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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하던 모압이 조롱당함(26-28)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해해서 자신들만이 특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해지만,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또한 이스라엘과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만 거룩을 요구하신 분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것과 이방 나라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다릅니다.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26모압으로 취하게 할지어다 이는 그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함이라 그가 그 토한 것에서 뒹굴므로 조롱거리가 되리로다 27네가 이스라엘을 조롱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도둑 가운데에서 발견되었느냐 네가 그를 말할 때마다 네 머리를 흔드는도다 28모압 주민들아 너희는 성읍을 떠나 바위 사이에 살지어다 깊은 골짜기 어귀에 깃들이는 비둘기 같이 할지어다(26-28)
역사적으로 모압은 이스라엘의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스라엘과 거듭된 전쟁과 영토권 분쟁으로 사이가 무척 나빴습니다. 따라서 모압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유 없이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모압이 행했던 것처럼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⑴ 조롱거리가 되는 모압(26)
모압의 심판이 ‘여호와에 의한 모압의 술 취함’으로 표현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참조, 25:15-29). 다른 곳에서처럼 명령을 받는 ‘너희’의 정체는 모호하게 남습니다. 여호와께서 보내시는 ‘파멸하는 자’(8) 또는 ‘술을 옮겨 담는 사람’(12)을 보내 일하도록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같은 명령을 내리실 때는 물론 까닭이 없지 않았습니다. 모압이 그분을 거슬러 교만했기 때문입니다(42a).
모압의 교만을 구체적으로 고발하기에 앞서 술자리의 꼴사나운 모습에 비교해서 모압을 조롱합니다. 하나님께 모압은 마치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자기가 토한 것 위에 나뒹구는 자와 같습니다. 온갖 추태로 조롱거리가 된 술꾼처럼 교만에 취한 모압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하고) 조롱거리가 됩니다.
⑵ 이스라엘을 조롱한 모압(27)
모압이 조롱거리가 되는 이유는 이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했기 때문입니다. 모압은 이스라엘을 마치 도둑질하다가 들켜 현장에서 체포된 범인처럼 취급하며 조롱했습니다(27; 2:26; 참조. 출애굽기 22:2) 도둑이 아닌 이스라엘을 도둑으로 멸시했기에 모압이 멸시를 당합니다.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을 경멸하고 조롱한 것이 곧 그분을 거슬러 행한 교만입니다. ‘(머리를) 흔들다’는 오만하게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는 태도입니다.
⑶ 도망하라 조롱당한 모압(28)
이스라엘을 조롱하고 여호와를 거슬러 으스댄 모압에 심판이 선고됩니다(28). 모압 주민들은 성읍을 버리고 바위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읍에서의 평안한 삶은 이제 끝났습니다. 성이 더는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어떤 성읍도 적의 침략을 피할 수 없기에 목숨을 구하려면 성을 떠나 적의 칼이 미치지 않는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사냥꾼의 눈을 피해 골짜기 벼랑에 둥지를 틀고 사는 비둘기처럼 모압 사람들은 험한 골짜기에서 힘겹게 살아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편안하게 살았던 모압이 광야처럼 폐허가 되고, 들짐승의 거처가 모압 주민들의 거주지가 됩니다.
심판을 부른 모압의 교만(29-30)
교만하고 오만한 사람은 굴종을 받지만 진정한 환영과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이들은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며,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습니다. 결국, 진정한 존경은 겸손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존경받을 수 있으며,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29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한 교만 곧 그의 자고와 오만과 자랑과 그 마음의 거만이로다 3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의 노여워함의 허탄함을 아노니 그가 자랑하여도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였도다(28-30)
요새를 자랑하던 모압이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외딴 곳에 숨어 겨우 목숨만 부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맞설 만큼 크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26)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⑴ 심한 교만(29)
정체가 불분명한 ‘우리’가 여호와의 심판을 초래한 모압의 교만을 인용합니다(29; 참조. 이사야 16:6). 문맥에서 보면 우리는 26절에서 여호와로부터 모압에게 술을 먹이도록 명령을 받은 ‘너희’입니다. ‘우리’가 들은 모압의 교만을 여호와께서 아시기에 ‘너희’에게 모압을 징벌하게 하십니다. 비슷한 의미를 갖는 다섯 개의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모압의 교만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줍니다.
⑵ 노여워함의 허탄함(30)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가 빈 말로 큰소리쳐도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그가 분내는 것도 헛되다는 것을 아십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허풍과 거짓이 있을 뿐 실속은 없습니다. 사람을 향한 이런 교만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든지 하나님마저 속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29-30절을 통해 나타난 교만의 내용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고 교만 자체에 집중합니다. 교만은 모압의 상징이자 그 본질이었습니다. ‘교만과 오만과 자랑’은 모두 ‘높다’를 의미하는 동사로, 의미 차이 없이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첫 번째 ‘교만’과 네 번째 ‘오만’은 같은 단어로, 13:9은 같은 단어로 ‘예루살렘의 교만과 유다의 큰 교만’을 고발합니다. 두 번째 ‘교만’은 ‘심한’을 첨가해 교만의 강도를 한층 강조합니다. 세 번째 ‘자고’는 마찬가지로 ‘높다’를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의 번역으로, 13:15에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고 교만하지 말도록 경고합니다. 다섯째 ‘자랑’은 예레미야서에서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여섯 번째 ‘거만’은 ‘높다’, ‘위에 있다’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특별히 교만의 장소로 ‘마음’을 언급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서 마음은 사고와 계획과 정정을 담당하는 신체 기관입니다. ‘마음의 교만’은 생기하고 결정하는 것이 모두 교만에 근거함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모압에 관하여 들은 것을 여호와께서 사실로 확인해주십니다(30). ‘노여워함의 허탄함’으로 번역한 단어는 ‘한계’ 또는 ‘정도’를 넘었음을 의미합니다. 평정심의 한계를 넘으면 노여워함으로,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교만함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됐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그 이상의 높은 것을 탐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는’(17:10) 여호와께서 아셨기에 그분의 판단은 틀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압의 자랑은 입술의 자랑에 불과합니다. 실체 없는 허황한 말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압의 태도를 교만하다고 책망하시고 모압을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압의 멸망을 슬퍼하시는 하나님(31-35)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생명들이 재난 가운데 괴로움을 겪으면 안타까워하고 슬퍼하십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슬픔에 함께 해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압의 고통에도 슬퍼하십니다.
31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위하여 울며 온 모압을 위하여 부르짖으리니 무리가 길헤레스 사람을 위하여 신음하리로다 32십마의 포도나무여 너의 가지가 바다를 넘어 야셀 바다까지 뻗었더니 너의 여름 과일과 포도 수확을 탈취하는 자가 나타났으니 내가 너를 위하여 울기를 야셀이 우는 것보다 더하리로다 33기쁨과 환희가 옥토와 모압 땅에서 빼앗겼도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끊어지게 하리니 외치며 밟는 자가 없을 것이라 그 외침은 즐거운 외침이 되지 못하리로다 34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와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 셀리시야에 이르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리를 내어 부르짖음은 니므림의 물도 황폐하였음이로다 35여호와의 말씀이라 모압 산당에서 제사하며 그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를 내가 끊어버리리라(31-35)
하나님께서는 번영과 부요에 취해 자만하는 모압을 술에 취하게 하여 자기 토한 데 뒹굴게 하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조롱하였고, 이스라엘이 도둑질하다 들키기나 한 것처럼 머리를 흔들며 비웃음거리로 삼았습니다. 누군가에 대해 아주 적게 혹은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쉽게 비판하고 냉소하지는 않는지 돌아봅시다.
⑴ 여호와의 탄식(31-32)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멸망을 슬퍼하십니다. 온 모압을 위하여 애곡하며 부르짖으십니다. 보통 고발의 말씀 다음에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심판의 말씀이 뒤따르는데, 여기서는 탄식이 나옵니다. 심판이 이미 이뤄진 것을 전제하고 탄식합니다.
심판이 가능성의 영역을 떠나 확정됐음을 보여줍니다. 탄식의 주체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33,35,38절의 내용은 예언자보다는 여호와께 어울립니다. 모압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모압의 멸망을 탄식하십니다. 단순한 문학적 표현만은 아닙니다. 심판의 결정과 집행에 따른 여호와의 안타까움과 아픔을 보여줍니다. 공의에 따라 심판하시지만, 한 민족의 멸망은 그분께도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의 죽음을 직접 애도하십니다(31; 참조, 이사야 16:7). 반복 사용된 ‘모압을 위하여’는 모압의 멸망이 그분께 얼마나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만 통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애도할 때 이웃들도 함께하는 것처럼 길헤레스 주민들을 위해 불특정의 사람들도 슬피 웁니다(17). (후반절도 1인칭으로 읽는 다수 입장에 따르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해 여호와께서 우신다.) 길헤레스(오늘의 케락)는 사해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아르논과 세레드의 가운데쯤에 위치한 성읍으로 모압의 도성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는 모압을 대표합니다. 길하레셋(이사야 16:7; 열왕기하 3:25)의 단축형에 해당하는 길헤레스는 히브리어로는 ‘옹기 조각들의 성’을 의미합니다. 질그릇이 깨지듯이 길헤레스가 완전히 파괴될 것을 암시해줍니다. 모압의 멸망으로 모압 신들의 무능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 모압의 제의와 신들은 자신의 숭배자들을 구해주지 못합니다.
⑵ 부르짖음(33-34)
모압의 유명했던 포도 농사를 배경으로 모압의 멸망을 기술합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가 여기서는 모압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포도 산지로 유명한 십마와 야셀이 들이닥친 파괴자들에게 ‘여름 과일과 포도’를 모두 빼앗깁니다. 폐허가 된 포도밭과 과수원에는 수확하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적막감만 감돕니다. ‘내가 포도주 틀에 포도주가 끊어지게 하리니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분께서 모압의 교만을 징계하시려고 수확의 기쁨과 즐거움을 모두 그치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을 위해 통곡하시고 부르짖으시지만, 모압의 멸망은 그분의 공의로운 심판이기도 합니다. 십마와 야셀을 유린한 재난이 다른 성읍들로 확장됩니다. 울부짖는 소리가 ‘헤스본에서 엘르알레를 지나 야하스까지’ 들리고, ‘소알에서 호로나임을 지나 에글랏 셸리시야’까지 부르짖음으로 가득 찹니다(34).
모압 전역이 일시에 적군들의 발에 밟혀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모압 본토의 젖줄이 되는 강물(니므림)도 마르게 하시고, 하나님 대신 모압 산당에서 우상에게 제사하는 자들을 그 신들과 함께 없애실 것입니다.
⑶ 우상숭배들의 징벌(35)
심판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하시는 일입니다. 모압의 북쪽 지역과 남쪽 지역이 모두 적들에게 유린당합니다. 엘르알레는 헤스본에서 북동쪽으로 3km, 야하스는 남쪽으로 25km 떨어졌습니다. 소알은 사해 남단 세레드 시내 근처의 성읍이고, 에글랏 셸리시야의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니므림은 사해 남쪽의 오아시스였던 것 같습니다. 모압이 폐허가 되기에 산당에서 제사를 바치고 신들에게 분향하는 자들도 모두 사라집니다.
그렇지만 모압이 모두 파괴되어 곳곳마다 울부짖음과 슬픔만이 가득하고 사람마다 모든 것을 잃고 큰 고통에 빠지자 하나님은 가슴 아프게 여기시고 슬퍼하십니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모압이 저지른 잘못과 그들에게 닥칠 재난을 예고하는 말보다는 모압의 비참한 상태나 이를 두고 탄식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아픔당한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조롱한 모압 역시 다른 나라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 나는 다른 친구가 고통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자비한 사람이 복이 있으며 자비함을 입게 될 거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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