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을 택하라!/신 30:15-22
신명기 30장은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남긴 긴 설교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보면 됩니다.
31장, 32장, 33장, 34장은 모세의 시대가 끝나고 여호수아 시대가 시작이 되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호수아서로 넘어가는 부분이거든요.
모세는 신명기 27장, 28장, 29장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아주 강하게 선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설교를 듣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나마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은 괜찮았겠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자신이 없었을 겁니다.
모세의 설교를 듣고서는 어깨가 축 쳐져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신명기 30장에서는 모세가 다시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가 비록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고 또 때로는 범죄해서 하나님 앞에 심판의 채찍을 맞을지라도 너희가 스스로 자기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10)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각종 율례와 법도는 지키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11-14)
그러면서 오늘 본문 말씀이죠?
15절부터 20절 말씀에서 다시 한 번 순종과 불순종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 말씀을 하면서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받게 될 것이고, 불순종하면 사망과 저주가 있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너희가 선택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과 복을 선택하시겠어요? 아니면 사망과 저주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생명과 복을 선택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다 청개구리 심보들이 있어서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죄악의 길로 가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 사망과 저주를 선택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니까요.
창세기 1장 11절과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온갖 풀들과 씨 맺는 채소들과 열매 맺는 나무들을 만드시고 그걸 보시면서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릅니다.
“자, 이제부터는 내 사랑하는 인간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게 되겠구나.”
그러시면서 창세기 1장 29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거리가 되리라.”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창세기 2장 16절 17절에 뭐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 주신 채소들과 각종 식물들과 맛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나무,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먹으면 어떻게 된다고요?
“먹으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
먹었어요, 먹었어! 에덴 동산에 있는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의 채소와 나무의 열매들을 다 놔두고서 왜 하필이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그걸 먹었느냐고요?
어떤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하나님이 참 나쁘대요.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만들어 놓으셔서 우리 인간들이 그걸 따먹게 만들었느냐는 거예요?
아니, 세상에 하나님이 그걸 따 먹으라고 그랬느냐고요?
죄악에 눈이 어두운 인간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놓고서는 이제와서 그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로봇으로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꼭두각시처럼 시계태엽을 감아서 움직이게 하는 장난감 병정처럼 그렇게 만드시지 않으셨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똑같이 만들어 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우리 인간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신 거예요.
그런데 그 자유는 마음껏 누리려고 하고 그에 따르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기를 싫어하면 되겠어요?
오늘 본문 말씀을 한번 보실까요?
15절과 16절을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봉독하시겠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면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아멘!) 거기까지만요!
그 다음에 17절과 18절은 저만 봉독하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여러분들에게는 생명과 복만 임하시라고 17절과 18절은 제가 읽었습니다.
찝찝하잖아요?
그리고 19절과 20절에서 다시 한 번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함께 봉독하시겠습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아멘!)
자, 이제 저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에 무엇을 두셨다고 하셨어요?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를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희는 무엇을 택하라? - 생명과 복을 택하라!(할렐루야!)
생명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복을 선택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옛날에 유행하던 노래 중에 이런 노래가 있었습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안 되는 줄 알면서 굳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살지 않고 일부러 그 길을 떠나서 살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이라는 것이 아주 단순한 거예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렇게 살지 못하고 그 반대로 살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모세가 설교하고 있는 내용이 바로 그거 아니겠어요?
순종하면 생명을 얻고 복을 받게 되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되고 사망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
생명과 사망 사이에는 중간 상태는 없습니다.
‘난 생명도 아니고 사망도 아니고 그냥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을 거야!’
그게 됩니까? 그게 가능한 얘기예요?
생명 아니면 사망입니다. 복이 아니면 저주인 거예요.
진주에 합동정통측 교단에 신학교가 하나 생겼는데 제게 설교학을 맡아서 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지난주부터 나가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거기에 공부를 하러 오는 신학생들을 보면 아주 각양각색입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다가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쉬고 있는 분도 있고요, 그런가 하면 창원고등학교 교무부장 선생님도 오시는데, 나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으신 분이시거든요.
한문학을 공부를 해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신 분이신데, 뒤늦게나마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기 위해서 공부를 하러 오셨더라고요.
그런데 이 분들을 보면 다들 한결같이 얼굴이 환해요.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대요.
옛날에는 자기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지 않으니까 되는 일이 없더래요.
그렇다고 말씀을 떠나서 산 것도 아닌데도,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아니라 내 자신이 되다 보니까 끝없이 욕심만 생기고 그 욕심 때문에 어려운 일들이 자꾸만 생기더래요.
그런데 그 나이에 신학을 하겠다고 나와서 앉아있으니까 그렇게 편하고 좋더랍니다.
신학을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고 보니까, 그렇게 마음이 편하고 좋더라는 거예요.
19절 하반절 말씀을 보니까,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복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우리가 생명을 택하고 복을 선택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20절에 있는 말씀처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선 첫 번째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따라합시다.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할렐루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시는데요?’라고 물으면, ‘글쎄, 뭐.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사랑하죠.’ 그렇게 대답을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지금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나 추상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안 하세요?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뭔가 좀 눈에 보여지게 하는 것이 있다면 헌금을 드리는 것? 그 정도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면 헌금을 더 많이 드릴 수가 있겠죠?
그러나 사실은 아무리 헌금을 많이 드린다고 해도 그것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셨는데요, 다 같이 따라해 보실래요?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옛날 성경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했는데, 자구가 조금 바뀌었죠? -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웃, 자기 형제, 자기 부모,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못하면 되겠어요?
그러니까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서 나와서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여쭈어보았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로 그거였잖아요?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우리들의 눈에 보이시는 분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들을 우리들에게 보내 주셨는데, 그 하나님의 형상들이 지금 여러분들 옆에 앉아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들을 극진하게 대접해야 되고요, 엄청나게 배려하고 사랑해 주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명과 복을 택하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해야 됩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따르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서 잘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과 복이 임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듣기는 듣는데, 나가서 사는 모습을 보면 영 아니니 경우들이 참 많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당들의 말을 듣고 무서워서 무당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점쟁이들한테 물어보고 점쟁이들의 말을 청종하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
하나님 말씀은 들을 땐 재미가 있는데, 그러니까 ‘청’(廳)은 되는데 ‘종’(從)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것이 안 되는 거예요.
말씀을 잘 듣고 들은 말씀을 따라 사시기 바랍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잘 쓰시는 말이 있죠?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과 복이 넝쿨 채로 굴러 들어오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죠?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복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인터넷이 발달해 있어서 뭐든지 다 인터넷을 뒤지면 다 나오니까 너무 인터넷을 의지하고 사는 것 같아요.
심지어 신앙 상담도 목사님께 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을 하면 바로 나오니까 그걸 보고 거기서 하라는 대로 하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별로 답답할 게 없는 모양입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고 싶으면 세 여자들을 잘 들어야 된다고 그러죠?
첫 번째는 어머니의 말씀이고 두 번째는 자기 부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세 번째는 네비게이션에서 나오는 여자의 말을 잘 들으면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거 같아요.
생전 처음 가보는 길도 네비게이션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지 다 찾아 갑니다.
그러니까 운전을 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운전석에 앉으면 먼저 기도부터 했거든요.
‘하나님 안전하게 운전 잘 하게 해 주시고, 질을 잘 찾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꼭 기도 먼저하고 그리고 운전을 했거든요.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는데, 지금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들이 많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인간이 교만하다 또는 겸손하다.’라는 판단의 기준은 뭘 가지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얼마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느냐 혹은 자기만을 의지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겸손한 사람인지 교만한 사람인지가 판명이 나는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약4:6)
하나님을 의지하세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생명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자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뭐든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통신회사입니까? 핸드폰 광고입니까?
그 광고를 보니까 뭐든지 생각대로 다 된다는 그런 광고를 하던데요, 그러나 선택은 자유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반드시 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