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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하나님의둥지 원문보기 글쓴이: ♣양무리™
주님께 합당한 자 / 빌립보서 1장 27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우리 성도는 성도로서의 생활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꼭 알맞다는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Require, 즉 요구하는 것에 다 응하는 것을 말합니다. 더하지도 않고 덜 하지도 않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꼭 맞아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나라 말로는 안성맞춤이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 것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합당한 일과 합당하지 않은 일이 있는데 합당치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천국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스스로 거절함으로 영생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것과 같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내 스스로가 노력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긍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합당이 여기고 내가 거기에 순응하여 나아갈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됩니다.
1.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죽어야 마땅한 자임을 합당이 여겨라.
요한 1서 1장 8절 - 10절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자기가 죄인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없수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받으려면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이 죄를 해결 받는 길을 찾아 나서서 예수를 믿음으로 죄가
사해 진다는 사실을 믿어질 때에 하나님의 구원이 임합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려 오시고 십자가를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한 사람의 죄를 위하여 지시고 십자가에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2.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절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스스로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기를 합당치 않게 여기는 사람으로 구원을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 주님의 뜻, 성령의 뜻으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3.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일을 내가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꼭 맞는 일, 성령님의 뜻에 꼭 맞는 일을 찾아 행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면서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들어서 높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합당한 자를 구원하여 주시고 기뻐하시며 그를 높여 주십니다.
디모데 후서 2장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주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합당한 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주를 위한 고난을 당하여야 합니다. 주를 위한 고난이 없이는, 신앙의 연단이 없이는 합당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 5절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받으면서 기뻐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러한 믿음으로 인하여 오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보시고 합당한 자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우리는 주를 위하여 일을 하다가 당하는 고난을 기뻐하며 하나님이 합당한 자에게 주실 상급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주님이 합당치 않게 여깁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하여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데 왜 주님이 합당치 않게 여기셨나요?
첫째로 쟁기를 잡았으면 앞만 보고 나아가야 밭이 반듯하게 갈아 집니다. 앞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뒤를
돌아보고 후회하고 과거를 향수 하는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에 합당치 않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얼마나 밭을 갈았나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내 평생 얼마나 전도를 하였나 밭을 얼마나 갈었나을 돌아보고 자랑하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밭을 조금 갈기 시작한 후에는 돌아보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많이 갈은 후에 돌아보듯 주님의 일을 하다가 내가 주를 위하여 얼마만큼 일을 하였는가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교만한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자랑과 교만이 있는 사람은 주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평생을 주를 위하여 일한 후에 우리의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는 겸손한 종으로 살아가야 합당한 자가 됩니다.
셋째로 예수를 믿다가 이것 괴니 믿는 것 아니냐 하고 의심을 하는 자, 회의를 품는 자는 합당치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앞만 바라보며 나의 사명, 밭을 가는 사명이 끝날 때까지, 해가 질 때까지 나의 모든 힘을 다하여 밭을 갈아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았던 이스라엘 사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가 합당치 않는 자들로 실패를 하였지만 오직 앞만을 바라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자고 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을 정복 한 것과 같이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하여 앞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4절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 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장로들이 주님에게 백부장의 선행을 들어가면서 이 사람은 주님의 기적을 받기에 합당한 자라고 천거를 하였습니다.
물론 주님이 백부장을 잘 아시지만 사람들이 백부장을 합당한 자라고 천거하는 것을 들으시기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도 내 주위의 사람들이 주님에게 주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라는 추천을 받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주님에게도 인정받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서는 회당을 짖고 선한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합당한 사람입니다.
사람 앞과 주님 앞에서도 합당함을 인정받고 추천 받는 선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로부터 합당한 자라고 인정을 받기 위하여서는
1.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8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가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좇는 사람이 합당한 자라고 말씀하시었습니다.
십자가가 없이 예수를 쫓는 사람은 주님께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는
1. 십자가는 공동의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각 개인마다 다르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으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내 십자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달려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기고, 승리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천국의 상급을 주십니다. 흰 돌은 속죄의 뜻을 말합니다.
유대에서는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에게는 흰 돌을 주고 유죄의 표로는 검은 돌을 재판관이 판결 때에 주었습니다.
받는 자만이 아는 것이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이러한 것이 자기의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가. 자기의 연약한 것이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건강이 될 수가 있고 자기의 결점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잘 넘어 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자기의 약점인 물욕, 탐심, 정욕 등이 십자가가 됩니다.
이러한 것을 못박아 죽여 버리는 사람이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나. 자기의 가장 귀한 것이 자기의 십자가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장 귀한 것은 독자 이삭이었습니다. 입다의 가장 귀한 것은 무남독녀 딸이었습니다.
나의 가장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고 자기의 가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각기 자기의 귀한 것이 다르지만 이것도 역시 십자가에 못박아 없애 버려야 합니다. 어떤 이는 오락이나 취미가 자기의 십자가가
될 수 있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데에는 이러한 것을 승리하는 내가 될 때에 하나님 나라에, 주님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 십자가는 힘이 들고 무거운 것입니다.
주님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길에 너무 무겁고 힘에 바쳐 열 한번이나 쓰러졌다고 합니다.
나를 쓰러지게 하는 것이 나의 십자가입니다. 억울한 것, 연약한 것, 도움을 받아야만 할 일이 십자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 없이 믿음 생활을 하는 자는 주님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십자가가 있지만 이것을 승리하며, 이기면서 신앙으로 주님 앞에 날마다 가까이 가는 삶을 사는 자가 주님께 합당한 사람입니다.
2. 십자가는 + 표로 더하기입니다.
나 + 예수 = 주와 연합한 자. 나와 주님은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십자가는 더 하는 것입니다. 합하는 것입니다. 주와 합한 자가 되고, 성령이 내 몸에 들어와 성령과 내가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 후서 1장 5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믿음 위에 덕을 더하고, 덕 위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빼기는 하기 쉽고 잘하지만 더하기는 힘들어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완성을 위하여서는 항상 더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가 합하여 질 때에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하여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3. 십자가는 순종이요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순종을 이루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의 십자가도 순종입니다. 순종에는 끝까지 참아야 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히브리서 5장 8절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여 달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조롱을 다 참으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십자가에서 순종의 죽음을 하셨습니다.
당장 열두 영이 더 되는 천군을 불러서 모두 멸할 권세와 힘이 있지만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십자가를 지고 참은 것입니다.
4.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장래의 모든 행복을 보장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알고 소망으로 참고 기다리지만 미련한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어리석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십자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랑 할 만한 아주 놀라웁고 소중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의 생각 여하에 따라서 각자 자기에게 다르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억지로 지고 갈 때에는 무겁고 힘들지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에는 하나도 무겁지가 않습니다.
십자가를 처음에 질 때에는 무겁고 힘들지만 어느 정도 지고 가다 보면 대신 지어 주는 분이 있어서 아주 기쁨과 영광으로 변하여
지는 것은 경험한 분들은 모두 잘 아는 사실입니다.
십자가는 육신을 죽이는 것임으로 우리의 육신을 모두 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야 합니다.
영혼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오히려 육신이 십자가에 죽을 때에 영혼은 구원되어 영생 복락 하나님의 나랄, 낙원에서 기쁨으로
능력의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랑하는 자가 십자가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7절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부모를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니고 자식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육신의 일을 영적인 일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모든 일보다 가장 먼저 사랑 받으시기를 원하시고 그만한 일을 이미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제일 크고 첫째 되게 사랑하라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4장 26절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9장 16절 - 22절에서는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 왔다가 예수를 쫓지 못하고 제자가 되지 못하고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이 천년은 예수님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쫓으라고 말할 때 이 청년의 십자가는 재산이었기 때문에 재산을 포기 할 수가 없고, 이 십자가를 질 수가 없어서 예수님을 좇지 못하였습니다.
주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함으로 주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 33절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모든 것을 버리고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 버리고 주님을 좇을 때에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자녀를 고아원에다 매끼고 주님을 쫓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육적인 정을 버리고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내가 버려야 얻는 법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하여 버릴 때 영생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 제일 주의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배와 그물과 그 가족까지 버리고 예수님을 좇을 때에 세계적으로 오늘날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베드로(Peter)라고 이름을 붙이고 베드로 같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만일 베드로가 배와 그물과 가족을 버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가정에 충실하고 생업에만 충실하게 살았다면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을 무명의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버리면 여러 배를 주님께서 받게 하시고 영생은 상속하게 됩니다. 상속이란 말은 그냥 가만이 있어도 주어지는 것이
상속입니다.
주를 따르는 자가 물질이나 가족 관계나 자기 자신을 버리지 못하고 얽매어 있으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여러 배의 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를 위하여 버리는 자가 될 때에는 버린 것보다 여러 배를 더 받고 영생은 상속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기도하는 자를 주님이 합당하게 여기십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하나님 합당하게 쓰고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십니다.
회개를 하는 것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회개의 열매가 맺혀지고 항상, 범사에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냥 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힘을 써야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습관적인 기도나 식기도나 공중 기도 같이 형식에 따라 하는 기도보다는 힘써서 기도하는 새벽기도, 금식 기도, 작정 기도 등 오랜 시간을 기도하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이루어지는 기도의 줄이 잡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합당하게 쓰시는 것입니다.
입에서 주문을 외우듯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영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기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라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 구하시느니라”
우리 기도가 늘 부족하기 때문에 성령께서 탄식을 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맞게 기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기도를 하여 하나님의 귀히 여김을 받고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건성으로 기도하다가 기도가 다른 데로 흘러가서 삼천포로 가는 삼천포 기도를 하지 말고 전심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기 위하여서는 입술을 움직이면서 하는 한나와 같은 기도, 부르짖는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합당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성령 충만한 사람을 합당하게 여깁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9절 “성령을 소멸치 말며”
성령은 그냥 가만히 두면 휘발유처럼 소멸되어 사라집니다.
우리는 뚜껑이 없는 휘발유 그릇과 같아서 날마다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을 채우지 않으면 언젠가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날마다 믿음이 약하여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8절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고무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고 며칠 그냥 두면 새지 않는 것 같지만 다 새어 며칠이 지나면 쭈굴쭈굴하게 됩니다.
다시 바람을 집어넣으면 팽팽하여 지듯 성령도 역시 바람과 같아서 소명되는 것입니다.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은 신자가 되지 말고 바람이 가득 팽팽하게 든 성령 충만한 성도를 하나님은 합당하게 여기시고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가 항상 성령 충만한 성도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합당한 자로 여기십니다.
5. 감사하는 자가 주님께 합당한 자입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 -12절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생활하게 된 것 자체가 가장 하나님께 감사할 이유입니다. 이제는 모든 일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말로만 감사하지 말고 행동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감사 제물을 준비하는 수고가 있는 감사를 하여야 합니다.
입으로, 마음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행함의 감사를 우리가 주님께 드릴 때에 주님은 합당한 자라고 여기시고 그 감사를 받으시고
감사 드린 것에 곱하기의 축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6. 이기는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 11절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으려면 믿음의 역사, 즉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자기를 이기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이 이러한 사람을 합당한 사람이라고 여기십니다.
우리의 선을 기뻐하시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를 합당한 자로 여기십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를 합당한 자로 여기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주신 권세와 능력과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될 때에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이 되고, 흰옷을 입,고 주님 앞에 담대히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3장 4절- 5절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마귀, 육신의 정욕, 욕심과 싸워 항상 승리하는 자로 주님의 보기에 합당한 승리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7. 겸손한 자가 합당한 자입니다.
로마서 16장 2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우리는 항상 주 안에서 주님 보기에 합당한 예절을 가지고 겸손하게 맞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일꾼을 대접 할 때도 겸손하게, 주의 일을 할 때에도 겸손하게 이 성도의 예절이 몸에서 항상 나타나야 합니다.
이사야서 57장 15절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주님은 겸손한 자를 합당하게 여기시어 그 영과 마음을 소성케하여 주십니다.
정리: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어야 구원을 얻고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주님께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1.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2.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3.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4. 성령 충만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5. 감사를 보이며 살아야 합니다.
6. 이기면서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7.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함이 나타나는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하여 진실된 믿음, 확실한 소망과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구원이 있고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합당치 않은 사람은 하나님과 천사 앞에서 주님이 시인을 아니 합니다.
우리가 이제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었음을 감사하면서, 더욱 더 주님의 마음에 크게 합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