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역 여성 교육의 초석(礎石)을 놓은 "메리 리 로간"(Mary Lee Logan)선교사.
"로간" 선교사는 1856년 9.17일 미국 켄터키州 " 데이톤"(Dayton) 출생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18세에 약제사이자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헌돈"(J. S. Herndon)과 결혼했으나 곧 사별했다.
이후 메리는 자신의 삶을 젊은이들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리치몬드의
센트럴대학(Central University)의 YMCA와 YWCA에서 학생들을 위해 활동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리치몬드 센트럴대학 예술대학장 "로간"(J. V. Logan)과 재혼했다.
로간은 남편과 같은 대학에서 기독 청년회(YMCA)와 여자 기독 청년회(YWCA)를 육성하였고
사회봉사 활동에도 힘을 썼으며 특히 리치몬드의 센트럴 대학의 학생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나 1908년 남편 로간 박사가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한 후
평소 소망했던 해외 선교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로간" 선교사는 조선에 선교사로 헌신 중이던 "포사이드"(Forsythe. Wiley H) 박사의 열정에 감동을 받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 조선에 선교사로 파송해 줄 것을 요청하고,
회신이 오기 전인 1909년 봄, 그녀 나이 53세때에 조선에 "자비량"(自備糧)선교사로 먼저 들어왔다.
이 무렵 선교사들은 대부분 "정규 선교사"(Regular Members)로 임명되어
보수(報酬)와 재정 지원을 받고 활동했으나 "로간 선교사"는 임명 받기전에 들어왔으므로
당분간은 해외 선교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모든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활동한 조선 최초의 "자비량"(Affiliated Members) 선교사였다.
"로간" 선교사는 목포에서 옛날 자신의 가르침을 받은 "유진벨"(Eugene Bell)선교사와
의사 "오긍선"(吳兢善)을 만나 수개월 동안 그들과 함께 선교사역에 헌신했다.
이후 "로간" 선교사는 미 북장로교 선교부의 요청으로 청주에서 10년 동안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조선에서 별세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주일학교, 성경학교, 주일학교 교사반, 여성 전도반,
여성 지도자반 등을 육성하면서 충북 지역의 선교와 여성 교육에 커다란 공을 세운 여성 선교사였다.
자기 집에서도 매주 15시간 씩 여러 성경 공부 반을 인도했으며, 여기에 참여한 여성들은 5~60여명에 이른다.
당시 청주 여성들에게 "로간" 선교사는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는 "자애로운 어머니"였으며,
"밀러" 선교사의 부인 "도티" 선교사와 함께 청주지역 여성 교육의 초석을 놓은 개척자였다.
"로간" 선교사는 1919년 12월 7일 소천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그녀가 살던 청주시 상당구 탑동 185-1번지에 있는 집(1911년 건립)은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3-5호로 지정되어 “로위(Lowe)기념관”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한편 1921년 6월 청주에서는 그를 추모하여 청주시 남문로 1가 154번지(청주제일교회)에
화강석으로 가로 0.4m, 세로 0.4m, 높이 1m의 "로간 부인 긔렴비" 를 건립하였다.
이 비석은 청주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 된 한글 비석으로 알려져 있다.
비석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 나신 부인 조선에 건너 오셔
하나님의 명령을 이어받아 힘을 다해 충성했네
우리 민족 구원하려 교육 구제 힘 다하고
12년을 하루같이 헌신하고 조선에서 별세하여 천당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