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에세이스트 59호를 펼쳤습니다.
목차를 훑으며 무엇보터 맛볼까, 하다가 맛 있는 걸 아끼는 심정으로 김서령을 꾹 누르고 우선 문제작가 이상은의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기대가 큰 작가였지요. 신인답게 뭔가 새로운 수필을 쓰는 흔적이 엿보였던 작가니까요. 그는 평이한 가운데 특출함을 보여줬잖아요. 한데 기대가 워낙 컷던 탓이었을까요. 이상하게 이상은의 글이 잘 읽히지가 않는겁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작품으로 넘어갔더니 그 또한 읽기가 귀찮아져 버벅거리며 넘기고 넘기다 결국 맨 나중으로 갔지요. 문장의 일반적 어미 처리를 다소 소년스러운 필치로 엮어갔더군요.
이 현상은 아직 잠이 덜 깬 저의 혼미한 정신의 문제였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래도 문제작가 글인데, 이상은인데...
언젠가부터 많은 사물의 냄새들이 제 곁을 떠나가기 시작했어요. 난의 향기나 후리지아의 향은 진즉에 달아났고,
장미향도 옛 기억을 상기해야 비로소 맡아졌고, 하물며는 내 몸에서 나는 냄새조차 흐려지는 겁니다.
예전엔 머리 감을 날이 다가오면 손가락 끝으로 내 머리속을 비볐다가 그 냄새를 맡아보며 남들이 맡았을지 모르는 내 냄새를 가늠해보며 지레 몸을 사리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진단이 거의 불가능해진 겁니다.
아주 진하거나 강열한 것만 와닿는 거에요. 그래서 간만에 상계동 집에 오는 날이면 음식이 약간 상한 것도 모르고 입에 넣었다가 퇴퇴거리며 뱉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요. 한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고 의외로 미미한 내음들이 맡아지기도 합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났을 때의 소변냄새나 대변냄새는 여전히 변함 없고, 흙내음은 알겠는데, 숲 향기는 잘 안느껴지니 정말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그저그저 헷갈릴 뿐.
웬만한 작품에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증상을 저는 이런 현상의 연장선으로 해석하기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습니다.
내 감각이 많이 마모되고 둔해져서 그런 건가? 하구요.
기운 달리고 시간 모자라다 보니 인내심같은 걸 펼칠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티비 앞에서 리모컨으로 즉각즉각 채널 돌리는 것처럼 초장에 나를 후려잡지 못하는 글이나, 복잡하고 무거운 글(예: 그토록 주목을 받았던 홍성담의 글을 저는 안 읽어요)이나 문학적 에센스가 보이지 않는 글은 그냥 설렁설렁 넘겨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 제치고 김서령으로 넘어갔지요.
한데, 역시, 김서령이더군요. 몽롱했던 신새벽의 의식을 짱 소리나게 깨뜨리며 그녀의 글이 내 오관으로 파고드는 겁니다.
그녀는 글로만 만났을 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저는 오래 전 부터 그녀의 글을 좋아했고, 그녀의 내밀한 풍경을 몇 장면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깊이 알던 분이 내게 들려준 그녀의 때문이었지요.
안동녀인 그녀가 풀어내는 탁월하고도 문향어린 글은, 안동 사투리를 유난히도 싫어했던 내 기호마저 깡그리 무너뜨리며 맥없이 빠져들게만 했습니다. ~~했니껴? ~그랬니껴? ~했니더.... 지난 날 스무살 적의 내가 가출인지 출가인지를 했을 때 안동이란 고장에서 추운 겨을을 난 적이 있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인상들이 심술맞아 보였고 말투 또한 뻑뻑하고 투박하기만 하여 아무리 정을 들이려 해도 그넘의 말투가 끝내 생경스럽고 거북했던 겁니다.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껴' '껴' 하는 말투때문에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더랬지요.
안동 가기 전에 머물렀던 대구 사투리는 그래도 정겹고 때론 위엄과 품위도 있었기에 대구와 안동을 비교하면서 저는 그 때 부터 안동을 맘 놓고 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김서령 그녀가 안동녀인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풀어내는 안동의 정서, 안동의 풍경, 안동의 말 맛, 안동녀의 끼....
그녀의 글을 읽는 새벽이 몹시나 행복했었습니다.
준비도 안된 글을 횡설수설 적느니 그냥 지나칠까 했지만 그래도 내 손가락의 운동을 위하여, 치매예방을 위하여 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꾸벅 아침 인사올리며 이제 성당 갈 준비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