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파유대인들은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했다고 나옵니다 이 말씀을 대할때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였습니다 책들을 보니 당시에 디아스포라로 이곳저곳에 퍼져있던 유대인들은 세계적인 공통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였던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 땅에 머물고 있었던 유대인들을 히브리파 유대인이라 불렀습니다
초대교회시절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고 있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서로 더불어 살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복음증거로 인하여 제자의 수가 더해졌슴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능력이 기적으로 드러났슴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곱집사를 세운 이후에 집사들의 말씀증거로 인하여 제자의 수가 더해졌음을 볼때 사도들의 증거는 어떻했을지를 미루어 짐작해하게 해줍니다 일례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한번에 삼천명이 돌아오는 역사도 있었슴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 초대교회의 상황이 어떻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헬라파 유대인들의 상황은 어떻했는가 이들은 고향을 떠나 타지로 떠돌아다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것은 저들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들은 마가다락방에서의 성령의 뜨거움을 통한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몰론 이전에 핍박과 고난을 받아 애굽, 앗수르, 바벨론, 메대/바사 페르시아시대에 당시의 국가로 끌려간 사람들도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들중에 복음을 전해들었던 사람들도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개선장군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자신들의 역할을 하고 돌아왔던 것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생명까지 바쳐가며 복음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이며 예수그리스도 사후에는 복음을 적극적으로 증거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신앙이 어떻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이들중에 죽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으며 남편이 죽어 홀로된 과부들도 있었슴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당시에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성전에서 구제의 대상이었슴은 이미 유대대인들의 전통이 되어 있었으며 예수님 당시에도 철저하게 지켜진 율법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도움을 줄 위치에 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이들에게 홀대했슴을 알수 있습니다 과부는 먹고 살기 위해 뭔가를 할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성전에서 하나님만을 섬기기를 원했을것입니다 이들에게 먹이고 삶을 영위하게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당시에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할때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구제를 하는데 있어서 믿음안에서 정당하게 구제를 하는것이 아닌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저들이 스스로를 배부리며 과부에게 부족하게 또는 구제하지 않는 일도 벌어졌을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에게 원망했다고 나옵니다 이것의 원어는 "조용이 이야기하다"에 가깝습니다 저들에게 구제의 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을 것입니다 이를 몰랐을리 없는 사도들은 불만이 나오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나서야 했습니다 이를 미루어보아 제자들이 공궤하는 일을 집사를 세워 하자는 제안을 미루어 보아 공궤의 일을 하는 손이 모자랐슴을 알수 있습니다 히브리파유대인들은 이를 불만으로 제기했슴도 충분히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도들은 이 상황을 알고 방법을 찾습니다
제자들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의 일을 일삼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합니다 당시의 구제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이 필요했던 것을 알수 있고 반대로 구제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부족함이 있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왜내하면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팔아 사도들 발앞에 놓았으며 자기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없을정도였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초대교회를 롤모델로 하고자 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좋았는지 오늘날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롤모델로 이들을 본받고자 구호만 외쳤지 실제로 이들을 본받는 교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이러니 한지는 모르지만 종말이라고 불리는 가장 타락한 시대에 해입은여자인 참교회가 등장함도 눈여겨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에 물론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예수님을 섬기는 분들이 있을수 있으나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내놓는 사람이 있는가 반문해보면 없을 것임이 99.999%임이라 생각합니다 그런지는 몰라도 초대교회시대에 자신의 재산을 팔아 교회에 내놓았다고 하는 말씀을 해석할때는 이렇게 하기가 어려우니 우선순위라고 해석하고 가르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우선순위라고 가르키는 대표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눅18:29-30)입니다 당연한 말씀이 우선순위로 둔갑하고 맙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은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우선순위였습니까 그렇지 않음을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믿음이 충만하였으며 성령이 충만했다는 것을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곱집사를 세우는 것을 보아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의 연약함이요 성령의 충만치 못함입니다 또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아직도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리지 못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심할것은 이 본문을 가지고 이단이라 불리는 자나 교단에서 집이나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들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말씀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이왕에 나온 말씀이기에 잠간 언급하고 가죠 우리들은 세상에 살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엄연히 다름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믿음으로 드러나는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예수님꼐서 보여주신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것이 바른말 곧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이며 경건에 과한 교훈입니다 이를 교훈삼아 살아갈때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지 못했을때의 삶과 알고 난후의 삶은 전혀 다른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였던 말씀도 아멘하여 받아들임으로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으신지요 아직도 세상에 얽매여 계신지요 말씀은 그렇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제하는 모든것을 보았을때 넘치도록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풍성히 구제의 사람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주었슴을 알수 있는데 그 가운데 무슨일인지는 몰라도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소홀하였슴을 말씀을 통하여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아마 사도들의 그 다음장면을 보면 홀대하고 싶어서 그러지는 않았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손이 모자랐슴을 알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공궤하는 일을 위하여 일곱집사를 세우고자 합니다 일곱집사의 이름을 보죠 이들은 모두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등 헬라식 이름을 가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당시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배려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당시의 일곱집사를 세운 기준으로 보면 성령이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으로 보아 당시에 헬라파 유대인들의 믿음이 어떻했는지를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향한 원망은 아마도 믿음대로 적당히 적절하게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배를 배불리게 하였슴도 짐작해볼수 있습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채울것도 성경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통하여 당시의 상황을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그 뜻을 이땅에 심는데 모든 삶을 바치며 살았던 사람들. 이들에게 미세하게 불만이 있었으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들의 모습속에서 하나님을 위한 적극적인 순종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원망이란 단어로 인하여 불평 불만이 있는것으로 비취이나 그렇지 않음도 그 다음 말씀을 통하여 미루어 짐작할수 있습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도 엿볼수 있으며 구제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도전이 되고 있슴도 알수 있습니다 물론 배부르게 먹으려고 했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욕심도 드러나는 부분도 있지만 모두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곧 순종하였슴을 미루어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네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다가옴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구제를 통하여 얻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첫째는 믿음안에 있는 형제요 자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풍족한 가운데 먹고 마시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구제하는 사람들이 구제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풍족하게 되는 것이며 셋째로 구제를 받는 사람들이 기쁨이 넘치고 넷쨰는 주는 사람이나 받은 사람 모두가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운다는 것이며 다섯째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이에 대한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일곱집사가 세워졌으며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전하는데에 전무하는 역할분담이 이루어졌으며 공궤하는 일이 분담됨으로 아무런 불평불만이 나오지 않게되었으며 사도들의 말씀증거를 통하여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행 6:1-7
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