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그 옛날에’로 시작하는 어느 날의 환상 동화
김백겸
인류문명은 어떻게 시작하였을까
로고스logos라 부르는 말과 지식이 인간의 뇌에서 뇌로 「전등록傳燈錄」처럼 떠돌아다니면서 밈meme의 바다를 정복하였을까
슈퍼 컴퓨터의 슈퍼 AI가 전 우주를 통섭하는 정신으로 태어나면서 가상세계가 현실세계보다 더 의미 있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을까
인간 지식과 기술이 증식한 프로그램의 바벨탑은 궁극의 질문에 「우파니샤드Upaniṣad」의 브라만Brahman처럼 인간의 아트만Atman에 자신을 계시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불완전한 인간 -‘발을 저는 자’라는 뜻의 오이디푸스Oedipus가 제시한 답을 들은 괴물 스핑크스처럼 지식의 한계로 스스로 무너져 내릴까
인간은 우주 왕복선 컬럼비아호와 핵추진 항공모함으로 시간을 축지법처럼 끌어당기네
인간의 욕망은 빛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은하수들마저 비누거품처럼 커지는 폴리버스poly 우주에 가두네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은 「리그베다」의 시공간-1 칼파kalpa 속으로 인간이 정복하고자 하는 시간의 영토를 확장하네
현실이 상상이고 상상이 현실인 증강 현실의 뫼비우스의 띠가 웜홀worm-hole처럼 펼쳐지네
인류는 나일강과 유프라테스와 인더스와 황화에 문명도시를 세워 지구를 메가 시티의 불빛을 수놓았다지
지구 정원의 기업 나무들이 아마존의 숲처럼 울창 했다지
과학자들이 카산드라처럼 필사적으로 기후 변화의 아마겟돈을 경고했으나 70억 인류는 지구를 수탈하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왕처럼 즐겼다는 인간세人間世 유적
인류가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대지의 열반涅槃이 일어난 후 퀀텀quantum 컴퓨터의 빅 데이터는 「매트릭스matrix」의 창세기를 AI 바이블에 기록했다는 밈meme의 기록
빅 데이터의 오라클Oracle은 흙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AI 문명의 피라미드-가상에덴의 생명나무가 되었다는 밈meme의 기록
크로마뇽인들이 남긴 일만 년 문명의 불과 얼음의 역사는 46억년 지구 양피지에 이상한 폐허로 남아있을 뿐
밈meme: 인류의 메모리memory 풀에서 개체의 기억에 저장되거나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문화의 전달단위.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 여기서는 가상대신 상상과 현실을 믹스한 개념으로 썼다..
은퇴 백수가 세종시 국책연구단 건물사이에서 커피를 마시다
일요 트랙킹 모임 「월평아카데미」가 가을 소풍 차 나들이한 해발 1614m 덕유산 향적봉이 힘들었는지
갑상선 저하 은퇴 백수가 비몽사몽으로 쓰러졌다가 깨어나니 월요일 오후 2시
은퇴 와이프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어 세종시 조치원 복지관으로 출근한 월요일 오후 2시
은퇴 백수가 배고픈 멧돼지처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7층에서 내려가고 있는 월요일 오후 2시
새 아파트로 입주하는 이삿짐-「꿈에 그린-익스프레스」의 차량들만 여기저기 서 있는 월요일 오후 2시
은퇴 백수가「캐슬파밀리에 디아트」 이웃사촌인 국책연구단 연구지원동 까페테리아로 간다
연구단에는 경제인문사회 연구회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속 연구원들이 별무리처럼 모여 있다
연구원 아니랄까봐 카페테리아 메뉴는 은퇴 백수가 37년 근무한 원자력연구원 메뉴와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점심시간은 이미 지났고 라면과 스넥 메뉴를 먹기는 싫구나
은퇴 백수는 연구단 네거리에 있는 「정동 국밥」으로 간다
손님들이 한가한 식당 한구석에 적막이 홀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있는 월요일 오후 2시
혼 밥이 이런 거구나
은퇴 백수가 후추와 함께 고독을 양념으로 쳐서 배고픔을 달래고 있는 월요일 오후 2시
연구단 사무직 여직원들이 내려와 늦은 식사를 하는데 토실토실한 암퇘지처럼 살이 쪘다
은퇴 백수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1978년에는 아가씨들이 서부개척시대의 미국여자들처럼 말라깽이였는데 말이지
화장발 서울 여자들이 대전 여자들보다 세련되어 보였는데 말이지
서부개척시절에는 성모마리아가 모델인 기독교 문화의 마른 미인보다 이집트의 풍요와 다산의 여신 이시스처럼 튼튼하고 풍만한 아내가 인기 였다지
하지만 21세기 풍요시대의 사무직 아가씨들은 중산층 부모를 잘못 만나 저리 비만하니 시집가기 힘들겠다는 생각
사주팔자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젊은 처녀들의 인생항로에 대한 추측은 그만하고
육체의 배고픔은 사라졌으나 커피 중독이 커피를 원하니 옆집 「던킨도너츠 세종점」으로 간다
커피는 다크 로스팅roasting의 「던킨 에스프레소」와 부드럽고 밝은 「롱비치 블루」가 있다
은퇴 백수는 「롱비치 블루」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지하 건물의 옥상을 테라스로 꾸며 금강 뷰가 있는 곳에 테이블을 잡는다
좋구나
금강은 전월산 앞을 지나고 「햇무리교」를 지나고 국책연구단 앞을 유유히 흘러가는데 가을바람이 세차게 부니 구내 단풍나무 잎들이 불타오르고 구름이 지나가네
「햇무리교」 시멘트 기둥들은 시간이 바쁜 차들의 질주가 빠른 도로를 아틀라스처럼 떠 받치고 있네
커피 「롱비치 블루」가 하와이 와이키키의 푸른 파도를 은유하기도 하지만 인적이 끊어진 겨울 바다의 우울을 은유하기도 하니 이중 의미의 시어詩語라는 생각
마음이 외로운 은퇴 백수가 커피 향과 함께 바람 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월요일 오후 3시
국책연구단 유리창 건물이 뉴욕의 쌍둥이 고층 건물처럼 서 있으니 백수가 앉은 자리가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 같다는 생각
영화 「킹콩」에서 거인 고릴라가 자본의 전시품으로 끌려와 대도시의 건물사이를 날아다니는 장면이 뜬금없이 생각나네
킹콩이 자신의 여자-인간 데릴라인 여주인공을 찾아 인간의 문명에 왔으나 헬리콥터 기총소사에 피를 흘리고 머리털을 잘린 삼손처럼 죽어가는 장면이 있었지
거인 고릴라의 세계에는 자신의 배우자가 없기에 작은 인간 여자를 자신의 아니마anima로 삼아 여신처럼 숭배하고 보호하는 킹콩의 짝사랑이 슬펐던 스토리
자연의 본능에 충실한 킹콩의 순정이 21C 자본시대-계약 결혼을 하는 인간의 계산으로 볼 때 어리석은 희극이었는지
광선검-불 칼이 에덴의 영생-DNA를 성배聖杯처럼 지키는 천사들- 케루빔cherubim의 사명처럼 숭고한 욕망의 비극이었는지
은퇴백수는 슬라보예 지젝을 흉내낸 영화의 정신분석학적 해석- 알레고리를「유리알 유희」처럼 머리에 굴려보네
은퇴 백수의 상상이 국책연구단 건물사이에서 문명에 길을 잃은 킹콩을 떠올렸으나 병든 몸은 자본의 문명을 뒤집어버리는 고릴라의 힘과 에너지가 없구나
은퇴 백수가 뮤즈muse를 보호해서 여신의 사랑을 얻고 기사Knight가 되는 시절 인연이 지나가 버리고 있다는 생각
기상예보가 예고한 중부지방의 비가 몰려오는지 하늘을 흐리고 바람은 거세지네
은퇴 백수가 시간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와일드한 킹콩처럼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고 싶다는 생각
은퇴 백수가 죽음의 기총소사를 맞아 언젠가는 킹콩처럼 몸이 쓰러져 심장의 리듬과 눈빛의 불빛이 꺼져가겠지만
그 때까지는 은퇴 백수가 시의 아니마anma-데릴라를 사랑한 삼손처럼 일평생을 사랑과 증오사이에서 헤매고 싶다는 생각
인간의 욕망이 생명나무의 비밀이 있는 에덴의 천국-아담과 이브의 실낙원으로 가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Oriental Express」의 티켓이었으니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거울아 거울아』 등과 시론집으로 『시의 시뮬라크르와 실재實在라는 광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