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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편. 繫辭傳 下.
제 5장. -----12 ☰ ☱ ☲ ☳ ☴ ☵ ☶ ☷
◎ 天地絪縕 萬物化醇
천지인온 만물화순
男女構精 萬物化生
남녀구정 만물화생
易曰 三人行則損一人
역왈 삼인행즉손일인
一人行則得其友 言致一也
일인행즉득기우 언치일야
[풀이]
䷨ (山澤損,산택손).
천지가 실타래처럼 뒤엉켜 돌아가면서 만물이 번성하고,
남녀가 교접하니 자식 만대가 생겨난다.
易(역)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같이 가면 한사람을 잃고,
홀로가면 친구를 얻는다' 하는 것이
바로 저 둘이 하나로 되어 간다는 말이다.
[해설]
'損卦(손괘)' 육3의 경우이다.
심취제와 김상악의 해설을 참고해 보자.
'천지가 얽히고 설킴[天地絪縕,천지인온]'은 합하여 하나가 됨이고,
'남녀의 정기가 얽힘[男女構精,남녀구정]'도 합하여 하나가 됨이다.
'하나를 덜고 하나를 얻음[損一得一,손일득일]'도 하나가 됨이니,
군자가 교제를 정하는 것도 하나 되려는 까닭일 것이다.
하나가 되고 나면 급히고 편다.
神(신)이 굽히고 펴서[神之屈伸,신지굴신]
만물을 변화하고 생기게 하는 것 역시 신이 하나이기 때문이다[神之一故,신지일고].
천지가 얽히고 설킴은 기운의 사귐이기 때문에 '변화하여 엉긴다[化醇,화순]' 하였고,
남녀가 정기를 얽음은 형체의 사귐이기 때문에 '변화하여 생긴다[生化,생화]'고 하였다.
'咸卦(함괘)'에 하나를 이룸[咸之致一,함지치일]은
道(도)가 본래 두 가지가 아니니 하나로 귀결하는 것이고,
'損卦(손괘)'에 하나를 이룸[損之致一,손지치일]은
사람이 이 道(도)를 본받아 하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위의 謙窩(겸와)와 韋庵(위암) 같이 白雲(백운) 沈大允(심대윤)도
'道(도)의 극치는 하나 됨[一者道之極致,일자도지극치]'에 있다는
주석이 특별히 자상하여 그 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내용이 심오하고 탄탄하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글과 내가 하고 있는 이 일,
즉 글과 일이 하나 되는 書事一通(서사일통)이 될 때가지 잘근잘근 씹어보라 한다.
설명이 좀길다.
"『중용』에거 '내외를 합한 道(도)는 때에 맞게 두어야 마땅하다'고 적었다.
이것은 '하나를 이루는 도[致一之道,치일지도]'이다.
얽히고 설키며 응결되어 합함은[絪縕凝合,인온응합] 교제가 긴밀한 상태이다.
'醇(순)'은 도탑고 짙음이니 기의 변화[淳濃氣化,순농기화]를 말하고,
변화하여 생김은 형체의 변화[化生形化,화생형화]이다.
내가 『주역』을 읽다가 여기에 이르러,
감동하여 우러러 탄식하고 구부려 깊이 살피고[仰歎俯深,앙탄부심],
오직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도여[美哉道,미재도]["라고 외쳤다."
지극히 드러나면서도 은미하고[ 至著而微,지저이미],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아득하며[至近而玄,지근이현],
지극히 평평하면서도 깊고[至平而深,지평이심],
지극히 번다하면서 정밀하며[至繁而精,지번이정],
지극히 쉬우면서도 어려우니[至易而難,지이이난],
아름답다, 道(도)여! 더할 나위 없도다.
이것이 천지와 성인이 천지가 되고 성인이 되는 이유이다.
이런 이치는 신묘함으로만 알 수 있으나[可以神會,가이신회],
뜻으로 도달할 수는 없으며[不可意到,불가이도],
설사 뜻으로 도달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可以意到,가이의도],
말로는 전할 수 없다[不可言傳,불가언전],
지금 우선 그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으로 억지로 말하노니[强言糟粕,강언조박],
세상 군자 중에 혹 여기에 밝은 자[能明之者,능명지자]는 鞭撻(편달)을 바란다.
무릇 陰(음)과 陽(양) 두 기운은 함께 하나에서[同生于一,동생우일]
짝하고 합해 하나가 되었다[配合爲一,배합위일].
형체와 기운은 두 가지 물건인데 함께 하나에서 생겨나 짝하고 합해 하나가 되었다.
하나라는 것은 태극이다[一者太極,일자태극].
兩儀(양의)와 四象(사상)과 八卦(팔괘)가 太極(태극)에서 생겨나,
분열하고 구별되어 만 가지로 같지 않음이 있으니[有萬不同,유만불동],
태극의 밖에서 나온 적은 없었다[出於極之外,출어극지외].
태극 사상과 兩儀(양의)의 가운데 있고,
四象(사상)과 兩儀(양의)는 太極(태극)가운데 있으니,
이것은 '萬(만)'이 '하나[一,일]' 가운데 있고,
'하나'가 '만' 가운데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을 '하나'라고 하지만 '만' 가지로 다르고,
이것을 '만' 가지라고 하나 '하나'일 뿐이다[萬矣則一已矣,만의즉일이의].
예를 들면, '太極(태극)'은 임금이고, 兩儀(양의)는 신하이며,
四象(사상)은 백성이다.
임금, 신하, 백성 셋이 확실하게 구별 있는 것이 層數(층수)이고,
신하와 백성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많아지나
사람이 각각 같지 않으니 섞일 수 없어 分數(분수)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도 하나뿐이다[爲國則一已矣,위국즉일이의].
'임금'을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임금이 없으면 나라가 없고,
'신하'를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신하가 없으면 나라가 없으며,
'백성'을 '나라'라고 할 수 없지만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없으니,
나라는 임금, 신하, 백성 밖에 있지 않지만,
또한 임금에게만 달렸거나, 신하에게만 달렸거나,
백성에게만 달린 것은 아니다.
반드시 세 가지가 합하여야 하나의 나라가 되니
세 가지가 동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에게도 백 가지 신체 부위와
아홉구멍[百軆九竅,백체구규]은 섞이면 인되지만,
통체로 보면 하나이다[爲身則一已矣,위신즉일이위].
한 몸통과 한 구멍을 가리켜 몸이라고 하면 안되나,
몸통과 한 구멍이 없으면 또 몸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누어진 뒤에 합하고, 합한 뒤에 나누어 진다.
나뉨은 합한 가운데 있고, 합함은 나뉨 가운데 있어,
섞이고 엉겨[混淪膠葛,혼윤호갈] 마침내 나눌 수 없고,
또 마침내 합할 수도 없다.
나뉠 수 없기 때문에 또한 합할 수 없으니,
이것을 '하나를 이룸[致一,치일]'이라 하는 것이다.
무릇 도는 나뉘어 다르게 되면 가장 좋지 않고[分異不善,분이불선],
합하여 같게 되면 가장 좋다[善於合同,선어합동].
五官(오관)이 나뉘어 다르게 되면 사람의 생명이 끝나고,
三族(삼족)이 나뉘어 다르게 됨에 집안의 도리가 망하고,
상하가 나뉘어 다르게 되면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이다.
四德(사덕)이 합하여 같으면 바른 도가 되고[四德合同爲道,사덕합동위도],
五味(오미)가 합하여 같으면 바른 양육이 되며[五味合同爲養,오미합동위양],
만물이 합하여 같게 되면 쓰임이 된다[萬物合同爲用,만물합동위용].
나뉘어 다르면 사사롭고[分異則爲私,분이즉위사],
합하여 같으면 더불어 행하게 된다[合同則爲公,합동즉위공].
고로 충서는 합하여 함께하는 도이다[忠恕合同之道,충서합동지도].
또 小人(소인)의 道(도)를 비유하자면,
동쪽을 향하는 자는 서쪽을 등져서 더욱 멀어지고,
남쪽을 향하는 자는 북쪽을 등져서 더욱 멀어진다.
君子(군자)의 道(도)를 비유하자면,
사방 사람이 똑같이 중앙에 모여 하나가 되는 이치와 같다.
또 小人(소인)의 道(도)를 비유하자면,
방에서 나가 멀리 백 리를 가면 방과 거리가 백 리가 되고,
천 리를 가면 방과 거리가 천 리가 될 것이다.
또 君子(군자)의 道(도)를 비유하자면,
천 길 되는 나무 가지는 하늘까지 뻗어 있고,
뿌리는 샘에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아,
위로 관통하고 아래로 관통하며,
멀리 관통하고 가끼이 관통하여,
통하여 하나가 되니 이것을 '하나를 이룸[致一,치일]'이라 하는 것이다
『서경』에 '오직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唯精惟一,유정유일],
진실로 중도를 잡을 것이다[允報厥中,윤보궐중], 하고
『중용』에 '오직 천하의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惟天下至誠,유천하지성]
본성을 다할 수 있고[能盡其性,능진기성],
사물의 본성을 다할 수 있어야[盡物之性,진물지성]
천지공사에 참여할 수 있다[與天地參矣,여천지참의]'고 하였으니,
자기의 본성을 다한 뒤에야 물건의 본성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성을 다하여야 물건의 본성도 극진하게 되어
물건이 나와 천지만물과 통하여 하나가 되기 때문에,
신묘하고 변화할 수 있으니[能神變化,능신변화],
이것을 '하나를 이룸'이라 한 것이다.
'하나를 이룸'이란 하나라서 하나를 이룸이 아니라[非一而一,비일이일],
하나가 아닌데도 하나를 이루는 것이다[乃不一而一,내불일이일].
하나가 아닌데도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不一而一,불일이일],
마침내 하나가 될 수 있다[故能一也,고능일야].
하나라는 것은 도의 극치이다[一者道之極致,일자도지극치]
충성과 용서는 하나가 되는 방법이고[忠恕者一之法,충서자일지법]
중용은 하나의 자리이며[中庸者一之位,중용자일지위],
성실함과 밝음은 하나의 공효이고[誠明者一之工力,성명자일지공력],
예와 악은 하나의 기구이며[禮樂者一之器,예악자일지기]
성인은 하나가 된 사람이고[聖人者一之人,성인자일지인],
천지는 하나의 신이며[天地者一之神,천지자일지신],
태극은 하나의 주체이다[太極者一之主,태극자일지주].
지극히 성실한 도는[至誠之道,지성지도]
만물을 체득하여 빠뜨리지 않는다[軆萬物不遺,체만물불유].
그러므로 천지의 조화[天地造化,천지조화]는
만물 가운데에 있을 뿐[在萬物中已,재만물중이],
만물 밖에[萬物之外,만물지외]
다시 천지의 조화가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更无造化,갱무조화]
성인의 도 역시 천,지,인,사물 가운데 있을 뿐,
하늘,땅,사람,사물 밖에 성인의 도는 없다.
만일 천지와 성인이 별도로 사람과 물건 밖에서 행한다면
이것 또한 어찌 '지극히 큼[至大,지대]'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를 이룸'이라는 것은
천지와 성인이 오직 천지와 성인이 되는 방법일 뿐이다.
『중용』에서 '천지의 도는 한마디 말로 다 할 수 있다[可一言而盡,가일언이진].
또 그 물건됨이 둘이 아니기에[爲物不貳,위물불이],
만물을 살려내는 양을 측량할 수는 없을 것이다[生物不測,생물불측]'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를 이룸[致一,치일]'이다.
'하나를 이루는 도[致一之道,치일지도]'는 음악에 있어
五聲(오성)과 六律(육률)과 八音(팔음)이 호합하여 하나의 소리가 되는 것과 같다.
내가 처음 글을 배울 때 곧 스스로 분발하여 '글을 읽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일을 행하기 위함이니,
만일 '글 따로 일 따로[書自書事自事,서자서사자사]'라면
글을 읽어 무엇 하겠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이에 글을 읽으면 마음으로 사물을 끌어당겨 합해보고,
일에 임하면 마음으로 경전을 증명하고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글을 읽는 데 전념하면 일을 잊고,
일에 임하는 것이 급하면 글을 잊는 것이 항상 걱정이었다.
대체로 노력한 지 30년이 지난 뒤에야
글과 일이 통하여 하나가 되어[書與事通爲一,서여사통위일],
읽는 글이 곧 임하는 일이고[讀書卽臨事,독서즉임사],
임하는 일이 곧 읽은 글이 될 수 있었다[臨事卽讀書,임사즉독서].
일찍이 일이 있어서 1년 동안 글을 읽지 못했는데도,
책을 대면하자 문리가 도리어 더욱 밝아져서[文理乃反益明,문리내반익명],
전날 통하지 못했던 것들이 모두 기쁘게 이치가 순하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하나를 이룸'의 징험을 알게 되었으니,
모든 일은 이와 같지 않음이 없었다[萬事莫不然,만사막불연].
아 ! 훗날의 군자여 ! 바라건대 나의 망령된 말에 대해서,
정신으로 이해하여 스스로 터득할 지어다[神會自得,신회자득].
말단적인 말투에 사로잡혀[局言辭末,국언사말]
그 본지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不可喪其意,불가상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