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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진교 인천남동구청장 ⓒ프레시안(김하영) |
프레시안 :지자체의 보육 정책에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배진교 : 지금은 대부분 사립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통해 보육이 이뤄지고 있고 국가의 지원은 보육비를 지원하는 것 외에는 없다. 물론 지원 역시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육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다. 주민들의 요구도 날로 높아지는 것이 현실 아닐까.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은 '국가가 보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라는.
프레시안 : 민간 어린이집의 반발은 없었나?
배진교 : 과거에는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보육비도 저렴하고 시설도 더 좋고 교사들에 대한 처우도 국공립이 더 좋기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과 민간 어린이집이 경쟁관계일 때는 당연히 반발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인가제'를 통해 각 지역마다 해당 어린이집 시설 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민간 어린이집도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게되어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민간 어린이집이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해 걱정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에 민간 어린이집 원장을 만나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를 반대하면 안된다. 이건 정부에서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임대아파트가 밀집된 곳은 별도로 국공립을 설치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기 때문에 민간에서 크게 반발할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프레시안 : 민간 차원의 반발이 크지 않다면 다른 지자체에서는 왜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지 못하는 것일까.
배진교 : 1차적으로는 재정 문제일 것이고 2차적으로는 의지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재정의 경우 아무리 국비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전체 자치구 중 57개가 직원의 인건비도 감당하기 어려울만큼 재정이 취약한 상황 아닌가. 우리 구 역시 재정 여건이 좋은 편은 아니나 재개발 택지 개발이 이뤄지는 지역의 특성이 있어서 좀 더 유리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또 남동공단에 생긴 어린이집과 구월동 어린이집의 경우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부 채납 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프레시안 : 운영하고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별도의 지원 같은게 있나?
배진교 : 남동공단의 어린이집의 경우 비즈니스 센터 안에 어린이집이 입주해 들어가 있는 식인데 그 건물 임대료 자체가 비싸서 관리비가 많이 나왔다. 위탁 운영하는 사람이 본인 돈으로 부족분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고 해서, 시 당국과 구청 보육국이 머리를 맞대서 시조례를 개정해서 관리비를 감액하게끔 해서 지원도 했다.
"민간 어린이집 중요한 것은 투명성…관리·감독 강화로 '일벌백계'"
ⓒ프레시안(김하영) |
프레시안
: 가장 일선에서 보육 행정을 맡는 구청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증설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민간 어린이집 관리, 감독도 중요한데.
배진교 : 어린이집 운영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이들에 대한 학대나 먹거리 문제, 혹은 운영의 투명성 문제 등이라서 작년에 민간 어린이집에 대한 특별 관리 차원에서 감독을 강화했다. 투명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봐서 밀어붙인 것인데 위반 사례가 많이 적발되어 강력하게 처벌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가 많이 나타났다. 가령 급식 납품 업체와 불법적으로 거래한다든지, 보육교사 지원비를 원장의 사생활 비용을 쓴다든지, 영수증을 가짜로 만든다든지 하는 운영비 유용 문제가 있었고 급식 납품 업체와의 불법적인 거래 문제도 있었다. 또 어린이집 정원 규정을 어기고 운영해서 보육비를 과다 지원 받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시설장 자격 정지 6개월 등 강력하게 처벌했더니 민간 어린이집 반발이 심했다. '집단 행동' 등의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아는데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에게 이해를 구했다. 어린이집에 지원되는 돈은 우리 지역 주민들의 세금으로 하는 것이니 투명하게 해야하고, 또 투명해야만 구에서도 지원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자신들 역시 '현실이 이렇다'고 밝혔더니 깜짝 놀라더라. 지금은 위반 유형을 정리, 책자로 만들어서 시설장과 교사들을 교육하기도 했다.
프레시안 : 사실 구청에서는 어린이집의 문제를 적발하더라도 시설장 자격 정지나 시설 폐쇄와 같은 강력한 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배진교 : 그 시설이 정지 처분을 받거나 폐쇄가 되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징계를 최소화해서 피해를 줄이려 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부분이 있는데 문제는 그런게 2,3차 누적이 된다는 점이다. 일벌백계 차원에서도 제대로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앞으로도 반복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1차에는 시설정지를 시키지 않더라도 2,3차 문제가 생길 경우 '시설 폐쇄'까지도 징계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프레시안 : 구청에서 민간 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배진교 : 아무래도 지도 관리, 감독할 공무원의 숫자가 적다, 우리 구의 경우 구민이 48만 명이고 연간 예산이 4000억 원이라 어지간한 서울시 자치구와 비슷하지만 공무원 자체가 서울 자치구는 1200명 내외이나 우리는 775명 뿐이다. 보육 정책과 행정을 총괄하는 보육시설팀, 보육지원팀의 경우 한팀에 3명 뿐이다. 보육시설팀 3명이 어린이집 400개를 지도 관리, 감독을 해야하기에 철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3년 주기로 100여 개 씩 나눠서 점검하고 있다. 결국 행정력으로만 어린이집을 관리 감독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되어 있지 않고, 민간 어린이집 내의 자구적 노력, 의식전환 등이 절실하지 않나 싶다.
프레시안 : 보육 교사에 대한 정책은 어떻게 운영되나. 보육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 중요한 것은 보육 교사의 질이라고 하는데.
배진교 : 선생님들이 즐거워야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다는 데 십분 공감한다.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선생님들 월급이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일반 유치원에 비해서 적다. 그래서 작년부터 5년 이상된 보육교사에게 월 3만 원의 장려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고 연차적으로 늘릴 예정이다. 올해의 경우 180명 정도가 지원 대상이다.
또 3년마다 어린이집 평가를 받는데 2주간 평가 준비를 하려면 시설장이나 보육 교사들이 상당한 업무부담이 있게 된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평가 서류 등을 준비하는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2주간 평가 준비를 하는 기간에는 보조교사를 파견해서 업무 경감을 도와주고 있다.
"무상 예방접종에서 아동 주치의 제도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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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0~12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예방접종은 어떻게 하게 된 것인가.
배진교 :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의 핵심 공약중 하나였다. 무상의료 로드맵의 1단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선거에서 30대 주부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책이 무상 예방접종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구청장이 되고 나서도 계속 강조했다.
예방접종의 경우 보건소에 와서 맞아야 무료인데 작년에 보니 예방접종 시기에 공간도 좁은 보건소에 아이를 안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안쓰러웠다. 이 정책의 핵심은 동네 병원에서 무상 예방접종을 맞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의사들이 많이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구청에서 지원하는 진료비 수입이 생기니 오히려 좋아하더라.
특히 0세에서 2세 사이에는 12세까지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 22개 중 15개를 맞아야 할 정도로 집중되어 있다. 대체로 비용으로 따지면 40만 원 가량이다. 나도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라 혜택을 봤다. 병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와서 '예방접종 하셔야 합니다. 무료입니다'라고 하더란다.(웃음)
프레시안 : 구청의 재정 부담이 크지는 않은지?
배진교 : 사실 백신비는 국비로 지원되고 우리는 진료비 1만 5000원 정도를 지원하기 때문에 그리 재정 부담이 크지는 않다. 그러나 효과는 크다. 한 아이가 12세까지 주기적으로 병원을 가서 예방접종을 맞으면 의원에서 병력 관리 등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게 아동 주치의 제도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의료제도 자체도 변화시켜야 하는데 과연 현 정부나 보건복지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할지 의문이다. 그래서 제도 변화 없이 아동주치의 시스템을 도입할 방안을 연구 중이다. 각 병원의 이력 등을 보건소에서 통합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일단 추진 중이지만 정부가 주치의 제도를 도입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남동구는 공공 베이비시터 사업도 하고 있는데?
배진교 :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텐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본인이 아프거나 야근 등 긴급한 일이 생겨서 아이를 볼 수 없고 또 맡기기도 마땅치 않은 경우가 생긴다. 공공 베이비시터 사업은 집에서 보육하는 가정에서 보모가 필요한 경우 일시적, 한시적으로 방문해서 아이를 돌봐주는 사업이다.
24시간어린이집도 필요하지만 각 가정의 보육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식의 보육 서비스 수요도 존재한다. 일단 시범 사업으로 전체 남동구를 4개 권역으로 나눠서 하고 있다. 권역마다 공공어린이집에 보육 도우미가 상주하고 있고 동주민센터에서 신청을 받아 필요한 시간에 방문하는 식이다. 하루에 4시간, 연 10회로 한한다. 물론 무료이고, 반응이 좋아서 내년에는 전면 실시할 예정이다.
프레시안 : 이 보육 도우미는 주로 어떤 분들인지?
배진교 : 보육교사 출신이거나 사회복지사다. 실제로 보육 교사를 하다가 일을 쉬고 있다가 재취업을 공공 베이비시터로 하는 분들도 있다.
"'진보구청장이 되니까 이렇게 좋구나' 하는 인식"
ⓒ프레시안(김하영) |
프레시안 : 지난 지방선거에서 당선되고 진보정당의 지역 단체장으로 벌써 1년을 보냈다. 배진교 구청장은 '최연소 수도권 진보정당 단체장'인데, 그간의 행정을 자평한다면?
배진교 : 지역사회에서 우려하던 부분은 다 불식시켰다고 생각한다. 남동공단 경영자들이 '너무 노동자 편만 드는 것 아니냐'라고 우려하거나 '너무 젊은 것 아니냐' 라고 생각하거나 했던 것들을 3개월 만에 없앴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역사회는 '진보 구청장'을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가졌던 기우였다고 생각한다. 취임하고 3개월 동안 많이 만나려고 했다.
지금까지는 진보가 행정의 주체가 되어 본일이 없고 주로 이슈 파이팅이나 비판을 하다보니 진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 아닌가. 그러나 지역단체장은 구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가령 '공공베이비시터' 사업은 진보 정책이지만 진보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정책을 해나가는 것이고 '진보구청장이어서 잘되나 보다' 하는 인식이 생길 것이다.
프레시안 : 지난 지방선거 이후 이명박 정부 역시 '만5세아 보육료 지원 확대' 등 복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나?
배진교 : '국민들의 요구에 밀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다. 이명박 정부가 이야기하는 선진국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선진국 자체가 다르지 않나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 규모 등 외형적인 지수에 관심이 많다면 국민들은 삶의 질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중산층이 줄어들고 사교육비가 늘어나고,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지지도가 왜 급격하게 떨어지는지 모른다. 부자감세로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는데 생색내기 정책만 내밀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낮엔 환경미화원, 밤엔 지역활동가
박병석 당원(울산 북구)
‘자원활동을 하는 환경미화원’으로 알려진 박병석 당원. 지난 20일 그를 만난 곳은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 정문 앞 거리다. 그곳이 그의 일터다. 그는 양정동 일대의 가로청소를 담당한 울산 북구청 소속의 환경미화원이다.
청소를 하다가 잠시 쉬는 틈을 내서 얘기를 나눈 곳은 동네 슈퍼마켓의 간이의자와 환경미화원들의 현장사무실인 양정지휘소. 오후 5시 퇴근을 앞둔 양정지휘소에는 10여명의 동료 환경미화원들이 둘러않아 쉬고 있었다. 그들은 불청객인 기자의 방문에 기꺼이 자리를 내주며 박 당원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 중 한 미화원이 “병석 씨는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칭찬하자, 또 다른 동료가 “우리에게 일이 생기면 앞장서 해결해 주는 사람”이라며 평소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동료들 “힘없고 약한 이들 도와주는 사람”
그가 환경미화원이 된 것은 민주노동당에 입당하던 해와 같은 2005년이다. 환경미화원이 되기 전 그는 현대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에서 7년 정도 일을 했다.
그곳에서 노사협의회 위원을 맡았던 그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데 앞장섰던 사람이다. 딱히 노동운동을 했노라 내세울만한 것은 없지만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는 현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근골격계 질환으로 사측과 심하게 대립하면서 일을 그만 두게 됐다. 망치질을 많이 해 손목 통증이 심했던 그는 산업재해를 신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사측은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고 그의 요구를 애써 외면했다. “근골격계질환이 이슈가 되던 시기라서 (산재를)인정해 주지 않으려고 해 대판 싸우고 나왔죠.”
그 뒤 울산 북구청 일용직으로 1년 정도 근무하다가 환경미화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결원이 생겨 새로 뽑을 때까지 6개월을 기다린 끝에야 얻은 일자리다. 그런데 요즘은 결원이 생겨도 충원하지를 않는다. 그가 입사할 때 58명이던 환경미화원이 지금은 53명으로 줄어들었다. “3년째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사실 큰 문젭니다. 북구 인구는 늘어나는데 인원은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일이 많이 늘어났죠.”
게다가 환경미화원도 점차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방자치단체가 청소업무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울산지역 환경미화원을 대표해서 홍희덕 의원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그는 “환경미화원들이 홍희덕 의원 때문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는 “홍 의원이 청소업무를 민간위탁을 막기 위해 법 개정을 빨리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당부했다.
“마당쇠마을 활동은 생활”
박 당원은 낮에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지역활동가로 사업한다. 그는 김진영 울산 북구위원장과 함께 ‘마당쇠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맡은 직책은 운영위원장으로 마당쇠마을의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마당쇠마을’은 통일산악회, 지방자치실현을 위한 모임, 무룡산지킴이 등 울산 북구지역 단체들이 연대해 나눔과 돌봄의 복지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곳이다. ‘마당쇠마을’은 당원들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자원활동(봉사활동)을 매개로 소통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들은 어린이집의 장애아 수영도우미로, 노인복지센터 노인들의 목욕도우미 등으로 자원활동을 하면서 소외계층들을 돌보고 있다. “마당쇠마을 활동은 생활이에요. 늘 회원들과 거리낌 없이 부대낄 수 있고, 같은 꿈을 키워가는 게 보람이죠.”
박 당원이 마당쇠마을에서 키우는 꿈은 뭘까. 그것은 생활정치의 구현이고, 2010년 민주노동당이 지역집권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올해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 역시 “진보진영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다. “오는 4월 보궐 선거를 통해 진보진영이 하나가 되는 토대를 만들어야죠. 합쳐야 표를 준다는 게 대세입니다. 민주노총 경선제든, 국민경선제든 후보단일화를 이뤄야 합니다.” 그 또한 올 한해 진보진영이 단결하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다짐해 본다.
동네방네 당 자랑하는 진주의 최고령당원
김동복 당원(경남 진주)
“진주시위원회 노년위원장이고 최고령 당원입니다.”
진주시위원회는 김동복 당원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렇다고 최고령자 예우차원에서 그를 소개한 것은 아니다. 올해 75세인 김 당원은 “진주시위원회에서 선거운동을 제일 열심히 하는 당원”으로 꼽힌다. 지역위 간부들은 “김동복 어르신은 자식들의 권유로 입당했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며 “늘 만나는 사람마다 민주노동당을 알리는 열성 당원”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식 자랑이 민주노동당 홍보
그의 민주노동당 홍보는 일상생활이다. “우리 며느리가 워낙 시부모에 잘 하니까 며느리가 하자는 대로 잘 따른다”는 김 당원은 아들, 며느리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고 민주노동당에 힘을 보태려 입당한 것.
진주 금산면에서 가정의학과를 운영하는 의사인 그의 아들 김세휘 당원은 독거노인 복지사업을 펼치는 행복나눔센터장이기도 하다. 또 그의 며느리인 김수정 당원은 진주여성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요새 젊은 사람들 같지 않게 돈 벌어도 욕심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눠주고, 막내인데도 부모 모시고 제사까지 지낼 정도로 효심이 지극합니다.”
이런 그의 자식자랑이 곧 민주노동당 홍보인 셈이다. 게이트볼구장에서 만난 노인들뿐 아니라 심지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도 민주노동당 얘기를 할 정도로 당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은 부모를 잘 모시고 노인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에 도취돼 있지만 먼 미래를 내다보고 진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민주노동당 당원들이다. 당원이 돼 보면 그 사람들을 잘 알게 될 것”며 게이트볼구장에서 만난 노인들, 지인들에게 당을 적극 알리고 있다.
지지자 100명 만드는 게 목표
김 당원은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하셨다.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꾸준한 운동. 그는 매일 오후 게이트볼구장을 찾고 있다. “약 없는 병에 걸렸다”고 할 정도로 게이트볼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그는 최근 민주노동당을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진주 금산면에도 게이트볼구장이 생겼기 때문. 김미영 경남도의원이 노인복지를 위해 금산면에 게이트볼구장을 건립할 것을 제안해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예전엔 민주노동당 하면 데모당이라고 그랬거든요. 요새는 그런 말은 안 나오데요. 김미영 도의원이 예산을 따내서 이렇게 게이트볼구장을 만들 수 있었다고 알리죠. 그러면 민주노동당에도 그렇게 일 잘 하는 의원이 있냐고들 합니다. 홍보가 필요해요.”
김 당원은 지난해 아들, 며느리와 함께 광우병반대촛불을 들기도 했고, 강기갑 대표를 지키기 위해 사천에서 열린 진보희망지키기 촛불문화제에 참석하기도 했다. 평소 강 대표를 아껴왔던 그는 “우리 강 대표가 잘해 왔는데 지난번 국회에선 조금 지나쳤어. 대인으로 조금 자제해야 하는데…”라며 검찰에 기소된 강 대표를 걱정하기도 했다.
불교신자인 김 당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이익을 주자는 것이 부처님의 본뜻”이라며 젊은 당원들을 향해 “우리 민주노동당이 구상하는 사회가 평등한 세상 아니냐. 지금 열심히 하면 훗날 그런 좋은 세상이 오지 않겠느냐”면서 용기를 북돋우기도 했다. 이어 김 당원은 “민주노동당 지지자 100명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히며, 젊은이들과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탤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밝게 웃으셨다.
“당생활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김휘동 당원(인천 연수구)
“연주할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김휘동 당원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해맑게 웃었다. 인천 연수구립 관악단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김 당원은 인생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은 ‘딴전’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 그것이 그에겐 ‘딴전’이다.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한다고 딴짓했지, 대학교 때는 학생운동한다고 딴짓했지, 입사해선 시민단체활동한다고 딴짓했지, 지금은 관악단한다고 딴짓하지. 누가 시키는 것 하지 않고 사니까 재미있어요.”
연수구립 관악단서 클라리넷 연주
그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모습은 어떨까. 지난해 큰 인기를 누렸던 MBC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본 오케스트라의 한 장면과 흡사할 것이다. 그는 지난 2002년 연수구립 관악단 창단 때부터 참여했다. 고등학교 밴드부, 해군 군악대, 교회의 작은 오케스트라 등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그는 전공자 못지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
연수구립 관악단이 지역주민들을 만나는 것은 연수금요예술무대를 통해서다. 관악단은 지난해 12월12일 연수구 대강당에서 28회 정기연주회를 열었으며, 오는 27일에는 연수금요예술무대에 설 예정이다.
김 당원은 연수구립 관악단원인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예술인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에서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관악단으로 활동하기 때문. 사실 재정이 열악한 기초자치단체에서 관악단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효율성과 경제성만 따지며 관악단이 필요하냐고 할 수 있지만 예술은 오랜 기간 투자를 해야 한다. 지자체가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게 예술분야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면서 베네수엘라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사례로 들었다. 지역의 공공예술을 활성화하되 위해 지자체와 중앙정부가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지자체가 공공예술에 더 많은 투자를
베네수엘라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무상으로 악기를 제공하고 음악을 가르치고 있다. ‘엘 시스테마’라는 음악교육운동의 성공으로 베네수엘라에는 250여개의 청소년오케스트라가 활동하고 있으며,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오케스트라’는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빈민가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클래식 음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구스타포 두다멜 같은 20대의 천재음악가를 배출할 수 있었죠.”
또한 그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도 “예술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클래식이든 재즈든 지역에서 마련한 예술행사에 많이 참석해서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권하면서 “그 속에서 주민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당원들이 집회나 당활동 참여로 바쁜 줄 알지만 예술행사 참여가 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역주민들과 폭넓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당이 말랑말랑해졌으면 좋겠다”
그가 민주노동당 당원이 된 것도 ‘딴전’의 일환이다. 그래서 그는 당이 즐거운 곳이었으면 한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당이 말랑말랑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분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정월대보름 부럼도 깨고 윷놀이도 하려고 당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초청했는데 막상 모임에 참석한 당원은 3명뿐이었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그는 당원들이 서로 관심을 갖고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선 분회장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새삼 깨달았다. 20여년 자동차판매 영업을 해 온 그는 ‘영업의 기술’을 살려 당원들을 적극 설득해 나가기로 했다. “자꾸 두드려라, 그럼 열릴 것이다”는 믿음을 갖고, 동네에서 자주 당원들을 만나려고 한다. “당원들이 동네에서 자주 만나고 서로의 집도 왕래하고 자주 어울리면 당생활이 즐겁지 않을까요.”
“공동교섭 공동투쟁으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정윤철 당원(대구 달서구)
“공동교섭 공동투쟁으로 임단협 승리하자!”
레미콘 노동자들의 힘찬 구호가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 소강의실 안에 울려 퍼졌다.
대구지역일반노조 레미콘지회는 지난 14일 정기총회를 열어 ‘공동교섭 임단협 승리’를 올해 핵심 사업으로 확정했다. 레미콘지회에는 수성분회, 대하분회 등 7개 사업장의 230여 노동자가 가입해 있다. 이날 총회에 참석한 150여 레미콘 노동자들은 대하분회와 수성분회의 투쟁과정을 담은 영상물과 문화공연을 보면서 투쟁 결의를 다졌다. 그곳에서 수성분회장인 정윤철 당원을 만났다.
일한만큼 대우받고 싶어 노조결성
수성분회는 지난해 4월25일 결성했다. 분회는 사측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차량을 불하받아 운영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지입기사’와 ‘직영기사’가 함께 참여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해 노조를 결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큰 수성분회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정 당원과 동료들이 노조를 만든 이유는 너무나 소박했다. 일한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요구한 것들은 소박해요. 특수고용직은 10년 동안 운반비가 500원도 인상되지 않았거든요. 운반비 100~200원 올려주고 기름값 좀 보조해 달라는 거죠.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는데, 탄압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법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싸워야겠다는 오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사측은 “직영기사와만 교섭하겠다”면서 교섭에 성실하게 나서지 않았다. 정 당원은 총파업, 천막농성, 사측의 불법폐기물 매립행위에 대한 검찰고발 등 노동자가 할 수 있는 투쟁은 다해봤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였다. 물론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전원 계약해지를 당했다.
그래서 더욱 오기가 발동했다. “임금은 올려줄 수 없다면서 노동자 탄압할 돈은 있습디다. 손배‧가압류 청구하려면 법정비용이 들잖아요. 그 비용이면 우리가 요구한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데…. 세상 이치가 이건 아니다 싶었죠.” 난생 처음 노조를 경험한 노동자를 투사로 단련시킨 것은 다름 아닌 사측의 탄압이었다. 노동자들은 사측의 탄압 속에서 ‘단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계약해지를 당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수성자본에 절대 머리 숙일 수 없다”며 생계투쟁을 하면서 지금껏 노조를 지원하고 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오기가 생긴다”
정 당원은 해고 9개월만에 복직됐다. 지난 1일 재입사 형식으로 출근했으나 사측은 그가 운행하던 레미콘트럭을 매각하고 콘베어벨트에서 떨어지는 모래, 자갈을 주워 담는 작업을 지시했다. ‘시급 4천원, 월 209시간 근무’를 내용으로 하는 근로계약은 그에게 족쇄가 됐다. 사측이 토요일은 무급처리하고 연장근로도 주지 않아 생존권을 위협받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는 노동청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생존권을 지키려고 나선 길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고난의 길이 됐다. 그러나 정 당원은 투쟁을 멈출 수 없다. 그가 힘들고 지쳤을 때 힘과 용기를 줬던 레미콘지회의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수성레미콘공장 앞 집회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경찰서 앞에서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집회신고를 접수하던 조영군 대하분회장과 최준환 한성분회장. 그들이 몸으로 보여준 동지사랑에 “노동자는 하나”라는 진리를 가슴으로 느낀다. 또한 정 당원은 대구시당 이병수 위원장과 이미경 사무처장이 비정규직 투쟁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통해 보수언론이 색깔론을 덧씌워놨던 민주노동당의 참모습을 보게 됐다. 그것이 투쟁하기 전에 관심조차 없었던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이유이기도 하다.
건설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어 레미콘 노동자들의 체감 경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래서 레미콘 노동자들에게 ‘공동교섭 공동투쟁’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공동투쟁실천단이기도 한 정 당원은 “이번 투쟁을 승리하지 못하면 레미콘 노동자들이 더욱 핍박받고 어려워질 것”이라며 “올해는 반드시 승리하는 투쟁을 만들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동지 위해서라면 쾌히 ‘콜택시’운전
박종완 당원(전남 순천)
박종완 당원을 처음 만난 곳은 ‘번지 없는 주막’이다. 순천 지역민들이 친근하게 ‘주막’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순천시 해룡면 금당지구에 있는 술집이다. 노동자들이 퇴근길에 들러 막걸리 한잔 걸치고, 당원들이 약속장소로 즐겨 찾는 주막은 순천지역의 ‘사랑방’ 같은 곳이다. 이런 주막에서 박 당원과 ‘사연’ 있는 조우가 이뤄졌다.
당초 이번 ‘당원의 향기’의 주인공은 민주노총 전남본부 조직국장인 이성수 당원이었다. 민주노총 전남본부 조직국장인 이 당원이 뉴코아이랜드 투쟁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이제 막 출소해 추천됐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전업 활동가로서 적절치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원의 향기’는 일상 속에서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면서 당활동에 충실한 당원들을 소개하는 코너.
그래서 급히 새 주인공을 물색하던 중 다행히 곧바로 추천이 이뤄졌다. 기자가 이성수 당원을 만나러 이수근 민주노동당 순천시위원장과 신화철 순천시의원 등과 찾은 주막에 순천청년회 모임 참석차 온 박 당원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갑자기 모든 이의 시선이 자신에 집중되자 부담을 느낀 박 당원은 훌쩍 주막을 나가버렸다. 곧 뒤쫓아 갔지만 택시에 몸을 숨긴 그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날 이성수 국장이 그를 민주노총 전남본부로 불러 간곡히 부탁한 다음에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서 묵묵히
순천지역 사람들이 박 당원을 적극 추천한 이유는 지역 활동가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어디든지 달려갈 만큼 열정이 넘치는 당원이라는 점 때문이다. 택시노동자인 그는 늦은 밤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 활동가들의 콜택시’로 애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순천지역에 강연 온 권영길, 천영세 의원 등을 직접 태운 적도 있으며 90년대엔 수배 중이던 순천대학교 학생들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켜 주는 일도 더러 했다. 정작 본인은 “내가 운전을 하고 있으니까 도와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담담하게 말했다.
또 그는 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등 지역에서 벌어지는 실천투쟁에 꼭 참여하는 당원이다. 이수근 순천시위원장은 “운전하다가도 언제 왔는지 집회대열 맨 앞에 나타나고,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태워준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활동하는 당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 당원은 182㎝의 훤칠한 키 때문에 대열 앞에 있다가 남들보다 더 많이 매를 맞는다고 한다. 그래도 좋은 세상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그는 웃었다.
인생의 전환점, 순천청년회
박 당원은 회사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다가 독립해 개인택시를 운영한 지 햇수로 4년째다. 돈벌이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그는 이제 아내에게 생활비를 벌어다 줄 수 있어 다행이지만 대신 활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그는 20대 초반 늘푸른청년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늘푸른청년회는 지금의 순천청년회이다. 한때 부모 속을 꽤나 썩였던 말썽꾸러기 아들이었던 그는 지난 94년 정영섭 전 순천시위원장을 만나 청년회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청년회 사무국장이던 정 전 위원장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서 마냥 따랐던 그는 이후 청년회 조직부장으로 상근을 하기도 했다. 청년회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도 했다.
하지만 청년회가 그의 영혼을 따뜻하게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청년회 선배가 운영하는 자동차학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행동에 나섰던 일로 인해 상처를 받아 지역을 떠나기도 했다.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은 사람의 따뜻한 정으로 치유 받을 수 있는 법. 한때 그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던 청년회 사람들이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왔다. 다시 순천으로 돌아와 택시운전을 하고 민주노동당에도 입당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한번 일하면 부리나케 하는 성격인 그는 부지런히 일을 하는 틈틈이 지역 활동가들의 발이 돼주기도 한다. 연신 담배에 불을 붙이며 20대 청년회 활동부터 결코 짧지 않은 삶의 굴곡을 더듬어가던 그는 이런 말을 하며 머쓱하게 웃는다. “운동은 잘 모르지만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거죠.”
“‘난쏘공’의 꿈을 이루고 싶어요”
정길동 당원(서울 성동구)
정길동 당원은 지난달 말 직장을 그만 뒀다. 요즘 같은 경기불황에 잘 다니던 일터를 박차고 나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 당원은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기 위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4월초부터 새로 시작할 일은 ‘옷수선’ 사업. 성동지역자활후견기관의 지원을 받아 그가 운영하려는 옷수선소는 저소득층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협동작업장이다. 오랫동안 생활한복을 만드는 공동작업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주민공동체를 꿈꾸다
정 당원은 지난 97년부터 6년 동안 ‘논골의류생산협동조합’ 대표이사로 공동작업장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논골의류생산협동조합’은 재개발지역 주민들의 가이주단지에 마련한 공동작업장이다.
그가 살고 있던 성동구 금호동 일대에 지난 94년 재개발이 추진됐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세입자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임대아파트와 가이주단지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을 벌였다. 80년대부터 빈민운동을 해왔던 그는 당시 주거권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성동부지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주민들과 함께 치열하게 투쟁을 벌여 가이주단지를 보장받았으며, 경제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논골신용협동조합’과 ‘논골의류생산협동조합’ 설립에 참여했다. “논골의류생산협동조합은 하청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해 아쉽게도 6년만에 문을 닫고 말았지만, 논골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 3천명을 확보하고 있는 튼실한 신협으로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논골신협의 홍보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경제공동체의 꿈을 이룬 신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투쟁으로 획득해온 세입자 권리들
“대책 없는 강제철거 중단하라!”
정 당원은 지난 87년 88올림픽을 앞두고 상계동, 목동 등 재개발지역 투쟁현장에서 외쳤던 구호를 20년이 넘게 외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80년대에는 매맞지 않고 쫓겨나면 다행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임대아파트 분양권과 주거이전비 지원, 가이주단지 건설 등은 세입자들의 투쟁으로 획득한 성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세입자들이 이사 안가고 끈질기게 투쟁하니까 임대아파트 분양권도 주고 가이주단지도 조성해 준 겁니다. 적어도 3년 이상 투쟁해서 일궈낸 성과죠.”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민주노동당 성동구위원회가 주거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세입자들의 주거권리 찾기 활동을 지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동지역에는 금호 15․17․19구역, 왕십리 1․2구역, 옥수 12구역 등 수십 곳에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이곳의 세입자 300여명이 주거이전비 소송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성동구위원회 주거대책위원장인 그는 “경찰들이 강제 철거하는 용역편만 들고 우리편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세입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민주노동당이 세입자문제에 더욱 발빠르게 대응해야겠구나’하고 다짐을 한다. 그것이 그가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라고 믿는 정 당원은 그 지역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세입자들과 영세가옥주들의 주거권을 지키는데 앞장서는 구의원이 되려는 것이다. “(구의원이 되면)적어도 구의원이 재개발조합장을 맡아 이권을 챙기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90년대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2000년대 ‘난장이들’의 친근한 벗이 되기 위해 이제 첫발을 내딛었다. 논골의류생산협동조합 시절 못다 이룬 주민공동체의 꿈을 안고서 말이다.
“뿌리가 튼튼해야 당이 바로 서죠”
이재호 당원(경북 경산)
경북도당은 지난 7일 구미1대학에서 한해의 사업을 확정하고 당혁신으로 힘찬 도약을 이루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었다. 이날 대회에선 진보정치 발전과 경북도당 강화에 기여한 ‘모범당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최근성 도당 위원장이 포항시위원회 이병도 당원과 경산시위원회의 이재호 당원에게 모범당원상을 수여하자, 대의원들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축하했다.
모범당원상 수상이 몹시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힌 이재호 당원. 그는 당원으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앞으로 더 잘 하라는 뜻을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북도당이 뽑은 모범당원
그가 모범당원으로 추천된 것은 분회모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지역위원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데 공로가 컸기 때문이다. 경산시위원회는 지난해 탈당사태의 아픔이 컸던 지역위 가운데 한 곳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지역위 간부들과 당원들이 떠난 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진해서 진량하양와촌분회장을 맡았다. “뿌리가 튼튼해야 당이 올바로 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그는 우선 분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했다. 경산시농민회 정책부장이기도 한 그는 “농민회의 뿌리인 면지회가 튼튼해야 농민회가 강화된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당의 뿌리인 분회 강화에 힘을 쏟은 것.
사고분회나 마찬가지였던 진량하양와촌분회는 분회모임과 함께 실천활동을 벌이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분회는 지난해 여름 대구대, 가톨릭대 등 지역의 대학들과 함께 광우병 반대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연말에는 종부세를 지키기 위해 하양장에서 당 특보를 뿌리기도 했다.
대구대 환경미화원들과 연대투쟁
분회는 또 지난달에는 대구대학 환경미화원 감축계획 철회를 위한 투쟁에도 연대했다. 대구대는 올해 1월 근로장학금 재원 마련 명목으로 비정규직인 환경미화원 감축계획을 발표했다. 환경미화원 112명의 20%인 20여명을 줄여서 확보한 2억원을 근로장학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1년 예산이 2211억원에 달하는 대구대가 2억원을 마련하지 못해 환경미화원들을 해고하려 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는 얘기였다. 대구지역일반노조 소속인 환경미화원들은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서명서 전달, 교내 출퇴근 선전전을 진행했으며 지난달 16일부터 대학 본관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지난달 14일 포항야유회를 갔던 분회원들은 “우리지역의 대학에서 생긴 일이니까 주도적으로 연대하자”고 결의를 모으고, 지역위와 함께 연대활동에 나섰다.
다행히 투쟁은 승리로 매듭지었다. 대구대가 지난달 19일 졸업식을 하루 앞두고 인원감축 계획을 철회한 것이다. “빨리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는 그는 환경미화원 투쟁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어 보람됐다고 했다. “분회가 처음으로 지역 현안에 연대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지역 현안에 적극 참여해 민주노동당을 알려내고 당원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죠.”
이 당원은 올해도 당의 뿌리를 강화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분회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모임을 시도하고 분회소식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하기로 했다. 오는 26일에는 팔공산 등반대회를, 여름에는 당원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모임도 계획하고 있다. 또 농민회 간부이기도 그는 농민회원 입당사업에도 힘을 쏟을 계획이다. “국회 안에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절감했던 한칠레FTA 반대투쟁 당시를 되새기며 농민 정치세력화의 초심으로 다시 뛰겠다는 다짐이다.
“평생 민주노동당과 함께 하겠습니다”
강원 춘천시위원회 김주묵 당원
김주묵 당원은 민주노동당 춘천시위원회의 세번째 평생당원이다. 그는 지난 13일 평생당원을 결의했다. 후배인 이철종 당원이 먼저 평생당원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배 당원에게도 평생당원이 될 것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
춘천시위원회 세번째 평생당원
그는 평생당원이 된 것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이 집권할 때까지 함께 하겠다”고 새롭게 결의를 다졌다. 유인옥 춘천시위원회 사무국장이 “어려운 당살림에 보탬이 됐다”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평소 당직자들에게 빚진 마음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평소 그는 지역위원회에 “이렇게 해보자”는 제안을 많이 하는 편이다. 본래 적극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후배들인 당 활동가들에게 끊임없이 자극제 역할을 하는 게 선배된 도리라고 여겨서다. 지역위의 일상활동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그는 “한달에 한번 시민들과 소통하는 만민공동회를 열자”, “분회장이 분회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자” 등등 끊임없이 제안한다. 지역위 활동가들도 그런 선배의 제안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실무나 연대사업에 쫓기다 보니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할 따름.
그렇다고 김 당원이 서운해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당원으로서 해야 할 몫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그는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그는 60회 이상 열린 춘천 촛불문화제에 ‘출석도장’을 꼬박꼬박 찍는 성실함과 함께 사전에 집회준비를 돕는 등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또 출판‧기획사를 운영하는 그는 집회에 필요한 선전물을 손수 제작하는 정성을 쏟기도 했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처음 물대포를 쏘았던 서울집회의 생생한 현장을 담은 사진전시회를 준비해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런 그의 열정적인 활동과 반비례한 것은 기획사의 매출.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해 여름 3개월의 매출이 1천만원 이하로 뚝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난해 여름에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빠듯할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의 인생에선 ‘촛불’만이 빛났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후배 활동가들의 든든한 지원군
김 당원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몇번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당활동가들에게 가장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 또한 춘천시민광장의 대표와 춘천시학교급식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당직자들의 어려운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연대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춘천시학교급식조례 제정운동이다. 춘천지역의 2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학교급식운동본부는 지난 2006년 조례가 제정되기까지 4년 동안 끈질기게 싸웠다. 처음에는 시의회 입법청원, 의원발의 등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해 주민발의운동으로 전환, 주민들의 힘을 모아 조례제정에 성공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생업을 접고 상근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는 김 당원은 그날이 언제일지 장담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을 따뜻하게 챙겨주고, 지역집권을 위해 나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겠다는 각오로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자칭 ‘열성당원’이라고 하는 그가 후배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의원 당선시키고 차근차근 지역집권을 준비해 나가야죠. 출마요? 아휴, 저는 참모역할이 맞아요. 하하하….”
“여성의 섬세함으로 ‘살림’의 정치를”
광주 서구위원회 이은주 당원
“나에게 정치란 자동차다.”
이은주 당원에게 물었다. ‘정치란 무엇이냐’고. 그랬더니 한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뒤 이렇게 답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자동차는 어떤 운전수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란다. 이어 그는 “MB의 폭주운전을 멈추는 것은 민주노동당뿐이라는 각오로 지역활동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 24일 광주서구 기초의원 보궐선거운동에 결합하고 있는 이 당원을 만났다. 류정수 후보와 함께 화정4동의 한 아파트 노인정을 찾은 그는 할머니들에게 살갑게 다가가며 후보와 거리를 좁혔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이 당원은 류정수 후보의 배우자 수행을 맡고 있으나 이날은 류 후보 수행을 잠깐 맡았다.
보궐선거는 ‘후보자 학교’
이 당원이 이번 선거에 임하는 마음가짐은 남다르다. 지난해 총선에서 조삼수 후보의 수행을 맡았을 때와는 유권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그 또한 내년 지방선거에선 후보로서 지역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때문에 주민들의 얘기에 더 귀 기울이고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에게 이번 보궐선거는 ‘후보자 학교’인 셈이다.
이 당원이 2010년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배경에는 ‘여성할당’이 있다. 광주 서구위원회 부위원장과 여성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이 당원이 여성할당 실현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여성할당을 실현하기 위해 겪었던 어려움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당시 여성할당 채우기에 급급해 선거를 전혀 준비하지 않던 여성당원이 출마하는 경우도 더러 생겼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에선 미리 준비된 여성후보가 출마하길 바라던 그가 먼저 실천에 나선 것이다.
그래서 지난달 중순에 민주공무원노조 광주서구지부 상근활동을 정리하고 당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상근활동을 통해 노조에 한없는 애정을 쏟으며 조직규율을 철저히 엄수하던 조합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가 상근을 그만 두는 것을 몹시 서운해 하던 민주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은 “지방의회를 올곧게 세워달라”는 당부와 함께 “지역활동을 하는데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재밌고 즐거운 정치 하고싶다”
이 당원이 여성정치인으로 이름을 알린 첫 자리는 지난 8일 열린 ‘3.8광주여성대회’였다. 그는 광주 서구위원회 여성위원장 자격으로 3.8광주여성대회 준비위원회에 참여했으며, 행사 당일 사회를 맡았다. 처음으로 공개석상에서 사회를 본 그는 “무척 떨릴 줄 알았는데 괜찮았다”며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두려움을 털어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광주시당 여성위가 지난 20일 ‘나라를 살리는 살림의 정치’라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한 이 당원은 여성당원들의 고민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토론회는 곽정숙 의원의 사업계획과 의정활동을 소개한 뒤 여성정치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어 ‘나에게 정치란 OO다’라는 주제로 쪽지토크를 나누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서로 확인한 것은 여성당원들이 육아와 재정문제로 정치진출을 주저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나서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엄마이고 며느리이고 딸인 여성이 정치를 하면 섬세하게 잘 할 수 있다”며 “많은 여성당원들이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능력을 숨기고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그는 이런 여성들과 함께 여성정치인으로서 자질을 키워나가는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다. 또 지역위의 여성당원들과 재밌는 모임을 꾸려나가는 것도 그의 중요한 목표이다. “공자가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잖아요. 깊은 고민 끝에 지역활동을 결심했으니 정말 즐기면서 활동하고 싶어요. 민주노동당이 지역활동을 하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줘야죠.”
“청년학생들에게 사랑받는 당 만들어야죠”
제주시위원회 고용빈 당원
“학자금이자지원조례제정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한 지 3주일만에 4600여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4월 중순까지 1만명을 목표로 달려가겠습니다.”
민주노동당 제주도당은 지난 1일 학자금이자지원조례제정 주민발의서명을 집계한 결과 청구요건을 갖췄다고 밝혔다. 제주도당이 지역내 대학생들과 함께 지난달 7일 서명운동을 시작해 불과 3주만에 주민발의 청구요건인 4165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것이다.
제주도당 청년학생희망본부장으로서 서명운동에 적극 나섰던 고용빈 당원은 “도민들의 폭발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며 학자금이자지원조례에 대한 도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고 전했다. 그는 제주 민속5일장이나 상가에서 서명운동을 벌일 때마다 “민주노동당 잘 한다”, “고맙다”고 칭찬하며 격려해준 주민들과 조례제정의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했다.
제주도당 학위 건설이 목표
고 당원은 제주도당과 지역내 대학총학생회의 간담회를 추진하는 등 대학생들이 조례추진에 적극 나서는데 ‘가교 노릇’을 했다. 사실 제주지역 대학총학생회는 이른바 ‘운동권’이 아니다. 그런데도 조례 추진에 적극 나선 것은 도당 청년학생희망본부가 지난해 가을 총학생회 선거시기부터 관계를 트고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또한 제주지역의 정부보증학자금대출 연체율이 6.13%로 전국 평균 3.25%의 두 배에 달해 대학생들이 절감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제주도가 학자금이자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게 조례를 만들자”는 제주도당의 제안에 제주대, 한라대, 관광대, 산업정보대 등이 동참하면서 지난 2월24일 토론회, 2월26일 기자회견을 개최한 데 이어 3월초부터 조례제정 주민발의운동에 본격 돌입하게 됐다.
고 당원은 조례제정 주민발의운동뿐 아니라 4월 4.3기행, 6월 제주지역 청년학생 진보정치 캠프 등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사업을 통해 대학생들과 꾸준히 교류하고 연대하면서 그들에게 사랑받고 지지받는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그가 욕심을 내는 건 ‘제주도당 학생위원회’ 건설이다. 지역 대학에서 활발하게 당활동을 펼칠 학생당원을 발굴하는 것이 곧 제주도당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
“주민들 속으로” 새내기 정치인의 다짐
고 당원은 ‘6.15와 함께 하는 제주청년회, 청년우리’의 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8월 청년우리 회원 16명과 함께 입당하면서 당활동에 적극 나섰다. 청년당원들은 지난해 12월 ‘제주도당 당원 한마당’ 행사에서 ‘민주노동당과 민심이의 사랑이야기’라는 뮤직단막극을 선보여 당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또 아르바이트생 권리 찾기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역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로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는 아르바이트생 실태조사와 함께 피해사례 상담활동을 벌인 것. 몇달이 지나도록 생맥주집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한 대학생의 경우 노무사가 사장에게 전화를 한 뒤 바로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다.
“청년당원들 때문에 당이 많이 밝아졌다”는 당원들의 칭찬이 고맙기도 하지만 아직도 당활동이 생소할 때가 많다는 고 당원. 그는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면 곧바로 민주노동당에 대한 쓴소리, 단소리를 쏟아내는 주민들을 만나면서 ‘아, 나도 정치인이구나’라는 걸 새삼 느낀다. “정치가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그는 살고 있는 동네를 중심으로 지역활동에 나서려고 한다.
그 첫번째 실천이 오는 9~15일 치러지는 제주시위원회 당직선거에서 일도2동 분회장 후보로 출마한 것이다. 그는 분회장이 되면 분회원들과 동네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실태조사를 하고 동네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동네 한바퀴’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도당 청년학생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달라진 점을 묻자 “복장이 가장 달라졌다”며 쑥스럽게 웃던 고 당원. 이제 분회장이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새내기 정치인의 변화를 기대해 봄직하다.
대안교육의 매력에 푹 빠진 ‘곰샘’
경기도당 과천시위원회 한정헌 당원
“곰샘, 밥이 맛있네요. 이게 바로 노동의 대가죠.”
온몸에 구정물이 튀어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도 밥이 꿀맛이라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폐수가 고여 오염된 학교 앞 하천 청소에 나섰던 과천자유학교 8학년생들이다. “1급수를 만들자”며 두팔을 걷어붙이고 하천바닥의 썩은 흙을 걷어내고 쓰레기를 치웠던 아이들은 그날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소중함을 스스로 깨달아가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있어 한정헌 당원의 학교생활은 행복하기만 하다.
참교육 찾아 과천자유학교로
‘곰샘’이란 별명을 가진 한 당원은 과천자유학교의 매력에 푹 빠져있는 4년차 교사다. 과천자유학교는 발도르프 교육을 실천하는 대안학교. 발도르프 교육은 인간 개개인이 타고난 개성과 특성을 발견하고 계발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따른 사고와 감성을 키워주는 교육이다. 과천자유학교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고유한 영혼의 빛깔과 높은 정신적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이성과 감성, 의지가 조화된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2002년 문을 연 과천자유학교는 현재 학생 179명, 교사 27명이 함께 교육공동체를 일궈가고 있다. 과천자유학교는 초‧중‧고교 12년을 통합해 담임과정(1~8학년)과 상급단계(9~12학년)로 운영하고 있으며, 한 교사가 8년 동안 담임을 계속 맡아 학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 교육효과를 높이는 8년 담임제를 실시하고 있다.
전남대 사범대 재학시절 교육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한 당원은 “우리나라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대안교육에서 찾겠다”는 포부를 안고 과천자유학교에 몸담게 됐다.
그는 올해 담임 가운데 가장 고되다는 8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는 오는 25일 ‘8학년 문화제’를 위해 학생들이 직접 연극대본을 쓰고 배역을 맡아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기가 세운 목표들이 성취돼 가는 보람을 느낀다. 그가 올해 세운 교육목표는 “학생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자치활동을 통해 8학년을 잘 마무리하는 것.”
그는 “대안학교 가운데 이 정도 규모의 학교는 몇 안 된다”면서 과천자유학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과천자유학교의 교육은 아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연습과정”이라고 강조한 그는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 자체가 보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더 많은 학생‧학부모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교육공동체를 꾸리고 싶다고 했다.
입당 ‘일등공신’은 이명박 대통령
참교육을 찾아 광주를 떠나 과천에 오게 된 한 당원은 이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홀로 자취하는 총각선생을 위해 새벽 6시에 찾아와 생일상을 차려주는 학부모들, 그리고 부모에게도 말 못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사랑스런 제자들뿐 아니라 민주노동당과 관계를 맺었다. 한 당원의 입당일은 지난 2007년 12월19일. 당시 동네 PC방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확인한 그는 “민주주의를 후퇴시켜선 안 된다”는 다급한 마음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한 당원 입당의 ‘일등공신’은 이명박 대통령인 셈이다.
그 뒤로 한동안 당비만 내는 그가 당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 연말 지역위원회 송년모임에 참석하면서부터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류강용 과천시위원장이 자필로 써 보낸 편지였다. 류 위원장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그는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 과천시위원회 회계감사를 맡았다. 지역위 회계감사가 딱히 할 일이 많지는 않지만 그는 이 자리를 맡으며 고민이 많았다. 교과수업을 마치고도 교사연구모임, 학생‧학부모 상담, 숙제검사 등으로 자정까지도 일손을 놓지 못하는 그였기에 학교생활에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서다.
마지막으로 “대안교육을 고민하는 당원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교육에 대한 근본물음을 던졌다. “아이들이 왜 교육을 받는지 되새김질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일반 공사립학교도 ‘전인교육’이라는 교육목표가 있어요. 그 교육목표가 ‘대입’을 위한 것으로 희석돼 문제지만요….”
돈 없이도 행복한 지역공동체를 꿈꾸다
부산 사하구위원회 이현정 당원
“(사는 동네)주위에서 (약을) 지어도 되는데, 여(기)까지 오게 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약국으로 들어선 아주머니는 병원진단서를 내밀며 애써 찾아왔음을 강조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약국이 이쪽으로 이사온지 몰랐다”며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을 지어달라고 했다.
이현정 당원은 환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는 부산지하철 1호선 괴정역 주위에서 장소를 옮겨 다니며 10년 이상 약국을 운영해 온 약사다. 그래서 그의 약국에는 단골손님이 많다. 정기복용약을 지으러 온 단골손님들은 약을 짓고 나서도 한참동안 쉬면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손님들이 ‘생글이’라고 부를 정도로 잘 웃는 마음씨 좋은 약사가 있는 그 약국은 단순히 약을 파는 곳이 아니라 동네 쉼터 같은 곳이었다. 그가 평소 한갓지다고 하던 토요일 오후에도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역화폐 ‘송이’로 만드는 지역공동체 ‘사하품앗이’
이 당원의 약국에는 좀 특별한 것이 있었다. 이곳에선 돈뿐 아니라 ‘송이’라는 지역화폐로도 약을 살 수가 있다. 그의 약국은 ‘사하품앗이’ 가맹점이기 때문이다.
지역화폐인 송이는 ‘사하품앗이’ 회원들끼리 사용하는 공동체화폐로 회원들이 가진 물품이나 노동력을 거래할 때 사용한다. 1천송이는 일반화폐 1천원과 같은 가치가 있다. 회원들이 송이로 거래한 내역은 ‘송이통장’에 기록하고 있다. 사하품앗이는 조상들이 상부상조하며 살아온 품앗이의 이름을 본딴 것으로 물품 거래와 아이돌보기, 청소하기, 심부름하기, 학습지도 등의 노동력도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는 약국장소를 옮기기 전인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약국의 공간을 나눠 ‘품앗이가게’를 함께 운영했다. 품앗이가게는 재활용품을 파는 가게다. ‘아름다운 가게’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가게에서 재활용품을 판매한 수익금의 일부는 사하지역의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데 쓰이고 있다.
“마이너스 8만송이에요.” 약국과 품앗이가게를 함께 운영했던 이 당원은 “재활용품을 구입할 기회가 많아서 빚이 늘었다”면서도 느긋한 모습이었다. 그가 빚을 지고도 여유로울 수 있는 것은 사하품앗이 거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송이부자와 송이빚을 진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서로 화합해 살고 있기 때문. 그는 “송이빚을 진 것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하품앗이는 품앗이가게, 품앗이학교, 생산소모임, 가맹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현금 없이도 살 수 있는 지역공동체를 일궈나가고 있다. 올해 사하품앗이의 조직부장을 맡은 그는 “회원 확대와 거래 활성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처음에는 개념이 안 잡혔다”던 그는 “직접 해 보니까 굳이 지폐가 아니라도 등가의 법칙에 따라 거래할 수 있었다”면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 그는 “거래가 활성화되면 실생활에 돈이 없어도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면서 “자본주의 경제구조의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지역주민을 생활의 주인, 정치의 주인으로
풀뿌리 지역활동에 관심이 많은 그는 ‘건강한 당리동, 아름다운 제석골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사하지역 풀뿌리단체인 ‘부산희망나눔’이 부산시의 건강도시 공모사업에 선정돼 추진하는 사업이다. 부산희망나눔은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승악산 제석골 주변의 신흥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주민건강실태조사, 제석골 산책로 만들기, 주민건강문화제 등의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주민들이 건강을 위한 작은 실천을 하며 생활의 주인, 정치의 주인으로 나설 수 있게 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사하구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그는 사하품앗이, 건강마을 만들기 등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일궈가는 게 진보정치의 기름진 토양을 만드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부지런히 뛰고 있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불광동 아줌마’
서울 은평구위원회 조준향 당원
조준향 당원은 3년 전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아들 달호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생활협동조합에서 유기농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것 외엔 평범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민주노동당의 열성당원이 됐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열성으로 똘똘 뭉친 당원이다.
“신자유주의니 세계화의 문제점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다”던 그가 변하기 시작한 계기는 김민웅 교수와 한미FTA.
조 당원은 지난 2006년 가을까지 2년 동안 방송됐던 EBS FM ‘월드센터, 김민웅입니다’의 애청자였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김 교수의 방송을 즐겨듣던 조 당원은 “시사 얘기를 알기 쉽게 설명해 균형 잡힌 시각을 길러줬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잡지책 같은 시사프로그램”이라며 좋아하던 김 교수의 프로그램이 2006년 가을개편으로 폐지될 거라는 소식을 그는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EBS까지 찾아가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생애 첫 시위를 경험한 그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긴장이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방송개편을 반대하던 그의 활동은 PD저널에 실리기도 했다.
한미FTA 반대 ‘불광동 아줌마’
조 당원은 김 교수의 월드센터에서 ‘한미FTA’편을 방송할 때 반대 목소리를 분명하게 냈던 민주노동당에 호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미FTA의 독소조항을 다루면서 광우병 얘기를 하는데 피부에 와 닿았더라구요. 생협 회원이라서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한미FTA의 부당함을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는 민주노동당 은평구위원회에 스스로 전화를 걸어 한미FTA 홍보물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는 혼자서 불광초등학교 앞에서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홍보물을 뿌렸다. 한미FTA 반대 홍보대사로 나선 그는 처음부터 동네사람들에게 환영받진 못했다. “그런 것 관심 없다”며 쌀쌀맞게 등돌려 버리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적잖이 서운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한 조 당원은 지역위 당원들과 함께 한미FTA 반대 집회란 집회는 다 쫓아다녔다. “첫 집회에 나가 물대포를 맞으면서 더 이상 참여정부에 관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는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는 그 뒤로 오랫동안 당 가입은 하지 않았다. 한미FTA를 열성적으로 반대하는 불광동 아줌마였을 뿐이다. “민주노동당 이미지가 심어지면 동네 아줌마들이 말도 꺼내기 전에 마음을 닫아버릴까 봐 입당하지 않고 1년동안 함께 활동했죠.”
지역위의 선전수준 올려놓다
지난 2007년 5월 입당한 조 당원은 그해 겨울 불광‧구파‧발진관 분회장이 됐다. 제대로 활동도 하지 못한채 분회장 감투만 쓰고 있던 상태에서 집단탈당 사태가 벌어졌다. 지역위에 남은 2명의 운영위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는 위원장 직무대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맡기도 했다. 집단탈당의 쓰라린 상처를 되새기던 그는 “그 정도 차이도 극복하지 못하고 어떻게 국민에게 지지해 달라고 할 수 있겠냐”며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미대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피켓 만드는 솜씨가 일품이다. 지역위 당원들이 “지역위의 선전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은 당원”이라고 꼽을 정도다. 실제 그의 재치가 넘치는 선전물은 오마이뉴스, 알자지라 방송 등의 언론을 타기도 했다.
올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 뒷바라지로 바쁜 조 당원. 요즘 그는 학교운영위원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아들의 담임선생이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가르치며 기쁨의 예로 ‘외고 합격’을 제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그는 균형있는 교육을 만드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
올해 다시 분회장을 맡은 조 당원은 “당원들만큼 소중한 사람들이 없다. 당원들을 섬기는 해로 삼겠다”며 “당원들을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 식사도 하고 환경문제에 관심갖고 활동하고 싶다”고 환하게 웃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행복한 일이죠”
대전 동구위원회 조광성 당원
‘고 박종태 열사 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열렸던 지난 9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이곳에서는 대한통운에서 해고된 택배노동자의 복직투쟁을 벌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종태 화물연대 광주지부 1지회장의 뜻을 이어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과 비정규직 철폐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노동자들의 울분에 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노동자들의 대열에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대전충남본부’(언소주)의 깃발을 들고 참가한 조광성 당원. 대전시당 당원들과 함께 지난 4일부터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던 그는 이날은 언소주 회원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했다.
“부끄럽지 않게 투쟁해야죠”
“올해 125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겠다고 코스닥에 공시한 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들의 운송료 30원 인상도 못 해주겠다니……. 너무 안타까운 죽음에 눈물이 납니다. 살아남은 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투쟁해야죠.” 조 당원은 박 열사의 죽음과 복직투쟁을 벌이는 택배노동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남달랐다. 그 또한 해고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9월 17년간 일했던 한남대학교에서 해고된 그는 지금껏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가 해고된 사유는 한남대학교 2캠퍼스 매입과정의 의혹을 제기해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
대학노조 한남대지부장이었던 그는 지난 2005년 10월 “한남대학교가 대덕연구단지내 2캠퍼스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며 과학기술부가 승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매각업체에 12억5천만원을 과다하게 지급했다”며 학교를 부동산 투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지난 2006년 3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이에 학교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어 교수협의회의 강모 교수와 조 당원을 해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 당원은 부당해고 구제 신청해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늦어도 12월 안에는 판결이 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는 그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주민발의 서명운동의 ‘모범 출석생’
조 당원은 해고투쟁을 하는 한편, 당 활동과 언소주 활동에도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그는 대전시당 동구위원회 부위원장이며 산행모임 대장이기도 하다. 지난해 집단탈당사태의 상처를 혹독하게 겪은 대전시당은 요즘 학자금이자지원조례 주민발의운동으로 활력을 찾고 있다. 이런 대전시당을 “이제 중환자실에 나와 일반병실로 옮겨진 상황”이라고 환자에 빗대 표현한 그는 “학자금이자지원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통해 민주노동당 인지도와 지지도가 올라갈 것”이라며 “노동자, 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사업을 많이 찾아야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조 당원은 지역위가 목표로 정한 청구인 2천명 모집을 한달 만에 달성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병구 동구위원장이 “서명운동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한 당원”으로 꼽을 정도로 조 당원은 1주일에 3~4일씩 벌였던 서명운동에 꼬박꼬박 참여했다. 용전동 한숙아파트의 금요장터, 용운동 용방마을의 목요장터 등 아파트단지에서 1주일마다 열리는 장터는 조 당원과 아내 강경순 당원이 서명운동을 벌였던 주무대였다. 그는 학자금이자지원조례 취지는 공감하나 개인정보 유출을 염려해 서명용지에 주민등록번호 기재를 꺼려하는 주민들도 있었지만 “민주노동당은 믿을만하다”며 적극 서명에 동참하는 주민들도 많이 만났다고 한다. 특히 “이렇게 좋은 걸 왜 민주노동당만 하냐. 한나라당은 뭐 하냐”는 주민들의 격려에 흥이 절로 났다고 한다.
이달부터 언소주 대전충남본부장을 맡은 조 당원은 회원들과 함께 6월 미디어악법을 막기 위한 선전활동에도 뛰어들었다. “언론은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습지”라며 MB정권의 언론장악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조 당원에겐 열정이 넘쳤다. 그런 그에게 “할일이 많아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세상을 바꾸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겠냐. 내 몸 굴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며 환한 웃음으로 답했다.
“국가에서 월급 받으며 농사짓고 싶다”
충남도당 아산시위원회 박정우 당원
이동근 아산시위원회 사무국장이 ‘귀농한 당원’이라고 소개해 준 박정우 당원을 만나러 간 곳은 아산 음봉지역에 있는 배 과수농장이었다. 그곳에서 배 열매솎기에 한창인 박 당원을 만났다. ‘한미FTA 반대’라고 적힌 조끼와 밀짚모자를 눌러쓴 채 열매를 솎아내는 그의 모습은 진짜배기 농사꾼다워 보였다.
노동과 사색의 공간, 배 과수농장
배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깔고 앉은 그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가 “노동과 사색이 결합돼 가장 편한 곳”으로 꼽는 배 과수농장은 맑은 새소리, 진한 풀내음이 가득했다. “과수원 일할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해요. 살아있는 생물의 변화를 보며 나 자신도 돌아보고 농민회 당면투쟁을 어떻게 풀건가 고민도 하죠.”
박 당원은 11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뿌리까지 농민이 됐다고 하기 힘들고 어디 가서 농사 짓는다고 할 정도”라고 자신을 낮춘 그는 지난 98년 귀농을 했다. 대학교 때 전북 순창으로 농활을 갔던 그는 초가집이 남아있던 마을 모습에 마치 ‘오지탐방’ 같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농민들과 부모자식 같이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그는 농민들이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서울토박이인 그가 아산에 정착한 것은 당시 아산농민회 사무국장이던 장명진 전농 충남도연맹 사무처장과의 인연 때문이다. “도시생활의 떼를 벗는 게 가장 어려웠다”는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농촌생활에 적응하는 2~3년 동안 내적 갈등이 심했다고 한다. 처음 귀농해서 고추농사, 벼농사, 수박농사를 조금씩 하다가 본격적으로 배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 당시만 해도 배 가격이 괜찮았다. 20여년 전부터 배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의 수입도 제법 짭짤했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시세가 떨어져 생산자는 제값을 못받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소비자는 비싸게 사먹는다”고 했더니 그는 “농산물 가격을 시장에 맡겨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피해를 보고 유통업체만 배를 불린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어 그는 “배값이 좋다고 나무를 많이 심어 홍수출하가 되고 있어 그렇다. 정부가 생산량을 계획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만났을 때 조용하고 낮기만 했던 그의 목소리는 농업정책과 관련한 얘기로 옮아가자 서서히 높아졌다.
대안농정을 꿈꾸다
처음 아산으로 내려올 때 “막연했지만 면서기를 하자. 전과자에다가 골수(운동권)가 공무원이 된다면 사회가 그만큼 변하는 게 아니겠냐 했다. 그런데 386들이 정계에 진출하고 전과가 훈장이 돼 버린 현실을 보며 꿈을 바꿨다”는 그의 꿈은 뭘까. 바로 “국가로부터 월급 받으며 농사짓는 것”이다. 그는 “농민을 기간제 공무원으로 등록시켜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식량주권을 지켜야 한다”면서 대안농정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농민을 준공무원화해서 농가 평균소득을 도시노동자 평균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공약이기도 하다.
“농가부채가 늘어나 슬슬 압박이 된다”는 11년차 농부인 박 당원은 “그래도 농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울 친구들은 좋은 술집에서 좋은 술을 마시지만 나누는 얘기는 너무 암울하다. 언제 잘릴지 몰라 투잡을 고민하고 아파트 대출금을 걱정하는 걸 보면서 내가 (경제적으로) 잘 사는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다”고 느낀다는 그는 농촌을 살맛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아산농민회의 ‘대안농정’ 연구모임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아산농민회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는 6월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와 이명박 정부의 농업선진화정책을 중단시키기 위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농업관련 보조금을 없애 살아남는 농민만 기업화, 규모화하겠다는 게 MB 농정의 핵심”이라고 꼬집은 그는 “당장 농번기라 농민들이 움직이기 힘들지만 6월 상경투쟁, 8월 마을총회 등으로 농민들의 의견을 모아낼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진짜 어려운 사람 도울 수 있어 보람”
충북도당 제천시위원회 정이택 당원
“제천시청으로 오라.”
정이택 당원은 약속장소를 간단히 일러줬다. 서울서 승용차로 두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곳인데 약속시간을 30분이나 훌쩍 넘겨 도착했다. 서울시내의 교통상황을 고려해 약속시간 3시간 전에 출발했으나 꽉 막힌 도로 탓에 그만 늦고 말았다. 하지만 정 당원은 미안해하는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아줬다.
장학금 기탁 등 이웃 돕는 상용직노조
제천 상용직노조의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체육대회 준비로 무척 분주했다. 4년전 노조를 만들 때부터 적극 참여했던 그는 지난해 3월부터 노조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상용직노조는 제천시의 도로보수, 하수관리, 환경미화, 청사관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뭉친 노조다. 지난 14일에는 민간위탁업체 환경미화원들과 매립장시설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 조합원이 40여명 늘어났다.
“노조가 생기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정 당원은 노조활동의 보람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임금인상이나 복지 수준이 나아진 것보다 제천시의 담당 실국장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하고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을 노조활동의 가장 큰 보람으로 꼽았다. 그는 제천시에서 운영하는 박달재 자연휴양림에서 근무하다가 다시 시험을 봐 환경미화원이 됐다. 이전보다 월급수준은 나아졌다. 그러나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노조를 만들고 나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관행들이 하나, 둘 깨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를테면 새벽잠을 설치며 3~4시 출근했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됐다. 또 휴일을 찾아 쉴 수 있게 됐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게 된 상용직노조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회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해마다 연말이면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것은 물론, 제천시 인재육성재단에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상용직노조가 지난 4월3일 제천시에 전달한 장학금 2천만원은 그동안 밀렸던 체불임금을 받은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거둬 마련한 것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들 노동자의 사회 환원은 지역주민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집단입당 뒤 민생상담 활동가로 변신
정 당원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바람을 안고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지난 2007년 5월 상용직노조의 집단입당을 통해 제천시위원회 당원이 된 그는 요즘 민생상담 활동가로 변신했다. 제천시위원회 119민생희망본부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개인회생․파산 상담과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활동, 사회복지 관련 비리 대응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개인회생․파산 상담을 맡은 그는 “화물연대나 농민회 등에 빚을 떠안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위 사람들부터 신용회복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는 사람에게 카드대출로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해 카드돌려막기를 하는 신세가 된 50대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을 얘기하면서 “상담을 하면서 진짜 어려운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게 보람”이라고 했다.
집단입당 뒤 당활동에 열정적인 정 당원이지만 지난해 총선 후보였던 박상은 제천시위원장에게 빚이 있다. 당시 박 위원장 수행을 맡기로 했으나 마을 반장직 사퇴 마감일을 놓쳐 그만 선거운동을 뛰지 못했다. 그 일이 두고두고 미안했던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선 본인이 직접 후보로 나서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그는 나고 자란 고향, 아름다운 청풍호를 끼고 있는 금성면 지역을 기반으로 방과후 공부방 등 지역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이웃들이 ‘좋은 사람’ 인정한 사회복지가
인천 남동구위원회 이명경 당원
이명경 당원은 활동 근거지와 생활 근거지가 같다. 이 당원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남동구 구월동을 터전으로 지역활동을 펼치고 있는 ‘풀뿌리 활동가’다.
이 당원이 온종일 구월동을 벗어나지 않고도 찾아갈 곳이 많은 활동가라는 것을 아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그를 처음 만난 인천지하철 문화예술회관역에서 그가 요즘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스포츠진흥원까지는 10분 거리. 그는 그 길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거쳐 갔으며, 아침에 배드민턴을 치러가는 운동장과 등하교길 교통안전 지도를 하는 성리초등학교를 가리켜주기도 했다. 그리고 길 가다 만난 주민들과 자주 고개 숙여 인사를 나눴다. 그가 이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지역단체에 ‘스카우트’ 되다
이 당원은 지난 2006년 구월1‧4동 기초의원 후보로 출마한 이후 꾸준히 지역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성리초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학교급식모니터링단 부회장, 녹색어머니회 부회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는 그는 학교서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녹색어머니회의 유일한 아빠로 당당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학교 운영위원만으로는 엄마들의 일상적인 흐름’(학부모 정서)을 잘 모른다”면서 학부모들과 가까워지려면 녹색어머니회, 급식모니터, 도서도우미 같은 학부모회 활동을 하라고 귀띔해 주기도 했다. 또 이 당원은 남동구사회복지실무협의회 위원장과 지역아동센터인 구월‧남촌‧웃음꽃공부방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며, 성당에서도 사회복지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당원이 펼치는 다양한 활동의 공통분모는 ‘사회복지.’ 그의 꾸준한 활동을 눈여겨 본 지역주민들은 그를 ‘성실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또 지역에서 신망 받는 사람들이 “함께 일해 보자”며 손을 내밀기도 했다. “열심히 사니까 여러 곳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하네요.” 그가 허허 웃는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곳이 한국스포츠진흥원과 두리봉사단이다. 1년전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면서 사귀게 된 고광인 한국스포츠진흥원 이사장이 이 당원에게 함께 활동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사단법인인 한국스포츠진흥원은 체육복지사업을 목포로 생활체육을 발전시키기 위해 스포츠전문지도자 양성과 생활스포츠 보급에 앞장서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한국스포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두리봉사단은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운동소외계층’을 찾아가 운동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다.
지역활동 공통분모는 ‘사회복지’
이 당원은 전문 강사와 함께 어깨너머로 배운 배드민턴 실력을 바탕으로 지역아동센터 배드민턴 무료강습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운동량이 많은 배드민턴은 건강에도 좋을 뿐 아니라 동호회 회원들끼리 야외경기장에서 함께 밥을 해먹으며 가족처럼 어울리는 분위기가 더 좋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그는 지역활동을 고민하는 당원들에게 “배드민턴을 하면 색다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 당원은 한국스포츠진흥원에서 후원받은 기금으로 한부모 가정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 학생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성적도 좋으니까 보람을 느낀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원님 직업을 뭐라고 할까요?”
“음, 사회복지가? 정치인? 제가 정치인이라고 했더니 우리 (배드민턴)강사가 ‘홍보이사님은 사회복지가에 가깝다’고 하대요. 정치인이 주민들에게 가까이 있어 사회복지를 늘려가는 게 생활정치 아닐까요.”
“강 대표님, 현장방문 자주 오세요”
전북도당 군산시위원회 김경환 당원
전북 군산시위원회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해 집단탈당사태 이후 사고지역위원회로 활동을 멈춘 지 1년만이다. 지난 3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을 재개한 군산시위원회는 오는 7월 임원선거를 치르고 새 지도부를 구성할 예정이다.
군산시비대위의 첫 사업은 노동현장 방문. 타타대우상용차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만나 당 홍보물을 나눠주며 당이 새롭게 활동을 시작했음을 알렸다. “이제 일 좀 하겠네”라며 군산시비대위의 새 출발을 격려하는 조합원들을 보며 덩달아 신이 났던 김경환 당원. 탈당사태 이후 말을 아꼈던 그는 조합원들과 지역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는 생산 현장을 돌며 백승재 군산시비대위 사무국장을 조합원들에게 안내해 주기도 했다. 금속노조 전북지부 정치위원이고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쟁의차장이기도 한 그는 조합원들에게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안내 역할을 맡았던 것.
조합원 마음 읽어주는 간부
“조합원들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것”을 노조간부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던 그는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오는 9월말 임기를 마치는 그는 노조간부로서 조합원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며 간부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고달플 법도 한데 “노조활동을 재밌게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전임자는 3명뿐이라 노조간부들도 대부분 현장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임단협 기간 동안 지회장배 족구대회를 열고, 파업현장에서 삼겹살 파티를 여는 등 긴장감이 넘치는 투쟁도 한걸음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선배들에게 배웠다. 정치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가장 보람된 일로 꼽은 그는 “경험이 많은 정치위원들에게 누구를 대하든 진실로 대하는 것을 배우며 많이 성숙해졌다”고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다.
김 당원을 만나는 동안 해마다 비정규직 10% 이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노조활동을 하며 ‘1사 1조직’의 모범을 만들어가는 타타대우상용차지회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님을 절감했다. 노조간부들이 솔선수범을 통해 조합원들과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는 가능한 것이다.
조합원들, 생활근거지서 정치주체로
지역위의 활동 재개를 누구보다 반겼던 김 당원은 노조와 지역위의 연대활동을 모색하고 있다. “(노조가)당과 어깨동무할 게 많다”는 그는 우선 조합원들이 현장뿐 아니라 생활근거지에서 정치주체로 나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아무래도 현장서 조합원들을 만날 기회가 많으니까 지역활동이 가능한 당원들을 발굴해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야죠.” 또 노조 정치사업의 일환으로 오는 8월 집단입당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강기갑 대표가 현장 방문을 왔는데 너무 좋아했어요. 매일 TV로 보던 강 대표와 악수를 한 게 기쁘다면서요.” 김 당원은 지난해 12월 강 대표가 현장을 방문했을 때 열기를 전하며 조합원들이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당 지도부가 현장 방문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는 “당 지도부의 현장 방문은 정치사업의 기본”이라면서 조합원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살가운 인사를 나누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기초를 잘 닦아야 합니다”
경남도당 진해시위원회 강보순 당원
민주노동당 진해시위원회는 지난 2005년 공식 출범했다. 진해는 해군기지사령부, 해군사관학교 등 군사시설이 많은 도시라서 시민사회운동이나 진보정당운동이 활성화되기 어려운 처지와 조건이었다. 그러다보니 창당 때부터 활동하던 당원들은 있었으나 진해시위원회의 출발은 늦은 셈이다.
꼭 다시 해보고 싶은 분회장
강보순 당원은 진해시위원회가 창원시위원회 소속 지회에서 지역위원회로 새롭게 출발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 지난 2004년 진해지회장이던 강 당원은 이듬해 윤성일 STX노조 위원장에게 지역위원장 바통을 넘겨주기까지 진해지역의 당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지회장으로 첫 당원모임을 개최하던 날, 뜻하지 않게 불청객을 맞기도 했다. 진해경찰서가 정보수집을 핑계로 당원모임을 감시했던 것. 그는 “경찰이 정보수집하러 올 정도로 당이 활동하는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였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뒤 진해시위원회 1분회장을 맡아 분회모임을 안정화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분회모임을 한번 열기 위해 문자메시지와 우편물 발송은 기본으로 하고 당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참석을 요청했다. 또 분회모임이 끝나면 모임결과를 정리해 당원들에게 발송했다. 그것이 당원들과 신뢰를 쌓는 기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정성을 들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뜻한 바대로 분회모임이 오래도록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당활동 가운데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분회장 활동을 꼽았다.
“분회는 생활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본단위다. 꼭 분회장을 다시 해보고 싶다”고 몇번이나 강조하지만 사실 그는 아직 다른데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고 한다. 지난 1992년부터 도서관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그가 생계유지를 위해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아서다.
도서관운동, 미래 위한 투자
그의 인생은 민간도서관 ‘책사랑’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는 지난 92년 민간도서관 ‘책사랑’의 사무국장으로 시작해 지금은 마을도서관 ‘책사랑’ 대표를 맡고 있다. 90년대 마산 남성동 좁은 골목에 자리 잡은 책사랑은 노동운동, 학생운동 등 지역운동의 근거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책사랑은 지난 1999년 창원 대방동으로 자리를 옮겨 ‘마을도서관’으로서 지역주민들의 문화와 소통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마산에서 오랫동안 도서관운동을 벌인 책사랑의 성과가 창원의 마을도서관으로 열매를 맺은 것.
“사회가 급격히 바뀌면 필요한 제도는 바꿀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은 급격하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생각은 책을 통해 꾸준히 변화시켜야 한다.” 그가 15년 이상 도서관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다. 또 그가 나이 마흔이 넘어 뒤늦게 직장생활에 뛰어들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옛날처럼 사람이 모이는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기에 그는 힘겨운 직장생활을 웃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늘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직장생활은 세상을 바꿀 힘을 축적해나가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하지만 그를 곁에서 오랫동안 지켜봐온 사람들은 지역사회에서 더 활동력을 높였으면 하는 바람에 여러 제안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말없이 자기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는 당원”이라며 그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김태웅 진해시위원장은 “어려운 조건에서 진해시위원회가 창립될 때 열심히 했던 것처럼 좀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공부방을 주민들 ‘열린공간’으로
대구시당 동구위원회 김후관 당원
대구 동구 효목1동 아양교 인근에 있는 ‘신나는효목방과후학교’는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무료공부방이다. 이곳에서 상근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후관 당원이 이번 ‘당원의 향기’ 주인공. 송영우 대구 동구위원장이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동구위원회의 소중한 당원”이라며 강력 추천한 김 당원을 만난 건 지난 29일 점심시간. 그는 공부방 주방에서 점심식사 준비로 바빴다. 그가 차린 밥상을 공부방과 한집살림을 하고 있는 대구청년센터,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활동가들이 둘러앉아 맛나게 먹었다.
이들은 지난 4월 이곳으로 이사하면서 ‘한지붕 세가족’이 됐다. 이들은 공간만 함께 쓰는 것이 아니라 공부방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선생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역위 산행모임은 지난 2월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성암산 산행을 가기도 하고, 지난 5월에는 안동으로 통일쌀짓기 모내기 체험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김 당원은 이런 선배들이 있어 든든하기만 하다.
‘동네축제’ 주인인 아이들
김 당원이 공부방 교사로 활동한 것은 지난해 3월부터다. 당시 공부방 교사였던 황순규 대구시당 기획국장이 총선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를 대신해 공부방 운영을 맡게 된 것.(그와 황 국장은 올봄 백년가약을 맺은 사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그는 “지역에 밀착해 활동할 수 있는 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공부방은 안성맞춤”이라며 “아이들이 공부방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2006년 이성훈 공부방 대표와 대구청년회 회원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공부방은 자원선생님들의 도움으로 미술, 연극, 중국어, 영어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 공부방은 체계적인 틀을 갖췄다고 하긴 어렵다. 이는 아이들에게 그만큼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지난해 가을 아양루에서 열린 동네축제 참여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소통과 나눔의 동네축제, 아양루에서 놀다’는 장애청소년학교 ‘한사랑’, 동구참여연대 동구주민회 등의 지역단체들이 함께 만드는 동네축제다.
공부방 아이들도 어린이장터, 인형극, 사생대회 등을 직접 준비해 축제의 주인으로 참여했다. 아이들은 당시 어린이장터의 수익금을 다시 축제를 준비하는 기금으로 쓰겠다는 기특한 결정도 스스로 내렸다. 또 아이들은 올 가을에 열리는 동네축제의 인형극에 올릴 인형 만들기를 1주일 전부터 시작했다. 그는 아이들이 잘 짜인 각본대로 참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 마당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의 인격을 살리는 동네축제”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지역사회와 소통을 꿈꾸다
김 당원은 “공부방을 내실 있게 꾸리기 위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일 욕심을 냈다. 현재 공부방은 후원회원들의 재정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공부방을 좀 더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구청에 지역아동센터 시설등록을 할 계획이다. 그가 시설장의 책임을 맡기로 하고 지역아동센터 등록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그는 또 “학부모 모임을 꾸려서 학부모들이 공부방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장기적인 계획은 공부방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뿐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연회 등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10년 이상 길게 보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후 2시가 넘어서자 공부방에는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전통놀이인 용호쌍육놀이를 함께 하자고 조르는 도연‧도희 자매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더운 날씨에도 간식을 만들려고 가스불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
“문화예술로 마을공동체 만들고 싶다”
인천시당 부평구위원회 신운섭 당원
신운섭 당원은 영화 ‘낮술’에 출연한 배우다. 그를 소개한 인천시당 간부가 알려준 정보는 이것뿐. 그에 대한 사전정보를 얻기 위해 영화 ‘낮술’도 보고 관련기사도 꼼꼼히 읽었다. 또 영화관련 질문도 준비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한 질문들은 무용지물이었다. 막상 그를 만나 “당원들에게 영화 ‘낮술’의 트럭운전사라고 소개하면 되느냐”고 묻자 “별로에요”라며 탐탁찮은 반응이 돌아왔기 때문.
“단편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경력을 쌓은 배우”, “대사소화력과 연기가 좋은 배우”라는 평가는 신운섭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턱없이 모자란 정보였던 것. 배우이기 전에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그는 연극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현재 활동까지를 풍부한 표정을 지으며 유쾌하게 풀어갔다.
연극이 인생의 전부였던 20대
그의 20대 시절은 연극이 전부였다. 지난 1990년 대학 1학년생이었던 그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산하의 민족극운동협의회가 개최한 민족극한마당을 보고 큰 감흥을 받았다. 고뇌하던 젊은 청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게 바로 민족극이었던 것.
“민족극한마당을 보면서 ‘아, 이거야. 이렇게 살면 되겠어’ 싶었죠.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낙원동에 있던 민예총 사무실로, 대학로에 있던 예술극장 한마당 등을 찾아다니면서 연극할 수 있는 곳을 소개받았죠.”
그는 사회참여운동으로 연극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처음 들어간 곳이 극단 ‘현장’. 군 입대 전까지 ‘현장’에서 활동했고, 이후 ‘한강’으로 극단을 옮겼다. ‘한강’에서 처음 공연한 작품은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다룬 <반쪽 날개로 날아온 새>다. “1년 동안 자료 조사하고 할머니들 인터뷰하면서 연극을 준비했는데 굉장히 큰 공부였죠. 나를 성장시킨 계기가 된 거죠.”
그의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작품은 노동자들의 애환과 고된 삶을 다룬 <노동자를 싣고 가는 9대의 버스>. 당시 노동자를 배신하는 구사대 역할을 맡았던 그는 노동자들끼리 대립하는 현실에 가슴이 아파 펑펑 울기도 했단다.
그는 요즘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면서 지난 2001년 대우차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다. 당시 대우차에서 해고‧비해고로 운명이 갈린 노동자들의 얘기를 담은 연극을 준비했던 그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쌍용차에서 고스란히 되풀이되고 있다”며 몹시 씁쓸해 했다.
주민들 문화예술 참여 확대해야
지난 2003년 극단 ‘한강’을 그만둔 그는 현재 사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인천지역 배우들과 함께 연기연구프로젝트팀을 꾸려 공부도 하고 1년에 한편씩 공연을 준비하기도 한다. 지난해 11월 인천 남구 학산문화원에서 열린 황해연극제의 개막작인 <자매들>이 연기연구프로젝트팀의 첫번째 작품이다. 요즘은 오는 11월 공연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연극교실을 통해 초등학생, 노인, 이주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그는 “먹고 살려고 (예술)강사활동을 하게 된 건데…….
기왕이면 사회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 인생 포기하고 60~70년을 산 할머니들이 처음으로 배우가 돼 연극을 해보고 ‘내 평생 사람들 앞에서 처음 목소리 높여봤다’고 소감을 말해요. 평범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문화충격이죠. 이런 활동을 확대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마을가꾸기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문화활동가들이 연극, 미술 등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지역을 변화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 가능성을 보게 된 것. “문화활동가들이 연극이나 문화를 통해 지역주민 속으로 ‘쑥~’ 들어가더라고요. 주민들이 문화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면 사람들 관계가 좋아지고, 사람들 관계가 좋아지면 지역사회가 좋아지겠죠.”
“당이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는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며 쑥스러워했다. 지난 2004년 총선 무렵 진보정당을 후원하는 차원에서 입당을 했으나 분회모임 몇번 참석한 게 당활동의 전부이기 때문. 하지만 그의 경험 속에 민주노동당은 가까이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잘 모르지만 무상의료 정책이 가장 피부에 와 닿았어요. 아버지가 다쳐 병원에 갔다가 무상의료 선전물을 봤거든요. 또 파산면책 상담하는 거 보고 잘 한다 싶었어요. 사람들 속으로 ‘쑥~’ 들어갈 수 있는 얘기잖아요.”
끝으로 그가 당에 바라는 것은 당원들의 한결같은 바람과 같았다. “특별히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이)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나요. 저도 그런 사람이죠.”
“당의 활력소가 되고 싶어요”
서울 용산구위원회 이상범 당원
“국민과 소통하라.”
“개념 있게 사시오.”
이명박 대통령을 향한 서울시민들의 일침이다.
지난 13일 오후 신도림역 1번 출구 앞 ‘서울시민, 나도 시국선언’ 캠페인 현장. “유명한 교수님만이 아니라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주권자로서 시국선언을 할 수 있다”는 캠페인단의 간곡한 권유에 퇴근길 귀가를 서두르던 시민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대학교수들이 처음 시작한 시국선언이 이제 시민들의 길거리 시국선언, 온라인 시국선언 등으로 번지고 있다.
거리 나오면 민심 읽을 수 있다
서울지역 대학생들로 구성된 ‘서울시민, 나도 시국선언’ 캠페인단은 지난달 28일부터 온종일 서울시내 곳곳을 누비며 시국선언운동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11일까지 2주간 캠페인 활동을 마감한 대학생들은 이날 활동을 재개했다. 이른바 시국선언 캠페인 ‘시즌투’에 돌입한 것.
이날 시국선언 현장에서 만난 이상범 당원은 유난히 분주했다. 캠페인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시국선언 현수막 설치부터 대학생들이 시민들을 만나는 태도까지 꼼꼼히 살피는 한편, 오락가락하는 장맛비에도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
그러다가 그의 시야에 들어온 한 학생이 있었다. 길가는 시민들을 가로막은 채 시국선언에 동참해 달라고 하는 그 학생의 모습은 의욕이 넘쳐 보였지만 오히려 시민들을 불편케 만들었다. 이 당원은 그 학생에게 조용히 다가가 그렇게 억지로 동참시키려 해선 역효과 난다고 충고해줬다. “현장의 자연스런 분위기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실천단의 주요 원칙으로 삼고 있는 이 당원이 보기에 그 대학생의 행동은 너무 지나쳤던 것이다.
실천단 활동으로 잔뼈가 굵다
사실 이 당원은 여러 실천단을 운영하면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야전에 강하다”고 자부하는 그는 나름 실천단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 그는 “시민들을 만나러 한번을 거리에 나가더라도 연설, 선전물 등을 잘 준비해야 한다”면서 특히 지역주민들의 처지나 조건에 맞는 선전내용을 준비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5년 전용철‧홍덕표 농민열사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실천단 활동이 그랬다. 지하철 환승구에서 농민들이 경찰의 방패에 찍히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상영하면서 농민에 대한 연민이 깊은 국민 정서에 호소했다. “황소같이 선한 농민들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것에 국민들이 엄청나게 분노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 개인적으로도 농민열사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 실천단 활동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완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서 농민들을 보면 아버지가 떠오르거든요.” 잠시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또 그는 지난 2006년 서울시장 선거 유세단장을 맡았으며, 그해 연말 한미FTA 저지 실천단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이번 캠페인단 활동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모아내는 것과 함께 대학생들이 정의롭지 않은 사회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한번도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대학생들이 ‘실천하는 88만원세대’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건 보람 있는 일이죠.” 더 이상 빠질 살도 없어 뵈는 이 당원이 몸무게가 3㎏이나 빠져도 신명나게 활동할 수 있는 건 대학생들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어서다.
“거리에 나오면 민심을 읽을 수 있다”는 그는 “풀뿌리 활동가들이 직접 시간을 내서 시민들을 만나 달라. 민주노동당이 동네에서 인정받을 수 있게 실천 활동에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또 “민주노동당을 무척 많이 좋아한다”는 애정 표현과 함께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의제를 알리는 것 등 당에 활력을 주는 역할을 맡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울산 중구에 진보정치 꽃피우고 싶어요”
울산시당 중구위원회 박광수 당원
“다운2차 국민임대주택단지 조성사업, 근본적 교통대책 수립이 절실합니다.”
울산시 중구 주민들이 대규모 국민임대주택단지 조성에 따른 교통대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2013년 중구 다운동과 울주군 범서읍 서사리 일대에 1만870세대, 3만여명이 입주하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완공되면 교통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전에 실효성 있는 교통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운분회의 실천가 맏형
이 서명운동은 ‘다운동 지역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협의회’(주민협의회)가 주축이 돼 이끌어가고 있다. 주민협의회는 민주노동당 울산 중구위원회, 다운2차아파트 운영위원회, 삼성아파트 부녀회, 주민자치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주민협의회는 “현재 수립된 교통개선안은 주택단지 입주 이후 교통량을 턱없이 낮게 예측한데다 진출입로로 기존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는 등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며 주민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교통량 분산과 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게 국도 14호선 조기 개설, 버스노선 신설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다운2차아파트 운영위원회 감사 자격으로 주민협의회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박광수 당원. 평생 노동자로 살아온 그는 “노동자들이 현장활동뿐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해야 주민들로부터 인정받는다”며 서명운동에 열심이다.
그는 이번 서명운동만이 아니라 평소 집집마다 선전물을 배포하는 지역위원회의 실천활동이나 당행사,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또 청소년선도지회 다운상담실장을 맡아 학교, 동네공원을 순찰하며 청소년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주말이면 다운동 주민들의 쉼터가 되는 척과천 청소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그의 열정은 울산 중구위원회 다운분회 당원들의 실천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말보다 실천이 앞서는 그가 다운분회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다운분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홍인수 울산 중구의원은 “퇴근하고 서명운동에 참가한 박광수 당원 때문에 서명운동을 마치는 시간이 늦어질 때도 있다”며 “연세가 많은데도 실천투쟁이나 당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당원”이라고 평소 고마웠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박 당원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직장)일한다고 함께 못해 미안하다”며 오히려 당 간부들을 더 많이 돕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늙은 노동자의 못다 이룬 꿈
지난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울산지역 총파업에 참가했다가 울산시청으로 가두행진할 때 대오의 선두에 서서 처음으로 사과탄 세례를 받아 눈물범벅이 됐던 젊은 노동자는 이제 정년을 3년 남겨둔 늙은 노동자가 됐다. 하지만 “노동자가 주인으로 당당히 대우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열정만큼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는 지난 23년간 세종공업에서 일하며 노조활동은 물론 진보정치 실현을 위한 선거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는 지난 2000년 울산 북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던 당시 최용규 세종공업노조 위원장의 당선을 위해 운동화 바닥이 다 헤지도록 북구 구석구석을 샅샅히 누비고 다녔다. “최용규 위원장이 563표 차로 낙선해 너무 안타까웠다”는 그는 4년 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의 감격을 맛봤지만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울산 중구에서 진보정치를 꽃피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오늘도 선전물을 들고 다운동 아파트 단지로 향한다. 지역위와 분회가 동네에서 지역현안을 해결하면서 주민들에게 신뢰를 쌓아가는 게 국회의원을 만드는 기반이 된다고 믿기 때문. “우선 다운동 교통문제를 시급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당사무실을 떠나 다운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이 미더워 보였다.
움직이는 민주노동당 홍보대사
전남 목포시위원회 우선홍 당원
요즘 민주노동당에서 ‘잘 되는 분회’ 찾기는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라면 지나친 표현일까. 그만큼 분회 활성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달에 한번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분회원들끼리 소통하는 것도 분회장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정도다.
그런데 안정적인 분회모임을 토대로 지역현안을 이끌어가는 분회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남 목포시위원회에서 들려왔다. 목포지역 택시사납금 인상 반대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목포시위원회 ‘택시분회’가 그 주인공이다.
노조 사무실보다 지역위가 더 좋은 이유
택시분회는 좀 특이한 과정을 밟아 지금에 이르렀다. 먼저 노조활동을 하다가 입당한 게 아니라 당 활동을 통해 민주노조를 세우게 됐기 때문. 택시분회장을 맡고 있는 우선홍 당원이 노조 사무실보다 목포시위원회 사무실을 더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 당원과 동료들이 처음 당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2년초. 민주노조를 만들고 싶었던 우 당원이 동료들과 함께 법률상담을 위해 목포시위원회를 찾으면서다. 당시 목포지역의 9개 택시회사 노조는 모두 한국노총 전국택시노조연맹 소속이었다. 우선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선 택시노동자들의 단결된 힘이 필요했다. 우 당원은 목포시위원회 택시분회 추진위를 꾸리고 동료들을 규합해 나갔다. 그리고 지난 2007년 1월17일 택시분회 창립식을 가졌다. 창립 당시 17명이던 분회원은 지금 40여명으로 늘었다. 또 우 당원을 포함해 대부분 분회원들이 일하는 남도상운택시엔 민주택시의 깃발을 꽂았다.
사납금 인상 반대투쟁 이끈 ‘택시분회’
택시분회는 지난 4월부터 민주노총 목포신안지부, 목포신안민중연대 등과 함께 ‘택시사납금 인상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사납금 인상 철회와 택시노동자 처우개선, 승객 서비스 개선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택시 기본요금이 2300원으로 인상됨에 따라 택시회사들이 사납금도 일방적으로 인상했기 때문. 남도상운택시의 경우 12시간 맞교대 근무 노동자의 사납금을 한달 평균 12만5천원 인상했다. 택시요금 인상 이후 승객 감소로 인해 택시노동자 수입이 줄었는데 사납금을 인상한 것은 사측의 배만 불린다는 게 대책위의 주장. 사납금 인상은 택시노동자들의 과속, 교통신호 위반 등을 부추겨 결국 승객 서비스 질 저하를 초래한다. 이에 따라 대책위는 사측에 사납금 인상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목포시가 적극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예전엔 이런 투쟁을 상상도 못했다”는 우 당원은 사납금 인상 반대투쟁을 통해 동료들이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아가는 주체로 당당히 서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젊은 애기들이 조합원으로 많이 들어옵니다. 예전엔 회사 말이 다 맞는 줄 알았는데 노조에 들어와 보니까 회사에 완전히 사기당했다고 합니다.”
박기철 목포시위원장은 “사납금 인상 반대투쟁은 노조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택시분회 당원들이 주도하는 투쟁이라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다”며 택시분회를 자랑스러워했다.
민주노동당은 내 삶의 희망
택시분회는 지난해 4월 총선 당시엔 당의 움직이는 홍보대사로서 톡톡히 한몫했다. 우 당원은 분회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구전홍보논리를 개발해 택시 승객들에게 퍼트렸다. 그 반응을 보고 다시 모여 더 효과적인 구전홍보논리를 개발하는 등 열정적으로 선거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택시)분회 조직을 확대해 2010년 지방선거에선 우리 시의원을 많이 배출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택시분회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분회모임에 참석한 당원의 사납금을 분회가 책임지고 마련해 줄 정도로 단결이 잘 된다는 것이다. “단결이 잘 되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술힘이죠. 하하~” 호탕하게 웃는다. 그러나 곧 “완전 컴맹이었는디 여기 와서 많이 배웠지라~”라며 진지해지는 그의 얼굴에서 참된 노동자로 거듭날 계기가 된 당에 대한 애정 때문임을 느낀다. 욕설을 섞어야만 말을 이을 수 있었던 거친 노동자가 이제 민주노동당을 통해 새로운 삶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권 퇴진운동, 가장 맘에 듭니다”
강원도당 철원군위원회 박태현 당원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박태현 당원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해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해 타오른 촛불은 조용한 농촌마을에도 번졌다. 민주노동당 철원군위원회가 중심이 돼 마련한 촛불문화제를 통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뿔난 지역주민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
온라인 공간인 ‘다음 아고라’나 ‘아프리카 방송국’을 통해 광우병 촛불의 열기를 접한 박 당원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것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동송읍 중심가에서 광우병의 위험을 알리는데 앞장서는 민주노동당이 마음에 쏙 들었던 그는 학습지 동료 교사였던 김문수 당원의 권유로 입당했다. 지난해 여름 그의 입당은 농민회가 곧 민주노동당이라고 할 만큼 농민당원이 다수를 차지하는 철원군위원회에서 노동자 당원, 누리꾼 당원의 등장으로 주목받았다.
‘특수고용직’ 누리꾼의 입당
광우병 촛불에 관심이 많았던 박 당원은 매일 한 시간 이상 다음 아고라에 등록된 글을 읽고 댓글을 달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누리꾼이었다. 그에게 다음 아고라는 광우병 촛불만이 아니라 한반도 대운하, 비정규직 등 정치현안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다음 아고라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새로운 공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학습지 교사인 자신이 특수고용직 노동자임을 절감한 그는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했다. 그가 소속돼 있는 학습지회사의 포천지국에서 일하는 교사 40명 가운데 첫 산재보험 가입자가 된 것이다. 지난해 7월 산재보험법이 개정돼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이 산재 적용을 받게 됐다. 하지만 사측은 “산재보험은 좋지 않다”며 교사들에게 상해보험을 들 것을 강요했다. 학습지 교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기존 관행을 유지하려는데 박 당원이 반기를 든 것. 그 뒤 동료교사들을 설득해 산재보험 가입자는 1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가 이렇게 산재보험 가입에 힘쓰는 것은 학습지 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첫 걸음이라고 믿기 때문. 사측의 탄압이 심해 학습지노조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한 그는 앞으로 “노동자로서 권리를 찾는 일을 계속 해보고 싶다”고 했다.
활동 부족한 지역위에 더 관심을
박 당원의 당활동 기간은 이제 1년 남짓 됐다. 그는 기자를 처음 만나자마자 “어제 <진보정치> 다 읽어봤는데 여기(‘당원의 향기’ 코너) 나온 사람 경력이 화려하던데, 나 같은 사람이 나와도 되려나…”하면서 “아직 당을 잘 모른다”고 수줍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애정만은 여느 당활동가 못지않았다. “민주노동당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이명박 정권 퇴진운동입니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언론악법을 강행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강력히 비판하던 그는 “내 생각에도 정권 퇴진운동을 하는 게 마땅하다”며 적극 공감을 표했다. 또 그는 농촌지역의 여건상 당활동의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지적하며 “당 지도부가 당활동이 약한 지역에 신경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끝으로 그에게 장난스런 질문을 하나 던졌다. “스스로 소통지수를 매겨 본다면?” 그의 대답은 시원했다. “90점은 될 것 같네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니까요. 하하~.”
실제로 그를 곁에서 본 당원들은 그의 남다른 친화력과 포용력을 살려줄 수 있는 지역위원회 활동이 많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의 입당에 안내자 역할을 했고 지금도 형, 동생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김민수 당원은 “철원지역에서 민주노동당 활동을 오래한 당원들보다 더 거리낌 없이, 편안히 민주노동당을 알려내는 당원”으로 손꼽으며 “지역위가 더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고 평소 마음을 전했다.
“즐거운 일터, 행복한 쉼터 만들어야죠”
경기도당 안산시위원회 방우성 당원
안산시산업단지근로자복지관은 어둠이 까맣게 내려앉은 밤에도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문틈으로 오카리나 연주 소리가 은은히 베어 나왔다.
복지관은 안산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취미, 교양 강좌를 열고 있다. 또 노동월례포럼, 노동아카데미 등을 통해 진정한 노동의 가치와 의미를 찾아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복지관은 노동자들의 사랑방
복지관장인 방우성 당원과 함께 이곳을 찾은 건 저녁 8시가 넘어서다. 그런데도 오카리나 강좌가 한창이었다. “일반 복지관과 다르게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개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강좌를 열고 있어요.” 이렇게 퇴근한 뒤 복지관에 와서 강좌를 들을 수 있는 노동자는 그나마 여건이 낫다는 게 방 당원의 설명이다. 반월공단의 중소영세사업장에 다니는 대부분 노동자들은 특근, 야근은 물론 주야간 근무를 하고 있어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형편이다.
“무료강좌라서 노동자들이 관심을 보이긴 하는데 시간이 부족한 거죠. 잔업, 특근 빼서 강좌를 듣기가 쉽지 않잖아요.” 방 당원은 요가강좌에 열심히 참여하던 여성노동자들이 잔업이 생기면 한꺼번에 빠지는 경우가 잦다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방 당원이 관장을 맡은 건 지난 1월부터다. 민주노총 안산시지부가 안산시로부터 위탁받아 복지관을 열면서 지인들이 그를 관장으로 추천했다. 지난 5년간 공무원노조에서 상근활동을 한 경험을 토대로 안산시와 민주노총 안산시지부를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잘 하리라 판단해서다. 복지관 재정은 안산시가 지원하고, 운영은 민주노총 안산시지부가 책임진 상황에서 두 곳의 이해와 요구를 잘 조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방 당원은 그런 면에서 가끔 곤혹스러울 때도 있다. 안산시가 노동아카데미를 개최하자 “왜 시에서 돈 받아서 노동운동하려고 하느냐”며 트집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8개월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취미, 건강강좌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꾸준히 늘어나자 안산시의 태도 역시 우호적으로 바뀌었다.
가장 탐나는 당직은 ‘분회장’
지난 2월 1기 강좌를 시작할 때는 공단내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안내문을 붙이며 홍보를 했는데 지금은 “내용이 풍부한 무료강좌”라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노동자들이 많다. 특히 노동자들에게 인기 있는 강좌는 몸살림, 요가 등의 건강강좌와 사교댄스. 그는 “한곳의 근육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던 노동자들이 건강강좌를 통해 치유해 가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며 요가전도사가 된 젊은 여성노동자 얘기를 들려줬다. 허리통증이 심했던 여성노동자가 복지관에서 요가를 배우면서 건강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복지관 상반기 평가를 앞두고 있는 방 당원에게 앞으로 어떤 복지관을 만들고 싶은지를 물었다. “사랑방 같이 노동자들이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는 복지관이었으면 좋겠어요. 사랑방은 소통과 연대의 공간이잖아요. 안산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소통과 연대의 공간을 만들면 일터와 삶터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그는 “평당원 말고 큰 감투를 써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지난 1997년 국민승리21 때부터 안산시위원회에서 치른 수많은 선거에 품을 보탠 당원이다. 2006년 지방선거에 출마했던 아내(권영남 후보)가 250여 표차이로 낙선해 아쉬웠던 것보다 당시 선거운동을 굉장히 신나게 했던 게 더 기억에 남는다는 방 당원. 그래서 그는 “당이 다시 원기 왕성하게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지금은 평당원들이 자발적으로 활동해 당에 원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아주 탐내는 당직이 있다. 바로 분회장이다. 당의 뿌리조직인 분회가 살아나야 당에 활력이 넘칠 것이라고 믿기 때문. “당에 귀감이 되는 분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상상분회는 가족같은 분위기가 넘쳐나죠”
경기도당 부천시위원회 서문호 당원
민주노동당 부천시위원회 상상분회모임은 유쾌했다.
서문호 분회장이 “편하게 술 한잔 합시다”고 문자 메세지를 보냈을 뿐인데 퇴근한 당원들이 한명, 두명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서 분회장이 미리 자리를 잡은 음식점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잔’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사실 상상분회 ‘번개모임’은 서 분회장과 <진보정치>의 인터뷰 약속으로 마련됐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기자와 먼저 약속을 한 서 분회장이 그 자리에 당원들을 불러 모은 것.
상상분회의 실천사업 ‘현수막 걸기’
분회원들은 제각각인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화제가 신종플루로 모아졌다. 조규석 당원이 “홍건표 (부천)시장이 신종플루가 유행하는데 부천세계무형문화유산엑스포에 초‧중‧고등학생 강제동원령을 내렸다”며 학생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자 “그럼, 그 문제로 현수막 만들어 걸자”고 분회원들이 의견을 모았다. 이렇게 상상분회는 9월을 맞아 송내역에 내걸 현수막 주제를 자연스럽게 정했다. ‘현수막 걸기사업’은 상상분회가 꾸준히 벌이고 있는 실천사업이다.
상상분회는 정치적 이슈, 지역현안이 생길 때마다 당 입장을 알리는 현수막을 만들어 송내역 광장에 걸어온 것. 87년 6월 항쟁 20주년 기념 현수막을 시작으로 광우병, 경기도교육감 선거,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 쌍용차 투쟁 등의 내용으로 현수막을 걸었다. 서 분회장은 “그때그때 정치적 이슈에 맞게 현수막을 만들어 걸고 있다”며 “비용은 분회원 갹출을 원칙으로 한다”고 현수막 걸기사업을 소개했다. “갹출을 해야 소속감도 생기고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게 분회원들의 공통된 의견.
분회 활성화 비결은 당원들 역할분담
“단식했다더니 그대론데.” 당원들이 지난주 건강단식을 했다는 서 분회장에게 관심을 보이자 “3㎏밖에 빠지지 않았다”고 속상한 듯 말했다. 분회모임은 연신 왁자지껄 웃음이 쏟아졌다. 서로 얼굴을 본 것만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린 것 같았다. “상상분회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참 좋다”는 이종열 당원은 “처음 분회모임에 참석했을 때 분위기가 너무 좋아 계속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분회는 마을주민모임이잖아요. 아무 때나 만날 수 있어 좋지요.” 조규석 당원도 분회에 대한 넘치는 애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상상분회가 지금처럼 활성화된 것은 분회총회가 계기가 됐다. 3년전 분회장을 맡은 서문호 당원이 처음 시작한 일은 분회총회. 당시 80명의 당원들을 1대1로 만나 분회총회 참여를 호소하고, 당 강령과 정책을 소개하는 영상물을 만드는 등 정성껏 준비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알차게 열린 분회총회는 한번도 모임에 참석하지 않던 당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당원들이 참여할 기회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서 분회장은 당원들이 작은 역할이라도 분담해야 모임이 잘 이뤄진다고 했다. 이를테면 한미FTA 문제를 학습하기 위해 당원들이 경제, 농업, 의료 등 분야별로 학습거리를 분담해 준비하는 식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잘 준비하는 게 하반기 가장 중요한 분회사업”이라고 소개한 서 분회장은 분회모임 때마다 2010지방선거 논의를 진척시키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이혜정 후보가 출마해 16.8%를 득표한 곳. 부천지역에서 당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선거구라서 내년 지방선거에 대한 기대도 높다. 후보 논의도 마무리돼 가고 있으며 지역위원회와 함께 언론악법 등으로 매주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끝으로 서 분회장과 당원들은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다짐했다. “우리 지역구에서 꼭 시의원을 당선시키겠습니다.”
‘노동자 권리찾기 공부’ 삼매경에 빠진 버스노동자들
서울 성북구위원회 ‘노동자당원모임’
성격이 걸걸한 버스노동자 다섯이 서울 성북구위원회에 둥지를 틀었다.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한 버스회사의 동료인 이들은 모두 같은 분회에 소속돼 일터와 삶터에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할 거리가 많은 당원들이다. 또 성북구위원회 ‘노동자당원모임’을 꾸려 격주로 모임을 가지면서 친분과 신뢰가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이들이 지난 8일 오후 성북구위원회에 모였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타난 김주영․박성환․이종원․조동현․홍점원 당원이 ‘노동자당원모임’의 5인방이다.
‘노동자 권리’ 알아야 찾는다
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당행위에 맞서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싶다는 것. 그래서 노동자당원모임에서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 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노동관련 공부를 시작한 배경은 노동자 권리 보호에 시큰둥한 한국노총 소속의 노조 때문이다. “노조는 노동자를 위해 있는 게 아니고 회사의 제2노무부서나 다름없다”고 불만을 쏟아내던 노동자당원들이 현장을 좀 더 민주적으로 바꾸겠다는 열망을 안고 노동법 공부를 시작한 것. 흔히 ‘공부해서 남 주냐’고 하지만 이들이 하는 공부는 정말 ‘남 주는 공부’다. 모든 조합원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첫 출발이다.
사실 서울시가 버스준공영제를 실시하면서 버스회사가 막대한 성과급을 챙기고 있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제대로 돌려주지 않고 있다. 당원들은 부당한 차별을 받는 대표적 사례로 버스 안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를 꼽았다. 홍점원 당원은 “버스준공영제가 되면서 서울시내 68개 버스사업장에 점수를 매겨 차등적인 성과급을 주고 있다. 그래서 서울시 암행감사가 버스를 타고 친절도, 정류장 질서준수 등을 모니터링 해 점수를 매긴다. 이것 때문에 버스 안에 카메라를 설치해 기사를 감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주영 당원 또한 “카메라는 수익금 관리나 교통사고 해명 등을 위해 설치했는데 지금은 기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인격침해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당원들은 서울시의 교통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탕수’(운행횟수)를 잡아놓고 이를 지키라고 강요하는데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또 ‘시프트’라는 변형근로제를 시행하는 것, 단협에 명시돼 있는 퇴직금 중간정산을 해주지 않는 것, 빠듯한 배차시간으로 인해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 등도 제기했다. 이렇게 당원들이 겪어온 억울한 일들을 쏟아놓자, 홍점원 당원은 “얘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는데…”라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엔 노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던 당원들이 노동법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이렇게 부당한 노동현실을 바꾸고 싶어서다.
정릉분회 활력소 ‘버스노동자 5인방’
처음 노조활동을 배우고 싶어 민주노총에 찾아갔다가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게 됐다는 김주영 당원이 입당 시기로는 선배뻘이다. 지난 2004년 입당한 김 당원이 주위 동료들에게 입당을 권유해 지난해 여름 이종원․박성환 당원이 입당했다.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알고 당당히 말하면 (사측과 노조가)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걸 절감한 이종원 당원은 서류봉투가 두툼할 정도로 노동법 관련 자료를 갖고 다니며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당원모임하면서 술만 늘었다”고 너스레를 떨지만 노동자당원모임을 통해 삶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나하고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죠. 사실 회사 눈치보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조동현 당원은 회사에서 겪고 있는 부당한 차별을 서로 마음 터놓고 얘기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김주영 당원이 하도 가자고 해서 (민주노동당에)오게 됐다”는 박성환 당원은 모임에 참여한 지 4개월쯤 됐다. 박 당원은 노동자당원모임이 가족의 화합에도 도움이 된다고 좋아했다. “우리가 학습하는 날에는 출근한 아내가 빨리 삼선교 가서 열심히 배우고 오라고 전화를 해요. 아내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주죠.”
버스노동자 당원들은 정릉분회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은 분회모임에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면서 당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이종원 당원의 아내가 입당하기도 했다. 조석진 정릉분회장은 “같은 일을 하는 다섯 당원들과 가족들이 함께 해 분회에 활력이 넘친다”면서 “지역주민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친근하게 알리는데도 많은 역할을 한다”고 고마워했다.
끝으로 이들은 당에 “버스노동자와 서울시 교통정책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이어 “당 활동을 열심히 해 내년 지방선거에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학습모임’보다 더 유쾌한 뒤풀이를 이어갔다.
‘법 문턱’ 낮추고픈 서민권리 지킴이
광주시당 동구위원회 문 홍 당원
지난 15일 저녁, 광주법원 근처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서 문 홍 당원을 만났다. 광주법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던 문 당원이 일을 다 마치지 못해 그냥 사무실로 찾아간 것이다.
법무사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매우 바빠 보였다. 쉴 새 없이 상담전화가 걸려왔고 사무실을 방문한 고객도 있었다. 상담을 막 끝낸 그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기자와 마주 앉았다.
광주시당 민생상담실 자원활동가
그가 법무사 사무원이 된 것은 2년 전. 법학을 전공하지도 않은 그가 이 일을 선택한 것은 학자금 대출 상환이 시급했기 때문. 학자금 대출로 천만원대의 빚을 떠안게 된 그가 생계를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주로 채권, 채무 관련 상담을 맡고 있는 그는 영세자영업자, 실직자, 일용직 노동자 등의 딱한 사연을 접할 때가 많다. 이들 가운데는 특히 고리사채 피해자들이 다수다. 고리사채를 빌려 쓰는 이유는 은행 대출이 쉽지 않기 때문. 그는 이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채뿐 아니라 은행의 이자율을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민주노동당이 제안한 서민은행을 하루빨리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또 법률용어가 너무 어려워 법적인 절차를 밟은 시기를 놓쳐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법률용어를 국민이 알기 쉽게 바꾸고 법적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평소 지론을 힘주어 말했다. “법의 문턱을 낮춰 국민들이 스스로 법적인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출 학자금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당생활을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밑천이 됐다. 법무상담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는 광주시당 민생상담실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먼저 무료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받았던 시민들이 파산면책 서류를 작성할 때는 광주시당 민생상담실을 찾는다고 한다. 광주시당 민생상담실이 까다로운 서류작성을 친절히 도와준다는 입소문이 나있어서다.
이봉훈 민생상담실장은 “보통 사람들이 진술서 쓰는 것을 힘들어 하는데 문 홍 당원이 풍부한 법무상담 경험을 토대로 꼼꼼하게 잘 정리해 주고 있다”며 문 당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 당원은 “민생상담실을 상시적으로 운영할 체계를 만들자고 했으나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앞으로 시당 민생상담실이 활성화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소녀시대’ 춤에 통일열정을 싣고
문 당원은 지난 여름 휴가를 뜻 깊게 보냈다. 그는 민주노총 광주본부의 통일선봉대로 3박4일을 뛰었다. “민주노총 조합원은 아니지만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픈 마음에 참여했다”는 그는 통일선봉대원들과 함께 ‘소녀시대’의 지(Gee) 춤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또 그는 광주 동구위원회 당원들과 함께 지난달 29일 금남로 우체국 앞에서 열린 ‘6.15‧10.4 전면이행 동구문화제’에서도 소녀시대 춤을 선보였다. “너무 민망해 안경을 쓰지 않고 무대에 올랐다”던 그는 한나절 연습으로 훌륭한 솜씨를 선보이지 못했지만 분위기는 전체 무대를 압도했다고 자랑했다.
그는 이렇게 통일행사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직장생활을 핑계로 당활동을 등한시하지 않았는지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통일의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며 원기충전을 확실히 한 그는 앞으로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고 싶다고 다짐했다. 직장생활과 당 활동 얘기다.
“미조직 사업장 조직사업 모범을 만들어야죠”
충북도당 청주시위원회 이소영 당원
“미조직 사업장을 조직하고 있는데, 1천명 이상 조직하는 게 목표에요.”
이처럼 야심찬 포부를 밝힌 이소영 당원은 충북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이다. 이제 출범한 지 반년이 갓 넘은 지역노조는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는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의 울타리
현재 지역노조의 조합원들은 대부분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다. 제천, 진천, 영동 등 도내 지방자치단체에서 환경미화업무를 위탁받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의 노동환경은 노조에 가입하기 전까지 최악이었다. 지자체에서 재정을 지원받는 위탁업체가 정부 지침대로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 당연히 지급해야 할 피복비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사측은 “재활용가게에서 주워 입으라”는 인격침해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을 상담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낮은 임금보다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고 이 당원은 말한다. “한 위탁업체 사장은 시에서 지원받은 인건비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 축구장만한 땅을 사기도 했어요. 이 개인 소유 땅의 돌을 골라내는 일까지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에게 시켰대요. 그래도 부당하다고 말도 못하던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단체협상도 하고 사장에게 큰 소리도 치니까 통쾌해 하죠.”
이 당원은 너무나 당연한 노동자의 권리를 되찾는 것에도 기뻐하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조합원들이 단결해 임금인상을 이뤘는데 노조가 잘했다며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요. 그래서 노조의 책임감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조합원 50% 이상 입당이 목표
이 당원은 또 조합들에게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있다. 바로 노동자들을 대변할 진보정당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단체협약을 맺고 나면 정치교육을 통해 민주노동당 입당사업도 벌인다. “우리를 대변할 홍희덕 의원 같은 정치인이 많아야 한다”는 얘기가 조합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움직인다고 한다. 이렇게 당원이 된 조합원들은 전체 100명 가운데 15명.
이제 반년쯤 된 신생노조치곤 출발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체 조합원의 50% 이상을 당원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 당원은 입당사업에 더욱 욕심을 낸다.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인맥이 넓은 조합원들이 내년 지방선거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겨서다.
지역노조는 하반기 환경미화원 노동자 조직사업과 함께 복지시설의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대학교 비정규직 등으로 영역을 넓혀 조직사업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공무원노조, 금속노조 등과 간담회를 열어 미조직 사업장 조직에 연대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지역노조는 조직 확대사업과 함께 임단협을 체결한 사업장에 지부를 꾸리고 간부를 튼튼히 세우는 것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또 지역노조는 9월29일 제천지역상용직노조, 민주연합노조와 함께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는다. 최근 신종플루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으나 대부분 환경미화 위탁업체는 샤워시설, 세탁시설을 갖추지 않고 있다. 이에 위탁업체가 샤워시설, 세탁시설을 갖출 수 있게 지자체의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요구해 나갈 계획이다.
“미조직 사업장 조직화에 민주노조운동의 희망이 있다”는 이 당원은 임신한 몸을 아끼지 않고 ‘어제는 제천, 오늘은 영동’으로 충북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이 작은 거인의 열정을 보고 있노라면 “충북지역의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충북지역노조가 최고’라고 인식하게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이룰 날이 그리 먼 미래는 아닌 것 같다.
“지방의회서 노동자 실력 보여주고 싶다”
충남도당 서산시위원회 황차원 당원
‘약방에 감초.’ 황차원 당원이 임금체불, 전세금 문제 등을 척척 해결하는 모습을 본 후배 당원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황 당원은 실제 직장 노조와 거주지의 아파트입주자대표회 등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조 간부인 동시에 공인중개사이자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고 대학원에서 부동산학을 공부할 정도로 실력과 열정을 두루 갖춘 열혈 활동가인 셈. 그는 “조합원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등 다양한 공부를 하게 됐다”며 “노동자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파트 권리 찾기에 앞장
황 당원이 충남 서산에서 활동한 지는 벌써 6년째. 그의 직장인 한 자동차부품 생산업체가 현대계열사로 합병돼 공장을 충남 서산으로 이전해 이사 온 것이다.
현재 그가 맡고 있는 대표적인 직책은 전국아파트연합회 서산시지회 사무국장.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투명한 재정 운용에 앞장섰던 그는 아파트연합회장의 요청으로 지난해부터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주민의 60% 이상이 아파트(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서산시에는 부도임대아파트 등 공동주택과 관련한 지역현안이 많은 편이다. 그는 부도임대아파트 임차인 권리 찾기에도 발 벗고 나섰다. 그는 지난해 서산시 인지면의 한 부도임대아파트의 임차인 상담을 시작해 법적소송까지 도맡아 142세대의 전세금을 100% 보전 받도록 돕기도 했다.
전국아파트연합회 서산지회는 공동주택 사업비 지원을 확대하기 위해 조례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현재 공동주택 지원과 관련된 조례들이 제정돼 있는데, 아파트입주자회 동대표들이 잘 몰라 정당한 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아파트 인도 확보, 놀이터 모래 교체, 조경시설 마련 등에 지원을 확대하도록 조례개정을 요구하는 것은 주민의 정당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4월 케이블TV 방송시청료 인상을 막는데도 한몫했다. 그는 케이블TV 방송국과 아파트연합회의 협상테이블을 주선, 점진적으로 시청료를 인상하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최근 입주한 아파트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시청료가 높은 것을 감안해 3년간 동결하기로 했다.
충남도당 예비후보 등록
지난 24일 충남도당 ‘2010지방선거 아카데미’ 강의에 참석한 황 당원은 ‘후보 이미지 메이킹’에 관한 강의에서 출마동기, 당선되면 꼭 하고 싶은 일, 홍보전략 등의 후보 체크리스트에 거침없이 답변했다. “가장 생동감 있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노동자 농민 서민”이라고 소신을 밝히는 그의 모습에선 자신감이 넘쳤다.
현재 그는 충남도당 예비후보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신현웅 서산시위원장과 함께 서산민생상담센터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그는 지난 2002년 인천 부평구지구당 부위원장으로 활동할 당시 지방선거에 기초의원으로 출마해 33.4%를 득표하기도 했다.
황 당원이 출마를 준비하는 서산시 인지면은 농촌지역이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단지가 많다. 그래서 그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아파트 주민들과 거래하는 직거래 장터를 만들고 싶어 했다.
또 그는 지방의원이 된다면 “지역주민들이 평생직장으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를 확대하는데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직장에 인접해 있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에 지난 1년간 연대하면서 비정규직의 고통을 절감했다. 또 최근 서산시에 기업이 늘어나 지역주민들을 우선 채용해도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사랑방 같은 도서관 만들고 싶어요”
대전시당 대덕구위원회 권의경 당원
권의경 당원은 동네에서 일어나는 웬만한 일은 꿰뚫고 있다.
“(대전 대덕구)법동에 오래 살았어도 출퇴근만 반복했지, 동네 문제는 전혀 몰랐다”던 그가 이처럼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매개체는 어린이도서관이었다.
주민이 만드는 어린이도서관
권 당원은 대전 대덕구 법동마루마을어린이도서관 운영을 책임진 관장직을 맡고 있다. 이 도서관은 지역주민들의 손으로 만든 민간도서관. 지난 2007년 8월 아이들 독서지도와 육아 정보를 나누던 젊은 엄마들이 모여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주민모임’을 시작해 이듬해 4월 도서관 문을 열었다. 이들은 어린이도서관 설립을 위한 주민서명운동을 벌였고 도서관 공간과 재정 마련을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다행히 하나은행 법동지점에서 도서관 공간을,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도서 구입비 등을 지원받아 개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여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권 당원은 이제 도서관이 책을 매개로 한 마을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예전엔 엄마들이 모이면 아침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이젠 아이들 교육,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이 자연스럽게 화제가 돼요.” 도서관이 이웃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권 당원은 지난 10월 첫주에 숲해설사와 함께 장동휴양림으로 숲체험을 다녀왔다. 숲체험은 소모임 엄마들에게 입소문이 나 접수를 받자마자 곧바로 50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숲체험을 떠나기 전 참가자들이 함께 책을 읽고 각자 임무를 맡아 준비하면서 친목을 다지는 등 숲체험 일정도 알찼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며 좋아하는 참가자들 모습을 보면서 권 당원은 ‘아, 이런 게 마을사업이구나. 입소문이 최고의 사업홍보이구나’ 하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도서관은 또 다른 공동체문화를 일구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과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엄마들이 지역화폐운동으로 활동영역을 넓힌 것이다. 우리농산물로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은 먹을거리를 만들어 나눠먹는 ‘반찬나눔’과 엄마들이 교사가 돼 방과후 아이들을 가르치는 ‘품앗이학교’를 지역화폐로 운영하고 있다. 현재 권 당원이 소유한 지역화폐는 1만복. ‘복’은 지역화폐 단위다. 그는 “품앗이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한 게 더해져 만복을 갖게 됐다. 아직 (지역화폐가)활성화되지 않아 대개 많이 갖고 있는 편”이라며 뿌듯해했다.
“분회사업은 너무 어려워”
이렇게 주민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삶이 익숙한 권 당원이지만 “분회모임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는 대덕구위원회 법동분회장을 맡고 있다. 사실 그는 집단탈당으로 지역위 사정이 어려워지기 전까지는 “민주노동당의 정책과 활동을 지지하고 당비 1만원을 내는 것으로 당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당원”이라고 할 정도로 당 활동보다 청년회 활동에 비중을 뒀다. 그러다가 올해 초 “이렇게 어려울 때 분회장을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홍춘기 대덕구위원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분회장을 맡게 됐다.
하지만 그는 분회모임만 하고 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분회에는 70대 할아버지부터 20대 아가씨까지 계층이 다양하니까, 당 일정을 보고하는 것 외에 함께 할 공통관심사를 찾기가 어려워요. 모임이 소통할 수 있으려면 쉽고 편해야 하는데 의무감으로 모이니까 너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계층이나 취미에 맞게 소모임을 진행하는 게 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당원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자주 만날 기회를 만들면 지역으로 한정된 분회보다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며 도서관 운영 경험을 살린 당원 소모임을 꾸려보고 싶다고 했다.
나눔 실천하는 ‘행복한 빚쟁이’
인천시당 부평구위원회 엄명호 당원
인천 부평구 산곡1동에서 행운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엄명호 당원. 정년 걱정이 없는 평생직장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어 만족하는 그는 늘 밝은 웃음으로 이웃을 맞는다. 또 살림이 넉넉하진 않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뇌종양 아들 잃고 기부천사로
알고 보니 그는 TV, 신문 등에 ‘기부천사’로 꽤 알려진 인물. 지난 19일 세탁소 일이 한가한 오전에 그를 찾아갔다.
세탁소의 한쪽 벽면에는 그가 기부한 단체에서 보내온 소식지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저소득층 어린이들의 방과후공부방인 ‘산곡어깨나무아동센터’, 독거노인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사랑의 도시락’, 소아암과 백혈병 어린이 치료를 도와주는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새생명지원센터’ 등 그가 후원하는 곳에서 보내온 소식지들이다.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그는 자신을 ‘행복한 빚쟁이’라고 했다. 왜 스스로를 ‘행복한 빚쟁이’라고 할까.
그는 6년전 사랑하는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다섯살 때 소아암에 걸린 아들 세준이는 항암치료를 받다가 뇌종양으로 전이돼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다. 엄 당원은 세준이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인천시 최초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특수반을 신설하는데 앞장섰다.
당시 산곡동에서 날마다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을 하던 청년을 눈여겨봤던 그는 아들 형편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병원에서 아들이 가망 없다고 했던 때여서 아들이 세상을 떠나면 일 좀 봐줄 수 있겠냐고. 청년은 보름 뒤 세상을 떠난 아들의 장례를 끝까지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 청년은 바로 김상용 부평구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가진 것을 다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았죠. 그래서 상용이가 운영하는 (어깨나무)공부방에서 나오는 세탁물은 모두 무료로 세탁해 주고 있어요. 또 조금씩 후원도 하고.”
또 아들 세준이가 입학만한 채 다니지도 못한 고등학교의 담임선생님은 큰 딸의 대학입학금을 선뜻 내주기도 했다. 엄 당원이 그 빚을 갚으려고 하자 선생님은 “다음에 형편이 되면 어려운 학생을 도와주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이처럼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받았던 엄 당원. 그 따뜻한 사랑의 빚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갚고 있다. 그의 통장에 소액기부 목록이 늘어난 만큼 행복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행복한 빚쟁이’다. “이제 딸애도 대학을 졸업했으니 나는 ‘해방된 민족’이죠. 후원금도 늘려야죠. 하하~”
인천시당 산악회 산행대장
믹음직한 청년과의 인연은 민주노동당으로 이어졌다. 그는 온종일 세탁소에 매여 있는 몸이어서 당활동을 많이 하진 못한다. 그러나 선거 때는 열정적으로 참여한다.
평소 세탁소를 운영하며 산곡동에서 신뢰를 쌓은 그는 주민들을 지지자로 만드는 데 일등공신. “부평구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민주노동당 김상용 후보에게 한표 부탁해요~.” 그의 장기는 주민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재밌는 입담. 민주노동당을 잘 알릴 수 있는 콩트를 짜 직접 유세차를 몰고 골목골목 누비며 유세를 벌인다.
이런 그는 유세방식에 고민이 많다. “노동자가 많은 동네에서 당선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럼 유세방식을 바꿔야하지 않나요? 대로변에서 유세하지 말고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 진정한 우리 표를 찾아야죠. 상황에 맞게 빨리빨리 변해야 진보정당답다고 할 수 있죠.” 한참이나 열변을 토하는 엄 당원. 선거 때마다 주장하지만 말을 듣지 않는 후배들이 야속해서 그런가 보다.
그는 이달부터 인천시당 산악회 산행대장을 맡았다. 지난 11일 강원도 홍천 팔봉산으로 첫 산행을 다녀왔다. 그는 사비를 털어 산악회 깃발과 명함을 만들기도 했다. “앞으로 당원들과 시민들이 함께 하는 산악회로 엄청나게 키워봐야죠.” 당찬 포부를 밝히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공처럼 둥글게 사람들을 만나죠”
전북도당 전주시위원회 송임석 당원
“(공을 차며)운동장을 뛰고 땀을 흘려야 한 주일이 가볍다”는 송임석 당원에게 축구는 생활의 한 부분이다. 그는 축구선수 출신은 아니지만 감독, 대표선수 등 축구 관련 직책을 꽤 맡고 있다. 현재 그는 직장인 KCC 사내 축구팀의 감독을 맡고 있으며, 전북 진안군 축구팀 대표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또 민주노동당 전주시위원회 축구소모임 ‘2012축구단’ 단장이기도 하다.
그의 축구인생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학창시절엔 과대표로 경기를 뛰었으며, 군대에 가선 대대 대표로 사단체육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가 축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고교시절 친구의 할아버지인 원로축구인 채금석 선생을 만나면서부터다. 채 선생은 매일 아침 학교 운동장에 나와 “공은 이렇게 차야 한다”며 직접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짧은 시간이지만 축구에 눈을 뜨게 해줬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2012축구단 ‘당 홍보대사’ 역할
2012축구단은 6년 전 ‘2012년 집권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이름에 담아 출발했다. 당시 송 당원은 “2012축구단에 축구 기술이나 전술을 가르쳐주면서 호흡을 맞춰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2축구단에 합류하게 됐다. “그 때는 당원이 아니었어요. 함께 공을 차면서 사람들이 좋아서 입당도 하게 됐죠.”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민주노동당과 인연도 맺게 한 것이다.
올해부터 단장을 맡고 있는 그는 2012축구단의 실력을 “동네축구에서 막 벗어난 단계”라고 냉정히 평가했다. “예전엔 초등학생처럼 공 하나만 보고 쫓아가듯 공을 찼지만 지금은 자기 포지션을 이해하고 자리를 지키며 공을 차죠.”
2012축구단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당원들이 축구를 통해 어울리고 있다. 2012축구단은 매주 일요일 오후 지역의 한 중학교 운동장을 빌려 공을 차고 있으며, 순대국밥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뒤풀이를 더 없이 소중히 여긴다. “당원들이 편하게 접근해 올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고 있지만 지갑은 많이 못 열어요. 하하~”
또 2012축구단은 지역의 조기축구회나 노조 등과 친선경기를 하며 민주노동당 홍보대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송 당원은 친선경기를 할 때마다 “민주노동당은 일반인들에게 강한 이미지가 있다. 우리가 먼저 넘어진 선수에게 손을 내밀고 매너를 지키자”고 선수들에게 당부를 한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보다 지역주민들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가 처음 와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참 따뜻하구나’ 느꼈듯, 다른 팀들도 두세번 만나 경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느낄 거에요.”
진주시위원회 ‘희망축구단’과 교류
2012축구단은 오는 15일 경남 진주로 경기를 하러 간다. 민주노동당 진주시위원회 ‘희망축구단’의 초청을 받았다. 두팀은 지난해 8월 첫 교류전을 가진 뒤로 전주와 진주를 오가며 교류전을 갖고 있다. 두팀의 경기는 승부를 떠나 만남 그 자체로 좋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금세 형님동생하며 친해져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면서 서로 뭉치는 계기가 됐죠. 진주시위원회와 교류도 하고 우리 내실도 다지고.”
그래서 송 당원은 다른 지역위의 축구소모임과 더 많은 교류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축구를 하면 서로 교류도 되고 당의 저변도 넓힐 수 있지 않겠어요?” 이미 그는 전주시축구심판진협회, 다른 축구팀 감독 등과 교류하면서 공 하나로 둥글게 사람들을 만나는 법을 알고 있는 터다.
끝으로 그는 “(다치지만 않는다면)축구 한번 하는 것이 보약 한재 먹는 것보다 낫다”며 사회운동에 열심인 당원들이 체력운동도 열심히 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진짜 경주사람’으로 할 일이 많죠”
경북도당 경주시위원회 신경진 당원
장애전담 어린이집 ‘아이꿈터.’ 경주역에서 출발해 대릉원, 첨성대, 안압지 등 역사의 숨결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길을 따라 이곳에 다다랐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의 주인공 선덕여왕과 진평왕이 잠들어 있는 왕릉도 가까이 있어 더욱 설레는 길이었다. “경주가 너무 아름다워 살러 왔다”는 신경진 당원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만큼 한적한 곳에 어린이집은 자리 잡고 있었다.
공동체 꿈 키우는 어린이집 ‘아이꿈터’
지역공동체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신 당원네 부부는 7년 전 대구에서 경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대구에서 저소득가정 장애아들을 위한 어린이집 특수교사로 일한 경험을 살려 이곳에서도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장애복지운동을 하고 있다. “대구에서 특수교사로 일할 때 가난한 장애가정의 모습을 많이 봐 머리에 박혀 있는데, 이 사람들의 아픔을 모른 척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처음부터 경주살이가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엔 장애복지 하는 사람들을 도둑놈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좀 힘들었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는 지난 일이 됐지만 처음엔 지역사회의 장벽이 높아 꽤 마음고생을 했다.
이제 아이꿈터는 경주지역에서 가장 모범적인 보육시설로 꼽힐 정도로 안정됐다. 지난 2002년 민간보육시설로 문을 연 아이꿈터는 2005년 법인으로 전환, 정부 지원을 받아 무상보육을 실시하고 있다. 경북에선 최초로 24시간 보육시스템을 도입한 아이꿈터에는 장애아 51명과 교사 30명, 지원인력 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월급쟁이 원장이라도 그 다음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신 당원은 아이꿈터 장애아들과 함께 거북이 마라톤대회, 사랑과 희망의 콘서트, 6.10기념행사 같은 지역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사회약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지역활동에 참여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학부모들도 그런 모습을 건강하게 봐주죠.”
공동체 울타리, 지역사회로 넓히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서로 기분 좋게 연대하는 끈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신 당원은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민주노동당 경주시위원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또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경주시의회의 장애인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을 모니터링하면서 이종표 경주시의원 의정활동을 돕고 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전문성과 실력을 쌓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당활동하며 많이 배웠죠. 학창시절 문예운동을 해 좀 더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을 뿐 운동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죠. 3~4년 당활동에 참여하며 지역운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이제 더 해묵어 살이 되는 관계가 돼야죠.”
신 당원은 아이꿈터에서 일궈가고 있는 공동체의 울타리를 점점 지역으로 넓히려고 애쓰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를 스펙트럼이 넓은 시민단체로 잘 만들고, 생협을 매개로 지역생활운동을 활성화하고 싶어요. 또 건강한 아저씨, 아줌마들의 노래패도 만들고 싶구요.”
그는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만들고픈 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박사논문이 끝나면 발품을 많이 팔려고 한다. “경주는 옛날 마을이 좀 더 확장된 모습 같다고 할까요. 심하게 개발되지도 않고 동네 어른들이 아이들의 잘못을 야단치기도 하고 서로 인간다운 관계가 살아있어요. 지역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장점이 많이 있죠.”
처음엔 경주의 아름다움만 보였던 신 당원은 이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까지 보는 ‘진짜 경주사람’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느낀다. 지역운동을 하기 위해 그에게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 ‘해묵은 관계’를 맺기 위해 말이다. “진짜 경주 사람이 돼 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최소한 정착과정은 지난 것 같아요. 이제 진짜 경주 사람으로 할 일이 많죠.(웃음)”
“도봉에 사는 동안 영화제 계속해야죠”
서울시당 도봉구위원회 박영호 당원
“11월28일 오후4시 덕성여대에 영화 보러 오지 않을래요?”
올해 마지막 영화 상영을 앞두고 있는 박영호 당원은 이처럼 영화제에 초대하기를 주저했다. “썩 재밌는 영화가 아니어서…. ‘교실에서 거리로’라는 멕시코 교원노조의 성공적인 투쟁을 그린 영화인데요. 이명박 정부가 일제고사로 아이들 줄세우기 하는 상황과 아주 잘 맞아떨어지는 영화이긴 해요.”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견줘 나름 의미 있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추천했다. 그러면서 지난 1년간 영화제를 준비하며 느낀 소회도 털어놨다. “영화제를 1년간 해보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알겠어요. 서울노동영화제 상영작을 사보기도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받는 영화는 따로 있더라구요. 처음엔 의욕이 앞섰죠.”
‘문제있는 영화제’ 1년간 꾸준히
박 당원은 ‘당=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문제있는 영화제’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도봉구위원회 송년회에서 당원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당원들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해보자”고 얘기를 나누다 고안한 게 영화제다. 지난해 초 의료민영화 문제를 다룬 영화 ‘식코’ 상영회에 참가했던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 직장분회 당원들이 “아내랑 10년만에 처음 영화봤다”는 얘기가 선뜻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그는 지난 2007년 2월 현대자동차서비스센터 노조원 30명을 입당시켜 직장분회를 만든 ‘조직가’이기도 하다.
박 당원은 올해 초부터 도봉구위원회 홍승희 부위원장, 이명승 사무국장과 함께 영화제를 준비했다. 영화제 상영 작품을 선정하고, 덕성여대 학생위원회에 부탁해 장소를 섭외하고, 동네마다 포스트를 붙이고….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한 것은 영화 보기다. 영화전문가들이 아니어서 좋은 영화를 선정하기 위해 주위에서 좋다는 영화는 다 봤다.
‘문제있는 영화제’라고 박은경 당원이 이름도 지어줬다. 그는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이색깃발로 눈길을 끌었던 ‘도봉구에 사는 걱정 많은 사람들’이란 촛불모임의 이름도 지은이다.
“영화제 마니아층이 생겼어요”
‘문제있는 영화제’는 지난 4월25일 첫 작품을 상영한 이후 매월 넷째주 토요일 오후 덕성여대 대강의실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솔직히 초반에는 재미가 없었어요. 영화제 참가자들을 조직하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가 어려웠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를 아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지난 6월 ‘도토리의 집’을 상영할 때는 전교조 선생님이 가정통지문을 보내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영화를 보러 오기도 했다.
또 9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와 10월 ‘타인의 삶’을 상영하면서 고정 관객이 생겼다. “영화제 벽보를 보고 처음 왔던 아주머니가 ‘타인의 삶’을 상영할 때는 지인들을 많이 데리고 왔어요. 이렇게 꾸준히 영화제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20여명 돼요. 마니아층이 생긴 거죠. 하하~”
그런데 박 당원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11월 영화 상영하면서 내년도 영화제 계획을 얘기해야 하는데 아직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정리하지 못했거든요.” 그는 내년에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하진 못했다.
일단 시작했으니 멈춤 없이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게 그의 기본 입장이다. “민주노동당은 여러 사업을 하는데 연속성이 없어요. 어떤 지역사업을 해도 민주노동당밖에 없다고 인정받는데 막상 사업이 끝나면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 연계가 잘 안돼요. 문제있는 영화제가 도봉구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아니어도 10년이든, 20년이든 도봉구에 사는 동안 계속 할 거예요. 지속성이 중요하거든요.”
처음 당원들과 소통하려고 시작한 영화제가 이제 주민들과 소통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성지윤 도봉구위원장은 “직장생활하다 보면 1년 동안 꾸준히 당사업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영화제를 열면서 당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며 “박영호 당원의 은근과 끈기가 있어 가능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희망의 홀씨 날리는 ‘민들레 가게’ 대표
경기도당 하남시위원회 오영숙 당원
오영숙 당원은 하남시 신장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에 자리 잡은 ‘민들레 가게’에서 희망의 홀씨를 퍼트리고 있다. 여섯 평 남짓한 공간에 옷, 신발 등을 가득 진열해 놓은 민들레 가게는 친환경 재사용 상점이다.
친환경 재사용운동 터전 ‘민들레 가게’
오 당원은 지난 2004년 10월 가게 문을 열 때부터 대표를 맡아 재사용운동을 벌이고 있다. 처음에는 재사용운동에 대한 주민들 이해가 낮아 매우 어려운 조건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다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듯 차츰 지역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민들레 가게에선 단순히 물건을 재사용하는 차원을 넘어 지역의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순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오 당원은 “재사용운동은 소박한 운동이지만 우리 삶의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과소비를 조장하는 물질문명 시대에 적게 소비하는 삶을 통해 나눔과 소통의 공동체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민들레 가게는 재정사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물건을 팔아 작은 수익을 남기고 있다. 이 수익금은 두 곳의 방과후 공부방을 후원하는데 쓰인다. 그 곳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민들레 배움터’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민들레 꽃피우기’다.
민들레 가게는 3월 가족 나무심기, 4월 정기 바자회, 5월 어린이날 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 5년간 가족 나무심기를 통해 산곡천변에 심은 왕벚꽃나무가 250여 그루다. 오 당원은 “이제 산곡천변에 빽빽이 나무가 들어서 내년엔 어디에 심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뿌듯해했다.
또 지난 7월 하남시청 미관광장에서 ‘하남나눔장터’를 열었다. 하남나눔장터는 어린이, 청소년, 주부 등 지역주민들이 쓰던 물건을 직접 내다 파는 벼룩시장. 첫 행사는 500여 주민들이 참가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오 당원은 “값싼 중국산 물품이 홍수처럼 쏟아져 재사용운동이 주춤했는데 벼룩시장이 돌파구를 열어준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또 참가자들이 수익금의 10%를 기부금으로 내 중학생 한명의 1년 급식비를 지원하는 작은 결실도 남겼다. 오 당원은 하남나눔장터를 봄, 가을로 열 계획이다.
‘수행’하는 자세로 지역활동에 나서다
오 당원이 민들레 가게와 함께 정성을 기울이는 사업은 ‘소비자지킴터’ 활동. 지난 2006년부터 봄, 가을에 1주일씩 가전제품 이동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남에는 가전제품 서비스센터가 없어 소비자들이 수리를 위해선 출장비, 수리비, 부품비 등을 부담해야 했다. 이에 소비자에게 서비스 받을 권리를 찾아주고, 기업에는 기업이미지를 홍보할 기회를 주는 사업으로 시작하게 됐다.
민들레 가게와 소비자지킴터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사는 얘기도 나누고 지역현안도 논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오 당원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은 종교생활이다. 30대 초반 건강을 잃어 법륜 스님 밑에서 1년 동안 수행했던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운동을 하는데도 수행의 자세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며 힘겨웠던 지난날을 떠올리듯 차분히 말했다. 그 뒤 그는 지난 12년 동안 꾸준히 노인복지센터를 방문해 노인들을 돌보며 생명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오 당원은 하남시위원회 교육위원장이기도 하다. 지난 11월19일 지역위의 1년 교육사업을 결산하는 정치학교를 마무리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를 잘 치르기 위한 당원들의 열의를 모아내는 자리였다”며 “이 열기로 내년 선거에서 지역집권을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젊은 당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현장에서 함께 뛰고 활동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는 오 당원. 젊은 시절의 역경을 딛고 수행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모습이 참 맑아 보였다.
“‘지속가능한’ 분회를 만들어야죠”
강원도당 강릉시위원회 홍양기 당원
‘1년 동안 신나게 놀아보자.’
홍양기 당원은 올해초 강릉시위원회 율곡분회장을 맡으면서 이렇게 결심했다. 나이도, 하는 일도 각양각색인 당원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할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서다. “처음에는 서로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 당원들끼리 친해지는 게 필요했죠. 지역은 한 다리만 걸쳐도 다 아는 사이인데 분회는 그렇지 않더라구요.”
‘오랍드리’ 산악회를 꾸리다
그래서 그는 우선 당원들끼리 친목을 다지는데 힘을 기울였다. 봄에는 나물을 뜯으러 가고, 여름에는 냇가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고, 가을에는 단풍 구경하러 산에 오르는 등 당원들과 함께 즐겼다. 분회 당원들은 차츰 가까워졌다. 이렇게 친해진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술의 힘’이 크다. “지난 1년간 신나게 놀다보니 속마음을 보이지 않던 당원들이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했어요. 직장 상사와 싸운 얘기, 자녀 진학문제, 주택문제 등 생활적인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결실이죠.”
분회는 한달에 한번 정기산행을 다니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통일등산로를 함께 올랐다. 또 분회가 중심이 돼 ‘오랍드리’ 산악회도 꾸렸다. 오랍드리는 ‘대문 곁에 있는 텃밭’이란 뜻을 지닌 강원도 사투리. “멀리 있는 산을 가는 게 아니라 동네에 있는 앞산, 뒷산을 즐겨 찾자는 의미에서 ‘오랍드리’라고 지었죠.”
산악회 총무이기도 한 홍 당원이 맡은 일은 산행 장소를 선정하는 것. “선자령, 제왕산, 칠성산, 석병산, 통일등산로…….” 그동안 산악회가 즐겨 찾았던 산을 손꼽아 보는데 웬만큼 높은 산은 모두 ‘오랍드리’의 앞‧뒷산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처음부터 산을 좋아했던 사람은 아니다. 당원들과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등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먹는 재미로 산에 간다”는 그는 하얀 눈꽃이 핀 선자령에서 따뜻한 라면을 먹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분회의 돈독한 정, 지역연대로
“너무 친해져 친목계가 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이제 분회 당원들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 그런데 분회장인 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친해지기는 했는데 지역에서 당활동을 하기엔 2%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거창하게 지역활동을 하기보다 당원들이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지역단체 회원들이나 노조원들과 교류다. “등산, 족구대회 등을 통해 진보적인 단체나 조직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고 싶어요. 그것이 지역연대를 위한 작은 디딤돌을 놓는 거라고 생각해요.” 분회는 이미 지난 여름 강릉청년회, 민주연합노조 강릉지부와 족구대회를 갖기도 했다. “지역에서 사안별로 연대를 하는데 상층연대라서 금방금방 흩어지거든요. 그래서 조직 구성원들끼리 교류하면서 얼굴도 익히고 친해지자는 거죠. 인간적인 정이 오가야 집회에서 만나면 반갑잖아요.” 그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적인 정이 씨실과 날실로 얽혀 쌓여야 지역연대가 굳건해질 거라 믿는다.
홍 당원은 끝으로 분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다. “요즘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분회도 한 가지 사업이라도 오랫동안 벌이는 게 중요해요.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사람들이 모이거든요.” 또 그는 분회를 챙기지 않는 당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언제부턴가 중앙과 지역위, 분회가 연결되던 끈이 뚝 떨어진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당에서 분회와 관련한 사업을 찾아볼 수 없어요. 분회가 그냥 자가발전하는 거예요. 만나서 열심히 술 먹고.” 그는 5년전 당활동을 시작할 때 중앙당 조직국장이 분회교육을 와서 분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일을 떠올리며 한참이나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당에 당부했다. “분회에 관심 좀 가져주세요.”
“주민생활 속 정당임을 보여주고 싶어요”
서울시당 서대문구위원회 서호성 당원
서호성 당원은 올해 초부터 서울시당 서대문구위원회 홍은분회장을 맡고 있다. 서 당원이 지난해 말 분회장 선거 당시 내걸었던 공약은 ‘분회모임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참여시키겠다’는 것. 지난 1년 동안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4명의 당원이 새로 입당했으며 평소 분회모임에 잘 나오지 않던 당원들의 참석율도 높아졌다.
이와 함께 서 당원은 중요한 목표를 하나 더 세웠다. 내년 지방선거에 구의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는 것. 이를 위해 서 당원은 서대문구위원회 예비후보모임에 참여하며, 지역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개발지역 주민 권리찾기에 집중
서 당원이 집중하는 문제는 재개발지역 주민들의 권리 찾기다. 그의 활동무대인 홍은동과 홍제동 또한 재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역이다. 그는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집집마다 재개발 관련 홍보물을 뿌리고 있다. “사업시행인가가 난다는 소문이 들리니까, 주민들이 한달 전에 뿌렸던 전단지를 보고 전화를 해요.”
지역위로 상담전화를 걸어온 주민들은 ‘세입자면 주거이전비 보상 대상이 되느냐’, ‘조합측에서 1개월이 모자라 주거이전비 보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데 억울하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 딱한 사정을 하소연한다. 이처럼 주민들이 재개발문제를 피부로 느끼게 되는 시점은 대개 주거이전비 보상을 논의하는 단계. 그는 “주민들이 생계에 쫓겨 (홍보물을 뿌리면)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필요한 시기가 되면 민주노동당을 찾는다”며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임을 절실히 느낀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재개발 자체를 막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인 것 같다”며 “원주민들이 덜 쫓겨나는 재개발, 세입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는 재개발이 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서 당원은 분회원들과 함께 토요청소산행을 하고, 적십자 은평·서대문봉사관의 밑반찬 만들기 자원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홍은분회는 동네 앞뒤산인 북한산, 인왕산, 백련산 등을 토요일마다 오르며 등산로 청소를 하고 있다. 서 당원은 “예전부터 계획했는데 시행한 지는 5주 정도 됐다”며 “민주노동당은 보수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과격한 정당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 속에 있는 정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바람을 말했다.
홍제동 토박이로 ‘착한 기자’ 호평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지역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또 누구보다 지역을 잘 안다. 그는 홍제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며, <서대문사람들>, <서부신문> 등 지역신문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기자였다. 지역신문 기자 시절, 그는 주민들 사이에 ‘착한 기자’로 통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린 사연, 다리 확장 공사로 인해 20년 이상 운영하던 구두 수선점을 잃게 된 노점상의 사연 등을 밀착 취재해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 출마도 이런 활동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한다. 서 당원은 “예전엔 기자 개인으로서 주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했다면, 이제는 민주노동당을 강화해 법과 제도를 바꿔 주민들의 생활을 나아지게 하고 싶다”고 출마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말 평창에서 열린 ‘2010지방선거 당원연수’를 다녀온 뒤로 고민이 깊어졌다. “처음으로 중앙당 행사에 참가했는데 기세가 느껴지지 않았어요. 솔직히 출마 결심을 한 뒤 내가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죠. 현실 감각을 찾은 것일 수도 있지만 당이 (예비후보들에게)기세 있게 힘을 실어주지 못한 거 아닐까요.”
그러면서 한참이나 안타까워하던 서 당원은 이내 자세를 고쳐 당차게 말했다. “지방행정 돌아가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이제 지역의 사람을 봐야 할 시점이에요. 이벤트성 행사보다 동네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주민들을 10명 이상씩 만들까 합니다.”
자매애와 동지애로 똘똘 뭉친 ‘세 자매’
전남도당 목포시위원회 박가영·나영·세영 당원
민주노동당 여수시위원회에는 ‘박자매’로 불리는 세 자매 당원이 있다. 첫째 박가영씨와 쌍둥이 동생 나영씨, 그리고 막내 세영씨가 그 주인공들. 자매애와 동지애로 똘똘 뭉친 이들은 지역위 당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세 자매의 남편들도 모두 당원이다.
이들 세 자매를 만난 지난 15일. 먼저 사진을 찍기로 했다. 세 자매에게 어깨동무를 하든지, 손을 잡든지 다정한 모습을 부탁하자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성격이 다정다감하지 않아서….” 가영씨가 말했다. 말은 이렇게 무뚝뚝하게 해도 자매들은 서로에게 무척 미더운 존재였다.
‘박자매’가 떴다!
세 자매는 여수사랑청년회에서부터 함께 활동했다. 지난 1998년 청년회 활동을 시작한 맏이 가영씨를 따라 청년회를 드나들던 동생들이 자연스럽게 회원으로 가입한 것. 지금은 막내 세영씨가 청년회 봉사동아리 ‘희망을 나누는 우리들’(희나리) 대표를 맡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세영씨는 요즘 퇴근한 뒤 ‘사랑의 몰래 산타’ 행사채비로 분주하다. 자매들은 25일 저소득층 아이들이 산타의 선물을 받고 기뻐할 모습을 생각하면 벌써 설렌다고 한다.
첫째 가영씨는 당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천 남동구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2월 고향인 여수로 돌아온 가영씨는 지역위 민생상담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민생상담소에는 파산회생 상담뿐 아니라 여수세계엑스포 유치를 위한 개발공사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의 민원이 늘고 있다. 최근 비산먼지, 소음 등 골프장 공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주민 2명이 평생당원으로 입당했다.
임신 7개월째인 나영씨는 “언니와 동생이 사업을 제안하면 뒷받침하는 게 내 몫”이라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영씨는 이런 언니들이 있어 든든하기만 하다. “반찬배달, ‘먹통’(먹는 것으로 통하는 사람들)모임을 하면 언니들은 당연히 온다고 믿죠. 사업을 벌일 때마다 언니들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 힘이 많이 돼요.”
“지금처럼 변함없이…”
특히 가영씨가 여수로 돌아온 뒤 자매들은 더 자주 만나고, 지역위와 청년회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함께 한다. “선배들이 ‘박자매가 당에 떴다 하면 힘이 된다’고들 하죠. 덩치도 있고 자리수도 채워주니까. 하하하~” 세영씨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세 자매는 친정에서 수육을 삶아 지역위 체육대회에 가져가기도 하고, 지역위의 궂은일을 도맡아 척척 해낸다.
이들에겐 함께 꾸는 꿈이 있다. 가영씨가 주축이 돼 여성회를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지역에 여성들의 취미모임은 많은데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여성운동 조직은 없어요.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여성회를 만들고 싶어요.”
또 세 자매는 공동체 삶을 희망한다. 결혼해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사는 자매들은 지금도 1주일에 3번 이상 모여 저녁식사를 하며 돈독한 자매애를 자랑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을 함께 키우고 있으니까 마음 같아선 큰 집을 지어 1, 2, 3층에서 함께 살고 싶죠. 자주 모여 이런 얘기를 하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겠죠.”
혹시 자매들이 평소 못다 한 말은 없을까. 가영씨는 “선배들이 박자매가 뜨면 힘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더 피부로 느낄 수 있게 열심히 하자”며 두 동생을 다독였다.
나영씨와 세영씨는 지금처럼 따뜻한 자매애를 나누고 살자고 했다. “셋이 모이면 자주 싸우기도 하지만 항상 옆에 있어줘 고맙죠. 지금처럼 변함없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애월읍에 민주노동당 깃발 꽂겠습니다”
제주도당 제주시위원회 고승완 당원
“내년 6월 애월에 민주노동당 깃발을 꼭 꽂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로 뭉쳐 민주노동당을 제주에서 우뚝 세웁시다.”
고승완 당원은 지난 20일 제주도당 당원한마당 행사무대에 올라 예비후보로서 힘차게 결의발언을 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도의원으로 출마를 결심한 예비후보다.
3년만에 세운 ‘애월읍농민회’
고 당원의 주요활동 무대는 제주시 애월읍. 제주도 27개 읍면 가운데 가장 늦게 농민회를 세운 곳이다. 애월읍농민회는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 8월30일 창립식을 가졌다. “농민회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터라 자연스레 농민회장이 됐다”는 고 당원은 “제주지역 읍면 농민회 가운데 막내이지만 강기갑 대표를 모시고 거창하게 창립식을 가졌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고 당원은 지난 98년 6년간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활동을 정리하고 고향인 애월읍에서 밀감농사를 시작했다. 시설재배를 하는 그는 추석을 앞둔 9월부터 감귤을 생산한다. 그는 “면세유 지급량은 줄어들고 가격은 올라 생산원가는 계속 오르는데 감귤 가격은 10년 전이나 변함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제주 서부지역에 속하는 애월읍은 감귤농사와 함께 양배추, 무, 브로콜리 등 월동채소 주산지다. 월동채소의 출하 시기는 12월부터 3월까지. 제주농민들에겐 겨울이 농번기인 셈이다. 고 당원은 이날 오전 강기갑 대표와 함께 애월읍농민회 총무인 강봉우씨네 농장에서 감귤 따기 체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강 대표와 월동채소 가격하락 문제를 얘기하던 그는 ‘매취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매취사업은 농협이 지역 농산물을 사들여 시장에서 요구하는 양만큼 공급해 가격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양배추 생산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애월·고산·하귀·한경·한림농협은 공동 매취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본래 애월읍이 맥주맥 주산지였는데 가격이 떨어지니까 대체작목으로 양배추를 심기 시작했죠. 그런데 양배추도 과잉생산돼 가격이 떨어졌지요. 그럼 제주도나 농협에서 다양한 대체작목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재배기술을 보급해야 하는데 오히려 농민들에게 어떻게 재배하냐고 물어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 아닙니까?” 허탈해하던 그는 “(도나 농협은)장기적인 안목의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도의원이 되면 도나 농협이 농가 재배품목을 조사해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는 조례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마을경제공동체 만들고 싶다”
또 그는 도농지역간 소득격차를 해소해 마을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애월읍은 지난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구조 개편에 따라 북제주군에서 제주시로 편입됐다. 그는 제주시 동지역과 읍면지역에 차별이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시로 편입돼 세금 부담은 늘었는데 그만큼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주민들 사이에는 그런 불만이 크게 형성돼 있어요. 도농지역간 소득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겠죠.”
애월읍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했던 고 당원은 지금은 귀일중학교 운영위원장, 애월읍학교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또 4.3항쟁을 주제로 단편소설을 몇 편 쓴 제주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제주도민들은 단독정부를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원했잖아요. 그 염원을 무너뜨린 게 미군정이고. 몇 십년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가슴으로 삭이기만 했던 4.3은 제주문학인에게 늘 뜨거운 주제죠. 이념적인 문제라서 통일이 되기 전에 완전히 풀리기 어려울 거예요.”
잠시 자세를 가다듬은 그는 끝으로 글을 쓰는 대신 정치를 택한 이유를 말했다. “옛날에는 한우물을 파라고 했지만 요즘은 정치인이 글을 쓰고, 농민이 정치를 하는 시대가 왔잖아요. 그래야 우리 사회가 더 부드러워지지 않겠어요?”
“노동자, 서민이 웃는 세상 만들어야죠”
김부한 대구시당 서구위원회 당원
김부한 당원은 겨울이 가장 싫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의 혹한기 야외취침보다 더 고통스런 야외취침이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화물차운수노동자인 그는 화물을 싣고 심야에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잠은 대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러 트럭 안에서 쪽잠을 잔다. 특히 겨울에 차에서 자고 일어나면 공기가 너무 차가워 뼛속까지 한기를 느낄 정도다.
“차가 집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길 위의 생활이 15년째다. 그가 처음 트럭 운전대를 잡았을 때 220원이던 경유값이 1400원까지 오르고 물가도 서너배가 뛰었지만 운송료는 제자리걸음이다. 그는 25톤 카고트럭에 철판, 코일 등의 철자재를 실어 포항에서 인천, 아산으로 운송하고 있다. 대개 포항에서 밤 10시에 출발해 이튿날 아침 인천에 도착해 짐을 풀고 다시 짐을 받아온다. “포항에서 인천 다녀오는데 기름값이 50만원 이상 드는데 운송료는 기껏해야 70만원입니다. 도로 통행료, 식비까지 떼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한바리’(한짐)라도 더 하려고 밤잠 안자고 일합니다.”
그러니 차에서 쪽잠을 잘 수밖에 없다. 그가 차에 있는 시간만 하루 18시간 이상이다. 집에는 이삼일에 한번 꼴로 들어간다. “차가 집 아니겠습니까?” 그는 이제 몸에 배여 괜찮다는 듯 사람 좋게 웃는다. 그의 얼굴 가득한 함박웃음이 정겹다.
그런 그의 얼굴을 그늘지게 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다. “이렇게 어려운데도 이명박 정부는 우리 화물노동자들을 탄압하니까….”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는 이내 자세를 가다듬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보다 나은 화물연대를 만들어야죠.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건 우리 자신들이니까요.” 그리고 “박종태 열사 투쟁 이후 탄압이 심해 노조가 침체돼 있는데 이명박 정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조직력을 키우는데 힘쓸 것”이라고 새해 다짐을 말하기도 했다. 그는 3년전 화물연대에 가입해 지금은 대구경북지부 서부지회 서구분회장을 맡고 있다.
노동자, 서민 위하는 당이 좋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서민을 먼저 생각하는 게 참 좋았다”는 그는 지난해 봄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대구시당의 학자금이자지원조례제정 주민발의 서명운동에 참여하면서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보냈다. “서명용지가 한장 한장 늘어날 때마다 뿌듯했다”는 그는 하루빨리 대구시의회가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여 조례를 제정하길 기원했다. 대구시당은 지난 11월 대구시에 2만6천여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주민발의 청구서를 제출해 놓은 상태다.
서구 비산동에서 30여년 살아 토박이나 다름없는 그는 어려운 지역주민들에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동네 형님들과 의기투합해 ‘날뫼봉사대’를 만든 그는 6년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을 지원하고 있다. 이전엔 쌀, 라면 등을 기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비산동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연탄은행’을 후원하고 있다. 또 비산2동 자율방범대원이기도 한 그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비산2‧3동 골목길을 순찰하며 여성,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고 있다.
이처럼 지역활동에 열심인 그가 가장 안타까운 건 대구 서구위원회가 집단탈당으로 침체돼 있는 것. 그래서 지역위가 활성화돼 당원들이 함께 할 지역활동을 만들고 싶은 게 새해를 맞은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또 그는 인터뷰를 마친 다음날 전화를 걸어와 더할 말이 있다고 했다. “화물연대 동지들, 아무리 탄압이 심해도 자신감 잃지 말고 하나로 단결합시다! 노동자, 서민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죠.”
“삼락둔치에서 계속 농사짓고 싶어요”
부산시당 사상구위원회 김상구 당원
부산시 사상구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 1월 중순 파종을 위해 논갈이를 해놓은 들판을 바라보는 김상구 당원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이 좋은 황금옥토를 4대강사업한다고 내놓으라고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곳에서 당근, 상추 등 채소농사를 짓고 있는 김 당원은 4대강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게 생겼다. 처음 4대강사업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는 그는 “요즘은 밤마다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고향인 청도를 떠나 지난 1985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 당원. 부산시가 지난 2002년부터 3년간 낙동강 하구 정비사업을 추진해 농지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때도 지금처럼 막막하진 않았다. 당시 부산시는 그나마 친환경농사를 짓는 조건으로 농민들에게 당대에 한해 영농권을 보장해 줬다. 부산시와 농민, 시민단체 등은 2005년 1월 ‘낙동강 삼락·염막지구를 정비할 경우 당대에 한해 영농권을 보장하고 모든 과정을 시와 단체들이 협의한다’는 내용의 협의서를 체결했다.
농민들 터전 빼앗는 4대강사업
그런데 정부의 4대강사업 추진으로 이 합의는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무조건 땅을 내놓으라는 거다. “4500평 농사지으면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는데…. 2년치 영농손실 보상비로 1평(3.3㎡)당 1만2700원을 줄 테니 땅을 비우라 합니다. 보상비 4600만원 받아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는 벌써 토지공사로부터 보상통지서를 받은 상태다. 삼락둔치에 농사짓는 농민 99명이 모두 그와 같은 처지다. 그래서 이들은 한마음으로 단결해 싸우고 있다. 이들은 부산시를 찾아가 “평생 죽을 때까지 농사지으라던 4년 전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지만 부산시는 “국책사업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발뺌만 하고 있다.
농민들의 요구는 특별한 게 아니다. 부산시가 약속한 대로 “이 땅에서 평생 농사짓게 해달라”는 것이다. 김 당원의 승합차를 타고 둘러본 삼락둔치 곳곳에는 이런 농민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과 간판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선 부산시민에게 공급되는 채소의 40%가 생산된다. 그는 “삼락둔치에서 채소농사를 지어야 시민들도 싱싱한 야채를 싼 값에 먹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채소 농사짓는데 이만한 땅이 없어요, 토질 좋고 판로 좋고 인부 구하기 쉽고. 채소 싣고 10분만에 엄궁농산물시장까지 가니까 얼마나 싱싱합니까.” 그는 안타까움에 겨워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채소농사에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춘 삼락둔치를 잃게 됐으니 이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또 있을까.
농민 입당사업 앞장선 열혈당원
그는 4대강사업 반대활동과 함께 농민들 입당사업에도 열심이다. 농사일이 없는 요즘에도 날마다 농막을 찾는다. 그는 농민들과 따뜻이 불을 피운 난로 곁에 둘러앉아 4대강사업 반대투쟁을 논의하면서 자연스레 민주노동당 입당도 권유한다. 그래서 그는 농막 탁자에 입당 원서를 갖다 놓았다.
부산농민회 활동을 함께 하면서도 민주노동당에 선입견이 있는 농민들이 더러 있다. “내가 왜 빨갱이당에 가입하냐”는 농민들에게 “그럼, 같이 빨갱이가 돼 세상을 바꾸자”고 능청을 떨면서도 끝내 입당시키는 그는 농민들 사이에서도 열혈당원으로 꼽힌다. “부산에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많아져야 이명박 정부를 심판할 수 있다”는 게 그가 입당에 힘쓰는 이유다. 4대강사업으로 수십년 농사짓던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농민들에게 가장 먼저 달려와 따뜻한 연대의 손길을 내민 부산시당 당원들이 고마워서이기도 하다.
이런 김 당원의 경인년 새해 바람은 무엇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말한다. “여기서 계속 농사짓는 거지요.”
“팔당유기농지 지키려 최선을 다할 겁니다”
경기도당 양평군위원회 최요왕 당원
최요왕 당원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만나는 ‘두물머리’로 잘 알려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4대강사업에 팔당 유기농지 사라질 위기
지난 12일 오후 그를 만난 건 남양주시 송촌지구에서 4대강사업 관련 측량을 둘러싸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다. 그는 남양주시 조안면 팔당생명살림 마당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에서 언 발을 녹이고 있었다. “유기농 인증 연장신청 때문에 토양시료 채취하러 가는 도중에 연락받고 얼른 현장으로 달려왔죠. 와 보니까 벌써 상황은 일단락돼 있었어요.”
이런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이날도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공동대책위원회’(팔당공대위)엔 아무런 연락도 없이 기습적으로 측량을 시도한 것. 이에 팔당공대위의 긴급호출을 받고 모인 젊은 회원들이 측량을 중단시켰다.
‘유기농 메카’로 잘 알려진 팔당호 주변이 4대강사업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팔당호 주변 유기농지 21만여평이 강제수용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팔당유기농가 100여 가구는 팔당공대위를 구성해 4대강사업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팔당공대위는 지난해 10월26‧28일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강제 토지측량에 격렬히 저항했으며, 12월에는 팔당유기농지 보전을 위한 단식농성, 생명살림순례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팔당공대위는 보상을 거부하고 농지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최 당원은 지난해 10월 강제 토지측량을 막다가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되기도 했다. 그가 연행될 당시 온몸으로 저항하던 모습은 팔당공대위 다음카페 동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대로 농사짓게 놔두라. 우리는 잘못한 게 없다.” 그는 억지로 연행하려는 경찰들에게 끝까지 저항하며 외쳤다. “풀려난 뒤에도 그날만 생각하면 머리털이 곤두서고 심장이 벌렁벌렁해요.” 그는 “아직도 억울해 죽겠다”며 그 때의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귀농 7년차 농사꾼 “이대로 농사짓고 싶다”
그는 귀농 7년차 농사꾼이다. “10년 전부터 농사를 짓고 싶었다”는 그는 지난 2004년 귀농해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팔당생명살림 영농조합 회원집에서 1년 반 동안 머슴살다가(농사배우다가) 농사지을 땅도 구하고 집도 구해 이제 농사만 지으면 될 줄 알았는데….”
농사짓는 재미에 빠진 그를 시샘한 것일까. 그동안 고생한 보람도 없이 4대강사업으로 삶의 터전을 잃을 처지가 됐다. “올해는 이렇게 하고 내년엔 저렇게 하고 나름 계획도 세웠는데…. 쫓겨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해요.”
짧은 겨울해가 지기 전 비닐하우스를 돌보러 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따라 양수리로 갔다. 그는 양상추를 수막재배하고 있었다. 수막재배는 비닐하우스를 이중으로 설치하고 밤에 지하수를 뿌려 온도를 유지하며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으로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다. 그가 양수펌프를 열자, 수막 사이로 지하수가 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 농사를 잘 짓는 농부는 아니라고 했지만 비닐하우스에선 양상추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긴 10m만 파도 지하수가 나와요. 강유역이라 지하수가 풍부해 농사짓기에 안성맞춤이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강변에서 농사지으면 안 된다고 하네요.” 양상추를 돌보던 그가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아들인다. “4대강사업을 통해 이명박 정부가 농업을 얼마나 (장기판)졸로 보는지 극명히 드러났다”고 울분을 토한 그는 “이명박 정부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얼마나 약발이 먹힐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팔당유기농지 보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그는 “4대강사업은 자연환경 파괴만이 아니라 농업까지 망가뜨리고 있다. 이 땅의 농업을 지키는 차원에서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고 민주노동당 당원들에게 관심과 연대를 당부했다.
“상자텃밭 나눠주며 지역주민들 만나세요”
인천시당 계양구위원회 방제식 당원
“시금치, 토마토, 가지, 고추, 감자, 아욱, 쑥갓, 오이, 근대, 적환무, 청경채, 상추, 배추, 무, 쪽파….” 지난해 텃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들을 손꼽아보며 뿌듯해 하는 방제식 당원. 그 종류가 무려 20개가 넘는다. 그는 이웃과 나눠먹고 남을 정도로 채소농사를 풍성하게 잘 지었다. 채소밭에서 일을 하면서 생명을 키우는 보람을 느낀 그는 인천 계양지역에서 ‘도시농부’, ‘지렁이아빠’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도시농부’… 모든 국민이 농사짓는 세상을 꿈꾸다
그가 도시농부가 된 것은 지난 2007년 발족한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농업을 위한 대안으로 도시농업운동을 벌이고 있다. 도시농업은 상자텃밭, 옥상텃밭 등을 이용해 채소, 야채 등을 생태농법으로 기르는 것이다.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는 지난해부터 도시농업을 널리 알리고 도시농업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도시농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1기 도시농부학교를 수료한 그는 경인외곽순환도로 경인나들목 아래 텃밭 30평을 임대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또 집에선 상자텃밭을 가꾸고 있으며, 지렁이 상자를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분변토로 만들고 있다. 방 당원은 지렁이를 이웃에 분양하기도 했으며, 초등학교에서 지렁이생태교육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지렁이아빠’다. “처음에는 징그러워 못 만지던 아이들이 1시간 교육받고 나면 서로 만지고 싶어 안달이 나요.”
그는 집과 건물 옥상이 도시농업의 최적지란다. “옥상텃밭은 토심이 10~20㎝만 돼도 야채를 기를 수 있어요. 그러면 건물 내부 온도를 낮출 수 있고 사람들은 노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죠.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꿈꾸는 건강한 세상은 모든 건물에 텃밭을 가꾸고, 모든 국민이 호미 하나 갖고 농사짓는 겁니다.” 그러면서 방 당원은 대기순환, 토양보전, 정서함양, 교육 등 도시농업의 다양한 가치를 설명했다.
그는 “도시농업은 지역사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매개체”라며 “지역사업으로 이만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노인정에 상자텃밭을 분양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소일거리를 마련해 줄 수 있죠. 어린이집, 초등학교에 생태텃밭 교육을 할 수도 있죠. 안전한 먹을거리에 관심이 높은 주부들도 도시농업을 좋아합니다.”
구의원 출마예정자… 지속가능한 계양을 꿈꾸다
6.2지방선거 구의원 출마예정자인 그는 지속가능한 계양구를 만드는데 관심이 많다. 그래서 그는 ‘계양의제21’의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계양의제21’는 지역에서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주자는 취지로 민·관·기업이 힘을 합쳐 만든 기구. 지난 1992년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개발을 제시한 ‘리우선언’을 실천하는 ‘지방의제21’의 산하기구다. 계양의제21은 계양산 음악회, 계양산 역사생태학교 등의 공통사업과 마을분과, 교육문화분과 등 다양한 분과사업을 벌이고 있다. 방 당원은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를 이루는데 한참 걸려 일의 추진속도로 보면 속 터지는 곳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데 도움이 됐다”고 계양의제21의 지난 활동을 평가했다.
그는 ‘서부간선수로 생태하천만들기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생태하천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농수로인 서부간선수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시기는 건천으로 변해 악취가 심하다. 하지만 서부간선수로 소유주인 농어촌공사와 지자체가 서로 관리를 미루고 있는 상태다. 이에 지역주민, 상가, 시민단체들이 계양구청에 토지매입이나 무상임대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토지매입비 175억원의 1% 기금 모으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달말 서부간선수로 생태하천 만들기 토론회와 다음달 대보름맞이 연날리기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도시농업에 애착이 강한 그는 끝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지역사업하는데 도시농업만한 게 없습니다. 지역위 활동가들이 상자텃밭을 나눠주며 주민들을 만나세요.” 이어 중앙당에도 “당사 옥상에 텃밭을 가꾸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집권당 되려면 당원확대 힘써야죠”
울산시당 남구위원회 정인하 당원
“한 것도 없는데 당에서 이렇게 알아주니 미안하고 감사해요.”
지난달 30일 민주노동당 창당 10주년 기념대회에서 모범당원상을 받은 정인하 당원이 <진보정치>를 통해 울산시당 당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모범당원상을 받은 48명 가운데 울산시당이 유일하게 추천한 당원이다.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58년만의 귀향
그는 민주노동당과 인연을 귀하게 생각했다. 민주노동당은 그가 입당한 두 번째 진보정당이다. 그가 처음 선택한 곳은 중국공산당. 요녕성에서 살던 지난 196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정 당원은 재중동포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42년 부모님을 따라 만주로 이주했던 그는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중국에서 살았다. “울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떠났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는 여덟살 소년은 58년 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돼서야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울산 상북면이 그의 고향이다.
정 당원은 1958년 요녕성 심양농업전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농업기술원에서 일했다. 기술지도 공무원으로 10년 생활하다 소장이 된 그는 다시 10년 뒤 국영농장 부창장(부사장)을 맡아 또 10년을 일했다. 그는 “생산, 기술 지도를 잘 하는 게 공산당원의 역할이라 여기고 30년 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정 당원이 관리하던 국영농장은 벼 생산량이 많았다. 당시 중국 요녕성 농민들은 수수, 옥수수 등 밭농사를 주로 지었다. 그들에게 벼농사 기술을 전수하는데 재중동포들이 큰 역할을 했다. “벼농사는 우리 민족이 잘 짓죠. 그래서 중국 사람들에게 벼농사 기술을 가르쳤죠. 수수, 옥수수 같은 밭농사만 짓던 중국 사람들이 벼농사를 짓게 되면서 소득이 많이 높아졌죠. 그게 농장에서 가장 잘한 일입니다.”
그가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건 1989년 숙부의 공식 초청이 있어서다. 그 뒤 2000년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정 당원은 아직 한국 호적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법무부에 문의한 결과, 호적이 있으면 국적 회복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함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룬 것이다.
중국공산당원에서 민주노동당원으로
정 당원은 한국 생활에 적응하던 2002년 5월 울산 시내를 구경하다가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간판을 보게 됐다. 대번에 진보정당임을 눈치 챈 그는 사무실을 찾아가 “민주노동당이 어떤 정당이냐, 강령은 어떻게 되냐”며 꼼꼼히 따져 물었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란 얘기를 듣고 선뜻 입당을 결정했다. “한국에서 조직생활을 하고 정치생명을 얻기 위해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는 그는 8년 동안 민주노동당에 한결 같이 따뜻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정 당원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힘쓰고 비싼 교육비, 의료비 등으로 고통 받는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민주노동당이 참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그는 “남북통일에 힘쓰는 당이라서 더 좋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나무의 뿌리가 깊어야 잎이 무성하다. 당원은 나무의 뿌리고 잎은 지지자다. 당원을 확대해야 민주노동당 지지층도 두터워진다”며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 당원이 30만은 돼야 10년 이내에 집권당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 당원과 함께 창당 10주년 기념대회에 참석한 강호석 전 울산시당 사무처장은 “정인하 선생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고 시당 노인위원회를 만들고 난 뒤부터 꾸준히 경로당에 다니며 민주노동당 지지자를 만드는 데 열정을 다하신다”며 평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