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그는 아버지의 등을 상속 받았다
최경순 시집
여는 글 / 4
비움을 노래하는 시인의 고뇌와 몸부림 … 심종숙 / 7
제1부 아버지의 등
고독 / 26
밥상머리 경전 / 27
임플란트 1 / 28
임플란트 2 / 30
와려蝸廬 / 31
아버지께 하고 싶었던 말 / 33
아버지의 등 / 34
갱년기 1 / 36
갱년기 2 / 37
부자유친 / 38
고독사 / 40
고역의 길 / 42
백세 / 44
세탁소의 풍경 / 46
희망 세탁소 1 / 47
희망 세탁소 2 / 48
별이 된 아부지 / 50
빈 의자 / 52
제2부 노랑꽃 산동백 하소연
첫사랑 / 54
수련꽃 / 55
화서花序 / 56
봄비 / 57
노랑꽃 산동백 하소연 / 58
산 동백은 여든아홉 번 핀다 / 60
붓꽃 / 62
메밀꽃 / 64
동백꽃 / 66
나팔꽃 / 67
명자꽃 / 68
바람꽃 / 69
홍시 1 / 70
홍시 2 / 71
홍시 3 / 72
홍시 4 / 73
첫눈, 산수유酒 / 74
딸랑, 헝겊 쪼가리 하나가 / 76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것 / 78
겨울은 태동의 계절 / 79
유월의 곡우 / 80
봄이랍시고 오는 삼월 / 81
제3부 초롱박 별이 되다
관계학 개론 / 84
성대로 우는 성대 / 86
동의보감을 안, 개犬 / 88
동장군 / 89
익어간다는 것은 / 90
옷의 변덕 / 91
파도는 나의 일기장 / 92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 94
숫돌을 베다 / 96
보초를 서다 / 98
조의 / 100
골방 / 101
폭설 / 102
모태 솔로의 비애 / 104
고독한 생각 / 106
풍경風磬 / 107
단풍이 죽다 / 108
고독은 파도처럼 / 110
초롱박 별이 되다 / 112
인력시장 노동자 / 114
COPD / 115
트럼프 카드 / 117
줄넘기 / 119
발바닥 일생一生 / 121
심리전 / 123
제4부 우럭의 비애
일출을 낚다 / 126
중추명월 / 127
노을에게 등을 내어 준 지게 / 128
밤하늘의 걸린 문패 / 130
폭염 / 131
오이도에서 저녁놀을 먹다 / 132
수제비 / 133
단풍도 식후경이라 / 134
주꾸미 예찬 / 136
문어 낚시 / 138
대왕 문어 / 140
문어숙회 / 142
우럭의 비애 / 144
갈치회 / 146
양파 / 148
책 등거리 / 149
---------------
<시인 소개>
프로필
최경순 시집
강원도 양양군출생
경기도 용인시 거주
자영업종 수원힐스테이트 광교
K99 호수 세탁소 대표
(사)문학그룹샘문 운영위원
(사)샘문그룹문인협회 운영위원
(사)샘문학(구. 샘터문학) 운영위원
(사)한용운문학 회원(샘문)
(주)한국문학 회원(샘문)
(사)샘문뉴스 회원
이정록문학관 회원
샘문시선 회원
<수상>
2024 샘문뉴스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2024 샘문학 샘문학상 시부문 등단
<공저>
개봉관 신춘극장
<컨버전스시선집/샘문시선>
-----------------------------
<여는 글>
강원도 두멧구석
아버지는 파란만장만 한 삶을 뒤로 한 채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행복을 꽃 피워 보지도 못하고
젊은 나이 만, 쉰 둘에 왜 별이 되셨을까!
주독이었다.
별이 되기 하루 전 날, 동 틀 무렵
달팽이처럼 뼈를 치켜세우지 못하는
몸을 하고서
이백 미터 가량 되어 보이는 다랑 논
풀뿌리 움켜 잡고서 기어오르셨다.
동내 주민이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자식들에게 가난을 대물림 해주고 싶지 않기에
애지중지하시던 아버지 등 같은 다랑 논
처차식들의 먹거리였을 터,
술 드시는 날이면
이 다랑 논은 너의 몫이라며
입 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뭔가 남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아버지가 되고 보니
어렴풋이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돌아가신지 한참 후에
비로소, 아버지 등을 상속 받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땅에
7년 전 쯤인가 나무를 심었다
뿌리를 내리는데 애먹었다
기초를 다지고 가지치기를 하니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다
설익은 열매지만 첫 수확 이였다.
급한 마음에 수확한 첫 물이라
당도가 떨어지는 것 같고
과즙도 풍부하지 않은 것 같고
크기 또한 실 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음이 쓰이기는 하지만
노력의 성과물이라
내 자신이 대견하다고 느껴졌다.
아무튼, 사람들 입맛에 맞았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첫 시집이 나올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지도해주신
샘문그룹 이정록 회장님,
신춘문예 샘문학상 시부문 등단시
해학적 평론을 해주신 심종숙 문학평론가
샘문시선 편집자 선생님들과
출판부 임직원 선생님들깨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끝으로, 물심양면으로 팍팍 밀어주고
응원해 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첫 시집 출간의 기쁨을 함께하겠습니다.
모두 사랑합니다
2024. 06. 27.
용인 서재에서 최경순 드림
------------------------------------------------------
<평설>
비움을 노래하는 시인의 고뇌와 몸부림
- 심종숙(시인, 문학평론가)
한 마리의 물고기는 낚시꾼에게 잡혀 제 온 살이 발겨져 종국에는 빈 가시로 아가미 호흡을 멈춘다. 시인은 빈 가시로 남아 죽어가는 물고기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시인은 이 물고기를 통하여 이 땅의 아버지들의 일생을 바라보고 있다. 최경순 시인의 시집 그는 아버지의 등을 상속 받았다는 이 아버지들(혹은 어머니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그는 “보시로 배알도 없이 다 빼 주고/추녀 밑 허공에 내 건/배고픔으로 가시고기”가 된 산사의 풍경(「풍경」), 「모태 솔로의 비애」, 「우럭의 비애」에서 인간의 말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자신의 전부를 던지고 시간과 함께 늙어 죽음에 이른다. 헌신적인 삶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국가나 민족, 사회, 이웃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사람들에게도 존재하는 일이다. 그러나 평범한 이들 특히 국가의 작은 단위인 가족제도 안에서 가정의 아버지들은 처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쳐왔다. 그러는 시간 속에서 인생의 황혼이 가까워 오면 삶을 성찰 해보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한다. 그 속에서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문득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분투해온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공허감을 느껴 허해진 마음을 여러 가지로 달래보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은 분명히 갱년기 이후에 느껴지는 감정일 것이다.
최경순 시인의 나는 아버지의 등을 상속 받았다는 분명히 지나온 삶을 성찰하면서 자신과 아버지, 그 조부의 삶을 관통하면서 이어온 아버지로서의 삶을 바라보고 있다. 성경의 창세기에 한 남자는 자신의 부모를 떠나 한 여자와 하나가 되어 일생을 밭을 갈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신이 그의 피조물인 인간에게 준 선물일까. 창세기의 에덴은 인간의 수고로움도 없이 모든 것이 주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스스로 지혜의 나무(선악과 나무)에 열린 과실을 따먹었고 그 원죄의 결과 고역의 삶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은 에덴에서 그들을 추방하였으나 끝까지 인간과 함께 있겠다고 하였다. 남자는 가족을 위해서 끝없이 노동을 해야 했고 자신과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 삶을 불태웠다. 생의 치열한 모습은 「나팔꽃」, 「인력시장 노동자」, 「COPD」, 「줄넘기」, 「중추명월」, 「책 등거리」, 「노을에게 등을 내어준 지게」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노역의 고통 속에서 인간은 신이 어디 있느냐고 부르짓기도 하였다. 그 삶의 시간들에서 시인은 생을 지탱하기 위해 낚시할 때의 긴장감처럼 살아왔을 것이다.
줄을 던지자
물이 미간을 찌푸린다
줄이 겹눈으로 물을 응시하며
동태를 살핀다
물은 호기심에 입을 내주며
입꼬리를 실룩거린다
양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줄은 뚝심으로 버티고 있다
불덩이 같은 해가
정수리를 핥고 있을 때쯤,
줄이 꼿꼿이 서며 순간 긴장한다
물의 뼈가 곤두선다
줄이 팽창하더니 힘줄에 날이 선다
물의 입꼬리가 파르르 떤다
팽팽해진 줄과 물 사이에 골이 생긴다
줄이 숨을 고르자
물이 긴장을 푼다
평정심을 잃으면 끝이다
순간, 줄이 물의 입꼬리를 낚아챈다
텅!
줄이 허공에 삿대질이다
물은 등골이 쎄하다
줄은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는다
물은 넋 나간 듯 물끄러미 바라본다
찌푸린 미간을 편다
「심리전」 전문
이 시에서는 낚시를 통해서 삶과 시인의 투쟁을 이야기 하고 있다. 사는 것이 자신과의 싸움이며 세계와 한 인간의 싸움일 것이다. 시인은 결코 만만치 않는 생은 낚시꾼과 줄에 꾀어있는 미늘을 무는 물고기와의 대치상태로 비유하고 있다. 시인은 그간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튼 간에 심리전을 치루어 왔으리라. 여기에는 낚시꾼이 물고기를 잡듯이 시인은 생에서 무엇을 낚아야 했을까? 그것은 생명을 지속시켜줄 영과 육의 빵과 꿈이지 않았겠는가. 줄과 물은 무엇을 상징할까? 줄은 시인 자신의 노동과 고역이다. 그리고 물은 세상일 것이다. 물은 바다나 강물일 것이며 낚시꾼에게는 물고기를 얻을 수 있는 장소이다. 즉 세상이다. 시인은 세상 속에서 낚시줄을 드리우고 살아간다. 낚시꾼에게 바다나 강이 없으면 안되듯이 그곳은 생명을 지속시켜줄 물고기 즉 영과 육을 먹이고 성장시킬 빵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 강과 바다는 또한 세상이다. 시인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시인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팽팽한 긴장 속에서 심리전을 치루면서 하루 하루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다. 이 삶의 영위는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자신에게로 상속된 등이며 지게이기도 하다. 삶의 무게를 지게에 진 등이 최경순 시인에게는 이 시집이 탄생하는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이 무게의 토대를 시인은 단순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가족사의 연대기 속에서, 아버지가 져온 삶의 무게를 사랑의 따뜻한 시선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진솔하면서도 그 노역의 어려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잘 갈무리하여 원망과 불평불만의 그림자는 지워져 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그에 이르기까지 인내의 노역을 발과 낡은 운동화 한 켤레에서 보여주고 있다.
신과 발은 데칼코마니다
신발에 묶인 코뚜레는
너와 나의 삶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
지구의 궤도를 수없이 이끌고 온 궤적
죽어선 일용할 양식으로 내어주고
거죽은 신발로 품어 주니
닳고 닳은 울음 웅크린 소 등처럼 낡아
색 바랜 운동화 한 켤레
허기진 골목을 먹여 살린다
발품 판 만큼 끼니다
너와 나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밭
냉혹한 가시밭, 자갈밭 같은 삶
고역苦役의 길을 걷는다
맨 밑바닥이 본적지인 신발
거리의 온갖 더러운 것들을 무릎 꿇리며
때론, 시궁창에 빠지기도 하며
허덕거리는 가난에
소의 마지막 고름마저 짜낸다
운동화 몇 켤레를 버려야
오롯이 내가 될까?
「고역의 길」- 낡은 운동화 한 켤레 전문
“맨 밑바닥이 본적지인 신발”처럼 발은 또한 같다. 이 둘이 데칼코마니다. 발은 신체에서 제일 아래에 있고 머리나 얼굴에 비하면 낮은 존재이지만 이 시에서는 발과 데칼코마니인 신발을 높이고 있다. 발은 신체의 제일 아래에 있어 더럽고 중요성이 약하게 취급되었으나 시인에게는 온몸을 지탱해주는 중심이다.(“몸통의 끝/변방에서 몸통을 지탱해 준 대들보,/중심이 되어 온 발바닥” 「발바닥 一生」) 발은 시인의 생을 지탱해온 상징물이며 발의 집인 신발 또한 등가이다. 발은 곧 겸손의 자리에 있다. 온몸을 지탱하였음에도 제일 아래에 있듯이 가장 낮은 자의 겸손함을, 다 내어주고 비어진 바보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다 내어주어서 바보가 된 발이 어쩌면 대접도 못 받으면서도 거기에 불평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뚜벅이와 같다. 길을 걸어가는 것은 발이며 발의 집이 신발이므로 움직이고 지속되어온 생의 고역을 노래하는 시이다. 발은 몸의 뼈이며, 낚시줄에 고기가 걸려 그 움직임으로 물이 일어나는 것을 물의 뼈라고 표현하였듯이, 신체의 뼈대로 시인은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에서 몸의 살만 있고 뼈대가 없이 껍질을 집으로 삼고 살아가는 달팽이나 민달팽이와는 대조적이다. 낡은 운동화를 통해 고역이 지속되는 삶의 비애를 노래하였지만 시인은 운동화를 몇 켤레를 버려서라도 오롯한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다. 그 길은 무언가. 아마 시를 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시를 쓰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성찰하면서 전인간적인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것이 지향점일 것이다. 이제까지 생을 지탱하는데 바쳐졌다면 갱년기 이후 후반의 인생에서는 성찰의 시쓰기가 그에게 새로운 꿈이 될 것이고 노역일 것이며 길이 될 것이다. 신과 발, 낚시꾼과 줄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며 하나의 연결고리이다. “발품 판 만큼 끼니다”라고 하였듯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걸어왔던 노역을 그는 아프게 되돌아 보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숭고한 희생인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들을 위하여 시인은 모래밭, 가시밭과 자갈밭을 걸어왔고 “닳고 닳은 울음 웅크린 소 등처럼 낡아/색 바랜 운동화 한 켤레/허기진 골목을 먹여 살린다”라고 했듯이 긴 울음과 웅크린 소, 색 바랜 운동화, 허기진 골목을 먹여 살리느라 수고를 해왔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삶은 평범한 아버지들이 겪는 일이다. 최경순 시인은 그런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서 아버지의 등을 물려받았다고 고백하였다. 이 고백 속에는 아버지가 등으로 졌던 삶의 무게를 자신 또한 지게 되면서 아버지로서의 무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차가운 봄볕 등에 업고
물컹한 살이 뼈를 치켜세우지 못하는
민달팽이처럼
풀뿌리를 부여잡고 우묵배미 기어오르다
밭이랑 같은 봉분이 되었다
어둠을 덮은 소쩍새 울음이 별을 부르고
달맞이꽃 등불 밝히니
아버지 파란 등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본다
숨찬 뭇 별,
스스로 둥글게 말아 그를 감싸고 반짝이며 환하게 웃는다
그는 아버지 등을 상속받았다
「아버지의 등」 부분
이 시는 달팽이의 살과 껍질인 집과 아버지의 일생을 대조하면서 쓰고있다. 최경순 시인은 가족사의 아픔을 통해 예리하게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살아온 삶을 비추어 준다. 그가 자신의 가족사를 통하여 아버지들을 기억하고 추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별히 알아주어 기념하는 하지도 않지만 평범한 아버지들은 가족의 존경을 받으며 추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최경순 시인은 이런 분들을 위해서 이 시를 쓴 것 같기도 하다. 역경의 세월을 민달팽이처럼 아픔마저도 감싸고 역경을 헤쳐나오고 일구어온 삶의 대물림 속에서 시인은 하늘의 별이 되신 아버지를 바라본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처절한 아버지 사랑인가. 그 아버지(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삶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인내하여 지금-여기에 이르게 하여 한 가족을 잘 꾸려왔던 시인의 역사를 복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기는 「갱년기 1」이 보여주는 것과 같이 생의 “긴 터널을 빠져나와/오춘기 역에서 하차/봄으로 갈아탄 초록 단풍”의 마음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는가. 생의 아름다운 갈무리를 위해 시인은 애잔하면서도 사랑 가득한 어버이의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다. 비움의 여정은 바로 오춘기 역에서 하차하여 마음의 여행을 떠나면서 또 물리적 시간을 정지 시키고 바다를 찾아가고 취미로 낚시를 하면서 그는 상념을 정리하여 오지 않았을가 추측해 본다. 그 속에서는 「밤하늘에 걸린 문패」와 「고독사」에서와 같이 자기의 경험만이 아니라 삶과 고독에서 싸우다 쇄멸해간 이웃들의 슬픔 역사를 그리고 있다.
허름한 이야기 속 페이지를 넘기자
거미는 입안 가득
빈곤의 집을 짓고 있었다
수북이 쌓인 먼지처럼
세월의 여류를 알 듯 모를 듯
괘종시계의 허기진 부랄 추만이
간당간당하게 밥을 떠먹고 있다
누렇게 찌든 벽지엔
담배꽃으로 그을려 있는 것이
거미는 습관적인 골초다
골방은 메케한 묵은 공기를
오랜 시간 가둬 두고 살았다
두 구멍 콘센트는 둘이라서 덜 외롭다
그나마 부지런한 것은 콘센트뿐,
한 구멍은 냉장고에 고정되어 있었고
또 다른 한 구멍은 낡은 전기장판에
아날로그 텔레비전에
라디오에
전기밥솥에
목숨줄처럼 붙들고 있다
추위를 녹이려는 듯
보온으로 해 놓은 꽤 오래된 가마솥,
끓어 넘친 얼룩이 말라붙은 장판 위에는
시간을 잊은 밥솥이 덩그러니 있고
밥솥 밑, 흰 봉투 속에는
집을 치워 주시는 분은 국밥이나 한 그릇 드세요,
개의치 마시고"란 문구가 찡하다
삼등분으로 잘 접힌 5만 원 권 지폐 몇 장에
미안한 마음이 읽힌다
거미는 고단함을 내려놓았다
그 삶의 버거움을
혼자 살다 혼자 떠난 고독사
조문객의 조의도 없다
꽃상여 놀이도 없다
눈물을 흘리는 자손도 없다
그냥, 바람 곁으로 갔다
「고독사」 전문
이 시는 리얼리티를 지니고 있고 고독사로 생을 마무리하는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의 어둠을 잘 묘사하였다. 더구나 시인은 고독사로 죽은 사람을 거미에 비유하여 그의 낡고 오래 되었으며 빈한하고 슬픈 이야기를 하게 한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입에서 토해내어 허름한 생의 집을 짓듯이 시인은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적인 기법 속에서 고독하게 죽은 한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거미를 통하여 하게 한다. 이 시는 독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와 같은 비극적 쇄멸이 이웃들 안에서 비일비재한 후기 산업사회의 현상은 재난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 속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언제 정리해고 되어 인력시장을 떠돌며 그날의 끼니를 연명해야 할지 모르는 암울한 현실의 단면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다.
꼭두새벽 가로등 눈꺼풀이 무겁다
게으른 어둠의 꺼풀을 벗겨서
새벽을 꾸리는 고달픈 인생,
반짝 열리는 인력 시장,
고통의 궤적이 쌓여 가는 곳
파이고 덧난 굴곡진 삶처럼
허공이 무너질 듯 배고픔
한 끼라도 배부르면 그만,
이들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는 없었다
오로지 간택만 있을 뿐,
「인력시장 노동자」 전문
그날 그날 일감을 받아 하루를 연명하는 인력시장의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선택의 권한이 없다. 그들은 가엽게도 선택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불균등한 노동시장의 현장에서 시인은 고통스런 삶을 대한다. 한 끼니를 벌기 위하여 첫새벽에 일어나 일을 구하러 가지만 간택 받지 못하는 이들은 하루를 공치고 돌아온다. 고통스런 삶은 가난과 질병, 소외와 고독, 차별과 배제 등에서 기인한다. 죽음과 같은 고통 속에서 존재하는 이웃들은 「밤하늘에 걸린 문패」에서 시인에게는 별이다. “마음에 새긴 문패 하나/별이 되어/밤하늘에 다는 일”이 시인에게는 그들을 위한 기념행위로써 시쓰기일까. 그들의 비참한 죽음을 시인은 존재의 존엄함을 회복하기 위하여 밤하늘에 별이 되게 함으로써 그의 문패를 달아주는 행위로써 시쓰기이다. 이 고독한 쇄멸은 「초롱박 별이 되다」와 「고독은 파도처럼」에서 극복하려는 몸부림을 보이고 있다. 그 몸부림은 시인의 몸부림이기도 하면서 우리 이웃들의 몸부림으로써 동일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그런 영혼을 위해 기꺼이 고뇌의 몸부림을 언어로 표현할 전사적인 자세를 갖추고 있다. 그의 많은 시편들이 현대시의 미학을 지니면서도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지니고 세상으로 들어가 그는 적절한 형상의 한 삽을 뜬다. 거기에는 분명히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방만하고 도취된 기만의 가면이 벗겨지고 진실의 현장을 시인은 그려내고 있다. 「수제비」는 동화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변형하여 수제비를 인어의 비상으로 환유적으로 표현하였다.
비상을 꿈꾸는 인어는 날개가 없다
추락은 자명한 일
툭, 툭, 살점을 떼어낸다
손끝에서 미끄러지듯 물 등을 타고
가마우지가 물속을 읽어내듯
연신, 자맥질이다
인어는 물 등 위에서 잠방잠방
사내는 꿈을 꾸다가
뜨거운 물의 아가미에 갇혔다
물의 뼈가 물살을 일으키며
인어를 껴안고 잠수 중이다
비로소, 몸이 달궈진 다음에야
떠오르는 인어, 날개가 돋았다
드디어 그녀는
숟갈 타고 비상한다
「수제비」 전문
동화 속 인어공주와 「「수제비」 속의 인어는 많은 거리를 지닌다. 그것은 시인이 동화속에 나오는 인어공주의 비극성을 초월의 세계로 재창조한다. 동화의 스토리텔링 구조를 변형하여 인어공주는 날개가 돋아 날아간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수제비가 제 살점을 떼어내어 바닥을 곤두박질 치는 아픔(수제비를 끓는 물에 떼어넣어 요리하는 모습)과 비천의 도가니(=국물이 끓는 냄비속)를 겪으면서 견뎌온 세월이 수제비를 끓이는 것과 일치된다. 금이 정련이 되려면 도가니에 넣어 열을 가하듯이 수제비는 열을 가하여 끓어서 익으면 냄비 바닥에서 다시 뜨지 않는가. 발바닥이 몸의 중심이라는 시인의 사고는 수제비 요리에서 우리에게 수제비가 인어가 되어 비상하고 금이 정금이 되는 깊은 생의 철학을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형상화해 내었다. 이는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해석, 본질을 꿰뚫어 가는 시인의 눈매가 보이고 자유로운 창조적 상상력이 시의 미학으로 적절한 형상의 옷을 입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 다음 단계로는 삶에 대한 여유와 고상함의 미학적 경지가 찾아온다. 그 자세는 시 「메밀꽃」에서 보인다. 여기에서 백로는 그 경지에 다다른 시인 자신을 상징하고 있을까. 아니면 백로를 자신으로 의인화하였을까. 가을 풍경속 메밀꽃을 하얀 물안개로 비유하여 그 풍경을 바라보는 백로는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태도와 메밀꽃 군락이 자아내는 몽환적이면서도 고고한 여유의 시학을 엿보게 한다.
조붓한 산길에 밟히는
볼기짝만 밭뙈기들
조각조각 이어 붙인 이랑에
가녀린 붉은 대공 위
한가득 물안개를 쓸어 놓았다
이른 새벽
백로白鷺가 물안개 속을
어슬렁대니 고요가 깨졌다
바람 한 점 스칠 때마다
포화泡花처럼 하늘거린다
빛나는 햇살이 투영된 백로白露
명징하게 빛난다
몽땅 뭉쳐야 아름답다
꽃도 그렇다
군락을 이룬 물안개가 황홀하다(중략)
백로의 눈물로 얼룩진 늙은 소나무
선들바람 머문 가지에 홀로인 백로
머지않아 사라질 물안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애처로운 듯
날갯짓에 가을이 바스락거린다!
「메밀꽃」 부분
이 시는 가을의 고요한 새벽에 메밀꽃 군락과 한 마리 백로의 동태를 그리고 있다. 새벽녘 선들바람과 백로의 날개짓이 그 고요를 깬다. 그 백로는 고난의 세월을 지나왔고 이제 늙은 소나무에 앉아 쉬면서 여유를 지니고 있다. 메밀꽃 무리는 시인의 눈에 조석의 기온 차가 있는 가을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연상한다. 이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연결고리가 논리적인 연상이다. 그리고 백로는 늙은 소나무 가지에 앉아 머지않아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질 물안개를 바라보듯 얼마 안 있으면 지게 될 메밀꽃을 애초롭게 바라보면서 날개짓을 하여 가을의 적요는 소리가 난다. 사실상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표현은 시인의 상상속에서 백로가 고요를 깬다고 생각할 만큼 가을의 새벽녘 고요의 장면을 시인은 포착하지 않았을까. 꽃이 지듯이 물안개가 사라지듯이 인생도 머잖아 가을처럼 저물 것이지만 시인은 그 고요함 속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 이 내적 고요의 평온함은 백로의 눈물어린 시간들을 지울 것이다. 그것은 고요의 시간에 머무는 만큼 지워질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 시에서는 메밀꽃을 물안개로 비유하여 상상력을 확장하고 흰색과 새벽의 고요가 기묘하게 잘 어울려 신비감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몽땅 뭉쳐야 아름답다. 꽃도 그렇다/군락을 이룬 물안개가 황홀하다”라고 하였듯이 세 소재의 어우러짐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인은 군락을 이룬 메밀꽃을 물안개로 상상하면서 황홀경에 빠진다. 새벽이라는 찰나의 시간대와 머잖아 지게 될 메밀꽃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생의 황혼을 생각할 수도 있을테지만 시인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동틀무렵 태양빛이 영롱하다. 그의 가슴에는 “빛나는 햇살이 투영된 백로白露”가 명징하게 빛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자신의 존재는 쇄멸해가지만 그의 영혼은 점점 백로(흰 이슬)가 되어 가고 그것은 한 마리 흰 새 백로가 되어 하늘에 이른다. 그의 시적 상상력과 시심은 여기까지에 이르렀다. 백로(흰이슬)가 아침햇살에 투명하게 되어 영롱하게 빛나는 기상현상의 이치를 시인으로서 인간의 영혼을 보배롭게 쪼아내는 시정신이 만들어낸 아우라이다. 동음이의어의 언어유희(애너그램)가 가볍게 되지 않고 무게감을 지닌 생의 철학과 신비세계로 재창조됨으로써 시가 지니는 미학을 높은 경지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쓰기의 솜씨는 바로 최경순 시인 시가 지니는 강점이다. 여기에는 현대시가 지니는 미학과 리얼리즘의 미학이 어우러지면서 동양적인 신비의 세계로 시상을 이끌어 간다. 그러면서도 생의 철학을 진지하게 이끌어 내는 철학자적이면서 전인간적 경지에 오르기 위하여 길을 가는 시인의 면모를 보여 주어서 더욱 보배로운 결실을 맺고 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