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77>
서거리깍두기
심영희
풍물시장에서 서거리(명태 아가미)와 무를 사가지고 와서 깍두기를 만들었다. 결혼 전 우리 집에서 겨울 김장 때면 별미로 먹던 김치 중 하나다. 태어난 내 고향 횡계리는 대관령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릉하고 영서와 영동으로 갈라졌지만 일상 생활에서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강릉 시장에서 장을 보아오기 때문에 음식문화도 거의 영동인 강릉지방의 음식을 해먹는다.
하기에 이 서거리깍두기도 강릉을 중심으로 바닷가인 영동지역서 즐겨먹는 김치다. 이 깍두기 맛에 길들여진 막냇동생이 결혼 후에도 계속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는 서거라깍두기를 먹다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큰언니가 대를 물려받아 동생 서거리깍두기를 해줬는데 몇 년 전에 큰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이 서거리깍두기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우리 남매들 중에 내가 유일하게 되었다. 그래서 큰언니 돌아가신 후 몇 번은 깍두기를 해 줬는데 몇 년은 해주지 않았더니 지난 12월 9일에 내가 강릉을 간다고 하니 서거리 사다가 깍두기 좀 해주지 하는 것이였다.
고향의 맛이 얼마나 그립고 어머니와 큰언니 생각이 났으면 서거리깍두기를 찾을까 싶어 해주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강릉에서 강원문인협회 이사회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강릉 어시장에 들리지 못하고 그냥 춘천으로 왔다.
12일 춘천풍물시장 장날 일찌감치 시장에 나갔다. 생선 파는 곳을 모두 둘러 보니 딱 두 군데에 서거리 파는 곳이 있었다. 집 가까운 생선좌판에서 서러리도 사고 무도 사가지고 와서 서거리와 무를 손질하여 깍두기를 만들어 5등분으로 나누었다. 세 동생과 딸, 내 몫이다. 다섯 통으로 나누다 보니 양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흐뭇하다. 내가 만든 음식으로 가족들의 입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이런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딸네 집에는 벌써 갔다 줬고, 세 동생은 19일에 연말모임으로 만나기로 했기에 그날 한 통씩 나누어 주려고 발코니에 보관 중이다. 이렇게 먹는 음식에서도 유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게 사람들의 마음이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