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관론의 정의
길장스님은 「중론(中論)」또는 「중관론(中觀論)」이라는 책 제목으로써 중도에 대해 해석을 했습니다. 이 중관론의 명제에 대한 해석이 길장스님의 저서 여러 곳에 있는데, 여기서는 중관론소(中觀論疏)와 삼론현의(三論玄義)에 있는 해석을 일부 발췌하였으며 이들의 내용은 서로 비슷합니다.
중(中)은 소전(所詮)의 이치요, 논(論)은 능전(能詮)의 가르침이니, 이것은 이치에 있어 포섭하지 않음이 없고 가르침에 있어 거두지 않음이 없느니라. 중(中)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능히 행하는 도(道)요, 관(觀)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능히 관하는 마음을 말한다. 모든 부처님의 관 (觀)은 마음에 분별한 바를 입으로 잘 설명하여 그것을 경(經)이라 칭하고, 보살의 관(觀)은 마음에 분별한 바를 입으로 잘 설명하여 그것을 논(論)이라 이름하느니라.
中은 是所詮之理요 論은 是能詮之敎니 斯無理不攝이요 無敎不收니라...... 中은 諸佛菩薩所行之道요 觀은 謂諸佛菩薩能觀之心이니라. 諸佛 觀辨於心宣於口하여 稱之爲經이요 菩薩觀辨於心宣於口하여 名之爲論이니라. [中論疏 ; 大正藏 42 p.2상]
중(中)은 소전(所詮)의, 즉 불교의 근본원리를 표방한 것이고, 논(論)은 능전(能詮)의 교(敎), 즉 그 근본원리를 부연 설명하는 것입니다. 중론이라 하는 이 논전(論戰)에는 불교교리의 무슨 이치든지 그 기본적 사상이 여기에 섭수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불교계에는 여러 종파가 많이 분립되어 있지만, 전 종파의 교리가 다 이 중론을 기본으로 하여 여기에서 파생된 것으로 중(中)을 제외하고는 불교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행하는 도요, 이 중에 입각한 관(觀)은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능히 관하는 마음입니다.
일체의 부처님과 보살이 이 중관(中觀)에서 마음을 깨쳤는데, 모든 부처님이 마음을 깨쳐 중관의 도리를 성취하여 설해놓은 것을 경(經)이라 하고, 보살이 깨쳐 설해 놓은 것은 논(論)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중론이라 하는 것은 용수 보살이 지은 것이기 때문에 경이라 하지 않고 논이라 하는 것입니다.
삼론종에서는 이 중(中)이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근본원리로서, 불교에서 말하는 이론은 무슨 이론이든지 다 이 중(中)위에 서서 그 이론이 전개되어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중(中)은 삼세 시방 모든 부처님과 보살이 행하는 도를 말한다.
이 도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과 보살의 정관(正觀)을 발생하느니라.
中은 謂三世十方諸佛菩薩 所行之道라 有此道故로 發生諸佛菩薩正觀하니라
[三論玄義 ; 大正藏 45 p.13하]
삼세 제불과 보살이 실천하는 도(道)가 호호망망해서 무궁무진하지만, 이들 모두는 그 근본이 중(中)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 근본 골자인 중을 떠나서는 삼세 시방 제불보살의 불법이 있을 수 없고, 이 중도를 의지하여야만 정관(正觀)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중도를 깨치고 중도에 입각해서 정관을 가지고 설법을 하든 무엇을 하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곧 변견(邊見)에 떨어지고 맙니다.
(2) 이제설
이 부분은 길장스님이 중론 초품인 관인연품(觀因緣品)을 해석하면서 그 특성을 여러 가지로 논의한 것 중의 한 가지인 이제(二諦)에 대한 것인데, 이것이 곧 중론의 근본 사상이라는 것이 그 주요 논지입니다.
이 중론은 비록 법으로서 궁구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말로서 다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그 요점이 돌아갈 바를 총괄하면 이제를 회통함이니라.
此論이 雖無法不窮하며 無言不盡이나 統其要歸하면 會通二諦니라.
[中論疏 ; 大正藏 42 p.6하]
중론에는 불교의 무슨 법이든지 그 근본이 전반적으로 성립되어 있으며, 부처님 말씀이고 보살님 말씀이고 간에 무슨 말씀이든지 다하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이 중론을 보면 미진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 사상의 근본이 어디에 서 있는가 하면 이제(二諦)를 회통하는 데 있습니다. 이제란 세제(世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말합니다.
세제는 세간 사람들이 진리에 전도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향존하는 유(有)라고 집착하는 것이고, 제일의제는 부처님과 조사들이 전도를 떠나 일체법이 공(空)·무(無)하다고 자각한 올바른 진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와같이 상대적인 모든 법을 중론에서는 회통하여 융화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볼 때에는 유와 무가 서로 원융한 것입니다. 이와같이 중론의 골자는 유무(有無)든지 진속(眞俗)이든지 모든 이제를 회통하여 원융무애하게 하는데 있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