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문학기행 답사기.
가을 문학기행 답사를 위해 마님을 따라 머슴이 길을 나섰다.
길가의 코스모스가 넘쳐나는 행락객에 고개를 살래살래 흔드는 가운데 성주 요금소를 통과했다.
눈앞에 나타난 노인정(성밖숲), 그렇지 노인정이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지, 평생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아낌없이 후손들에게 내놓는 저 정신, 선조의 정신을 받들어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름다운 후손, 이들에게 세대갈등은 없었다. 온고지신의 실천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성밖숲’은 위대한 노인정임이 분명했다. 거칠게 알이 밴 다리, 세월에 칭칭 휘어진 허리,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디어 온 그들은 오직 후손들에게 ‘쉼’을 주기 위해 끊어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넓게 팔을 벌린 채 마님을 따르는 머슴을 반겨주었다.
‘성밖숲’은 성주읍 서쪽 하천인 이천변에 조성된 마을 숲이다. 숲에는 나이가 약 300-50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57그루가 후손들에게 쉼의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 ‘성밖숲’에 대한 기록은 성주의 옛 읍성지 『京山志』 및 『星山誌』등에 수록되어있다. ‘성밖숲’에 대한 아주 재미나는 구전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는 직접 ‘성밖숲’을 찾아 해설사의 입을 통해 들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가 있다며 ‘성밖숲’이 나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머슴은 여기서 입을 다문다. ‘성밖숲’이라는 거대한 노인정이 겪어온 역사를 가슴에 품고 머슴은 ‘한개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개마을’은 최근 모 방송 예능프로에 소개된 관계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찾고 있었다. 주차장은 좁아 이중으로 주차해야 할 정도로 아직은 많은 방문객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어느 지자체에도 한옥마을 한두 곳은 있다. 특히 머슴이 살았던 고장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라 머슴에게는 별 감응이 없었다. 그러나 ‘한개마을’ 뒷산 팔부능선에 자리한 ‘감응사’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에 마님의 볼에서 홍시가 터지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갖고 해설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600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한개마을’은 우리나라 전형적인 전통 민속 마을이다. 마을의 지형은 주산인 영취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천룡등과 백호등이 마을을 감싸주며, 마을 앞으로 이천과 백천이 서쪽에서 합류하여 동남으로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전국 최고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마을 이름인 한개는 순수 우리말로써 ‘한’ 은 크고 넓다〔大〕는 뜻이고 ‘개’는 큰물이 드나드는 곳〔浦〕을 나타내는 방언으로, 백천에 제방을 쌓기 이전에 큰물이 졌다가 빠져나가면서 생겨난 큰 개울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최고의 길지답게 17세기 이후 과거합격자가 많이 나왔으며, 충절과 지조, 높은 학문, 독립운동 등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조선 세종 때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처음 입향하여 개척했으며 지금은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고향 같은 ‘한개마을’을 벗어난 머슴은 배꼽시계의 성화에 지역의 맛집으로 향했다.
고픈 배를 채운 머슴의 발걸음이 양반의 흉내를 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답사라는 명분 때문에 가야만 하는 '세종대왕자 태실', 머슴의 발걸음이 철근을 매단 걸음이다. 태실 입구 주차장에 주차하고 돌아서자 마을 입구의 감나무가 숫처녀의 모습으로 가랑이를 쩍 벌리며 머슴을 안았다. 잉태한 감나무가 가을을 맞아 낳은 새끼들, 참 많이도 열렸다. 얼마나 많은 씨를 뿌렸는지 가지마다 축축 늘어졌다. 태실 앞의 감나무는 매년 많은 열매가 열릴 것이라 확신하며 씨의 연결고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월향면 인초리 선석산 아래의 태봉 정상에 소재하는 세종대왕자 태실에는 세종대왕의 적서 18왕자 중 큰아들인 문종을 제외한 17왕자의 태실과 원손인 단종의 태실 등 모두 19기가 있으며, 이곳은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되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형태일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연구에 중요한 자료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의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세종대왕을 부러워하며 머슴은 서당 개를 떠올리며 '회연서원'으로 달려갔다. 머슴이 지리산 자락에 고향을 둔 관계로 남명 조식 선생의 서원을 자주 접하다 보니 '회연서원' 역시 머슴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건물의 연도뿐이었다. 그러나 마님의 답사 의지에 짓눌러 해설사의 뒤를 졸졸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해설사의 이야기 너머로 귀에 익은 목소리, 코미디언 이용식 씨의 감칠맛 나는 목소리와 금잔디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부터 전국에서 벌어지는 별의별 예술제를 다 논할까마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오늘이 성주군에서 주관하는 ‘성주 메뚜기잡이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독서의 계절에 메뚜기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누른 황금 들판을 누비는 참여자를 바라보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의 표정이 어떠할지 참으로 궁금했다.
'회연서원'은 조선 선조 때의 대유학자이며 문신인 한강 정구(1543-1620)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그의 사후인 인조 5년(1627) 제자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서원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구(舊)사당, 강당, 동·서재, 신(新)사당, 전사청(典祀廳), 견도루(見道樓),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한강 정구와 관련된 유물·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관과 향현사(鄕賢祠), 관리사가 있다.
문학기행 당시 붉은 물로 물들어 있을 ‘봉비암’은 보너스로 남겨둔다.
메뚜기 축제에 메뚜기는 보이지 않고 술과 음식만 넘쳐났다.
문학기행이 시작되는 시월 말이면 이곳에도 단풍이 다대포의 노을처럼 붉게 물들 것이다.
‘성밖숲’에서 ‘한개마을’에서 ‘세종대왕자 태실’에서 ‘회연서원과 봉비암’에서 문인들의 발길이 닿은 곳마다 시가 해설이 될 것이라 확신하며 머슴의 가벼운 발걸음은 여기서 멈춘다.
답사의 글을 마무리하며
감기몸살의 아픈 몸인데도 불구하고 기꺼이 답사에 참여한 노옥분 편집장의 ‘사하문협'에 대한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건강 빨리 회복하세요.
사하예술제로 쉬는 날 없이 동분서주하고 예술제가 끝나자마자 문학기행 답사에 나선 ‘사하문협’의 정미선 사무국장의 ‘사하문협’에 대한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첫댓글 참 멋진 사하문협의 머슴, 김재학 샘^^
분주함 중에도 청하면 무조건~ 무조건~ 달려와주는 정.
참 고맙고 든든합니다. 글 또한 '감응'이 훅~~^^
잼난 글에 답사의 기쁨 다시 누리네요. 수고했어요~!!
사하문협 최고의 머슴 최고의 답사 글과 마님들 모시는 정성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짝~짝~짝~
편집장님 사무국장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13 19:13
머슴을 대동하고...ㅎㅎ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
성주, 참 멋진고장입니다.
이번 가을문학기행은 후회 안할실거예요..함께 가요~~!!!!
참 맛있습니다.
'글'이요.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쓰셨는지,
입맛을 돌게하는
짭쪼름한 젓갈 맛 같은 답사기
잘 읽었습니다.
노옥분,정미선,김재학 세 분 샘~
고생하셨습니다.^^
(흑흑...)
샘...글 참 맛있게 썼지요?
성주라는 고장이 은근한 미를 뿜어 내는 통에 그 아름다움이 맛으로 통하더군요~~ㅎㅎ
@정미선 네..
읽는동안 입 안의 침샘이
혼동할 정도로 맛깔스러웠습니다.
답사기가 이 정도인데
후기는 얼마나 제 입가에
침을 맺히게 할지...^^
여행글방에 성주 탑사글이 있다기에 와 보니 달고 오묘한 기록과 머슴놀이 하시느라 수고 많았어요
성주는 저의 선친의 고향이신데 여기까지 연구도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금 고향이란 진미를 느끼게 되었네요 수고하였어요. 감사함니다.
같은 방향을 보며 걷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멀리 있어도 가까이 있는 듯 합니다. 고생스러운 일 마다않고 함께 하는 정미선국장, 노옥분국장, 김재학 보디가드 덕에 순조롭습니다. 회원님들의 안녕을 위해 준비팀 감사감사^^ 해요. 맛난식사로 피로풀어 줄게요...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