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마를 받는다.
청담 정연원
안마원에 들어선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마서비스사업' 안마, 일명 바우처안마다. 이는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와 생활안정을 위한 정부 사업이다. 반 팔 반바지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안마대에 오른다. 안마사가 들어와서 인사를 하며 오른쪽을 보고 누우세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왼쪽 목의 후두하근과 판상근부터 만지기 시작한다. 안마按摩의 '안'은 근육筋肉을 누르고 '마'는 비빈다는 뜻이다. 손이 닿는 곳마다 굳어있던 근육이 아우성을 친다. 아픈 곳마다 어디냐고 물으면 안마사는 아픈 근육의 이름과 기능을 알려준다. 그날의 몸 조건에 따라 아픈 곳이 다르지만, 목빗근과 극상근, 사각근과 삼각근, 승모근과 극하근 등 목과 어깨를 유지하는 근육이 이렇게 많고 아픈 줄 몰랐다. 아픈 근육들에게 미안하다.
안마는 몸의 근육을 풀어 몸을 유연하게 하고 기혈을 원활하게 만드는 의료요법이다. 피부인 경층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맛사지라면, 안마(按摩)는 심층근육을 푸는 것이라 하겠다. 안마는 현대를 사는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이용자는 많지 않다.
단련된 안마사의 손끝, 손바닥, 팔꿈치가 리듬을 타며 심층 근육을 자극한다. 양어깨가 끝나고 척주기립근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허리의 요방형근까지 손길이 닿는다. 장구처럼 허리가 가늘지 못하면 이곳이 더 아프다. 안마사가 '바로 누우세요.' 자세를 바꾼다. 무릎에서 넓적다리관절까지 외전근에 손이 닿는다. 이 근육은 걷거나 다리운동을 많이 할수록 통증이 많아진다. 아프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은 탓이다. 나는 이 근육과 다리 힘을 키우려 하루에 일만 보 이상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다. 주말에 많이 걸어 이곳이 굳어있으면 안마사는 권타법이라는 다듬이질을 하듯 가벼운 난타로 풀어준다.
무릎을 거쳐 정강이뼈(경골) 바깥쪽의 외전경골근과 안쪽의 비골근을 눌러주면 발바닥이 찌릿찌릿하며 다리가 풀린다. 발목과 발바닥을 만진다. 안마사가 이 부분은 집에서도 아침저녁으로 만지고 비벼주면 다리 건강에 좋다고 귀띔한다.
"엎드리세요." 자세를 바꾸면 대화를 할 수 없다.
나는 사고로 굴절률이 없는 약시자다.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처음에는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나보다 심하거나 이중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적응이 쉬워졌다. 나는 그들과 함께 책을 읽고 문화강좌를 듣는 등 취미생활을 하며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받고 있다.
안마는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이 걸린 직업이다. 안마사가 되려면 중도 실명자의 경우 혹독한 시각장애의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자신과 싸움을 벌인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즈음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기초재활 훈련을 거쳐 자신의 방향을 결정한다. 2년 과정의 광명학교나 안협(안마사협회)에서 운영하는 안마 수련원을 거쳐야 한다. 특수학교 교사나 공무원으로 극소수가 진출하지만, 시각장애인의 90%가 안마사로 나선다. 나의 바우처 안마를 맡은 안마사는 일반 대학의 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안마사가 되었다. 시각장애인 중 엘리트다. 그러나 그의 안마는 시간과 경험이 쌓이며 숙달은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없다. 이런 인재들이 안마의 상위, 심층 단계로 오르지 못하고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엎드리며 자세를 바꾼다. 목덜미의 근육을 풀면서 어깨의 아랫부분인 극하권을 만진다. 소위 날갯죽지 근육이다. 통증이 심하다. 옆구리 요방형근이 다시 아프다. 엉덩이의 대둔근을 팔꿈치로 문지른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통증이 없으면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종아리 부분이다. 비복근과 가자미근이다. 부드럽게 만지지만 가장 날카롭고 예민하게 아프다. 집에서 혼자 풀기는 어렵다. 안마대를 잡고 통증을 참아내면 그렇게 아프고 시원한지 모르겠다. 발바닥을 꾹꾹 눌러준다. 지금까지 통증은 날아가 버렸다.
마지막 단계로 안마사가 안마대 위에 올라서 두 손으로 어깨와 척추 부분을 눌러주는 큰 동작을 이어간다. 숙련된 손길이 요추까지 닿는다. 마지막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난타하며 등을 넓게 문지르고 마무리한다. 평소 내가 받아온 전신 안마다. 묵직하면서 가뿐한 기분이 된다.
시각장애인의 바우처 안마를 받은 지 2년 차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시간의 안마를 받아왔다. 바우처 안마는 기초연금 수급자나 국민 의료보험금 140% 이하 등 몇 가지 기준에 의해 선발된다. 나이 들어 자신의 몸 관리가 어려운 노약자에게 바우처 안마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나 같은 바우처 안마를 이용한 사람들에게 평생 2회 2년으로 끝난다. 보여주기식 생색내기 복지에 불과하다. 건강에 큰 도움을 주는 바우처 안마는 국민의 건강과 시각장애인 일자리 안정을 위한 사업과 잘 어울린다. 운용의 확대와 유연성은 당연한 일이다.
시각장애인의 가장 절실한 문제는 생업으로 이어온 안마의 안정적인 직업권이다. 안마사협회가 권익을 대변하고 시각장애인 협회가 있어 활동하고 있지만, 걸림돌이 많다. 나머지는 국가의 복지정책과 각종 장애인의 처우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점차 개선되고 있다. 안마 문제는 다르다.
시각장애인은 시력대신 소리와 촉감에 특별한 감각능력을 가지게 된다. 안마는 오래전부터 이어온 침구針灸(침과 뜸)와 더불어 중요한 의료행위였다. 그러나 안마사는 보건의료인이지 법정 의료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안마사의 의료행위는 국민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안마를 받고 싶어도 비용이 많이 들어 꺼리고 멀리하는 일반인들이 많다. 이로써 안마는, 활성화는 커녕 안마사의 활동을 위축시키며 민간요법 수준으로 폄하 당하고 있다. 특수 법인의 안마대학을 설립하여 졸업자에게 국가고시를 통해 법적 의료인의 자격을 부여하여야 한다. 이처럼 안마의 보험처리가 가능하게 되면 헌법소원 따위로 시각장애인들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불안과 희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안마대학과 대학원의 설립이다.
복지는, 어부에게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 혼자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홀로서기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포츠마사지나 여행에서 안마를 받은 경험이 많다. 그러나 감각이 예민한 시각장애인의 안마는 달랐다. 예민한 촉감으로 굳은 근육이나 불편한 곳을 찾아다니며 놓치지 않고 풀어준다. 감각의 차원이 다르고 몸의 느낌과 정성이 달랐다. 시각장애인이 가진 특별한 능력인 감각을 이용하는 안마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홀로서기를 도우는 일이 아닌가. 안마가 발전하여 극심층근과 어깨나 요통 등 특수 부분을 치료수준까지 올라서는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바우처 안마의 한 시간 과정을 마쳤다. 평소 열심히 걷는다고 하지만 사용하지 않던 근육을 안마사가 꼼꼼하게 만지고 풀어준다. 아픈 곳마다 이름과 기능을 설명하여 몸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다. 안마사의 정성 어린 손끝과 몸 관리의 조언도 큰 도움을 준다. 내일 아침이면 젊을 때 등산을 다녀온 것처럼 몸이 기분 좋게 뻐근할 것이다. 찌뿌둥하던 몸이 제자리를 찾은 듯 운동 후의 상쾌한 느낌이 되살아난다. 안마원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