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가 이렇게 본다 --오늘의동시문학 2013. 여름호
공간의 아우름과 만물의 어울림 / 백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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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필숙은 2002년 ‘아동문예문학상’에 동시가 당선되었고, 2007년에는 ‘구미문학예술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았으며, 2010년에는 첫 동시집 『얘들아, 3초만 웃어 봐』를 펴냈다. 올해로 등단 11년째를 맞은 이 작가의 주요 시세계는 첫 동시집 표제작에 들어 있다고 생각된다.
“얘들아, 3초만 웃어 봐,/괴어 있던 웃음/입속에서 나오는데/딱 3초면 돼.//먼저 입술을 살짝 당겨 봐./마음속에 숨겨둔 웃음을/목젖 너머에서/입 밖으로 발사!//그 순간,/콧등에 얹힌 안경알이 씽긋/하늘에 수줍은 흰 구름도 쌩긋/웃음 한 가닥 보탠다는 걸 아니?//지구 밖으로 날아간 웃음소리/하하하, 별마다 들렀다가/하, 내 마음속으로/되돌아온다는 걸 아니?//아주아주 크게/3초만/웃어보면 알게 될 거야.” —「얘들아, 3초만 웃어 봐」 전문
이 작품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우주와의 교감을 통해서 ‘웃는(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을 비롯해서 「짝발」, 「구름 저금통」, 「섬마을 바닷물」 등에도 서로를 배려해서 좋은 세상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곳곳에 담겨 있다. 곧 ‘좋은 세상’에 대한 우주적이며 적극적인 모색이 첫 동시집 작품들의 기저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이 이 작가의 특히 주목할 만한 작가적 요소라고 생각된다.
이번 신작시들의 주목할 만한 점은 두 가지이다. 첫 작품집의 주요 특징인 우주적 공간 활용과 관련되는, 서로 다른 공간의 아우름, 그리고 감각적 표현 활용이다.
달 시간에 맞춰/갯벌을 채웠다 비웠다 하는/밀물과 썰물처럼//해 시간에 맞춰/학교를 채웠다 비웠다 하는/우리도 바닷물이다. —「우리도 바닷물」 전문
나무가 가지마다/한 잎 두 잎 걸어 두었던 신발//뿌리한테 신기려고/한 켤레 두 켤레 내려놓는다. —「나뭇잎 신발」 전문
-일어나, 당장 일어나/-공부해, 얼른 공부해//화면 이동을 위해/더블클릭하듯//내게 공간 이동
시킬 때마다//엄마는/꼭 두 번씩 말한다. —「더블클릭」 전문
위의 「우리도 바닷물」에는 바다와 학교라는 두 공간의 아우름이 잘 나타나 있다. 이로 인해 달의 인력에 의해 들고 나는 바닷물의 움직임과 해의 뜨고 짐에 따른 우리의 등하교를 아주 성공적으로 조응시켰다. 그러면서 바닷물이나 우리의 생활이 ‘달 시간’과 ‘해 시간’에 따르고 있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연의 순리에 따른 삶의 행복도 함께 보여준다.
「나뭇잎 신발」은 신발로 본 나뭇잎을 매개로 해서 나무의 공중 부분인 가지와 지하 부분인 뿌리를 연결시켰다. 나뭇잎을 신발로 본 것도 참신하지만, 높고 깊은 두 공간의 활용이 작품의 길이는 짧으나 결코 작지 않은, 작품의 큰 품을 느끼게 한다.
「더블클릭」도 공간들과 관련돼 있다. 현상계와 가상계의 양립을 전제로 한 컴퓨터 마우스의 더블클릭과 엄마의 같은 말 되풀이를 재미있게 연결 지었다. 화자를 공간 이동시키려는 엄마의 반복적인 말이 귀찮다고 여기면 귀찮기만 하겠지만, 그것을 첨단적인 마우스의 작용으로 받아넘기는 능청스러운 재치와 여유도 전해져 온다. 이것은 디지털적인 삶과 아날로그적인 삶의 절충이 오늘날의 행복한 삶에 필요한 방편임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으로도 읽힌다.
낚/싯/대/끝/에//사과나무는 사과꽃을/배나무는 배꽃을/대추나무는 대추꽃을//매/달/아/놓/고//기다린다,/나비와 벌이/낚싯밥을 물 때까지. —「봄낚시」 전문
할머니 계신/파밭에 가 보았다//밭이 초록 줄무늬 옷을 입고 있다/가운데 웅크리고 앉은 우리 할머니/단추처럼 자리 잡았다//옷 한 벌/완성되었다! —「파밭」 전문
굴렁쇠는/간지럽다//바닥에/닿을 때마다//맨흙이/풀잎이//간지럼을/태워서//굴렁쇠는/굴렁굴렁.
—「간지럼 타는 굴렁쇠」 전문
「봄낚시」는 구체시다. 부분적으로 그렇다. 글자의 배열로 내용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해 보여주는 기법을 쓴 것이다. 그런데 제1,3연의 구체물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되겠다. 앞의 것은 낚싯대이지만, 뒤의 것은 낚싯대 끝마다에 매달아 놓은 낚싯밥으로 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낚싯대와 그 끝 미끼의 실물을 보는 듯해 재미있다. 그러나 이 기법 자체의 약점은 긴 여운이나 깊은 울림의 동반이 어렵다는 점이다.
「파밭」도 시각적 이미지화로 빚어낸 작품이다. 파가 줄 맞춰 심어진 것을 밭이 입은 초록 줄무늬 옷으로, 밭 가운데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를 단추로 비유하여 그 전체 풍경을 ‘완성된 옷 한 벌’로 깔끔하게 표현해 놓았다.
「간지럼 타는 굴렁쇠」의 이미지는 촉각이 지배적이고, 끝의 ‘굴렁굴렁’에서 시각도 함께 쓰였다. 의인화된 굴렁쇠가 굴렁굴렁 구르는 모습을 바닥의 맨흙이나 풀잎에 의해 간지럼을 타는 것으로 재미있게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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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란은 2010년 『오늘의 동시문학』 신인상 당선으로 공인된 창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에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자로 선정되어 2011년에 첫 동시집 『둘이서 함께』를 펴냈다. 지원금 수혜, 동시집 출간을 등단 2년 안에 이루어 낸 저력도 기억할 만한 일이지만, 첫 작품집에 나타나 있는 중심 시세계를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목도리를 선물 받았어/파랑, 빨강, 노랑/분홍, 보라, 하늘……/알록달록한 목도리//언니는 촌스럽다고 놀리지만,//분홍 옷 입으면/분홍색이 뛰어나와/어깨동무해 주고/파란 옷 입으면/파란색이 뛰어나와/친구 되어 주는……/알록달록한 목도리//다른 색과 어울리려고/이름을 잊어버리지 않는/목도리의 알록달록한 색깔.” —「어울리려고」 전문
위 작품의 제목에도 나타나 있는 것처럼 ‘어울림’이 첫 작품집의 기저를 이루는 작가의 중심 시세계라고 생각된다. 「섞어 놓기」, 「스며들기」, 「등 밀어주기」 등을 보면 외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내적으로도 어울리는 것, 곧 심신을 통한 공존, 상생, 조화 등의 덕목이 전체 작품들을 떠받치며 아우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점점 더 세계적이고 다양해져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을 어느 누구도 경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신작시들은 이러한 시세계를 잇는 점과 탐미적인 특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역시 주목하게 된다.
뱀은/땅을 만날 때//배로/꼬리로/가슴으로 만난대요//온몸으로 다가가/땅한테서/비밀을 듣는대요.//그 비밀을 알고 싶어/아프리카 사람들은/뱀을 섬긴대요. —「전설」 전문
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의/울퉁불퉁한/나무 등걸//다람쥐들 오르내릴 때/미끄러지지 않게/발받침이 돼 준다//산개미들 오르내릴 때/미끄러지지 않게/손잡이가 돼 준다.//추위에 껍질 터져 울퉁불퉁/비바람에 속터져 생긴 울퉁불퉁/나무의 그 상처들이. —「울퉁불퉁 계단」 전문
-아이쿠, 큰일 날 뻔 했네/텔레비전 앞에 있던 할머니/코를 찡그리며/주방으로 총총총 간다//빨래 타는 냄새.//-아이쿠, 큰일 날 뻔 했네./컴퓨터 앞에 있던 엄마/코를 찡그리며/주방으로 다다닥 간다//찌개 쫄아 타는 냄새.//소리 없어도/큰일 나지 않게 잡아끄는/냄새의 손. —「냄새의 손」 전문
3월에 내린 눈/잠시 왔다 가버리는데/나무 아래/남아 있는 하얀 눈//조금 더 있다 가라고/나무 그늘이 다독여/모아놓았나 봐.//그늘도/때로는/다독이는 손길이 되는구나. —「그늘도」 전문
위 작품 「전설」에는 뱀과 땅의 어울림이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뱀 섬김을 통한 땅과의 공존을 위한 사람의 모습도 함께 드러나 있다. 결국 사람들끼리만이 아니라 사람, 동물, 땅 등 모든 사물간의 공생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울퉁불퉁 계단」에는 나무들의 배려에 따른 딴 사물들과의 공존의 모습이 구체화되어 있다. 나무는 자신의 상처 자국들이 다람쥐나 산개미들의 발받침이나 손잡이가 되어 그들이 자신의 몸을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면서 함께 어울려 살아간다.
「냄새의 손」에는 형체가 없는 냄새와 사람의 어울림이 극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빨래와 찌개 타는 냄새가 손을 뻗쳐서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에 빠져 있는 할머니와 엄마를 잡아끌어 ‘총총총’, ‘다다닥’ 주방으로 가게 한다며 재미있고 여실하게 표현했다.
「그늘도」에도 따뜻한 보살핌의 어울림이 잘 나타나 있다. 3월에 내린 눈이 곧 녹아버릴 것이 안타까워 나무 그늘은 눈더러 조금 더 있다 가라고 다독이는 손길이 되어 준다. 그늘과 눈의 따뜻한 공생이 우리의 소원한 관계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냥 보아 넘기기 쉬운, 흔하고 사소한 장면에서도 삶의 중요한 가치를 찾아내는 작가의 밝고 깊은 눈이 돋보인다.
사람들이 비워둔 땅/아깝다고//몰래몰래/풀씨 들고 가서/뿌려놓고//몰래몰래/꽃씨 들고 가서/심어놓은 거,//바람/너지? —「너지?」 전문
애기/애솔/애순/애호박처럼//‘애벌레’라는/이름 속에도/아기가 들어 있다. —「애벌레」 전문
위 두 편에는 탐미적인 작가의 지향이 잘 나타나 있는데, 원래 ‘즐기다, 빠지다’의 탐(眈)보다는 ‘찾다’의 탐(探)에 가까운 탐미이다. 이미 주어져 있는 미를 즐기고 그것에 빠지려는 것이 아니라 찾고 만들어 내려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위 작품 「너지?」를 보면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바람은 그 땅이 아까워서 몰래몰래 풀씨를 뿌려놓고 꽃씨를 심어놓는다. 어쩌면 황량했던 빈터를 아름다운 풀밭과 꽃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빈터가 아름다워지면 마을이 아름다워지고 주민들의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세상이 또한 아름다워질 것이다.
「애벌레」에도 마찬가지의 시심이 잘 나타나 있다. 여리고 예쁘기만 한 ‘애기, 애솔, 애순, 애호박’과 ‘애벌레’를 동일시해 놓았으며, 사람들이 대개 징그럽게 보는 애벌레에서 예쁜 아기를 찾아내 보여준다. 어떤 대상을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추하다고 잘못 생각하지 말고, 아름다운 진면목을 바로 보아달라는 웅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