참여한 것이 스님과의 큰 인연이었다.
항상 몸이 약해 틈만 있으면 혼자 계시기를 좋아했는데, 한번은 봉익동 대각사에서 그런 말을 하셨다.
"나는 세상을 두 번 사는 사람이요.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병원에 가니 폐를 자르기 전에는 살 수 없다하여 고민하였는데, 그날 밤 꿈을 꾸니 '네가 어머니 배속에 있을 때는 폐로 숨을 쉬지 않았다' 하여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 단전복기를 하면 나을 것 같아 수술 후에는 단전복기를 하여 폐를 무리하게 쓰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p188
그래서 그런지 같은 입장에 처해있는 수행승들이나 신도, 학생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흔적없이 도왔으며, 먹는 음식에 대해서도 본인은 드시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음식을 마련하여 전해주곤 했다. p188
항상 얼굴에 밝은 빛이 솟고 있었고, 마음 한 구석에도 그늘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1971년 청담스님 돌아가신 뒤 총무부장을 맡아 총무원장 직무 대행을 탈없이 이끌었던 것이다.
94년 대각회 이사장이 되어서는 불광회를 창립하고 순수불교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서는 십악참회, 108참회로 모범적으로 뽄을 보여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79년부터 불광출판부를 개설하여 문서포교에 나섰으며, 92년 도서출판 <한강수>도 만들었다. 이렇게 중생을 다방면으로 교화하는 가운데서도 범어사에 금강계단을 만들어 선찰 대보산의 면목을 살렸다.
92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보현행원가를 발표하여 불교음악의 창작성을 높였다. 이렇게 일생을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시던 분이 1999년 2월27일 열반에 드셨으니, 진실로 이 시대의 보살이요, 조사이다.
"나는 병이 들지 않았으면 감히 병든 사람들의 속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고민하지 안했으면 이 세상 고생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가까운 사람들 앞에서 조심스럽게 늘 하신 말씀이다. 이 세상에 받은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참회, 구도의 열정이 누구보다도 높았고, 집 한 채를 지어도 다른 데서 볼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었던 것이다.
그 분의 일생은 <명상언어집>, <금강경>,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반야심경>,<보현행원>, <지장참>등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언젠가 강동구 천호동쪽에서 전화가 와, "우리 절 법회를 좀 보아주십시오."하여 갔더니, 바로 광덕스님의 큰 제자가 운영하는 절이었다. 신도의 조직이며 법회 절차가 법도 있게 운영되어, 큰스님의 영험이 대각사나 법안정사에만 그치지 않고 전국 곳곳에 이렇게 퍼져나가고 있구나 생각하였다.
동국대학교 이사들 가운데 10년을 넘긴 사람이 그렇제 많지 않다. 그런데p189 스님은 20년 동안 이사로 지내면서도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여 모든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연꽃처럼 깨끗한 분"
누구나 보면 절 잘하고, 칭찬하고, 공경 공양하여 살아있는 보현보살로 통했다.
"어두운 곳엔 빛이 제일이고
배고픈 사람에겐 음식이 제일이다.
보고 들은 이름과 모양은 모두가 거짓.
진실은실로 보고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님께서 불광청년들에게 내리신 마지막 법어다. p190
내가만난선지식/활안한정섭/불교통신교육원/2012
첫댓글 오늘 일요일 병원에 가서 원고 정리 하였습니다
화엄경에는 늘 법우 즉 법비가 비유로 나오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래도 갠 하늘이 원고 교정 하는 사이 폭우가 내리네요
화엄의 시원한 법우 같습니다
예전에 큰스님 생각하며 부른 노래 표정을 들으니
큰스님 그리움에 눈물이 하염없이 내리네요
그 마음이 저 마음인지
오늘 안성 초여름 비도 폭우로 내립니다
그리운 우리 큰스님
큰스님의 행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새로나올 보현행원 책이 기대됩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도가 높다는 말은
신통력이 크다는 것도, 깨달음이 높다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눈물 흘리는 보현 선생님을 뵈니 듭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