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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미 리프킨
제러미 리프킨은 사회 비평가이자 『노동의 종말』,『바이오테크 시대』 같은 베스트셀러의 저자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여 년 동안 15권의 저서를 통해 경제, 노동,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특히 1995년에 발표한 『노동의 종말』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1998)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1994년부터는 와튼 경영 대학원(Wharton School) 최고 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전 세계의 최고 경영자와 고위 간부들에게 과학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이것이 글로벌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 조류 재단〉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의 공공 영역을 수호하기 위한 활발한 계몽운동과 감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는 안목과 복잡한 현실을 명쾌한 개념으로 요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 『소유의 종말』에서도 그는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과학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높은 조망대 위에서 인간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소유의 종말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접속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다. 접속의 반대는 소유다. 쉽게 말해서 사람들은 항구적으로 소유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접속하려고 한다. 소유를 부담스러워한다. 산업시대는 소유의 시대였다. 그러나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이루어지는 시대에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불리하다. 사람들은 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임시적으로 접속하려고 한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전이되면서 지리적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고, 무게 없는 경제, 지적 재산의 독점, 서비스 세상, 인간관계의 상품화가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 접속이 오늘의 프론티어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접속에 의해 인간 경험을 상품화하려는 문화 자본주의는 실은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물고 있다. 역사적으로 문화는 늘 상업에 선행했고 상업은 문화의 파생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바뀌어 문화는 어디까지나 상업화를 위한 재료 공급원으로 전락했다. 문화 자본주의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발전시켜 온 문화적 다양성을 샅샅이 발굴하여 상품화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문화적 다양성은 소멸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간 가치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문화 영역마저 상업 영역에 완전히 흡수당하게 되면 사회적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건강한 시민 사회의 기반은 완전히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의 문명은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 생활의 기초인 시장이 허물어지는 조짐이 보인다. 한때 인간을 이념 투쟁과 혁명, 전쟁으로 몰고 갔던 체제가 서서히 막을 내리면서 경제 현실도 새롭게 바뀌고 있다. 달라지는 경제 현실 앞에서 사회는 새로운 시대의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결속과 경계선의 유형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 경제의 기본 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자본이 물적 자본에서 지적 자본으로 이동하면서 이미 기업은 소유보다는 접속으로 궤도를 수정하고 저만큼 나가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또한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이에 소유자의 의식도 소유에서 접속으로 서서히 기울 것이다. 앞으로 25년 정도 지나면 소유에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고 구태의연하다는 인식이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서 일반화될 것이다.
접속의 시대를 지배하는 경영학적 전제는 시장의 시대를 지배하던 전제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새로운 세계에서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고 판매자와 구매자는 공급자와 사용자로 바뀐다.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된다. 현행 정치제도와 법은 시장에 기초한 재산 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소유가 접속으로 바뀐다면 앞으로 우리가 스스로를 다스리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인간을 재는 잣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구 전역으로 뻗어 있는 통신망을 거느린 다국적 미디어 기업은 세계 곳곳에서 지역 고유의 문화 자원을 캐내어 문화 상품과 오락으로 재포장한다. 우리는 지금 경제학자들이 ‘체험’ 경제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 두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제품 생산이 경제 활동의 가장 중요한 형태였던 산업 시대에는 재산을 소유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중요했다. 그러나 문화 생산이 경제 활동의 지배적 형태로 뿌리내리는 새로운 시대에는 사람의 정신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문화적 자원과 체험에 가급적 많이 접속하는 것이 재산을 소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같은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는 우리의 일상적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이미 순전한 상업적 관계로 얽혀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라. 타인의 시간, 타인의 배려와 애정, 타인의 공감과 관심을 돈으로 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오락과 놀이를 사들이고, 예의범절과 호의를 사들이고, 이 둘 사이의 모든 것들을 사들인다. 우리가 누리는 시간은 정확히 측정된다. 우리의 삶은 점점 상품화되고 공리와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이 책에서 우리는 접속의 시대를 위한 조직적 토대와 개념적 바탕을 제공하는 수많은 구조적 변화를 짚고 넘어갈 것이다.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물적 재산이 대우 받지 못하고 지적 재산이 부상하며 인간관계가 점점 상품화되면서, 재산의 교환이 경제의 일차 기능이었던 시대로부터 경험 자체가 완전한 상품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 자본주의를 딛고 올라선 문화 자본주의는 이미 인간 사회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통념을 수없이 뒤흔들어 놓고 있다. 재산관계, 시장 교환, 물질 축적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제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문화가 가장 중요한 상품 자원이 되고 시간과 관심이 가장 귀중한 소유물이 되고 개개인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 문화와 상품의 충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인간 경험이 사이버스페이스 안의 다각화된 네트워크들에 대한 접속의 형태로 구매되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는 문화에 대한 접속이 점점 상품화되고, 문화 영역이 상업 영역으로 흡수되면 인간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것은 사회의 앞날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일지 모른다. 산업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현대 과학 기술은 상거래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바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네트워크 방식’의 경제 활동이다. 새로운 교역은 시장처럼 지리적 제약을 받지 않는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전자 매체 안에서 일어난다. 지리적 공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상업의 중심 무대가 이동하는 것은 인간 조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변화의 하나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상업의 구조가 재편되고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글로벌 경제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은 전자 네트워크가 전 세계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이다. 인터넷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인터넷을 운영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만인의 컴퓨터를 연결한 것, 그것이 인터넷이다. 이에 기업 네트워크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이루어지는 상거래의 핵심은 연결성이다. 전자 네트워크로 연결되면 국경선과 장벽은 허물어지게 마련이다. 산업 시대의 지리적 시장에서는 주체성과 자율성을 가진 판매자와 구매자가 독립된 상태에서 따로따로 거래를 했지만, 사이버스페이스 경제는 기업인들을 거미줄 같은 상호 의존성의 관계망으로 모아들인다.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이어지는 시대에는 생산 과정, 장비, 상품과 서비스가 빠른 속도로 용도 폐기되므로 장기적으로 소유한다는 것은 불리하고 단기적으로 접속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갈수록 짧아지는 혁신과 신제품의 등장 주기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의 기본 출발점이다. 제품 주기가 짧아지는 것은 소비자의 주의 집중 기간이 그만큼 짧아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눈 깜빡할 사이에 수천 가지의 신제품이 시장에 나왔다 사라지는 현실에서 소비자의 인내심이 그만큼 약해지고 주의 집중 기간이 짧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네트워크는 복잡한 의사소통 통로, 다각화된 관점, 정보의 병렬 처리, 지속적 피드백, 우물 안 개구리에서 탈피한 사고를 요구하므로, 여기에 참여한 주체들은 새로운 유대를 쌓고 새로운 발상을 흡수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고 초경쟁환경에 걸맞은 새로운 행동 전략을 짤 수 있는 기회를 그만큼 많이 얻게 된다.
무게 없는 경제
물리적 경제는 움츠러들고 있다. 물리적 자본과 재산의 축적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새로운 시대는 정보와 지적 자산의 뭉치에 얹혀 있는, 눈에 안 보이는 힘을 중시한다. 산업 세계에서 오랫동안 부를 재는 잣대로 군림해 왔던 물질 제품은 탈물질화되고 있다. 전자 상거래가 성행하는 무게 없는 세계에서 탈물질화되는 것은 제품만이 아니다. 부동산도 줄어들고 있다. 기업은 좀더 개방된 네트워크 형태의 조직 구조를 도입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안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사무실에서 개인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서와 부서 사이에 칸막이를 세워두었던 산업 시대의 업무공간은 회사 조직의 위계적 형태처럼 설 자리를 잃었다.
종이로 된 서류가 전자 서류로 바뀌면서 사무 공간의 탈물질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종이 없는 사무실이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2005년까지는 모든 데이터의 50퍼센트 이상이 컴퓨터로 저장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아울러 기업은 조직 구조를 수평화하고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를 지능 로봇으로 대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영국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조직 활동을 네트워크화하고 전자 상거래에 치중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머지않아 물리적 생산 시설은 최소한 25퍼센트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돈도 물질성을 잃어버린다. 새로운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돈의 탈물질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돈의 탈물질화 추세에 마지막으로 결정적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사건은 정치적 사건으로의 금본위제 폐지와 현금 없는 사회를 위한 기술개발이다.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장 거래와 금융 계약을 성사시키는 데 쓰였던 돈은, 순수한 정보의 형태로 광속으로 전달될 수 있는 전자 비트로 변해 가면서 빠르게 물질성을 벗어던지고 있다. 앞으로 25년 뒤면 딱딱한 경화는 경제 활동의 성격과 형태가 물질성에 기반을 두었던 흘러간 옛날의 추억거리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모든 분야, 모든 업종의 기업이 자신의 핵심 사업에 필요하지 않은 자산을 앞다투어 과감하게 처분하고 있다. 기업인들을 지배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은 ‘의심스러우면 밖으로 돌리라’는 것이다. 기업의 일차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산이나 업무가 아니라면 외부 하청업자에게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새롭게 부상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아웃소싱은 거의 종교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소유권 중심의 시장지향체제는 내 것과 네 것으로 경제 활동을 확연히 구분하기 때문에,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라는 발상을 한 발 앞서 실천에 옮기는 기업이 성공을 거두는 네트워크 기반 경제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사업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경제 활동의 공유라고 할 수 있다.
불과 40년 만에 소유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물리적 자본의 임대와 업무의 아웃소싱이 대세를 점하게 되었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재산의 장기적 소유를 고집하기보다는 생산 자본에 대한 단기적 접속을 중시하는 이 새로운 논리를 네트워크 경제에서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이다.
유형 자산에서 무형 자산으로 가치가 이동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와 성공을 물리적 자본의 소유만으로 측정하던 경제에서, 눈에 안 보이는 지적 자본의 형태로 된 아이디어를 얼마나 잘 관리하고 있는가가 성공을 가늠하는 경제로 바뀌면서 기존의 회계 방식도 흔들리고 있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공장과 원료보다는 아이디어와 재능이 더 중요할 때가 많지만 이것들은 수량화하기가 어려우므로 기업에 대한 판단은 점점 주관화되고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네트워크 경제를 염두에 두고 개발된 새로운 회계 모델에서 물리적 자본은 회계 원장의 자산 항목으로부터 비용 항목으로 이동하여 경상비로 처리될 것이고, 무형 자본은 자산 항목으로 이동할 것이다.
물질적 가치만이 재산으로 인정되고 시장에서 거래되었던 시대에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가장 드높은 꿈이었다. 물질적 재산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여 자신의 육체적 존재를 부풀리는 것은 재산을 가진 모든 인간의 갈망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는 비물질적이고 사색적이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형상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미지의 세계, 원형의 세계다. 개념의 세계, 픽션의 세계다. 산업 시대의 인간이 물질을 축적하고 가공하는 데 빠져들어 있었다면 접속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정신을 관리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상업권에서 아이디어의 비중이 점점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길한 생각도 든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이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온갖 유형의 아이디어가 거대 기업들이 관리하는 지적재산권의 형태로 얽히고 설켜 있는 사회에서 우리의 집단 무의식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회적 담론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인간관계의 상품화
현대 자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삶의 다양한 국면을 상업 관계망 안으로 강제 편입시켰다는 점이다. 토지, 노동, 생산, 사회활동은 예전에는 집에서 모두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시장으로 흡수되어 상품화되었다. 그러나 상행위의 밑바탕은 어디까지나 판매자와 구매자의 불연속적 거래에 있었기 때문에 상품화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주로 물건의 전달이나 서비스에 들어간 시간으로 표현되었다. 이것을 제외한 시간은 시장이 장악하지 못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시간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네트워크의 힘이 남아 있는 모든 시간을 상업성의 궤도로 끌어당긴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상업화’의 노예가 된다.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서 살아 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된다.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의 상품화다.
앞으로 생산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판매 중심에서 관계 구축 중심으로 궤도 수정을 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마케팅 전문가와 경영 컨설턴트, 경제학자, 미래학자가 쏟아내는 무수히 많은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라 하더라도 진정으로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소프트웨어는 ‘고객관계’이다. 페로스와 로저스는 “당신이 만든 모든 제품은 뜬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진다. 믿을 건 당신의 고객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기업들이 한번에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것을 포기하고 개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곧 개인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잠재성에 주목함을 뜻한다.
한 고객의 평생 가치를 계산하기 위해 어떤 기업은 장기적 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마케팅 및 고객 서비스 비용과 미래의 모든 구입을 지금 시가로 환산한 금액을 비교한다. 네트워크 경제의 새로운 정보와 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개인의 평생 가치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적절한 컴퓨터 분석 기법만 개발되면 개인에 대한 이런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앞으로 고객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필요로 할지 예측하여 아주 정교한 마케팅 전략으로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
경영 전문가와 마케팅 전문가, 그리고 점점 많은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원격통신 기술 덕분에 공급자와 사용자의 상호 연관성에 바탕을 둔 풍부한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이것을 바탕으로 인간 경험의 온갖 측면을 장기적으로 상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마케팅 세계에서는 특정한 분야에 대해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새로운 유형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영 전문가와 마케팅 전문가는 이른바 ‘취미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고객의 관심을 끌어 평생토록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업은 이 새로운 공동체의 문지기 역할을 하면서 돈을 받고 고객이 사교장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공동체가 형성되면 회사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한 관심이 비슷한 고객들끼리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한다. 회사가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이유는 긴 안목으로 상업적 관계를 구축하고 개별 고객의 평생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서이다.
물건의 판매에서 관계의 상품화, 공동체의 구축으로 상거래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사업 방식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상업영역은 날로 세력을 확대하여 인간 존재의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으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 공간과 물자의 상품화가 인간의 경험과 시간의 상품화로 바뀌는 현상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가진 시간 중에서 조금이라도 남아도는 시간은 금세 모종의 상업적 연결 고리로 채워진다.
모든 노력이 상업적 서비스로 변질될 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일종의 시간의 덫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된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앞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 존재의 거의 모든 측면이 유료 활동으로 바뀌면 궁극적으로는 인간 그 자체도 상품이 되어버리고 상업적 영역은 개인과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권을 쥐게 된다.
삶으로서의 접속
우리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떠받들어 온 모든 경제적 토템은 하나둘 허물어지고 있다. 이 자리에 대신 들어서는 것은 역사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상업적 우상이다.
네트워크 경제의 탄생, 물품의 점진적인 탈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물품의 순수한 서비스로의 변신, 생산 관점을 밀어내고 사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마케팅 관점,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 등은, 사람들이 서서히 시장과 재산 교환을 뒤로 하고 접속의 시대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첨단 글로벌 경제에서 급격하게 벌어지는 구조 변화를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지난 25년 동안 주택 건축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는, ‘소유’에서 ‘관계에 대한 접속’으로 사회의 경제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수많은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묘한 변화의 기류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생활 공간의 접속’으로 완전히 변신하기까지는 아직도 한 세대 이상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앞으로 새로운 경제가 요구하는 거주 환경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그 전모를 대강 예상할 수 있다.
아직 집을 살 만한 여력이 없는 저소득 가구, 독신자, 신혼 부부가 주로 이용해 온 아파트 임대 시장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편리한 서비스, 시설, 경험에 대한 단기적 접속에 높은 비중을 두고 전통적인 주택 소유에 수반되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아파트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장기적 소유보다는 단기적 접속에 역점을 두는 기업이 늘어나는 것처럼 부동산 시장에서도 똑같은 문제의식이 작용하여 부유층과 젊은 세대에서는 주택을 소유하기보다는 임차하려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아직은 주택 소유가 다수를 점유하고 있지만 앞으로 사회 전체가 접속의 시대로 나아가는 추세에 발맞추어 젊은 세대가 소유보다는 접속을 선택할 경우 주택 임대가 서서히 주류로 부상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임대, 리스, 회원권 같은 형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소유에서 접속으로 변하는 것이 과연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소유에 수반되는 개인적 자부심, 책임감, 의무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간관계의 구조가 소유에서 접속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장단점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속단하지 못한다.
시간적 네트워크 안에 편입하는 것은 장소에 뿌리를 둔 삶의 충분하고 의미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리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인가, 아니면 지나간 시대의 주변적 찌꺼기에 불과한 것인가? 지리는 좌표이고 제약인가 아니면 고려해야 할 수많은 요소 중의 하나에 불과한가? 장소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있지만 공간을 폐지하고 우리의 경험을 시간화하려는 욕망은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의 생활 공간을 소유에서 접속으로 어느 정도까지 탈바꿈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누구이며 21세기를 어떤 식으로 살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두 가지 감수성의 우열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을 역사의 커다란 변화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슬금슬금 사회로 번져나간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구닥다리가 된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던져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느 날 불현듯 깨닫는다.
우리는 디지털 통신 기술과 문화 상업주의의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 둘은 실제로 경제 패러다임의 강력한 쌍두마차이다. 수천 년 동안 반독립 영역에서 존재해 왔고 때에 따라서는 시장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단 한번도 시장에 흡수당한 적은 없었던 문화 -인간이 공유하는 경험- 가 이제 새로운 통신기술이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추세 속에서 점점 경제 영역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공산품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소유권을 가지는 것이 중요했지만 상업화된 전자 통신 기기와 온갖 종류의 문화 상품에 의해 점점 지배당하는 글로벌 경제에서는 경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새로운 통신 혁명을 열렬히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의 밀접한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보 전문가와 공학자는 커뮤니케이션을 메시지의 전달이라는 협소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에 인류학자는 의사소통을 텍스트의 전달을 통한 사회적 의미의 생산으로 이해한다. 또한 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티(공동체)나 문화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립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사람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든지 배제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상품화된 여행과 관광이 문화의 영토를 야금야금 잠식한 것과 똑같은 과정이 공공 광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문화의 집결지라는 막중한 소임을 맡았던 공공의 광장은 그러나 불과 30년도 못 되는 사이에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공공 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활동은 쇼핑몰 안으로 흡수되었고 판매를 위한 상품이 되었다. 쇼핑몰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는 새로운 건축 공간을 창조했다. 그 상업화된 세계에서 문화는 상품화된 체험의 형태로 존재한다. 쇼핑몰은 이런 점에서 현대의 관광 산업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
쇼핑몰은 온갖 종류의 살아 있는 체험에 접속할 수 있는 곳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강습을 들을 수 있고 쇼를 관람할 수 있고 탁아소에 아이를 맡길 수 있다. 검진을 받을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고 전시회나 연주회에 갈 수 있다. 운동을 할 수 있고 조깅을 할 수 있고 행진을 구경할 수 있다. 축제에 참여할 수 있고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이웃과 어울릴 수도 있다. 오늘날 몰은 소비라는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연극 공간 내지는 정교한 무대가 되었다.
미래의 새로운 몰은 ‘궁극의 엔터테인먼트 센터’로 불린다. 블루밍데일, 노드스트롬 같은 대형 백화점은 이제 명함도 못 내민다. 대신 아이맥스 영화관, 하드 록 카페, 레인포리스트 카페처럼 주제가 있는 나이트클럽, 하이테크 비디오 오락실, 가상 현실게임, 모의 조정 장치가 상업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메가몰과 오락 센터는 공동 관심 단지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관광단지처럼 문화 공연과 살아 있는 체험의 상품화된 형식에 접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성공의 잣대로 평가받는 새로운 경쟁적 풍토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문화 경제에 누구를 집어넣고 누구를 뺄 것인가 하는 문제는 21세기에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될 것이다.
경제는 거대한 공장에서 거대한 극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산출량이 중요하지만 문화 중심의 자본주의에서는 연기가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문화 사업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창조성과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기업이 조직 환경을 재구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업무환경은 실체험의 마케팅과 문화적 연기를 중시하는 유희환경으로 서서히 탈바꿈하고 있다. 기업은 예술적 창조성을 유도할 수 있는 여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하여 ‘놀기 좋은’ 온갖 종류의 혁신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문화 생산은 21세기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도할 것이다. 접속의 시대에 문화 생산은 경제생활의 제1열로 부상하고 정보와 서비스는 제2열로, 제조업은 3열로, 농업은 4열로 내려간다. 이 네 개의 열은 소유 관계에 바탕을 둔 체제를 접속에 바탕을 둔 체제로 꾸준히 탈바꿈시킬 것이다. 그리고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를 통합한 네트워크 관계 안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이다.
접속자와 비접속자
21세기는 과거의 재산권처럼 접속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접속은 재산권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재산권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협소한 물질의 차원을 다루지만 접속은 체험 자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좀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통신ㆍ방송망의 규제 완화와 상업화가 가속화하면서, 국민 국가는 자국 영토 안에서 통신을 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정치적 국경선을 가뿐히 뛰어넘는 통신망을 전 세계에 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의 근본적 성격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주파수가 국민을 대표하여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재에서 거대미디어 기업의 사유 재산으로 탈바꿈하면 거대 기업과 일반 국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온다. 고도로 발전한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문명에서 지금까지 공공 재산으로 여겨졌던 주파수를 잃어버리면 사람들은 거대 미디어 기업의 그늘 아래 들어가게 된다.
이 새로운 시대에 국민 국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가 의지한 것은 지리적 기반이었다. 정부는 국토를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인류의 사업 범위와 교제범위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물질적 세계로 이동하게 되면 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지위가 점점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네트워크 시대에 국가는 시민이 국가 바깥에 세우는 무한히 많은 연합체들과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제 정치가 사회생활을 조직하는 원리라는 소리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버린다. 정치는 현대 세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력하기만 한 인위적 구성물로 전락했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아무튼 주변적 지위로 밀려난다.
- 네트워크 바깥 사람들
국경을 넘어서고 지리를 유명무실하게 하면서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존재하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방대한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새로운 글로벌 경제, 사회 질서의 압력을 받으면서 국민 국가가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지구 위에 거주하는 인간의 대부분은 이 새로운 세계와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세계 각국이 통신ㆍ방송 인프라의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에 매각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업 영역은 네트워크 글로벌 경제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새로운 생존의 지평을 형성하는 사이버스페이스와 네트워크 공유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전자 대문 바깥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 《타임》은 사이버스페이스 특집호에서 이런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들려준다. 전자 네트워크 세계에 접속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기 위한 필수적 능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 접속을 둘러싼 좌우 대립
통신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접속을 둘러싼 대립이 있었다. 접속의 문제는 전화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제기되었고 그 후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했을 때도 다시 거론되었다. 전화선과 방송기술을 만인에게 보급하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이냐를 놓고 공익성을 강조하는 진영과 수익성을 강조하는 진영은 자주 갈등을 빚었다.
오늘날 접속의 문제는 예전보다 훨씬 심각해졌다. 디지털 혁명은 첨단 기술 통신이 실어 나르는 음성, 데이터, 비디오를 하나의 웹으로 통합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통신은 점차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매체를 통해야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종래의 장소와는 성격이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엄연한 사회적 교류의 장이다. 앞으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 생활의 상당 부분은 전자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된다.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지금까지 사이버스페이스 접속의 문제는 협소한 차원에서 이해되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수 있는 능력, 서비스의 지원 범위, 컴맹, 표현의 자유, 개인 정보, 데이터의 흐름에 대한 통제 같은 문제들이 주로 논의되었다. 이런 문제도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문명의 핵심을 관통하는 문제 제기라야 한다.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도대체 ‘접속’이 무엇을 뜻하는가이다. 이것은 기술이나 데이터에 대한 협소한 차원의 접속이 아니라 좀더 광범위한 맥락의 접속을 뜻한다.
새로운 통신기술과 이 기술을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자체가 우리가 접속을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다. 네트워크는 새로운 시대에 펼쳐질 인간의 행로를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이요 입구일 뿐이다. 접속 관계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시장이, 그리고 지금은 사어버스페이스가, 공유되는 문화를 문화 공연과 문화 상품의 형태로 식민지화하려는 추세를 가속화하면서, 전통적 인간관계를 표현하고 기존의 공동체를 육성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인간 활동의 대부분이 상업 영역으로 옮겨짐에 따라 잃는 것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현실화될 경우 접속은 그저 상업 영역 안에 끼어드는 행위로 협소하게 정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탈근대가 그토록 찬미하는 자기 실현이라는 목표는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된다.
상업영역은 깊은 공동체 의식과 개인적 변신으로 나아가는 관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과시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 문화의 부흥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 전 세계에 존재하는 풍부하고 다양한 인간의 경험을 상업 영역이 근시안적 영리 추구를 위해 착취하기만 하고 순환이나 재충전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경제는 결국 문화 생산의 재료가 되는 인간 경험의 방대한 수원지를 잃게 될 것이다. 따라서 문화와 상업이 생태학적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되찾으려면 시장에 나와 있는 문화 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 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문화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모든 현실 문화는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친밀감은 지리적 공간에서 움트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밀감이 없으면 사회적 신뢰망을 구축하기도 어렵고 진정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문화를 소생시키고 부활시키려면 적어도 사이버스페이스에 쏟아 붓는 만큼의 관심을 지리적 공간에도 보여야 하고 채팅방에 들이는 만큼의 정성을 현실 공동체에도 기울여야 한다.
- 놀이의 변증법
글로벌 경제를 옹호하는 세력과 제3부문을 옹호하는 세력은 결국 앞으로 급부상하게 될 ‘놀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구성하는 수많은 문화적 범주에 접속하는 통로를 누가 관리할 것이냐를 놓고 대립할 것이다. 산업 경제에서 일이 중요했던 것처럼 문화 경제에서는 놀이가 점점 중요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생산되는 놀이는 문화 영역에서 생산되는 놀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순수한 놀이는 인간이 누리는 자유의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형식이다.
한 단계 발전된 성숙한 놀이는 수동적 오락과는 달리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이 친목, 시민 활동, 교회, 예술, 운동, 사회 정의, 환경 조직 같은 다양한 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그들은 성숙한 놀이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들의 사회적 교류는 사회적 신뢰의 섬을 곳곳에 만들고 풍성한 사회 자본을 끌어낸다. 성숙한 놀이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끌어 모은다. 그것은 가장 친밀하면서도 가장 섬세한 인간 교류의 형식이다. 성숙한 놀이는 정치적 성격을 띠었건 상업적 성격을 띠었건 제도화된 권력의 무분별한 횡포에 저항하는 힘이다.
수천 년을 이어온 살아 있는 인간 체험의 풍부한 문화적 다양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생물 다양성을 잃는 것 못지않게 앞으로 우리가 생존하고 번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화와 상업이 적절한 균형을 이룬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다가오는 시대에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첫댓글 이거 저학년때 재미있게 봤던 책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