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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백이십보
1. 이 글의 목적
이 글의 목적은 정사론 제11 의 '일백이십보'라는 구절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에 있습니다.
我東柳規典尺爲步者 우리나라에서는 유엽전 과녁의 거리를 보로서 측량하는데,
爲一百二十步之定式 120보를 정식으로 하였다. - 정사론 한글풀이 제11 -
2. 보폭에 관하여
다음은 보폭에 관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입니다.
보폭(步幅)[보ː-]
〔보폭만[보ː퐁-]〕
「명사」
걸음을 걸을 때 앞발 뒤축에서 뒷발 뒤축까지의 거리. ≒걸음나비ㆍ컴퍼스「3」.
다음의 그림은 보폭의 길이와 측정 방법에 대한 그림입니다.
워킹을 주로 하는 경우와 일상에서의 보폭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 1. 보폭의 길이와 측정 방법>
다음의 <표 1>에서 현재 대한민국 성인의 표준 보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대 성인 남성인 경우 평균 65.9 cm이고, 여성인 경우는 평균 60.6 cm 정도입니다.
<표 1. 20대 한국성인 보행특성 분석>
☞ <표 1>의 출처 : 이병문,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보행속력에 따른 맞춤보폭의 적용』,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13권, 2013년.
http://ocean.kisti.re.kr/downfile/volume/kocon/CCTHCV/2013/v13n4/CCTHCV_2013_v13n4_35.pdf
3. 걸음과 발짝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아래 인용문에서 蹞는 반걸음 규인데, 跬 (반걸음 규)와 같은 글자입니다.
荀子曰, 不積蹞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河。
순자가 말하였다.
반걸음을 쌓지 않으면 천리에 이를 방도가 없으며,
작은 물줄기를 쌓지 않으면 강하(江河)를 이룰 길이 없다. - 『명심보감』 「근학」편 -
우리 속담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 인용문대로라면, 속담은 '천릿길도 반걸음부터'라고 해야 맞습니다.
다음은 걸음과 발짝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입니다.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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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1」두 발을 번갈아 옮겨 놓는 동작.
「2」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3」나아가는 기회.
「4」내왕하는 일.
「5」행동이나 활동 또는 결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6」((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두 발을 번갈아 옮겨 놓는 횟수를 세는 단위.
「7」『북한어』『기계』톱니바퀴에서, 하나의 이빨과 홈이 차지하는 활동의 거리.
「8」『북한어』『수학』함숫값 수표에서, 독립 변수의 값의 간격.
발-짝01
〔발짝만[-짱-]〕
「의존명사」
발을 한 번 떼어 놓는 걸음을 세는 단위.
『한국의 활쏘기』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정진명님의 '한국의 활쏘기'에는 거리의 척도인 보(步)에 대한 설명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중략(30쪽) 보법에 익숙치 못한 우리가 종종 혼동하는 것이 있다. 발짝과 걸음(步)이 그것이다.
'발짝'은 한쪽 발을 기준으로 할 때 다른쪽 발이 땅에 닿는 거리이다.
그런데 '걸음'은 한쪽 발이 허공에 떴다가 땅에 다시 닿을 때의 거리를 말한다.
즉, 발짝은 걸음의 반이 된다. 걸음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0cm가 되고, 발짝은 그 반이 된다.
걸음은 두 발을 번갈아서 한 번 내닫는 것을 의미하지만, '걷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말 걸음은 한 발짝과 한걸음을 모두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 걸음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步 (걸음 보)가 됩니다.
다음의 인용문에서 전문가조차도 보에 대한 정의에 갈등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의 원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걸음(보)라는 측정 단위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에게 정확한 거리보다는 하루 동안 얼마만큼 걸어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4. 주척의 변천사
조선시대에 마을 간의 거리나 훈련 교장의 거리 측정에는 주척이 사용되었습니다.
1보는 주척으로 6자입니다.
문제는 주척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대한궁도협회의 공식 사거리인 145미터에 대한 문제가 가끔씩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원인 때문입니다.
1) 주척의 도입
주척은 고려시대 말기에 주자학의 전래와 함께 사용되었을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음의 인용문은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조선 초기에도 주척의 길이가 서로 다름
다음의 인용문에서 조선 초기 주척이 도입되었던 시기에도 길이가 같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용문의 출처는 『조선전기 도량형제 연구』입니다.
3) 실물로 확정하기 어려운 주척의 길이
유물로 전해지는 주척은 많지만, 길이가 모두 다릅니다.
또한 주척이 만들어진 시기가 명시된 것이 희귀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전기 도량형제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척은 2미터 내외정도가 됩니다.
다음 사진은 고려대학교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주척입니다.
<그림 2. 주척,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그림 2>의 주척에는 '○磻溪遺品周尺'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유형원(1622~1672)의 호는 '반계'인데, 그의 저서가 『반계수록』입니다.
☞ <그림 2>의 출처 : Daum 블로그, 『조선시대 도량형』, http://m.blog.daum.net/zhy5532/15971976
4) 도본에서 확인된 주척의 길이
서책에서도 주척의 길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조선전기 도량형제 연구』에 의하면, 평균 길이는 20.3~20.6 cm 정도라고 합니다.
5) 최종적인 주척의 길이
대한제국에서도 주척의 길이를 확정하였습니다.
확정된 길이는 1주척 = 0.2 m 였습니다.
광무 9년(1905년)에는 법률 제1호로 도량형법을 정하고, 농상공부령으로 도량형기 판매규칙을 정하였습니다.
위 인용문의 내용을 일본제국에 의한 문화침탈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1보 = 주척 6자 = 1.2 m'라는 단위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명확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도량형의 정비는 산업사회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위 인용문에서 법률 1호라고 함은 법전의 첫 번째라는 의미가 아니고, 1905년도 당해에 첫 번째로 발표된 법률이라는 뜻입니다.
☞ 인용문의 출처 : 한국계랑측정협회, 『재미있는 단위 이야기』「우리나라의 단위 변천사」, http://www.kasto.or.kr/06_ass/ass_01_2.asp
여담입니다만, 위 인용문의 본문에서 중국의 양지주척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습니다.
길이단위는 양지주척(量地周尺 = 20.107 cm)을 기준기로 하여 1 步長 (1 보장 = 周尺 6尺= 120.64 cm), 1 里(1 리 = 300步(보) = 361.92 m)로 하였습니다.
양지주척의 기준에 따르면, 120보는 144.768미터가 됩니다.
현재 대한궁도협회의 표준 사거리인 145미터와 거의 같게 됩니다.
☞ 인용문의 출처 : 한국계랑측정협회, 『재미있는 단위 이야기』「중국의 단위 변천사」, http://www.kasto.or.kr/06_ass/ass_01_2.asp
5. 왜? 120보인가?
조선시대에는 과녁과 과녁에 따른 사거리가 다양했습니다.
유엽전 사거리는 왜? 120보일까요?
문헌에 남아 있는 기록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추정을 하려고 합니다.
단지 추정이기에 참고만 하시길 바랍니다.
말의 속도는 시속 6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이것을 초당 속도로 환산하면 16.67미터/초 정도가 됩니다.
다음의 사진은 흑의장군배 실전 활쏘기 대회의 이동과녁입니다.
<그림 3. 2014년도 흑의장군배 이동과녁>
비록 <그림 3>은 2014년도 것이지만, '흑의장군배 실전 활쏘기 대회'는 2015년과 2016년도 개최되었습니다.
☞ 흑의장군배 실전 활쏘기 관련 사항 : 동두천·연천신문, 『2015 제2회 흑의장군배 실전 활 쏘기대회개최』, http://www.ycgm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72
2016년도에 이벤트 게임으로서 희망자 전원이 참가했던 이동과녁 맞추기가 있었습니다.
경기 방식은 30초 동안 좌우로 이동하는 과녁에 5발의 화살을 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5발을 모두 맞추었는데, 그 중에서 김용복 접장님께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하여 1위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숙련된 궁사는 매 6초마다 한 번씩, 한 발의 화살을 정확하게 타켓에 보낼 능력이 있다.
<그림 4. 김용복 접장님, 가운데 앉아 있는 궁사분>
여담입니다만, <그림 4> 사진 뒤에 보이는 대학생 한 분이 영국 롱보우 #120 을 가지고 대회에 참가하였습니다.
그런데 김용복 접장님은 별로 힘을 안 들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120파운드 롱보우를 쑤욱하고 당기며 만작을 했었습니다.
6초 동안 기수와 말이 전력 질주를 하면, 약 80보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기수와 말의 이동 거리 = 16.67 미터/초 X 6초 = 100.2 미터 = 약 83 보
만약 전력 질주를 하며 돌입하는 적의 기마병에게 화살 두발을 쏘려면, 최소한 120보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120보에서 한 발, 40보(약 50미터)에서 한 발을 쏠 수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화랑정에는 근거리 습사용 50미터 과녁이 있기도 합니다.
돌진하면서도 활을 쏘았던 우리나라 기마병의 특성을 고려하면, 돌입하는 입장에서도 비슷하게 됩니다.
돌진하며 최소한 2발의 화살을 쏘고 무기를 칼과 창으로 바꿀 시간을 벌려면,
최소한 120보에서 활을 쏘고 40보에 활을 쏘아야만 무기를 바꿀 시간이 생깁니다.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이 추론을 합니다.
유엽전 과녁이 120보인 것은 전투와 전쟁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중 한 가지는 기마병의 돌격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다음의 동영상은 영화 『반지의 제왕』중의 로한의 6000 기마대와 오크 20만과의 전투장면입니다.
기마대 돌격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기에 인용해봅니다.
<동영상 1. 로한 기마대 6000기 VS 오크 20만>
☞ <동영상 1>의 출처 : 유튜브, 『티비플 - 이게 2003년도 영화라니...』, https://youtu.be/kX0r4y8Xo0Y
<동영상 1>은 영화 속 한 장면이기 때문에 과장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돌격하는 기마병에게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고 합니다.
<동영상 1>에서 오크 궁사는 활을 무려 3번이 쏠 수 있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게 쏠 수 있을까요?
속도가 붙은 기마대의 돌파력은 대단할 것 같습니다.
6. 유엽전 과녁의 크기
현재 대한궁도협회 과녁의 크기는 가로 6자 6치, 세로 8자 8치입니다.
이것은 조선시대 유엽전 과녁보다 약간 큽니다.
현재의 과녁의 크기가 정해진 시기는 다음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방 후 1948년 대궁 헌장에는 과녁이 ‘길이가 8척 (과녁 다리가 5촌), 너비가 6척, 거리는 80간 (480척)’이라고 되어 있다.
현재의 과녁은 1963년 개정된 대궁 규약에 의하여 확정되었다.
대회규정 제14조에 의하면, “본 협회의 정규 과녁은 폭 2 미터 (6자6치), 고 2미터 667(8자 8치)이며, 사정거리는 관저 중심에서 사대 중심까지 147미터 50으로 규정함” (1948 규정보다 과녁과 사거리가 모두 커짐)
현재의 사정거리는 1969년 대궁의 대회규정에서 145미터로 확정된 것이다.
☞ 인용문의 출처 : 화랑정 Daum 카페, 김기훈, 『과녁 변천사 연구소론』.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CSvH&fldid=Haxd&datanum=192&docid=1CSvH%7CHaxd%7C192%7C20111118232433&q=%B1%B9%B1%C3&_referer=V7kfJwkeLEGMZxGlgqZEmQ2mITjmUKnaIPtNqqgIQfI0
그런데 『조선의 궁술』에서 이중화 선생님은 유엽전 과녁의 크기를 가로 4자 6치, 세로 6자 6치로 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국궁 과녁을 유엽전 과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옛날 유엽전 과녁보다는 큰 것은 확실합니다.
다음의 그림은 대한궁도협회의 국궁 과녁입니다.
<그림 5. 현재 대한궁도협회의 국궁 과녁>
☞ <그림 5>의 출처 : Daum 블로그, 『국궁과녁/궁도과녁/과녁고무판』, http://blog.daum.net/kijong/17405388
<그림 5>에서 주변 테두리 부분은 위와 좌우가 1자이고, 아랫부분만 1자 2치입니다.
『조선의 궁술』에서 권장하는 유엽전 과녁의 크기는 현재 과녁의 눈썹과 홍심을 둘러싼 사각형을 합친 크기와 동일합니다.
가로 = 6자 6치 - (가로 1자) - (세로 1자) = 4자 6치
세로 = 8자 8치 - (상단 1자) - (하단 1.2자) = 6자 6치
<그림 5>에서 검정 부분만을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합성사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림 6. 합성된 과녁 사진>
<그림 6>에서 붉은색 ①번 과녁은 2관에서 검정 부분을 직사각형으로 잘라 내어서, 1관과 2관 사이에 덧붙인 것입니다.
노란색 ②번 과녁은 2관 전체를 잘라 내어서 ①번 과녁과 크기를 동일하게 맞춘 후에, 2관과 3관 사이에 덧붙인 것입니다.
비록 합성한 사진이지만, <그림 6>에서 다음 사항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120보 밖에 있는 옛날 유엽전 과녁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 궁사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과녁에 화살을 잘 보냈으며,
『부북일기』에 나오는 박취문의 150발 150중의 기록도 또한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 참고 사항 : 우인수, 『부북일기』, 울산박물관, 2012년.
다운로드 링크 :http://museum.ulsan.go.kr/open/open06.jsp?doing=view&cases=&sear=&ssort_code=3&pagenum=3
현대의 국궁 과녁이나 옛날의 유엽전 과녁의 크기는 사람에 비하여 무척 큰 편입니다.
그러나 기마병의 크기를 생각하면 과녁의 크기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녁의 세로는 기마 위에 바로선 기병의 키높이가 되며, 과녁의 가로는 말을 옆에서 본 넓이가 됩니다.
다음 사진은 티베트 활쏘기 대회의 한 장면입니다.
<그림 7. 티베트 활쏘기 대회의 한 장면>
<그림 7>의 과녁은 작지만, 과녁이 붙여진 나무판과 프레임은 국궁과녁의 크기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것은 과녁 옆에 서있는 분을 참고하여 추측한 것입니다.
기마 궁사는 비록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지만, 때때로 자신이 화살에 맞는 과녁이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적진에 돌입했던 선조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돌진하는 와중에도 활을 잘 쏘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과감하게 말을 몰아 돌진하면서도, 섬세하게 활을 쏘아 기선을 제압합니다.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기마술과 기마궁술은 현재의 대한민국 기갑부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의 기갑부대가 선조들처럼 과감하면서도 섬세하다면, 이러한 가정은 증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맺음말
보(步)는 두 발짝, 즉 두 번의 보폭으로 이동한 거리인 '걸음'을 의미합니다.
이 글은 정사론에 나오는 '일백이십보'라는 구절에 대한 자료를 정리한 것입니다.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엽전 과녁의 크기와 사거리가 기마 궁술과 관련이 있음을 유추해 보았습니다.
이 글은 현재 국궁 과녁의 사거리와 크기에 대한 적합성을 논쟁하는 글이 아닙니다.
기준은 정하기 나름입니다.
현재 국궁 과녁의 사거리와 크기는 정해진 것입니다.
옳으냐 틀리냐의 논쟁은 불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고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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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거리, 과녁의 크기보다는 그때의 환경이 명중률을 높혔다 봅니다. 지금은 스포츠와 건강증진 그리고 국궁의 활성화 및 확대에 목적을 두고 과녁도 크게, 거리도 고정 하였지만 조선시대 또는 이전시대의 활쏘기는 적을 살상 하기위한 목적에 두고 한발 한발에 집중을 하여 전투용 습사를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시 주 전략이 수성청야, 기습시 기마전임을 생각 해 보면 다양한 거리와 거리별 과녁의 크기를 달리하여 단거리와 장거리 활쏘기를 했을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