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각자 한 사람 한 사람 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세상에 왜 왔을까요?
44세 편해문 선생님은 4학년 4반 아이가 되어 말합니다.
‘놀기 위해 세상에 존재합니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옵니다!’
편해문 선생님은 강연을 듣는 부모들에게 묻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나요?'
'받아들인다',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가'가 아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이들이 놀면 눈치를 봅니다. 뒤쳐진다고 합니다. 아이들 머릿 속의 놀이의 자리는 어느샌가 책과 공부라는 것에 빼앗겼습니다.
이것이 당연해진 우리 사회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세상에 온 이유가 놀이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어색합니다. 아이들이 놀 궁리만 하고 있으면 잘못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놀라고 해도 못 알아 듣습니다.
아이들이 놀 수가 없습니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태어날 때 ‘놀기’를 100을 갖고 태어난 아이가 어릴 때 충분히 놀지 못하니 학교라는 닫힌 공간에서 남은 ‘놀기’를 분출하기 위해 요리조리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만납니다. ‘왕따’와 ‘학교폭력’이라는 놀이를요. 닫힌 공간에서 어떻게든 놀아야겠으니 옆에 있는 아이를 괴롭히고 떼립니다.
진짜 놀이를 잃어버린 수많은 아이들이 잘못된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운동장을 친구들과 함께 맘껏 뛰놀며 축구공을 차고 놀아야 할 아이들이 축구를 ‘보고’있습니다. 기쁘면 신나게 춤을 춰야할 아이들이 춤을 ‘보고’있습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방법 중 하나는 동네에 동요가 널리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복지요결의 저자 한덕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동요 부르는 동네는 스마트폰에서 흘러 나오는 노랫소리가 만든 것일까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만들었을까요?
노래를 직접 불러야 할 아이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있습니다.
심심해야 진짜 놀이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보는’ 놀이에 흠뻑 빠져있습니다.
보는 놀이를 조성하는 예능과 스마트폰을 뺀 아이들에겐 무엇이 남아있을까요?
아이들은 지금 사고, 입고, 바르는 놀이에 한창입니다. 아이들끼리 챙겨주는 생일선물은 어느샌가 화장품, 향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골목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놀다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언제부턴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집 안의 미끄럼틀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이들 손에 들려주는 놀이가 아이들이 정말 오래토록 즐거워할 놀이일까요?
길지 않은 16분이라는 시간동안 영상을 보면서 우리의 책임감이 얼마나 막중한지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의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밥을 주세요!”
“놀이 밥을 주세요!”
“놀 시간, 놀 틈을 주세요!”
아이들이 진짜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놀 시간, 놀 틈을 만들어줘야겠습니다.
아이들이 맘껏 뛰놀도록 옆에서 잘 거들어야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놀이를 많이 배우게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어떻게 하면 흠뻑 진짜 놀이에 젖게할 수 있게할까?'를 많이 고민 해봐야겠습니다.
이번 여름 '공항동 친구야놀자'를 함께 할 아이들이 놀이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놀이'의 참 맛을 본 아이들이 저절로 형, 언니, 친구 등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함께 먹자고 말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