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12:8-12,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한다
‘노시보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아무 약효가 없는 약을 투여하면서 두통을 일으키는 약이라 했더니 실제로 70%가 두통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과 사고를 갖게 되면 뇌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실제적 삶에서 부정적 행동을 낳습니다.
그런데 부정적 감정을 긍정적 감정으로 바꾸는 것이 인정과 칭찬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사고의 폭을 좁히지만 긍정적인 감정은 사고를 확장시키기 때문에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칭찬과 인정은 삶에 만족을 주는 요인이 됩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하는 자에게 충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인정해주면 일하는데 불만을 느끼지 않게 되어 최선을 다하고 몰입함으로써 위대한 성과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출처] 칭찬 예화모음, 작성자 빛의 사자,
오늘 말씀은 8-12의 말씀으로 시작부분에서 사람이 생활 속에서 칭찬과 멸시 받는 것을 평가와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으려니와 마음이 굽은 자는 멸시를 받으리라” 어떤 사람이 칭찬을 받고 어떤 사람이 멸시를 받는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먼저 볼 것은 지혜입니다. ‘지혜’‘시클로’와 ‘대로’‘레피’라는 단어로 만들어 졌습니다. 지혜인 ‘시클로’는 두 가지로 볼수 있는데 좋은 의미로는 ‘깨달은, 신중함, 지혜롭고, 총명하고, 명철하고, 슬기롭다, 통달하다’ 등등이고 나쁜 의미로는 ‘교활하다, 꾀’등입니다.
그런데 ‘대로’‘레피’는 전치사 ‘레’와 ‘입술’의 ‘피’가 결합된 단어로 ~의 몫에 따른, ~의 비율로, 라는 의미입니다. 두 단어를 합친 ‘지혜대로’라는 말은 그가 가진 지혜의 분량대로 그런 말입니다. 지혜 앞에 사람이란 단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쉬’는 누구든지를 뜻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이 가진 지혜의 깨달은 분량대로 혹은 지혜로운 정도에 따라 칭찬을 받는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깨달은 분량만큼 지혜롭게 슬기롭게 행한 만큼 칭찬이 있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칭찬’이란 말은 ‘예훌랄’인데 원형이 ‘할랄’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할랄’은 ‘노래부르다, 찬양하다, 영광을 돌리다, 빛나게 하다’라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사용할 때 칭찬으로 사용하지만 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영광을 올려드리는데 사용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사람에게 적용했을 때는 알리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부각시키고 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지혜대로, 혹은 깨달은대로 신중하게 행하는 사람이 받을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단어가 강의 수동 미완료형이라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러나 틀림없이 받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확실하게 보셨고 아시기만 하면 나 스스로가 염려할 것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강의 수동 즉 하나님께서 강제 하신다는 것이며 미완료형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결국에는 그의 인격이 인정을 받고 칭찬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깨달아지시면 아멘.
다음으로 볼 것이 ‘패려’입니다.
패려의 ‘나아웨’는 ‘꼬이다, 뒤틀어지다, 그릇되다, 사악하다, 뒤집어엎다, 전복시키다’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진리를 거슬러서 하나님을 떠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또한 말씀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회의적이며 불신하는 자를 저자는 ‘패려’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의 결말은 하나님 앞에서 멸시를 받고 또한 사람 앞에서도 멸시를 받으며 버림받을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어떤 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보이듯이 우리의 사고나 가치관은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고 살아가는데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마음이 꼬이고 뒤틀려서 하나님 말씀 뿐 아니라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부정적이면 그는 올바른 길을 갈수 없고 누구도 그런 사람에게 가까이하거나 친구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14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다윗이 기도를 드리는 장면입니다. 아멘.
믿음의 공동체에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사고를 가진 자가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곳은 금방 어둠이 장악하게 됩니다. 그가 비록 많은 지식과 재물을 가진 자라고 해도 또 교회를 열심히 잘 다니고 헌신을 많이 했다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입니다. 깨달아지면 아멘.
그러므로 뒤틀린 생각과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마음이 내안에는 없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꼬이고 굽은 생각들을 말씀으로 곱게 펴서 하나님의 일들을 온전히 감당하고 하나님과 성도들에게 기쁨이 되는 그리고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9절입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해도 스스로 높은체 하면서 먹을 것이 없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입니다. 이는 허세를 부리지 말고 실속 있는 삶을 살라고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10절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 본절에서는 의인의 긍휼과 악인의 잔인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축의 ‘생명’의 ‘네페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네페쉬는 인간의 생명을 말할 때 쓰이는 단어인데 가축에 이단어를 사용한 의도는 뭘까요? 의인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일지라도 사람에게 대하듯이 사랑과 성실함으로 돌본다는 것입니다. 뒷바침되는 말씀, 출20:10절“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십계명으로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반절에서 악인은 긍휼이 '잔인'이라고 했습니다. ‘긍휼’‘라함’은 '자궁'을 의미하는데 이는 엄마가 뱃속에 아기를 향한 감정을 본절에서 악인은 잔인이 긍휼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잔인’은 ‘거칠고 야만적이고, 맹렬하고 잔인한’ 것을 의미하므로 가축에 대해서도 포악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욥은 말합니다. 욥15:35절“그들은 재난을 잉태하고 죄악을 낳으며 그들의 뱃속에 속임을 준비하느니라” 즉 악인이 자기 집에 가축을 잘 돌보지 않고 이렇게 잔인하게 학대하면 결과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동물이나 식물도 잘 돌보아 줘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11절“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 방탕한 것을 따르는 자는 지혜가 없느니라” 본절은 성실과 방탕함에 대한 글입니다. 토지를 경작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농사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헛된 탐욕 없이 성실하게 일한 댓가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사람, 혹은 가치있고 유익하며 선한 일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방탕은 무얼까요?
방탕은 ‘레킴’의 원형‘레크’는 ‘가치없는, 무익한, 사악한’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헛되고 무가치한 것을 따라가는 삶, 무가치한 헛된 꿈을 쫓아가는 삶, 혹은 불경스러운 자나 잘못된 생각으로 악하게 돈을 모은 자, 이런 종류의 사람을 방탕한 자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탕의 끝의 결국은 궁핍한 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두말할 것 없이 지혜가 없는 미련한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심은 대로 거둔다고’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행한 대로 받는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많은 부류의 사람은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해 봐야 남는 것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법이나 편법을 씁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헛된 망상에 빠져서 뜬 구름을 쫓아갑니다. 그 중에 하나 도박입니다. 결국은 패가망신합니다. 다단계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갈6:7절에서 바울이 권면하기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심은대로 거둔다는 기준에서 어긋난 모든 행위는 자신을 속이고 또한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들을 허비하는 일은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주술사들이 의식을 행할 때 사람의 피를 사용하는 것은 생명의 주를 무시하는 행위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일도 나에게 주어진 일도 주께 하듯 하는 것이 참 성도입니다.
그래서 12절에 결론입니다.
“악인은 불의의 이익을 탐하나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아멘.
불의의 이익이란 덫을 놓고 매복하였다가 얻은 포획물이란 의미입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얻는 이익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뿌리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고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결국은 뿌리로서 결실한다고 했습니다. ‘뿌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믿음, 곧은 영적인 상태입니다. 그 뿌리가 깊이 내려갈수록 가뭄에도 견디어 내듯이 성도의 믿음도 깊이 내려가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바위처럼 되었을 때 반드시 결실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아멘.
시37:18-20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악인들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들은 어린 양의 기름 같이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지리로다” 아멘,
의정부 등대지기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