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국2과(철도청담당)에 있을 때,권한이나 실권과는 무관했지만 혹시라도 외부인들이 사무실에 와서 보면 상석으로 좌석배치가 되어 있어서 제법 높은 사람으로 보여서 우리들끼리는 높다.낮다 가지고 농담을 하곤했다.발령순으로 자리배치되었고,그들 대부분은 대학졸업식관계로 며칠씩 입시가 늦어진것 뿐이었다.
5국2과 시절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우리 입사동기들이 8명이나 되었는데 세명만이 나와 동연배고 3-4살 위가 5명이나 되었다.
모두들 능력면에서는 출중했고 감사시에는 맹수처럼 사납고 날까로왔지만 테니스를 즐겼다.당시 월급이 고작40,000원도 못되었는데 42,000원이상인 최고급 라켓트인 헤드마스터를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세계 최고선수였던 지미코너스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자신이 그에 버금 가는 양 떠들어 댔다.총각시절이었으니 당연했다.우리들은 삼청료라는감사원 바로입구에서 원에서 제공해주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일과가 끝나면 쏜살같이 나가서 감사원뒤 테니스장으로 갔다.간부들(과장이상)이 오면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밀려서 아래에 있는 공우원 교육 연수원으로 갔고 주말이면 철도청에 있는
테니스장을 많이 이용했다.피감기관이니 우리가 가면 어서오시라고 간부들까지 나와 잘 치지도 못하는 데도 잘친다고 박수치고 난리였다.
그당시는 한달이면 거의 20일이상 종합감사를 나갔고 사무실에는 직원 한사람씩 돌아가며 타자수(주영애)와 같이 사무실을 지키며 주로 출장직원들과 업무연락을 했다.
그런데 1년,2년 지나면서 동기들은 승진했다.나보다 뒤자리에 앉았던이도 자연스레앞으로 갔다.우리들은 제일 나이어린만 23세)측이었고 고참은 38세,평균나이는 32세였다. 그들은 이미 감사원 들에 오기전에 공무원 경력만도 10-15년 정도씩 되었다.따라서 승진할 대는그것을 반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 했지만 사회 경력이 전무한 청산은 그 속사정을 알리가 없었고,자존심이 퍅퍅 상할 뿐이었다.
고참 부감사관이나 선배들은 한결같이 "미스터 고,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 서운 하게 생각히지 말게나"했지만 귀에 들어올리가 만무했다.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그러네.이러다간 나이 40이 넘어도승진은 틀리고 만년쫄자로 생활 하겠네 하고 갈등이 커졌다.
돌이켜보면,1972년 10월 27일 50대 1의 경쟁을 뚫고 입사한 나름대로의 엘리뜨라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나는 기획실(평가 담당관실)에배치되었다.대학에서 비록 통계학을전공했지만 통계학이 싫어 고시공부를했는데.그전공이 첫직장에서 내 코를 낀 것이다
--------------계속-----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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