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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
요한일서 2장 12-27절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조금 더 성숙해지기 위해서,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등, 다름대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본질적인 이유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에 대해 요한복음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의 수신자들이 어떠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 안에서 주시는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세상이나 적그리스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사귐이 있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기를 힘쓰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과 자귀지 말라(12-17)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2-17)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땅을 의미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영적으로 악하고 세속적인 세력을 뜻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 부류로 나누어 지칭합니다. 아비, 청년, 아이들입니다.
(1)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기억하라(12-14)
전체 신자를 가리키는 ‘자녀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12). 앞서 1:9에서는 죄의 고백을 통한 용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죄용서는 인간의 고백 이전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을 의미합니다(마 1:21; 행 4:12;10:43).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에 의해 죄 용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한편, 같은 의미인 ‘아이들’은 아버지를 알았던 사람들로 묘사됩니다(14). 2:12 의 죄 용서 받은 자녀들과 2:14의 아버지를 아는 아이들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결국 사람의 구원은 예수님의 이름을 통해서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13, 14절에서 아비들의 특징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것이라 합니다. 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하나님 아버지로 볼 수도 있으나, 아들 예수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말씀이신 그리스도의 신적 선재성을 가리킵니다(요 1:1; 요일 1:1-2). 왜냐하면 당시에 이단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신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2:14에 나오는 아이들의 특징이 ‘아버지를 알았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에, 같은 말의 반복을 2:14에서, 아이들과 바로 뒤에 나오는 아비들에게 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즉 만약 ‘태초부터 계신 이’가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2:14은 아이들도 ‘아버지를 아는 자들’로, 그리고 아비들도 ‘아버지를 아는 자들’로 묘사하는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안다’는 완료형으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비들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특징은 악한 자를 이기는 것입니다(13). 남성 정관사와 함께 쓰인 이 ‘악한 자’는 사탄을 가리킵니다(5:18-19). 사탄은 성경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대적자로서, 고소하는 자로 혹은 유혹하는 자로 묘사됩니다(민 22:22; 욥 2:1-7; 막 1:13; 눅 22:31; 요 13:27; 행 5:3; 고전 7:5). 요한 문헌에서는 특히 ‘승리’의 모티브가 강조되는데(요 16:33; 계 2:7; 12:11; 15:2; 21:7 등), 요한일서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4:4; 5:4-5).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이루신 종말론적 승리(4:4)를 믿음으로 실현하고 경험하는 자입니다(5:4-5).
(2)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15-17)
앞선 단락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해 밝혔다면, 이제 그리스도인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란 요한일서에서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고(3:17; 4:17), 또는 일시적으로 악의 세력의 지배를 받는, 그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세상을 말하기도 합니다(4:3; 5:19). 여기서는 후자의 뜻으로, 죄악 된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죄악 된 세상에서 나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조심하라고 합니다(2:16). ‘육신의 정욕’은 단순히 육체로 말미암는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의 모든 죄악 된 욕심을 가리킵니다. ‘안목의 정욕’은 일차적으로 눈으로 하는 범죄를 뜻하지만, 그 근저에 있는 눈으로 하는 범죄의 동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잘못된 생각이나 욕심을 뜻합니다. 특히 눈과 관련하여 죄악 된 가치관 혹은 세계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잘못된 허영심을 일컫기도 하고, 그 소유에서 오는 죄악 된 자랑을 일컫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기적 욕망인데, 이는 잘못된 가치관과 세상에 속한 것에 대한 거짓된 자만심을 포함합니다.
이러한 죄악은 사라지고 있습니다(2:17a). 헬라어 현재형으로 쓰인 것은, 2:8처럼 죄와 죄의 세력은 점차 사라져서, 마지막 날에 완전히 없어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히 삽니다(2:17b).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계명에의 순종을 의미하는데, 요한일서에서 이는 곧 그를 믿는 것이고, 그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3:23).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욕심을 사랑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며,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18-23)
18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19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기 때문이라 22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25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너희를 미혹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28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29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18-29)
요한 사도는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세 부류 모두에게 처음부터 들은 복음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복음은 이제 막 새롭게 들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언덕에서 이루신 구속의 사건이 복음입니다.
(1)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18-23)
본 단락은 요한일서에 언급되는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적그리스도는 종말과 관련이 있습니다(18). 유대 전통에서 ‘마지막 때’는 메시아의 오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한편 요한일서는 이 종말론적 세계관을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연계시키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또한 원래 요한의 공동체에 속했던 자들이었습니다(19). 그러나 공동체 안에 있었다고 해서, 참 교회에 속했던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들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고,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22). 이에 반해, 그리스도인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입니다(20).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성령 받은 자임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입니다(시 78:41; 사 1:4). 또한 아들 그리스도도 거룩하신 분입니다(요 6:69). 요한복음에서 보혜사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요 14:18,26; 15:26; 16:7).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성령을 받은 자이기에, 적그리스도의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21). 왜냐하면 성령께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증언하시고(요 15:26), 직접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요 14:26).
(2)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24-29)
‘처음부터 들은 것’(2:24)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일컫는 말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를 지칭합니다. 문맥에서 보건대, 이는 특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을 말합니다. ‘거하다’는 계속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들은 바 복음의 말씀에 계속 거하게 될 때,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친밀하면서도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를 통해 또한 영원한 생명을 경험하게 됩니다(2:25).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받은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야 합니다(2:27). 이는 그들이 처음부터 받은 사도적 교훈이며,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포함하는 가르침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다른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로부터 받은 교훈이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 즉 기름부음이 됩니다. 이러한 신앙의 태도는 결국 주의 재림 때 증명됩니다(2:28). 성령 안에, 사도가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담대함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담대함을 가집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다양한 부류의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돌아보고, 주신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영원한 생명(25)을 주십니다. 우리에게서 성령의 능력이 떠나가면 우리는 한 덩이의 진흙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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