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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첫째주에 집에 내려간 뒤 한달만이다
반복적인 리듬인지 몰라도 집에가는 그 한주는 바깥 기분은 처진다
안 기분은 평안한데도.
가장 바쁜 농번기다.
아직 모내기 덜 된 논들은 일때문에 싸우는 소소함들을 묻어버린다
땅은 사람의 간사함과 게으름을 허하지 않는다
비가 오면 그만하고 커피 한잔 마시고 싶다는 세상과
비가 오니 고구만 순을 놓고 모낼 논 물자리를 잡아 모내기를 서두르는 세상은
분명 다르지만 지금 한끼 밥상에 오르는 밥은 오늘도 내일도 죽을때까지
너무나 현실적이다. 앎은 이렇게 너무나 현실적인데 회피는 자기 세상에 대한
고립을 말한다.
서로 말자리에서 그렇고 그런 진정성 없는 말을 실감나게 연출하고 난 뒤
자신의 발걸음은 켕기는게 없고 가슴은 뿌듯해 오는가. 충만함에 잠도 잘 오는가
오고가면서도 일년에 두세번 정도의 만남에 그나마도 대접을 해주는 이들과의
소주 한잔은 언제라도 그립다.
오고 감이 있어야 한다지만 이 말이 비리의 탄탄한 기초가 되는 것이라 생각이다
오늘은 내가 사고
내일은 네가 사는게 아니고
그냥 마시는 것이다.
시골 논, 밭 , 집 어디에나 있듯 뻐꾸기 소리가 스테레오로 끊임없다
아 탁란의 계절인가.
너,나 시시비비를 말하기 전에
자기 품을 키우자/덮어버리고 갈만큼
뱁새의 조그만 날개속에서 뻐꾸기가 태어나 날아가지 않은가
품안에서는 시시비비가 아닌 삶,생명이 있을 뿐이다
뻐꾸기 녀석이 올 철이 됐다.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뻐꾸기(common cuckoo)는 뻐꾸기목, 두견과의 여름철새로 두견새, 매사촌, 검은등뻐꾸기들과 한통속이다. 한데, 여름철새는 대부분이 숲에서 지내는 숲새이고 겨울철새는 하나같이 바닷새이거나 들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집집마다 뻐꾸기 한 마리씩을 키우지 않는가! ‘쿠쿠밥솥’ 말이다. 우리는 뻐꾹새 소리가 ‘뻐꾹 뻐꾹’으로 들리는데 어째서 서양 사람들 귀에는 ‘쿠쿠 쿠쿠’로 들리는 것일까. 아무리 귀기울여 들어도 ‘뻐꾹 뻐꾹’하는데….
뻐꾸기는 몸길이가 약 33㎝로 등쪽과 멱(목의 앞쪽)은 잿빛이 도는 푸른색이고 아랫면은 흰색 바탕에 회색 가로무늬가 있다. 꽁지는 길고 회색 얼룩이 있으며 다리에 노란색이 도는 날씬한 새다. 평지 또는 숲에 주로 살면서, ‘뻐꾹 뻐꾹’하고 우는 것은 수컷이며 암컷은 ‘삣 빗 삐’하고 들릴락말락 낮은 소리를 낼 뿐이다. 이렇게 여느 동물처럼 수놈은 잘 울어대지만 암놈은 음치(音癡)다. 짝짓기 때를 빼고는 단독생활을 하며, 주로 큰 나무에 앉지만 건물의 피뢰침이나 전선에도 곧잘 오른다.
산란기는 5월 하순에서 8월 상순이며, 다른 새들(개개비·멧새·노랑때까치·뱁새·할미새·휘파람새·산솔새 등)의 둥지에다 1개씩 알을 낳는다. 한 마리의 암컷이 12~15개의 알을 12~15개의 둥지에 흩어 낳는다는 말이다. 한데, 저것들은 분명히 작년에 이 근방 숲에서 태어난 놈이리라. 녀석들이 제비처럼 제가 태어나 자란 곳(서식지)을 기억하여, 대만이나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시아에서 월동하고, 오월이면 귀신같이 찾아온다. 그런데 제 알을 제가 품지 않고(못 하고?) 딴 새둥지에 몰래 집어넣어 새끼치기 하는 것을 탁란(托卵)이라 하는데 지구의 전체 새의 약 1%가 얌체족인 탁란조라 한다. 어떻게 이런 진화를 했을까? 탁란을 다른 말로는 ‘부화기생(brood parasitism)’이라고 하며, 탁란 하는 새(기생 새)와 탁란을 당하는 새(숙주 새)가 서로 정해져 있으며, 무엇보다 알의 색깔이 서로 아주 비슷하다. “뻐꾸기가 둥지를 틀었다”고 하면 가능성이 없는, 웃기는 일을 비꼬는 말이다.
한 예로,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가 알(보통 3~5개)을 품고 있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여태 기회만 노리던 눈치 빠른 뻐꾸기는 잽싸게 달려들어 알 하나를 깨먹거나 굴려 떨어뜨리고, 제 것 하나를 재빨리 낳고 줄행랑을 친다. 이렇게 이 둥지 저 둥지를 배회하면서 사방 알을 낳는 요사(妖邪)한 암놈 뻐꾸기다. 뱁새 알을 까는데 14일이 걸리는데 비해 뻐꾸기 알은 9일이면 부화한다. 부화 후 10시간이 지날 무렵이면 드디어 망나니 본성을 발현(發現)하니, 제 잔등에 야문 것이 닿았다 하면 날갯죽지를 뒤틀어서 집 바깥으로 밀어내버린다.
제 새끼가 아닌 것도 모르는 뱁새 어미! 알고도 속아주는 것일까? 제 몸을 삼킬 듯이 다 자란 뻐꾸기 새끼를 금이야 옥이야 보살펴 키우는 어미 뱁새다. 대리모(代理母) 뱁새는 날개가 해져 너덜거리며 먹이를 찾아 숲속을 힘들게 쏘다니고 있을 때 진짜 어미 뻐꾸기는 먼 나무 위에서 한가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 배로 낳은 어미와 가슴으로 기른 어미, 두 어미를 가진 뻐꾸기 새끼! 과연 우리가 뻐꾹새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유구무언(有口無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